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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가슴 고정필자코너/London Is Quiet 19 POSTS


  1. 어제는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 그리고 조셉 파인즈까지 가세한 영화 <베니스의 상인>을 보러 갔었다. 극장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올해 본 영화들을 떠올려봤다. 시간이 없어서 많은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어느 해보다 멋진 영화들을 많이 본 것 같았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로 시작해서, <21 그램>, <자토이치>, <나쁜 교육>, <몬스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My Summer of Love> 그리고 런던 영화제에서 보았던 지아 장커의 <세계>와 후 샤오시엔의 <까페 뤼미에르>...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영화를 꼽으라면 후 샤오시엔의 <까페 뤼미에르>를 꼽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 영화가 보여준 그 깊고 따뜻한 세계가, 올해 가을의 가장 힘겨웠던 시간들을 건너게 해준 힘이 되어주었던 탓이다.

    젊은 시절의 체 게바라가 남미 대륙을 여행하는 얘기<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생각하면서는 살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영화가 흥미로우면서도 계속 어색하게 생각된 이유는, 그 소박한 선동주의 때문이었다. 그 지극히 낙관적이고 소박한 정치적 메세지. 한 젊은이가 달달거리는 고물 오토바이와 잔머리에 능한 친구 하나만을 믿고 남미 여행의 대장정에 오른다... 남미 대륙 곳곳에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는 <우리는 모두 메스티조>라고 외치면서 <하나의 연합된 라틴아메리카>를 선언한다. 이 영화의 감독은 <중앙역>으로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브라질 출신, 월터 살레스다. 이 영화의 지극히 낙관적이고 소박한 정치적 선동주의를 누군가는 미국의 (혹은 전세계의?) 중산층 관객들에게 소구하기 위한 접근의 한계가 아닌가하고 의심하는 것도 보았다. 글쎄... 그런 면이 꼭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 이상하리만치 낙관적이고 소박한 정서를, 요새 많이 듣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들에서 계속 마주치면서는,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영화의 중간 중간에 흘러나오는 그 아름다운 음악들을 생각해보라).


    (지난 달에 썼었던) 우연히 알게 된 그 친절한 사람이 내게 전해 준 CD는 이제 35장에 이르렀다. 지난 번 글을 쓰고 나서도 두번 더 소포로 CD들을 받았고, 이제 이 사람은 다음 번 CD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지난 번에 언급했던 몇몇의 뮤지션들을 빼고도, 이제는 영어권의 뮤지션들까지, 나 혼자만 즐기기에는 너무나 좋은 음악들이어서, 여기 <가슴>에 시간이 되는대로 한 명 씩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내가 그 사람에게서 받은 따뜻한 마음을 그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가장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뮤지션은 Manu Chao다. 사실 영국에는 차라리 별로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라고 해야겠지만, 유럽 대륙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한, 대중적이고 유명한 뮤지션이다. 그리고 이 뮤지션은, 이 친절한 사람이 거의 매일 듣다시피 하는 매일의 양식 같은 음악인 것 같았다. 굳이 내 취향일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알려주고 싶어서인지, 이 Manu Chao라는 뮤지션의 <Proxima Estacion: Esperanza>라는 CD를, 이 사람은 다른 CD들 틈에 끼워 넣어 보내주었었다. 이메일에서는 <Do you think there are any korean kids who know Manu Chao?>라고 물어보면서... 글쎄, 그를 아는 한국 젊은이들도 있지 않겠어요?라고 나는 답했었다.


    지금 40대 초반에 이른 이 Manu Chao라는, 자그만 체구에 검은 머리를 한 이 사람은,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정권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망명 온 스페니쉬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한참 영국의 펑크 음악(특히 the clash)이 바다를 건너 프랑스에 영향을 미칠 즈음에, 펑크 밴드인 Manu Negro를 만들었고, 상당한 인지도를 얻었다고 한다. 이 그룹의 전설적인 crazy 남미 튜어는 아마도 Manu Chao의 그후의 음악과 정치관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들은 콜롬비아에서는 기차를 빌려서 여행하면서 여기 저기 발길 닿는 곳에서 공연을 했고, 그 이후에는 화물 보트를 빌려서, 마치 옛날의 서커스단처럼, 강을 따라, 해안을 따라 여행하면서, 때로는 혁명군들의 보호아래, 때로는 지역 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가는 마을 곳곳에서 공연을 펼쳤다고 한다.

    그 이후, 스페인으로 돌아와 Manu Negro 팀이 깨진 후, Manu Chao는 다시 홀로 라틴 아메리카로 돌아와 3년 동안 혼자 여행을 했고, 1998년, 지금까지 삼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고하는 첫번째 솔로 앨범 <Clandestino>를 내놓는다. <Clandestino>는 스페인 기타 연주, 레게, 힙합, 플라멩코,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음악 장르들이 너무나 맛깔스럽게 잘 섞여든 fusionist album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한다. (지금은 이 CD가 없으니 내 개인적인 견해를 보탤 수는 없지만.) spanish, french, english, portuguese 등이 섞여있는 가사들은, 그가 남미를 여행하면서 눈으로 보고 느낀 상황들의 시적 report 같다. (Manu Chao자신은 자신을 일종의 underground reporter내지는 travelling writer라고 묘사했다.)

    <Proxima Estacion:Esperanza>


    첫번째 앨범의 성공 이후에도 그의 여행은 멈추지 않았고, 그는 아프리카, 특히 west africa를 오랫동안 여행했다고 들었다. 그의 여행을 항상 동반한 것은, 그의 기타와 사운드 레코더였다고... (그 여행에서 얻은 선물인지, 그는 지난 번 글에도 언급한 적 있는, Cape Verde 출신의 아내를 얻었다.) 그의 두번째 앨범 <Proxima Estacion:Esperanza>은 2001년 발매되어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현재 2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세상에 이렇게 싱겁고 멋없고 소박한 제목의 앨범이 또 있을까? 이 스페니쉬 제목을 한국말로 번역하면 <다음 역: 희망>이다. (이에 비견할 만한 썰렁한 앨범 제목이라면, Asian Dub Foundation의 <Community Work>정도일 것 같다.)

    실제로 스페인의 마드리드에는 <희망(Esperanza)>이라는 전철역이 있다고도 하지만, 이 제목은 그의 음악 세계가 갖고 있는 소박한 낙관주의를 그대로 드러낸다. 정치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naughty하기도 한 그의 가사들이,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그래서 용기를 북돋아주는 흥겨운 음악들에 실려진다. 이 앨범에는 Arabic 가사로 된 노래도 있을 뿐 아니라, 옛날의 TV드라마, 혹은 라디오 토크 쇼, 거리의 소리들까지 섞여 들어가 있다. (첫번째 앨범과 두번째 앨범 몇 곡의 가사들을 이 글의 맨 마지막에 소개하겠다.)

    이 영어라는 언어권의 단단한 장벽을 넘어 영국에 그의 이름이 다소라도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2001년 이탈리아의 Genoa에서 있었던 G8 회담을 저지하려는 protest운동의 일환으로 이탈리아의 제노아 등에서 회담 기간 전후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면서부터다. 그의 가사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고 그의 생활 태도-- 슈퍼 스타로서의 화려한 삶을 거부하고, 작은 까페 등에서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연하며, 때로는 길거리 연주자들과도 함께 공연하고, 그 공연을 CD로 불법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돕는 --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그는 anti-globalisation movement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자신이 인터뷰에서 거듭 밝혔듯이,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 단지 자신의 친구들을 돕고, 자기 이웃들의 삶이 변했으면 한다는 소박한 신념(?)의 소유자다. 그는 자신의 첫번째 앨범의 로열티의 일부를 멕시코의 혁명 집단인 the Zapatistas에 기증하기도 했고, the Brazilian Landless Peasants Movement 등 라틴 아메리카의 각종 사회 운동 그룹들을 돕고 있다.


    이번 주 초에 잠깐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시내에서 기타를 맨 까만 머리의 중년의 남자와 마주쳤었다. 전혀 옷차림새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따뜻한 셔츠를 몇 장 겹쳐 입은 이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너무나 밝고 화사하게 웃어주었다. 마치 너무 반가운 친구를 만나기나 한 것처럼. 모르는 사람에 대해 자기도 모르게 갖게 되는 경계심을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따뜻하고 밝은 웃음이었다. 그리고는 아직도 빨간 불이 켜져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달려오는 차들을 향해, 기타를 겨누면서, 그리고 그렇게 밝게 웃어 보이면서... 차들이 멈춰서고, 순간 놀랐던 운전하던 사람들도 웃음을 되돌려주면서 이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쳤었을 때... 글쎄, 나는 순간, 혹시 Manu Chao...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에서 본 것과 비슷해 보이는 체격에, 얼굴 모양... 설마... Manu Chao가 바르셀로나의 가난한 동네에 2002년부터인가 정착해 살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것은 런던의 집에 돌아온 후였다. 설마... 그 사람은 Manu Chao였을까? 정말? 정말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런 우연이-- 행운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의 태도에서 느껴졌던 묘한 자신감과 부드러운 확신감이 너무 특별하게 느껴졌었다. 그가 정말 Manu Chao였건 아니건, 다음의 만남을 기대한다. with all my heart. 언젠가는 그를 볼 수 있기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그를 만날 수 있기를 -- 그의 음악을 만날 수 있기를 -- 말이다.


    내게 Manu Chao의 음악을 알려준 이 친절한 사람도, 여러 곳을 두루 여행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 만큼, 그가 Manu Chao에게서 그 자신의 모습을 본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니겠지. 체 게바라의 영화와 Manu Chao의 음악... 라틴 아메리카의 그 혼돈스러운 역사와 불평등의 질곡은, 그 힘겨운 상황을, 그 소박한 낙관주의와 즐거움의 이름으로 맞서게 하는 것 같다.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감독 월터 살레스는 그 영화를 만들면서 체 게바라가 갔던 길을 따라서 라틴 아메리카 대륙을 두 세번 돌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무엇보다도 놀라게 한 것은, 체 게바라가 그의 일기에서 묘사했던 당시의 상황들과 지금의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들이, 그 어려움과 가난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다음 정류장'은 '희망'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을 즐겁게 견디고 내일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to be continued... )

    23 dec 2004
    kitten_cc

    <Clandestino>


    :: Clandestino (spanish)

    solo voy con mi pena
    sola va mi condena
    correr es mi destino
    para burlar la ley
    perdido en el corazon
    de la grande babylon
    me dicen el clandestino
    por no llevar papel
    pa una ciudad del norte
    yo me fui a trabajar
    mi vida la deje
    entre ceuta y gibraltar
    soy una raya en el mar
    fantasma en la ciudad
    mi vida va prohibida
    dice la autoridad

    solo voy con mi pena
    sola va mi condena
    correr es mi destino
    por no llevar papel
    perdido en el corazon
    de la grande babylon
    me dicen el clandestino
    yo soy el quiebra ley

    mano negra clandestina
    peruano clandestino
    africano clandestino
    marijuana ilegal

    solo voy con mi pena
    sola ca mi condena
    correr es mi destino
    para burlar la ley
    perdido en el corazon
    de la grande babylon
    me dicen el clandestino
    por no llevar papel



    :: Clandestino (English Translation)

    Alone I go with my sorrow
    Alone goes my sentence
    To run is my destiny
    To escape the law
    Lost in the heart of the great Babylon
    They call me
    clandestine
    For not having any papers

    To a city of the north
    I went to work
    I left my life
    Between Ceuta and
    Gibraltar
    I? a line in the sea
    A ghost in the city
    My life is forbidden
    So says the authority

    Alone I go with my sorrow
    Alone goes my sentence
    To run is my destiny
    For having no papers
    Lost
    in the heart
    Of the great Babylon
    They call me clandestine
    I? the lawbreaker
    Mano negra clandestine
    Peruan clandestine
    African clandestine
    Marihuana illegal

    Alone I go with my sorrow
    Alone
    goes my sentence
    To run is my destiny
    To escape the law
    Lost in the heart of the great Babylon
    They call me
    clandestine
    For not having any papers


    :: Lagrimas De Oro (spanish)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que el mundo sea tan feo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de tanto tiroteo

    vas por la calle llorando
    lagrimas de oro
    vas por la calle brotando
    lagrimas de oro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de tanto cachondeo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vamonos de jaleo

    ahi por la calle llorando
    lagrimas de oro
    ahi por la calle brotando
    lagrimas de oro

    llego el cancodrilo y super chango
    y toda la vaina de maracaibo
    en este mundo hay mucha confusion
    suenan los tambores de la rebelion

    suena mi pueblo suena la razon
    suena el guaguancon
    baila mi mama
    suenan los tambores de la rebelion
    suena mi pueblo suena la razon
    lagrimas de oro
    suena mi pueblo suena la razon
    suena el guaguancon
    tu no tienes la culpa mi amor
    lagrimas de oro...



