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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가슴 고정필자코너/Pilgrimage For Art 26 POSTS

  1. [13회] 연재를 마치며

    - 최창근 | 2002/07/23 18:00

    [13회] 연재를 마치며

    - 최창근 | 2002/07/23 18:00

    노 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돌이켜 보면 그건 운명이라고 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돌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만나는 어떤 섬광 같은 느낌, 그걸 우연 또는 필연이라는 말로 부를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우연과 필연을 훌쩍 뛰어넘은 자리에 숨어있는 인연의 옷깃이리라.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설에 기대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엔, 사람과 물건 사이엔 분명 보이지 않는 실타래처럼 얽힌 끈끈한 그 무엇인가가 이어져있는 것 같다. 나는 그리워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도, 심지어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며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던 세계는 어이없게도 학교에 들어오기 전 아무 것도 모른 채 동네 누나들과 또래 조무래기들과 어울려 뛰어 놀던 때였다. 삶이라는 것도, 죽음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백색의 계절들. 내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천진난만했던 시절을 꼽을 것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나는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우울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겉늙어갔던 것 같다. 양철북을 두드리며 육체적 성장이 멈추기를 기원하는 오스카의 일생처럼 이젠 멀리 떠나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기에 그 그리움의 농도는 더 짙은 것일까. 영원히 회귀할 수 없는 곳으로 끊임없이 되돌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의지는 그것이 강인하면 할수록 그러하기에 더욱 더 비극적이다. 비극적이면 비극적일수록 어긋나기만 하는 생의 부조리와 모순들. 나는 그 불가해한 삶의 여울 속에서 나를 지켜줄 작은 연꽃을 발견했다. 처음엔 한 송이였지만 나중엔 어마어마하게 드넓은 화엄의 바다에 지천으로 널린 한 세상으로 확장된 나의 꽃들. 그것은 노래였다.

    크라잉 넛 [서커스매직유랑단]


    어렸을 때부터 나는 노래가 좋았다. 그것도 일제 시대의 <학도가>나 <희망가>, <사의 찬미>, <황성옛터> 같은 옛 노래부터 시작해서 남들이 얼마간 왜색이 묻어나는 가요라고 해서 평가절하하는 트로트 이를테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나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고복수의 <타향살이>와 남일해의 <꿈에 본 내 고향>, 백난아의 <찔레꽃>과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현 인의 <굳세어라 금순아>와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가요 무대'에서 불려졌던 <선창>이나 <고향초> 같은 내 나이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노래들이 이유도 없이 무작정 좋았다.

    그런가 하면 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가곡들 예를 들면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소프라노 남덕우나 박순복이 부르는 조병화 시-김성태 곡의 <추억>이나 이은상 시-홍난파 곡의 <사랑>, 김남조 시-김순애 곡의 <그대 있음에>, 박목월 시-김성태 곡의 <이별의 노래>라든가 테너 엄정행과 김진원 특유의 카리스마가 배어 나오던 김동명 시-김동진 곡의 <내 마음>과 이은상 시-현제명 곡의 <그집앞>, 이은상 시-김동진 곡의 <가고파>와 김말봉 시-금수현 곡의 <그네>, 구성지고 풍부한 성량을 자랑하던 바리톤 오현명이나 김성길의 애창곡인 <명태>와 <떠나가는 배>, <사공의 노래>와 <봄처녀>, <비목>이나 <기다리는 마음>, <보리밭>이나 <성불사의 밤> 그리고 메조 소프라노 김학남이나 백남옥의 고정 레퍼토리였던 <또 한 송이 나의 모란>이나 <저 구름 흘러가는 곳>, <그리움>과 <동심초>, <수선화>나 <사월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봉숭아>에서 <선구자>를 거쳐 <얼굴>과 <바우 고개>에 이르는 그 무엇이 나의 여리디 여린 정서를 건드렸던 걸까. <따오기>나 <겨울밤>, <겨울나무>, <과꽃>, <과수원길>, <파란마음 하얀마음>, <고드름>, <작은 별>, <노을> 같은 동요에 일찍이 마음을 빼앗긴 것도 어쩌면 벌써부터 예정된 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이 노래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내 속엔 나도 모르는 소년 하나가 몸의 성장주기와는 상관없이 꿈꾸는 어린 왕자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내게 행운일까 불행일까, 혹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은희의 노을 [Spring]


    사람이 모여 사는 세상살이처럼 이번 연재를 끝마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99년 8월이었고 끝을 맺는 지금은 2002년 7월이니까 꼬박 삼 년이 걸린 셈이다. 삼 년이라는 시간은 그냥 흐르지는 않았는가 보다. 20세기가 저물고 새 천년의 문이 열렸을 뿐더러 내 개인적인 신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잡지사 사정으로 두 번이나 연재가 중단 됐을 때는 마지막 마무리를 짓지 못할 줄 알았다. 그만큼 대중음악 장르는 여러 가지 면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랬기에 이렇게 무사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된 것이 우선 기쁠 따름이다.

    내 바람은 아주 소박하다. 변변찮은 이 글이 척박한 토양 속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이 땅 위의 음악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작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에 미처 언급하지 못한 미지의 예술가들에게도 끝까지 용기를 내시라고 응원을 보내고 싶다. 내 눈이 빗겨간 곳에도 뛰어난 자질을 갖춘 아티스트들이 언젠가 빛을 볼 그날을 기다리며 작업 중이실 것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좀 더 많이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내 좁은 시야와 기울어진 취향 때문이니 나보다 눈 밝은 다른 훌륭한 분들이 곧 그 소중한 작업에 대한 보상을 넉넉하게 해주시라 믿는다.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 [개, 럭키스타]


    연재에 한해서 말한다면 역시 아쉬움이 크다. 그 중에서도 산울림이나 들국화, 어떤날 등의 그룹들을 전면에 내세워 써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여력이 되질 않았다. 김영동이나 이병우, 한상원 같은 연주인들도 그와 같은 사유로 인해 빠졌기 때문에 그 안타까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강산에나 장사익, 김목경, 시인과 촌장들에게도 본의 아니게 빚을 지게 되었지만 다음 기회가 분명 있을 거라 스스로 자위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김민기나 양희은 같은 분들은 이미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대중음악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기에 내 서툰 글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누가 될 것 같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경우다. 험한 사회 속에서 그분들이 외롭게 지켜온 음악세계야 두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90년대에 빛나는 음악적 성취를 이룬 인디 계열의 그룹과 밴드들 이를테면 델리 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 허클베리핀, 미선이, 은희의 노을, 유 앤 미 블루,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황신혜 밴드, 크라잉 너트, 노 브레인 등은 내게도 환희 그 자체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세대 전의 가수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의 현대적 변주인 것처럼 다가왔던 크라잉 너트의 <서커스 매직 유랑단>과 <말달리자>나 노동운동의 불꽃을 점화시켰던 전노협 문화국의 <노동악법 철폐가>의 2000년대 새 버전인 듯한 노 브레인의 <청춘은 불꽃이어라>와 <바다 사나이>는 종착지를 상실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실존적인 고뇌를 그대로 발산하는 것 같아 이상한 공감과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곤 했었다. 펑크 록 적인 성향이 짙은 그들의 폭발할 듯이 유쾌한 노래를 듣고 있으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아팠었고 급기야는 원인 모를 슬픔에 잠기게 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의 연극처럼 현란한 비주얼 라이브를 무대 위에서 접할 때처럼 그들의 음악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무작정 한곳으로만 내달리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차를 떠올리게 한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경험이었다. 마치 그 옛날 어린 시절, 진공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하수영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나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잠결에 들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당황스럽고 수습하기 힘들던 아련한 기억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세월이 흘러, 흘러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어느 덥거나 추운 날 저녁이면 꽃 피고 낙엽 지는 거리에서 나는 여전히 낮고 여리고 조용한 어조로 채은옥의 <빗물>이나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유익종의 <그저 바라볼 수 만 있어도>를 흥얼거리게 되리라. 패티 김의 <이별>과 임희숙의 <뜨거운 안녕>, 노사연의 <만남>이나 석미경의 <물안개>와도 같았던 그 뜨거운 노래는 내 생의 동반자이자 내 삶의 전부였으리라.

    노 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돌이켜 보면 그건 운명이라고 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 더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을 돌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만나는 어떤 섬광 같은 느낌,...
    ☆☆☆☆☆ | P, pilgrimage, Pilgrimage For Art
  2. 박인희, 이연실


    길은 멀고 돌아갈 꿈은 이루기 어렵다
    고향 생각은 봄의 풀과 같아서 아무리 멀리 가도 다시 돋아나는 것
    춤추는 꽃잎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지나가 버린 인연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 한산자, [한산시] 중에서


    <1>

    가끔씩, 아주 가끔씩 그곳이 보일 때가 있다. 꿈속이었던가. 어둡고도 환한 봄날, 나는 누군가의 무덤으로 가고 있었다. 누구였을까.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시간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일찍이 내가 발을 담고 있던 장소와는 전혀 다른 그 어떤 공간이 신천지처럼 눈앞에 활짝 펼쳐질 것만 같은 새로운 예감에 전율해야 했던 날들이 있었던가. 그곳에 있을 때 나는 늘 머나먼 이국을 생각했었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꿈. 벗어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멀리 멀리, 더 먼 곳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내 영혼이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곳으로 줄달음치고 싶었다. 지긋지긋했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삭제되던 곳,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주어졌던 고통의 시간들, 떠올리기 싫은 기억들이 옥수수 알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곳.

    꿈들. 아주 이상한 꿈들. 꿈속에서 나는 어디선가 본듯한 한 소녀로부터 마법사가 쓰던 모자를 전해 받는다. 모자를 쓰던 마법사는 아주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모자만이 남았다는 말과 함께.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다가 어렴풋이 잠에서 깨면 목덜미가 서늘한 게 방금 꿈속을 마구 헤집고 다니던 긴 머리를 휘날리던 소녀는 온데간데없고 무엇인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등줄기를 서늘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나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꿈을 꾸고도 방금 꾼 꿈을 잊어버리는 낯선 사람이 거울 속에 앙상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누군가 잠자는 사람을 물에 젖은 영혼이라고 했었던가. 기차를 타고 생전 처음 보는 나라를 여행하는 경우, 생각도 나지 않는 것들 그 희미한 이미지에 사로잡혀 하루해를 다 보낼 때도 있었다. 먼 옛날, 황혼이 물드는 언덕에서 태초의 인간들은 환각 상태에 빠져 짐승의 생살을 뜯어먹었다는 얘길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또 순수한 사람들은 사자나 독수리가 되어 드넓은 초원을 달리거나 높은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하는. 그때 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왜 그런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것일까. 책을 펼친 철학자가 불안한 여행을 통해 게으름뱅이들의 천국에 이르는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청동의 문 입구에 선 푸른 수염의 남자는 왜 아무 말이 없는 걸까. 바이올린을 켜는 날개 달린 물고기들의 싱싱한 꼬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짧은 혀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초생달 모양의 빵은 다 어떻게 된 걸까.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꿈꾸는 표정에 잠긴 저 늙은 남자는 또 어디로 갔을까. 모든 장면은 마치 초현실주의 회화나 영화에 나오는 의미를 판독하기 힘든 상형문자와 같다. 아니면, 내가 그들의 꿈속으로 들어간 것인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뚜와 에 무와


    꿈이 있었다고 해야겠다. 아니, 그 자체가 한 편의 꿈이었을까. 꿈속의 청년은 누구였을까. 광장. 드넓은 광장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광장 앞쪽 철제로 쌓아올린 멋진 가설무대 위에서 공연이 올려진다.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열광을 한다. 어떤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은 휘파람을 불어제치고 그러나 그 모두가 한 순간의 일이다. 무대 위로 색색의 조명이 번쩍거리고 그 현란한 조명은 한 팀의 공연이 끝날 때마다 수시로 변한다. 무대 위의 쇼도, 무대 밖의 열광도 모두가 한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만은 그들은 하나가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가 된다는 것. 크레인이 올라가고 광장 여기저기서 축포와 불꽃이 터지고 객석으로 무비카메라의 불빛이 환하게 쏟아질 때. 아, 그곳은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린 학교였다. 개교 70주년을 맞아 벌어지는 축하 음악회. 이제 사람들은 광장뿐만 아니라 학교 곳곳에 흩어져 있다. 건물 옥상이나 시계탑 주변, 높은 언덕에서 가설 무대를 지켜보고 있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은 기분 좋은 장미의 짙은 향기를 공중으로 마구 뿌리고 멀리 보이는 밤바다의 불빛이 아련한 시간. 그곳이 이곳으로 바뀌는 지금 여기는 어디인가. 이국의 어느 하늘 아래에 서 있는 듯한 느낌. 그게 꿈이었을까. 꿈에는 가끔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도 보인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동안 나는 정말 이곳에 있었던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청년은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언덕 위에 서서 썰물처럼 빠지는 인파의 무리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가 흩어지는 모습은 떠나온 그곳을 생각나게 한다. 이곳이 있으면 언제나 그곳이 있기 마련인데. 이곳에 몸은 있어도 마음은 벌써 그곳으로 달려가는 것. 이곳에서 바라보는 그곳은 언제나 그리움만 키워 가는 마음의 고향이지 돌아갈 수는 없는 곳. 이곳에서 그곳을 바라보면 그곳은 아주 먼 곳인데도 눈길은 늘 허공을 헤맨다. 상처를 감추려는 이들은 문득 허공 속으로 눈길을 돌리듯 그곳은 그래서 이곳에 처한 나를 병들게 한다. 이곳은 이곳이고 그곳은 그곳인가. 그곳을 떠나 이곳으로 왔을 때 그곳은 이미 사라져 버렸나. 다시, 이곳에서 그곳을 꿈꿀 수 있을까.

    은희


    눈사람도 꽁꽁 얼어붙는다는 한겨울, 개와 인간이 화물 열차 짐칸에서 만나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감동을 안겨주었던 작가 이동하의 <우울한 귀향>과 <장난감 병정>을 읽고 나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사십대 후반의 아까운 나이에 불의의 교통 사고를 만나 유명을 달리한 이균영의 성장소설 <멀리 있는 빛>과 <길은 그리움을 부른다>는 제목으로 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던 <나뭇잎은 그리운 불빛을 만든다> 역시 사람의 한쪽 가슴을 와르르 무너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러브레터>라는 원작이 따로 있었던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영화 <파이란>처럼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던 아스다 지로의 <철도원>을 접하게 되면서 코끝이 찡하던 느낌들. 그 모든 영화나 소설들은 고향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내 기억 속에 고향에 대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아로새겼던 작품은 단연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이다. 개발 지상주의, 성장 제일주의라는 산업화의 거대한 물결 속에 휩쓸려 점점 허물어져 가는 옛 고향을 찾아 길을 나섰던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사내. '백화'라는 예명을 가진 여자는 술집 작부였고 사내들은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부평초 같은 따라지 인생들이었다. <삼포 가는 길>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TV문학관으로도 방영되었다. 영화에서 백화 역을 맡은 여배우는 당대의 스타 문희였으며 TV에서는 차화연이 대신했었다. 80년대를 주름잡은 2대 트로이카 장미희, 유지인, 정윤희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배우는 배창호 감독 영화의 단골 주연이었던 장미희나 퇴폐적이고 도발적인 분위기로 뭇 남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정윤희가 아니라 영화보다는 TV를 통해 더 많이 낯이 익었던 유지인이었던 것처럼.

