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P111 아트 스페이스 기획
김구림 특별 초대전 <음양>
2010. 1. 11 ~ 2. 12
CSP111 아트 스페이스
오픈 축하 연주 _ 박윤우 기타리스트 www.myspace.com/younwoopark
기획초대글
CSP111아트스페이스는 2010년 1월 11일부터 2월 12일까지 개관기획 프로그램이자, 2010년 첫 전시로서 ‘영원한 아방가르드’ 김구림 화백의 <음양> 특별초대전을 마련하였습니다.
평면과 오브제, 영상설치를 총망라하는 이번 전시는 1부 <소멸의 미학> (2010.1.11.~1.31.)과 2부 <Tic Toc Monster>(2010.2.2.~2.12.)라는 부제 하에, 2000년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근 10년 간 서울에서의 <음양> 연작들을 선보입니다. 1부에서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법론에 대한 회의와 장르의 해체, 그리고 다시 회화적 이미지 공간으로의 화해적 결합을 추구해 온 김구림 화백의 예술 행보 속에서 조명하고자 합니다. 2부에서 김구림 화백은 지금껏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오브제들을 통해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시각적 매혹을 향한 탐식적 욕망을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가는 예술적 유희의 흔적을 가감없이 보여줄 것입니다.
이번 김구림 <음양> 특별전시는 한국사회의 현대기술문명과 미디어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물질적 욕망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적 시각을 가벼우면서도 가볍게 지나치지 못할 농담처럼 던지고 있습니다.
김구림 화백은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부정에 몰두하는 해체적 사유와 유목적 기질의 소유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의 근원인 몸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진행 중인 변화와 생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몸을 향하고 있습니다.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사랑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역사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술과 사회, 전통과 혁신을 매개하며 건전하고 건재한 비평적 사색을 멈추지 않는 균형추 역할을 유쾌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CSP111아트스페이스의 김구림 <음양> 특별전과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진정한 생을 향한 욕망과 의지를 되새기며, 2010년 무한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펼치며 가능성을 향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1월 11일 CSP111아트스페이스

김구림 _ 음양 4-S 74 _ Mixed media on book _ 26.5×19cm _ 2004

김구림_ 음양 4-S 368_ Mixed media _ 15X20x5cm _ 2004

김구림 _ 음양 4-S 86 _ Mixed media _ 37×38x33cm _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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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 _ 음양 6-S 62 _ Mixed media on wood _ 30.5 X 23cm _ 2006

김구림_S-01_혼합재료_28 ×46.5cm_2001

김구림_ 음양 6-S 62 _ 30.5X23cm _ Mixed media on wood _ 2006

김구림_음양 6-S 47 _ Mixed media _ 지름 23.5cm _ 2006
작가 소개와 작품세계
김구림(대구, 1936-)은 58년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국, 일본, 미국을 오가며 미국 현대미술관(MMOA)을 비롯한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45회의 개인전과 약 200회에 가까운 그룹기획전을 통해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지적 호기심으로 왕성한 예술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50년대 말 앙포르멜과 60년대 서정적 추상에 잠시 머물다 6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매체 실험과 오브제 작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위예술에 몰두하기 시작하며, 연극과 영화, 무용 등 공연예술의 무대미술과 연출활동으로 오늘날 일반화된 개념인 ‘장르의 해체’를 추구하였다. 1969년 실험그룹인 <제4그룹>을 결성하고, 한국현대사회의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콘돔과 카바마인>,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과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경복궁 미술관을 흰 베로 감는 작업과 같은 일련의 퍼포먼스들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전위영화 <1/24초의 의미>와 <무제>, 한국 최초의 라이트아트인 <공간구조 69>, 문명사회에서 미디어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메일아트 <매스미디어의 유물>과 한국 최초의 대지예술인 <현상에서 흔적으로>(1970)를 발표한 바 있다.
80년대 중반 김구림은 한국 현대예술의 최전선에서 한국전위미술의 선구자로서의 입지를 과감히 떨쳐버린다. 이미 쉰이 넘은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양식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정신과 감수성을 찾아 미국으로 새로운 예술실험의 여정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음양사상을 기초로 70-80년대의 개념예술과 다양한 매체, 장르 해체를 토대로 다양한 조화와 통합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김구림은 한국의 현대미술사 뿐만 아니라 시대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인 70년대부터 2000년 귀국하여 고희를 넘긴 지금 이 순간까지, 한순간도 현실세계와 유리된 적이 없는 예술 활동을 보여왔다. 그렇다고 시류에 편승하거나 제도에 함몰되지도 않고 주류와 비주류를 아우르며 한국예술 궤적의 필봉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2006년 제7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한 김구림 화백의 예술적 행보는 한국 예술계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깨어있는 의식이자 지성으로서 여전히 이례적이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작품소장처
국내 :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경기도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토탈미술관, 워커힐미술관, 호암미술관, 서울대박물관, 수원대박물관, 홍익대박물관, 아라리오미술관, 일현미술관, 경주아사달조각공원, 하나은행 외 다수
국외 : 버겐카운티미술관(뉴저지), 이스라엘미술관(예루살렘), 프랑크푸르트시민회관(독일), 홋카이도근대미술관(일본),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일본), 오사카예술센터(일본),뉴욕시티은행(미국) 외 다수

CSP111 ART SPACE_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관람시간 11:00am ~ 7:00pm(월요일 휴관/관람료_자율기부 약도)
www.csp111.co.kr 02.314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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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 1, Free Tibet! 공연 사례 조사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김설하
Ⅰ. 기획 의도
“음악을 통해 티벳과 소통하는 공연”
1950년 중국의 무력 침공 이후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했으나 꾸준히 자신의 권리를 외쳐온 티벳.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한 중국은 올해 3월 티벳에서 일어난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고, 이 사건으로 수백 명의 티벳인이 사망한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나 그 실상은 있는 그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193 + 1, Free Tibet」 공연은 중국의 티벳 탄압의 진실을 알리고, 중국이 티벳인 학살을 멈출 것을, 그리고 티벳에게 자유를 줄 것을 요구하는 콘서트이다.
“193 + 1, Free Tibet!”
“193”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독립국의 수, 여기에 “+1”은 그 독립국의 숫자에 티벳이 포함되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Free Tibet!”은 티벳에 자유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구호이다.
Ⅱ. 공연 개요
1. 명칭 : 193 + 1, Free Tibet!
2. 일시 : 2008년 6월 26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3. 장소 : 서울 홍대 앞 클럽 打
4. 주최 :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5. 주관 : 문화기획집단 피스툴
6. 후원 : 가슴네트워크, 록빠, 매니아DB, 클럽 打
7. 티켓 가격 : 2만원
* 공연의 수익금은 티벳 난민 구호 단체 ‘록빠’에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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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프로그램
1. 공연 프로그램
《 1부 》
7 : 30 ) 다큐멘터리 상영
: 35 ) 이한철
: 50 ) 시와
8 : 10 ) 루네 + 스왈로우
쉬는 시간
《 2부 》
8 : 50 ) 연영석
9 : 05 ) 소히
: 25 ) 그림자 궁전
: 45 ) 윈디시티
10 : 20 ) 공연 종료
2. 영상 프로그램 Ⅰ
“꿈꾸는 카메라 - 티벳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
『티벳 어린이 필름 워크숍 작품』. 현재 티벳이 처해있는 상황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티벳 아이(청소년)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물을 통해 그들의 시각과 생각을 보여준다.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이용하여 공연 시작과 함께 상영하며, 다람살라의 티벳 공립 학교 학생들이 작가로 참여한다.
3. 영상 프로그램 Ⅱ
“Free Tibet!” 메시지와 함께한 193명의 사진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티벳” 전시회의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제작,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이용하여 공연 중간 중간 약 10여 분씩 뮤지션들이 다음 순서를 위해 악기를 튜닝하고 무대를 세팅하는 막간을 이용하여 상영한다.