    :: Lagrimas De Oro (English Translation)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That the world is so unfair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Shooting everywhere

    You walk the street a'weeping
    teardrops of gold
    You walk the street a'welling
    teardrops of gold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so much taunting isn't right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we are going to fight

    Here on the street a'weeping
    teardrops of gold
    Here on the street a'welling
    teardrops of gold

    the crocodile and the super kid have come
    and all the trash from Maracaibo
    In this world there's much confusion
    Sound the rebellion drums

    Sound of my people, sound of reason
    Sound of the bus ( that's leaving... poetic:)
    Dance my mother
    Sound the rebellion drums
    Sound of my people, sound of reason
    teardrops of gold
    Sound of my people, sound of reason
    Sound of the bus ( that's leaving... poetic:)
    It really isn't your fault my love
    teardrops of gold


    :: Eldorado Lyrics (spanish)

    que paso que paso?
    a caipira planto
    que paso que paso?
    a policia llego
    que paso que paso?
    o semterra murio
    que paso que paso?
    chacinha no eldorado

    que paso que paso?
    a globo relato
    que paso que paso?
    o politico falo
    que paso que paso?
    en pizza acabo
    que paso que paso?
    chacinha no eldorado

    que paso que paso?
    radio bemba relato...



    :: El dorado (English translation)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country boy has been planting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police have arrived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landless die
    What happened, what happened?
    Massacre in El dorado

    What happened, what happened?
    Globo reported
    What happened, what happened?
    The politician spoke
    What happened, what happened?
    and nothing happened
    What happened, what happened?
    Massacre in El dorado

    What happened, what happened?
    Radio Bamba reported.

    어제는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 그리고 조셉 파인즈까지 가세한 영화 &lt;베니스의 상인&gt;을 보러 갔었다. 극장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올해 본 영화들을 떠올려봤다. 시간이 없어서 많은 영화를...
    ☆☆☆☆☆ | London Is Quiet, m, Manu Chao, 인디
  2. 비에 젖은 런던


    <고양이를 부탁해>란 영화에 보면 배두나는 어디론가 떠나기 전, 시인인 지체 장애 소년의 방에 들린다. 언제나 붙박이처럼 반쯤 누워있던 -- 그 자신의 시적인 표현을 빌리면 '방바닥에 껌처럼 들러붙어 있던' 소년은 보이지 않고, 배두나는 '누군가가 너를 떠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야'라는 문장을 그의 타이프라이터에 남겨 두고 떠난다. 소년은 왜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 배두나, 그녀도 다른 사람들 모두처럼 그를 떠날 거란 걸 알아차리고서...

    이리 저리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다가, 지치고 초라하고 우울해져서 돌아와서는, 당연히 내 자리라는 듯이, 당연히 반겨줄꺼 아니야 하는 얼굴로, 가슴의 이 구석 자리에 와서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왜 그렇게 소년은 화가 났던 것일까를. 소년이 화가 났던 건, 소녀가 떠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소년 자신이 떠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 같았다. '사랑하지만 떠나는, 혹은 떠나기도 하는' 그것을 할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짐작할 수 있었다. 훌쩍 훌쩍 떠나다니곤 했는데, 오래간만에 남겨지는 일을 경험하고 나서는...

    Franz


    무척이나 재미있고 친절한 사람을 만났었다. 한참, <The Streets>의 <Dry Your Eyes>를 들으며 하루하루 눈물을 말리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을 때. 물론 이번 Mercury Prize는 <Franz Ferdinad>의 Franz들에게 돌아갔었다. sexy, sleek, stylish한 Franz들은 그 직후에 미국으로 떠나가 tour를 한 모양이고 꽤 반응이 좋았던 모양이다. birmingham 근방 출신의 mike skinner(aka the streets) 라는 이 청년의 두번째 앨범 <a grand don? come for free>도 후보에 올랐었다. 그의 첫번째 앨범도 후보에는 올랐었지만, 역시 상을 받는 데는 실패했었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하고 솔직한 가사들에 뛰어난 음악성. 같은 앨범의 <blinded by the lights>의 뮤직 비디오는 나오는 대로 바로 방송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방송 금지가 될 것을 예상하고 이 뮤직 비디오가 나오자마자 바로 보여준, 발빠른 channel 4에서 본 바로는, 문제가 될 만한 외설적인 이미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뮤직 비디오 속의 이야기 전개상 마약을 하는 모습이나 오럴 섹스를 하는 모습이 있다는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외설적이거나 자극적이려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전개하려고 했던 것 같았는 데 말이다...

    Tete Alhinho


    어쨌거나, 이 친절한 사람은 집으로 급하게 돌아가게 되면서 8장의 CD를 내게 남겼다. multi-lingual인 이 사람의 음악적 전공분야는 spanish, portuguese language 음악권, African, Arabian 음악들, Latin American 계열의 English-singing musician들까지 정말 폭이 넓었고, 나에게는 내가 지금까지 거의 몰랐던 unknown world를 활짝 열어주었다. 이 사람이 처음 남긴 8장의 CD 중에서 가장 즐겨듣게 된 건, West Africa의 Cape Verde라는 섬 지역 출신의 Tete Alhinho라는 여가수의 음악이다. 처음 이 친절하고 박식한 사람이 특유의 빠른 말투로 모든 걸 설명해주었을 때는 전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었다 (잘 모르면 보이지 않는 것뿐아니라, 들리지도 않는다).

    Cape Verde archipelago


    이 사람이 떠난 후, 웹 사이트 등을 뒤지며 혼자 공부하며 알게 된 사실은, 아프리카 지역 지도를 잘 들여다보면,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큰 섬 말고도, 웨스트 사이드에 작은 섬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여러 개의 섬들을 묶어서 Cape Verde archipelago라고 부른다. 원래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던 이곳에 그 옛날(!) 포르투갈 사람들이 찾아와 한참 노예 매매를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본토에서 데려와 내려놓으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맥락을 전혀 모르고 들어도, 이 Tete Alhinho 여가수의 따뜻하고, 깊고, 슬픈 노래들은 가슴 깊은 곳에 남겨져 있었던 슬프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깨워내서 부드럽게 어루만져 준다. CD를복제하는 불법행동은 가급적 하지 않는 편인데, 이 CD만은 3장을 복제해서 이 어둡고 음울한 런던의 겨울을 나야하는 다른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친절한 사람이 나에게 잠시나마 보여주었던 따뜻한 마음을, 그 사람이 열어준 이 크고 아름다운 세계를 같이 나누고 싶었었다.

    Anouar Brahem


    이제 그 사람은 멀리에서 음악을 통해서만 이야기한다. 떠나고 나서 한 달 후에 이 사람이 보내온 선물 꾸러미에는 다시 11장의 CD와 Aids로 죽어간 영국의 정말 아름다왔던 filmmaker Derek Jarman의 아름다운 친필 사인이 담긴 수필집이 들어있었다. 그전에 남겨준 8장의 CD가 자신이 뽑은 영화적인 visual image가 연상되는 음악들이었다면, 이번 음악은 굉장히 정확하게 내 취향을 읽어내고 보내준 것들이다. 그가 준 음악들이 나한테는 -- 언제나 눈을 말리며 dry해지려는 내게는 -- 너무 감정이 강하다며, 나는 그 사람에게 조용하고 조금은 감정이 정제 --혹은 억압(?)-- 되어 있는, Yo La Tengo의 음악을 한번 들려주었을 뿐이었다.

    Arto Linday는 미국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자랐고, 후에 뉴욕으로 옮겨와 80년대 뉴욕의 아트락 신에서 노이즈를 실험하는 음악들을 했고, 이후 브라질 뮤지션들의 프로듀서가 되어 다양한 브라질 사운드들을 팝적으로 소화해내서 세계적으로 소통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Caetano Veloso, Marisa Monte 등은 그가 발굴해낸 브라질 출신 뮤지션들.

    Arto Lindsay


    거기에 맞춰서 그가 뽑아낸 음악들은 Carla Bruni의 <quelqu'un m'a dit> (french chanson), New York에서 활동한다는 Arto Lindsay의 <Mundo Civilizado>, Marisa Monte의 <Rose and Charcoal>, Anouar Brahem의 <Astrakan Caf >등이다. 영어권 음악을 빼고는 다른 음악권에서는 거의 까막귀인 나에게 이 음악들을 설명할 만한 능력이 지금은 없다.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와서, 이건 다음에 이야기해도 될까?) 물론 모두 따뜻하고 아름답다. 지금 나는... 본의 아니게 남겨진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 따뜻한 마음으로 남겨지고, 아름다운 음악들로 남겨져있지만, 남겨지는 것은... 역시 싫다. 서울을 훌쩍 떠나왔듯이, 런던도 가끔은 훌쩍 떠나고 싶다. 너무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올해의 맨 마지막 주와 내년의 첫주는 서울에서 보내게 될 것 같다. 찬 바람이 부는 연말의 뒤숭숭한 거리에서 이 글을 읽은 누군가와도 스쳐지나게 될까? 서울에 가서 내가 듣게 될 소리와 음악들은 어떤 것일까?


    14 nov 2004
    kitten_cc

    Arto Lindsay의 <Mundo Civilizado>


    http://www.the-streets.co.uk/
    http://www.bbc.co.uk/music/profiles/streets.shtml (The Streets)
    http://www.worldconnection.nl/wclayout/biografy.php?site_id=8&PHPSESSID=6bd4f44c21f926f938a4dabc26aeaaca (Tete Alhinho)
    http://www.caboverde.com/music/tal-00.htm( you can hear tete's songs from the album <voz>).
    http://www.lonelyplanet.com/destinations/africa/cape_verde/ (Cape Verde)
    http://www.paroles.net/artis/2549 (Carla Bruni) (you can hear <quelqu'un m'a dit>)
    http://www.artolindsay.com/
    http://www2.uol.com.br/marisamonte/index-f.htm (Marisa Monte)
    http://www.anouarbrahem.com/
    http://hometown.aol.co.uk/sistermorticia/jarman.html (Derek Jarman)

    Carla Bruni는 프랑스에서 내노라하는 모델이다. 그녀가 작곡하고 공동으로 가사를 만들고 기타로 연주해서 내놓은 앨범은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태리에서 골든 레코드 기록을 세우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앨범이다.