    은희


    그래, TV 문학관이다. 시인 유 하가 그의 산문집 제목에서도 밝혔듯 자신의 연배를 가리켜 '이소룡 세대'라고 명명했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일찍이 글 짓는 재미에 맛을 들인 나를 포함한 우리 나이 또래는 단연 'TV 문학관' 세대로 불러야 할 것이다. 박경리의 <토지>, 이청준의 <청학동 나그네>, 윤흥길의 <묵시의 바다>, 박완서의 <미망>,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황순원의 <일월>, 김동리의 <등신불>, 이문열의 <금시조>, 서정인의 <강>,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손창섭의 <비오는 날>, 이범선의 <오발탄>,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최 윤의 <회색 눈사람> 등이 모두 TV 문학관에서 방영됐던 원작 소설들이었다.

    최근에 새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등장한 신 TV 문학관에서도 이순원이나 윤대녕, 전경린 같은 비교적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아마도 베스트극장이나 미니 시리즈가 다분히 대중적인 젊은 감각 취향이라면 TV 문학관은 대중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고급함을 함께 추구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특색이라면 특색이다. 그 중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호평 받았던 작품들도 있어 그 둘을 비교해가며 뜯어보는 재미도 쏠쏠했었다. 가령,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스크린으로 옮긴 김수용 감독의 <안개>에서 주인공 '나' 역을 맡은 신성일과 함께 무진으로 들어가는 버스 바로 뒤쪽에 시골농부 차림으로 앉아있던 원작자인 김승옥의 촌티 나는 모습이라든가 한수산의 감성적인 소설 <대설주의보>에 나왔던 신인 탤런트 허윤정의 짙은 우수라든가 김채원의 <초록빛 모자>에서 남장여인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던 서갑숙의 인상적인 연기는 두고두고 화제가 됐었다.

    그 덕분에 몇몇 작품은 나중에라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명작으로 손꼽히기도 했었다. 마치 예전에는 줄거리 중심이나 주연을 맡은 인물 중심으로 영화를 보다가 영화의 조연은 연기는 잘 하지만 아직까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연극배우들이 주로 맡는다는 것을 알고 그 배우들이 출연한 지나간 영화를 다시 한번 보게 되는 것과 똑같은 심리라고 할 수 있을까. 고향에 대한 풍경은 그렇게 흘러간 TV 문학관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박인희, 이연실 길은 멀고 돌아갈 꿈은 이루기 어렵다 고향 생각은 봄의 풀과 같아서 아무리 멀리 가도 다시 돋아나는 것 춤추는 꽃잎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지나가 버린 인연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 | Pilgrimage For Art, , 박인희, 이연실
  3. 박인희


    <2>

    "님아,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물을 건너다 빠져 죽으니 혼자 남은 이내 몸은 어이할까." 옛날하고도 먼 옛날, 이제는 까마득한 전설 속의 이야기인 것처럼 머나먼 고조선의 한 강가에 곽리자고라는 뱃사공이 살았는데 그가 어느 날 강가에 나갔다가 호주머니에 술병을 찬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늙은이 하나를 발견했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여인네가 강을 건너려다 물에 빠져 죽는 지아비를 목격하고 울부짖으며 불렀다는 노래. 우리 나라 최초의 서정가요의 주인공은 백수광부의 처였다. 사공이 집에 돌아와 자신이 본 일을 아내인 여옥에게 들려주자 그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옆에 있던 공후를 집어들어 자신의 남편이 들려준 슬픈 이야기에 곡조를 붙인다. 곡조가 붙은 그 노래는 이웃집 여자 여용의 손을 거쳐 온 마을로 퍼지고 급기야 천지사방으로 흘러, 흘러간다.

    우리 노래의 첫 운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인희와 이연실. 그들은 여느 가수들과는 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바로 고백하자면, 그들은 여옥의 후예들이다. 백수광부의 처가 불렀던 노래가 되기 전의 노래에 곡을 붙이고 말을 만든 여옥처럼 그들은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육성에 음악이라는 옷을 입혔다. 나는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성장했고 내 성장 주기는 그 노래를 들은 횟수와 정확히 비례한다. 그럴 수도 있는가. 그들이 활동하던 당시 나는 어린 아기였는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노래는 사랑처럼 국경과 신분, 나이를 초월해서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는가보다. 부모와 자식 세대 사이에도 정서가 비슷한 동류항의 무리들이 있는 것처럼 그들의 노래는 다정한 연인이나 절친한 친구의 음성처럼 어느 날 문득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오래 오래 내 곁에 머물러 있었다. 쉽게 물리지 않는 음식이나 집처럼, 그렇게.

    박인희


    박인희 하면 얼른 떠오르는 시는 박인환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로 시작하는 이 허무하면서도 다소 퇴폐적이기까지 한 시는 "등대 . .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를 거쳐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에 이르면 그 도저한 낭만적 감상의 절정을 이룬다. 센티멘털리즘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가치임을 역설하고 있는 듯한 이 시는 우수 어린 박인희의 목소리와 어울리면서 그 시가 내포하고 있는 본연의 정서적 울림의 최대치를 뽑아내고 있는 듯 하다.

    나는 이제껏 박인희만큼 이 시의 진가를 유감없이 뿜어 올린 이를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 잊혀진 연인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한 <얼굴>은 <목마와 숙녀>에 버금가는 아슬아슬하면서도 투명하고 영롱한 소녀적인 감수성으로 청춘의 피를 뜨겁게 달구던 자작 낭송시였다. 그러나 지금도 노래방이나 술자리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녀의 대표 곡은 아무래도 <세월이 가면>일 것이다.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난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는 추억들을 누구나 하나씩은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그러하기에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이라는 부분에 이르면 그 노랫말이 단순한 노랫말로 생각되는 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간 현명하고 지혜로운 스승들이 남긴 소중한 잠언 같기도 한 것은. 언젠가 시를 쓰는 한 여자 선배가 부르던 <세월이 가면>을 기억한다. 그녀의 시만큼이나 그녀의 노래는 맑고 고즈넉했다.

    <물소뿔을 불다>와 <감자먹는 가족>이라는 시에 붙인 '나를 향해 떠나온 마음들을 훔치며'라는 시작 메모에서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마음은 먼 곳을 향해 있으면서 매인 몸을 고달파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럴수록 더 단단히 삶 쪽에, 이승 쪽에 매인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을까? 먼 곳으로 떠나온 사람처럼, 더는 떠날 곳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기로 작정했던 때가. 그래서일까? 밖을 응시하던 눈빛이 내 안으로 향해지면서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 존재가 조금 날씬해졌다. 아이 손을 잡고 가을저녁 산책을 나서면 나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이의 작고 흰 손목에 겹친 나의 밋밋한 손등은 아주 먼 시간을 돌아와 어스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 그리하여 이 세상 누구에게도 저녁의 어스름이나 애잔한 손목의 겹침을 말하지 못하고, 그걸 다만 내 안으로 끌어당기며 나는 서 있곤 한다. 그때 내 어깨 위로 떨어지는 굴참나무 잎새 하나야말로 나의 전생이거나 내생이 묻는 안부는 아닐는지! 시란 때로 나를 향해 떠나온 마음들을 훔치는 것은 아닐까? 범종이 저에게서 멀어진 종소리들을 평생 한자리에 서서 기다리듯이, 어쩌면 나를 찾아 참으로 먼 길을 떠나온 마음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박인희


    슬쩍슬쩍 훔치며, 때로 기다리는 시간이 깊어질수록 나 또한 참으로 먼 길을 떠나왔음을 깨닫는 것이 시는 아닐까." 그녀의 글에서처럼 나를 향해 떠나온 마음들을 훔치게 만든 박인희의 노래는 참으로 많다. 이필원과 듀엣으로 활동했던 [뚜와 에 무와] 시절, 번안곡으로 함께 부르던 <스카브로우의 추억>이나 <도나, 도나>, <이사도라>, <방랑자>, <사랑의 휴일>, <나의 소망>, <알로하오에>는 고전 축에 속하고 <장미꽃 필 때면>이나 <나무벤치 길>, <내가 부를 이름은>, <그리운 사람끼리>, <봄이 오는 길> 등은 거리를 걷다가도 나도 모르게 문득 문득 흥얼흥얼 하던 노래들이다. 어떤 곡은 리듬이 먼저 익숙해지고 그 다음에서야 가사가 입에 옮겨 붙거나 또 어떤 경우는 정 반대일 때도 있었지만 유독 박인희의 곡은 리듬과 가사에 저절로 멜로디와 하모니가 따라붙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내 몸 속 어딘가에서 스르르 빠져 나오던 노래들. 돌이켜보면 인간관계로부터 얻은 배신이나 상처를 말없이 다독거려 주던 것도 <세월아>나 <들길> 그리고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로 끝나는 <섬집아기>였다. 마치 <등대지기>나 <나뭇잎배>, <오빠 생각>, <과수원길>, <반달>, <고향의 봄> 같은 동요를 부를 때처럼 푸근해지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 누군가가 그랬듯 고향에 대한 기억이란 이미 사라진 것 혹은 사라져 가는 것을 반추하는 행위인가.

    이연실


    이연실의 노래들도 그러긴 마찬가지였다. 듀엣 한마음 출신의 양하영이 어느 고아원에서 그들과 함께 눈물을 철철 흘리며 부르던 <찔레꽃>이나 봄의 눈부심, 그 찬란한 생명의 태동을 이만큼 더 꿋꿋하게 표현한 곡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민들레>나 6,70년대
    적인 정서가 그대로 배여 있으면서도 지금 들어도 결코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목로주점>이나 첫사랑의 아픔이 초경의 비릿함처럼 묻어나는 <새색시 시집가네>나 소월의 시에 가락을 붙인 <부모>도 정겹기가 그지없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번안해서 취입했던 <스텐 카라친>이나 <릴리 마를렌> 혹은 더 나아가 우리의 구전민요나 광복군의 노래에서 차용한 <타박네>나 <고향꿈> 같은 곡들이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대의 서유석이나 양병집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박인희처럼 이연실 또한 단순한 번안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줄 알았던 포크 싱어였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른 점이 있다면 박인희가 노래에 담겨있는 서정적인 감수성에 치우쳤다면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이연실은 포크송만이 지닐 수 있는 민중들의 끈질긴 정한을 잡아냈다는 점이다. 그러한 미덕은 방의경의 <불나무>나 <내 집>, <폭풍의 언덕에 서면 내 손을 잡아주오>나 김인순의 <나비야>와 <하양나비>, 윤연선의 <그 소년>, <고아>, <님이 오는 소리> 그리고 박영애와 이현경의 <아름다운 사람>이나 <그리워라>, <초겨울> 같은 곡으로 흡수되고 확장된다. 그러니까 서유석의 <친구야>나 <그림자>, 양병집의 <부활가>나 <엄마, 엄마 아-엄마>에 나타난 짙은 사회성과 정치성의 또 다른 지점을 이연실이 열어놓았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객관적일 것이다.

    아, 그러나 어찌됐든 윤명환의 곡 <오늘 같은 날>이나 <솔개>, <종이꽃>을 부르는 이연실, 그녀의 음성은 서늘하다못해 고혹적이다. 그녀의 음성엔 향토적인 애잔함과 그리움도 녹아있지만 도회적인 쓸쓸함과 고적함의 향취도 진하게 배여 있다. 그러니까 다들 이연실, 이연실 하는 걸까. 뭐라고 정확하게 꼬집어낼 수 없는 그 미묘한 음성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출신의 여성가수 토니 차일즈와 애팔래치아 산맥의 작은 마을에 은둔했던 제인 리치의 염세적인 슬픔이 깃든 허스키한 목소리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연실이 청중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꽃반지 끼고>의 은 희가 자아내는 청정무구한 애수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해야겠다. 곽성삼이 <귀향>이나 <나그네>, <길손> 등에서 추구한 고향의식과 박동률이 <고향가는 길>과 <굴렁쇠>, <잃어버린 시간>에서 보여준 사라진 고향에 대한 생각이 다르듯이.

    이연실


    <3>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 이연실, <찔레꽃> 전문


    찔레꽃을 부르며 나는 울었다. 가시에 찔려서도 아니고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단지 한 사람이 그리워서였다.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였다. 보고 싶지만 만날 수 없어서였다. 그이는 이곳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 지상에서 가뭇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그와 나는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가 없다.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차를 마시며 웃을 수도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수도 없다. 그가 옷을 입는 방식에 대해서 흉을 볼 수도 없고 팔짱을 끼고 행복한 웃음소리에 파묻혀 산책을 할 수도 없다. 그에 대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를 이제 더 이상은 볼 수 없다는 이 맹목적 현실이, 나를 아프게 했다.

    아니, 그것은 아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일 것이다. 그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나는 무서운 것이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부재에 대한 어떤 위안이나 상황설명도 그가 내 눈앞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엄연한 진실을 은폐할 도리는 없다. 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이라는 불가의 보편적인 법리를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믿고 싶지가 않다. 존재의 부재와 현존에 관한 문제는 시각적인 것이다. 청각과 후각에 호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는 상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오감에 전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없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그 모든 실존의 현상들을 마주하기가 겁이 난다. 슬픔의 무게와 상실의 아픔을 감당할 수가 없다. 고통스러운 것은 끝끝내 고통스러움 그 자체일 따름이다.

    이연실


    이연실의 노래는 내가 사랑했던 대상이 이제는 멀리 떠나버려서 다시는 내게로 되돌아올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나는 다만 그의 노래를 가끔씩 흥얼거리면서 어리석은 추억과 감상에 젖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러한 추억과 감상이 그의 순전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한 줌의 재로 화하는 날, 나 역시 그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야 함을 알고 있다. 가슴속에서 깨끗하게 지워내야 함을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도. 그러나 그 순간이 오기까지는 나는 여전히 바람 불고 비오는 날 혹은 문득문득 누군가가 아무 허락도 없이 내 마음의 빗장을 부수고 내 속으로 쳐들어는 날이면 기꺼이 그들에게 나를, 내 영혼의 전부를 송두리째 온전히 내맡길 준비가 되어 있다. 내게도 그만한 권리는 있지 않겠는가.

    이연실의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나는 그의 노래가 되고 싶었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건 때로 내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나를 흔드는 노래 그리하여 내 생의 일부가 되는 노래, 그 노래는 내 몸과도 같다. 노래가 몸이 되고 몸이 노래가 되는 경지, 노래에 취해 내 몸이 대기 속으로 흡수되는 듯한 어떤 떨림의 순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내가 아닌 나, 단백질의 분자로 구성된 유기물질이 아닌 신성한 존재감에 전율하는 그 무엇. 그것이 무엇이라 한들 어떠랴. 이연실의 노래는 나의 향수를 자극한다. 그 향수는 노스탤지어가 아니다. 내가 향수의 주체가 되어 그의 노래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내 눈앞엔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는 '나'의 영혼과 '그'의 영혼이 자유롭게 교감하는 무한 혼융(混融)의 세계이다. 비유는 낡아도 결코 낡을 수 없는 생처럼 그렇게 그의 노래는 살아있다. 김혜린의 <비천무>와 오 수의 <느티나무가 있는 풍경>에서처럼.

    박인희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 박인희, <모닥불> 전문


    어떤 날 마음이 아프고 쓸쓸할 때 그 맘이 어둡고 어두워 찬바람 잉잉거리는 길 위에서 벌거벗은 낙엽처럼 저 홀로 나뒹굴 때 다 낡은 가죽가방에 환한 햇살로 버무린 얼굴 몇 개 달랑 넣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어떤 날 누군가 불쑥 나를 찾아와 나를 데리고 어느 낯선 벌판에 가 닿아서 잃어버린 옛 이름을 목놓아 부르다가 메아리가 되지 못하고 나를 기억하는 그 옛날의 바람도 되지 못하고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바로 그렇게 흐리고 흐린 날, 나는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그 거리에 버려진다. 어디선가 한번은 본듯한 거리, 언젠가 한번은 옷깃을 스치고 지나간 적이 있을 법한 사람들. 그러나 이제 지도상에는 실재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만 선명하고 뚜렷하게 살아있는 장소, 지금 이곳엔 없고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추억의 책장처럼 붙박여 있는 공간, 그 틈의 여백 사이로 천천히 스며든다. 어떤 날 내가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그저 멍하니 그저 한참을 내 속의 고향으로 돌아가 마음에 세 들어 사는 집 한 채 지었다가 집 한 채 허물었다가 그렇게 맥없이 풀려있는 그런 날, 나는 그를 만나러 떠난다. 그의 손을 잡으러 떠난다.