4. 전시 프로그램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티벳”
티벳의 자연과 사람들, 지난 3월 중국에서 있었던 유혈 시위 현장의 생생한 모습, 티벳의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달람살라의 탁아소 아이들을 담은 사진 등 section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사진을 전시한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섹션의 작품들은 티벳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클럽을 통해 공모한 사진 중에서 선정한 것들이며, 두 번째 섹션은 당시 시위 현장에 있었던 각국의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사진 공모전을 열어 현지에서 이미 사진 전시회를 열었던 작품들로 구성된다.
사진은 벽에 노끈(줄)을 걸어 집게로 고정시키는 방식과 이젤을 이용하여 여러 장을 한데 모아 세우는 방식,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펼쳐 놓는 방식을 적절히 혼용하여 전시한다. 전시되는 사진은 엽서 크기로 제작, 관람자들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가져오면 즉석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 사진 한 장의 가격은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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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홍보
1. 언론매체 홍보
일간지와 주간지, 무가지 등의 매체에 공연 소개 기사를 게재한다.
2. 온라인 홍보
블로그를 제작하여 공연 공식 홈페이지로 이용, 홍보한다.
U TUBE 등의 글로벌 인터넷 사이트에 공연 관련 동영상을 게재하여 세계적으로(?) 공연에 대해 알릴 수 있도록 하며, 음악 관련 동호회의 인터넷 사이트, 출연 뮤지션들의 팬 클럽 사이트 등의 게시판에 공연 관련 정보를 게시함으로써 공연을 홍보한다.
2. 오프라인 홍보
학교 안 공식 게시판과 눈에 잘 띄는 공간에 포스터를 게재한다.
공연장 주변(홍대 거리)에 포스터를 무차별적으로 게시하며, 홍대 앞 클럽과 카페에 공연 리플렛을 비치하여 홍보한다.
Ⅴ. 결과
- 집객 : 유료관객 180여 명.
《 공연 사례 분석 》
Ⅰ. 홍보 전략 & 효과
“ 인터넷 적극 활용 ”
학생들이 준비하는 공연인 만큼, 기획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인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였다. 시의적으로도 전 세계의 네티즌들이 티벳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인터넷이라는 국경 없는 공간 안에서 중국의 만행 티벳의 독립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특히 공연 준비(홍보)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유럽 곳곳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가 평화주의자들에게 가로막혀 봉송이 끊어지고, 국내에서는 티벳 독립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평화 집회와 중국 유학생들의 폭력 집회가 충돌하는 등 가시적이고도 실제적인 움직임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국내 주요 언론들이 티벳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기사들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기 때문에, 자생적이고 자유로운 매체인 인터넷이야 말로 티벳의 자유를 염원하는 이 공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공연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효과적인 매체라고 생각하였다.
공연 준비 기간도 짧고, 일회성 공연으로 기획된 만큼 자체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판단, 기존의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1. 블로그의 파급력
“자그니`s 블로그 - (임시) 공연 공식 홈페이지 ”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 인기(?) 블로거 자그니의 블로그를 임시로, 공연의 공식 홈페이지로 이용했다. ‘프리 티벳’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공연 준비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지하고, 공연과 관련된 내용들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며 홍보하였다. 공연 관련 이벤트도 온라인에서는 블로그를 통해 대부분 이루어졌다.
“배너 달기 - 골라 다는 재미가 있다.”
공연 배너를 여러 가지 크기와 형태로 제작, 블로그를 통해 배포하였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블로거와 네티즌에 의해서 자유롭게 배너가 퍼져나가서 공연 홍보의 효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였다.
블로그의 경우 일방적인 정보 전달에 그치기보다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매체라는 점과, 인디 문화나 주류 미디어의 왜곡된 시각에 가려진 진실, 비주류의 이슈들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고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블로거들의 성향에 힘입어 큰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2. 이벤트의 대성공
“ Free, Tibet ! 193 + YOU ”
“Free Tibet!” 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진행하였다. 193명의 사진을 모아 '193 + you' 라는, 티벳의 자유를 위해 동참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취지였다.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 오프라인에서뿐만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Free Tibet!” 메시지가 적힌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직접 사진을 찍어 전송하는 네티즌들이 많았다. 그 무엇보다도 일상적이고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공연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자연스럽게 ‘동참’ 할 수 있다는 점이 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Free, Tibet ! 193 + YOU ” 이벤트의 결과물은 동영상으로 제작, U-TUBE 사이트에 개제하였으며(2008년 9월 16일 현재 조회수 4,765), 대형 현수막으로도 제작하여 중앙대학교 대학원 건물 외벽에 공연 전 4일 간 게시되었다. 이 이벤트는 일반인들에게 호응도가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홍보 효과도 매우 뛰어났다.
(사진의 주인공들 중 한 명에게는 추첨을 통하여 공연 티켓을 증정하였다.)
3. 거리 홍보의 아쉬움
학교 안 게시판의 경우 학교 행정실을 통해 일정 기간 허가를 받아 포스터를 게재하였다. 그러나 공식적인 게시물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포스터가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내에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어디까지나 심증뿐이었다.) 허락받은 기간도 길지 않았고, 이미 여름 방학이 시작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홍보 효과가 크지 못했다. 게시판이 아닌, 건물 외벽이나 학교 담장에 붙인 포스터는 곧 제거되었다.
공연장 주변(홍대 거리)에서 진행된 “포스터 무차별 게시 대작전” 은 환경미화원과의 숨바꼭질(포스터 아르바이트생들과는 감정적 연대)로 이루어졌다. 홍대 앞의 명소인 놀이터를 비롯, 길가의 게시판과 클럽이 밀집해 있는 거리 주변의 담벼락, 횡단보도의 양 옆 길바닥 등에 여러 장의 포스터를 붙였다. 공연 팀 전원이 동원되어 진행하였지만,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그 밖의 공연 준비 틈틈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거리 청소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이루어지는지, 클럽들의 공연 시간에 따라 잠재적 관객들이 이동하게 되는 시간은 언제인지와 같은, 홍보에 효과적인 시간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였다.
4. 언론 매체 홍보의 취약함
기획단계에서 일간지와 주간지, 무가지 등 언론 매체의 리스트와 담당 기자의 연락처까지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이 연기되는 바람에 언론 매체의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급하게 보도 자료를 담당 기자들에게 보냈지만 시간적으로 촉박했을 뿐만 아니라 반응 역시 시원치 않았다. 학과의 선배를 통한 지하철 무료 신문 「메트로」에 게재된 기사가 언론 매체 홍보의 전부였다는 결과는,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이 공연을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홍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물론, 경험을 통해 ‘학생 공연’을 언론 매체에 ‘기사’로 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
Ⅱ. 프로그램 운영 & 공연 사고에 대처하는 자세
1. 공간의 협소함 - 전시 프로그램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티벳” 전시회는 공간의 협소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공연장 입구 쪽에 마련된 전시장은 사람들이 주변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 공연장에 입장하는 관객들의 눈길을 붙잡아 두기 힘들었다. 끔찍한 티벳의 참상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풍광, 사람들의 순수한 표정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잠시나마 가져보며 마음에 드는 사진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만들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2. 공연사고, 사회자의 등장 - 영상 프로그램
리허설 때 제대로 돌아가던 빔 프로젝터가 공연 시작 후 갑자기 작동을 멈추었다. 영상 상영회에 배정되었던 시간은, 예기치 못한 공연 사고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회자가 채워 주었다. 뮤지션들의 악기를 튜닝하는 동안 사회자는 이벤트를 진행하며 공연 전체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벤트의 반응은 좋았고, 공연도 무사히 흘러갔다. 그러나 영상물은 ‘티벳’ 의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였기 때문에 이 공연의 컨셉과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Ⅲ. 진행
1. 클럽 공연만의 특징
“도란도란” VS "유유히"
공연의 관객석은 바닥에 자유롭게 앉을 수 있게 기획하였다. 가능한 한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꽤 긴 시간 이루어지는 공연을 좀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보다 집중도 높은 공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편안하게 서서 혹은 돌아다니면서 음악을 듣다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순서가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바를 오가며 음료수를 마시기도 하는 등 자유로움으로 대변되는 클럽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을 묻히게 하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2. 수용 인원의 한계
공연장의 수용 인원과 예상 관객 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예측하지 못하여 공연장의 규모에 비해 입장 관객의 수가 많았다. 공연 중반 이후부터는 관객들이 움직일 수 있는 통로조차 마련되지 못하여 화장실을 가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관객이 들지 않을 경우 만큼이나 관객이 넘칠 경우의 수도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처 방안도 미리 마련해 놓는 것이 기획자의 자세일 것이다.