    Carla Bruni


    Quelqu'un m'a dit - Carla Bruni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네.

    사람들은 말하길 우리의 인생은 별 게 아니라 하네.
    인생은 그저 장미가 시들듯이 그렇게 한 순간에 지나갈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길 미끄러져 지나가는 시간은 정말 나쁜 놈이라하네.
    그 많은 슬픔들을 망토 아래 감추고 있다고.
    그렇지만 누군가 내게 말해 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바로 그 누군가가 말해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사람들은 말하길 우리의 운명은 우리를 속인다 하네.
    운명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약속만 한다고.
    행복은 바로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우리가 손을 내밀면 그때 우리는 우리가 속은 것을 알게 된다고.
    그렇지만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바로 그 누군가가 말해주었다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렇지만 네가 항상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이 사람은 누구지?
    나는 그게 아주 늦은 밤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네.
    나는 항상 그 목소리를 듣지만, 나는 그 얼굴은 볼 수가 없네.
    "그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비밀이에요. 그 사람에게는 내가 얘기했다고 말하지 말아요"
    너는 누군가 내게 말해주는 것을 보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내게 그것을 누군가 정말 말해주었네.
    너는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그게 정말 가능할까?

    네가 내 곁에 있을 때,
    이 방은 더 이상 벽이 없는 것 같아.
    숲이 되는 것 같아, 끝없는 숲이.
    그래 정말 네가 내 곁에 있을 때,
    그건 정말 저 천장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우리 위에 몸을 뉘인 하늘을 보네. 그렇게 쉬고 있는.
    그렇게 모두 떠나간 것처럼,
    더 이상 아무 것도 없다네, 세상의 그 누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나는 하모니카 소리를 듣네.... 누군가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너와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네.
    저 끝없는 하늘 위에서,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비에 젖은 런던 &lt;고양이를 부탁해&gt;란 영화에 보면 배두나는 어디론가 떠나기 전, 시인인 지체 장애 소년의 방에 들린다. 언제나 붙박이처럼 반쯤 누워있던 -- 그 자신의 시적인 표현을 빌리면 '방바닥에...
    ☆☆☆☆☆ | London Is Quiet, , 고양이, 인디

  3. 일요일 낮, 공원에 나가보면 온갖 종류의 개들이 주인들과 산책을 나온 걸 볼 수 있다. dog's paradise. 늘씬하고 날렵한 사냥개들부터 주인의 빠른 걸음을 종종거리며 따라가기 바쁜 스코티쉬 테리어까지. 다람쥐들을 쫓거나, 주인이 던진 공을 잡으러 미친듯이 뛰어가는 녀석들. (그게 뭐 그렇게 재미있을까?) 하지만, 한 마리도 고양이를 산책시키러 나온 사람은 없다. 고양이들이 목에 줄이 묶인 채로 주인들 옆을 나란히 따라서 걷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고양이들은 지혼자 싸돌아다니지, 주인과 공원을 산책하는 따위의 지루한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좁은 골목에서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이라면 -- 그리고 줄에 묶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뭐, 잠깐은, 산책 비슷한 걸 같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잠깐의 산책 와중에 고양이가 들려준, 재미있지도, 재미없지도 않은 요령 없는 이야기...

    스위트피


    Franz Ferdinand의 약발이 더 이상 듣지 않아. 아마도 너무 많이 들은 탓이지. 서울에서 친절한 사람이 공수해다 준 Sweetpea의 <하늘에 피는 꽃>의 약발도 거의 다 떨어져 간다. 한 두 달 정도는, 밖에 나돌아다닐 때는 언제나 그걸 들었다. 집에서 종일 노트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선선한 어느 여름 저녁, 해질 무렵, 숲 속을 산책했다. 서쪽 하늘, 두서없이 휙휙 불어대는 바람들에 회색구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고, 그 사이로 번져나오는 저녁 햇살이 나무 꼭대기 부근의 녹색 잎들을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불쑥 다가온 먹구름. 굵은 빗방울들을 떨어뜨렸다. 여전히 나뭇잎들을 빛내고 있는 저녁 햇살,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 시원한 빗방울. 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 서서 비를 피하며 (정말로 비가 피해진다!) Sweetpea의 <kiss kiss>, <whiskey in the jar>, <하늘>을 듣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을 어느 날인가에는 후회하게 될까?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왔던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뭐,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런 순간이 있는 인생 -- 이런 하늘과 이런 바람과 이런 나무들을 기억하고 있는 인생이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Sweetpea의 음악들을 들으면 언제나 떠올리게 될 순간.

    팬더와 소년


    내가 다시 숲속을 가로지르다가 비 때문에 나무 아래 서 있게 된 날은, sweetpea를 가져다 준 친절한 이와 Royal College of Art에서 하는 animation course degree show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팬더와 소년>. 아니, 진짜 제목은 <A Boy Who Wanted to Be a Super-hero>. Murakami Hiromitsu라는 일본 젊은이의 작품. 웹사이트는 http://www.hiromitsumurakami.com.

    소년은 어두운 방 안에 쳐박혀 있다. 소년은 세계를 구할 영웅이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되지 못했고, 소년은 지붕 위로 올라가 추락을 생각한다. 그때, 팬더가 나타난다. 팬더를 따라가는 소년. 팬더는 소년을 바닷가로 데려간다. 소년은 그 전에 팬더와 함께 이 바닷가에 왔었던 것 같다는 기억을 떠올린다. 팬더는 소년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한다.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게 해주겠다고. 팬더가 소년을 다시 데려온 곳은, 다시 소년의 방 앞이다. 팬더는 소년더러 잠깐 다른 곳을 보라고 하고, 팬더 옷을 벗어나고 (이 팬더 옷에는 앙증맞은 자크가 달려있다) 사라진다. 팬더 옷 속으로 들어간 소년이 방문을 연다. 거기에는 소년의 훨씬 더 어렸을 적의 소년이 있다. 어린 소년은, 세상으로부터의 따돌림에 지쳐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팬더는 -- 아니, 팬더 옷 속으로 들어간 소년은, 어린 소년에게 말한다. '그냥 버텨 봐. 좀더 조금 더 강하게 버텨보는 거야. 지금은 포기하지 말아'. 이렇게 해서 팬더는 -- 소년은, 꿈을 이룬다. 그는 세상을 구한 것이다...

    좀 무라카미 하루키 냄새가 난다고? 글쎄, 두 사람이 같은 성 씨를 가진 게 꼭 우연이기만 할까???

    kings of convenience


    그건 그렇고, 이젠 무얼 들어야 하나? The Oridinary Boys란 밴드는 Glastonbury 이후 급부상하는 모양인데, 글쎄, 좀 ordinary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똑같이 미소년에는 눈이 끌리지만, 그렇다고 10대 소녀들처럼 눈으로 귀를 가리지는 못하는 처지여서, 요새 영국 팝계를 강타(!)하고 있는 Busted나 McFly 같은 manufactured boy punk/rock band를 보며 확 돌아버리지도 않는다. Bell & Sebastian go pop. Bell & Sebastian의 새 앨범 <Dear Catastrophe Waitress>의 프로듀서는 Trevor Horn. Frankie Goes to Hollywood와 Tatu의 프로듀서라고 한다. 하지만, 왜지? Bell & Sebastian의 <Storytelling>의 OST CD이후로는 그들의 음악이 더 이상 듣질 않는다. KIngs of Convenience. 친절한 친구의 도움으로 <Quiet Is the New Loud>와 익숙해졌고, 새로 나온 <Riot on an Empty Street>를 그들의 웹사이트 www. kings of convenience .com 에서 들었다. 예쁘고, 서정적이고, 세련되고, 거의 흠잡을 데가 없는데, 두 풋풋한 스칸디나비안 총각들 -- Boe와 Oye도 좋은데, 왠지 뭔가가 채워지지 않는다.

    mono


    모처럼 영혼이 들어올려지는 경험(trance?)을 한 건, 지난 주 ICA에서 들은 mono라는 일본 밴드 덕분이다. 사실, 그전에는 듣도보도 못한 밴드라, 웹사이트 www.mono-44.com에서 짧은 샘플들을 들어보곤 갔지만, 짧은 샘플들로는 이들의 음악은 절대 접근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어. meolodic instrumental noise unit... Are you Japanese?라는 예의상의 질문도 생략한 채, Have you seen them before in Japan? Have you heard their music? Are they popular in Japan? 이라는 질문들을 주위 사람들에게 받아야 했던 걸로 봐서, 그 밴드를 이미 알고 온 이들은 적은 것 같았다. 같이 간 친절한 친구와,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소극적이고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뒤쪽 벽 쪽에... 잘 안 보이는 구석에... 웅크리고... 뭐가 뭔지 모르는, 펑크 밴드라 자칭했지만 그래도 용서가 안 되는 support band가 잔뜩 실내기온을 올리고 들어간 후... 이럭저럭 소리를 맞추던 mono 멤버들은 시작한다 만다하는 말도 없이, 그 흔한 인삿말 한마디 없이, 다짜고짜 연주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작고 낮은 소리. 들릴 듯 말 듯하게. 그리고 조금씩, 소리와 박자와 감정을 올려가기 시작하는데, 이런 걸, mesmerising이라고 하겠지, 사람들이 모두 홀린 듯한 표정으로 거의 한 시간이 넘게 고개 한번 돌리지 못하고 집중하게 만들더군. 물론, 중간 인삿말이니, 이런 것도 없고. 모든 곡들이 어떤 건 6-7분, 대개는 10분 정도, 혹은 15분 정도인데, 노랫말도 없고, 들릴듯 말듯한 고요함으로 시작해서, 기타를 휘몰아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소리와 감정까지 끌어올리고서도, 멈추질 않았다. 그 최고점을 2-3분이 넘게 끌고 가서는, 지치고, 그 지친 감정까지 폭발시키며 3-4분을 더 가는. Leader라는 Taka상이 입고 있는 T-Shirts에는 이런 문구가 써 있더군. Nobody's perfect (but me). yes, you're perfect!. 그렇게 사람들의 혼을 한 시간여 동안 쏙 빼놓더니, 그들은, 아무 인삿말도 없이 그렇게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가장 최근 앨범이라는 <Walking Cloud and Deep Red Sky, Flag Fluttered and the Sun Shined>를, 친절한 친구의 돈을 빌려서 샀다. 이것으로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지... 너무 얘기가 길었나? 그럼, 안녕, 지금은.

    25 july 2004
    kitten_cc

    일요일 낮, 공원에 나가보면 온갖 종류의 개들이 주인들과 산책을 나온 걸 볼 수 있다. dog's paradise. 늘씬하고 날렵한 사냥개들부터 주인의 빠른 걸음을 종종거리며 따라가기 바쁜 스코티쉬 테리어까지. 다...
  4. Glastonbury


    Glastonbury를 여전히, 그리고 역시나 가지 못하다. 소들을 다 몰아내고 그 넓은 풀밭에 캠프장, 샤워장, 화장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크고 작은 무대들을 세우고, 3일 간에 걸쳐서 하는 음악축제. Mud, Rain, Wind, Dirty Toilet, Drinking, Love, Sex, Trance, Magic, All Kinds Of Jugglers, Performance, Masquerade, Rumours, Camping, Day & Night, Summer, Youth, Fun, Passion, Some Disorder And Music.