    박인희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예측할 수도 없고 그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지만 안 갈 수는 없기에 그래도 가야 하는 길. 가도, 가도 세상은 점점 더 모르겠고 그 속에서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되뇌어 보지만 딱히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예전엔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게 되면 안개 속에 휩싸인 것처럼 미궁에 빠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환한 햇살 속에 제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헤어날 길 없는 깊은 수렁 속으로 한 발, 두 발 빠져드는 듯한 소름끼치는 악몽에 시달릴 때면 나는 늘 박인희의 이 노래를 떠올렸다.

    그래,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이다. 결국 그렇게 허무하고도 허무한 것인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가야 할 날들이 더 많이 남은 이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애늙은이 같은 말을 하고 있으면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그래도 어쩔 것인가. 인생이란 허무하고도 허무하지만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든 갈 때까지는 가 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고향이란 대상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박인희 &lt;2&gt; "님아, 님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님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물을 건너다 빠져 죽으니 혼자 남은 이내 몸은 어이할까." 옛날하고도 먼 옛날, 이제는 까마득한 전설 속의 이야기인 것처럼...
    ☆☆☆☆☆ | Pilgrimage For Art, , 박인희, 이연실
  4. 정지용


    <4>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산꽁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오늘도 메 끝에 홀로 오르니 /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
    - 정지용, <고향> 전문


    조수미. 그는 여전히 리릭 소프라노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드라마틱한 창법으로 사람을
    울리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그의 앨범 중 유독 내 마음을 사로잡는 음반은 우리의 민요와 가곡들을 한데 모아놓은 [새야, 새야]이다. 꽃, 사랑, 새, 고향 네 개의 주제로 구분된 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앨범엔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로 시작되는 <수선화>나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서 달빛 먼길 님이 오시는지"로 문을 여는 <님이 오시는지>도 있는가 하면 백남옥과 엄정행의 곡으로 기억할 만큼 인기 성악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연상되는 <동심초>나 <가고파> 같은 가곡도 실려있다. 사랑으로 언약한 인연의 부질없음과 유년에 대한 그리움을 그 노래들만큼 절절하게 그려냈던 경우가 또 있었던가. <그대 있음에>나 <그리운 금강산>도 좋지만 <새야, 새야 파랑새야> 같은 전래민요도 인간의 심성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근원적인 감성에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 귀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던 곡이 김순남의 곡으로 유명한 김소월 작시의 <산유화>와 <고향>이었다. 나는 이 시를, 시가 노래로 변한 채 불려지던 <망향>이라는 가곡으로 들었었다. 그 때는 그 곡의 작곡자였던 채동선이 누군지도 잘 몰랐던 시절이었고 다만 막연히 마음 한 자락에 와 닿는 노래의 선율과 가사에 이끌려 가끔씩 입 속으로 따라 부르곤 했었다. 이 곡의 원 가사가 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에 진학해서 현대문학사 강의를 듣고 난 후였다. 곡의 노랫말이 된 시의 원주인이었던 해방 전의 시인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던 선생님은 그가 월북시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시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채 타인의 이름을 빌어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하셨다. 그리고 그 시인의 다른 시들 이를테면 <말>과 <띠>, <별똥>, <호수>와 <바다> 그리고 <유리창> 연작, <춘설>과 <백록담>, <장수산> 연작, 박인수와 이동원의 듀엣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향수>를 소개해주셨다.

    그 시인이 '태양의 풍속'에 젖은 언어의 마술로 신 감각의 '기상도'를 그려냈던 저 1930년대의 화려한 모더니스트이자 <길>과 <바다와 나비>의 저자로도 유명한 김기림이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고의 시인'으로 극찬한 정지용이었다. 그런데 실은 내가 정지용을 알게 된 것은 그보다는 한참 전의 일이었다. 아마 그것은 윤동주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윤동주가 사숙했던 시인이 세 명 있었는데 그들이 백 석과 서정주 그리고 정지용이었다는 글을 어느 잡지에선가 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용은 1930년대 말 [문장]지를 통해 청록파를 문단에 등장시킨 산파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 당시만 해도 시에는 지용, 소설에는 태준이라는 말이 유행했다고도 한다.


    시인의 고향인 충북 옥천으로 문학답사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었고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이거나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이었을 것 같았고 궁극적으로는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거리는 곳"이거나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이었으리라.

    이보다 더 완벽한 유토피아가 또 있을까. 현실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실은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의 고향, 낙원상실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이처럼 질박하게 그려낸 작품이 또 있었던가. 나는 그때 그곳에서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면서 잠깐 '영원'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언젠가 머무른 적이 있었던 벌교와 하동 땅에서도 느꼈던 현기증이 새삼스럽게 일었던 듯도 싶다. 내가 다시 이곳을 들르게 될까. 그런 시간이 내게도 주어지게 될까. 이것이 행여 마지막은 아닌지 조바심이 났던 건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지 않던가. 그처럼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한국 시단에서 소월이 전통적인 서정시를 대표하는 국민시인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면 지용은 오히려 현대적 호흡과 맥박을 두루 겸비한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감정보다 지성을 강조한 주지주의 색채를 띤 서양 지향적인 이미지즘에 치우쳤던 그도 나이가 들면서 우리 고유의 전통의식과 뿌리 찾기에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그의 후기 시에서 언뜻언뜻 내비치는 동양적 선비의식에 기초를 둔 정신주의 경향과 실향의식은 이를 잘 말해주는 것이리라. 서양 중심에서 동양 중심으로 귀환한 그의 작품 세계는 오태석, 최인훈과 함께 한국 현대극을 대표하는 희곡작가 이강백의 극작 여정과도 흡사해서 흥미로움을 더한다.

    초기의 <파수꾼>에서 후기의 <느낌, 극락 같은>에 이르기까지 이강백이 걸어온 길은 초지일관 한국적인 전통의 동적 세계를 무대 위에 구현한 오태석이나 그 반대로 한국인의 심성에 내재해 있는 정적인 세계를 언어로 옮긴 최인훈과는 또 다른 면에서 그 폭과 깊이가 넓고도 깊다. 하기야 정지용의 시를 극찬했던 세기의 아방가르드 김기림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지 않았던가.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 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줏빛으로 젖어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두움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이들의 실향의식은 하층민 가족이 몰락하여 마침내 자신의 고향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를 선명하게 그려낸 이용악의 <낡은 집>과는 분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이용악의 시에서 고향은 자기 충족인 세계가 아니고 신비와 경이로 가득한 세계도 아니다. 그 세계에는 화해보다는 갈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삶의 터전을 부당하게 빼앗긴 뿌리뽑힌 자들의 한과 분노가 스며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용악의 고향은 같은 카프 계열의 작가였던 이기영과 한설야가 제시하는 고향의 심상과 더 가깝고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통하던 후대의 향토 시인 박용래의 작품 <연시>나 <건들장마>, <겨울밤>, <저녁눈> 등에 어려있는 고향과는 그 거리가 멀다.

    "날로 밤으로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집/이 집에 살았다는 백성들은 대대손손에 물려줄/은동곳도 산호관자도 갖지 못했니라./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항구로 가는 콩실이에 늙은 둥글소/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간엔/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털보네 간 곳은 아무도 모른다./찻길이 놓이기 전 노루 멧돼지 족제비 이런 것들이/앞 뒤 산을 마음놓고 뛰어다니던 시절/털보의 셋째 아들 나의 싸리말 동무는/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붙었으면 팔아나 먹지"/마을 아낙들은 무심코/차가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 보냈다는/그날 밤 저릎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 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노랑고양이 울어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구석에서/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그가 아홉 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북쪽을 향한 발자국만 눈 위에 떨고 있었다./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집/마을서 흉집이라고 꺼리는 집/제철마다 먹음직한 열매 탐스럽게 열던 살구/살구나무도 글거리만 남았길래/꽃피는 철이 와도 가도 뒤울안에/꿀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삶의 무늬에 아로새겨진 향의 결은 다 달라도 그 누구에게나 고향은 다 같은 고향이 아닌가.


    현상학자이자 실존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의 <들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종도 마지막으로 얻어맞자 고요는 더욱 고요해진다. 이 고요는 두 차례에 걸쳐 세계 대전을 지나오는 사이 시대에 앞서 제물로 바쳐진 저들에게까지도 미치고 있다. 단순하기만 한 것은 어느 사이에 더욱더 단순해졌다. 노상 한결 같은 것은 낯선 표정을 지으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들길이 외치는 소리는 이제 누구 귀에나 들릴 수 있을 만큼 또렷해졌다. 들어보자. 심혼(心魂)이 이야기를 하겠는가, 세계가 이야기를 하겠는가, 아니면 신이 이야기를 하겠는가. 모든 것은 한결 같은 것 속에다 대고 체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체념이라고 해서 빼앗는 게 아니다. 체념이란 주는 것이다. 단순하기만 한 것에서 뽑아 올려도 뽑아 올려도 다함이 없는 힘을 체념은 주는 것이다. 들길이 외치는 소리는 오랜 내력 속에서 고향 품에 안기고 있다."

    이를 우리의 시인 이형기는 다음과 같이 변형시키고 있다. "고향은/늘 가난하게 돌아오는 그로 하여 좋다./지닌 것 없이/혼자 걸어가는/들길의 의미.//백지에다 한 가닥 선을 그어보아라./백지에 가득 차는/선의 의미...//아 내가 모르는 것을,/내가 모르는 그 절망을/비로소 무엇인가 깨닫는 심정이/왜 이처럼 가볍고 서글픈가.//편히 쉰다는 것/누워서 높이 울어 흡족한/꽃 그늘...그 무한한 안정에 싸여/들길을 간다."<들길> 또 다른 시인 오세영의 말대로 고향은 푸근한 어머니의 품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공간인가. 그래서 세상의 고달픈 육신들은 삶에 지칠 때, 희망을 잃어버렸을 때, 외로울 때 고향을 생각하고 그 고향에 돌아가 사랑과 안식의 땅에 몸을 누이고 새로운 생의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인가.


    <5>

    오, 나와 함께 오래된 카이암으로 가요.
    그리고 현자들이 얘기하게 놔 둬요.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인생은 화살과 같다는 것.
    확실한 것은 한 가지, 나머지는 거짓이에요.
    한 번 핀 꽃은 영원히 죽는다는 것.
    - 오마르 카이얌, [루바이야트] 26절에서


    그 책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

    어렸을 때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건 분명 수수께끼였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억들은 수많은 기억의 모세포로부터 살아남은 기억들이다. 나머지 기억들은 잊혀졌다. 그런데도 그 기억들 중에는 절대로 안 잊혀지는, 잊혀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되살아나거나 내 영혼의 어느 한 부분에 강렬하고 선명하게 찍혀 지워지지 않는 잔상처럼 어른거리는 것들도 있다. 책도 그런 면에선 기억과 다르지 않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한 권의 책을 찾아 온 도시를 헤맨 적이 있다. 그렇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그 책은 지금은 작고한 1930년대의 한 아동문학가가 쓴 [대답 없는 메아리]라는 자전적인 동화였다. <꿈을 찍는 사진관>이나 <이상한 안경>, <만년 셔츠> 같은 동화와 <꼬마 눈사람>, <코끼리>, <종이 접기>, <산토끼야>, <금강산>, <태극기>, <봄동산 꽃동산>처럼 초등학교 때 음악시간이면 풍금에 맞춰 불렀던 수많은 동요들의 노랫말을 직접 쓴 사람. 그의 한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고향 마을의 소녀, 유년 시절의 첫사랑에 얽힌 이야기. 그 책을 어디 가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글쎄요. 아마 그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된 듯 싶은데.

    시내의 여러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이번엔 다시 헌 책방을 중심으로 뒤지기 시작했을 때 그 중 한 곳에서 만난 주인 아저씨의 말이었다.

    요즘은 따로 그런 동화는 안 나오는가 보죠?

    동화야 전집으로 많이 나오지 낱권으로는 출판이 안 되는 게 보통이지요. 게다가 벌써 칠십 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라면.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건 더 찾아봐야 헛수고니 그만 포기하라는 뜻을 담은 몸짓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대답 없는 메아리. 나는 왜 그 책에 집착해야 했던가. 그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은 것은 아닐까. 지나온 세월을 어찌 한 권의 책으로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난 찾고 싶었다. 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아니 그게 사실과는 동떨어진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어도,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가 처음 그 책을 보았을 때와 똑같은 책표지를 한 책을 찾을 순 없을 것이다. 나도 거기까지는 기대 안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책 속에서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거대한 파도처럼 때때로 밀려와 목이 메이곤 했다. 그래. 그 속엔 나의 역사가 숨겨져 있지. 한 개인의 역사가 온 우주와도 맞바꿀 수 없는 엄청난 무게로 숨어있지. 도저한 슬픔으로 숨이 가빠질 때면 난 스스로 그렇게 나를 위로했었다.


    서울을 떠나올 때도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뿌리가 뽑혀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아는 법이다. 힘내라.

    내 지친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아예 그 뿌리조차도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까. 밑바닥까지 내려가 샅샅이 캐내려 해도 더 이상 들어갈 수조차 없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는 메아리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억울할 것도 분할 것도 없었다. 지난 십 년간은 내겐 끝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심연이었다 여기면 될 터였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었다.

    하지만 내 영혼에 이미 인화지처럼 찍혀 각인된 지울 수 없는 흔적은 어쩌란 말인가. 난감한 일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것은 적어도 내겐 기적이라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벅찬 감격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 책을 발견한 것이다. 그토록 오랜 시간 찾아 헤맸던 그 책을 아주 우연히 고향의 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럴 수가 있나! 나는 그만 놀라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떤 전율 비슷한 떨림이 스쳐갔고 다음 순간 나는 모든 것을 잊고 너무나 행복한 충만감에 젖어들 수 있었다. 한 권의 책은 신의 계시와도 같은 거라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강소천의 [대답 없는 메아리]는 그렇게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왔다. 어쩌면 그것은 미리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만의 대답 없는 메아리를 다시 쓰고 싶은 탓일까.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도 마찬가지였지. 언젠가 '감자꽃'이라는 제목의 시로 교내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고등학교 때 친구가 있었지. 김종삼의 <북 치는 소년>을 좋아했고 프랑스의 행동주의 작가 쌩떽쥐베리를 흠모하던 해맑은 소년 같던 인상의 그가 쓴 시는 고향 동네의 어린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하얀 백지 위를 촘촘하게 채워가고 있었다.

    "흰 종이 위에 꼼꼼히 적어 내려간 너의 편지를 받던 날 갈대처럼 맑은 너의 가난과 눈물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나는 오래 침묵해야 했다 허울좋게도 문학지망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거짓 시를 써온 지 몇 해 마산이나 창원 아니 그보다 더 먼 홍제동 골목길 서성이는 별빛의 소인이 찍힌 너의 편지에는 감자꽃 꽃대궁이의 불빛으로 글썽이는 대관령 기슭 너를 기다리는 네 어머니의 노동이 뜨겁게 박혀 있었다 주워들은 문학이론을 들먹이며 내가 무슨 화해니 구원이니 시의 시대니 떠들고 있을 때 몸부림치는 강물 줄기를 따라 숨가쁘게 피었다 진 네 고향 밭 둔덕의 감자꽃들이 네 아버지의 저문 쟁기질로 나를 후려친다 아무 가책도 없이 순결도 없이 이웃들을 팔아 먹어온 나의 이 뻔뻔한 혓바닥은 백 토막 아니 천 토막을 낸다해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임을 너는 알고 있을까, 불어오는 황사바람 속에 서서 남대천 변 잡꽃들을 향하여 바람결에 쓸려 가는 네 길고 긴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토막 난 내 혓바닥은 미처 흐르지 못한 강물이 되어 헐벗은 땅 네 가슴의 시 한 구절로 피어나는데 허기진 앉은뱅이 풀 몇 송이의 뜨거움으로 너는 그렇게 손 내미는가 또 어떤 거짓말의 시를 써야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살아왔다며 한끼 밥도 되지 못하는 너의 시가 가슴 치는 날 나는 네 고향의 감자꽃들과 반갑게 악수하고 싶었다 너로 하여 풀이 되게 하는 식구들의 희망 속 시내버스 차창 밖으로 빛나는 네 고향의 불빛들을 위하여 허름한 별이 되고 싶었다 뜨거운 노래가 되고 싶었다".