3. 공연 순서
공연 도중, 즉흥적으로 뮤지션들의 순서가 바뀌었다. 이는 관객과의 약속, 뮤지션과의 약속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Ⅳ. 공연장 & 무대 디자인
일반적으로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은 검은색으로 둘러싸인 무색무취의 공간인데 비해 클럽打의 공간은 전 세계의 민속 타악기가 전시되어 있으며, 세계 각국의 음악을 상징하는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공연장의 에스닉한 분위기는 이 공연의 색깔과도 잘 어우러졌다. 두 개의 티벳의 국기만으로 양 옆을 장식한 무대 디자인도 군더더기 없이 공연의 컨셉에 잘 맞았다.
그러나 펄럭이는 국기가 일부 관객의 시야를 가려 조치를 취해야 했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현수막은 공연장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지지 않아 옥의 티가 되어야만 했다.
Ⅴ. 뮤지션 & 관객
공연장인 클럽 打는 강력한 락 밴드의 사운드와 감미로운 언플러그드 연주의 디테일을 동시에,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는 사운드 시스템을 지닌 공간이다.
간혹 있었던 하울링을 제외하면 시스템의 오류는 발생하지 않았고, 뮤지션들의 연주와 노래는 훌륭했다. 음악과 음악 사이에 끼어드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는 공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티벳에 관련된 뮤지션들의 바람과 발언들은 공연의 메시지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관객층은 매우 다양했다. 공연의 메시지를 따라서 모여든 사람들과 출연 뮤지션들의 팬들, 당일 날 홍대 앞 공연들 중 즉석에서 이 공연을 선택한 클럽 마니아들과 기획팀의 지인 등 공연 관람의 동기도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연령층 역시 폭 넓었다. ‘젊음’을 대변하는 홍대 앞 클럽이지만 연예인이 아닌, 자신들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의 완성도 높은 음악과 그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의미를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고자 했던 의지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최규성님이 제공한 사진들입니다. (2008. 6. 26. 홍대 클럽 타)
홍대 클럽 '타' 입구. 입장 시작
200여명의 관객들
그림자궁전
루네
소히
스왈로우
스왈로우
시와
연영석
윈디시티
이한철+멜로우이어
이한철

개요
1. 193+1 Free Tibet 공연 소개
- 1950년 중국의 무력 침공 이후 티벳은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했으나, 꾸준하게 자신의 권리를 외쳐왔습니다.
- 2008년 베이징 월드컵을 개최하는 중국은 2008년 3월 티벳에서 일어난 시위를 무력 진압 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백명의 티벳인이 사망했으나 그 실상은 아직까지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 193+1 Free Tibet 공연은 이런 티벳 탄압의 실상을 알리고, 중국이 학살을 멈추고 티벳에게 자유를 줄 것을 요구하는 콘서트입니다.
2. 공연 개요
- 명칭 : 193+1 Free Tibet
- 일시 : 2008년 6월 26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 장소 : 서울 홍대앞 클럽 타
- 주최 :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 주관 : 문화기획집단 피스툴(Peace Tool)
- 후원 : 가슴네트워크, 록빠, 매니아DB, 클럽 타
3. 193+1 Free Tibet?
- 193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독립국의 숫자입니다.
- + 1은 그 독립국의 숫자에 티벳이 포함되기를 바라는 표시입니다.
- Free Tibet 은 티벳에 자유가 오기를 바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구호입니다.
193+1 Free Tibet 콘서트에 초대합니다.
그는 연설 중간에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모두 티베트인들입니다. 티베트인들은 티베트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티베트어를 말하고 쓰십시오. 그리고 종교의 실천을 잊지 마십시오." 나는 여기에 참석한 티베트인들이라면 모두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거라고 확신했다. 물론 그는 그 이상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심한 감시를 받고 있었고 그의 말은 전부 추궁당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이 3가지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이었다.
- 아마 아데, 그래도 내 마음은 티베트에 사네, p292
1950년 중국이 무력으로 티벳을 점령한 이후, 티벳인들은 자신의 땅과 존엄성 그리고 생명을 빼앗기며 살아 왔습니다. 중국은 그것도 모자라 지난 2008년 3월과 4월 티벳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 (정확한 숫자를 알 수는 없지만)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이후 티벳은 중국 정부의 철통같은 감시 아래 사람과 정보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에 항의하는 전세계 시민들의 저항은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집중적으로 방해하는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런던, 파리, 샌프란시스코, 일본을 비롯해 성화가 봉송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성화는 방해받았고, 올림픽의 상징이 아니라 학살의 상징으로 격하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티벳 사태를 단순히 '소수 분리주의자'의 책동이라고 음해하며, 남몰래 중국 청년들의 공격적인 중화주의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최근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 청년들에 의한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티벳에 대한 학살과 억압을 멈추기를 요구합니다.
우리는 티벳 민중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전 세계의 친구들이 중국의 학살 행위를 막기 위한 행동에 적극 나서기를 바랍니다.
이 콘서트는 티벳 학살을 규탄하는 우리의 목소리이자 티벳 민중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입니다.
미마쉐 티베트! 더는 죽이지 마라! 학살을 중단하라! Stop killing in Tibet!
뵈랑쩬 티베트! 티베트를 티베트 인들에게! Free, Free Tibet!
뵈겔로 티베트! 이겨라, 티베트! 힘내라, 티베트! You can do it, Tibet! Be strong, Tibet!
음악, 티벳의 자유를 외치다!
티벳
초록빛 지구의 한 귀퉁이에 위치한 티벳. 평균고도가 3,500m 라 ‘세계의 지붕’ 혹은 ‘하늘과 가장 맞닿은 땅’으로 불리며, 사방이 육지로 막혀있어 외부와 격리된 독특한 불교 왕국의 나라입니다. 몇 번의 종파정권을 거치면서 정교일치의 시스템을 확립하고 달라이라마-라는 라마교의 최고 승려가 정신적/정치적인 면에서 실질적인 통수권자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57년 중국이 티벳을 강제 합병하면서 티벳은 중국의 영토로 귀속되고, 그후 대부분의 티벳 사원들은 불타거나 파괴되고 심지어 돼지우리로 사용되게 됩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의 강제 합병시 망명하여 고된 망명생활을 하며 티벳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세계에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강대국인 중국의 입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 규모의 프리 티벳 운동의 도화선은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도, 정치적 권력자도, 티벳인도 아닌, 밴드 비스티 보이즈의 아담 요크에 의해 당겨지게 됩니다.