    일년 중 가장 낮이 길었던 날은 아마도 지난 주 수요일, 목요일(23, 24일)이 아니었을까? 해뜨는 시간이 새벽 4시 42분, 해지는 시간이 저녁 9시 23분 정도였던 것 같다. 며칠이 지난 지금 -- 월요일(28일)-- 만 해도, 해뜨는 시간은 4시 45분, 해지는 시간은 9시 21분이다. 하루 24시간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이 17시간. 일년 중 가장 해가 긴 주말-- 6월의 마지막 주말--에 열리는 Glastonbury Music Festival을, 올해도 어김없이 TV로 지켜봤다.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어쩌면 영국에서 맞는 마지막 여름이 될 지도 모를 올해 여름의 시간을 Glastonbury에 가는 것으로 기억하고 싶었던 소박한 꿈이 무너진 후, 마지막 남은 것은 진흙이 묻은 꾀죄죄한 모습으로 두꺼운 옷들을 껴입고 비바람을 맞고 있는 사람들의 궁상스러운 모습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시기와 질투는 힘이 세다.

    Franz Ferdinand


    첫째날인 금요일(25일)은 날씨가 좋았다. 덕분에 올해 Glastonbury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그럴 수밖에 없지!) Franz Ferdinand의 공연은, 여름의 따가운 저녁 햇볕 (저녁 7시 20분 경이라 한다) 아래서 이루어졌다. Franz Ferdinand 공연, 특히, Take Me Out을 부르는 모습은 금, 토, 일, 세 번의 Glosto-Highlight에 매번 나왔고, 매번 보았다!!! 올해 1월 초부터 Take Me Out Single, Franz Ferdinand Album, Matinee Single 등등해서, 정말, Franz Ferdinand가 없었으면 올해 전반부에 무얼 들으면서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자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검푸른 어둠 속에서 첫날 밤을 음악으로 적신 건 Oasis 였다 (적어도 BBC2에서 Live로 보여주며 연출한 바로는 그랬다). 링고 스타의 아들이라나하는 친구가 드럼을 쳤고 (완전히 오아시스의 드러머로 영입된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이번 공연에서 한번 그냥 맞춰보는 것이라고 했으나,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요근래에 낸 앨범이 없어서, 더더욱 Oasis Retrospective처럼 되었던 이번 무대에서, Liam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해 보였다. 아, 그리고 Snow Patrol. Run을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 이 친구가 이렇게 예뻤었나 싶었다. 노란 색 티셔츠를 입고 나온 Snow Patrol의 보컬. (Kings Of Leon, The Rapture도 좋았다고 한다. 짧은 Live File이 BBC 6 Music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다.)

    Paul McCartney


    둘째날인 토요일 (26일)에는, 내 기도가 먹힌 탓인지, 아니면 원래 요맘때 -- 글래스턴베리와 윔블던 테니스 매치--에 매년 때맞춰 비를 내리는 영국 날씨의 엄정한 규칙(?) 탓인지, 비가 내렸다. 글래스턴베리의 전설적인 장관인 진흙밭이 연출되었고, 긴긴 무대를 긴긴 레퍼토리로 이어간 폴 메카트니는 빗속의 청중들을 내내 응원해야 했다. 풀 메카트니는 이제 늙었다. 그렇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여전히 사랑받고 (혹은 미움도), 그의 늙음을 자신 있게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 언제나 마지막 곡은 Hey Jude이지? 지난번 김종서 런던 공연 때도 마지막 곡은 Hey Jude가 아니었나? Glastonbury Live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제대로 샤워도 못하고, 사흘 내내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 BBC Radio DJ들의 후줄그레한 모습을 보는 재미다. John Peel 아저씨는 둘째날 밤만 되어도 벌써, 술에 취한 것 같기도 하고 약에 취한 것 같기도 한 망가진 모습이 되어있고, 떡이 된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계속 모자를 쓰고 있는 Presenter도 있고.

    Scissor Sisters


    셋째날인 일요일은, 비가 소나기 정도로 간간이 내리는 정도였나보다. Live를 다 보진 못하고, 비디오 녹화만 해두었는데, 잠깐 본 바로는, Muse의 무대가 거의 환상적이었다 (앗, 이게 일요일이 맞나?). Elbow는 아주 조심스럽고 좀 부자연스럽게 시작해서 은은하게 경쾌하게 풀어나가는 것 같았다 (이것도 일요일인지 자신이 없다 ^^). James Brown 아저씨는 여전했고, Black Eyed Peas는 얄미울 정도로 매력적이고 세련되게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었다. Scissor Sisters도 괜찮던 걸. (Full Coverage가 못 돼서 유감.)

    Snow Patrol


    작년의 Glastonbury에서 기억나는 것은 Radiohead, Coldplay, Bell & Sebastian. 작년의 Glastonbury를 TV Live와 Highlight로 볼/들을 때, 내년에는 꼭 저기에 있겠다고 결심했었다. 올해는 그런 결심도 할 수가 없다. 내년의 Glastonbury 때 --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주말에, 나는 내가 어디에 있을 지 알지 못한다. 아직 런던에 있을 수도 있고, 서울에 돌아가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그때도 이 Live를 어딘가에서 보거나 듣고 있지 않을까? 오오, 이제는 내가 거기에 없더라도 비를 내리거나 하지는 않겠다. (1999년에, 20세기의 마지막 글래스턴베리 무대를 장식했던 Skunk Anancy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8 june 2004
    kitten_cc

    Oasis

    Glastonbury Glastonbury를 여전히, 그리고 역시나 가지 못하다. 소들을 다 몰아내고 그 넓은 풀밭에 캠프장, 샤워장, 화장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크고 작은 무대들을 세우고, 3일 간에 걸쳐서 하는 음악...
    ☆☆☆☆☆ | G, Glastonbury, London Is Quiet, 인디
  5. 김종서 in London


    김종서...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지난 주 토요일(22/05/04) 그는 런던 아스토리아에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사람이 런던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얘기를 옮겨 듣고도, 별로 동하는 기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슬며시 아스토리아로 미끄러져 들어와 <사랑과 평화> 아저씨들의 경쾌한 연주에 몸을 풀면서, 김종서의 출연을 가슴을 설레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이 설레임은 기대라기 보다는 두려움. 미션에 실패할 것을 예감하는 두려움. 가방 속에 들어있는 흑백 사진 2001년 김종서의 <Odyssey> CD에 싸인을 받아야 하는 의무. 그러나 이걸 꼭 받아야 하나하는 회의감. 싸인을 받으러 달려들 만큼 이 사람에 대해 열정적이 될 수 없을 거라는 거의 본능적인 확신감.

    그에 관한 기억 -- <겨울비>, <대답 없는 너> 이후에, 그리고 <플라스틱 신드롬>에 대한 어럼풋한 기억들은 19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낡은 것들뿐이었다. 나는 2000년이 넘어서의 시간들 속에서 그에 관한 기억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게 그의 탓만은 아니겠지, 1990년대 말 이후의 한국의 mainstream pop music scene은 나에게는 누락된 정보 섹터니까). 과연 그는 그 시간에 무엇을 했을까 의아해 하는 나에게, 후배가 던져놓고 간 그의 <Odyssey> 앨범. 꼭 싸인을 받아내야 한다는 말은 안 했지만, 서울에 가는 자신 대신 공연을 꼭 가야한다는 강요어린 요청 속에 배어있는 그녀의 기대감. 공연을 보러가는 오후까지도 나는 이 CD를 듣고 있었다. 세련되고 잘 만들어졌는데, 다르려고 하는데 여전히 그의 예전 것들과 똑같은 것 같고-- 그의 익숙한 개성들은 너무 잘 간파되고,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은 여전히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계속 반복해서 들으니, 이 익숙한 느낌들이 싫지만은 않았다. 예전 --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음악들의 편린들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를 보러, 그의 음악을 들으러 가봐야하겠다고 원하기 시작한 것은, 머릿 속을 맴돌기 시작한 몇 가지 의문들, 그리고 아주 아주 먼 기억의 저편에서 끌어내진 그의 목소리에 대한 첫번째 기억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웹서치.


    87년이었을까? 김종서의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처음 들었던 것은? 그때 느꼈던 strange 한 느낌과 전율감. 라디오 DJ는 그의 목소리를 'yellow voice'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그때 그는 <시나위>와 함께 있었다(아! <시나위>). 한국 웹서치에서 김종서의 음악에 대해 조금이라도 심각하게 다룬 아티클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음악 경력과 앨범들에 대한 연보정도를 간신히 찾았다. 대개의 웹사이트들은 정말 알고 싶지 않은 것들 -- 그의 키, 몸무게, 생년월일, 기혼 여부, 딸 이름, 학벌... -- 만은 빼놓지 않고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키와 몸무게와 생년월일은 알고 싶지 않다. 그가 어떤 음악을 했는지 알려줄 수는 없는지... 그래도 <시나위>에 대해서는 조금은 더 자세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김종서는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팝스타라는 식으로 다루어지는 것일까? 그건 그가 <시나위> 이후에 해온 음악 때문인가? 혹은, 그가 그런 식으로 살아남아 온 것인가?

    김종서에 대한 대중적인 기억이란 무엇일까? <시나위>에 있었던 락커(?), 그의 곱고 탐스러운 머릿결. 착한 태도. 뛰어난 가창력과 개성 있고 폭발적인 보컬. 대략 5-10미터 정도 거리에서 본 바로는, 그는 여전히 너무도 핸섬하고 고왔다. 그가 <겨울비>와 <대답 없는 너>를 <사랑과 평화> 아저씨들의 연주 속에서 부를 때는, 나 역시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따라 부르고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그만큼 익숙했고, 친숙했다. 그의 노래들은... 락의 거칠고 위협스럽다고 여겨지는 강렬함을 곱게 탈색해서, 락이 한번도 주류일 수 없었던 한국의 pop music scene 속으로 들어올(갈) 수 있었던 것, 그런 것일까?