    '재연에게'라는 부제가 달린 세상의 그 어떤 유명한 시인의 작품도 아닌, 어찌 보면 다소 투박하게 느껴지던 친구의 시는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때 '감자꽃'이라는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나를 한없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던 이상한 슬픔의 정체는 무어였지?


    권태응의 동시 <감자꽃>은 그때 일을 떠올리게 해. 그 시를 쓴 친구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누구보다도 시를 사랑했고 타인의 상처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그 예민하고 섬세하던 애는 고향으로 내려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까. 이젠 다 잊어버렸어. 권태응이 누군지, 그가 충청도에서 태어났는지,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님이었는지, 독립운동을 하다가 폐결핵에 걸려 서른 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지 까맣게 잊어버려서 가뭇가뭇한 기억들. 맞아. 최근에 한 문학전문 출판사에서 책으로 묶여 나온 그의 동시들을 본 적이 있어. <코스모스>, <고추잠자리>, <어린 고기> 등 등 등. 그 속에 아마 <감자꽃>도 숨어있겠지. 감자꽃, 감자꽃, 감자꽃 . . . 하지 무렵 검푸른 잎새 위로 투박한 꽃대궁을 내밀고 자줏빛으로 혹은 흰빛으로 피어나는 감자꽃. "자주 꽃 핀 건/자주 감자/파 보나마나/자주 감자/하얀 꽃 핀 건/하얀 감자/파 보나마나/하얀 감자" 하고 입 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불현듯 되살아나는 그 애 생각,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추억의 불. 몸을 웅크리면 웅크릴수록 더 강렬하게 피어나는 마음속의 불.

    정지용 &lt;4&gt;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 산꽁이 알을 품고 /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 오늘도 메 끝에...
    ☆☆☆☆☆ | Pilgrimage For Art, , 박인희, 이연실
  5. 박상옥 - 소와 목동


    <6>

    너무나 쓸쓸한 곳으로 와 버렸군요.
    우리, 그만 돌아가기로 해요.
    얼마나 기다려야 되나요?
    충분할 만큼 . . . 충분히, 충분히 지칠 수 있을 만큼 . . .
    아주 조용해졌군요. 꼭 낮잠 자는 거리 같아요.
    햇빛이 참 따뜻해졌네요. 그걸 이마에 받으며 꾸벅꾸벅 졸아보고 싶어요. 어릴 때처럼요.
    햇볕이 너무너무 따뜻해서 . . . 정말, 정말 그래서 좋아요.
    그처럼 미련하게 굴다가는 동사하기 딱 알맞을 거네.
    그렇다고 자네들처럼 무작정 돌아다닐 기력은 없네. 난 이미 늙고 병들었으니까.
    가고 싶어요. 돌아가고 싶어요.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집이 없는 사람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나나요?
    그리고 . . . 애정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추위를 견딜까요?
    - 이동하, <인동(忍冬)> 중에서

    군동


    <유동>, <뒤뜰>, <한정>, <한일>, <훈풍>, <소와 소년>, <외양간>, <언덕 위에서>, <양지>, <연자방아>, <소와 목동> 같은 박상옥의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림들을 보다보면 내 몸은 어느새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고향 마을의 입구로 들어서는 착각에 빠진다. 일본의 영화거장 구로자와 아끼라의 한 영화에서 주인공인 화가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 가듯이 나는 시골의 평화로운 논두렁과 밭이랑을 거닐고 있다.

    소 곁에 누워 상념에 잠기거나 뿔피리를 불고 있는 아이들과 햇볕 바른 초가집 안마당에 둘러앉아 집토끼들이 뛰노는 모습을 한가로이 지켜보는 동네 꼬마들, 뒤뜰에서 닭들에게 모이를 주는 젊은 처녀, 나무 밑에서 나른하게 졸고 있는 고양이와 언덕 위를 자유로이 노닐며 풀을 뜯고 있는 염소들, 삼일장이나 오일장이 서는 아주 오래된 시장 풍경이나 고무신을 벗어 던진 채 마루 위에서 한창 씨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개구쟁이 사내들,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장을 보고 있는 누나와 나이 어린 남동생, 볏짚더미 아래 모여서 놀고 있는 가시내와 머슴애들. 그런데 이들 인물의 표정은 말끔하게 지워져있다. 표정이 있다면 무심함 자체가 표정이랄까.

    그의 작품은 마치 저 30년대의 뛰어난 시조시인이었던 초정 김상옥의 <달밤>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마고자>나 <방망이 깎는 노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윤오영이 쓴 같은 제목의 수필을 떠올리게도 한다. 박상옥의 세계는 <보리밭>이나 <바위고개>, <고향 생각>, <사공의 노래>, <얼굴>과 같은 우리 가곡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세계지만 지금은 점점 사라져 가는 세계이기에 더욱 더 소중하고 귀한 세계이다.

    젊은 시인이나 소설가 중 이문재나 장석남, 한창훈이나 전성태가 고집스럽게 걷고 있는 이 좁은 길은 대로나 아스팔트가 아니고 큰 길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오솔길에 속한다. 따뜻한 체온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오는 그 적막하고 평화로운 공간은 일찍이 후배 화가인 황영성의 몇 몇 그림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조용한 삶에 대한 관조. 정적인 생에 대한 동경. 그의 그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란스럽지가 않다. T. S 엘리엇의 말처럼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되는가 보다.

    뒤뜰


    박상옥의 그림을 보다 보면 바람의 갈래에 대한 탁월한 비유를 통해 그 생리를 꿰뚫어 본 한 비평가의 전언이 생각난다. 그에 따르면 태풍이 집단으로 비명횡사한 이들의 영혼이 불길한 운명으로 한데 엉켜 원한과 증오와 미련을 악의 씨앗처럼 지상에 뿌리고 다니는 바람이라면 미풍은 오랜 병으로 앓다가 언제 죽는 줄도 모른 채 숨을 거둔 이들의 영혼이 아스라한 여운처럼 혹은 미세한 울림처럼 지상에 남겨져 있는 바람이라는 것이다.

    박상옥의 작품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삼월 삼짇날, 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환한 봄볕 가운데로 나선 남편과 아내. 아이가 제비 같은 입술을 열어 종종거리며 묻는다. 아빠, 저기 저 나무의 분홍색 꽃은 뭐예요?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대답한다. 아, 살구꽃이 피었구나. 아이는 이번엔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긴다. 엄마, 파란 풀은 다 벼인가요? 아니, 저건 보리란다. 가만, 가만, 보리가 아니고 밀이든가?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할 것만 같은 한 가족의 대화 내용을 상상해본다. 자연, 본능, 천성에 가까운 그림. 소설가 이청준에 따르면 도회의 삶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그래서 사회적이고 의존적인 삶에 가깝다면 이와 대비되는 고향의 삶은 근원적이고 감성적이며 그래서 오히려 개성적이고 자족적인 삶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보라. 러시아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비탈리 카네프스키, 헝가리의 미클로시 얀초, 폴란드의 크쥐쉬도프 키예슬롭스키, 유고의 에밀 쿠스트리차, 스웨덴의 잉그마르 베르히만, 네덜란드의 요리스 이벤스, 프랑스의 로베르토 브레송, 독일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스페인의 루이스 부뉘엘, 이탈리아의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리스, 아이슬란드의 프리드릭 쏘 프리드릭슨,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중국의 첸 카이거,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임권택까지. 박상옥은 누가 뭐라고 하든 한결같은 그 길을 따라갔던 화가였다.

    소년 입상


    <7>

    설날이나 추석 때의 귀향 인파에 매스컴은 '민족 대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세계 역사 상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 같은 일이 있기는 했지만 해마다 두 번씩 4천만 인구가 일시에 살던 곳을 떠나는 민족 대이동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 때마다 어떤 물고기가 생각난다. 해마다 가을이면 동해안의 하천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몰린다. 구름 모양의 붉은 무늬가 있고 길이가 무려 70센티에 달하는 이 물고기의 이름은 연어. 연어는 민물 하천에서 부화 되어 6센티 가량 될 때까지 거기서 자란다. 그러나 몸이 어느 정도 커지면 바다로 내려간 다. 거기에서 3년에서 5년쯤 지내며 성숙한 이 물고기는 산란기가 되는 9-11월에 자기가 자란 하천으로 어김없이 돌아와 산란을 하고 죽는다. 이 물고기가 왜 이런 습성을 가졌는 지 잘 모른다. 또 어떻게 망망대해에서 지도도 나침반도 없이 자기가 자란 하천을 정확히 찾아오는지도 알 수 없다. 물맛이 다를 수도 있고 해수의 온도로 감지할 수도 있으리라. 아니면 텔레파시를 고향 하천으로부터 받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한국인의 민족 대이동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 신기한 물고기가 생각난다.
    - 신문 사설 부분 인용

    소와 소년


    집 없는 인간으로서의 현대인. 오늘날 현대인이 처한 위기를 이 말만큼 총체적으로 대변해주는 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현대인의 더 심각한 위기는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망각했다는 데 있다.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이 가난한 시대는 이미 제 가난조차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하는 결핍마저도 암흑 속에 빠뜨리고 마는 이 불능, 그것이 단적으로 시대의 가난함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는 가장 풍요롭고 편리한 시대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궁핍하고 불행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고향'이라는 말속에는 이미 '떠나온 자' 또는 '분리된 자'의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에 안착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곳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지 고향은 아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해도 근대가 휩쓸고 지나간 어디에도 공동체적 기반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그 말이 일으키는 노스탤지어 속에는 이미 돌아가거나 돌이킬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비극적 숙명이 내포되어 있으며, 그것은 단순히 과거적 공간의 상실이라기보다는 원형적 세계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상실감이나 단절감을 의미하게 되었다.

    엘리아데는 '향수'라는 말속에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구체적인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귀향의지요, 다른 하나는 미지의 세계나 옛날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서의 이향 감정을 말한다. 인간의 본성 자체에 귀향과 이향의 이중적 감정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내던져진 심연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심연으로부터 자기를 회복하려는 갈망 또한 절실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세계의 무의미와 무질서에 맞서 의미와 질서를 복원하려는 시도는 근대의 어둠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이해한 결과가 아니냐는 반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또,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연결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고향을 탐구한다는 일은 해묵은 과거의 세계에 안주하거나 현실에 호환될 수 없는 관념을 구축하는 일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양지


    '민족 대이동'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귀향인파들을 볼 때마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도 '고향'이라는 단어에 대한 향수가 강함을 알 수 있다. 고향이라는 말이 갖는 어떤 근원성이 가고 오는 동안의 여러 가지 불편한 교통상황까지 넉넉하게 감수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마치 제가 살던 하천을 떠나 수천 킬로나 되는 넓은 바다를 여행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어 가는 연어처럼 인간 역시 타지를 방황하다가도 심신이 지쳐 휴식이 필요할 때가 되면 자신이 나서 자란 유년의 체취가 배어있는 고향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고향은 그런 의미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개체들의 안식처이자 귀소처인지도 모른다. 고향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미루나무가 서있는 동구 밖 풍경일 것이다. 우리에게 고향으로 각인된 상징적 공간은 문명화된 근대적 도시가 아니라 아직까지도 여전히 전근대적 공동체의 기반이 남아있는 시골 농촌이다. 피붙이와 살붙이로 대변되는 가족과 일가친척들 그리고 어렸을 때 같이 자란 친구들의 따뜻한 정과 온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 그것이 고도로 산업화된 문명사회 속의 현대인들에게 고향이 갖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고향이 지니고 있던 풍요로움은 오늘날 그 어디에서도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든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근대화, 산업화라는 명목 아래 자행된 개발 지상주의나 성장 제일주의는 도시와 농촌을 똑같이 황폐하고 메마른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은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으며 우리가 꿈꾸는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핀 고향은 머릿속에만 있고 실재하지는 않는 허상으로 전락했다. 현대는 가장 풍요롭고 편리한 시대이면서도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가장 궁핍하고 불행한 시대라는 말과 현대인의 심각한 위기는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고향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다는 점은 이와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 바다로 간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 하천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언덕 위에서


    일찍이 서양의 어느 시인은 "고향은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동경으로서의 영원한 모성"이라고 쓴 바 있고 "아주 할 수 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는 말도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주어도, 주어도 다함이 없는 고향의 따뜻하고 포근한 옛 이미지를 회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들면 고향"이라는 말처럼 나서 자란 곳 그래서 유년에 얽힌 추억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이라는 고향의 예전 개념은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제는 고향이 아닌 타지라도 자신이 정을 주고 살게 되면 그곳이 새로운 고향이 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제 2의 고향인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향의 개념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해도 고향이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의미는 변함이 없다고 해야겠다. 그것은 인간이 결국엔 마지막으로 회귀할 수 있는 최후의 거점이자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이 느끼는 고향상실에 대한 위기의식을 단순히 평화롭고 아늑했던 과거적 공간의 상실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원형적 세계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상실감이나 단절감으로 해석하고 이에 따른 진지하고 사려 깊은 성찰과 반성적 사유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그들이 내던져진 심연의 깊이로부터 자신을 회복하고 추스릴 수 있는 정신적 지주로서의 마음의 고향을 되살려할 때이다.

    연자방아

    외양간

    한일

    박상옥 - 소와 목동 &lt;6&gt; 너무나 쓸쓸한 곳으로 와 버렸군요. 우리, 그만 돌아가기로 해요. 얼마나 기다려야 되나요? 충분할 만큼 . . . 충분히, 충분히 지칠 수 있을 만큼 . . . 아주 조용해...
    ☆☆☆☆☆ | Pilgrimage For Art, , 박인희, 이연실
  6. 한대수, 10대 후반 사진학교 시절


    "조르바씨, 이야기는 끝났어요. 나와 같이 갑시다. 마침 크레타엔 내 갈탄광이 있어요. 당신은 인부들을 감독하면 될 겁니다. 밤이면 모래 위에 다리를 뻗고 앉아 먹고 마십시 다. 내겐 계집도 새끼도 강아지도 없어요. 그러다 심드렁해지면 당신은 산투리도 치고 ......"