Adam Yauch
히말라야로 여행을 갔던 비스티 보이즈의 아담 요크는 그곳에서 티벳인들을 만나 정신적인 교훈을 얻고 1992년 티벳불교의 불자가 됩니다. 그리고 1993년에는 ‘롤라팔루자‘ 콘서트 투어에 티벳 스님들을 합류시키게 됩니다. 1996년에는 이러한 움직임의 연장선상에서 세계적인 Tibetan Freedom Concert가 개최되게 됩니다. 티벳이 처한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티벳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기금마련 콘서트인 프리티벳콘서트는, 이들 이외의 수많은 동료 뮤지션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그들이 콘서트에 동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밀라레파
밀라레파는 원래 11세기 티벳 성인인 젯선 밀라레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시와 음악에 능통했으며 명상을 가르치던 라마 승려입니다. 젊은 시절 삼촌의 꾐에 빠져 흑마술 등에 탐닉하면서 살인까지 저질렀으나, 후에 뉘우치고 불교에 귀의하여 기나긴 고행과 스승 마파의 가르침으로 위대한 성인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그는 생전에 깨달음을 얻었지만 열반하지 않고 보디삿바(Boddhisattva)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는데, 보디삿바란 티벳어로 "깨달은 자들의 영웅"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보디삿바는 모든 중생들이 다 같이 깨달음과 행복을 얻을 때까지 열반을 미루었다고 합니다.
밀라레파는 음악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는 중생을 가르칠 자신의 방법으로 노래를 택했고, 천 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모습에서 보여졌던 이와 같은 "음악과 계몽의 결합" 이라는 상징적인 메타포는 비스티 보이스 (정확히 말하면 애덤 요크와 디렉터 에린 포츠)로 하여금 그의 이름을 자신들의 단체명으로 설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밀라레파 기금입니다. (Milarepa Fund).
티벳인은 물론 아프리카 원주민, 남태평양의 토착민 등에 대한 불합리한 처사들에 대항, 이들을 도우려는 단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로 궁극적 이념은 우호와 비폭력. 비폭력주의에 대한 전반적이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중국 상품 보이코트 운동, 중국 내 티벳 양심수(이중에는 현재 33년 동안 복역 중인 이도 있다.) 석방 캠페인,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티벳의 독립을 지원 받기 위한 공연과 영화 제작 등이 현재 주력 중인 이들의 행동 반경입니다1).
밀라레파 기금의 비폭력 관련 교육 프로젝트로는 △티베트인을 위한 자유 음악회 개최 △거리 연설 △음악회 관련 앨범 판매 △미래의 자유 티베트 관련 기록 영화 제작부터 △일상적인 인터넷 웹사이트 운영 △무가지 잡지 배포까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습니다2).
Tibetan Freedom Concert
“Free Tibet”을 슬로건으로 내건 Tibetan Freedom Concert는, (비스티보이즈의) ‘롤러팔루자’였다면 하나의 사이드 스테이지 만으로 만족해야했을 콘서트를 세계적인 규모, 세계적인 뮤지션의 참여로 이끌어 궁극적으로 “Free Tibet"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이끌어 내게 됩니다.
1996년 샌프란시스코 공연
참여뮤지션 : The Smashing Pumpkins, Chaksam-pa, Beastie Boys, A Tribe Called Quest, Pavement, Cibo Matto, Biz Markie, Richie Havens, John Lee Hooker, Red Hot Chili Peppers, Rage Against the Machine, Sonic Youth, Beck, Bjork, De La Soul, Fugees, Buddy Guy, The Skatalites, Yoko Ono/Ima
1997년 뉴욕 공연
참여뮤지션 : Foo Fighters, U2, Sonic Youth, Biz Markie, Alanis Morissette, Patti Smith, The Jon Spencer Blues Explosion, Radiohead, Yungchen Lhamo, Ben Harper & The Innocent Criminals, A Tribe Called Quest, Beastie Boys, Rancid, Bjork, Pavement, Blur, Michael Stipe & Mike Mills, Taj Mahal and Phantom Blues Band, De La Soul, Dadon, Chaksam-pa, Nawang Khechog, The Mighty Mighty Bosstones, Eddie Vedder & Mike McCready, KRS-ONE, Noel Gallagher, Porno for Pyros, and Lee Perry featuring Mad Professor & the Robotiks Band
1998년 워싱턴 공연
참여뮤지션 : Beastie Boys, Radiohead, Sean Lennon, Mutabaruka, Money Mark, A Tribe Called Quest, Dave Matthews Band, Sonic Youth, Nawang Khechog, Wyclef Jean, Herbie Hancock and the Headhunters, Buffalo Daughter, R.E.M., KRS-ONE, The Wallflowers, Blues Traveler, Live, Pearl Jam, Luscious Jackson, Red Hot Chili Peppers, Chaksam-pa, Pulp. Many bands, including Kraftwerk and Beck, were cancelled after lightning strikes at the beginning of Herbie Hancock and the Headhunters' set on the first day of music
그리고 전 세계 네 개 도시에서 열린 《Free Tibet '99》공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미국 위스콘신, 호주 시드니, 일본 도쿄전 세계 동시개최
위스콘신 참여 뮤지션 : Run DMC, The Cult, Beastie Boys, Blondie, Tracy Chapman, The Roots, Live, Eddie Vedder, Otis Rush, Cibo Matto, Handsome Boy Modeling School, Rage Against the Machine, Wu-Tang-Clan, Chaksam-pa
암스테르담 참여 뮤지션 : Garbage, Blur, Urban Dance Squad, Alanis Morissette, Ben Harper & The Innocent Criminals, Luscious Jackson, NRA, Gangchenpa, Tibetan Institute of Performing Arts, Joe Strummer and The Mescaleros, Thom Yorke
도쿄 참여 뮤지션 : Hi-Standard, Buffalo Daughter, Brahman, Audio Active, Kan Takagi, Scha Dara Parr, Kiyoshirou Imawano, Nawang Khechog
시드니 참여 뮤지션 : Regurgitator, Spiderbait, The Mavis's, The Avalanches, Neil Finn, The Living End, Celibate Rifles, Not From There, Gerling, Jebediah, You Am I, Garpa, Blackalicious, Eskimo Joe, Trans Am
3년간 이어진 이 콘서트의 성과는 세계인의 마음 속에 티벳 독립의 문제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도쿄에서 다시 한번 콘서트가 열리기도 합니다.
참여뮤지션 : Thee Michelle Gun Elephant, Brahman, UA, Chaksam-pa, Boom Boom Satellites, Buffalo Daughter)
다시 외치는 프리티벳
프리티벳 운동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게 된 것은 2008년 3월 중국의 티벳 학살 사건이 일어난 직후입니다다. 슬프고도 끔찍한 소식을 들은 전 세계의 민중들은 곧바로 직・간접적인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티벳 학살에 대한 항의와 저항의 의미로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몸으로 막았으며, 그 밖에도 학살반대 시위, 촛불모임들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1999년 프리티벳 콘서트를 이어받은 크고, 작은 프리티벳 콘서트들이 세계 각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월 29일, 프리티벳 콘서트가 열렸지만, 아쉽게도 많은 관심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어찌보면 티벳의 문제는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이는 탓일겝니다. 미친 소와 감기 걸린 새들 얘기만으로도 벅찬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을 지도 모르겠네요. ... 하지만 티벳인들의 지금 모습은 우리의 옛 모습과 너무나 많이 닮아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일제 강점기라는 슬픈 역사가 있습니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강제로 국권을 빼앗기자, 우리는 3.1 운동과 상해 임시 정부 건국 등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해외까지 나가 독립 투쟁을 전개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강국들은 동방의 작은 나라를 거들 떠 보지도 않았고,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야 일제의 식민지 치하로부터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해방된지 이제 겨우 63년이 되었습니다. 식민지 시절 우리가 받았던 탄압과 우리가 흘렸던 피와 눈물이 지금 티벳에서 흐르는 피눈물과 과연 다를까요?
