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ile On Main St.
이 앨범의 역사적? 예술적? 우수성에 대해 평론가 풍의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떠오르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이불 위에 누워서 반쯤 잠이 덜 깬 채로 이 음악을 들었을 때,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음악을 하려하는지, 왜 음악이 없으면 안 되는지 너무나 치열하게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코스모스
관련기사/웹사이트

내가 무언가를 결정짓게 만든 계기가 있다면 그것을 말하는 게 더 나을성싶다. 하나의 밴드를 말하고 싶다면 이것이다.

beat happening (1985/K)
얼마 전 미국으로 녹음 엔지니어링 공부하러 몇 년 전 떠났던 친구가 결혼차 한국에 올 때 수십장의 음반을 선물로 내게 안겨줬다. 모두 K Record 음반들이다. 좀처럼 난 음악을 찾아서 듣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이것들은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 중 한 밴드 때문이다. 그건 K Record 사장이기도 한 멤버가 리더인 비트 해프닝(Beat Happening)이다. 나에게도 다른 편애하고 영향받은 음악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결정짓게 만든 계기가 있다면 그것을 말하는 게 더 나을성싶다. 하나의 밴드를 말하고 싶다면 이것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접하게된 것은 그 보다도 나중의 일이고 거기에서 어떤 음악적인 여러 시도들을 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아직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서 나를 선뜻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jamboree (1988/K)
이 밴드가 허클베리핀의 현재까지의 음악 성향이나 스타일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밴드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그 당시 나의 여러 상황과 맞물려 중요했다. 우리나라에 매니아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밴드를 처음 접하게 된 건 1996년쯤인 것 같다. 막 나의 밴드를 시작할 당시였지만 곡을 쓴다는 것은 많이 낯선 일이었다. 내가 듣고 자란 음악은 어릴 땐 라디오에서 항상 흘러나오던 80년대 팝음악이었고 좀 더 자란 후에는 메탈이 전부였으니, 앞에 것은 하고싶지 않은 음악이었고 뒤에 것은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접하게된 것은 그 보다도 나중의 일이고 거기에서 어떤 음악적인 여러 시도들을 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아직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남아서 나를 선뜻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난 생략에 대해서, 생생함과 그것의 힘에 대해, 내 안의 욕망에 대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충격 속에 고민했다.

black candy (1989/K)
그때 만난 것이 이 밴드, 비트 해프닝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색, 어떻게 저런 단순한 비트를! 할 정도의 드럼, 일관된 약한 퍼지톤의 기타, 그리고 단순하다 못해 어이없는 편곡. 드럼이 드물게 여자이며 박자는 녹음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가고, 베이스는 아예 있지도 않고 심지어 보컬은 음치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어이가 없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충분히 좋다는 것이다. 가짜인 것들에 대한 진짜의 유머, 당당함. 재기발랄을 조롱하는 선명한 어떤 것. 무엇보다 당시 내게 끼친 영향이었다. 전에 없던 충격이고 당황이었다. 뭐랄까, 아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난 생략에 대해서, 생생함과 그것의 힘에 대해, 내 안의 욕망에 대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충격 속에 고민했다.
입혀졌던 옷들을 하나씩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어 이제 난 내가 재단한 나의 옷을 입고 싶어진 것이다.

dreamy (1991/K)
입혀졌던 옷들을 하나씩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어 이제 난 내가 재단한 나의 옷을 입고 싶어진 것이다. 그 이후에 비로소 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그 순간의 연희동 옥탑방을 있지 못한다. 이곳 현실 속에서 내 자신 단벌의 가난한 재단사가 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요즘 나는 다른 고민을 한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의 윤곽. 그 것을 채우고 있는 무늬들, 희미하고 엷은 무늬들에 대해서.

you turn me on (1992/K)
요즘 나는 다른 고민을 한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의 윤곽. 그 것을 채우고 있는 무늬들, 희미하고 엷은 무늬들에 대해서. 시간이 흘렀고 다시 그 음악을 들어본다. 그 때처럼 한번에 나를 흔들 어떤 것을 기대하는 내가 어리석다.
# Beat Happening 디스코그라피
- Beat Happening (1985/K)
- Jamboree (1988/K)
- Black Candy (1989/K)
- Dreamy (1991/K)
- You Turn Me On (1992/K)

김수철 1집 (1983 / 신세계음향) 수록곡 : Side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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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장의 음반] |



