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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가슴 고정필자코너 72 POSTS


  1. 나는 왜 음악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어떤 자극이나 영감을 얻으면 나도 모르게 노래가 만들어진다. 수학공식처럼 정해진 형식도 없고 일정한 법칙도 없다. 내가 사는 퀸즈 아파트에서 뉴욕타임즈 일요판(나는 30년 동안 뉴욕 타임즈 일요판을 종교예식처럼 일요일 새벽부터 4시간씩 읽는다. 신문 두께가 7센티미터 정도다.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습관이다. 그 당시 내 첫 번째 마누라는 그렇게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뉴욕타임즈를 읽는 나를 보고 치질이 안 걸린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다.)을 사러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늘씬한 금발 미녀를 보고 <White Woman>(기억상실)이란 곡을 썼다. [매스터피스]를 제작하러 잠시 한 달 동안 오피스텔에 머물면서 혼자 잠에서 깨어나 표현할 수 없는 소외와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리하여 8집에 수록된 <Paranoia>(편집증)라는 곡이 탄생했다.

    보통 곡의 주제가 되는 ‘후렴’ 부분이 나의 뇌리를 강타한다. <White woman>의 경우에는 “White woman, can I come home with you?(백인 아가씨, 같이 집에 갈까요?)”라는 후렴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그 당시 즉흥적으로 느낀 성적 갈망이었다. 그리고 <Paranoid>를 작곡할 무렵에는 잠에서 깨어나 느낀 공포로부터 영감이 떠올랐으므로 “난 잠자기가 무서워”로 곡이 시작된다. 일단 주제만 잡히면 나머지 코드와 음의 진행과 가사는 분위기에 맞춰 연결하면 된다. 보통 영감만 얻으면 곡은 3~4시간이면 완성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좀 주소>와 <행복의 나라>도 곡을 완성하는 데 두 시간 걸렸다.

    작곡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이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가사가 훌륭하다고 하지만 사실상 좋은 음이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가사도 무의미해진다. 가사 없는 훌륭한 음악들이 많지 않은가? 클래식 심포니 대부분, 그리고 재즈와 뉴에이즈의 음악이 좋은 예다. 음이 인간의 몸매라면 가사는 옷이다. 일단 몸매가 완벽해야 무슨 옷을 입혀도 매력적이다.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밥 딜런이나 레오나드 코헨의 문학적인 가사를 대중들은 중시하는데, 사실상 그들의 곡들이 일단 완벽하다.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나 코헨의 <Suzanne>은 곡 자체가 명곡이다. 말하자면 늘씬한 몸매에 최신 유행 패션의 옷을 입힌 셈이다. 그러니 그들의 곡은 예술이 아닐 수 없다.

    한대수, 이상은 : 2005 광명음악밸리축제 홍보대사


    나는 음대 근처에도 못 가봤다. 배우지도 못한, 즉 엉터리 작곡가다. 왜 내가 음악을 하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말도 못할 음악광이었고 1940년도에 연희대학의 창설자인 언더우드 박사의 추천으로 프린스턴으로 유학을 가서 신학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다.(이승만 박사도 프린스턴의 선배였다.) 그는 사실상 음악 작곡을 전공하는 것이 꿈이었지만 기독교를 이 땅에 전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국인 목사 용사가 필요했던 언더우드 박사는 “한군, 음악도 좋지만 신학학위를 따고 음악을 부전공하는 것이 어때”하면서 팔을 비틀었다. 당시 할아버지는 이미 바이올린도 연주하셨고, 또 미국 명사의 추천 없이는 유학갈 돈도, 방법도 없었을 때였다. 짧은 영어에 박사학위 논문 쓰느라 눈코 틀 새 없었고 잠잘 시간도 모자란 한국유학생이 어떻게 부전공을 생각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신학 학위만 취득한 채 귀국하여 연희대학 초대 신학대 학장과 대학원장을 겸임하셨다. 당시 연희대는 미션 스쿨로서 단과대학이 신학대학 하나뿐이었다. 나중에 세브란스와 합쳐서 연세대학이 된 것이다. 아마 할아버지나 언더우드 박사가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거대한 연세대학을 보고 까무라쳤을 것이다.

    그 당시 할아버지는 점심 땐 다른 교수들과 점심식사를 나누지 않고 꼭 사택에 돌아오셔서 자기가 유학갈 때 사온 신 매그노복스 하이파이로 우렁차게 베토벤 심포니, 아니면 바하 무반주 첼로를 한 시간씩 들으시고 다시 출근하셨다. 그것도 동네가 떠나가라는 듯이.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 생신 때마다 훌륭한 최신 클래식 음반 하나만 선물하면 언제나 기뻐하셨다. “역시 내 손자가 내 취향을 제일 잘 아는구먼”하시면서. 그리고 또 하나 할아버지의 취미는 카메라였다. 항상 독일제 콘텍스를 보물같이 가지고 다니시면서 슬라이드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교수가족과 동네 사람들을 초청해 슬라이드 쇼를 하는 것을 큰 낙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항상 수천 권의 철학, 음악, 미술책으로 가득 찬 널찍한 서재가 우리집에 있었다. 나에게는 그 서재가 개인 도서관이 되어버렸다. 나는 수많은 나날을 이 나만의 도서관에서 지냈다. 10살 때부터 여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브리태니커로 여자의 신체 부분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비행기에도 관심이 많아 독일, 일본, 미국 전투 비행기를 일일이 공부하며 어떤 비행기가 공중전에서 승리할 것인가를 내 스스로 연구하고 판단했다. 당시 내가 매료된 비행기는 독일 매서치미트와 일본 제로 그리고 미국 무스탕기였다. 그래서 나 역시 지금까지도 음악, 사진, 책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당시 드물게도 피아니스트였다. 할아버지가 목회하시는 교회에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쳤으며 그 인연으로 우리 할아버지의 며느리가 된 것이었다. 즉 음악이 우리 가족의 시멘트 역할을 한 것이다. 그 당시 피아노가 국내에 없어 부유한 집안의 장녀였던 우리 어머니의 외할아버지가 나가사키에서 피아노를 구입해 화물선으로 나르셨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는 태어났고 음악을 매일같이 우렁차게 들어가며 방바닥을 기어다녔다. 음악은 피할 수 없는 방안의 공기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땐 기타를 치는 친구의 소개로 기타를 배우게 되면서, 당시 내가 가장 부러워하고 우상으로 삼았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헤어스타일도 엘비스와 똑같이 포마드를 바르고 스타일링 했다. 그러다 비틀즈가 나를 보고 “너도 곡을 쓸 수 있어”라고 교훈을 주었고 밥 딜런이 등장해 “가사에도 너의 생각을 담을 수 있어”라고 가르쳐 주었다.

    고민


    내가 내 자신의 거울로 내가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면 참 희한하다. 왜 그렇게 굴곡이 심했고 변화가 많았는지. 그것도 동서양을 교체해가며 말이다. 나는 한 나라에서 입학과 졸업을 마친 적이 없다. 국민학교는 한국에서 입학하고 미국에서 졸업했다. 중학교는 미국에서 입학하고 졸업은 한국에서 했다. 고등학교 입학은 한국, 졸업은 미국이었다. 대학과 전문학교는 미국에서 다녔다. 나도 어지럽다. 그러니 미국에서는 내가 ‘칭총(중국인에 대한 비하가 담긴 말)’으로 불렸고 한국에 오면 ‘양키’라고 놀림 받았다. 그 당시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 사회였고 유색인종 인권운동이 활발해지기 이전이었다. 그리고 그 공부는 얼마나 혼돈스러웠는지. 미국에서는 조지 와싱턴 전기를 읽으며 펄시 비쉐 쉘리의 평전을 써야 했으며, 한국에서는 세종대왕을 배우며 한자도 배워야 했다. 나의 해골은 아이러니와 혼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돌이켜 보건대, 나의 성장 과정은 소속감이 철저히 배제된 상태의 연속이었다. 어딜 가도 나의 소속은 없었다. 어떤 친구와 우정의 다리를 튼튼히 세우다가도 좀 친해질만하면 그 나라를 떠나야했다. 그리하여 나의 주어는 소외와 고독이었다. 그리고 그 결핍을 메꾸기 위해 음악을 한 것 같다. 작곡으로 나만이 가진 고독과 분노와 갈망을 표현했고, 노래를 부를 땐 해소의 숨소리를 토해냈다. 그로부터 나는 창작이란 변명으로 나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아직도 하고 있다.

    청년이 되어 사랑과 절망, 결혼과 이혼을 경험하면서 음악은 나의 또 다른 탈출구가 되었으며 고통의 방패가 되었다. 대부분의 평론가나 팬들이 나의 1집 [멀고 먼 길]을 가장 좋아하고 최근의 앨범들은 그다지 평가를 안 하는 것 같다. 한국일보 기자 한분은 “선생님, 요즘 음악은 너무 어려워요. 한국적인 얼이 모자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물론 나는 요즘 영어 노래를 많이 작곡하고 35년 동안의 뉴욕생활을 했으니 영어 작곡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 오래 머물면서 한글 작사가 자연스레 되듯이.

    나는 구태여 한국의 얼, 한국적인 것을 음악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21세기 인터넷 혁명 이후 모든 세계적인 가치관이 글로벌화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 창작한 것이면 한국의 얼이 분명히 있다. 윤이상씨가 독일에서 장기 체류하시면서 분명히 한국인으로서의 독특한 분위기를 작곡에 불어넣었고, 백남준씨 역시 뉴욕 소호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고향을 상기할 것이다. LA 카운티 박물관에서 본 백남준의 작품 중 부처가 자기 자신을 텔레비전으로 보며 명상하는 작품도 분명히 한국인이니까 가능한 상상력이다. 그리고 정경화씨나 정명훈씨, 사라 장 역시 세계적인 서양 클래식의 대가로서 한국인이란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참고로 사라 장을 장영주라고 부르는 것은 못마땅하다. 왜 브랜드 네임을 마음대로 고치는가. 사라 장은 세계적인 브랜드 네임이다. 그의 어머니와 내가 뉴저지에서 일본 사시미를 같이 먹었다. 왜 사라 장이 가능했는가를 한순간에 눈치챘다. 그의 어머니는 서울대 작곡과 출신이다. 사라 장 역시 가정에서 나처럼 음악적인 분위기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훈련된 음악가라기보다는 태생적으로 음악의 환경을 타고난 것이다.

    그리고 내 노래에 등장하는 White Woman이라는 단어 자체도 내가 한국인이니까 성립되는 것이다. 내가 만약 백인 남자였다면 구태여 White라는 호칭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 기자가 내 음악이 ‘어렵다’고 했던 것은 나의 음악의 영어가사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우리가 신중히 고민해야할 숙제다. 미안하지만 2차 대전 이후 영어가 국제어가 되었다. 프랑스가 그토록 불어를 세계화시키려고 노력했지만(유엔과 올림픽의 공식 언어가 프랑스어다.) 아직도 국제적인 중요 행사 때는 영어가 먼저 나온다. 그렇지만 현재에 이르러 누가 누구를 속일 수 있는가. 이제는 영어가 국제어가 되었고 인터넷의 공용어가 됨으로써 빼도 박도 못하는 세계어가 되었다. 우리와 미래의 세대가 세계적인 음악가, 특히 팝 록 계의 대가를 배출시키려면 영어 가사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지금 현재 한국의 댄스 음악에 인용되는 ‘Oh, Baby’, ‘Oh, Sexy’ 정도를 가지고는 택도 없다. 그야말로 시적이고 세련된 영어 가사와 세련된 음악이 있어야 핸섬하고 이쁜 남녀 가수들을 완전무장시켜 세계무대에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록 역사 50년 동안 스타들은 주로 영, 미, 아일랜드 계통 아티스트들이다. 모두가 영어 작사다. 그 중 독일계 스콜피언스, 스웨덴계 아바, 아이슬랜드계 비욜크, 스페인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모두 영어로 노래했기 때문에 세계 정복의 길에 나설 수 있었다. 일본 가수 큐 사카모토의 <수키야키>는 예외적으로 일본어 노래로 미국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아직도 리메티크 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하지만 곡이 너무 감미롭고 훌륭했고 또 60년대말 히피 문화의 전성기에 일본과 동양 문화에 대한 호기심과 애도의 분위기가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한류 신드롬에 비해 일본의 ‘일류’는 이미 60년대 말부터 미국과 유럽을 강타했다. 곧이어 일본 음식, 즉 사시미, 스시, 그리고 토요타 자동차, 카와사키 오토바이, 소니 텔레비전, 가부키 연극, 영화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와 나기사 오시마, 패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 이시 미야키 등등 일본의 문화는 서양인들을 매료시켰다. 심지어 어느 록 밴드는 <터닝 재패니즈(일본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노래로 빌보드차트 1위를 차지했다. 또 한 영국 아트 록 밴드는 팀 이름이 아예 ‘재팬’이다. 지금 뉴욕은 일본 스시집이 맥도날드만큼 많을 정도다. 농담이 있는데, 회장님이 손님 접대할 때 최고 손님은 일식, 그 다음은 프랑스 요리, 제일 마지막이 양식이라 한다.