티벳인들의 외침은 바로 전 세계의 평범한 우리들을 향한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일어나 총칼로 무장하여 싸워달라는 것이 아닌, 그들의 상황과 아픔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하지만 보려고 하고 들으려고 하는 순간 티벳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독립과정에서 우리가 흘렸던 수많은 피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티벳의 자유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랬듯이, 그들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의 당연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히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 이는 하늘의 분명한 명령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를 막고 억누르지 못할 것이니라.”
- 기미독립선언문 中
프로그램
공연시간표
* 본 공연의 수익금은 티벳 난민 구호 단체 ‘록빠’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1부
7 :30 다큐상영(공연시작)
:35 이한철(3곡)
:50 시와(3+1곡)
8 :10 루네+스왈로우(3곡+4곡)
쉬는 시간(5-10분)
2부
8 :50 연영석
9 :05 소히(4곡)
:25 그림자궁전(4+1곡)
:45 윈디시티
10:20 공연종료
영상 프로그램 Ⅰ
1. 상영 개요
◎ 상영회 제목 : 꿈꾸는 카메라 - 티벳 아이들의 눈으로 본 세상
◎ 상영시간 : 2008. 6. 26. 목 P.M. 07:30
◎ 장소 : 클럽 ‘타’
◎ 후원 : 록빠
2. 기획 의도
『티벳 어린이 필름 워크샵 작품』. 현재 티벳이 처해있는 상황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티벳 아이(청소년)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물을 통해 그들의 시각과 생각을 보여준다.
3. 상영 목표
티벳 아이(청소년)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를 하고, 연출을 한 짧은 단편 영화를 관람하면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부분 - 그들도 우리나라, 또는 전 세계 여느 나라에서 살고 있는 또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동시대를 사는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것을 함께 생각해본다. 또 그들이 직접 취재하고 제작한 뉴스를 통해 그들의 조국 티벳의 현실을 아이들은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바람과 꿈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준다.
4. 상영 구성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이용하여 공연 시작과 함께 상영.
5. 참여 작가
다람살라의 티벳 공립 학교 학생들.
영상 프로그램 Ⅱ
‘Free Tibet!’ 메시지와 함께한 193명의 사진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티벳’ 전시회의 사진들을 슬라이드 쇼로 제작, 빔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이용하여 공연 중간 중간 약 10여분씩 뮤지션들이 다음 순서를 위해 악기를 튜닝하고 무대를 세팅하는 막간을 이용하여 상영.
전시 프로그램
1. 전시 개요
◎ 전시명 :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티벳
◎ 전시기간 : 2008. 6. 26. P.M. 06:00 ~ 11:00
◎ 장소 : 클럽 ‘타’ 입구의 공간
◎ 후원 : 록빠
2. 기획 의도
티벳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통해 티벳의 현재를 공유하고,
우리가 “Free, TIBET!”을 외치고자 하는 그 의미를 참여자들에게 알린다.
3. 전시 목표
section을 세부분으로 나눈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티벳의 자연과 사람들, 그리고 전통 등 우리가 지켜주고픈, 있는 그대로의 티벳 모습을 보고, 두 번째 섹션에서는 지난 3월 중국 에서 있었던 유혈 시위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티벳이 처해있는 심각한 현실과 중국의 태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본다. 세 번째 섹션에서는 달람살라의 탁아소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통해 티벳 망명정부의 고된 현실에 대해 인식하면서, 그래도 그곳에서 해맑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들의 소중한 티벳 지켜내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하는, 마음의 공감대를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진은 현장에서 구매 가능하며, 수익금 전액은 록빠에 전달한다.
4. 전시 구성
첫 번째와 세 번째 섹션의 작품들은 티벳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인터넷 클럽을 통해 공모한 사진 중에서 선정한 것들이며, 두 번째 섹션은 당시 시위 현장에 있었던 각국의 사진작가들을 대상으로 사진 공모전을 열어 현지에서 이미 사진 전시회를 열었던 작품들로 구성된다. 사진은 벽에 노끈(줄)을 걸어 집게로 고정시키는 방식과 이젤을 이용하여 여러 장을 한데 모아 세우는 방식,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펼쳐 놓는 방식을 적절히 혼용하여 전시한다. 전시되는 사진은 엽서 크기로 제작, 관람자들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가져오면 즉석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한다. 사진 한 장의 가격은 1,000원.
5. 참여 작가
- 세계 곳곳에서 티벳 시위 현장으로 모여들었던, 이름 없는 사진작가들.
- 티벳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그것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일반인들.
(c)최규성
1) http://shaolin.x-y.net/refer/tfc.htm
2) http://www.buddhapia.co.kr

2008년 1월 6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 작은 마당.
오후 3시가 다가오자 취재진을 비롯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고 김광석의 노래비 제막식과 추모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병자년(丙子年) 쥐띠해.
올해가 무자년(戊子年) 쥐띠해니 딱 12주기가 됐다.
12년 전 1996년 1월6일(음력 11월15일) 그날 이 마당에선 그의 노제가 열렸었는데...
다행히 그때 찍은 사진이 있어 함께 공개한다.
12년 전 오늘... 그를 떠나보내는 노제 모습...
행사 30분 전에 도착해 학전 소극장 안으로 들어가니...돋보기 안경을 낀 감민기
김광석추모사업회 회장이 그간의 활동사항을 무대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 추모공연은 소극장 공연임에도 6만원 가까운 비교적 고가의 입장료로
일부 팬들에 의해 가격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김민기님의 설명에 의하면 공연 제경비를 제하면 100만원의 수익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큰 공연장에서 이번 공연을 했다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도 있었을터인데 추모사업회는 수익보다 김광석 그가 5년동안 1000회를 넘게 공연하며 구석구석 자신의 체취를 남긴 작은 소극장 공연으로 명분과 의의를 택했다.
실제로 추첨으로 결정된 관객들 중 멀리 지방에서 귀한 발걸음을 한
팬들이 많음을 확한할 수 있었다. 정말 음악이 뭐길래....
추모회장 김민기 모습
이날 행사에는 사월과 오월의 백순진, '이등병의 편지' 창작자 김현성, 임지훈,
박학기, 한동준, 판소리꾼 김소연, '세노야'의 김광희, 김창남교수, 노찾사의 한동헌, 그리고 개그맨 김재동, 유리상자, 윤도현 , 동물원 , 드렁큰 타이거등 낮익은 얼굴들과 많은 팬들과 더불어 작은 학전블루 소극장 마당을 가득 메웠다.
공연장 입구에는 김광석의 빛바랜 90년대 흑백공연사진들이 도열해 반겨주었다.
한겨레 신문의 후배기자였던 임종진이 학생시절에 찍었던 사진들이다.
공연의 공식 포스터는 없고 그의 사진전 포스터로 대신했는데 마침 그가 날 기억해주었다.
80-90년대 나는 신문기자로 민주화현장을 뛰어다니느라 너무 바빠...대중음악 콘서트를 거의 가보질 못했다. 격동의 시간들을 기록하느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김광석의 소극장 라이브 공연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음인데...
그를 노래비 속의 형상으로나마 오늘 만나 그 아쉬움의 갈증을 대신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내 후배 임종진 그가 그의 공연을 기록했음을 빛바랜 흑백사진을 통해 알게되니 대견하고 고맙고 부럽고 그랬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전시된다하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함 들려보시라~
학전 블루 마당 벽면에는 제막의 순간을 기다리는 노래비가 빨간 천에 가려져 있다. 3시가 조금 넘어 김광석과 절친했던 음악친구 박학기의 사회로 행사는 시작되었다. 이날 제막식에는 김광석의 동료들과 팬클럽 둥근소리 회원들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길가던 사람들까지 발길을 멈추고 행사를 지켜보아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회를 맡은 가수 박학기는 "광석이는 직장인 출근하듯 이곳에서 노래했다"며 "오며 가며 광석이를 만나고 싶을 때 꽃 한송이를 건네고, 소주 한 잔을 따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온다"고 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뒤이어 행사를 주관한 김민기는 "가족들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지길 바랬지만 우리들이 추진할 범위를 넘는 일이고 세들어 있는 학전블루소극장 건물주인에게 부탁해 그가 세상을 뜨기 전 해 1천회 공연 기록을 세운 이곳 앞마당에 노래비가 세워졌다"며 "추모사업회 기금으로 만들어져 더욱 뜻깊다. 광석이가 너무 귀공자 같이 새겨졌다"며 웃음을 지었다.