    연주는 훌륭했다. 공연도 훌륭했다. 그는 혼신을 다하지 않고도 그의 노래로 사람들을 흡입할 만한 공연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뮤지션이 아닐까하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짧았다. (하긴, 이건 공짜 공연이니, 일종의 교포 위문 공연이라는 느낌을 갖을 만도 했다.) 주최측은 10여 곡을 했다고 하고, 별로 집중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꼬드겨서 함께 간 후배와 수다를 떨면서도 흥분해 있었던 나는 7곡이라고 생각했다. 맨 마지막에 english-speaking audience들을 위한 특별 배려로 불려진 <Hey, Jude>를 포함해서. (이 공연이 너무 짧았다는 것은 나만의 아쉬움이 아니었던 듯하다. 아는 후배들에게 문전까지만 끌려간, 아스토리아 건너편 tower point building 뒷편에서 성업하고 있는 한국 노래방들은 모두 만원이었다. 김종서에 의해서 끌어올려진 음악적인 열정들을 모두 거기서 소진하고 있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인터뷰라도 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했다. 검은 양복 차림의 런던 발행 한국 신문 기자 아저씨들 틈에서 <다음 앨범을 준비한다는데, 이번에는 정말 당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겁니까?>,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의 음악들 중에서 그것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입니까?> 라고 차분히 다져묻고 싶은 욕망들이 생겼으니까. 아는 관계자분들에게가서 사정도 해보고 (인터뷰는 <사랑과 평화>아저씨들이 공연을 할 때 이미 지나갔다고 한다...), 아스토리아 직원들한테 staff room에 들어갈 수 없는가하고 물어도 보았다. 할 만큼은 한 셈이라고 변명할 수는 있게. 하지만, 절실하지는 않게. 들고 갔던 <Odyssey> 앨범은 지금 내 방 한 구석에 숨어서 주인이 런던에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김종서의 싸인이 없는 채로. 글쎄, 나는 아직도 그에게 싸인을 받는 것이 그렇게 절실한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런던에서 샀다는 puma training jumper를 입고 공연을 했다. is puma on the vogue in korea? you know, puma is just a huge cat!)

    kitten_cc
    31/05/04

    김종서 in London 김종서...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지난 주 토요일(22/05/04) 그는 런던 아스토리아에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사람이 런던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얘기를 옮겨 듣고도, 별로 동하는 기분...
    ☆☆☆☆☆ | London Is Quiet, , 김종서, 인디

  6. 불평을 하는 것은 쉽다고들 한다. 하지만, 불평을 하는 것이, 불평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때가 있다. 요새는, 영화비평을 하는 것은 -- 다르게 말해서, 남이 고생,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영화를 씹는 것은 -- 쉬운 일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때로, 씹지 않는 것은, 아무 나쁜 말도 늘어놓지 않는 것은 얼마나 쉬운 선택일 수 있는 지.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좋은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넘어가주면 그만이다.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라는 영화가 두 주째 영국의 박스 오피스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한국에서도 12월초에 개봉한 이 영화에 대해서, 한국 영화잡지들을 보니 -- 그래봐야, 씨네21과 필름 2.0 --, 씨네 21은 다소 뜨뜨미지근한 반응이지만, 충실하게 보도해주는 식이고, 필름 2.0은 굉장히 호의적이다. 씨네21의 뜨뜨미지근한 반응에 조금 열기를 보태기 위해서인지, 지난 주인가에는 듀나의 리차드 커티스 (이 영화의 감독) 이해동조론이 씨네21에 나타났었다. 대충 거칠게 요약하면, 듀나의 관점은, 리차드 커티스는 TV코미디 작가로서 로완 앳킨슨을 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한, <블랙에더>, <미스터 빈> 등, 극도로 지적이고, 사회 풍자적인 TV물의 작가로서, 이후,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 힐> 등의 훌륭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각본을 쓰는 시나리오 작가로 변모했고, 그리고 <러브 액츄얼리>에서 다소 과도하게 로맨틱의 익스트림으로 가기는 했으나, 여전히 훌륭한 작가이고, 그의 본령(?)인 사회풍자적인 영역으로 되돌아오면, 다시 멋진 작품들을 내놓을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인물. 이라는 것이다.

    리차드 커티스


    뭐, 듀나의 관점을 걸고 넘어갈 생각은 없다. 또, 이 영화에 대해 한국에서 좋은 영화평이 나오든, 나쁜 평이 나오든, 혹은,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도 하고 싶지 않다. 더더군다나, 이 영화를 영화적으로 분석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그저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분석해보고 싶다. 어떻게 다른 관점과 맥락에서 내가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던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첫째로, 리차드 커티스라는 마이다스의 손, 뛰어난 로맨틱 코미디 극작가에 관한 것. 자전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배경과 인물들은 리차드 커티스의 개인적, 사회적인 백그라운드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그것이 그에게 익숙하고, 친숙한, 그가 알고 있는 영국이라는 사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캠브리지, 옥스포드 브랜드의 학벌과 네트워크, 미들 클래스, dominantly white, 지역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Middle-England의 공간적 상징화다(<빌리 엘리엇트> 같은 영화가 Nothern England의 전형적인 표상이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지적으로 뛰어나고, 정치, 사회적으로 예리하게 풍자적인 자질과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별로 상충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극단적인 정치적 풍자와 조롱은 영국의 지적인 상위계급들의 특허품이기도 하다 -- 어느 정도의 보편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둘째로, 리차드 커티스의 영화들에 나타나는 런던은, 한 영국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영국 관광청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싶은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굳이, 이 영화들이 미국이라는 세계적으로 거대한 영화 마켓을 노리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만은 보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의미에서, 이건 리차드 커티스 자신이 알고 있고, 생각하는, 영국이라는 사회의 리얼리티이기도 할 것 같다. 듀나의 지적처럼, <네번의...>와 <노팅힐>에는, 말 못하는 캐릭터 (deaf)와 휴 그랜트의 플랫 메이트 같은 사회적으로 주변적인 캐릭터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러브 액츄얼리>에는 영광스럽게도, 그리고 드디어, 단 한 명의 블랙 캐릭터가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한 영국 평론가의 조롱 섞인 유머를 빌리면, 그의 영화에서, 이 두가지 주변성이 같이 나타나는 일은 없다. 가령, 흑인이면서 말 못하는 사람은 실제로도 얼마나 희귀한가(!).

    리차드 커티스의 <노팅 힐>에는 빨강, 노랑, 녹색이 들어간 니트 모자(what do you call this?)를 쓴, 자메이칸 블랙의 캐릭터는 없다. 하지만, 잠깐. 나는 여전히 리차드 커티스가 노팅 힐이란 지역의 이미지를 왜곡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포르토벨로 마켓이 거의 끝나는 곳에 있는 Tesco(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 영국의 거데 수퍼마켓 체인 중 하나)에 일요일 오후, 장을 보러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값싼 식료품들로 냉장고를 채우려고, 일요일의 노곤한 오후에 밀려든, 가난한 사람들 틈에 서 있을 필요가 없었을 때문이었을 것이고, colored face인 사람들한테는 물건을 팔고 싶지 않아 하는, 포르토벨로 마켓의 한 백인 아줌마의 harrassment를 당해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팅 힐 퍼레이드? 왜, 여름도 다 저물어가는 8월 말에 -- 런던에서 그 때면 벌써 흐리고 추워지곤 한다 -- 스트리트 퍼레이드를 하는가? 이 잘 살고 평화로운 노팅 힐 지역 언저리에, 자메이칸 블랙들이 살기 시작한 저 30년 전에 있었던 street riot과 인종간의 갈등을 풀기 위해 그 행사가 시작된 것이라면?


    셋째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도, 만약 <러브 액츄얼리>가 히드로 공항에서 서로 만나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며, f**king ridiculous한 나레이션으로 영화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만약, 단지 첫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한 조그만 백인 꼬마가 공항 경비를 뚫고 공항으로 몰래 잠입하는 신 따위를 포함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 영화를 그렇게 싫어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첫 장면, 나레이션은, 내 기억이 맞다면, 대충 이런 이야기를 실어 나른다: <공항에 한번 가보라.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행복한 모습이다.... 9/11 사태 때 그 빌딩에 있던 사람들이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나눈 전화 통화에서, 증오를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왜 리차드 커티스 주위에는 이런 싱겁고 말도 안 되는 나레이션을 뺄 것을 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가?(이건 내 질문이 아니라, 다시 어느 영국 평론가의 질문을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리차드 커티스 자신은 공항에 가 보았는가? (이것은 내 질문이다) 그는, 이민국 앞에, 장시간의 비행에 지친 초췌한 모습으로, 긴장되고 초조하게, 긴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을까? 혹은, 불법 입국 시도자로 분류되서, 얼굴을 파묻고 절망한 모습으로 호송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사람들을 정말 보지 못했을까? 미국이나 유럽 공동체에 속한 나라 사람이 아니면, 잠정적인 범죄자처럼 다루면서, 조금 마음이 여린 사람이면 그 자리에 서서 울게까지 만드는 이민국 관리들의 harrass를 흘깃이라도 보지 못했다는 것일까? 9/11 사태의 희생자들이나 가족들은 모두 사랑으로 그 상처를 껴안았는데,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의 suicide bombers들은 왜 자신들의 상처를 증오로 되갚느냐고 묻고 싶은 걸까?, mr. curtis? 조지 부시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사랑과 용서의 표현이었던가?


    다시 공항. 영국 정부는 새로운 이민법 법률을 만들어서, 최대한, 정치적인 이유로 영국으로 피난해 오는 사람들을 받지 않고 있다. 이 새로운 법률은, 영국에 들어온 지 24시간 안에 법적인 피난 절차에 지원하지 않을 경우 아예 신청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이런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은, 혹은 어떻게든 지원했으나, 자격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지, you must know well, mr. curtis. 이런 사람들에게는 정부차원에서, 숙소나 기본적인 식사도 제공되지 않는다.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자신들이 죽을 뻔했거나, 자신의 가족들이 죽임을 당한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이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선택이다. 당신이, 영어도 한 마디 못하고, 영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한 사람도 없고, 돈도 한 푼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homeless--길에서 잠을 자며 돈을 구걸할 수 밖에는?) 영국 정부는 이 법률을 시행한 이후, 법적으로 피난자 자격을 받은 사람의 숫자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자신들의 최대 업적으로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격을 거부당한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서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또 다시 공항. 만약, 공항 경비를 뚫고 자신의 첫사랑을 전하러 간 무모하고도 용감한 이가, 이 귀여운 백인 꼬마가 아니라, 나였다면 어땠을까? 미국과 영국에 새로 도입된 terrorist 법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이 법에 따르면, 당신이 단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terrorist일 법한 수상한(!) 모습을 보인다면, 영장이고 뭐고, 바로 그 자리에서 체포될 수 있다. 나 같은 유색 인종이 첫사랑을 전한다는, 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삼엄한 공항 경비를 뚫고 공항에 잠입했다가는, 나는 지금, 이 글을 어딘가의 깜깜한 감옥 속에서 쓰고 있을 것이다. i'll rather let down my first love. wouldn't you?


    리차드 커티스와 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perhaps, 한번 정도는, 똑같은 히드로 공항 카펫 위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나는 이렇게 다른 reality 속에서 살고, 다른 것을 느낀다. 그가 사람들의 사랑 --아니, 사랑만을-- 보고 느낄 때, 나는 거기에서 공포와 절망을 보았던 것 같다. 리차드 커티스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명언이 있다. <왜 영국 상류 계급 위주의 영화만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상류 계급 사람들도 사람이다>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다른 한 문장이 덧붙여져야 했던 것 아닐까? <상류 계급 사람들도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무척이나 특혜 받은 사람들이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에마 톰슨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봉사활동으로 소말리아 같은 못사는 나라들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내가 느낀 것은, 이 사람들은 우리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엄마와 아이들, 가족간의 사랑은 그들에게 훨씬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 Yes, Emma. That's very very important thing for them because it's the only thing they have there. 나는 그 사람들이 사랑 말고도 다른 것들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먹을 것, 입을 것, 깨끗한 물, 교육, 신발...


    with alll the best regards,

    14 dec 2003
    kitten_cc

    불평을 하는 것은 쉽다고들 한다. 하지만, 불평을 하는 것이, 불평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때가 있다. 요새는, 영화비평을 하는 것은 -- 다르게 말해서, 남이 고생,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영화를 씹...
  7. Rough Trade


    EMI 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Time Warners 가 Edgar Bronfman이라는 미국 사업가가 이끄는 일종의 컨소시엄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EMI와 Warners가 합쳐질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동안, 또 다른 거대 음반 업체인 Sony와 BMG는 일종의 조인트 사업계획을 앞질러 발표하면서 달라질 시장의 형세에 선두를 점하기 위한 공세에 나섰다. 여기까지가 지난 주에 있었던 거대 음반 회사들의 전투(?) 상황이다. As you may know well, 세계 CD시장은 2001년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어서,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나빠질 전망이다. 가장 큰 요인을 두 가지만 꼽는다면, web 상에서의 download와 streaming, 그리고 CD 불법 복제를 꼽을 수 있다. 2005년 정도면, 거대 음반 회사들이 이 두 가지 상황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조치 -- 불법 복제 CD 유통의 엄격한 통제와 download, streaming의 사업화와 유료화 -- 를 통해 어느 정도 이 난관을 해결해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CD 중심의 음반 시장 구조가 대폭 바뀔 것이라는 예측도 오가고 있다.