    상처


    영어 노래가 세계적인 히트가 되는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째, 언어는 국력을 의미하는 것이며, 미국이 세계를 제패한 2차 대전 이후 영어를 안 쓰면 비즈니스도, 정치도, 학문도 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영어가 보편어가 된 것이다. 둘째, 영어발음이 매우 음계에 부드럽게 그리고 편히 앉는다. ‘Oh,. Baby’하면 편안하지만 ‘내 사랑’하면 좀 불편하다. 즉 가수가 감정을 잡기에는 영어가 훨씬 편안하다. 나는 세계적인 중국 로커 추이 지엥(최건)을 1999년 뉴욕 센트럴 파크 공연 때 만났다. 추이지엥은 최건이란 이름을 싫어하고 한국말도 안한다. 그는 조선족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지만 한국과 관련시키는 것보다는 거대한 중국의 등을 타고 세계적인 로커로 발돋움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내가 중국에 가서 ‘한대수’가 아닌 ‘한따이슈’로 행세한다면 그것도 무리지 않은가. 추이지엥은 베이징 필하모닉의 트럼펫 연주자였으므로 클래식 음악의 배경을 지닌 사람이다. 그리고 세계 어느 대륙이나 차이나 타운이 없는 곳이 없으므로 그는 매년 월드투어를 한다. 이 점 하나는 몹시 부럽다. 그리하여 뉴욕타임즈는 추이지엥을 ‘only Asian rock star(유일한 아시아의 세계적인 록커)’라고 부른다. 아티스트의 고유 이름은 그 발음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 어떻게 ‘프라다’를 ‘무라딕’이라 부를 수 있으며 ‘삼성’을 ‘신젠꾸’로 부를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아티스트의 이름은 사라 장이든 추이지엥이든 그대로 존중해줘야 한다. 나는 중국에 가도 한따이슈가 아니라 한대수다.

    추이지엥은 바우리 볼룸이라는 유명한 다운타운 클럽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음악은 강력했다. 힙합 록이었고, 그의 트럼펫 솔로도 관객들의 마음을 적셨다. 약 500명으로 꽉 찬 클럽은 대부분 중국계 미국인이었지만 약 100명은 미국인이었다. “중국 록의 대가로 불리는 친구의 노래를 한 번 들어보자”라는 호기심 때문에 미국인들도 왔지만 다섯 곡의 연주가 끝나고 추이지엥은 계속 중국어로 노래를 하니 미국인들은 짜증을 내며 하나하나씩 떠나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 때문에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2002년 서울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추이지엥, 당신은 계속 월드 투어를 하는데 외국 팬을 위해 영어가사가 필요하지 않나?”라고 물었더니, 그는 “영어보다는 중국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여”라고 대답했다. 이것 또한 중국인이 가진 중화주의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물론 중국인이 세계인구 1/5을 차지하고 있고 중국어도 세계화되고 있으니 추이지엥 말이 가까운 미래에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권이 세계를 제패하고 록 음악의 기수 역할을 한 것이 50년 이상 된다면, 중국어가 세계화 된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세계의 음악팬들은 50년 동안 영어 노래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욕망


    왜 내가 음악을 하는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내가 이주일 전에 작곡한 <When I was young(내가 어렸을 때)>(※12집 [욕망]에 <When I was a child>로 실렸다.)은 며칠 전 내 마누라 옥사나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우리 마누라가 만취된 상태에서 자기 부모를 그리워하면서 동시에 원망하는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옥사나의 부모는 옥사나가 아주 어릴 때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옥사나의 모습을 통해 나도 부모 없이 자란 내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나의 신곡의 후렴부분인 “when I was young, my father left me alone, when I was young, my mother left me alone”이란 가사가 떠올랐다. 나는 [침묵]이라는 책에서도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의 제물이다. 당신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절대로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이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또 그 상처가 없었다면 내 음악도 없었을 것이다. 즉 작곡은 내 마음의 상처의 치유다. 그리고 내 음악이 여러분들의 상처의 치유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작곡을 한다. 마지막으로 2001년 봄에 출간한 [한대수 노래 모음]에 실었던 글, 그리고 나의 10집 [상처]에 실린 글을 인용하면서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대신해 본다.

    //

    저의 음악은 제 자신도 모르는 잠재의식 속에서 꿈틀거리는 괴물입니다. 길을 걷다가, 버스 안에서 속삭이는 여자들의 이야기에서,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며 외치는 상인들의 “항아리 사이소”와 같은 소리에서, 그리고 급변하는 우리 사회의 뉴스에서… 이 모든 것이 노래의 주제가 되고 음률의 영감이 되어 나타납니다. 이 책에 실린 20여 곡의 노래는 저의 일기장입니다. 제가 20여 년 동안 그렇게 사랑했던 부인이 떠나간 후 눈물로 만들었던 <나 혼자>, 방송 출연 금지를 당했던 21살 때 오갈 데가 없어 방황하며 저의 텅 빈 마음을 노래한 <하루 아침>. 저의 노래에는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의 굴곡 많았던 인생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길고도 먼 여행길이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저의 음악이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쟁과 죽음으로 악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슬픕니다. 이 음악이 여러분들의 위로가 되고 흥겨운 가락이 되길 빕니다. 음악이야말로 우리를 고뇌스런 삶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물론 순간적으로. 하지만 모든 순간들이 이어지면 영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저의 고장난 몸을 고쳐주신 신규호 박사님과 세브란스 섹시 나이팅게일들에게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땅콩베리머치! 여러분 즐기슈! Peace…

    나는 왜 음악을 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그냥 일상생활에서 어떤 자극이나 영감을 얻으면 나도 모르게 노래가 만들어진다. 수학공식처럼 정해진 형식도 없고 일정한 법칙도 없다. 내가 사는 퀸즈 아파트에...
  2. Bob Dylan [Blonde on Blonde](1966/Columbia)


    2-A. Bob Dylan [Blonde on Blonde](1966/Columbia)

    1 Rainy Day Women #12 & 35 4:36
    2 Pledging My Time 3:50
    3 Visions of Johanna 7:33
    4 One of Us Must Know (Sooner or Later) 4:54
    5 I Want You 3:07
    6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7:05
    7 Leopard-Skin Pill-Box Hat 3:58
    8 Just Like a Woman 4:52
    9 Most Likely You Go Your Way (And I'll Go Mine) 3:30
    10 Temporary Like Achilles 5:02
    11 Absolutely Sweet Marie 4:57
    12 4th Time Around 4:35
    13 Obviously 5 Believers 3:35
    14 Sad Eyed Lady of the Lowlands 11:20


    난생 처음으로 보는 Double Album(2장 앨범)이었다. Dylan(본명 : Robert Zimmerman)은 첫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 때부터 큰 충격을 주었고 좋아했지만, 이 앨범은 진정 걸작이었다.

    곡의 구성, 세션, 곡의 길이(<Sad Eyed Lady of the Lowlands>는 약 12분이다) 그리고 파격적인 디자인. 이 앨범은 록계에 다른 큰 길을 열어주었다. 심지어 60년대 록혁명의 대부 Beatles까지 영향을 받았다.

    David Bowie [Low](1977/Virgin)


    2-B. David Bowie [Low](1977/Virgin)

    1 Speed of Life 2:46
    2 Breaking Glass 1:51
    3 What in the World 2:23
    4 Sound and Vision 3:03
    5 Always Crashing in the Same Car 3:29
    6 Be My Wife 2:55
    7 A New Career in a New Town 2:51
    8 Warszawa 6:20
    9 Art Decade 3:43
    10 Weeping Wall 3:26
    11 Subterraneans 5:39


    Brian Eno가 프로듀싱한 이 앨범은 전자음악과 록의 훌륭한 결합이었다. 드럼에 특수효과를 넣는다든지, 신서사이저와 일본악기 Koto를 융합시킨다든지 - 실험적이며, David Bowie의 작곡도 상당히 자기고백이었다.

    Brian Eno와 David Bowie의 음악적 결혼이 시작되어 3개의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 [Low], [Heroes], 그리고 [Lodger]. 이 때쯤 Bowie의 목소리도 제일 매력적이었고, 영화 'The Man Who Fell to Earth'에 주역을 맡을 만큼 전성시대였다.

    미술학교 출신의 Bowie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의 리더 역할도 하며 '지적인 록커'라는 평을 받았다. 이 대를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아티스트가 곧 Sting이다. 스팅 역시 고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나는 Bowie 공연을 2번 보았다. 첫 번째 Madison Square Garden(약10,000석) 'Heroes 콘서트'는 잊을 수가 없다. 일본 디자이너 Kansai 옷을 여러 차례 바꾸어가며 관객들을 파도의 율동 같이 흥분시켰다. 마지막은 해군장군 모자와 복장으로 앵콜을 여러 차례 답했다. 이런 광경은 난생 처음 보았다. 인간 바다의 발레였다.

    Beatles [Meet The Beatles!](1964/Capitol)


    1-A. Beatles [Meet The Beatles!](1964/Capitol)

    1 I Want to Hold Your Hand 2:24
    2 I Saw Her Standing There 2:50
    3 This Boy 2:11
    4 It Won't Be Long 2:11
    5 All I've Got to Do 2:05
    6 All My Loving 2:04
    7 Don't Bother Me 2:28
    8 Little Child 1:46
    9 Till There Was You 2:12
    10 Hold Me Tight 2:30
    11 I Wanna Be Your Man 1:59
    12 Not a Second Time 2:03


    비틀즈의 모든 앨범과 곡들은 명곡이다. 하지만 내가 받은 이 첫 앨범의 중요성과 충격 때문에 1위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달리, 4명의 음대 출신도 아닌, 심지어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어린 청년들이 기타를 메고 이렇게 아름답고 강력한 멜로디로 자기의 청춘세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은 혁명이었고, 가르침을 주었다.

    "너희들도 할 수 있다!" 그래서 1964년에 나온 이 앨범을 듣고 나 자신도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록계의 원조이며, Bach와 함께 영원할 것이다.

    Jimi Hendrix Experience [Are You Experienced?](1967/MCA)


    1-B. Jimi Hendrix Experience [Are You Experienced?](1967/MCA)

    1. Purple Haze
    2. Manic Depression
    3. Hey Joe
    4. Love Or Confusion
    5. May This Be Love
    6. I Don't Live Today
    7. The Wind Cries Mary
    8. Fire
    9. Third Stone From The Sun
    10. Foxy Lady
    11. Are You Experienced?
    12. Stone Free
    13. 51st Anniversary
    14. Highway Chile
    15. Can You See Me
    16. Remember
    17. Red House


    보스톤 여름방학, 햄버거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간, 피곤해서 낮잠을 자다 라디오에서 <Purple Haze>를 들었다.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야? 헨드릭스의 강력한 기타 사운드 그리고 처음으로 듣는 Fuzz Tone이었다. 앨범 제목과 같이 나도 '경험'했다. 27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했지만, 이전/이후로 이렇게 창작력이 있는 기타리스트는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우리 속담처럼 헨드릭스는 수년 동안 그리니치 빌리지 'Cafe Wha'라는 클럽에서 활동했지만 뉴욕의 음반계 중역들은 이 천재를 알아보지 못했다. Animals의 베이스 플레이어인 Chas Chandler가 너무 안타까워 그를 런던으로 데려갔고, 3인조밴드 'Jimi Hendrix Experience'가 탄생되어 전세계를 휩쓸었다.

    모두들 헨드릭스가 영국계 흑인인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애틀에서 태어난 뉴요커였다.

    Pretenders의 크리시 하인드, 티나 터너와 마찬가지로 지미 헨드릭스도 미국인으로서 자기 나라에선 외면 당했지만, 영국의 힘으로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다.

    John Lennon [Double Fantasy](1980/Capitol)


    1-C. John Lennon [Double Fantasy](1980/Capitol)

    1 (Just Like) Starting Over 3:56
    2 Kiss, Kiss, Kiss 2:41
    3 Cleanup Time 2:58
    4 Give Me Something 1:35
    5 I'm Losing You 3:57
    6 I'm Moving On 2:20
    7 Beautiful Boy (Darling Boy) 4:04
    8 Watching the Wheels 3:59
    9 Yes, I'm Your Angel 3:09
    10 Woman 3:31
    11 Beautiful Boys 2:55
    12 Dear Yoko 2:34
    13 Every Man Has a Woman Who Loves Him 4:02
    14 Hard Times Are Over 3:22
    15 Help Me to Help Myself 2:37
    16 Walking on Thin Ice 6:00
    17 Central Park Stroll (Dialogue) 0:17


    나는 존 레논을 사랑한다. - 부모의 사랑 없이 자란, 음악이 유일한 고통의 출구였던. 이 앨범은 상당 공백기간 후 나온 솔로 앨범이다. 자기 고백이다. 부인에 대한 사랑, 아들 이야기, 자신의 허탈함에 대한 노래다. 간단한 록밴드 구성과 진실성이 풍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Watching the Wheels>이다. 1980년 어느 미친 청년이 총으로 그를 살해했을 때, 이 음반을 들으며 한없이 울었다.