형 김광복 씨도 "멋있는 아우의 형상이 만들어졌다"며 "아직도 형이 아닌, 경상도 사투리로 '히야'라고 부르는 장난기 어린 광석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억울하지 말고 잘 지내라. 오늘 너무 좋겠다"며 흐린 겨울 하늘을 향해 동생에게 말을 건넸고 참석한 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노래비 제작자 안규철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인 그는 인삿말을 통해
"생전에 김광석이 활동했을 당시 유학을 떠나있어 직접 보지는 못해 사진을 보고
작품을 제작했했기에 혹여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들을까 심히 걱정된다"고 했다. 그는 아주 조건이나 댓가 없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는 것을 김민기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아주 고마운 분이다.
그리고 '서른즈음에'를 창작한 강승원님의 인사가 끝나자 김광석의 히트곡 '이등병의 편지'가 마당 가득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비를 꼭꼭 숨겨둔 붉은 베일을 내려졌다.
궁금증을 한껏 느끼게했던 붉은 천이 내려지자 김광석의 노래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브론즈 부조가 대리석 단상에 얹힌 아담한 노래비에는 통기타를 치고있는 생전의 김광석이 담겨 있었다. 비록 작은 규모의 노래비였지만 이제껏 본 것 중 최고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하나의 작품이었다.
김광석의 노래비에는..
'아름다운 노래들을 수없이 찾아내 우리들에게 들려준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64~96년), 그가 95년8월11일 이곳 학전 소극장에서 콘서트 1천회를 맞았다'는 글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김광석 그가 누구인가?!
뮤지션이기에 앞서 헤어질때면 누구에게나 '행복하세요'라는 인사와 더불어 소년같은 환하고 순박한 미소를 아낌없이 흘렸던 따뜻한 인간이었으며....
단절된 70년대 정통포크의 계승자로 자타가 인정할만큼 삶의 진솔한 모습과 인간적인 노랫말을 구수한 목소리에 얹어 들려주었던 아름다운 뮤지션이었다.
새벽, 노래를 찾는 사람들, 동물원을 거쳐 솔로가수로 활동하면서 그가 세상에 남긴 주옥같은 노래들에 공감하지 않은 동시대의 대중이 있었을까?
거창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주변의 이야기를 담은 그의 노래는 모두다 내 이야기를 대신해준 것 같았다. '서른 즈음'에도 그랬고 '이등병의 편지'도 그랬고 '거리에서'도 그랬다.
공식적인 행사의 대미는...추모회장 김민기를 시작으로 길가던 사람까지 주최측에서 준비한 붉은 장미꽃을 한송이씩 김광석노래비에 헌화하는 시간이 아닐까.
제막식에 이어 객석의 협소함 때문에 추첨을 통해 관객을 결정한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그의 추모공연은 1996년 그의 49제 때 연세대학교에서 처음 열렸었고 99년 학전 블루 소극장에 이어 세번째다.
이소라, 성시경, 윤도현, 김제동, 박학기, 유리상자, 동물원, 한동준, 장필순, 윈디시티 등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무대에 올라 그의 노래를 전국에서 올라온 140명의 팬들과 고 김광석에게 헌사했다.
첫 무대에 오른 이소라는 "자꾸 눈물이 날 것 같아 노래를 못하겠다"며 "광석이 오빠가 오늘 이곳 어딘가에 앉아 구경하고 있을 것이다. 노래로 영혼을 부르지 않나"라고 말한 후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사랑이라는 이유로'의 작곡가 김형석은 노래를 부른 성시경의 피아노 반주를 도와준 뒤 "광석이 형은 기타 하나로 우리를 울리고 웃긴 사람이다. 그 시절이 그립고 행복했다"고 그를 추억했다.
김광석의 '열렬 팬' 개그맨 김제동은 "김광석 씨의 노래는 내가 세월, 사람에 다칠 때 바르는 빨간 약 같은 존재다. 휴대전화 통화연결음을 김광석씨의 노래로 쓰고 있는 사람들 대표로 나왔다"고 말해 객석에 웃음을 안겼다. 그는 지금도 김광석의 기일이 되면 소주 석잔을 따라놓고 홀로 제사를 지내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박학기, 장필순, 유리상자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한동준이 '사랑했지만', 동물원은 고 김광석이 멤버로 있을 당시 불렀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불렀고 전 출연진이 '이등병의 편지' '일어나'를 관객들과 더불어 열창했다. 공연장 밖에서도 제한된 객석 때문에 들어오지 못한 많은 팬들이 TV 모니터로 공연을 함께 감상했다.
공연 중간, 고 김광석은 생전의 영상을 통해 말했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세계 일주를 하고 싶어요. 또 환갑 때 연애를 한 번 하고 싶어요. 로맨스. 쉽지 않겠지만 제 바람입니다."
환갑 때 연애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소리없이 흩어졌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팬들과 동료들을 보며 그는 분명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 같다.
환갑을 넘어서의 로맨스는 죽어서도 이루어질 것 같음에...
그는 분명 떠났지만 그래서 여전히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2008년 1월 6일 대학로.
하늘은 흐렸지만 분명 미소짓고 있는 그가 함께 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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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7080콘서트의 스타 록그룹 록커스트의 여성리드보컬 김태민 | ||||
대학가요제가 올해 30주년을 맞는다. 1975년 긴급조치9호로 빚어진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대중가요계는 스타들이 사라진 무주공산을 경험했다. 들을 만한 음악이 없었다. 암울했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한 행사가 준비되었다. 77년 태동한 MBC 대학가요제였다. 예상을 깨고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후 각 방송사들이 해변가요제, 강변가요제, 전일가요제 등이 우후죽순처럼 신설하며 대학가요제 열풍을 이어갔다. 처음엔 순수했던 대학가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가수 등용문으로 변질되었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대중적 인기가 많았다는 증거다.
대학가요제의 시작을 함께했던 386세대들에게 그 시절의 노래들이 애틋한 것은 인지상정. 2000년부터 불기 시작한 복고문화 붐과 더불어 7080음악도 되살아났다. 추억의 대학가요제 캠퍼스밴드들이 총출동한 2004년 2월 KBS TV의‘7080음악 특집’에 중년세대들은 이례적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해 5대 문화히트상품으로 선정될 만큼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했다. 이후 중년세대들을 위한 수많은 무대가 생겨나면서 그 시절 가수들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 전혀 활동을 하지 않았던 가수들까지 속속 대중음악계로 돌아왔다.
당시 대중음악 전문가들은 이례적 광풍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추억’이라는 상품의 힘은 녹슬지 않았다. 3년이 흐른 지난 연말.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 대미를 장식한 7080콘서트는 힘이 조금은 빠졌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대성황이었다. 관객 이찬숙(46) 씨는 “저희들에게 7080콘서트는 스쳐가는 유행이 아니라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마음의 고향 같아요. 콘서트장에서 동창회 모임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이제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콘서트를 보러가는 것이 익숙한 풍경 아닌가요”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철저하게 추억을 담보로 진행되는 이 복고음악 열풍은 일부 가수들에게만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그만큼 가수에겐 지금껏 살아남아 기억되는 히트곡의 유무 여부가 활동 여부의 잣대가 되었다.