    이 거대 음반 회사들의 영국 음반 시장 점유율은 약 75% 정도이고, 나머지 25% 정도가 인디 레이블의 몫이다. 이 같은 시장의 변화에 대해, 영국의 인디 레이블 회사들은 차라리 낙관적인 편이다. 한 웹사이트에서 했던 인디 레이블들과의 인터뷰를 보면, web을 베이스로 하는 음반 시장이 인디 레이블들에게 유리하면 유리했지 나쁠 것이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다. 그들은 대개 이미 web을 베이스로 사업을 해왔고, 자기 취향의 음악을 찾는 이들에게 정확히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강점으로 꼽는다. 그리고 단순히 음반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인디 밴드들을 위한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회사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The Strokes


    아무리 시장 규모가 크다고 해도, 영국 음반 시장 역시 이 거대 음반 회사들과 hmv, virgin 같은 메가 retailer들이 차지하는 몫은 무시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볼수록 신기하고, 한편으론 멋진 것은, 인디 레이블들과 소규모의 retailer들, 그리고 크고 작은 secondhand shops들이 영국 음악계에서 해온 역할들과,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이다. 예를 들어, The Strokes. 그들이 돌아왔다. 두번째 앨범 Room on Fire와 함께. (사실, 이 앨범이 나온 것은 10월 말이지만, 그때는 시간이 없어 한 회 원고를 건너뛰면서 꼭 쓰고 싶었던 이 문장을 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니, 이 문장은 한 달 뒤에야 상당히 어색한 톤으로 여기에 도착한 셈이다.) 물론 그들은 American lads 다.

    그렇지만, 그들을 sign up한 레이블은, 전설의 Rough Trade다. 다시 한번만 지난 번에 썼던, <24 hour party people> 얘기로 돌아가도 될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씁쓸하고 맹랑하면서도, 시원한 데가 있다. Hacienda가 문을 닫는 마지막 밤을 지내고, Tony Wilson을 비롯 Factory Label의 멤버들이 옥상에서 맨체스터의 스산한 새벽을 맞는다. f**king nice gea! r(아마도 canabis(대마초)일 듯한)를 한 모금 피우고 나서, 우리의 주인공 Tony Wilson은 자기 자신을 꼭 닮은 God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다. 거룩하신 신의 말씀 중 한 마디는, 'The Smiths를 sign up하지 않은 것은 너의 치명적인 실수였느니라...' 그렇다면, 바로 그 The Smiths를 sign up한 레이블은 누구였겠는가? Rough Trade다.

    'The Smiths를 sign up하지 않은 것은 너의 치명적인 실수였느니라...'


    모든 것은, this guy, Geoff Travis가 1976년 Rough Trade라는 레코드 가게를 Notting Hill 에 열면서 시작된다 (그렇다. Notting Hill은 휴 그랜트가 하는 썰렁한 여행책 전문 서점과, 다리 긴 미국 여배우와의 로맨스가 싹트는 그런 곳만이 아니다. 그 영화는 Notting Hill이 갖고 있는 다른 문화적 뿌리들을 모두 거세하고 거기다 설탕을 담뿍 뿌린 사기성 짙은 영화다!) 시기상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리고 Factory Label의 Tony Wilson이 Sex Pistols의 공연을 보고 영감을 얻었듯이, Rough Trade 역시 Punk의 영감 그리고 당시 영국을 휩쓸었던 reggae 의 영향 속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레이블의 황금기는, 자칭, 타칭, Post-Punk period다. 그러나, 뭐 그렇다고 해서, 이 레이블에서 나온 앨범들이나, 같이 일한 밴드들이 모두 Punk계열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The Smiths나 The Strokes를 보라.

    문제는 그 정신이다. 1996년의 한 인터뷰에서, Geoff는 말하길, 'Punk는 당시 음악씬에 있던 모두에게 모든 것을 자기들 힘으로 해보라는 강력한 동기를 주었다. 그런 것이 없었으면, 아마도 우리는 아예 시작조차 안 했을 지도 모른다.' 이것은 Julien Temple의 섹스 피스톨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The Filth and The Fury (2000)>에서의 그의 나레이션에도 반영된다. 'punk이전과 punk이후의 영국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라. punk 이전에, 우리는 twenty something 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고, 자기 자신의 관점을 갖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이 허용되지도 않았고.' 이런 성찰은, Punk가 style이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이기도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짐작케 한다 (곁들여, 한국의 punk들에게도 축복을...).


    그러나, Rough Trade 역시, 탄탄한 성공의 대로(?)만을 달린 것은 아니다 (과연 자신의 인생에서 탄탄한 성공의 대로만을 달린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인디 레이블이 그러했던 것은? 우리는 언제나 실패하고 아슬아슬하게 산다.). 1980년대 중반 The Smiths가 인디밴드들 중에서 가장 메인스트림에서 성공한 밴드가 되면서, 미국, 독일에까지 지사를 세울만큼 잘 나갔던 Rough Trade는, 지나친 미국 시장 확장 탓인지 자금난을 겪으면서, 1990년 두 지사가 문을 닫았을 뿐 아니라, 영국의 본사도 One Little Indian이라는 레이블에게 넘어가게 된다. One Little Indian과 함께 일하던 Geoff Travis는, 이후 그곳을 떠나 Trade 2라는 새로운 레이블을 시작했다가, 1999년 경, 다시 Rough Trade 레이블을 되찾는다.


    현재 Rough Trade는 런던의 Notting Hill과 Covent Garden 두 군데 샵을 운영하고 있고, 레코드 사무실은 노팅 힐, 포르토벨로 마켓이 끝나는 곳 쯤에 있다. 아쉬운 것은, 지난 여름, 매주 툐요일마다 프로토벨로 마켓에 갔으면서도, 그것도 언제나, 관광객들의 친절한 동행을 물리치고, My Beautiful Laundrette이라는 핑크색의 세탁소를 지나 바로 Rough Trade 샵으로 가는 길을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진 한 장 찍어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침 그 가게의 정면 모습이 Rough Trade compilation 앨범의 표지 이미지로 쓰였으니, 참고하시길.)

    그 가게의 분위기? 흠, 포로토벨로 마켓에서 파는 싸고 싱싱한 과일들에 더 마음이 팔려서, 무거운 과일 장 바구니를 들고, 그 좁아보이는 가게로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저 그 앞을 지날 때면, 항상 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상당히 유쾌한 모드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오십대의 쿨한 아저씨와 이십대의 펑크 청년을 잠깐 서서 지켜보았을 뿐이다. 여름이 다 지나서 알게 된 사실은, Rough Trade가 매주 토요일 오후 Notting Hill Arts Club에서 공짜 공연(일종의 쇼케이스)인 RoTa? 遮?행사를 연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을에는 새학기가 시작되고, 가을 학기, 봄학기에는 매주 토요일, 나는 일하러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기 이렇게 내년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정보는 아래의 웹사이트에 있으니, 런던에 놀러(?) 오시는 분들 중에 영국 박물관의 미이라 전시보다는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은 분들은 한번 들러보시길...).

    Before and After Science


    그런데, hmv나 virgin같은 메가 샵들이 마치 슈퍼마켓처럼, 차트에 오른 앨범들만 대량으로 갖다 놓고 판다든지, 스탠다드한 리스트에 드는 CD 들만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look, 별로 큰 돈이 없는 (나 같은) 소비자에게는 슈퍼마켓에서 내놓는 할인 폭이 큰 새 물건들이 큰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문제가 있다면 너무 심하게, 맑은 정신을 현혹시킨다는 것. 한 10분만 있어도, 아니, 이렇게 쌀 수가를 연발하게 되고, 조금만 경계를 늦추면, 꼭 사지 않아도 될 CD들을 손에 가득 안고 계산대로 돌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다. 이런 게 대량 유통의 잇점이면서 이득이라면 이득이겠지만(어제는 hmv에서 Brian Eno의 1977년 앨범 [Before and After Science]를 8.99 파운드에 살 수 있었다, long live, hmv!).


    Notting Hill이나 Soho 근처에는 크고 작은 세컨드핸드 레코드 샵들, 아니 그냥 레코드 소매점들이 꽤 된다. 이런 레코드 가게들에는 없는 게 없다라는 표현보다는, 너무나 잘 모르겠는 것들이 많다. 어쩌면 더 구하기 힘든 물건들일 것이고, 궁금하고, 신선하다. 쭉쭉 넘겨가며 무언가 골라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고 좋은 것은... 그런 곳에서는 항상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happening)는 느낌이다. 크고 작은 공연들 광고부터(사실은 대개 작은 공연들이며 파티들), 세션맨, 보컬을 구하는 광고, 새로 생기는 label launching 이벤트들이며... 이런 샵들의 분위기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라는 기이한 제목으로 (나는 아직도 이 한국 제목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release된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영국 소설가인 닉 혼비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그 무대를 시카고로 옮겼지만, 영화의 주무대인 세컨드핸드 레코드 샵은, 그 소설의 실제 모델이라는 노팅 힐의 세컨드핸드 샵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는 평이다.

    오늘은 전에 joy division과 happy mondays CD를 샀던, 학교 앞 세컨드핸드 샵, 그 이름하여 Morph Music에 점심 시간 때쯤 들렀다. 그 샵은 지하에 있고, 그 샵의 위층에 있는 (한국 기준으로) 좁아터진 카페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 작은 공연을 하고 있었다. 흡사, 한국 밴드 plastic people을 연상시키는 음악. 포크 기타. 갸날프고 고운 여자 보컬 (그런데, 밴드이름은 musashi란다. 한자이름도 써놓았는데, 내 부족한 한자 실력을 동원해보면, 이건 무과시험이라는 뜻이다!). Morph Music이 그 카페와 공동으로 여는 Xmas Extravaganza 파티의 조악한 플라이어도 한 장 주어왔다. See, things are happening here! and i just love it.


    * 다음은 Geoff Travis의 인터뷰 중에서 뽑은 주옥같은 명언들이다. Geoff Travis처럼, 한국의 레코드 레이블의 누군가도 미래의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들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그런 날이 온다면 말이지.

    There has to be a balance- people have to make a living. That's very important. I think that you can have your cake and eat it in the sense that you can do what you want to do without compromising.