    나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를 뉴욕에서 두 번 만났다. 한번은 길가에서, 또 한번은 음식점 옆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훌륭한 음악을 선사해 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Pink Floyd [The Wall](1979/Capitol)


    1-D. Pink Floyd [The Wall](1979/Capitol)

    1 In the Flesh? 3:19
    2 The Thin Ice 2:29
    3 Another Brick in the Wall, Pt. 1 3:09
    4 The Happiest Days of Our Lives 1:51
    5 Another Brick in the Wall, Pt. 2 3:59
    6 Mother 5:36
    7 Goodbye Blue Sky 2:48
    8 Empty Spaces 2:08
    9 Young Lust 3:30
    10 One of My Turns 3:37
    11 Don't Leave Me Now 4:17
    12 Another Brick in the Wall, Pt. 3 1:14
    13 Goodbye Cruel World 1:17
    14 Hey You 4:42
    15 Is There Anybody Out There? 2:40
    16 Nobody Home 3:24
    17 Vera 1:33
    18 Bring the Boys Back Home 1:27
    19 Comfortably Numb 6:24
    20 The Show Must Go On 1:35
    21 In the Flesh 4:17
    22 Run Like Hell 4:24
    23 Waiting for the Worms 3:58
    24 Stop :30
    25 The Trial 5:20
    26 Outside the Wall 1:44


    비틀즈가 바하라면, 핑크 플로이드는 바그너이다. 굉장히 염세주의적이며 Depression한 테마로 웅장한 사운드를 만든 걸작이다.

    Bob Ezrin의 Monumental Producing 그리고 David Gilmour의 죽여주는 기타. <Comfortably Numb>를 들어 보라. 꼭 Sigmund Fraud 박사의 쇼파에 누워 Psychoanalysis(정신분석)를 받는 기분이다. 최고다!


    <에필로그>

    나의 록 명반 선정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아무도 동의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 앨범들은 나의 음악세계와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준 음악들이다. 내가 뽑은 이 음반들과 아티스트들은 음악이 훌륭할 뿐만 아니라 '음악혁명'을 일으킨 인간의 소리이다.

    Bob Dylan [Blonde on Blonde](1966/Columbia) 2-A. Bob Dylan [Blonde on Blonde](1966/Columbia) 1 Rainy Day Women #12 & 35 4:36 2 Pledging My Time 3:50 3 Visions of Johanna 7:33 4 One of...
  3. Roxy Music [Avalon](1982/Virgin)


    7. Roxy Music [Avalon](1982/Virgin)

    1 More Than This 4:30
    2 The Space Between 4:30
    3 Avalon 4:16
    4 India 1:44
    5 While My Heart Is Still Beating 3:26
    6 The Main Thing 3:54
    7 Take a Chance With Me 4:42
    8 To Turn You On 4:16
    9 True to Life 4:25
    10 Tara 1:43


    이렇게 Smooth한(비단 같은) 앨범은 별로 없다. 곡도 그렇고, 프로듀싱, 연주자, 그리고 리더 Bryan Ferry의 살결 같이 부드러운 목소리. 디지털 녹음이 시작될 무렵, CD플레이어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소개될 무렵 이 앨범을 들었다. 내 온 집안 전체, 내 온 몸 전체가 사운드로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기타소리, 드럼소리, 목소리가 명백할 수 있을까?

    Bryan Ferry는 내 생각엔 록계의 Frank Sinatra라고 부르고 싶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매력적인 보컬이다. 뿐만 아니라 6척 이상의 큰 키와 늘씬한 몸매, 영화배우를 능가하는 핸섬한 얼굴. 수많은 미국, 유럽, 일본 여성들의 꿈의 동반자가 되었다.

    나는 Radio City에서 Roxy Music 콘서트를 보았다. Tuxedo를 입고 노래부르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었다.(우리 마누라는 '뿅' 갔다.) 하지만 쇼는 약간 지루한 느낌이었고, 너무 변화가 없었다. 이 때 Bryan의 약혼녀가 19세의 텍사스 모델 Jerry Hall이었는데, Mick Jagger한테 빼았겼다. 역시 '화폐 파워'가 무시 못하는 것 같다. 그후, Jerry는 Mrs. Jagger가 되었고, Bryan은 2년 동안 '멍든 마음 손에 들고' 있었다고 한다.

    Michael Jackson [Thriller](1982/Epic)


    6. Michael Jackson [Thriller](1982/Epic)

    1 Wanna Be Startin' Somethin'
    2 Baby Be Mine
    3 The Girl Is Mine
    4 Thriller
    5 Beat It
    6 Billie Jean
    7 Human Nature
    8 P.Y.T. (Pretty Young Thing)
    9 The Lady in My Life


    역시 Quincy Jones의 프로듀싱이 주인이다. 꼭 마치 수학계산을 하듯이 빈틈없는 Pop/Rock 앨범이다. 아무리 누가 비판을 해도 <Billie Jean>은 완벽한 댄스/록이다. 베이스 라인, 드럼, 신서사이저, 코러스 그리고 마이클의 가창력. 이 곡 하나로도 이 앨범은 '끝난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현재 '문제 아동'이다. 지나치게 돈이 많고, 지나치게 일찍부터 유명해졌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자연스럽게 살지를 못했다. 7살 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무대에 섰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 그래서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인간관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Lisa Marie Presley와 희·비극적인 결혼/이혼, 숱한 성형수술, 그리고 아프리카의 온갖 동물들을 구입해 성과 같은 별장에서 혼자 놀고 있는 모습.

    위에 계신 분은 절대 두 손에 떡을 다 주지 않는다. 돈과 유명세는 있지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감수성과 기능, 그리고 존경을 주지 않았다. 약 8년 전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이클 잭슨 공연을 보았다. 실망이었다. 하지만 우리 마누라 옥사나가 아직도 마이클을 이 세기 최고의 Voice요 Performer라며, 미디어에서 모욕을 할 때마다 가슴 아파한다. 나도 동의한다.

    마이클 잭슨은 록계의 천재적인 Vocalist이자 Entertainer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1969/EG)


    5.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1969/EG)

    1 21st Century Schizoid Man (Including Mirrors)
    2 I Talk to the Wind
    3 Epitaph (Including March for No Reason/Tomorrow and Tomorrow)
    4 Moonchild (Including The Dream/The Illusion)
    5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 (Including The Return of the Fire Witch)


    내가 이 앨범을 처음 1969년에 들었을 때, 록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느꼈었다. 기타, 드럼 위주의 전래적인 사운드가 아니라 뭔가 우리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또 하나의 소리가 있었다. 이것이 Moog Synthesizer였다. 현재 기교적으로 세련된 키보드의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흐디흐디한(흔하디 흔한) 블루스 바탕의 기타가 아니었고, 귀에 익숙치 않은 Robert Fripp의 기타애드립. 그리고 노래제목도 멋있었다. <21st Century Schizoid Man>(21세기 분열증 환자), <Epitaph>(비명), <I Talk To The Wind>(나는 바람과 이야기한다) 등등.

    상당히 철학이 담긴 전례 없던 주제의 록음악이었다. 또 다시 영국의 전통과 문화가 미국의 'Fast Food' 문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킹 크림슨은 그다지 공연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아서 드디어 1996년 재결합 당시 뉴욕 Town Hall(약2,000석)에서 보았다. 상당한 기대감과 흥분된 가슴을 안고 입장했다. 실망이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순전히 기교적으로 꼭 "나 악기 잘 다뤄" 하는 자랑으로밖에 안 보였다. 리드기타 로버트 프립은 의자에 학교교사 같이 앉아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옛날 히트곡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프립은 한번 더 본 적이 있다.(역시 콘서트에서 큰 감동은 못 받았다.)

    하지만 이 앨범이야말로 록계의 큰 획을 그은 작품이다. 즉 Sound Texture(소리의 감촉)를 중요시하고, 철학과 연주자들의 기교(Improvision)를 중시하는 Progressive Rock의 출발점이었다. 그후 Moody Blues, Yes, ELP, Roxy Music, David Bowie 등등이 바톤을 받아 진화시켰다.

    Brian Eno [Before And After Science](1977/EG)


    4. Brian Eno [Before And After Science](1977/EG)

    1 No One Receiving 3:52
    2 Backwater 3:43
    3 Kurt's Rejoinder 2:55
    4 Energy Fools the Magician 2:04
    5 King's Lead Hat 3:56
    6 Here He Comes 5:38
    7 Julie With... 6:19
    8 By This River 3:03
    9 Through Hollow Lands 3:56
    10 Spider and I 4:10


    나는 전혀 Eno가 누군지 몰랐다. 1980년 초 징기스칸 그룹으로 한참 뉴욕의 냄새나는 록 클럽들을 누비고 다닐 때, 영국계 베이스 플레이어인 Ian이 소개를 해주었다.

    이 음악은 희한했다. 록도 아닌, 재즈도 아닌, 꼭 무슨 화성에서 오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감미로웠고, 나의 영혼을 만져주었다.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려면 그 누군가 소개를 해줘야 한다. 덧붙여 새로운 음식과 새로운 방식의 섹스도 마찬가지이다.

    Eno에 대해서 공부를 하려하니 전혀 자료가 없었다. 인터뷰도 별로 없고,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로서 골수팬들만 소수 확보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Roxy Music의 초창기 Keyboardist로서 색깔 있는 인품으로 패션감각과 메이크업이 대단했다. 결국 리더인 Bryan Ferry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았는다 해서 '소유와 질투'에 의해 그만두게 되었다.

    약 10년 전 뉴욕 일본음식점에서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40대 초반인데, 벌써 대머리가 되었고, 조용한 위엄성 때문에 접근을 안 했다. 그는 일본 문화와 사시미를 즐긴다고 했다.

    그후 Eno는 오히려 프로듀서로서 명성을 얻는다. David Bowie의 두 걸작, [Heroes]와 [Low], U2의 [Unforgettable Fire], Talking Heads의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등 많은 대작을 작업했다.

    Brian Eno는 신서사이저 사운드의 천재다. Tape Loop, 또 기타를 올갠 앰프를 통해서 소리조작을 한다든지. 최근 강산에 앨범에서도 Tape Loop를 들었다.

    Eno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듀서 셋 중 하나이다. 나머지 둘은 Daniel Lanois와 Bob Ezrin이다.

    Cream [Fresh Cream](1966/Polydor)


    3. Cream [Fresh Cream](1966/Polydor)

    1 I Feel Free 2:53
    2 N.S.U. 2:47
    3 Sleepy Time 4:22
    4 Dreaming 2:01
    5 Sweet Wine 3:20
    6 Spoonful 6:33
    7 Cat's Squirrel 3:05
    8 Four Until Late 2:10
    9 Rollin' and Tumblin' 4:43
    10 I'm So Glad 3:59
    11 Toad 5:09

    3인조, Jack Bruce(베이스), Ginger Baker(드럼) 그리고 Eric Clapton(기타) - 그런데 엄청난 사운드. 완벽하게 자기 악기들을 다루는 것이었다. 셋 다 블루스 백그라운드 출신으로 60년대 히피혁명에 휘발유를 뿌렸다. 그리고 곡들도 색달랐다. 그냥 블루스가 아니었고, 또 다른 화음법의 '소리의 창문'을 열었다.

    60년대 중반, 처음 뉴욕에 왔을 때, Cafe Au Go Go(약150석)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했다. 넘치는 에너지, 연장된 솔로(약 20분, Prolonged Improvision) 그리고 영국 중세기 시대와 흡사한 패션, 꽃무늬, 얼룩덜룩. - 몇 년 뒤엔 10,000석 이상에서만 공연한다.

    크림이야말로 히피 마약문화의 최고 인기 밴드들 중에 하나였다. 연장된 기타솔로, 드럼과 베이스솔로에 미국의 젊은이들이 푹 빠졌다.

    나중에 에릭 클랩튼이 "솔로를 그렇게 오래한 이유는 뭐냐?"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 당시 헤로인을 많이 복용했으므로 그냥 음악에 도취된 상태라, 언제가 시작이고 언제가 끝인지를 구분 못했다"라고 대답했다.

    크림의 역사적인 시간은 짧았지만 음악계에 준 충격은 영원하다.

    Roxy Music [Avalon](1982/Virgin) 7. Roxy Music [Avalon](1982/Virgin) 1 More Than This 4:30 2 The Space Between 4:30 3 Avalon 4:16 4 India 1:44 5...