하지만 대표곡‘하늘색 꿈’을 부를 수 없었다. 공연 3일 전에 기획사 쪽으로‘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내용증명이 왔기 때문.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그 노래가 저작권 분쟁에 휘말려 2004년 내내 오리지널 가수가 노래를 부를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다들 하늘색 꿈을 원하는데 못 부르니까 속상했어요. 마치 만삭인데 분만을 못하는 심정이랄까. 한번 시원하게 부르고 싶은데 참 답답하더라구요. 그래서 2005년 여름부터는 그냥 부르고 있습니다.”원저작자와는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제동을 걸어오진 않았다고 한다.
음악을 다시 시작할 때 보수적인 남편에게‘이번 한 번만 하겠다’고 하자‘정말 한 번으로 그칠까’하며 반문해 가슴이 아렸다. 근데 정말로 한 번에 끝내질 못했다. 공연 후 대학가요제 출신 8팀 30명의 회원이 모여‘대가회’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2004년 7월엔 인터넷 다음에 자신의 팬 카페 ‘로커스트 김태민’도 생겼다. 지난 3년 동안 전국 투어, 미국 공연을 비롯한 크고 작은 공연을 200회 정도 했고 지난해 봄에는 CCM음반을 발표하며 제법 왕성한 활동까지 펼치고 있다. “아이들도 다 컸고 이젠 남편이 공연갈 때 가방까지 들어줍니다. 저의 일로 인정해줍니다. 헌데 가족들은 실수를 할까봐 긴장이 돼서 공연장에는 오지 않고 TV에 나와도 피합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외국공연도 다닐 만큼 지금은 편하게 음악을 다시 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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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민은 소극적이었던 대학시절과 달리 요즘엔 TV, 라디오 방송에도 적극적으로 나가고 있다.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공연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처음 온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시대를 함께 했던 분들을 거의 다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노래하고 싶어요. 우린 우리대로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 비록 그 문화가 예전 것이지만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에 무대를 필요로 하는 한 계속될 겁니다. 다만 무엇을 위하여 시작했는지에 대한 순수함을 지켰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봉사활동이라 생각해요. 정말 멋진 제2의 인생이 아닌가요?” | ||||
| 입력시간 : 2007/01/18 15:31 수정시간 : 2007/01/18 15: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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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빈티지 콘서트-나는 김창완이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그는 그렇게 무대에 섰다 주옥같은 멜로디로 감동의 무대 연출 김창완은 1977년 형제 록그룹 산울림의 리더로 데뷔한 이래 30여년의 세월동안 가수, 작곡가, 음반기획자, 배우, 방송인, 탤런트 등 다방면에 걸쳐 만능의 재능을 펼쳐왔다. 인터넷에서 그를 검색해보자.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는 직업은 탤런트고 가수, 배우, 방송 진행자가 뒤를 따른다. 지난 3월 종영한 MBC TV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에서 평소의 이미지를 뒤집는 악역 우용길 부원장으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의 직업을 뭐라고 규명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만능 엔터테이너다. 그래서 세대마다 그를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10대들은 그가 가수임을 잘 모른다. 때론 냉정하고 때론 옆집 아저씨 같은 연기 잘하는 중견 탤런트로 안다. 20십대들은 푸근한 입담의 라디오 진행자를 떠올린다. 그의 파격적인 음악에 열광했던 30-40대는 동심에 가득 찬 ‘개구쟁이’를 떠올린다.
지난 해 신중현의 은퇴로 활동하는 뮤지션 중 거장 급은 조용필이 거의 유일하다. 그래서 거장의 재목인 김창완의 다재다능함은 오히려 아쉽게 느껴진다. 작년에 작고한 가수 김상국과 조영남도 만능 엔터테이너로 꼽는 대표적인 가수들이다. 하지만 만능이었기에 대중은 그들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실제로 고 김상국은 코메디언으로 기억하는 대중이 더 많다. 조영남도 방송인이나 화가의 활동 이미지 때문에 늘 가수로서는 아웃사이더로 느껴진다.
![]() 복잡한 디지털 세상과 동조해 난무하는 비트 강하고 빠른 요즘 음악에 대한 반기였을까? 어쩌면 지루할 그의 느릿한 노래들은 오히려 더욱 가슴이 와 닿았다. 데뷔부터 지금까지 그의 음악은 파격적이었지만 단순했고 무엇보다 가창력과는 거리가 먼 인간적인 보컬에서 사람 냄새가 났었는데 변하지 않아 정겨웠다. 공연 내내 김창완은 자신의 살아온 날들, 연기생활, 산울림 활동, 가수로서의 삶 등을 자연스럽게 노래 속에 녹여냈다.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노래하지만 많은 관객들이 함께 공감하게 만드는 그의 매력은 우리 대중음악계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것이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찻잔’ ‘청춘’ 등 추억의 레퍼토리와 더불어 ‘비디오만 보았지’ ‘누나야’ ‘결혼하자’ 등 에세이 같은 자신의 삶을 노래로 채색해 들려주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린 ‘이제야 보이네’를 읊조릴 땐 관객들은 눈물을 찍으며 동감했다. “오래된 사진처럼 색 바랜 제 노래들이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지 제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30년 넘게 불러온 노래가 저를 이런 아름다운 무대로 데려왔듯이 오늘 부르는 노래들이 또 저를 어디론가 안내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이번 그의 단독 공연은 자신이 살아온 삶과 시대를 생생하게 보여준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마치 클래식 공연처럼 분위기가 좋았고 수준도 높았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자전거 광인 그는 참 가정적인 사람이다. 지난 2005년 여름 산울림 공연 때 의사인 아내를 위해 ‘청춘2’를 불렀다. 예전에 가수 이은하가 취입했던 노래다. “대학 시절 아내와 연애할 때 내 꿈은 마차를 사 끌며 노래 부르고, 아내는 사람들을 고쳐주는 거였다. 요즘 그때의 작은 꿈을 이루고 사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 지난 2006년 2월 김창완은 EBS '스페이스'의 ‘우리가 그들을 거장이라 부르는 이유’ 무대에 초대받았다. 지금까지 포크의 거장 한대수와 블루스 기타의 명인 이정선, 작은 거인 김수철 등이 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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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05/23 12: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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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3년째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는 포크가수 윤연선

2003년 3월 화제를 뿌리며 컴백공연을 했던 여가수가 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로 시작하는 포크송 ‘얼굴’로 유명한 윤연선씨다. 대학시절의 짧은 가수활동을 남기고 사라졌던 그녀의 27년 만의 재기 콘서트는 여러모로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우선 공연소식을 통해 성사된 첫 사랑과의 결혼은 하나의 사건이었고 포크 팬들이 직접 마련해준 특이한 공연 또한 당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벌써 4년이 지났다. 바쁘게 살아가는 대중에겐 벌써 옛날이야기일 수 있지만 7080음악 부활에 있어 윤연선은 그만큼 각별한 가수다. 사실 그녀의 컴백공연이 7080음악 부활에 기폭제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줄을 이었다. 그 서막은 중년 포크 팬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성사된 한국포크음악의 산실인 명동 YWCA 청개구리 공연의 부활이다. 그리고 기적처럼 줄기차게 70-80년대 최고의 음악족적을 남기고 사라졌던 서유석, 방의경, 이용복, 이정선, 김광희, 현경과 영애, 오세은, 김두수 등이 청개구리 무대를 통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면서 반응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1년 후 7080음악 열기는 마침내 폭발되었다. 당시 창사 77주년을 맞은 KBS는 2004년 1월 25일 ‘7080 추억의 그룹사운드’특집 후 뜨거운 반응과 요청에 힘입어 속편으로 70-80년대 가요제 수상자들을 불러내 ‘7080 보고싶다’ 특집편을 90분 동안 방송했다. 가요제 출신가수가 아니지만 윤연선은 그 방송의 메인 가수로 초대되었다.