    "기분 내키면 치겠지요. 내 말 듣고 있소? 마음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리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리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제임바키코, 하사피코, 펜토잘리도 출 수 있 소. 그러나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 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 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고향을 그리워 말라.
    어디서 왔는가 묻지 말며, 어디로 간들 두려워 말라.
    항해가 곧 우리의 고향이니, 끝없이 가는 이 여행길을, 삶을 사랑하라.
    바람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되, 바람은 자유롭지 않은가?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 [그리스인에게 고함] 중에서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 . . . . .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중에서

    뉴욕에서 밴드 '징기스칸'을 할 당시


    한 대수. 그 이름 석자는 '영원한 자유인'의 초상이다. 적어도 내게는 '자유'라는 명제 앞에서 그만큼 적당한 음악인이 얼른 떠오르지가 않는다. 동시대의 음악인이었던 김민기나 서유석, 양병집과는 또 다른 멋을 풍기는 남자. 그에게선 길들여지지 않은, 길들여질 수 없는 원시적인 야성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의 음악 역시 정갈한 단정함이나 조용한 서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그의 음악은 거칠다. 그의 텁텁한 음색만큼이나 거친 그의 음악은 그러하기에 인간 본연의 심성을 자극한다. 본능에 호소하는 노래, 사회적이고 정치적이기까지 한 그의 노래의 메시지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까닭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그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하루 아침>이나 <하룻밤>, <나그네 길> 같은 노래를 부르겠는가. 대중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행복의 나라>나 <바람과 나>, <물 좀 주소>도 귀한 곡이지만 그가 아니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노래 <옥의 슬픔>이나 <고무신>, <아들아 내 아들아>, <미치게 해>가 있기 때문에 한 대수는 비로소 한 대수답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의 후배 음악인 중에서 아마도 그를 흉내내거나 그의 길을 좇아갈 수 있는 가수는 강산에 정도가 아닐까 싶다. 기행의 정도나 사상의 폭과 깊이로 따지면 [죽음의 한 연구]의 작가 박상륭이 친구로 어울릴법하다.

    한대수 자서전


    정통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국내 모던 포크의 창시자로, 한곳에 정착할 줄 모르는 유목민적 기질의 아웃사이더로 혹은 음악과 사진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 예술인으로 각인된 그의 피는 끓어오르는 용암처럼 뜨거웠을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났다는 불행한 이유 하나만으로 그 천재성이 파묻힌 예술가들 중에는 김승희나 박남철 같은 타고난 시인들이 있다. 한 대수도 그런 위인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불행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세계의 그 수많은 국가 중에 하필 이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한반도의 남쪽 땅에서 출생신고를 마쳤다는 것뿐이다.

    그는 천성적으로 삶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음악을 하는 목적이 인간의 좁은 관념을 넓히고 마음의 창문을 여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은 기억상실로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인생 자체가 추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에게 전부였던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아픔은 영원하고 오직 죽음만이 이를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그는 또 모든 것은 관념이기에 자연의 소리가 최고의 음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다. 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는 음악은 섹스와 같아 욕망이 불탈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신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정리된 정신병자임을 자처하고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자살충동과 고통과 혼돈과 고독과 정체성의 위기로 점철됐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이다.

    항상 집이 없었던 사내. 자신의 몸이 아프고 죽어가는 기계이고 삶에서 겪는 고통이 노래라는 엔진의 연료라고 자위하는 사내. 시는 발이 두 개 달린 몸체라 홀로 설 수 있기에 시가 너무 훌륭하면 곡을 붙일 필요가 없다고 간주하는 사내. 염세적인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음악은 최고선의 창작품이자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신과의 대화라는 신념을 소유한 사내.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와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주의가 세계의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고 경고하는 사내. 이런 그에게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한대수 1집


    나는 그의 노래들 중에서 양희은이 객원 보컬로 참여한 <아무리 봐도 안 보여>와 <그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작곡으로 느껴진다는 <침묵> 그리고 "내 눈은 부딪쳤네. 생존 경쟁, 나의 투쟁, 인공위성, 만리장성, 금은보석, 썩은 비석"식의 신랄한 가사가 매력적인 <마지막 꿈>이나 "야! 이상하다. 그치! 저 밑에서 무엇들 하고 있는 거지?'로 이어지는 <천사들의 담화>, "다섯 살에 나는 우물에 빠졌었다. 그 암흑과 공포는 아직도 남아있다."는 독백이 인상적인 <공포>라는 곡들을 오래오래 음미하면서 자주 듣고 싶다. 그 곡들은 내겐 어떤 면에서 굉장히 생소한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람과 나>라는 곡은 한 대수가 불러 전혀 다른 색다른 맛을 선사한 <희망가>나 <목포의 눈물>처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어떤 말못할 슬픔이나 전율 같은 감정의 기류가 내 마음속에서 출렁이게 했던 노래였다. 그 섬광과도 같은 씁쓸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대수 2집


    끝 끝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
    아 자유의 바람 저 언덕 위로 물결같이 춤추는 님
    무명 무실 무감한 님! 나도 님과 같은 인생을 지녀볼래 지녀볼래
    물결 건너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無目) 여행하는 그대의 인생은 나 인생은 나
    - 한 대수, <바람과 나> 전문


    한대수 3집


    지금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내 속에 있는 어떤 체질이나 성향이 그토록 이 한 곡의 노래에 미치게 만들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대책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의 처지와 공명을 한 걸까, 아니면 나이를 한 살 두 살 더 먹게 되면 세상이 그만큼 조금 더 투명하게 보일 줄 알았다가 오히려 점점 더 모르겠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착잡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메마른 대지의 목이 타는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한줄기 생명수처럼 거리를 걷다가 혼자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도 "무명 무실 무감한 님!"의 대목에 이르러서는 가슴속에서 사무친 그 무언가가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는 듯 싶어 언제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무명 무실 무감한 님이라. 인간은 본래 이름이 없고 그렇기에 잃을 것도 없고 그래서 느낄 것도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무명 무실 무감한 님은 바람과 같은 삼라만상의 자연의 흐름에 비견되는 신과 같은 완전한 존재가 아닐 것인가. 어차피 인간은 희로애락애오욕의 칠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이거늘.

    그러나 그러면서도 늘 외물(外物)에 현혹되지 않는 흔들림 없는 평심(平心)을 꿈꾸는 미련한 존재, 그 꿈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불쌍하고 가엾은 존재, 그래서 더 어여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 나 역시 "뭇 느낌 없이 진행하는 시간 따라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바람처럼 살고 싶었던 걸까. 노자나 장자의 한 구절처럼, 금강경이나 유마경의 위대한 가르침처럼 자유롭게 이 생을 건너가고 싶었던 것이리라.

    한대수 4집


    한 대수의 삶은 1883년 그리스의 변방이었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나 일생을 인간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모든 것에 대한 투쟁과 해방, 그리고 조국의 독립에 바친 한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주인공 조르바의 자유분방한 삶에 대한 경배이자 흠모이다. 박영한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작가들 역시 한번쯤은 그 자유로운 사고에 매료당해 자발적으로 조르비스트가 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하는 그가 바로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와 부처를 영혼의 스승으로 삼았던 이 위대한 부정의 작가는 이 세상의 모든 유혹 가운데 가장 무서운 유혹인 희망을 정복하라고 서슴없이 주장했던 사람이다.

    소설 속에서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가 작가로 설정돼 그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실존인물인 조르바를 만나 광산 채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학자와 예술가의 삶으로 크게 구분되는 작품의 내용과는 달리 어쩌면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분신인지도 모른다. 아니, 틀림없게도 조르바가 곧 카잔차키스고 카잔차키스가 바로 조르바였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과 작가의 삶의 행동양식과 세계관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여러 작품들을 입말에 가까운 유려한 우리말로 옮겼던 성실한 작가이자 뛰어난 번역가인 이윤기는 그의 산문집에서 이 희대의 희랍 소설가를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일정한 도덕률의 틀 속에서 온전하게 제 몫의 삶 누리기를 마다하고 떠돌이 앞소리꾼이 되어 영혼의 자유를 외치던 거인, 자기 내부에 잠재하는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드높이고 그 드높이는 과정에서 조우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문학적 표정을 부여하는 참으로 초인적인 작업을 시도한 거인이 있다. 신을 통하여 구원받을 게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문학은 존재와의 거대한 싸움터, 한두 마디로는 싸잡아서 정의할 수 없는 광활한 대륙을 떠올리게 한다."

    한대수 5집


    조르바는 화자인 '나'가 정신의 사유와 마음의 힘을 중시하는 문명인에 가깝다면 몸의 신성함을 최우선의 가치로 인정하는 원시적인 자연인이다. 그는 이 세상 자체가 수수께끼이고 인간은 야만스런 짐승에 지나지 않는 야수이면서도 신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갓 스물의 매춘부에게 유혹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의사대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그녀를 인간이 아니라고 규정하는 사람이다. 그의 '자유'에 대한 개념은 자신이 다루는 악기인 생명 없는 사물에까지 확장된다. 물건도 백년이 넘으면 마음을 갖는다거나 그러하기에 물건에도 감정이 깃들이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악기가 원하지 않는 전조를 감지하면 그는 함부로 부주끼를 뜯지 않았다. 자신이 손에 든 물건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임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카찬차키스의 말을 직접 빌어 묘사하면 조르바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이자 아직 모태인 대지로부터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남자고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언어, 예술, 사랑, 순수, 정열의 의미를 쏟아내는 시시껄렁한 노동자이다. 작가는 또 쓰고 있다. 조르바는 삶에다 나날이 처녀성을 부여하는 자라고. "힌두교도들은 구루 사부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떠올렸을 것이다." 작가의 자서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노트르담의 꼽추]로 유명한 배우 앤소니 퀸이 나무와 돌과 새, 물과 여자와 별이 어우러진 꽃으로 뒤덮인 초록빛 해변에서 야성의 환희에 휘둘려 정신없이 춤을 추고 노래하며 절규하는 장면으로 오래오래 기억되는 동명의 영화에서처럼 그는 또 뇌의 기능이 더할나위 없이 거칠고 대담하여 그 정신은 누군가가 건드릴 때마다 불이 되어 타오르는 사람이다. 이윤기에 의하면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잡한 사유의 의미망으로 생각하는 대신 쾌도난마하는 기세로 삶을 직면한다.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서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거라 호언장담하는 사람, 그가 바로 영원한 자유인인 조르바이고 니코스 카찬차키스며 유전적으로 조르비스트로서의 기질을 유감없이 물려받은 한국의 음악인 한 대수가 아닐 것인가.

    한대수 7집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 유행했던 히피 문화를 몸소 체험한 한 대수는 히피 문화가 일깨워준 것은 '인간에게 다른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안 살아도 저렇게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들국화의 전인권처럼 마약이 없었으면 지미 핸드릭스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같은 위대한 음악이 나올 수 없었다고 단정적으로 확신한다. 그의 확신처럼 근대국가의 감시와 통제 혹은 통제권력의 시민 길들이기는 개인의 인권이 국가의 편의에 의해 수시로 침해받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남한의 야만적인 현실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돼 온 보이지 않는 폭력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리고 공공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마약을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포크가 이 땅에 들어온 지 30주년이 되는 해인 1999년 포크계의 음악적 부부로 통하는 한 대수와 양희은은 '아주 특별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콘서트를 열고 정담을 나눴다. 그 자리에서 한 대수가 포크는 자신의 세계관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노래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그러한 개인적인 진실함이 남들을 동감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반면 양희은은 개인사와 사회사가 무관하지 않고 개인의 역사는 민족의 역사,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의 고독이나 슬픔, 이별을 노래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그가 속한 사회의 현실을 비껴갈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

    나는 한국 포크사의 산 증인들인 두 거목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은 얼핏 들으면 서로 다른 얘기 같지만 실은 똑같은 내용을 담은 발언이었다. '내 노래는 사회적이지만 내 행동은 은둔자와 닮은 것 같다'고 털어놓은 한 대수의 용기는 개인의 자유가 진정성을 획득할 때 보다 폭넓은 단위 이를테면 사회나 국가, 민족의 자유를 끌어오는 원천적인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는 2001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한 대수]라는 독립영화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2000년 여름, 쉰 셋의 한 대수를 화면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가 지금까지 일궈온 음악세계를 개인적으로 찬찬히 되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구현됐다 할 지라도 하여 만약 그 작품을 보았더라면 나 자신 영원한 자유를 꿈꾸는 한 음악인의 초상을 더 진지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대수 8집

    한대수, 10대 후반 사진학교 시절 "조르바씨, 이야기는 끝났어요. 나와 같이 갑시다. 마침 크레타엔 내 갈탄광이 있어요. 당신은 인부들을 감독하면 될 겁니다. 밤이면 모래 위에 다리를 뻗고 앉아 먹고...
    ☆☆☆☆☆ | Pilgrimage For Art, , 언더, 한대수
  7. 김수영


    1.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혁명가란 저 푸른 하늘 너머에서 이 더러운 세상으로 불어오는 한 줄기 미풍 같은 것이라고 김 산은 말했던가. 문단 안팎에서 김수영이 화제다. 그와 관련된 신문 기사가 잊을 만하면 다시 지면에 소개되고 그로부터 시적 영감을 받아 시를 쓰게 됐다고 고백하는 시인들이 늘고 있으며 꼭 시인이 아니더라도 직, 간접적으로 자신의 글쓰기에 김수영이라는 시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얘기하는 문인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을 깊이 있게 연구한 철학자들의 저서도 하나, 둘 소개되고 있다. 바야흐로 '김수영 신드롬'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김수영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는 그 열풍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불고 있다.

    김수영은 새롭게 '율려 학회'를 세우고 생명사상을 기반으로 한 신문화운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는 김지하만큼이나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뭇 작가나 시인들에게 상상력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육체적으로는 몇 십 년 전에 이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그가 아직도 사람들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인 자신이 평생의 화두로 삼고 온몸으로 밀고 나간 시정신 때문이리라. 당대의 현실에 대한 치열한 자기 반성과 성찰, 그를 통해 얻어진 자유에 대한 열망은 그를 단순한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지사적 풍모를 갖춘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부정의 올곧은 지식인상은 권모술수와 곡학아세가 난무하는 현 세태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김수영의 매력은 세상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는 지성인의 양심에 대한 매혹에 다름아니다.

    김수영의 시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그가 만년에 썼다는 마지막 작품 <풀>이다. 이 작품은 풀이 민초들의 끈끈한 생명력과 강인한 삶을 대변한다는 일차적인 해석을 넘어 여러 평자들에 의해 새로운 시각에서 아주 다양하게 읽혀지고 있다. 혁명의 정당성과 고독함을 노래한 <푸른 하늘을>과 작가와 지식인의 양심에 대해서 토로한 <瀑布>와 <눈>은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려있을 만큼 잘 알려진 작품이다.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의 일절 '모래야 나는 얼마만큼 적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 정말 얼마큼 적으냐 ......'는 방송드라마에서도 인용되어 한동안 선풍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누이야 장하고나!>에 씌어 있는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는 시구는 김지하로 하여금 <풍자가 아니면 자살이다>는 명문을 탄생하게끔 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했다. 김지하는 김수영의 시구를 잘못 빌어 쓴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창조적 오인이자 착각으로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로 시작되는 <사랑의 變奏曲>과 <거대한 뿌리>의 의미 심장한 구절들 이를테면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 . . .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등은 김수영의 시 정신의 한 극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 처음 김수영이라는 시인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은 <사랑>이라는 짧은 시를 통해서였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그러나 너의 얼굴은/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번개처럼/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은" 이 시의 어떤 면이, 나를 매혹시켰던 것일까. 아마도 사랑이라는 개념과 그다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번개'라는 말, '불안'이라는 말, '금이 간 너의 얼굴'이라는 표현이 그로테스크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탓이리라. 그랬다. 그에게는 그처럼 나른하고 편안한 일상에 묘한 충격을 던져주는 낯선 설렘 같은 것들이 숨어 있었다. 도발적이다 못해 퇴폐적이기까지 한 출렁거리는 시어들. <국토>의 시인 조태일의 표현에 의지한다면 그의 시는 '고여있는 시'가 아니라 '움직이는 시'인 셈이다.

    그렇게 나는 <孔子의 生活難>의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사물의 수량과 척도와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과 같은 구절들과 <강가에서>의 말미를 장식한 "나같이 사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도 가련한 놈 어느 사이에 자꾸자꾸 소인이 돼간다 속돼간다 속돼간다 끝없이 끝없이 동요도 없이"의 시구들 그리고 <엔카운터誌>에 등장하는 부분부분들 이를테면 "나는 지금 시간과 싸우고 있는 거야 ... 시간은 내 목숨이야 ... 안 빌려주어도 넉넉하다. 나도 넉넉하고 당신도 넉넉하다. 이게 세상이다."를 만났다. <나의 家族>에 등장하는 마지막 행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를 소리내어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고 <絶望>의 순금처럼 빛나는 시행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를 발견했을 때는 환희에 가까운 희열에 몸을 떨었다.