  4. 어제는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 그리고 조셉 파인즈까지 가세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을 보러 갔었다. 극장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올해 본 영화들을 떠올려봤다. 시간이 없어서 많은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어느 해보다 멋진 영화들을 많이 본 것 같았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로 시작해서, <21 그램>, <자토이치>, <나쁜 교육>, <몬스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My Summer of Love> 그리고 런던 영화제에서 보았던 지아 장커의 <세계>와 후 샤오시엔의 <까페 뤼미에르>...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으라면 후 샤오시엔의 <까페 뤼미에르>를 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 영화가 보여준 그 깊고 따뜻한 세계가, 올해 가을의 가장 힘겨웠던 시간들을 건너게 해준 힘이 되어주었던 탓이다.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가 남미 대륙을 여행하는 얘기<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생각하면서는 살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영화가 흥미로우면서도 계속 어색하게 생각된 이유는, 그 소박한 선동주의 때문이었다. 그 지극히 낙관적이고 소박한 정치적 메세지. 한 젊은이가 달달거리는 고물 오토바이와 잔머리에 능한 친구 하나만을 믿고 남미 여행의 대장정에 오른다... 남미 대륙 곳곳에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는 <우리는 모두 메스티조>라고 외치면서 <하나의 연합된 라틴아메리카>를 선언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중앙역>으로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브라질 출신, 월터 살레스다. 이 영화의 지극히 낙관적이고 소박한 정치적 선동주의를 누군가는 미국의 (혹은 전세계의?) 중산층 관객들에게 소구하기 위한 접근의 한계가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것도 보았다. 글쎄... 그런 면이 꼭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 이상하리만치 낙관적이고 소박한 정서를, 요새 많이 듣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들에서 계속 마주치면서는,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영화의 중간 중간에 흘러나오는 그 아름다운 음악들을 생각해보라).


    (지난 달에 썼었던) 우연히 알게 된 그 친절한 사람이 내게 전해 준 CD는 이제 35장에 이르렀다. 지난 번 글을 쓰고 나서도 두번 더 소포로 CD들을 받았고, 이제 이 사람은 다음 번 CD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지난 번에 언급했던 몇몇의 뮤지션들을 빼고도, 이제는 영어권의 뮤지션들까지, 나 혼자만 즐기기에는 너무나 좋은 음악들이어서, 여기 <가슴>에 시간이 되는대로 한 명 씩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내가 그 사람에게서 받은 따뜻한 마음을 그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뮤지션은 Manu Chao다. 사실 영국에는 차라리 별로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라고 해야겠지만, 유럽 대륙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한, 대중적이고 유명한 뮤지션이다. 그리고 이 뮤지션은, 이 친절한 사람이 거의 매일 듣다시피 하는 매일의 양식 같은 음악인 것 같았다. 굳이 내 취향일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알려주고 싶어서인지, 이 Manu Chao라는 뮤지션의 <Proxima Estacion: Esperanza>라는 CD를, 이 사람은 다른 CD들 틈에 끼워 넣어 보내주었었다. 이메일에서는 <Do you think there are any korean kids who know Manu Chao?>라고 물어보면서... 글쎄, 그를 아는 한국 젊은이들도 있지 않겠어요?라고 나는 답했었다.


    지금 40대 초반에 이른 이 Manu Chao라는, 자그만 체구에 검은 머리를 한 이 사람은,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망명 온 스페니쉬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한참 영국의 펑크 음악(특히 the clash)이 바다를 건너 프랑스에 영향을 미칠 즈음에, 펑크 밴드인 Manu Negro를 만들었고, 상당한 인지도를 얻었다고 한다. 이 그룹의 전설적인 crazy 남미 튜어는 아마도 Manu Chao의 그후의 음악과 정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들은 콜롬비아에서는 기차를 빌려서 여행하면서 여기 저기 발길 닿는 곳에서 공연을 했고, 그 이후에는 화물 보트를 빌려서, 마치 옛날의 서커스단처럼, 강을 따라, 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때로는 혁명군들의 보호아래, 때로는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가는 마을 곳곳에서 공연을 펼쳤다고 한다.

    그 이후, 스페인으로 돌아와 Manu Negro 팀이 깨진 후, Manu Chao는 다시 홀로 라틴 아메리카로 돌아와 3년 동안 혼자 여행을 했고, 1998년, 지금까지 삼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고하는 첫번째 솔로 앨범 <Clandestino>를 내놓는다. <Clandestino>는 스페인 기타 연주, 레게, 힙합, 플라멩코,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음악 장르들이 너무나 맛깔스럽게 잘 섞여든 fusionist album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한다. (지금은 이 CD가 없으니 내 개인적인 견해를 보탤 수는 없지만.) spanish, french, english, portuguese 등이 섞여있는 가사들은, 그가 남미를 여행하면서 눈으로 보고 느낀 상황들의 시적 report 같다. (Manu Chao자신은 자신을 일종의 underground reporter내지는 travelling writer라고 묘사했다.)

    <Proxima Estacion:Esperanza>


    첫번째 앨범의 성공 이후에도 그의 여행은 멈추지 않았고, 그는 아프리카, 특히 west africa를 오랫동안 여행했다고 들었다. 그의 여행을 항상 동반한 것은, 그의 기타와 사운드 레코더였다고... (그 여행에서 얻은 선물인지, 그는 지난 번 글에도 언급한 적 있는, Cape Verde 출신의 아내를 얻었다.) 그의 두번째 앨범 <Proxima Estacion:Esperanza>은 2001년 발매되어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현재 2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싱겁고 멋없고 소박한 제목의 앨범이 또 있을까? 이 스페니쉬 제목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다음 역: 희망>이다. (이에 비견할 만한 썰렁한 앨범 제목이라면, Asian Dub Foundation의 <Community Work>정도일 것 같다.)

    실제로 스페인의 마드리드에는 <희망(Esperanza)>이라는 전철역이 있다고도 하지만, 이 제목은 그의 음악 세계가 갖고 있는 소박한 낙관주의를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naughty하기도 한 그의 가사들이,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그래서 용기를 북돋아주는 흥겨운 음악들에 실려진다. 이 앨범에는 Arabic 가사로 된 노래도 있을 뿐 아니라, 옛날의 TV드라마, 혹은 라디오 토크 쇼, 거리의 소리들까지 섞여 들어가 있다. (첫번째 앨범과 두번째 앨범 몇 곡의 가사들을 이 글의 맨 마지막에 소개하겠다.)

    이 영어라는 언어권의 단단한 장벽을 넘어 영국에 그의 이름이 다소라도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2001년 이탈리아의 Genoa에서 있었던 G8 회담을 저지하려는 protest운동의 일환으로 이탈리아의 제노아 등에서 회담 기간 전후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면서부터다. 그의 가사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그의 생활 태도-- 슈퍼 스타로서의 화려한 삶을 거부하고, 작은 까페 등에서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연하며, 때로는 길거리 연주자들과도 함께 공연하고, 그 공연을 CD로 불법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돕는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그는 anti-globalisation movement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이 인터뷰에서 거듭 밝혔듯이,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 단지 자신의 친구들을 돕고, 자기 이웃들의 삶이 변했으면 한다는 소박한 신념(?)의 소유자다. 그는 자신의 첫번째 앨범의 로열티의 일부를 멕시코의 혁명 집단인 the Zapatistas에 기증하기도 했고, the Brazilian Landless Peasants Movement 등 라틴 아메리카의 각종 사회 운동 그룹들을 돕고 있다.


    이번 주 초에 잠깐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시내에서 기타를 맨 까만 머리의 중년의 남자와 마주쳤었다. 전혀 옷차림새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따뜻한 셔츠를 몇 장 겹쳐 입은 이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너무나 밝고 화사하게 웃어주었다. 마치 너무 반가운 친구를 만나기나 한 것처럼. 모르는 사람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갖게 되는 경계심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따뜻하고 밝은 웃음이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빨간 불이 켜져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달려오는 차들을 향해, 기타를 겨누면서, 그리고 그렇게 밝게 웃어 보이면서... 차들이 멈춰서고, 순간 놀랐던 운전하던 사람들도 웃음을 되돌려주면서 이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었을 때... 글쎄, 나는 순간, 혹시 Manu Chao...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에서 본 것과 비슷해 보이는 체격에, 얼굴 모양... 설마... Manu Chao가 바르셀로나의 가난한 동네에 2002년부터인가 정착해 살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것은 런던의 집에 돌아온 후였다. 설마... 그 사람은 Manu Chao였을까? 정말? 정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런 우연이-- 행운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의 태도에서 느껴졌던 묘한 자신감과 부드러운 확신감이 너무 특별하게 느껴졌었다. 그가 정말 Manu Chao였건 아니건, 다음의 만남을 기대한다. with all my heart. 언젠가는 그를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그를 만날 수 있기를 -- 그의 음악을 만날 수 있기를 -- 말이다.


    내게 Manu Chao의 음악을 알려준 이 친절한 사람도, 여러 곳을 두루 여행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만큼, 그가 Manu Chao에게서 그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 체 게바라의 영화와 Manu Chao의 음악... 라틴 아메리카의 그 혼돈스러운 역사와 불평등의 질곡은, 그 힘겨운 상황을, 그 소박한 낙관주의와 즐거움의 이름으로 맞서게 하는 것 같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감독 월터 살레스는 그 영화를 만들면서 체 게바라가 갔던 길을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두 세번 돌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무엇보다도 놀라게 한 것은, 체 게바라가 그의 일기에서 묘사했던 당시의 상황들과 지금의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들이, 그 어려움과 가난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다음 정류장'은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을 즐겁게 견디고 내일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to be continued... )

    23 dec 2004
    kitten_cc

    <Clandestino>


    :: Clandestino (spanish)

    solo voy con mi pena
    sola va mi condena
    correr es mi destino
    para burlar la ley
    perdido en el corazon
    de la grande babylon
    me dicen el clandestino
    por no llevar papel
    pa una ciudad del norte
    yo me fui a trabajar
    mi vida la deje
    entre ceuta y gibraltar
    soy una raya en el mar
    fantasma en la ciudad
    mi vida va prohibida
    dice la autoridad

    solo voy con mi pena
    sola va mi condena
    correr es mi destino
    por no llevar papel
    perdido en el corazon
    de la grande babylon
    me dicen el clandestino
    yo soy el quiebra ley

    mano negra clandestina
    peruano clandestino
    africano clandestino
    marijuana ilegal

    solo voy con mi pena
    sola ca mi condena
    correr es mi destino
    para burlar la ley
    perdido en el corazon
    de la grande babylon
    me dicen el clandestino
    por no llevar papel



    :: Clandestino (English Translation)

    Alone I go with my sorrow
    Alone goes my sentence
    To run is my destiny
    To escape the law
    Lost in the heart of the great Babylon
    They call me
    clandestine
    For not having any papers

    To a city of the north
    I went to work
    I left my life
    Between Ceuta and
    Gibraltar
    I? a line in the sea
    A ghost in the city
    My life is forbidden
    So says the authority

    Alone I go with my sorrow
    Alone goes my sentence
    To run is my destiny
    For having no papers
    Lost
    in the heart
    Of the great Babylon
    They call me clandestine
    I? the lawbreaker
    Mano negra clandestine
    Peruan clandestine
    African clandestine
    Marihuana illegal

    Alone I go with my sorrow
    Alone
    goes my sentence
    To run is my destiny
    To escape the law
    Lost in the heart of the great Babylon
    They call me
    clandestine
    For not having any papers


    :: Lagrimas De Oro (spanish)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que el mundo sea tan feo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de tanto tiroteo

    vas por la calle llorando
    lagrimas de oro
    vas por la calle brotando
    lagrimas de oro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de tanto cachondeo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vamonos de jaleo

    ahi por la calle llorando
    lagrimas de oro
    ahi por la calle brotando
    lagrimas de oro

    llego el cancodrilo y super chango
    y toda la vaina de maracaibo
    en este mundo hay mucha confusion
    suenan los tambores de la rebelion

    suena mi pueblo suena la razon
    suena el guaguancon
    baila mi mama
    suenan los tambores de la rebelion
    suena mi pueblo suena la razon
    lagrimas de oro
    suena mi pueblo suena la razon
    suena el guaguancon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lagrimas de oro...



    :: Lagrimas De Oro (English Translation)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That the world is so unfair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Shooting everywhere

    You walk the street a'weeping
    teardrops of gold
    You walk the street a'welling
    teardrops of gold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so much taunting isn't right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we are going to fight

    Here on the street a'weeping
    teardrops of gold
    Here on the street a'welling
    teardrops of gold

    the crocodile and the super kid have come
    and all the trash from Maracaibo
    In this world there's much confusion
    Sound the rebellion drums

    Sound of my people, sound of reason
    Sound of the bus ( that's leaving... poetic:)
    Dance my mother
    Sound the rebellion drums
    Sound of my people, sound of reason
    teardrops of gold
    Sound of my people, sound of reason
    Sound of the bus ( that's leaving... poetic:)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teardrops of gold


    :: Eldorado Lyrics (spanish)

    que paso que paso?
    a caipira planto
    que paso que paso?
    a policia llego
    que paso que paso?
    o semterra murio
    que paso que paso?
    chacinha no eldorado

    que paso que paso?
    a globo relato
    que paso que paso?
    o politico falo
    que paso que paso?
    en pizza acabo
    que paso que paso?
    chacinha no eldorado

    que paso que paso?
    radio bemba relato...