    The main thing is to really educate yourself in music. Keep in touch and keep an open mind. Also, have a sound business sense. The world at large will prove you right or wrong. You can say "this is a greatest thing I've ever heard." But if no one buys it, there's something wrong with your judgment. There's so many records and there's only so much time. The other thing to realize is that the musicians are really important people. Your job is there because of what they're doing. It's not too often that companies understand that.

    We were really challenging the industry and we made it work.


    30 nov 2003
    kitten_cc
    with all the best wishes,


    * Rough Trade 발매 뮤지션
    The Smiths
    Cabaret Voltaire
    Virgin Prunes
    Miracle Legion
    A.R. Kane
    British Sea Power
    2 Nice Girls
    Souled American
    Scrawl
    Pere Ubu
    Galaxie 500
    Lucinda Williams
    The Fall
    Pixies
    Fairport Convention
    James Blood Ulmer
    Gregory Isaacs
    Wire
    Beat Happening
    Dolores Keane
    Violent Femmes
    Linton Kwesi Johnson


    * uk indie labels website :
    www.ninjatune.net
    www.warprecords.com
    www.twistednerve.co.uk
    www.moshimoshimusic.com
    www.wallofsound.net

    Rough Trade EMI 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Time Warners 가 Edgar Bronfman이라는 미국 사업가가 이끄는 일종의 컨소시엄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EMI와 Warners가 합쳐질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동안,...
  8. what is music 2 u ? (3)

    - kitten_cc | 2003/11/12 18:00

    what is music 2 u ? (3)

    - kitten_cc | 2003/11/12 18:00

    24 hour party people


    지난 번 글을 올린 지 한달이 지났다. 편집자는 1-2주에 한번씩 업데이트된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나는 어차피 2주에 한번씩 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한 회를 거른 셈이라고만 생각하고 싶다... 한 달이면 굉장히 긴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꿔 놀 만한 사건이 한 두 가지는 일어나고도 남을 만큼. what about you ? 몇 가지는 서로 catch up해야할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먼저, 지난번에 얘기했던 Alex에 관해서 몇 가지 새로운 소식을 전해야겠다. 첫 번째는 나의 실수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성(last name)은 Parker가 아니라 Parks다. 또, 그녀는 레즈비언이라는 것. 이건 그녀가 그 Fame Academy TV program에 출연하면서부터 알려온 사실인데, 그런 가쉽 기사 따위에 눈길을 주지 않는 나만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등잔 밑에 앉아 있었나보다.) 그리고 그녀의 싱글 Maybe That's What It Takes가 곧 발매된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들었는데, 좀 많이 다듬어진 듯한 느낌이어서 실망스럽지만, 그녀의 노래가 갖는 힘의 70% 정도는 그대로 남아있다. 모르고 들어도, 아, 이건 알렉스 같은 걸, 하고 알 수 있다.

    Joy Divison


    지난 한 달 간, 내 인생의 거죽, 표면은 조금도 변할 일이 없었다. 결국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은 셈이지만, 마음을 뒤흔든 몇 가지 새로운 만남이 있었다. 운이 좋아서(???) 휴 그란트 같은 배우와, 같은 인터뷰 테이블에, 한 10여분 앉아있기도 했지만, 새벽부터 불려나가는 통에 차라리 잠을 더 잘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만 내내 하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사건은, 믿거나 말거나, 마이클 윈터보텀의 <24 Hour Party People> DVD를 빌린 것이다.

    2002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와는 언제나 인연이 닿지 않았었다. 이 영화는, -- 이 영화에 관해 모르거나, 안 본 분들을 위해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맨체스터 음악 씬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Tony Wilson. 그는 맨체스터의 Granada TV의 프리젠터면서, Factory Club, Hacienda 등의 클럽과 Factory 레코드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Joy Divison, New Order, Happy Mondays... 등의 밴드들을 키워(?)왔다. 그 외에도 중요한 밴드들이 많지만, 이 세 가지 밴드의 이름만 든 것은, 이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밴드들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주인공 Tony Wilson은 꽤 잘 알려진 코미디언 Steve Coogan이 연기했다. 그러니까... Steve Coogan을 아는 사람들로서는, 혹 모르더라도, 이 코미디언이 진지하고 멋있는 대사를 읊을 때도, 그리고 정말 웃기는 대사를 할 때도, 모두 무언가 진실과 거짓말, 진지함과 농담 사이에서 듣게 되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건 바로 이 영화의 전체적인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조금은 농담이고 조금은 진실이다. 웃기고 황당한데, 진실도 옆에 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친절을 넘어, 장황하게 영화 얘기를 한 것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슬픔 때문이다. 이안... Ian Curtis. 이 영화는 그 상당부분을 Joy Division의 Ian Curtis에게 바친다.

    Ian Curtis


    Joy Division의 음악과 공연. Ian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그 강렬함과 그 절박함이란. 그리고 그의 때이른 죽음. 이안은 스물 네 살의 생일을 두 달 남겨놓고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시행했다. 영화 안에서 이안은 데이빗 보위의 위선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스물 다섯 살까지만 살겠다고 하더니, 지금 스물 아홉 살(!)인데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그러나 이 영화는 원래 진실과 거짓을 섞어놓고, 또 그것을 내놓고 그렇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니, 그 진위를 가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데이빗 보위는 스물 아홉 살이 아닌, 거의 오십 대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거의 모델급의 젊은 와이프와 잘 살고 있고, 얼마 전에는 <Reality>라는 새 앨범도 내고, TV에 나와서는 그 크고 가는, 마른 체격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엉거주춤한 춤(?)을 보여주기도 했다. 역시 살아남는 것이 더 큰 미덕일까?


    그 DVD를 한 세, 네 번 보고 난 주말에는 학교 근처에 새로 문을 연 secondhand record shop에 갔었다. 어떤 것들을 갖고 있나 궁금해서였는데, 괜찮았다. 괜찮은 것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Joy Division compilations CD를 발견했다. 두 가지 다른 버젼이 있었는데, 하나는 Factory Label이 Warner Bros와 함께 미국에서 1988년에 낸 <1977-1980 Substance>. 다른 하나는 London Record Label에서 1995년에 낸 <Permanent>(영화에도 나오는 이야기인데, Factory Label은 재정적인 문제로 한동안 London Record Label에 인수된다). 어떤 걸 골랐을까? 더 곡 수도 많아 보이고 최근 것이라 때깔도 좋아 보이는 <Permanent>를 살 수는, 없었다. 왜냐면, 첫째, Factory Label에서 내고, Martin Hannett가 프로듀스했다고 써 있는 것을 사야만 했다 (왜 그걸 사야만 했는지 영화를 본 분들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둘째는, Permanent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Permanent... 무언가 영구적으로 남는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끝났다는, 살아있거나, 변화하거나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나는 Joy Divison의 결정판(!) 따위는 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3.99 파운드(한국돈 약 8000원)에 싸게 팔아치우는 CD들을 모아놓은 박스에서 건져낸 것은, 하하, Happy Mondays의 <yes, please>다. 두 씨디를 계산대에 건네자, 손님들과 친분관계를 맺는 게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인 이 업계의 속성상, 주인 아저씨가 Manchester Sound를 좋아하면, 이걸 한번 들어보라고 권한다. Inspiral Carpets. 어떤 류에요? 맨체스터 밴드인데, Joy Divisioin 같은 darker 사운드가 아니라 Happy Mondays처럼 light하단다... (인터넷에서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거기서 한번 들어보시라.)

    그렇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그 darker 사운드다. <Atmosphere>, <Transmission>, <Digital>, <Love Will Tear Us Apart>, <Dead Souls>, <From Saftey to Where>... 한 일주일 정도는 이 음악들밖에 다른 것은 들을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늦게 만나게 된 것일까? 이 앨범이 나온 1988년에, 아니, 1989년이나 1990년에 (내가 한창 어리고 젊었을 적에, 그러면서도 사는 것 같지 않게 살고 있을 적에) 왜 나는 이 음악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일까? 만약 내가 그때 이 음악들을 만났으면, i'm sure, 내 인생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아니, 나는 분명히 내 인생을 다르게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더 나쁜 것이었을 지, 좋은 것이었을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 이건 마치 사랑에 빠진 것과 같다 (이 글을 쓰면서야 나는 이걸 깨달았다). 상대는 이미 죽은 이안과 사라진 밴드와 그들의 음악이다 (물론, 이안이 죽은 후 남은 멤버들로 만들어진 New Order가 있지만). 그러니까, 그 한 달을 헛 산 것만은 아니다. <24 Hour Party People> 영화의 초반부. Tony Willson이 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된 만남은-- 그 계기는, Sex Pistols가 1976년 Manchester의 Lesser Free Trade Hall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면서다. 영화에 따르면, (그리고 맞게 기억하고 있다면) 그 날 저녁 거기에는 오직 42명만이 모였다. 그러나, Tony Willson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길, 예수의 마지막 만찬에 있었던 사람은 열 두 명, 케사르의 암살에 참여한 사람은 겨우 다섯 명이었다는 걸 강조한다. 그리고 그 42명에는 Tony 자신, 그의 와이프, Joy Divison의 앨범을 프로듀스했던 마틴 하넷이 있었다. 그리고, 그저 평범한 우편 배달부도 한 명 있었다. 그 다음 날로 우편 배달부 제복을 펑크 스타일로 개조한.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한명의 우편 배달부라고, 내 자신을 생각한다. 그 다음 날도 우편 배달 색을 매고 아침 일찍 나가겠지만, 그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져있지 않을까?

    정말 사랑에 빠져서 들뜬 사람처럼 일방적으로, 그리고 집요하게 내 감정에 대해서만 얘기했다. 이럴 때 대개 듣는 사람은 괴롭고, 자신의 옛날(?)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lyrics from <Atmosphere> Joy Divison

    Walk in silence
    Walk away in silence
    See the danger - always danger
    Endless talking - life rebuilding
    Don't walk away - face the danger

    Walk in silence
    Don't walk away in silence *
    See the danger - always danger
    Rules are broken - false emotions
    Don't walk away

    People like you find it easy
    Always in tune - walking on air *
    They're hunting in packs
    By the rivers, through the streets
    It may happen soon *
    Then maybe you'll care
    Walk away
    Walk away from danger Walk in silence
    Don't walk away in silence
    See the danger - always danger
    Endless talking - life rebuilding
    Don't walk away
    . . .



    kitten_cc
    12 nov 2003
    안개가 덮힌 어두운 겨울... 밤...

    24 hour party people 지난 번 글을 올린 지 한달이 지났다. 편집자는 1-2주에 한번씩 업데이트된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나는 어차피 2주에 한번씩 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한 회를 거른 셈이라고만 생각하...
  9. alex


    BBC1에서 하는 TV 프로그램 <Fame Academy> 는 재작년 엄청난 성공을 거둔 iTV 의 <Pop Idol>을 베낀, 복제품 fake 프로그램이다. 작년에는... 이처럼 치사하고 치졸한 BBC의 전략이 씁쓸한 실패를 맛보았다. 낮은 시청률과 인기뿐만 아니라, 첫 해에 <Pop Idol>이 내놓은 스타 Will Young과 Gareth Gates는 지금까지도 판을 내놓기만 하면 속속 차트 1위에 올라가는 메가톤 급 스타가가 된 반면, 작년 <Fame Academy> 에서 살아남은 스타 지망생들은 말 그대로 스타지망생으로 끝나고 말았다. <Pop Idol>도 절대 보지 않았지만, <Fame Academy> 같은 아류에는 정말 눈길 한번 주어본 적이 없었다, well, 몇 주 전 토요일까지는. BBC는 전해의 실패를 만회해보려는 심보에서, 올해에는 <Fame Academy>를 <Pop Idol>과 같은 시간대인 토요일 저녁 시간대에 편성했다. 그 덕택인지 모르겠으나, 올해의 <Fame Academy>의 인기는 <Pop Idol>의 인기를 간단히 무찌르고, 덕분에 주말이면 TV 앞에 붙어사는 게 일과인 나 같은 인간의 심드렁한 시선까지도 낚아챌 수 있었다.