    시인 채호기와 연극평론가 안치운을 통해 가난한 마음이 가로지르는 <봄밤>의 절제와 영감을 소개받았고 소설가 김영하로 인해 <등나무>와 <거미>같은 작품들을 다시 눈여겨보게 되었다. 1980년대 초에 [자유인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김수영 평전을 쓴 시인 최하림처럼 최근에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의 책이름으로 김수영의 새로운 철학적 읽기를 시도한 김상환으로부터 <먼 곳에서부터>라는 시를 그전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이름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무수한 잡지로부터 <풍뎅이>와 <등나무>, <그 방을 생각하며> 같은 작품들을 다시 읽게 되었고 언젠가 EBS 교육방송의 '문학기행' 코너에서 방영된 시인의 일대기를 보다가 <달나라의 장난>과 <헬리콥터>, <거리> 등의 시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러나 나는 그의 충실한 독자가 아니었다. 이 상과 기형도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의 왠지 모를 거부감과 부담감이 그에게도 있었다. 앞의 시인들처럼 그의 시가 내 속으로 조금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내 속의 인식의 나무가 자라는 시간과도 일치했던 것일까. 그랬을 터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흙 속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싱싱한 가지를 뻗어 올려 풍성한 잎새와 꽃과 열매를 피워 올리는 일생의 주기와 마찬가지로 나의 세계관이 성장하는 지점에 그들의 시가 놓여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敵>이나 <性> 같은 시를 남긴 시인이, <거대한 뿌리>에서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고 일갈한 시인의 기개가 어찌 나긋나긋하고 감상적인 시에만 탐닉하던 나같이 어리석고 겁 많은 인간에게 쉽게 들어올 수가 있었을 것인가. 일찍이 나는 남의 눈치 안 보고 이렇게 마음껏 다소 독선적일 수도 있을 자신의 생각을 시라는 양식으로 변주시켜 호통칠 수 있었던 천재형의 시인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다. 아, 박남철과 김승희의 초기시가 그랬다면 그랬을 것이다.

    김수영이 남긴 또 하나의 시에 해당하는 주옥같은 잠언들, <일기초>와 그 유명한 <반시론>, <시여, 침을 뱉어라>,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열 개> 등을 읽고 있으면 절로 숙연한 느낌에 고개가 숙여짐을 막을 도리가 없다. 또한 <시>, <언어>, <시인>, <작가>, <지식인>, <창작의 자유>, <혁명>, <일>, <사랑>에 대한 지적이고 차분한 그러나 꿈틀거리는 마그마를 그 속에 간직하고 있는 직선적이고 단호한 단상들 그 몇몇의 면면을 적어두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의 시작노트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시는 미지의 정확성이며 후퇴 없는 영광이다"라거나 "시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거나 혹은 "시인은 영원한 배반자다. 배반을 배반하는 배반자, 이렇게 무한히 배반하는 배반자다"와 같은 굵직굵직하고 정직한 육성들과 언어에 관해 언급한 "모든 언어는 과오이다. 나는 시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와 지식인의 사명을 적나라하게 토로한 "자기의 죄에 대해서 몸부림은 쳐야 한다. 몸부림은 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민감하고 세차고 진지하게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또는 온몸의 피가 펄펄 살아서 거꾸로 솟구쳐 오르는 듯한 "죽음이 없으면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면 죽음이 없다"는 자신의 연애시와 관련한 고백들 말이다.

    생전에 문학평론가 김 현은 <자유와 꿈>이라는 글에서 김수영의 시 세계를 다음과 같은 몇 줄의 짤막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김수영의 시적 주제는 자유이다. 그것은 그의 초기 시편에서부터 그가 죽기 직전에 발표한 시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끈질긴 탐구 대상을 이룬다. 그는 그러나 엘뤼아르처럼 자유 그것 자체를 그것 자체로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시적, 정치적 사상으로 생각하고 그것의 실현을 불가능케 하는 여건들에 대해 노래한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그의 反詩論은 언어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서 자유를 읊으며 또 자유를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와 자유, 감동과 직관을 날카롭게 결합시킨 최초의 시인이다 . . . 그의 반시론은 박용철의 생명시론이 그 현대성을 획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말의 진정한 의미에서 초현실주의의 정신에 투철한 것이라고 진술할 수도 있다."

    김수영의 작품 세계를 기리고 그의 정신을 위무하는 그 많은 시들 중에서 나는 일찍이 국악의 대중화에 힘쓴 김영동이 그의 음반 작품집에서 화가이면서 무용평론가이기도 한 시인 김영태의 시를 빌어 고즈넉한 정조로 낭랑하게 낭송하던 음성을 잊을 수 없다.


    花園(화원)에 가도 마음 달랠 꽃이 없어
    나는 徒步(도보)로 그대, 무덤 곁으로 간다
    무덤은 멀다 노을 아래로
    노을을 머리에 이고
    타박타박 駱駝(낙타)처럼 걸어간다
    내가 그대에게 줄 것은
    식지 않는 사랑뿐이라고
    걸으면서 가만히 내 반쪽 심장에
    끓이는 더운물뿐이라고

    - 김영태, <김수영을 추모하는 저녁 미사곡> 전문


    1949년 후반기 동인으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시집을 함께 내면서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절친한 벗 박인환의 안이한 시정신을 질타한 산문 <말리 서사>와 '전위문학의 불온성'이라는 주제를 놓고 신선한 감수성으로 재무장한 당시의 촉망받던 논객 이어령과 벌였던 첨예한 논쟁으로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김수영을 다시 세상 속으로 놓아보내기 위해서 나는 그의 짤막한 아포리즘 하나와 시의 한 토막을 염치없게도 빌려본다. "...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무한의 연습과 함께"<아픈 몸이>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자유는 여하한 행동도 방종이라고 볼 수 없지만, 사랑이 아닌 자유는 방종이다."<사랑>

    강은교


    2.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스물 넷에 첫 시집을 낸 시인이 있다. 그 시집의 제목은 [허무집]이었다. 살아온 나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은, 그야말로 앞길이 구만리같이 창창한 나이에 허무라니, 문학소년 시절에 나는 그의 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시인이 왜 그토록 젊은 나이에 그토록 짙은 허무의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허무가 삶의 한 양식이 될 수 있음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허무와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삶의 한 양식이 될 수 있음을 그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십대의 전부를 어쩌면 나 역시 그 둘과의 싸움에 모조리 바쳐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 속에서,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숨어있는 그리하여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정체불명의 그 무언가가 바로 나의 삶을 이끌어가던 보이지 않는 힘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강은교는 자유의 시인이다. 그러나 그의 자유는 김수영과는 달리 허무로부터 비롯된다. 김수영의 자유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이 혁명이라면 강은교의 자유는 그것이 정치적인 함의를 포함하고 있을 때조차도 바람의 기구를 타고 지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유영한다. '바리데기의 여행노래'가 되어 이 행성과 함께 '자전'한다. 생의 비의를 품고 '창의 이쪽'에서 '순례자의 잠'이
    되어 저 깊은 대지에 뿌리박은 나무의 뿌리를 적시며 지하로, 지하로 흐른다, 흘러간다.


    부부가 혼인을 한다. 그리고 딸아이를 여섯이나 낳는다. 그러나 일곱 번째도 딸이자 부모는 그 딸을 버린다. 그 아이가 바리데기다. 부모가 병들자 그들이 버린 딸을 찾는다. 바리는 부모를 살릴 수 있는 약수를 찾아 서역으로 떠난다. 길 위에서 구원자들을 만나 여러 고난을 이겨낸다. 고생 끝에 약수를 지키는 무장승을 만나 약수를얻는 대가로 혼인한다. 부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장승과 함께 약수를 가지고 돌아온다. 상여에 실려나가는 부모를 약수로 살린다. 바리공주는 북두칠성과 인도국왕 보살과 만신의 몸주가 된다. 무조신이 된다.

    - 김태곤 편, [한국 무가집], 집문당, 1971


    바리데기의 시 쓰기. 왜 바리데기인가. 하필 바리데기인가. 현대시 중에서 생태시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들 예컨대 생태계 및 환경 파괴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고발하는, 문명 비판적 요소와 자연 예찬의 경향들 그리고 양자 사이의 관계에 천착하여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고자 하는 시의 유형들 그 너머에 버려진 여자로서의 여성이 있고 여성의 몸을 빌어 새롭게 탄생하는 어머니가 있고 어머니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자연이 있고 병적 증후가 농후한 자연과 병에 걸린 그 자연의 죽음을 껴안고 뒹구는 말의 결, 살의 말로서의 시 쓰기가 있다. 그야말로 징후와 기원으로서의 신화적 구음, 밑그림으로서의 신화가 존재하는 것이다.

    강은교를 만나러 가는 처음 자리에 바리데기가 서 있다. 진정한 여성시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처녀시집인 [허무집]을 보라. [허무집]의 안쪽에 실려있는 바람의 시편들을 보라. 황천무가 중 '바리데기'의 일절 "게 누가 날 찾는가 날 찾을 이 없건마는 어느 누가 날 찾는가 베려라 베리데기 던져라 던지데기 깊은 산중 퍼버려라 퍼버려라"를 인용하면서 시작된 <바리데기의 여행노래> 연작과 "동쪽에서 서쪽으로 네 뼈가 불려가는 소리"를 듣고 있는 <황천곡조> 연작들은 산중에 버림받은 오구 대왕의 일곱째 딸 바리데기가 죽은 부모를 살려내기 위해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오는 줄거리를 모티프로 한 무가 그 자체이다. 강은교의 시들을 분석한 본격적인 평문인 <허무의 선험과 체험>이라는 글에서 김병익이 밝힌 바대로 "그의 허무는 샤머니즘의 어휘들이 차용되기도 하고 동양의 불교적 윤회사상이 짙게 표현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상의 원천은 오히려 서구의 정신문맥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파스칼적 명상법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강은교의 허무에 대한 분석과 검토는 우리의 허무에 대한 개념에 새로운 영역을 제공해주는 것이며 그 허무의 미덕을 통념적인 그것과는 또 다른 상상력의 세계로 확대시켜 주는 것이다."

    강은교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 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 살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 수건 거머쥐고 /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들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 땅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 강은교, <풀잎> 전문


    강은교의 초기시는 주로 허무, 죽음, 소멸 등 내면적 관념의 세계 속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사라지지는 않지만 흩어지고 무너지는 비극적 존재의 모습을 응축하고 있는 모래 이미지, 육체마저 버리고 떠나는 혼, 그 혼을 싣고 다니는 바람 이미지는 이와 같은 존재의 무너짐, 부서짐의 의미를 잘 드러내주는 소재들이다. 그의 상상력의 저변엔 생명력의 상징인 '살'이 생명을 거두고 부서지게 하는 불가역의 시간적 힘 '바람'에 의해 해체되고 죽음을 표상하는 건조한 '모래'로 바뀌어 가는 모티프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모티프는 '그림자', '갇힌 바다' 등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갇힌 의식, 생에 대한 짙은 허무감을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적 죽음을 통한 재생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녀의 시에서 자주 사용되는 '자궁'의 이미지는 모든 생명성을 잠재하는 성스러운 공간이며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질적 세계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죽음의 모성이라는 주제와 무덤에서의 그리스도 부활로 나타나는 요나 콤플렉스와도 관련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배후에 자연과 인간의 교감, 그 경계의 벽을 허무는 넘나듦의 소통과 화해의 자리가 마련된다. 그의 대표작인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우리가 물이 되어>이 그렇고 "떠나고 싶은 자/떠나게 하고/잠들고 싶은 자/잠들게 하고/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사랑법>이 그러하며 "바람은 늘 떠나고 있네/잘 빗질된 무기의 구름떼를 이끌면서/남은 살결은 꽃물든 마차에 싣고/집 앞 벌판에 무성한/내 그림자도 거두며 가네"<순례자의 잠>가 또한 그렇다.

    죽음과 허무에 의해 지배되어 오던 강은교의 의식세계는 80년대에 이르러 [빈자일기]나 [소리집], [붉은강] 등의 시집에서 사회와 역사 속에서 숨쉬고 있는 한 개인의 삶으로 확장되어 간다. 내부에서 외부로 그 방향성이 확대되어 갈 때 이 시인은 냉정한 관찰자의 태도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또한 초기시에서 우주에 던져진 한 고독한 개인의 실존적 삶을 암시해주던 '바람' 이미지가 이제 개인의 죽음, 즉 궁극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지역과 저 지역, 이 사람과 저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단절 극복의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강은교는 초기의 관념적이고 내면적인 세계에서 후기로 접어들면 점점 더 현실적인 세계로 시 의식을 변모해나가고 있는데 이러한 변모과정 속에서도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타자와 자아가 서로 단절되어 있다는 고립 의식이다. 죽음 의식이나 유대감을 갖고자 하는 지향성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근원적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녀는 더 더욱 만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만남의 대상은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즉물적인 외피를 벗어나 훨씬 더 포괄적 지점에 위치한 하나의 '대우주'다. 그리고 그러한 만남의 자리가 개인적인 포즈를 취하든, 사회적 태도를 견지하든 나는 결국엔 다시 그가 처음 떠났던 곳으로 되돌아올 것임을 믿는다. 회귀와 순환, 그의 무의식 저편엔 앞의 두 단어로 매개되는 시원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열망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김수영 1.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혁명가란 저 푸른 하늘 너머에서 이 더러운 세상으로 불어오는 한 줄기 미풍 같은 것이라고 김 산은 말했던가. 문단 안팎에서 김수영이...
    ☆☆☆☆☆ | Pilgrimage For Art, , 언더, 한대수
  8. 이철수 - 바람


    3.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바람부는 날, 나뭇잎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멀리서 와 다시 멀리 흐르는 강물처럼 시절은 쓸쓸히 흐르지
    때로는 깊고 고요하게 때로는 빠르고 거칠게 거짓 없는 제 모습
    그대로 흐르고 또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도 그렇게 흘러 사는 것
    인생은 제 마음이 그려내는 흐름과 같아서 강가에 서면
    내 마음 더욱 쓸쓸해 가을 강가에서 가을 강가에서 말이 없네
    강물은 마음처럼 쉼 없이 흐르고 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 이철수, <흐르는 강물처럼> 전문

    이철수 - 바람부는 날, 나뭇잎들


    누가 이 사람을 보라, 이 텅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차 있고 어딘가 모자란 듯 보이면서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보라. 그는 낯익은 소재와 쉬운 말로 목판에 그림을 그리고 짧은 글을 새기고 있는 이 시대의 판화작가이다. 예술적 영혼에 상처받은 21세기 자연인 혹은 21세기 문화인, 아니 그는 목판을 새기는 일이 밭을 가는 일이나 진배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땀흘리는 자유인이다. 시, 서, 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문인화의 형식 위에 오히려 그 고정된 틀을 훌훌 털어 버리고 불교적 선화(禪畵)가 보여주는 관조의 미학을 일찌감치 터득한 장인으로서의 화가. 그러나 그가 일구어낸 관조의 미학엔 건강한 노동의 숨결과 체온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이철수 - 세한의 경치


    판화 달력과 엽서 시리즈로 이미 세인에게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이지만 그의 예술가로서의 직업적 출발은 저 암울했던 1980년대 한 출판사에서 찍어낸 판화시선을 통해서였다. '풀빛시선'으로 명명된 그 타오르는 태양처럼 강렬하고 새벽의 여명처럼 짙고 푸르던 당대의 양심적인 시인들. 김지하의 [황토]와 강은교의 [붉은 강],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최하림의 [겨울꽃]을 나는 거기서 만났다. 그리고 그 시집의 첫 장에 어김없이 꽂혀있던 이철수의 작품들. 그때 나는 강경대와 김귀정과 노수석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이 순결한 목련처럼 하늘하늘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던 91년 오, 유월 정국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숙이고 땅만 쳐다보고 다니던 겉늙은 학생이었다.