    :: El dorado (English translation)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country boy has been planting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police have arrived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landless die
    What happened, what happened?
    Massacre in El dorado

    What happened, what happened?
    Globo reported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politician spoke
    What happened, what happened?
    and nothing happened
    What happened, what happened?
    Massacre in El dorado

    What happened, what happened?
    Radio Bamba reported.

    어제는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 그리고 조셉 파인즈까지 가세한 영화 &lt;베니스의 상인&gt;을 보러 갔었다. 극장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올해 본 영화들을 떠올려봤다. 시간이 없어서 많은 영화를...
    ☆☆☆☆☆ | London Is Quiet, m, Manu Chao, 인디
  5. Quincy Jones - [Back On The Block](1989/Qwest)


    12. Quincy Jones - [Back On The Block](1989/Qwest)

    1 Prologue (20's Rap) (Quincy's Rap)
    2 Back on the Block
    3 I Don't Go for That
    4 I'll Be Good to You
    5 The Verb to Be
    6 We B. Dooinit [Acappella Party]
    7 The Places You Find Love
    8 Jazz Corner of the World [Introduction to Birdland]
    9 Birdland
    10 Setembro (Brazilian Wedding Song)
    11 One Man Woman
    12 Tomorrow (A Better You, Better Me)
    13 Prelude to the Garden
    14 The Secret Garden (Sweet Seduction Suite)


    1991년 [천사들의 담화]를 이우창씨와 녹음할 무렵, 할렘가와 East L.A.에서 흑인들이 비트에 맞춰 주절거리는 'Rap'이란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길가에 Boom Box를 들고 다니는 흑인 아동들의 소리를 들으니, 무척 단조롭고 특별한 음악성은 없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퀸시 존스가 프로듀스한 이 앨범이야말로 "Rap/HipHop Has Arrived"(이것이 Rap 이다)하고 선언했다. Ice-T, Snoop Doggy Dog 등의 신인들이 등장한(나중엔 대가가 된다) 이 앨범은 'Power'였다. 그 이후 이렇게 음악적인 Rap 음악은 못 들었다.

    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1977/Warner Brothers)


    11. 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1977/Warner Brothers)

    1 Holidays in the Sun 3:20
    2 Bodies 3:02
    3 No Feelings 2:49
    4 Liar 2:40
    5 Problems 4:10
    6 God Save the Queen 3:18
    7 Seventeen 2:02
    8 Anarchy in the U.K. 3:31
    9 Submission 4:12
    10 Pretty Vacant 3:16
    11 New York 3:05
    12 E.M.I. 3:10


    록계가 지루함의 연속으로 이어갈 70년대 말 무렵, 'Sex Pistols'(성기 권총)가 등장했다. 전혀 능숙치 않게 악기를 다루는 밴드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리드 싱어 Johnny Rotten(썩은 죠니). 하지만 에너지가 넘쳤고, 왕족으로 이루어진 영국 정계를 뒤집겠다고 외쳤다. 즉 Anarchy(무정부)를 외쳤다. 물론 영국의 Local Issue였지만, 이러한 초반항적인 태도가 대서양을 건너와 미국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God Save The Queen>(신이여 우리 여왕 엘리자베스를 구원하게)을 처음 들었을 때 슬펐다. 마지막 "No Future No Future"(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하고 반복 코러스를 할 땐 마치 서양사회 자체가 미래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무렵 런던을 방문했는데, King's Road를 들어서니 너무나도 신기했다. Mohawk(머리 옆 양쪽만 밀고 중간은 남김) 스타일의 헤어스타일에 빨강, 초록, 노랑, 제각각 색깔의 Punk 아동스들이 걸어다닐 땐 꼭 인간새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들은 공원에 서서 Dog Food(개가 먹는 깡통음식)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 것이었다. 쇼크 받을 줄 모르는 뉴요커였지만, 이때는 쇼크를 크게 받았다. 코와 귀, 때로는 입술에 Safety Pin(옷핀)을 흉칙하게 세로로 찔렀다.

    Punk의 혁명은 약 5년 정도로 짧았지만 큰 영향을 음악계에 미쳤다. 특히 패션 부분은 아직도 Punk Style을 일본 하라쥬쿠나 홍대 앞에서 가끔 본다. Sex Pistols는 그 이후 Clash, Generation-X(Billy Idol), Police(Sting), 미국의 Dead Boys, Ramones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에필로그로, 베이스 플레이어 Sid Vicious(흉칙한 시드)가 걸프렌드 Nancy Spungen과 동거하며 뉴욕의 유명한 Chelsea Hotel에서 헤로인/코케인을 복용하다 Nancy가 죽었다. 살인자로 투옥된 Sid가 몇일 후 감옥에서 자살했다. 이로써 Punk Rock의 결실은 비극적으로 문을 닫았다. 이 스토리가 'Sid & Nancy'라는 극영화에 잘 그려져 있다.

    Jean Michel Jarre [Equinox](1978/Dreyfus)


    10. Jean Michel Jarre [Equinox](1978/Dreyfus)

    1 Equinoxe, Pt. 1
    2 Equinoxe, Pt. 2
    3 Equinoxe, Pt. 3
    4 Equinoxe, Pt. 4
    5 Equinoxe, Pt. 5
    6 Equinoxe, Pt. 6
    7 Equinoxe, Pt. 7
    8 Equinoxe, Pt. 8


    70년대 화제의 영화 'The Night Porter'의 여주인공인 영국배우 Charlott Rampling이 새로운 Sex Symbol로 등장했다. 처음으로 극영화에서 Sado/Masochism이 묘사되어 인간의 숨겨진 Sexuality를 자극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우리 남편은 불란서 음악가인데, 아주 모던하고 묘사하기 힘든 음악을 한다"라고 말했다. 이 분이 바로 연하의 남편 Jean Michel Jarre이었다.

    나는 커버가 너무나도 초현실주의라 이 앨범을 샀다. 턴테이블에 놓는 순간 이 우주 같은 신서사이저 사운드에 회오리바람 같이 빨려 들었다. 과거 Terry Riley, Mike Oldfield와는 또 다른 차원의 Synth/Rock이었다. 일본의 Kitaro가 Shubert라면 Jean Michel은 Beethoven이다.

    파리의 도시축제에 Jean Michel은 에펠탑 공연에서 2백만명의 관객을 끌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리고 중국이 처음으로 Non-Classic 서양밴드를 초청했는데, Rolling Stones를 제치고 이 영광을 획득했다. 결과물은 밀리언셀러인 [Live In China]이다.

    Butterfield Blues Band [East-West](1966/Elektra)


    9. Butterfield Blues Band [East-West](1966/Elektra)

    1 Walking Blues 3:15
    2 Get Out of My Life Woman 3:13
    3 I Got a Mind to Give up Living 4:57
    4 All These Blues 2:18
    5 Work Song 7:53
    6 Mary, Mary 2:48
    7 Two Trains Running 3:50
    8 Never Say No 2:57
    9 East-West 13:10


    내가 고등학교 졸업 무렵, 1967년, 한참 비틀즈, 롤링스톤즈에 빠져 있을 때 블루스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다. John Mayall을 통해서 즐기기 시작했지만 Paul Butterfield는 나를 보냈다. 폴의 애수 짙은 목소리, 능숙한 임프로비젼(Improvision) 하모니카, 그리고 Mike Bloomfield의 깨끗하고 마음을 찌르는 기타. 이것이 즉 시카고 블루스였다.

    그후 두 번이나 라이브로 보았다. 한번은 그리니치 빌리지 중심에 위치한 약150석의 Cafe Au Go Go, 그리고 약5,000석 규모의 Filmore East. 너무나도 감동적이었고 Cool했다.

    폴은 알콜중독으로 약 15년 전에 죽었고, 마이크는 약 12년 전에 헤로인 과잉으로 죽었다. Mike Bloomfield의 마지막 뉴욕콘서트를 Beacon Theatre에서 봤다. 너무 슬펐다. 손가락도 제대로 안 돌아가고, 몸도 휘청거렸다. 신문이나 매체들은 이들의 별세에 대해 별 보도도 하지 않았다. 나는 슬펐다. 이 위대한 두 음악인의 고통과 고독, 그리고 요절. 나는 울었다.

    [East-West]는 블루스계, 록계의 대작이다. 특히 14분짜리 연주곡은 교향곡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I Got A Mind To Give Up Living>이다.

    Iggy Pop [The Idiot](1977/Virgin)


    8. Iggy Pop [The Idiot](1977/Virgin)

    1 Sister Midnight 4:23
    2 Nightclubbing 4:18
    3 Funtime 2:53
    4 Baby 3:20
    5 China Girl 5:12
    6 Dum Dum Boys 7:12
    7 Tiny Girls 3:03
    8 Mass Production 8:28


    Iggy는 록계의 괴짜다. Detroit 자동차산업의 도시 출신으로, 형용사를 쓰자면 '칼날'이다. Stooges라는 하드록밴드 싱어로서 주목을 받다, David Bowie를 만나면서 음악적 세계가 넓어졌다.

    두 번 보았다. 한번은 롱아일랜드의 My Father's Place(약200석)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 롱비치(약2,000석)에서. 내 입이 벌어졌다. 웃통을 벗은 채 유리병으로 자기 몸에 핏자국을 내지 않나, Peanut Butter를 온몸에 발라 꼭 똥칠을 한 것 같았고, 사타구니 사이에 바이올린 활을 끼워 넣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 마누라 명신은 기겁을 하여 민망해서 나가버렸다.

    하지만 Iggy Pop 목소리는 죽인다. 강한 바리톤 그리고 록계의 'Rebel King'(반항의 제왕)이다. 70년대 말 내가 <Nightclubbing>을 뉴욕 소호 클럽에서 처음 들었다. 이 때 뉴욕은 클럽문화의 절정이었다. Mudd Club, Studio 54, CBGB's, Max's Kansas City 등이 미국과 유럽 젊은 귀족들의 집합 장소였다. Iggy의 강한 목소리와 느리고 반복되는 비트에 따라 숱한 젊은 미남/미녀들(하이패션 옷을 입은)이 춤을 추는 것을 보니, "야, 여기가 (뉴욕) 세계 중심이구나"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이 앨범의 주인공은 바로 프로듀서인 David Bowie이다.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잔소리가 없는 앨범이다.

    Iggy Pop은 Punk의 대부로 알려진다. Sex Pistols가 등장하기 수 년 전에.

    한가지 덧붙일 것은, 내가 Long Beach 콘서트를 보고 3일 동안 귀가 웅웅거려 고생했다. 너무 볼륨이 컸기 때문에.

    Quincy Jones - [Back On The Block](1989/Qwest) 12. Quincy Jones - [Back On The Block](1989/Qwest) 1 Prologue (20's Rap) (Quincy's Rap) 2 Back on the Block 3 I Don't Go fo...
  6. 비에 젖은 런던


    <고양이를 부탁해>란 영화에 보면 배두나는 어디론가 떠나기 전, 시인인 지체 장애 소년의 방에 들린다. 언제나 붙박이처럼 반쯤 누워있던 -- 그 자신의 시적인 표현을 빌리면 '방바닥에 껌처럼 들러붙어 있던' 소년은 보이지 않고, 배두나는 '누군가가 너를 떠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라는 문장을 그의 타이프라이터에 남겨 두고 떠난다. 소년은 왜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 배두나, 그녀도 다른 사람들 모두처럼 그를 떠날 거란 걸 알아차리고서...

    이리 저리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다가, 지치고 초라하고 우울해져서 돌아와서는, 당연히 내 자리라는 듯이, 당연히 반겨줄꺼 아니야 하는 얼굴로, 가슴의 이 구석 자리에 와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왜 그렇게 소년은 화가 났던 것일까를. 소년이 화가 났던 건, 소녀가 떠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소년 자신이 떠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사랑하지만 떠나는, 혹은 떠나기도 하는' 그것을 할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짐작할 수 있었다. 훌쩍 훌쩍 떠나다니곤 했는데, 오래간만에 남겨지는 일을 경험하고 나서는...

