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위한
21c AGP 4 ArtMessenger - 가상 공간을 매개체로 한 예술 체험과 소통
Solomon R. Guggenheim Museum / P.S.1 Contemporary Art Center

Solomon R. Guggenheim Museum

미국 철강계 거물이자 자선 사업가 구겐하임이 설립한 미술관
현재의 건물은 프랭크 포이드 라이트가 설계 하였다. 나선형 구조의 전시장이라
삐딱한 바닦에 서서 작품을 관람해야 한다.



Solomon R. Guggenheim Museum _ 1071 Fifth Avenue (at 89th Street)
New York, NY 10128-0173 http://www.guggenheim.org/

P.S.1 Contemporary Art Center


ps1은 1971년 Alanna Heiss 가 설립하였다. 기존의 미술관들이 현대미술가들의
작품 전시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보고 대안으로 설립
현재의 아트 센터는 공립학교를 개조한 것이다. 2000년 뉴욕 현대 미술관과
제휴하여 뉴욕현대미술가를 선보이는 공동 전시가 이루어 졌다.

P.S.1 Contemporary Art Center_ 22-25 Jackson Ave at the intersection of 46th Ave
Long Island City, NY 11101 http://www.ps1.org/
<아트메신저>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각예술을 통해 각자의 관점을 진솔하게 보여주어
다양한 분야, 계층의 사람과도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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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말로 ‘모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을 ‘....‘무엇 무엇...마니아’라 부른다.
필자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문화예술품 경매장에 가보라.
그림 한 점, 음반 한 장, 고서 한권이 어마어마한 가격에 낙찰되는 광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모으는 병’에 걸린 사람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증거다.
또한 단순 수집에 머물지 않고 관련 자료를 모아 연구까지 시도해 전문서적을 발표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와 일본은 국민전체가 수집벽 환자로 보일 정도다.
파리의 벼룩시장에 가 보면 우리나라의 중고 전화 카드까지 거래되고 있다.
전 세계를 누비는 일본인의 방대한 수집 품목은 가히 싹쓸이 수준이다.
국내에도 그림, 고서, 음반, 우표, 영화포스터, 인형, 전화 카드, 심지어 딱지는 물론 시시콜콜한 생활용품까지
모으는 수집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2월, 사치스러운 수집벽을 가졌던 18세기 조선 선비들을 다룬 책 ‘선비답게 산다는 것’(휴머니스트)이
발간되어 화제를 모았다. KBS TV의 ‘진품명품’ 프로그램은 장수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그만치 수집은 많은 대중의 관심대상이고 그 역사 또한 장구하다.
세기의 폭군 히틀러는 그림에 대한 병적인 수집벽이 있었던 사람이다. 전쟁광인 그의 꿈이 화가였고
그림을 사랑했다는 사실 또한 놀랍기만 하다. 조선 정조 때 ‘시.서.화 3절’로 불렸던 신위는 돌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도 가는 곳 마다 수석을 주워 수레에 싣고 다녔다고 한다.
정조의 사위 홍현주도 좋은 그림에는 먹고 자는 것을 잊을 만큼 수집벽이 남달랐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왜 이리 그림과 모으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지 궁금할 것이다.
한 번도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진귀한 픽쳐디스크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픽쳐 디스크는 말 그대로 음반 전체에 그림이 그려진 음반을 말한다.
정규앨범이기보단 소량의 전시수집용 기념음반으로 희귀성과 더불어 그 화려한 시각적 매력으로
수집본능을 자극하는 음반이다.
국내에 픽쳐디스크가 처음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은 지난 1993년의 일이다.
가수 신윤정에 이어 가왕 조용필이 해운대 콘서트 실황을 소량 한정 LP로 발표했었기 때문.
당시 ‘국내 최초’라는 요란한 상업적 수식어가 붙었던 것은 일반대중에게 픽쳐디스크의 존재가 생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떻게 그림이 수록된 음반이 나올 수 있느냐”며 프레스 기술의 발전에 감탄사가 연발되었다.
조용필의 픽쳐디스크는 현재 25-3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과연 조용필의 픽쳐디스크가 국내 최초일까? 아니다. 믿기 힘들겠지만 국내 그림음반의 역사는 장구하다.
SP 그러니까 유성기 음반시절인 50년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희귀음반 사이트인 LP겔러리의 나원영사장은 “지금은 너무 희귀해 수집 아이템으로 찾는 이가 많다.
예전에 UN산하기금에서 모금을 위해 제작된 픽쳐디스크들이 외국에서 많이 들어왔었다.
60년대에는 불국사 방문기념 종이 픽쳐 디스크, 한일은행 등 각 은행의 창립기념으로 나온 픽쳐 디스크,
대학과 호텔에서도 신년 인사, 개관, 개교기념으로 소량 픽쳐 디스크를 제작했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이처럼 국내에서 픽쳐디스크는 60년대에 각종 기념물로 일반에 널리 애용되다 70년대에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 외국의 제작열풍에 영향을 받아 8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일반판매가 되어 세간에 알려졌다.
하지만 철저하게 숨겨진 사실이 있다. 우리나라 기술로 제작한 국내 픽쳐 유성기 음반의 실존이다.
재킷조차 없던 유성기 음반 시절에 픽쳐 음반이라니.
바로 한국 영화의 전성시대였던 50년대에 시리즈로 발매된 영화OST다.
세간에는 ‘5-6장 쯤 나왔을 것’이라는 풍문이 떠돌고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픽쳐 유성기 음반은 단 3장이다.
너무도 희귀하고 각각 50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음반인지라 다루기조차 조심스런 이 음반을 공개한다.