내 한 장의 음반
Pink Floyd [ The Wall ]
||||| 남상아 | 3호선버터플라이 보컬, 기타 |||||
여름이 가기 전부터 나는 겨울의 추위를 걱정한다.
나는 항상 불안을 안고 있다.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는 나의 이상이다.
나는 언젠가는 썩을 혀와 언젠가는 매장될 심장을 가지고 언젠가는 배반할 사랑을 한다.
나는 고뇌를 미화하는 낙관적 노래들을 무시한다.
음, 울림의 완벽한 조화와 혹은 불협은 나에게 생명을 깨워내는 극한의 자극을 준다.
적과 친구들 역시 흥분과 갖가지 종류의 재미를 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공간에 퍼즐 조각들을 맞는지 안 맞는지도 확인할 수 없으면서 던져 넣는 것 같은 느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이 싸우기도 하고 서로 대화하고, 그러는 와중 혹 이해되는 동안 그 가슴이 피를 뿜어대는 음악들이 있다.
Pink Floyd의 [The Wall], 유명한 앨범이다. 사실 이 앨범은 오래 전에 잃어버려서 곡들도 모두는 기억할 수 없고 지금 다시 들어 볼 수도 없지만 그 느낌만은 강하게 기억이 난다. 정말로 선혈을 뿜어대는 곡이 있는가 하면, 가슴으로 삭이면서 속으로 끊임없이 우는 곡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나에게 이 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앨범은 없었다. 나는 감동했고 나에게 너무 와 닿았기에 충격이었다.
특히 이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Mother' 라는 곡이다. "엄마, 그녀는 나한테 위험할까요? 엄마, 그들이 폭탄을 떨어뜨릴까요?……" 사회와 인간이 그 존재를 지탱해 나가는 길에 일어날 그 모든 불확실한 위협들에 대해 그것들의 우주적 의미를 확신할 수 없고, 그러므로 거부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는 무력함. 자신의 신, 또는 'mother'에게 조언 - 신뢰할 수 있는 가에의 의문은 차치하고 - 을 구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적막하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이러한 느낌과 너무도 상통하는, 그 아픔을 너무도 멋지게 형상화한 이 노래가 나에겐 더욱 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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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 장의 음반
Cream [ Live Cream Vol. II ]
|||||성기완 | 뮤지션, 시인||||| 
기억나는 앨범이 많지만, 굳이 이 한 장의 앨범을 꼽은 것은, 이 앨범이 나를 록의 세계로 인도한 첫 앨범, 다시 말하면 '관문'에 해당하는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을 처음 들은 건 아마도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때가 아닌가 싶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 설날에 세뱃돈을 받은 나는 그 세뱃돈으로 당시에 가장 날리던 팝 잡지인 '월간팝송'이란 팝 잡지를 샀다. 월간 팝송은 나중에 판형이 커졌는데, 당시에는 아직까지 판형이 커지기 전이었다. 앞쪽에 외국 잡지에서 그대로 복사한 사진들이 몇 장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 잡지를 여기 저기 떠들어 보다가 생전 처음 보는 밴드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 이름은 Cream.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그 앞에는 '전설의 그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아마도 그 글은 전영혁 씨가 썼던 글이 아닌가 싶었다. 나에게 그 밴드는 마치 사라진 아틸란티스 대륙과도 같았다. 블론디, 더 넥크, 아바 등의 이름이라면 당시의 나에게 친근한 밴드였을테고, 플리트우드 맥이라는 이름이었다 해도 아주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Cream이라니!
세 사람의 멤버 사진이 그들을 소개하는 글 맨 첫 페이지에 나와 있었다. 밴드 멤버 모두의 머리가 꼭 폭탄을 맞은 듯 부--했다. 약간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앵글을 바라보았을 그들의 눈매가 인기 있는 밴드들의 보통 눈매와는 달라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들은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 이렇게 세 명이었다. 글을 읽어나가다 보니,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60년대의 록 씬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다. 그건 전혀 딴 세계였다. 비틀즈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이외의 60년대 밴드에 대해 주의깊게 관심을 가진 건 바로 크림이 처음이었다.
나는 며칠 후,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갔다. 그 레코드 가게는 내가 처음으로 판을 구입한 가게다. 대학을 갓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두 누나가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둘 다 얼굴이 예뻐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이던 곳이었다. 그 가게에서 처음으로 라이센스 음반을 큰맘먹고 사기도 했는데, 그 음반은 다름 아닌 더 네크의 '마이 샤로나'가 들어있는 판이었다. 나는 설날이 지나 주머니가 약간 두둑해져 여유 있는 기분으로 그 레코드 가게에 가서 설마 하는 기분으로 "크림 있어요?"하고 물었다. 나는 사실 없을 줄 알았다. 크림 같이 '전설'적인 밴드의 음반이 있을 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주인 누나는 의외로 크림의 음반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이런 밴드가 있긴 있었구나" 하는 기분으로 누나가 건내어 주는 빽판을 받아 보았다. 앨범 자켓은 되게 후져 보였고, 푸른색이 도는 흑백의 그 음반에는 [Live Cream Volume II]라 씌어 있었다.
나는 그 판을 사가지고 집에 와서 턴테이블에 걸었다. 거는 순간, 이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유명한, 당시에는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지만, 'Deserted Cities Of The Heart' 가 첫 곡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곡은 그 유명한 크림의 두 장짜리 앨범 [Wheels Of Fire]에 스튜디오 버전이 수록되어 있는 곡이었다. 중간에 펼쳐지는 변화무쌍하고 힘에 넘치는 기타 솔로. 나는 이렇게 음악을 하는 법도 있구나, 하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뒷면으로 넘기니 'Sunshine Of Your Love' 의 라이브 버전이 첫 곡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타 솔로. 그 때까지 내가 듣던 디스코나 가벼운 파워팝 분위기의 음악이 꼭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들으면 그 앨범은 과도하게 즉흥연주를 강조한, 크림의 후기 시절 밴드의 절제된 균형미가 흐트러진 때의 음악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그런 식의 음악을 처음 들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블루스의 힘을 점차 알아가게 되었고, 그 힘을 알아 가는 과정은 한참 후에 프리 재즈를 듣는데까지 이어졌다. 당시 안국동 근처에 있던 '공간사랑'에서 강태환의 전율 어린 프리 재즈를 처음 듣고 감동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실은 크림의 음악을 들은 덕분이었다.
구절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월간팝송의 크림 소개 끝 부분은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다; "지미 헨드릭스가 블루스의 힘을 보여주었다면, 크림은 블루스의 형식미를 보여 주었다." 전영혁 씨의 이 말이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나마 알고 있다. 그 두 힘, 그러니깐 폭발하는 힘과 형식미의 균형과 견제가 예술사 전체를 끌어오고 있다는 생각까지 드니까.
다른 많은 음반들이 생각나지만, 한 장을 꼽으라면 크림을 꼽게되는 이유는 그 음반에 담긴, 혹은 그 음반을 넘어서는 음악의 의미들을 알게 되는 서막을 그 음반이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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