    Franz


    무척이나 재미있고 친절한 사람을 만났었다. 한참, <The Streets>의 <Dry Your Eyes>를 들으며 하루하루 눈물을 말리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을 때. 물론 이번 Mercury Prize는 <Franz Ferdinad>의 Franz들에게 돌아갔었다. sexy, sleek, stylish한 Franz들은 그 직후에 미국으로 떠나가 tour를 한 모양이고 꽤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birmingham 근방 출신의 mike skinner(aka the streets) 라는 이 청년의 두번째 앨범 <a grand don? come for free>도 후보에 올랐었다. 그의 첫번째 앨범도 후보에는 올랐었지만, 역시 상을 받는 데는 실패했었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하고 솔직한 가사들에 뛰어난 음악성. 같은 앨범의 <blinded by the lights>의 뮤직 비디오는 나오는 대로 바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방송 금지가 될 것을 예상하고 이 뮤직 비디오가 나오자마자 바로 보여준, 발빠른 channel 4에서 본 바로는, 문제가 될 만한 외설적인 이미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뮤직 비디오 속의 이야기 전개상 마약을 하는 모습이나 오럴 섹스를 하는 모습이 있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외설적이거나 자극적이려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전개하려고 했던 것 같았는 데 말이다...

    Tete Alhinho


    어쨌거나, 이 친절한 사람은 집으로 급하게 돌아가게 되면서 8장의 CD를 내게 남겼다. multi-lingual인 이 사람의 음악적 전공분야는 spanish, portuguese language 음악권, African, Arabian 음악들, Latin American 계열의 English-singing musician들까지 정말 폭이 넓었고, 나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거의 몰랐던 unknown world를 활짝 열어주었다. 이 사람이 처음 남긴 8장의 CD 중에서 가장 즐겨듣게 된 건, West Africa의 Cape Verde라는 섬 지역 출신의 Tete Alhinho라는 여가수의 음악이다. 처음 이 친절하고 박식한 사람이 특유의 빠른 말투로 모든 걸 설명해주었을 때는 전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었다 (잘 모르면 보이지 않는 것뿐아니라, 들리지도 않는다).

    Cape Verde archipelago


    이 사람이 떠난 후, 웹 사이트 등을 뒤지며 혼자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은, 아프리카 지역 지도를 잘 들여다보면,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큰 섬 말고도, 웨스트 사이드에 작은 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여러 개의 섬들을 묶어서 Cape Verde archipelago라고 부른다. 원래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던 이곳에 그 옛날(!) 포르투갈 사람들이 찾아와 한참 노예 매매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본토에서 데려와 내려놓으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맥락을 전혀 모르고 들어도, 이 Tete Alhinho 여가수의 따뜻하고, 깊고, 슬픈 노래들은 가슴 깊은 곳에 남겨져 있었던 슬프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깨워내서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CD를복제하는 불법행동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인데, 이 CD만은 3장을 복제해서 이 어둡고 음울한 런던의 겨울을 나야하는 다른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친절한 사람이 나에게 잠시나마 보여주었던 따뜻한 마음을, 그 사람이 열어준 이 크고 아름다운 세계를 같이 나누고 싶었었다.

    Anouar Brahem


    이제 그 사람은 멀리에서 음악을 통해서만 이야기한다. 떠나고 나서 한 달 후에 이 사람이 보내온 선물 꾸러미에는 다시 11장의 CD와 Aids로 죽어간 영국의 정말 아름다왔던 filmmaker Derek Jarman의 아름다운 친필 사인이 담긴 수필집이 들어있었다. 그전에 남겨준 8장의 CD가 자신이 뽑은 영화적인 visual image가 연상되는 음악들이었다면, 이번 음악은 굉장히 정확하게 내 취향을 읽어내고 보내준 것들이다. 그가 준 음악들이 나한테는 -- 언제나 눈을 말리며 dry해지려는 내게는 -- 너무 감정이 강하다며, 나는 그 사람에게 조용하고 조금은 감정이 정제 --혹은 억압(?)-- 되어 있는, Yo La Tengo의 음악을 한번 들려주었을 뿐이었다.

    Arto Linday는 미국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자랐고, 후에 뉴욕으로 옮겨와 80년대 뉴욕의 아트락 신에서 노이즈를 실험하는 음악들을 했고, 이후 브라질 뮤지션들의 프로듀서가 되어 다양한 브라질 사운드들을 팝적으로 소화해내서 세계적으로 소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Caetano Veloso, Marisa Monte 등은 그가 발굴해낸 브라질 출신 뮤지션들.

    Arto Lindsay


    거기에 맞춰서 그가 뽑아낸 음악들은 Carla Bruni의 <quelqu'un m'a dit> (french chanson), New York에서 활동한다는 Arto Lindsay의 <Mundo Civilizado>, Marisa Monte의 <Rose and Charcoal>, Anouar Brahem의 <Astrakan Caf >등이다. 영어권 음악을 빼고는 다른 음악권에서는 거의 까막귀인 나에게 이 음악들을 설명할 만한 능력이 지금은 없다.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와서, 이건 다음에 이야기해도 될까?) 물론 모두 따뜻하고 아름답다. 지금 나는... 본의 아니게 남겨진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 따뜻한 마음으로 남겨지고, 아름다운 음악들로 남겨져있지만, 남겨지는 것은... 역시 싫다. 서울을 훌쩍 떠나왔듯이, 런던도 가끔은 훌쩍 떠나고 싶다. 너무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올해의 맨 마지막 주와 내년의 첫주는 서울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 찬 바람이 부는 연말의 뒤숭숭한 거리에서 이 글을 읽은 누군가와도 스쳐지나게 될까? 서울에 가서 내가 듣게 될 소리와 음악들은 어떤 것일까?


    14 nov 2004
    kitten_cc

    Arto Lindsay의 <Mundo Civilizado>


    http://www.the-streets.co.uk/
    http://www.bbc.co.uk/music/profiles/streets.shtml (The Streets)
    http://www.worldconnection.nl/wclayout/biografy.php?site_id=8&PHPSESSID=6bd4f44c21f926f938a4dabc26aeaaca (Tete Alhinho)
    http://www.caboverde.com/music/tal-00.htm( you can hear tete's songs from the album <voz>).
    http://www.lonelyplanet.com/destinations/africa/cape_verde/ (Cape Verde)
    http://www.paroles.net/artis/2549 (Carla Bruni) (you can hear <quelqu'un m'a dit>)
    http://www.artolindsay.com/
    http://www2.uol.com.br/marisamonte/index-f.htm (Marisa Monte)
    http://www.anouarbrahem.com/
    http://hometown.aol.co.uk/sistermorticia/jarman.html (Derek Jarman)

    Carla Bruni는 프랑스에서 내노라하는 모델이다. 그녀가 작곡하고 공동으로 가사를 만들고 기타로 연주해서 내놓은 앨범은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태리에서 골든 레코드 기록을 세우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앨범이다.

    Carla Bruni


    Quelqu'un m'a dit - Carla Bruni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네.

    사람들은 말하길 우리의 인생은 별 게 아니라 하네.
    인생은 그저 장미가 시들듯이 그렇게 한 순간에 지나갈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길 미끄러져 지나가는 시간은 정말 나쁜 놈이라하네.
    그 많은 슬픔들을 망토 아래 감추고 있다고.
    그렇지만 누군가 내게 말해 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바로 그 누군가가 말해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사람들은 말하길 우리의 운명은 우리를 속인다 하네.
    운명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약속만 한다고.
    행복은 바로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우리가 손을 내밀면 그때 우리는 우리가 속은 것을 알게 된다고.
    그렇지만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바로 그 누군가가 말해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렇지만 네가 항상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이 사람은 누구지?
    나는 그게 아주 늦은 밤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네.
    나는 항상 그 목소리를 듣지만, 나는 그 얼굴은 볼 수가 없네.
    "그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밀이에요. 그 사람에게는 내가 얘기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너는 누군가 내게 말해주는 것을 보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내게 그것을 누군가 정말 말해주었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네가 내 곁에 있을 때,
    이 방은 더 이상 벽이 없는 것 같아.
    숲이 되는 것 같아, 끝없는 숲이.
    그래 정말 네가 내 곁에 있을 때,
    그건 정말 저 천장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우리 위에 몸을 뉘인 하늘을 보네. 그렇게 쉬고 있는.
    그렇게 모두 떠나간 것처럼,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네, 세상의 그 누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나는 하모니카 소리를 듣네.... 누군가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너와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네.
    저 끝없는 하늘 위에서,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비에 젖은 런던 &lt;고양이를 부탁해&gt;란 영화에 보면 배두나는 어디론가 떠나기 전, 시인인 지체 장애 소년의 방에 들린다. 언제나 붙박이처럼 반쯤 누워있던 -- 그 자신의 시적인 표현을 빌리면 '방바닥에...
    ☆☆☆☆☆ | London Is Quiet, , 고양이, 인디

  7. 일요일 낮, 공원에 나가보면 온갖 종류의 개들이 주인들과 산책을 나온 걸 볼 수 있다. dog's paradise. 늘씬하고 날렵한 사냥개들부터 주인의 빠른 걸음을 종종거리며 따라가기 바쁜 스코티쉬 테리어까지. 다람쥐들을 쫓거나, 주인이 던진 공을 잡으러 미친듯이 뛰어가는 녀석들. (그게 뭐 그렇게 재미있을까?) 하지만, 한 마리도 고양이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은 없다. 고양이들이 목에 줄이 묶인 채로 주인들 옆을 나란히 따라서 걷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고양이들은 지혼자 싸돌아다니지, 주인과 공원을 산책하는 따위의 지루한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좁은 골목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이라면 -- 그리고 줄에 묶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뭐, 잠깐은, 산책 비슷한 걸 같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의 산책 와중에 고양이가 들려준, 재미있지도, 재미없지도 않은 요령 없는 이야기...

    스위트피


    Franz Ferdinand의 약발이 더 이상 듣지 않아. 아마도 너무 많이 들은 탓이지. 서울에서 친절한 사람이 공수해다 준 Sweetpea의 <하늘에 피는 꽃>의 약발도 거의 다 떨어져 간다. 한 두 달 정도는, 밖에 나돌아다닐 때는 언제나 그걸 들었다. 집에서 종일 노트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선선한 어느 여름 저녁, 해질 무렵, 숲 속을 산책했다. 서쪽 하늘, 두서없이 휙휙 불어대는 바람들에 회색구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그 사이로 번져나오는 저녁 햇살이 나무 꼭대기 부근의 녹색 잎들을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불쑥 다가온 먹구름. 굵은 빗방울들을 떨어뜨렸다. 여전히 나뭇잎들을 빛내고 있는 저녁 햇살,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 시원한 빗방울. 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 서서 비를 피하며 (정말로 비가 피해진다!) Sweetpea의 <kiss kiss>, <whiskey in the jar>, <하늘>을 듣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을 어느 날인가에는 후회하게 될까?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왔던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뭐,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순간이 있는 인생 -- 이런 하늘과 이런 바람과 이런 나무들을 기억하고 있는 인생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Sweetpea의 음악들을 들으면 언제나 떠올리게 될 순간.

    팬더와 소년


    내가 다시 숲속을 가로지르다가 비 때문에 나무 아래 서 있게 된 날은, sweetpea를 가져다 준 친절한 이와 Royal College of Art에서 하는 animation course degree show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팬더와 소년>. 아니, 진짜 제목은 <A Boy Who Wanted to Be a Super-hero>. Murakami Hiromitsu라는 일본 젊은이의 작품. 웹사이트는 http://www.hiromitsumurakami.com.

    소년은 어두운 방 안에 쳐박혀 있다. 소년은 세계를 구할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되지 못했고, 소년은 지붕 위로 올라가 추락을 생각한다. 그때, 팬더가 나타난다. 팬더를 따라가는 소년. 팬더는 소년을 바닷가로 데려간다. 소년은 그 전에 팬더와 함께 이 바닷가에 왔었던 것 같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팬더는 소년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한다.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게 해주겠다고. 팬더가 소년을 다시 데려온 곳은, 다시 소년의 방 앞이다. 팬더는 소년더러 잠깐 다른 곳을 보라고 하고, 팬더 옷을 벗어나고 (이 팬더 옷에는 앙증맞은 자크가 달려있다) 사라진다. 팬더 옷 속으로 들어간 소년이 방문을 연다. 거기에는 소년의 훨씬 더 어렸을 적의 소년이 있다. 어린 소년은, 세상으로부터의 따돌림에 지쳐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팬더는 -- 아니, 팬더 옷 속으로 들어간 소년은, 어린 소년에게 말한다. '그냥 버텨 봐. 좀더 조금 더 강하게 버텨보는 거야. 지금은 포기하지 말아'. 이렇게 해서 팬더는 -- 소년은, 꿈을 이룬다. 그는 세상을 구한 것이다...