먼저 신상옥 감독의 1958년 4월 20일에 개봉한 영화 '지옥화'.
이 음반은 파격적인 영화답게 음반엔 남녀 주연배우 최은희와 김학의 충격적이고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담겨있다.
그리고 괴짜 감독으로 유명했던 고 김기영감독의 1958년 5월 30일에 개봉한 영화 '초설'의 OST 유성기 픽쳐음반이 있다.
주인공인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와 박암의 영화스틸사진과 주제가를 부른 인기가수 나애심의 사진이 그려져 있다.
나애심은 ‘디디디’로 유명한 가수 김혜림의 어머니.
영화의 필름은 고사하고 시나리오조차 남겨지지 않았기에 이 음반은 영화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유일한 자료이기도 하다.

앞면 사진에 이어 뒷면에는 당시 유니버샬에 소속된 현인, 황정자, 송민도, 장세정 등 유명 전속가수들과
작곡가 손목인 등 14명의 가수, 작곡가들의 사진이 음반 전면을 빙 둘러있다.
존재조차 숨겨져 있는 이 유성기 픽쳐음반은 한국대중음악과 영화계의 진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또 있다. 역시 58년에 개봉해 공전의 빅히트를 터트렸던 영화 '눈 내리는 밤'OST다.
이 영화는 영상자료원에 조차 그 어떤 자료도 없는 영화다.
이 음반 속 사진의 여배우는 50년대 악극단 시절의 여제인 '눈물의 여왕' 전옥이다.
그녀가 영화배우 최무룡의 어머니고 최민수의 할머니라 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영화전문가 안규찬씨는 “이 영화는 악극을 영화화한 국내 최초의 영화다. 당시 얼마나 큰 인기가 있었냐하면
무려 3번이나 리메이크되었다. 가히 50년대 최고의 영화다. 그런데 오리지널 영화에 대한 자료가 전무했는데
OST 픽쳐음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경악스럽다”고 놀라워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외국은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70년대에 본격적으로 제작이 시작해 80년대에 가히 절정을 이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픽쳐디스크는 무엇일까? 요절한 미국의 섹시여배우 마릴린 먼로, 록음악의 전설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와 영화 스터워즈의 OST 픽쳐음반의 인기가 높다.
사후에 온갖 의혹을 불러온 마릴린 먼로의 그림음반은 무명시절의 누드 사진이 수록되어 전 세계 마니아들의 표적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에니메이션 OST 음반을 발매할 때 ‘초회 한정’이란 전매특허 같은 상술로 픽쳐디스크를 소량 발매해
구매충동을 일으키고 있다. 78년 미국과 영국에서 발매된 비틀즈의 픽쳐디스크는 그 화려한 디자인이 군침을 돌게 하고
독일에서 발매된 10여장의 7인치 싱글들도 6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록그룹 퀸의 프레드 머큐리의 마지막 음반도 기념 픽쳐디스크로 나왔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 CD에 다양한 그래픽과 사진, 그림이 디자인되고 있다. 가히 픽쳐음반 전성시대라 할만하다.
그만큼 비주얼 이미지가 중요한 세상에 시대를 앞서 세상에 나온 진귀한 픽쳐디스크들은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이 될지도 모르겠다.
/글.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지형 4 - 대중음악 아카이브
- ‘대중음악 아카이브’와 음악연구, 음악비평, 음악산업
- '한국대중음악자료원' 건립을 위하여
※ 문화과학 56호(겨울호) 기고.
한국에서 대중음악 마니아뿐만 아니라 평론가, 연구자들이 심각하게 겪는 문제는 ‘대중음악 아카이브’1)에 관한 것이다. 보통 음악마니아들은 음반을 사기 위한 정보와 뮤지션에 관한 정보를 목말라하는데, 90년대 말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이래야 음악잡지, 음악서적, 음악방송을 통해서 비체계적이면서 수동적인 방법으로 얻는 음악정보가 전부였다. 그래서 음악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자연스럽게 음반을 많이 가진 사람이 권위자가 되거나 음악평론가가 되었다. 