    <Pop Idol>이니 <Fame Academy>하는 프로그램들은 아주 간단히 핵심만 말하면,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집에서 여러 사람들을 가둬놓고 살게 하면서 매주 한 명씩 시청자들의 투표를 통해 한 명씩 쫓아내서 마지막 남는 한 명에게 엄청난 상금을 주는 TV 프로그램 형식(현재 전세계에서 최고의 인기 시청 프로그램이 되고 있는 21세기 형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과 <스타만들기>, <노래자랑> 이런 포맷들을 섞은 프로그램이다. 첫번째 스텝, 전국에서 스타가 되고 싶은 재능 있는 선남선녀들을 구름같이 모아서 오디션을 한 후, 열 댓 명만을 뽑는다. 두번째 스텝, 이 사람들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그리고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된 저택에 가두고, 음악과 춤 등의 연습을 시킨다. 세번째 스텝, 이들이 그 집에서 지내는 모습을 인터넷이나 케이블 채널을 통해 실시간 라이브로 볼 수 있게 하면서, 매주 시청자들의 전화 투표를 통해 누가 계속 남고 누가 떠나야 할 지를 결정한다. 네번째 스텝, 매주의 생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이 무대에서 퍼폼하는 모습을 방영하면서, 다시 시청자 투표와 심사위원 선정을 거쳐 매주 수를 줄여간다. (조금 설명이 복잡했나? 21세기형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포맷이 그렇게 간단할 수만은 없지...)


    내가 처음으로 목격한 <Fame Academy>는 최후의 다섯 명이 남아 있는 회부터다. 그 순간에 내가 본 것은, 누군가가 <Here Comes the Rain> 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노래가, 그의 퍼포먼스가 말 그대로 mesmerising - 영혼을 사로잡는 듯 했다는 것밖에. 그 무대 앞의 사람들도 그녀의 노래에 넋을 잃은 듯 격앙된 모습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Alex. 19살. Cornwall 출신. Spiky 뾰족뽀족 세운 짧은 머리에, 아직 앳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소년 같은 얼굴. 크지 않은 키에 동굴동굴한 몸매. 노래를 잘 하는 가수들의 노래는, 요새는, 너무나 흔해서 라디오만 틀어도 나온다. 그렇지만, 이렇게 노래하는 사람의 영혼이 그 노래에 들어가서 그 노래의 영혼이 느껴지는 느낌을 받아본 게 언제였더라??? 무대 옆의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너무나 straight하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치 않는 독설가 심사위원도 이렇게 intense하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로 자신의 평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이 TV프로그램의 오락성은 그 잔인함에서 나오는 것일까? 전력을 다해 노래를 한 이 젊은 경쟁자들은, 바로 코 앞에서 심사위원들의 독설을 들어야할 뿐만 아니라, 시청자 투표, 심사위원 투표 다음에는, 바로 자신들과 긴 기간을 합숙하며 땀 흘려온 친구들의 눈 앞에서, 누가 남고 누가 떠날 지에 관한 자신들의 생각을 밝혀야 한다. Alex 와 함께 최종회까지 갔던 (물론, Alex가 이번 <Fame Academy>의 우승자였다. 최소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Alex의 재능과 매력에 공감했다는 점이 놀랍고 기쁠 뿐이다), Alistar라는 핸섬하고 착하게 생긴 친구는, 자신과 가장 친했던 다른 친구를 탈락시키는 자신의 결정을 바로 그 앞에서 밝혔어야 했다. 도대체 이 젊은이들은 이 복잡하고 잔인한 TV 프로그램의 압력과 스트레스를 어떻게 견뎌내는 것일까? 석 달 정도의 기간을 가족, 친구들과 완전히 격리된 상태에서, 엄하고 함부로 말하는 튜터들의 혹독한 훈련과, 매주마다 찾아오는 생방송의 두려움, 전혀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모든 것이 낱낱이 TV에 방영되는) 밀폐된 공간에서의 생활을 견뎌내면서, 어떻게 자신들의 재능과 음악의 예민하고 순수한 감성을 지켜가는 것일까?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다른 젊은 친구들에 대해서는, 글쎄, 그들이 재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 노래를 잘 부르고 (그것도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 월등하게), 춤도 잘 추고, 잘 생긴 것은 분명한데, 그들은 그저 Will Young이나 Gareth 처럼 노래 잘 부르는 (그러나 남의 노래를 재탕해서 부르는) 가수들로 끝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 그게 그들이 바라고 꿈꾸는 것인지... 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Gareth의 이번 새 앨범 제목이 <go on your own way>인 것이 일종의 자기 선언 - 그냥 노래를 잘 하는 가수에서 자신의 노래를 하고자하는 - 처럼 느껴진 것은.

    Alex는 아직 19살이다. 그녀는 패션 모델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외모로도 너무나 아름답고, 자신의 영혼을 담아 노래를 부를 줄 안다. 그리고 그 노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는, 단순히 싱어가 아니라 뮤지션이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자신만의 그 무언가 - 그녀의 영혼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잔인한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았다. 나는 다만 그녀가 이 잔인한 세상에서도! 살아남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했으면 한다.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두자. Alex Parker.


    kitten_cc
    노팅힐의 작은 방에서.
    2003년 10월 12일 오후 5시 15분.

    alex BBC1에서 하는 TV 프로그램 &lt;Fame Academy&gt; 는 재작년 엄청난 성공을 거둔 iTV 의 &lt;Pop Idol&gt;을 베낀, 복제품 fake 프로그램이다. 작년에는... 이처럼 치사하고 치졸한 BBC의 전략이 씁쓸한 실...
  10. Dizzie Rascal


    커티스 핸더슨의 <8 마일>의 마지막 장면. 배틀에서 이긴, 에미넴은, 아니 지미 더 래빗은, 차갑고 어두운 디트로이트 시내를 가로질러, 공장으로 돌아간다. 그에게는 마쳐야 할 야근이 있다. <8마일>에 대한 한국에서의 평들은(내가 주로 읽은 것들은 씨네 21에 난 것들이다), 일종의 배신감을 표현하는 것들이었다. 랩문화와 뗄 수 없는 블랙 컬처, 그 삶의 지난함, 그리고 과격할 만한 정치성, 폭력 등등의 것들을 지워버리고, 화이트, 미들클래스의 안전한 윤리망 속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담 속으로, 랩 문화의 치열함과 저열함을 흡수해버렸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주된 불만들이었다.

    well, 나는 이런 견해들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그리고 이건 에미넴이라는 팝 컬처에 진입한 화이트 랩퍼가 지닌 한계, 내지는 상품성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여전히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감동한다. 왜냐고? 에미넴의 <Lose Yourself>에서의, 지금 이 순간, 이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집중하라는 이야기가, 단순히, 자신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걸 잊고 집중하라는 이야기로는, 도무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노래는 -- 그리고 그 영화는, 현실을 잊기 위해서, 혹은 현실을 버티며 살아나가기 위해서 음악과 노래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 -- whether they are black or white -- 에 관한 것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9월초에 발표된 머큐리 뮤직 프라이즈 결과는, 나름대로,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올해는 수상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제대로 보도할 기회를 주었다고 할까. (한 타블로이드 신문은 몇 년전, '벨 & 세바스찬'의 수상 결과를 놓고 이들을 남녀의 혼성 듀엣으로 보도한 전적이 있다.) 올해의 영광스러운 수상자는 18세, South London, Bow 출신의 Dizzee Rascal. 그의 첫 번째 앨범인 [Boy in Da Corner]는 영국 개러지 씬의 황금기에서도 향후 5년간 나올까말까한 흥미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평이다.

    지역 출신을 소개할 때, East London, 혹은 South London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할 때는 빈민가, 블랙 커뮤니티에서 자라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경우. 그리고 본명 Dylan Mills인 이 젊은 뮤지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런 식의 출신 소개는 불가피한 것 같다. 싱글 맘인 엄마와 함께 살아왔고, 자신의 말로는, 이렇게 외롭게 자라는 경우 스스로 일찍부터 자기 자신을 살피고 지킬 줄 알게 된다고 표현했지만, 학교에서 퇴학당하기를 수차례, 피자 배달원(불쌍한 피자 배달원...)을 털기도 하고... 거리에서의 폭력들에 익숙해지면서 자라왔다. 그의 노래 가사들은 그의 이런 경험과 감정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타블로이드들의 흥미를 자극할 만한 사건? [Boy in Da Corner]가 출반되어 온갖 좋은 평들을 받기 시작할 무렵인 지난 7월, 그리이스의 작은 섬(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영국 개러지 씬의 이비자 같은 곳)에서 총기 사건에 연루, 부상을 입었었다. 소문에 의하면 'So Solid Crew'와의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고들 하는데, 그 이상의 진실은 알 수 없음이다. 머큐리 상 수상 이후 Dizzee는 다소 dizzy(?)한 느낌이라고. 주로 자신과 비슷한 백그라운드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 사람들이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에서 -- 그리고 메인스트림에서 --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기쁜 모양이다.

    그의 음악은, 오직 음악 수업에만 들어올 수 있다는 허락을 받은 고등학교에서의 컴퓨터 작업에서 이루어진 것들이라고. 그를 격려하면서 거리의 폭력 씬에서 음악 씬으로 끌어올려 준 사람은 그 학교의 음악 선생님... (어째 너무 뻔한 얘기 같지만, 가끔은, 당신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당신을 이끌어줄 사람은 가족이거나 선생님이다.) 아마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그가 스스로 단언하길, 그리고 인정하길, 만약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범죄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여기서 살아가는 방법은, 그의 말에 의하면, 음악을 하거나, 스포츠 플레이어가 되거나, 아니면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는 운이 좋았던 것일까? 여전히 거친 음악 씬 -- 가끔 총기 사건에도 연루되는 -- 속에서 살지만, 그를 지켜준 것은, 그의 삶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막아준 것은 음악이다. 혹은, 그가 음악 속에서 자신을 잃을 수 있었기 때문?

    kitten_cc


    ... music was the only option to me.
    It was a blessing I pursued it.
    I put all my energies into it.
    I didn't care about no other subjects.
    I have just ended up carrying on a life of crime, I suppose...
    (an from interview on guardian)


    2003년 9 월 29일 새벽 3시.
    kitten_cc
    from London

    Dizzie Rascal 커티스 핸더슨의 &lt;8 마일&gt;의 마지막 장면. 배틀에서 이긴, 에미넴은, 아니 지미 더 래빗은, 차갑고 어두운 디트로이트 시내를 가로질러, 공장으로 돌아간다. 그에게는 마쳐야 할 야근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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