    좀 무라카미 하루키 냄새가 난다고? 글쎄, 두 사람이 같은 성 씨를 가진 게 꼭 우연이기만 할까???

    kings of convenience


    그건 그렇고, 이젠 무얼 들어야 하나? The Oridinary Boys란 밴드는 Glastonbury 이후 급부상하는 모양인데, 글쎄, 좀 ordinary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똑같이 미소년에는 눈이 끌리지만, 그렇다고 10대 소녀들처럼 눈으로 귀를 가리지는 못하는 처지여서, 요새 영국 팝계를 강타(!)하고 있는 Busted나 McFly 같은 manufactured boy punk/rock band를 보며 확 돌아버리지도 않는다. Bell & Sebastian go pop. Bell & Sebastian의 새 앨범 <Dear Catastrophe Waitress>의 프로듀서는 Trevor Horn. Frankie Goes to Hollywood와 Tatu의 프로듀서라고 한다. 하지만, 왜지? Bell & Sebastian의 <Storytelling>의 OST CD이후로는 그들의 음악이 더 이상 듣질 않는다. KIngs of Convenience. 친절한 친구의 도움으로 <Quiet Is the New Loud>와 익숙해졌고, 새로 나온 <Riot on an Empty Street>를 그들의 웹사이트 www. kings of convenience .com 에서 들었다. 예쁘고, 서정적이고, 세련되고, 거의 흠잡을 데가 없는데, 두 풋풋한 스칸디나비안 총각들 -- Boe와 Oye도 좋은데, 왠지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다.

    mono


    모처럼 영혼이 들어올려지는 경험(trance?)을 한 건, 지난 주 ICA에서 들은 mono라는 일본 밴드 덕분이다. 사실, 그전에는 듣도보도 못한 밴드라, 웹사이트 www.mono-44.com에서 짧은 샘플들을 들어보곤 갔지만, 짧은 샘플들로는 이들의 음악은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어. meolodic instrumental noise unit... Are you Japanese?라는 예의상의 질문도 생략한 채, Have you seen them before in Japan? Have you heard their music? Are they popular in Japan? 이라는 질문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받아야 했던 걸로 봐서, 그 밴드를 이미 알고 온 이들은 적은 것 같았다. 같이 간 친절한 친구와,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소극적이고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뒤쪽 벽 쪽에... 잘 안 보이는 구석에... 웅크리고... 뭐가 뭔지 모르는, 펑크 밴드라 자칭했지만 그래도 용서가 안 되는 support band가 잔뜩 실내기온을 올리고 들어간 후... 이럭저럭 소리를 맞추던 mono 멤버들은 시작한다 만다하는 말도 없이, 그 흔한 인삿말 한마디 없이, 다짜고짜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고 낮은 소리. 들릴 듯 말 듯하게. 그리고 조금씩, 소리와 박자와 감정을 올려가기 시작하는데, 이런 걸, mesmerising이라고 하겠지, 사람들이 모두 홀린 듯한 표정으로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고개 한번 돌리지 못하고 집중하게 만들더군. 물론, 중간 인삿말이니, 이런 것도 없고. 모든 곡들이 어떤 건 6-7분, 대개는 10분 정도, 혹은 15분 정도인데, 노랫말도 없고, 들릴듯 말듯한 고요함으로 시작해서, 기타를 휘몰아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와 감정까지 끌어올리고서도, 멈추질 않았다. 그 최고점을 2-3분이 넘게 끌고 가서는, 지치고, 그 지친 감정까지 폭발시키며 3-4분을 더 가는. Leader라는 Taka상이 입고 있는 T-Shirts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더군. Nobody's perfect (but me). yes, you're perfect!. 그렇게 사람들의 혼을 한 시간여 동안 쏙 빼놓더니, 그들은, 아무 인삿말도 없이 그렇게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가장 최근 앨범이라는 <Walking Cloud and Deep Red Sky, Flag Fluttered and the Sun Shined>를, 친절한 친구의 돈을 빌려서 샀다. 이것으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너무 얘기가 길었나? 그럼, 안녕, 지금은.

    25 july 2004
    kitten_cc

    일요일 낮, 공원에 나가보면 온갖 종류의 개들이 주인들과 산책을 나온 걸 볼 수 있다. dog's paradise. 늘씬하고 날렵한 사냥개들부터 주인의 빠른 걸음을 종종거리며 따라가기 바쁜 스코티쉬 테리어까지. 다...
  8. Glastonbury


    Glastonbury를 여전히, 그리고 역시나 가지 못하다. 소들을 다 몰아내고 그 넓은 풀밭에 캠프장, 샤워장, 화장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크고 작은 무대들을 세우고, 3일 간에 걸쳐서 하는 음악축제. Mud, Rain, Wind, Dirty Toilet, Drinking, Love, Sex, Trance, Magic, All Kinds Of Jugglers, Performance, Masquerade, Rumours, Camping, Day & Night, Summer, Youth, Fun, Passion, Some Disorder And Music.


    일년 중 가장 낮이 길었던 날은 아마도 지난 주 수요일, 목요일(23, 24일)이 아니었을까? 해뜨는 시간이 새벽 4시 42분, 해지는 시간이 저녁 9시 23분 정도였던 것 같다. 며칠이 지난 지금 -- 월요일(28일)-- 만 해도, 해뜨는 시간은 4시 45분, 해지는 시간은 9시 21분이다. 하루 24시간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이 17시간. 일년 중 가장 해가 긴 주말-- 6월의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Glastonbury Music Festival을, 올해도 어김없이 TV로 지켜봤다.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어쩌면 영국에서 맞는 마지막 여름이 될 지도 모를 올해 여름의 시간을 Glastonbury에 가는 것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소박한 꿈이 무너진 후, 마지막 남은 것은 진흙이 묻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두꺼운 옷들을 껴입고 비바람을 맞고 있는 사람들의 궁상스러운 모습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기와 질투는 힘이 세다.

    Franz Ferdinand


    첫째날인 금요일(25일)은 날씨가 좋았다. 덕분에 올해 Glastonbury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그럴 수밖에 없지!) Franz Ferdinand의 공연은, 여름의 따가운 저녁 햇볕 (저녁 7시 20분 경이라 한다) 아래서 이루어졌다. Franz Ferdinand 공연, 특히, Take Me Out을 부르는 모습은 금, 토, 일, 세 번의 Glosto-Highlight에 매번 나왔고, 매번 보았다!!! 올해 1월 초부터 Take Me Out Single, Franz Ferdinand Album, Matinee Single 등등해서, 정말, Franz Ferdinand가 없었으면 올해 전반부에 무얼 들으면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자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검푸른 어둠 속에서 첫날 밤을 음악으로 적신 건 Oasis 였다 (적어도 BBC2에서 Live로 보여주며 연출한 바로는 그랬다). 링고 스타의 아들이라나하는 친구가 드럼을 쳤고 (완전히 오아시스의 드러머로 영입된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이번 공연에서 한번 그냥 맞춰보는 것이라고 했으나,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요근래에 낸 앨범이 없어서, 더더욱 Oasis Retrospective처럼 되었던 이번 무대에서, Liam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해 보였다. 아, 그리고 Snow Patrol. Run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이 친구가 이렇게 예뻤었나 싶었다. 노란 색 티셔츠를 입고 나온 Snow Patrol의 보컬. (Kings Of Leon, The Rapture도 좋았다고 한다. 짧은 Live File이 BBC 6 Music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Paul McCartney


    둘째날인 토요일 (26일)에는, 내 기도가 먹힌 탓인지, 아니면 원래 요맘때 -- 글래스턴베리와 윔블던 테니스 매치--에 매년 때맞춰 비를 내리는 영국 날씨의 엄정한 규칙(?) 탓인지, 비가 내렸다. 글래스턴베리의 전설적인 장관인 진흙밭이 연출되었고, 긴긴 무대를 긴긴 레퍼토리로 이어간 폴 메카트니는 빗속의 청중들을 내내 응원해야 했다. 풀 메카트니는 이제 늙었다. 그렇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여전히 사랑받고 (혹은 미움도), 그의 늙음을 자신 있게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언제나 마지막 곡은 Hey Jude이지? 지난번 김종서 런던 공연 때도 마지막 곡은 Hey Jude가 아니었나? Glastonbury Live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제대로 샤워도 못하고, 사흘 내내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BBC Radio DJ들의 후줄그레한 모습을 보는 재미다. John Peel 아저씨는 둘째날 밤만 되어도 벌써,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약에 취한 것 같기도 한 망가진 모습이 되어있고, 떡이 된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계속 모자를 쓰고 있는 Presenter도 있고.

    Scissor Sisters


    셋째날인 일요일은, 비가 소나기 정도로 간간이 내리는 정도였나보다. Live를 다 보진 못하고, 비디오 녹화만 해두었는데, 잠깐 본 바로는, Muse의 무대가 거의 환상적이었다 (앗, 이게 일요일이 맞나?). Elbow는 아주 조심스럽고 좀 부자연스럽게 시작해서 은은하게 경쾌하게 풀어나가는 것 같았다 (이것도 일요일인지 자신이 없다 ^^). James Brown 아저씨는 여전했고, Black Eyed Peas는 얄미울 정도로 매력적이고 세련되게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Scissor Sisters도 괜찮던 걸. (Full Coverage가 못 돼서 유감.)

    Snow Patrol


    작년의 Glastonbury에서 기억나는 것은 Radiohead, Coldplay, Bell & Sebastian. 작년의 Glastonbury를 TV Live와 Highlight로 볼/들을 때, 내년에는 꼭 저기에 있겠다고 결심했었다. 올해는 그런 결심도 할 수가 없다. 내년의 Glastonbury 때 --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주말에, 나는 내가 어디에 있을 지 알지 못한다. 아직 런던에 있을 수도 있고, 서울에 돌아가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그때도 이 Live를 어딘가에서 보거나 듣고 있지 않을까? 오오, 이제는 내가 거기에 없더라도 비를 내리거나 하지는 않겠다. (1999년에, 20세기의 마지막 글래스턴베리 무대를 장식했던 Skunk Anancy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8 june 2004
    kitten_cc

    Oasis

    Glastonbury Glastonbury를 여전히, 그리고 역시나 가지 못하다. 소들을 다 몰아내고 그 넓은 풀밭에 캠프장, 샤워장, 화장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크고 작은 무대들을 세우고, 3일 간에 걸쳐서 하는 음악...
    ☆☆☆☆☆ | G, Glastonbury, London Is Quiet, 인디
  9. 김종서 in London


    김종서...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지난 주 토요일(22/05/04) 그는 런던 아스토리아에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사람이 런던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얘기를 옮겨 듣고도, 별로 동하는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슬며시 아스토리아로 미끄러져 들어와 <사랑과 평화> 아저씨들의 경쾌한 연주에 몸을 풀면서, 김종서의 출연을 가슴을 설레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 설레임은 기대라기 보다는 두려움. 미션에 실패할 것을 예감하는 두려움. 가방 속에 들어있는 흑백 사진 2001년 김종서의 <Odyssey> CD에 싸인을 받아야 하는 의무. 그러나 이걸 꼭 받아야 하나하는 회의감. 싸인을 받으러 달려들 만큼 이 사람에 대해 열정적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거의 본능적인 확신감.

    그에 관한 기억 -- <겨울비>, <대답 없는 너> 이후에, 그리고 <플라스틱 신드롬>에 대한 어럼풋한 기억들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낡은 것들뿐이었다. 나는 2000년이 넘어서의 시간들 속에서 그에 관한 기억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게 그의 탓만은 아니겠지, 1990년대 말 이후의 한국의 mainstream pop music scene은 나에게는 누락된 정보 섹터니까). 과연 그는 그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 의아해 하는 나에게, 후배가 던져놓고 간 그의 <Odyssey> 앨범. 꼭 싸인을 받아내야 한다는 말은 안 했지만, 서울에 가는 자신 대신 공연을 꼭 가야한다는 강요어린 요청 속에 배어있는 그녀의 기대감. 공연을 보러가는 오후까지도 나는 이 CD를 듣고 있었다. 세련되고 잘 만들어졌는데, 다르려고 하는데 여전히 그의 예전 것들과 똑같은 것 같고-- 그의 익숙한 개성들은 너무 잘 간파되고,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은 여전히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계속 반복해서 들으니, 이 익숙한 느낌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예전 --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음악들의 편린들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를 보러, 그의 음악을 들으러 가봐야하겠다고 원하기 시작한 것은, 머릿 속을 맴돌기 시작한 몇 가지 의문들, 그리고 아주 아주 먼 기억의 저편에서 끌어내진 그의 목소리에 대한 첫번째 기억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웹서치.


    87년이었을까? 김종서의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던 것은? 그때 느꼈던 strange 한 느낌과 전율감. 라디오 DJ는 그의 목소리를 'yellow voice'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그때 그는 <시나위>와 함께 있었다(아! <시나위>). 한국 웹서치에서 김종서의 음악에 대해 조금이라도 심각하게 다룬 아티클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음악 경력과 앨범들에 대한 연보정도를 간신히 찾았다. 대개의 웹사이트들은 정말 알고 싶지 않은 것들 -- 그의 키, 몸무게, 생년월일, 기혼 여부, 딸 이름, 학벌... -- 만은 빼놓지 않고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키와 몸무게와 생년월일은 알고 싶지 않다. 그가 어떤 음악을 했는지 알려줄 수는 없는지... 그래도 <시나위>에 대해서는 조금은 더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김종서는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팝스타라는 식으로 다루어지는 것일까? 그건 그가 <시나위> 이후에 해온 음악 때문인가? 혹은, 그가 그런 식으로 살아남아 온 것인가?