    이철수 - 도심의 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리뷰]나 [문학동네] 같은 잡지에 실린 그의 작품들을 눈 여겨 봐왔지만 투박하지만 그래도 번쩍거리는 광채가 빛나던 시절은 아무래도 처음 민중미술계에 발을 들여놓던 1980년대 초반이 아닌가 내 나름대로 가늠해볼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80년대 말 충북 제천의 박달재 밑에 새롭게 둥지를 튼 이후 선보인 선과 일상의 세계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의 판화는 첨예한 날카로움을 버리고 대신 부드럽고 둥글어졌다. 소재 역시 밤, 길, 시장, 논밭, 새순, 낙엽, 지는 해처럼 초기 벽화에서 출렁거리던 정치적인 색채에서 벗어나 드넓은 대자연의 삼라만상 속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철수에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1990년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를 시작으로 95년 '마른풀의 노래'를 거쳐 2000년 '이렇게 좋은 날'에 이르는 초기와는 달라진 그의 판화 여정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이철수 - 인간세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를 손쉽게 21세기에도 여전히 종교적인 자유로움을 구가하는 일개 예술인으로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내 안에 있는 것이니 그대 안에도 있으리라 그대 안에 있는 것이라면 내 안에도 있겠지 그런 그리움으로<우리 사이>"나 "앉아 햇볕을 쬐다보니 알겠다 내 몸이 내 집이고 내 감옥인 줄<해바라기>" 혹은 "앓고 난 아내가 머리 묶고 일어나 앉았다 조용하다 무얼 보시는가 묻지 못했다<등뒤에서>"와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길>" 같은 판화의 한 귀퉁이에 새겨 넣은 잠언들은 단순한 삶의 초월이나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발견되는 어떤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이철수 - 하늘로 들고나는 문


    그것은 아마도 비루하고 더러운 이 세계를 향한 초극의 의지일 터이다. 그에게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자유의 기운 혹은 생명의 열기는 바로 이 초극의 의지와 연결돼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흑백구조의 선명한 명암대비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적인 독일의 여성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초기의 <북 치는 앉은뱅이>나 <하얀 저고리>의 삽화와 <한>의 표지화, <바람찬 날에 꽃이여, 꽃이여>도 좋지만 나는 그보다도 "사람들이 내 사는 골짝을 절터라카기도 하고 절골, 보지골카기도 않나? 그 말이 그 말인데, 허허 . . . 뭐라꼬 주께든지 내사 편하고 좋으이 됐다. 한 분 들 앉으마 도통 나오기가 싫으이께네, 그말또 맞기는 맞다. 안 그렇나?"는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가 돋보이는 <집터>나 "밤마다 도시의 불빛이 밝고 탐조등이 휘돌고 있었지만 짐승의 손에 이끌려간 어린 소녀, 젊은 처녀는 쉽사리 하늘나라의 천사로 사라져가곤 했습니다."는 가슴아픈 사연이 그림과 함께 두 눈을 아프게 찔러오던 <세속도시의 이야기>, "바람 있습니다 잊고 지내던 이에게서 소식 오듯이 그렇게 오시는 바람입니다 나뭇잎들 나부끼는 대로 우리 마음도 따라 흔들리며 서 있게 되는 그 바람은 그대로 마음 풍경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나뭇잎도 흔들고 당신의 옷깃도 흔들고 가난한 세상도 흔듭니다. 가을, 바람소리 있는 날 그대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길고 긴 연서의 내용과 흡사한 <바람 부는 날 나뭇잎들> 같은 90년대 초의 작품에 더 마음이 쏠리는 형편이다.

    이철수 - 하월곡


    또 90년대 중반에 그 동안의 작품을 한데 모아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 . .]라는 제목으로 학고재에서 발간한 판화집을 굉장히 아끼게 됐다. 법정 스님과 시인 곽재구, 미술사가인 이태호 선생의 발문이나 추천글도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 그 책에 실린 작품들 가령 <바람> 연작이나 <소리> 연작, <인간세(人間世)> 연작과 <그릇> 연작을 대하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의 판화에서 곧잘 신영복 선생의 체취나 김용택 시인의 입김을 감지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인가.

    이철수 - 현대인

    이철수 - 그릇

    이철수 - 소나무

    이철수 - 바람 3.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바람부는 날, 나뭇잎들은 다 어디로 가는가 멀리서 와 다시 멀리 흐르는 강물처럼 시절은 쓸쓸히 흐르지 때로는 깊고 고요하게 때로는 빠르고 거칠게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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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장욱진 - 자화상


    4. 머물지 못하는 고독한 여행자의 꿈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을 술로 휴식하면서.

    - 장욱진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 중에서

    장욱진 - 마을


    "나의 지나간 40여 년은 오직 그림과 술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그 휴식이었다."고 고백하는 화가가 있다. 감동적인 화가란 확실히 '예술'에 대해서 말하는 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 말하는 자라는 점을 실증시켜 준 화가가 있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평생동안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노마드적인 삶을 구가했던 화가가 있다. 장욱진은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찬 소탈하고 순수한 일생을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한 예술인이었다. 그의 그림은 경쾌하고 평면적이고 상징적이다. 자연을 응축하고 단순화시키는 조형방법론에 천착했지만 그의 작품엔 동양의 희화적인 정서인 해학과 웃음이 넘쳐난다. 장욱진은 그러한 웃음으로 인해 자유롭다. 그 자유로움은 다른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원초적이고 본원적인 것이다.

    장욱진 - 나무와 까치


    장욱진은 작은 그림을 좋아했다. 조형의 극치 혹은 조형의 초극이라고 할까. 일명 '보리밭'이라는 부제가 붙은 <자화상>부터 시작해서 <자동차 있는 풍경>과 <자전거 있는 풍경>, <나무 있는 풍경>, <정자가 있는 풍경>, <과수원>, <우산>, <춤>, <두 사람>, <세 사람> 같은 작품들이 한결같이 다 그렇다. 그의 작품은 하나의 풍경으로 흐른다. <시골 풍경>, <마을 풍경>, <언덕 풍경>, <강변 풍경>으로 시작해서 <소 있는 풍경>이나 <호랑이 있는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의 풍경에 대한 천착 자체가 작은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순진무구한 풍경 속에 일상의 공간인 집이 등장하고 그 집이 터를 잡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등장한다. 집과 관련된 작품들도 <부엌과 방>, <앞뜰>, <모기장>, <멍석>, <툇마루>, <평상>, <엄마와 아이들>처럼 굉장히 많다. 그들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리라. 그렇게 소소한 일상적 소재들이 <해, 달, 산, 집> 혹은 <해, 달, 산, 아이> 같은 우주적인 소재를 불러온다. 아이를 연작으로 한 <나무와 아이>, <새와 아이>, <마을과 아이>, <호랑이와 아이>가 그렇고 <나무와 산>, <나무 위의 새들>, <나무와 집> 부류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장욱진 - 나무가 있는 풍경


    수평적인 공간에서 수직적인 공간으로의 중심이동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상승과 하강의 미학이라고 할까.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그냥 단순한 것이 위대하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공기의 흐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아이의 환희에 찬 둥글둥글한 얼굴엔 분명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황홀한 꿈이 내재해 있다. 인간의 심성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그 꿈은 유럽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인 샤갈이나 미로의 작품에서 흔히 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중섭이나 박수근, 김환기의 어떤 그림에서도 발견되는 독특한 요소이다. 나는 그 꿈에 자주 현혹되고 세뇌 당한다. 그러나 그러한 이끌림은 기분 좋은 이끌림이다. 늘 가까이 두고 아껴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 비밀로 가득 찬 세계를 엿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압축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얼굴> 연작이고 불교신자인 아내의 법명을 그대로 따온 <진진묘(眞眞妙)>이다. 진진묘라, 이 세상의 모든 진실한 것은 말 그대로 묘한 법인가. 그래서 참 진리는 찾기 어려운가보다. 마치 연꽃 한 송이를 들고 빙그레 웃었던 석가모니의 화두를 이해한 총명한 제자 가섭의 신비한 미소처럼 작품 속의 여인은 이심전심의 염화미소를 볼 안 가득히 머금고 있다. 그 여인은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의 화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장욱진 - 앞뜰


    장욱진이 그의 화폭에 담아내는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화려한 비상의 꿈은 그 꿈이 찬란할수록 고독하고 슬프다. 외롭게 서 있는 인물에서 풍겨 나오는 그리움이나 우수, 둥지로 모여드는 새의 이미지에서 감지되는 회귀본능과 향수 등이 그의 작품에 배어있는 서정적인 자취이자 흔적이다. 그의 작품이 후기로 갈수록 일반 서민들의 꿈과 애환을 담아낸 민화의 속성과 닮아가는 것도 그 때문일까. 머물지 못하는 여행자처럼 작업하는 거처를 경기도 덕소에서 서울 명륜동으로, 명륜동에서 충청도의 수안보로, 수안보에서 다시 경기도 신갈로 수시로 옮겨다녔던 당시 정황을 꾸밈없이 드러낸 그의 다음과 같은 육성은 그러하기에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장욱진 - 자동차가 있는 풍경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12년 전부터 아예 서울을 버리고 이곳 한강이 문턱으로 흐르는 덕소에 화실을 잡았다. 나는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덕소의 비를, 덕소의 달을, 덕소의 바람을, 덕소의 모든 것을 얘기해준 다. 그만큼 나는 덕소를 사랑한다.

    - 덕소 시절, 1974년 9월


    새벽 3시엔 항상 일어나 그림을 그려요. 그림을 그리다 재미가 없으면 붓을 놓고 4년 전 내가 제작한 초당인 관어당에 나와 잉어 먹이를 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이 시간 그 림 구상을 하지요.

    - 명륜동 시절, 1979년 4월


    수안보는 이상해. 거기는 이제 가도 타향 같지 않아요. 아직도 좋아해. 엄마는 수안보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고행했다고 지금도 그러지. 사람은 서로 돕는 건데. 나, 서울에서는 그 사람 없이는 꼼짝달싹도 못해. 얼이 빠져 가지고. 근데 수안보에서는 나한테 기댔지 요.

    - 수안보 시절, 1987년 7월


    난 죽음에 대해 두려운 게 없어요. 자기 명대로 사는 거예요. 이제 일흔 하난데 어떻게 될 지 모르지. 내가 전에 엉터리 같은 소리로 산다는 건 소모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가 구 박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엉터리지만 사실이에요 . . . 오래 사는 게 장한 것은 아니나 생명 줄일 수는 없는 거고 기능 없으면 죽어버리는 게 좋아. 없어지는 게 낫다구. 내 기 능은 그림 그리는 거니까 죽는 날까지 그려야죠, 쉬다가 그리다가.

    - 신갈 시절, 1987년 7월


    장욱진 - 자전거가 있는 풍경

    장욱진 - 자화상 4. 머물지 못하는 고독한 여행자의 꿈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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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김광석 4집


    육체 속에 갇힌 나의 영혼이여 너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너의 등에 깃털 달린 날개 있어 너보다 밝은 그곳으로 날아오를진대
    이곳의 어두운 낮을 무엇 때문에 좋아하리오
    - 조아성 벌레, <이데아>에서 -

    형제여, 바다는 거칠다 우리의 바다는 거칠다
    - 자파르 파니히, <하얀 풍선> 중에서

    누가 이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했나
    얼마나 많은 피눈물이 흘러 강을 이루었나
    - 메르세데스 소사 -


    오늘날 대부분의 시는 눈을 위해 쓰여지지만 귀를 위한 시도 엄연히 존재한다. 종이 위에 활자로 쓰여진 시가 작가와 독자 사이에 개인적인 교신을 갖는데 비해 음유시는 그 생명이 다수 사이의 공감 즉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데 있다. 시인은 우주와 교감하고 만인의 심금을 울린다. 오르페우스가 그랬고 백수광부의 처가 그랬다. 음유시에는 항상 '민중'이란 말이 따라 다닌다. 소리에는 국경도, 계급도, 남녀의 구분도, 언어의 장벽도 없는 탓에 사람들 가슴 깊은 곳에 바로 가서 닿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무명시인과 무명가수들이 남긴 노랫가락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까닭은. 음유시인들은 그 노래를 모아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며 나누어주는 이들이다. 왕이나 귀족, 성직자와 같은 지배자 중심의 역사가 있는 반면 그의 반대편엔 민중으로 대변되는 피지배자들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그 민중의 역사는 세계의 전역에서 수많은 노래로 불려져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건너온다.

    예지의 서양시인 빌헬름 버틀러 예이츠가 그의 시 <술노래>의 첫 구절을 빌어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고 말한 것처럼, 동양의 시선(詩仙) 이 백이 <대지의 슬픔을 위한 술노래>에서 '술은 금술잔에 이미 넘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마시지는 말아라. 우선 먼저 내가 당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리니,'라고 읊었던 것처럼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그의 운을 받아 한국의 국민시인 소월 김정식이 <님과 벗>에서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로 끝맺었듯 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와 같이 아주 자연스럽게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속으로 스며든다.

    보통 TV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부분의 노래들은 일시적인 유행에 의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정신을 잃게 만드는 반면 당대의 뛰어난 시에 선율을 붙여 부르는 음유시인의 노래들은 그 생명력이 길다. 그것은 그들의 노래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대중음악과는 달리 한 자아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여 자신을 발견하는 길로 인도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샹송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프랑스의 대표적 음유시인이자 무정부주의자인 조르주 브라상스는 비용과 엘뤼아르, 아라공의 시를 노래했고 좌파 지식인인 벨기에의 가수 자크 브렐과 정치학을 전공한 모나코 태생의 레오 페레와 장 페라는 사회주의 성향이 짙은 가수이며 <죽도록 사랑해>의 가수 프란시스 카브렐은 녹색당 소속의 지방의원인가 하면 사르트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던 줄리에뜨 그레꼬 역시 남미의 반독재 시위대 앞에서 콘서트를 여는 저항활동의 기수이다. 감미로운 샹송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이브 몽땅이나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던 장 자끄 골드만마저도 <붉음>이라는 메시지가 강한 노래를 선보이기도 했다.

    비단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 걸쳐 사회적 메시지를 대중 속에 깊이 뿌리 내리려는 의식이 투철한 민중가수들이 존재해왔다. 독일의 한스 바이더나 캐나다의 부르스 콕번, 터키의 쥘푸 리바넬리, 스페인의 유이스 아크, 포르투갈의 조제 아폰주, 러시아의 불라트 오쿠자바, 알제리의 아미드 바루디, 앙골라의 봉가 쿠엔자, 남아공의 미리암 마케바와 압둘라 이브라힘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의 북부 바스크 지방 출신의 음유시인 파코 이바녜스는 칠레의 유명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스무 살에 쓴 <스무 개의 사랑의 시와 한 개의 절망의 노래>나 19세기 말 모데르니시모 운동의 선구자였던 루벤 다리오의 <봄에 부르는 가을의 노래>에 곡을 붙여 즐겨 불렀었다. 그는 또 1936년 스페인 내란 때 희생된 페데리고 가르시아 로르카의 옛친구이기도 한 대시인 라파엘 알베르티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20세기의 파란 많은 굴곡의 역사로 인해 스페인과 중남미에는 그 어느 곳보다도 음유시가 많이 불려졌었다.