그는 여전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지난 3월 17일 그녀가 메인가수로 등장하는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청개구리 순수포크 음악회’. 그 때 그 멤버들인 포크가수 김의철, 이성원도 함께했다. 윤연선은 4년 전 보다 한결 원숙하고 여전한 고운 목소리로 ‘얼굴’, ‘고아’, ‘그리워라’ 등 추억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3일 후 여의도 KBS별관 제116회 7080콘서트 공개방송 녹화무대. 공연 후 윤씨는 “7080콘서트 방송은 2004년 처음 시작할 때 출연하고 3년 만 이네요. 그땐 가수, 관객 모두 흥분되고 반가운 마음이었는데... 벌써 100회가 넘었습니다. 이젠 완전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아 감회가 새롭네요.” 라며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중년세대들과 포크 애호가들을 위한 쉼터로 홍대 앞에 포크음악 라이브 전문카페 ‘얼굴’을 오픈한 것도 3년 전의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매달 한번 씩 가수를 초대해 1시간 미니콘서트 ‘작은 음악회’를 3년째 기획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얼굴’을 오픈했을 때 한 달 동안 동료 선후배가수들이 매일 무료로 우정출연을 해주었어요. 3년 동안 김세환, 김도향, 장은아, 홍민, 4월과 5월, 뚜아에무아, 이정선등 7080가수는 거의 다 출연을 했어요. 이젠 작은음악회를 찾아주는 회원이 400여명이나 되고 가수들도 은근히 출연 여부를 물어오기도 합니다.”
마침 지난 23일 금요일이 35회 ‘작은 음악회’는 3주년 기념 콘서트였다. 초대 가수는 남성듀오 ‘쉐그린’의 멤버로 ‘솔개’, ‘고니’등 새 시리즈노래로 히트 퍼레이드를 벌였던 포크가수 이태원이었다. 저녁 9시 공연 30분 전. 깔끔한 정장차림의 중년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실내로 들어서니 이미 40여 좌석이 꽉 차 있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시종 열띤 분위기 속에 미니콘서트는 1시간 남짓 진행되었다. 공연 후 객석에서 만난 홍익대 김정훈교수는 “거의 모든 공연을 다 보았으니 열성 회원이죠. 요즘은 이 건전한 문화를 제 주변에 많이 퍼트리는 전도사”라며 “한번은 학회 행사에 포크가수들을 초대했는데 진지한 포크음악이 다들 좋다고 합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더 열심히 들어 놀랐다.”고 말한다.

최근 미사리를 비롯해 서울 인근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라이브 카페들 상당수가 문을 닫은 상태다. 거듭되는 경기침체 때문이다. 헌데 젊은 인디밴드들이 점령한 홍대 앞에서 7080라이브음악을 고집하고 있는 윤연선의 성공은 놀랍다. 그녀는 “작은음악회는 사실 저를 기억하고 찾아주시는 분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였는데 이제는 차별되는 컨셉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초대가수와 공연 날짜는 철저하게 회원들 다수가 요청하는 의견을 따른다고 한다. 윤연선씨는 “지난 번 트리오 소리새 공연 때 한 여성분이 남편의 18번곡이 ‘그대 그리고 나’라며 부부동반으로 14명이 함께 오기도 했다”며 “생활에 지친 중년세대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작은 음악회에 참석했던 직장인 김영선씨는 “한번 이 분위기를 경험하면 꼭 다시 찾게 된다.”며 “포크송을 듣고 나면 우선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고 사회생활로 혼탁했던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라고 활짝 웃었다. 또한 홍대 김정훈교수는 “이젠 술 먹고 질펀하게 노는 밤 문화를 다 지겨워합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이렇게 한 달에 한 번 술도 마시고 건전하게 공연도 보는 문화가 더 좋다.”며 “추억은 항상 좋지만 신인발굴도 좀 했으면 합니다. 요즘 트로트 가수 장윤정 참 새롭잖아요. 포크음악도 추억과 새로움이 접목되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윤연선씨는 지난 4년 동안 ‘열린 음악회’, ‘가요무대’, 각종 특집 방송프로와 공연에 출연하며 오랫동안 목말랐던 노래인생의 갈증을 풀어내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구들과 팬들이 너무도 많이 찾아옵니다.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글.사진=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oopld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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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 |||
1987년 6월. 민주화 열기가 용광로처럼 펄펄 끓었던 그 시절 민중가요는 감동의 노래였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은 손을 맞잡고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을 목놓아 불렀다.
변혁의 열기가 식은 지금, 그 노래 주인공들과 강렬했던 노래들은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의미로 채색되어 있고 그 생명력은 앞으로도 유효한 것일까.
사실 이번 공연은 ‘6월 항쟁 20주년 기념’이라는 명분보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무대였다. 객석을 꽉 채운 관객층은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했다. 어린 자녀세대를 데리고 온 관객도 제법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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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06/05 15:01 수정시간 : 2007/06/05 15: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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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템즈 강변에 자리 잡은 킹스 컬리지의 투투 바에서 델리 스파이스가 공연을 했습니다. 아마 런던에서 공연을 한 한국 밴드는 델리 스파이스가 처음이 아닐까하는데요. 다른 밴드가 아니라 델리 스파이스여서 더욱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이번 공연은 KACC (Korean Anglican Community Centre)에서 주관한 행사로 한국의 대중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였습니다. 일종의 자선 행사였기 때문에 전혀 입장료가 없었고, 델리 역시 전혀 공연료를 받지 않고 공연했다고 들었습니다.
5시 경에 이미 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은 바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6시, 7시가 지나니, 템즈 강변 쪽으로 쭉 줄을 늘어서야 했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델리 스파이스가 무대에 선 것은 아마 8시 반쯤이었을까요. 그들이 첫번째 연주한 노래는 [슬프지만 진실...] 앨범의 <워터 멜론>이었습니다. 5집에 들어있는 신곡들의 연주도 있었고, 4집의 <항상 엔진을 켜둘께>와 <뚜빠뚜빠띠>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민규 씨는 빨간 색 티를 입었고, 윤준호 씨는 상당히 세련된 스타일이시더군요. 김민규 씨의 첫멘트는 '저희 처음 보시죠... 원래 나가는 데가 없으니까 아마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꺼에요.' 였습니다. 아마 영국에서 하는 공연이라 서울이나 한국에서 하는 공연과는 다르고, 귀가 까다로운 외국(영국) 사람들이 많을 까봐 약간 긴장하셨던 것도 같은데, 사실 대부분이 열광적인 한국 팬들이다보니, 서울에서 클럽에서 공연하실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몇 곡 연주 후 하시더군요.
제 영국 친구들은 음악도 좋아했고, 또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적으로 노는 모습을 처음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것 같더군요. 델리 스파이스의 5집 앨범을 저한테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델리 스파이스라는 이름이 한국에서는 신선(!)한 이름이지만, 원래 인디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쪽 식당이나 음식이 흔한 런던에서는 다소... 인디언 식당(?) 이름처럼 여겨지는 오해가 있었습니다...
공연도 좋았고, 공연 이후에도 (아마 오신 지 하루밖에 안되서 전혀 시차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하는 공연이라 무척 힘들었을 꺼라고 생각됩니다) 줄을 이어 늘어선 팬들에게 차례 차례 싸인을 해주고 대화를 해주는 델리의 모습에서는 스타인 척 무게 잡는 거만함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더군요. 잠도 수녀원(?)에서 주무셔야 했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김민규 씨의 여리지만 분명한 자기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에는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반한 소녀 팬도 있는 것 같았구요... ^^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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