    김종서에 대한 대중적인 기억이란 무엇일까? <시나위>에 있었던 락커(?), 그의 곱고 탐스러운 머릿결. 착한 태도. 뛰어난 가창력과 개성 있고 폭발적인 보컬. 대략 5-10미터 정도 거리에서 본 바로는, 그는 여전히 너무도 핸섬하고 고왔다. 그가 <겨울비>와 <대답 없는 너>를 <사랑과 평화> 아저씨들의 연주 속에서 부를 때는, 나 역시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따라 부르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그만큼 익숙했고, 친숙했다. 그의 노래들은... 락의 거칠고 위협스럽다고 여겨지는 강렬함을 곱게 탈색해서, 락이 한번도 주류일 수 없었던 한국의 pop music scene 속으로 들어올(갈) 수 있었던 것, 그런 것일까?

    연주는 훌륭했다. 공연도 훌륭했다. 그는 혼신을 다하지 않고도 그의 노래로 사람들을 흡입할 만한 공연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뮤지션이 아닐까하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짧았다. (하긴, 이건 공짜 공연이니, 일종의 교포 위문 공연이라는 느낌을 갖을 만도 했다.) 주최측은 10여 곡을 했다고 하고, 별로 집중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꼬드겨서 함께 간 후배와 수다를 떨면서도 흥분해 있었던 나는 7곡이라고 생각했다. 맨 마지막에 english-speaking audience들을 위한 특별 배려로 불려진 <Hey, Jude>를 포함해서. (이 공연이 너무 짧았다는 것은 나만의 아쉬움이 아니었던 듯하다. 아는 후배들에게 문전까지만 끌려간, 아스토리아 건너편 tower point building 뒷편에서 성업하고 있는 한국 노래방들은 모두 만원이었다. 김종서에 의해서 끌어올려진 음악적인 열정들을 모두 거기서 소진하고 있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인터뷰라도 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검은 양복 차림의 런던 발행 한국 신문 기자 아저씨들 틈에서 <다음 앨범을 준비한다는데, 이번에는 정말 당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겁니까?>,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의 음악들 중에서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차분히 다져묻고 싶은 욕망들이 생겼으니까. 아는 관계자분들에게가서 사정도 해보고 (인터뷰는 <사랑과 평화>아저씨들이 공연을 할 때 이미 지나갔다고 한다...), 아스토리아 직원들한테 staff room에 들어갈 수 없는가하고 물어도 보았다. 할 만큼은 한 셈이라고 변명할 수는 있게. 하지만, 절실하지는 않게. 들고 갔던 <Odyssey> 앨범은 지금 내 방 한 구석에 숨어서 주인이 런던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종서의 싸인이 없는 채로. 글쎄, 나는 아직도 그에게 싸인을 받는 것이 그렇게 절실한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런던에서 샀다는 puma training jumper를 입고 공연을 했다. is puma on the vogue in korea? you know, puma is just a huge cat!)

    kitten_cc
    31/05/04

    김종서 in London 김종서...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지난 주 토요일(22/05/04) 그는 런던 아스토리아에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사람이 런던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얘기를 옮겨 듣고도, 별로 동하는 기분...
    ☆☆☆☆☆ | London Is Quiet, , 김종서, 인디

  10. 불평을 하는 것은 쉽다고들 한다. 하지만, 불평을 하는 것이, 불평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때가 있다. 요새는, 영화비평을 하는 것은 -- 다르게 말해서, 남이 고생,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영화를 씹는 것은 -- 쉬운 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때로, 씹지 않는 것은, 아무 나쁜 말도 늘어놓지 않는 것은 얼마나 쉬운 선택일 수 있는 지.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좋은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넘어가주면 그만이다.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라는 영화가 두 주째 영국의 박스 오피스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한국에서도 12월초에 개봉한 이 영화에 대해서, 한국 영화잡지들을 보니 -- 그래봐야, 씨네21과 필름 2.0 --, 씨네 21은 다소 뜨뜨미지근한 반응이지만, 충실하게 보도해주는 식이고, 필름 2.0은 굉장히 호의적이다. 씨네21의 뜨뜨미지근한 반응에 조금 열기를 보태기 위해서인지, 지난 주인가에는 듀나의 리차드 커티스 (이 영화의 감독) 이해동조론이 씨네21에 나타났었다. 대충 거칠게 요약하면, 듀나의 관점은, 리차드 커티스는 TV코미디 작가로서 로완 앳킨슨을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한, <블랙에더>, <미스터 빈> 등, 극도로 지적이고, 사회 풍자적인 TV물의 작가로서, 이후,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 힐> 등의 훌륭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각본을 쓰는 시나리오 작가로 변모했고, 그리고 <러브 액츄얼리>에서 다소 과도하게 로맨틱의 익스트림으로 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훌륭한 작가이고, 그의 본령(?)인 사회풍자적인 영역으로 되돌아오면, 다시 멋진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인물. 이라는 것이다.

    리차드 커티스


    뭐, 듀나의 관점을 걸고 넘어갈 생각은 없다. 또, 이 영화에 대해 한국에서 좋은 영화평이 나오든, 나쁜 평이 나오든, 혹은,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도 하고 싶지 않다. 더더군다나, 이 영화를 영화적으로 분석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그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분석해보고 싶다. 어떻게 다른 관점과 맥락에서 내가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첫째로, 리차드 커티스라는 마이다스의 손, 뛰어난 로맨틱 코미디 극작가에 관한 것. 자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배경과 인물들은 리차드 커티스의 개인적, 사회적인 백그라운드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것이 그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그가 알고 있는 영국이라는 사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캠브리지, 옥스포드 브랜드의 학벌과 네트워크, 미들 클래스, dominantly white, 지역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Middle-England의 공간적 상징화다(<빌리 엘리엇트> 같은 영화가 Nothern England의 전형적인 표상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지적으로 뛰어나고, 정치, 사회적으로 예리하게 풍자적인 자질과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별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인 정치적 풍자와 조롱은 영국의 지적인 상위계급들의 특허품이기도 하다 -- 어느 정도의 보편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둘째로, 리차드 커티스의 영화들에 나타나는 런던은, 한 영국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영국 관광청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은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굳이, 이 영화들이 미국이라는 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화 마켓을 노리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에서, 이건 리차드 커티스 자신이 알고 있고, 생각하는, 영국이라는 사회의 리얼리티이기도 할 것 같다. 듀나의 지적처럼, <네번의...>와 <노팅힐>에는, 말 못하는 캐릭터 (deaf)와 휴 그랜트의 플랫 메이트 같은 사회적으로 주변적인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러브 액츄얼리>에는 영광스럽게도, 그리고 드디어, 단 한 명의 블랙 캐릭터가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한 영국 평론가의 조롱 섞인 유머를 빌리면, 그의 영화에서, 이 두가지 주변성이 같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 가령, 흑인이면서 말 못하는 사람은 실제로도 얼마나 희귀한가(!).

    리차드 커티스의 <노팅 힐>에는 빨강, 노랑, 녹색이 들어간 니트 모자(what do you call this?)를 쓴, 자메이칸 블랙의 캐릭터는 없다. 하지만, 잠깐. 나는 여전히 리차드 커티스가 노팅 힐이란 지역의 이미지를 왜곡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포르토벨로 마켓이 거의 끝나는 곳에 있는 Tesco(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 영국의 거데 수퍼마켓 체인 중 하나)에 일요일 오후, 장을 보러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값싼 식료품들로 냉장고를 채우려고, 일요일의 노곤한 오후에 밀려든, 가난한 사람들 틈에 서 있을 필요가 없었을 때문이었을 것이고, colored face인 사람들한테는 물건을 팔고 싶지 않아 하는, 포르토벨로 마켓의 한 백인 아줌마의 harrassment를 당해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팅 힐 퍼레이드? 왜, 여름도 다 저물어가는 8월 말에 -- 런던에서 그 때면 벌써 흐리고 추워지곤 한다 -- 스트리트 퍼레이드를 하는가? 이 잘 살고 평화로운 노팅 힐 지역 언저리에, 자메이칸 블랙들이 살기 시작한 저 30년 전에 있었던 street riot과 인종간의 갈등을 풀기 위해 그 행사가 시작된 것이라면?


    셋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만약 <러브 액츄얼리>가 히드로 공항에서 서로 만나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며, f**king ridiculous한 나레이션으로 영화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만약, 단지 첫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한 조그만 백인 꼬마가 공항 경비를 뚫고 공항으로 몰래 잠입하는 신 따위를 포함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영화를 그렇게 싫어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첫 장면, 나레이션은, 내 기억이 맞다면, 대충 이런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공항에 한번 가보라.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모습이다.... 9/11 사태 때 그 빌딩에 있던 사람들이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전화 통화에서, 증오를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왜 리차드 커티스 주위에는 이런 싱겁고 말도 안 되는 나레이션을 뺄 것을 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가?(이건 내 질문이 아니라, 다시 어느 영국 평론가의 질문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리차드 커티스 자신은 공항에 가 보았는가? (이것은 내 질문이다) 그는, 이민국 앞에, 장시간의 비행에 지친 초췌한 모습으로, 긴장되고 초조하게, 긴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을까? 혹은, 불법 입국 시도자로 분류되서, 얼굴을 파묻고 절망한 모습으로 호송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사람들을 정말 보지 못했을까? 미국이나 유럽 공동체에 속한 나라 사람이 아니면, 잠정적인 범죄자처럼 다루면서, 조금 마음이 여린 사람이면 그 자리에 서서 울게까지 만드는 이민국 관리들의 harrass를 흘깃이라도 보지 못했다는 것일까? 9/11 사태의 희생자들이나 가족들은 모두 사랑으로 그 상처를 껴안았는데,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의 suicide bombers들은 왜 자신들의 상처를 증오로 되갚느냐고 묻고 싶은 걸까?, mr. curtis? 조지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사랑과 용서의 표현이었던가?


    다시 공항. 영국 정부는 새로운 이민법 법률을 만들어서, 최대한, 정치적인 이유로 영국으로 피난해 오는 사람들을 받지 않고 있다. 이 새로운 법률은, 영국에 들어온 지 24시간 안에 법적인 피난 절차에 지원하지 않을 경우 아예 신청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혹은 어떻게든 지원했으나,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you must know well, mr. curtis. 이런 사람들에게는 정부차원에서, 숙소나 기본적인 식사도 제공되지 않는다.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자신들이 죽을 뻔했거나, 자신의 가족들이 죽임을 당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이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이다. 당신이, 영어도 한 마디 못하고, 영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고, 돈도 한 푼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homeless--길에서 잠을 자며 돈을 구걸할 수 밖에는?) 영국 정부는 이 법률을 시행한 이후, 법적으로 피난자 자격을 받은 사람의 숫자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최대 업적으로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격을 거부당한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또 다시 공항. 만약, 공항 경비를 뚫고 자신의 첫사랑을 전하러 간 무모하고도 용감한 이가, 이 귀여운 백인 꼬마가 아니라, 나였다면 어땠을까? 미국과 영국에 새로 도입된 terrorist 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이 법에 따르면, 당신이 단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terrorist일 법한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면, 영장이고 뭐고, 바로 그 자리에서 체포될 수 있다. 나 같은 유색 인종이 첫사랑을 전한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삼엄한 공항 경비를 뚫고 공항에 잠입했다가는, 나는 지금, 이 글을 어딘가의 깜깜한 감옥 속에서 쓰고 있을 것이다. i'll rather let down my first love. wouldn't you?


    리차드 커티스와 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perhaps, 한번 정도는, 똑같은 히드로 공항 카펫 위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나는 이렇게 다른 reality 속에서 살고, 다른 것을 느낀다. 그가 사람들의 사랑 --아니, 사랑만을-- 보고 느낄 때, 나는 거기에서 공포와 절망을 보았던 것 같다. 리차드 커티스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명언이 있다. <왜 영국 상류 계급 위주의 영화만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상류 계급 사람들도 사람이다>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른 한 문장이 덧붙여져야 했던 것 아닐까? <상류 계급 사람들도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무척이나 특혜 받은 사람들이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에마 톰슨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봉사활동으로 소말리아 같은 못사는 나라들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내가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은 우리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엄마와 아이들, 가족간의 사랑은 그들에게 훨씬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 Yes, Emma. That's very very important thing for them because it's the only thing they have there. 나는 그 사람들이 사랑 말고도 다른 것들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먹을 것, 입을 것, 깨끗한 물, 교육, 신발...


    with alll the best regards,

    14 dec 2003
    kitten_cc

    불평을 하는 것은 쉽다고들 한다. 하지만, 불평을 하는 것이, 불평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때가 있다. 요새는, 영화비평을 하는 것은 -- 다르게 말해서, 남이 고생,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영화를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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