    많은 전쟁과 극심한 정치적 변동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위해 투쟁을 하면서 입은 많은 상처들이 노래에 생생하게 반영되어 민중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그 노래의 주제는 '사랑'과 '조국'이다. 투쟁의 역사는 상처의 역사다. 아니, 상처의 역사가 곧 투쟁의 역사이리라. 그리고 그러한 투쟁은 투쟁으로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전위된다. 볼리비아 출신의 음유시인 호르헤 테이예르는 "그 어떤 시도 불의를 뒤집을 힘은 없다. 하지만 시는 우리에게 그 어떤 고통에도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했고 그러한 고백은 "나의 목소리는 여러분의 목소리가 되고 싶다. 마치 여러분의 목소리가 내 것인 것처럼."이라 말했던 스페인의 음유시인 루이스 에두아르도 아우테의 간절한 바램과도 이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광석 추모앨범


    동양의 경우는 어떠한가. 혜강의 글 <성무애락론>은 중국의 음악사상사, 나아가 예술사상사에서 고대 중국의 유가와 도가가 음악을 바라보았던 기본적인 관점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하고 매우 의미 있는 사료이다. 주인과 객의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글의 요지에 따르면, 음악에는 슬픔이나 즐거움이 따로 없다. 소리에 밝은 자는 그 소리가 아무리 미묘해도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낼 수가 있으며 마음의 미세한 변화도 소리의 높낮이, 강약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소리와 마음이 모두 몸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길흉을 미리 알지 않았을까. 감정이 악기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이미 여러 악기와 지방 음악이 각기 고유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음악에는 자연히 정해진 애락(哀樂)의 정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음악은 사람을 울리기만 하지 웃게 한 적은 없다. 예로부터 풍속과 민심을 바꾸는 데는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한 것도, 또 공자가 몹쓸 음악은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모두 여기서 기인한다. 결국 음악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정치가 평화로울 때의 음악은 안온하고 즐거우며, 망해가고 있는 나라의 음악 소리는 애수에 차 있고 비탄에 빠져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한 나라가 평화로운가 혼란스러운가는 정치하기에 달렸으며 음악은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고전 [예기]의 <악기편>에는 음악에 대한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있다. "모든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게 된다. 안에서 감정이 움직이기 때문에 소리가 되어 나타난다. 소리는 글을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음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은 그 나라의 정치가 잘 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지러운 나라의 음악은 원망과 분노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성(聲)에서 음(音)이 비롯되고 음에서 악(樂)이 나온다는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자고로 소리만 알고 음을 모르는 자는 금수와 같고 음만 알고 악을 모르는 자는 서인에 가까우며 악을 아는 것이 비로소 군자라고 했다.

    음악은 늘 그 시대의 모습과 사회상을 대변해왔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한 나라가 혼란에 빠져있을 때에도 음악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일깨워주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가수가 아닌 시인의 목록에 그 이름이 올라있는 밥 딜런은 "이 세상에는 사랑타령 외에도 중요한 것이 있다"는 단 한마디 말로 이 모든 정황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다. 또한 음악에서의 '조화'와 '분별'을 강조한 [주역]의 <계사전>을 보면 가장 위대한 음악은 쉬운 것이고 가장 위대한 예술은 간단한 것이라는 간이(簡易)의 정신이 드러나 있다. 그럴 때만이 악자낙야(惡者樂也),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이 음악을 즐겁게 접하고 들을 수 있는 것이리라. "음악은 인간의 영혼 그 자체이다. 모든 예술은 인간의 영혼을 닮아간다. 인간의 영혼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과정이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

    김광석 추모앨범 [가객]


    1.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정호승 시, 김광석 곡 <부치지 않은 편지> 전문


    [김광석 앤솔로지 - 다시 꽃씨 되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앨범이 발표되고 연이어 그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열렸다. 생전에 그와 친분이 있던 동료 가수들이 나와 그의 노래들을 한 곡 한 곡씩 불렀다. 죽은 자의 음성에 산 자의 음성을 덧입혀 새롭게 탄생한 박학기의 <잊어야 한다는 이유로>와 <외사랑>를 시작으로 <사랑한다는 이유로>의 김장훈 그리고 권진원의 <변해가네>가 이어졌다. <서른 즈음에>를 부르던 장필순은 곡의 말미에 눈시울을 붉혔고 <그날들>을 열창한 안치환은 떠나간 벗을 떠올리며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합창했다. 이소라나 한동준, 강산에, 조규찬, 윤도현 같은 동료 후배 가수들은 저마다 그에 대한 그리운 추억 한 자락을 앨범의 말미에 끼워 넣고 있다. 그만큼 그가 보고 싶다는 뜻일 터이다. 그들에게 가수 김광석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김광석 다시부르기 1


    나는 이 가수를 알고 있다, 고 말하는 순간 그는 곧 사라진다. 그가 사라진 저쪽은 아득하다. 너무 아득해서 손을 내밀면 점 점 더 그는 내 곁에서 멀어진다. 멀리 달아난 그리하여 내 눈앞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그가 가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그것이 궁금할 때가 있다. 살아 생전에 나는 김광석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그의 콘서트 장에 가본 일도 없다. 그렇지만 그의 노래는 나의 노래가 되어 늘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의 노래와 음유시인, 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나온다면 아마 그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그일 것이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장 미셸 푸코가 "21세기는 그의 시대가 되리라."고 예언했던 질 들뢰즈가 자신의 집 이층 베란다에서 투신 자살을 감행한 그 며칠 후에 그의 부고 기사가 신문에 실렸었다. 평생동안 위반과 탈주 그리고 머물지 않는 유목민의 생활을 꿈꾸던 한 철학자의 죽음의 진상이 베일에 싸였던 것처럼 가수였던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여전히 판명되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는 아마도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므로 이 가수의 죽음을 알고 있지 못하다. 이 가수의 죽음을 알고 있지 못할뿐더러 이 가수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노래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 시절의 노래로부터 시작해서 동물원 시절의 그의 곡과 솔로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의 그 아름답게 빛나던 곡들을 말이다. 사람은 가고 노래는 남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노래가 남아있는 이상 사람도 남아있는 것이다.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내 마음이 외롭고 춥고 쓸쓸할 때 비오는 오월의 거리를 지나다가 문득 어디선가 들려오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이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순간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가 따로 있지 않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지고 현실의 세계인 차안과 꿈의 세계인 피안이 몸을 섞는 것이다. 아니면 그가 떠난 후에서야 그의 노래가 가수의 육체를 빌려 덧없는 이 세상을 떠도는 것일까.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그가 남기고 간 노래들 이를테면 노래를 찾는 사람들 시절의 <그루터기>와 동물원 시절의 <거리에서> 그리고 솔로로 독립한 후 발표한 <나의 노래>와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나무> 등은 그의 대표곡이 됐지만 아무래도 그가 서른 세 살의 젊은 나이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비밀이 담긴 앨범은 그의 4집 음반이었을 것이다. 4집에 수록돼 있는 비교적 잘 알려진 <일어나>나 <서른 즈음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음을> 외에도 <회귀>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혼자 남은 밤>들을 듣고 있으면 '아! 이 남자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고 만다. 그가 생존해 있었다고 해도 그 이상의 완성도 높은 작품은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수 김광석의 모든 것은 4집에 고스란히 용해돼 있다고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한마디로 그의 음악인생의 결정체이자 고갱이에 해당하는 이 앨범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형적인 한국의 음반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제작자의 책임? 그 앨범을 발매한 음반회사의 책임? 아니면 그의 가치를 몰라본 대중들의 책임?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그렇게 진정한 음악인 한 명을 어이없이 잃어버렸다. 물론 그의 죽음의 사유가 음반의 실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능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 제작한 결과물이 일반인들에게 버림받았을 때 의식 있는 예술가라면 틀림없이 좌절의 깊은 수렁 속으로 침몰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가 입은 심적 타격은 의외로 커서 아마도 헤어나기 힘든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했을 지도 모른다.

    예술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노래도 그런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그의 사후에 비로소 빛을 본 라이브 실황공연을 담은 [노래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을 대변해주고 남음이 있다. 그의 육성은 진솔하다 못해 평범한 비범함이 무엇인지를 일러주고 있어 어떤 외경감마저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야말로 삶의 단계에 있어 최고의 경지일 것이므로.

    김광석 [노래 이야기]


    그는 정규 앨범 도중에 문득 [다시 부르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음악여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업과 잊혀진 음악인들의 명곡들을 재조명함으로써 그가 앞으로 가야할 길의 좌표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그의 동료였던 안치환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지만 음악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가 되살려낸 양병집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의철의 <불행아>, 한 대수의 <바람과 나>, 김목경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그 자체가 그 이전에는 그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려 하지 않았던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 작업이다.

    비운의 작곡가 윤명운이 쓴 노래들이 한영애를 통해 뒤늦게 빛을 보거나 반대로 이주원과 전마리의 한 생애에 걸친 고독한 항해가 결국은 세인에게 잊혀지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면 김광석의 고군분투는 절친한 벗이었던 안치환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맞물려 이제는 한국의 대중음악계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기록돼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객 - 김광석이 남기고 간 노래]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그의 추모 앨범에서 <희망의 노래>의 류금신과 <불나비>의 김영남 그리고 <살다 보면>의 권진원이 부르는 <바람꽃>과 <이름 없는 들풀로 피어>, <내 사람이여> 같은 곡들이 고요한 파문을 남기는 까닭은 아마 그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김광석 [인생 이야기]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한 명은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를 좋아했었고 또 한 명은 신촌 블루스 출신의 정경화를 좋아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동물원 시절의 김광석을 좋아했었다. 김광석을 좋아했던 친구가 즐겨 불렀던 애창곡은 <그날들>이었다. <그날들>에서 감지되는 삶의 한 부분을 미리 훔쳐본 자의 예정된 운명이 <부치지 않은 편지>로 옮아간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는 슬며시 웃어버린다. 부칠 수 없는 편지도 아니고 부치지 못한 편지도 아닌 왜 하필이면 부치지 않은 편지였을까.

    그것은 생명공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유전자 지도에 명시된 프로그래밍 된 인간의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의 사진에 인화된 사람 좋은 그 웃음에서 나는 인간의 의지나 이성으로는 어찌해볼 도리 없는 불가항력적인 허무의 뿌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뿌리는 암세포처럼 그의 생애 속으로 깊고 너르게 확장되고 만 곤고(困苦)한 삶의 뿌리이다.

    허진호는 그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때 이르게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 겉늙음의 징후와 조짐들을 놀랍도록 예리하게 포착해냈지만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인간의 삶은 이미 어느 정도는 정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념이 결코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면 고즈넉한 곳을 혼자 걸으며 그의 노래를 부를 때처럼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는다. 그것은 그가 가야하고 내가 가고 또 우리 모두가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인생길, 미만(未滿)한 안개 속에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피도 눈물도 없이 막막하고 막막한 춥고 고단한 사육제의 나날들이기 때문이다.

    안치환 [Nostalgia]


    김광석은 긍정과 부정 사이에 존재한다. 아니, 그 사이를 시계추처럼 되풀이해서 오간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반문하다가도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왔는 걸'이라고 자위하면서 일면 초탈한 자만이 보일 수 있는 여유와 관조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안치환처럼 첨예한 비판적 인식을 통해 불편부당한 역사나 사회에 철저하게 개입해 들어가지 못하고 세속과 신성의 경계를 영원히 떠도는 비극적인 중간자처럼 문 앞에서 끊임없이 서성거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안치환이 자신의 인생관을 그 특유의 뚝심으로 긍정의 삶 쪽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비해 김광석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부정의 긍정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부정의 긍정이란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세계인식이 형이상학적인 존재론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나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 순간에 말라버리지' 혹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오직 슬픔만이 돌아오잖아'라거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스쳐 가는 의미 없는 나날들 두 손 가득히 움켜쥘 순 없잖아'와 같은 노랫말에도 보이듯 그는 궁극적으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세계관의 소유자이다.

    그러하기에 그는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고 탄식하거나 '외롭게 나만 남은 이 공간 되올 수 없는 시간들 빛 바랜 사진 속에 내 모습은 더욱 더 쓸쓸하게 보이네'라고 우울해하는 것이다. 그 우울함이 지나쳐 극에 달하면 거리를 거닐며 노래를 불러봐도 내 슬픔은 환하게 밝아지는 눈물로 일순 전위될 뿐 결국은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라는 극단적인 자기다짐 내지는 자기최면으로까지 확장되고 마는 것이다. 부정적인 인식의 극대치까지 솟아오른 자에게는 이제 <끊어진 길>만이 보일 뿐이다.

    슬픔의 음유시인 이무하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통해 고백한 "높푸른 하늘 희고운 구름 먼 산허리 휘돌아 흐르는 강물 아무 말 없어도 이젠 알 수 있지 저 부는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 . . 저 부는 바람에 실려 가는 향긋한 꽃내음 내 깊은 잠 깨우니 나도 따라 가려네 그 길 끊어진 너머로 나는 가려네'와 김지하의 시를 빌려온 <회귀>의 다음과 같은 가사를 보라.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검은 등걸 속 애틋한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저 꽃들은 가네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만 뒤에 남기고 기인 기다림만 여기 남기고 젊은 날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흙으로 가네 봄날은 가네 그 빛만 하늘로 오르고 빛을 뿜던 저 꽃들은 가네"

    안치환 [good luck]


    안치환은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으며 김광석은 일단 그 길의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그 막다른 골목은 김광석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지만 그 의지마저도 실은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김광석은 선택함으로써 다시 선택당했다.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면 그곳엔 4차원 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인간의 유한한 시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신천지가 펼쳐질 것이다. 그곳은 5차원이나 혹은 6차원의 세계일까? 선으로 이루어진 1차원의 세계와 면으로 각이 진 2차원적 세계를 거쳐 입체가 빚어내는 3차원의 세계를 통과하면 4차원의 세계가 나타나듯이. 3차원의 세계에서 공간이동을 감행한 인간은 시간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4차원의 세계에 닻을 내리지만 그 세계엔 미래가 저장돼 있기에 매 순간 변화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하지 못하고 붙박이처럼 고정되는 순간 인간은 시지프스의 일생처럼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일에 매달리고 만다.

    안치환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맥을 충실하게 이어가야 하는 사람이고 김광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는 그 색깔이 다른 동물원의 전통을 따라가야 했던 사람이다. 그들은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였지만 그렇다고 쌍둥이처럼 한날 한시에 태어난 운명 공동체는 아니었다. 그들이 선택했던 길은 그러하기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고 그러한 차이가 오히려 그들을 결속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김광석은 죽었고 안치환은 살아있다. 안치환의 행로에 김광석이 모두 다 들어앉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지점에서 그 둘은 하나가 된다.

    김광석은 그의 몫을 안치환에게 주고 갔다. 안치환은 김광석의 그림자를 떠맡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아 안았다. 안치환의 노래엔 김광석의 숨결이 녹아있다. 안치환의 어깨와 등허리에 김광석은 찰싹 달라붙어 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안치환과 김광석은 짝패인가. 그들이 짝패라면 그것은 너무나 희귀해서 앞으로는 그 어디에서도 접하기 힘든 드문 사례로 남을 것이다.

    김광석은 안치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김광석은 안치환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김광석은 안치환이 아니고 김광석이 된다. 반대로 김광석은 안치환이 아니라고 말해 버리면 김광석은 안치환의 옷을 껴입게 된다. 그들은 따로 또 같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안치환은 언제나 죽음 쪽에 한 발을 딛고 있는 사람이다. 생은 그 자체로 순진무구하기에 사람의 마음이 현악기의 줄과 같아서 스치면 소리를 내고 울 듯이 진심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그 마음은 언제든 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김광석 4집 육체 속에 갇힌 나의 영혼이여 너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너의 등에 깃털 달린 날개 있어 너보다 밝은 그곳으로 날아오를진대 이곳의 어두운 낮을 무엇 때문에 좋아하리오 - 조아성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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