이는 소수의 음반콜렉터가 음악마니아들 사이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고, 이들이 여론주도와 평론, 연구 활동을 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처럼 음악잡지, 음악방송과 같은 음악전문매체가 수적으로도 적고 매체력도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랬고, 그나마 있는 음악전문매체가 해외 음악 중심의 콘텐츠 운영을 한 결과2)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비평과 연구 작업은 최근까지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90년대 말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부 뜻있는 음악마니아, 음악평론가들이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음악DB나 웹진, 블로그 등에서 보여준 성과이다. 현재 음악포털사이트나 음반쇼핑몰에서 비즈니스 차원으로 운영하는 음악DB보다 오히려 내용적으로 더 만족스러운 maniadb(www.maniadb.com)와 같은 음악DB가 운영되고 있고, 오프라인 음악전문매체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웨이브(www.weiv.co.kr), 가슴네트워크(www.gaseum.co.kr), 이즘(www.izm.co.kr), 리드머(www.rhythmer.net), 보다(www.bo-da.net) 등의 음악웹진이 하고 있다. 또한 음반콜렉터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blog.naver.com/oopldh)이나 웹사이트 ‘코너뮤직’(www.conermusic.com) 등도 음악마니아나 음악연구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인프라가 생김으로 인해서 가능해진 모델이다.
미국의 경우 대중음악에 대한 학제 시스템4)을 바탕으로 학술적 연구도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빌보드(Billboard)와 같은 기록매체는 지난 1956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팝시장에 등장했다가 사라진 가수들의 기록과 순위를 정리해놓음으로써 팝 연구에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또한 60년대 말에 창간한 롤링스톤(Rolling Stone)과 같은 음악전문지들이 정보, 비평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대중음악 아카이브가 충실하게 만들어지는5) 기반이 되고 있다. 그래서 ‘올뮤직가이드’와 같은 충실한 음악DB가 90년대 초반에 탄생할 수가 있었다.6) 더욱이 ‘록큰롤 명예의 전당’7)이나 ‘EMP’(Experience Music Project)8)와 같은 음악박물관들이 많아서 대중음악의 여러 유물들이 비교적 충실하게 보존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음악마니아들에게는 정보를, 음악연구자들에게는 자료를 제공하고,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EMP 박물관
그리고 많은 사료적인 오류가 매체에서 유통되고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라지는 역사적인 사료들도 부지기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애리수와 킹박 관련 보도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애리수(본명 이음전)는 1928년 가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있었던 극단 취성좌(聚星座ㆍ후에 조선연극사로 개칭)의 공연에서 막간 무대에 <황성옛터>(발표 당시 ‘황성의 적荒城의 跡’)를 불러서 유명해진 여가수이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라는 가사의 이 노래는 나라 잃은 설움을 에둘러 표현한 구슬픈 곡조로 이내 객석을 뒤흔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숨죽인 흐느낌은 어느새 통곡으로 번졌고, 가수도 목이 메어 ‘노래 반, 울음 반’의 무대가 이어졌다. 놀란 일제 순사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중단시켰고, 작사가 왕평, 작곡가 전수린을 비롯한 공연 관계자들이 종로경찰서로 붙들려가 밤샘 조사를 받기도 했다.”(정홍택, 한국일보)라고 한다. 이 여가수는 결혼과 함께 모습을 감춰 이미 세상을 뜬 것으로 알려졌었던 ‘전설의 가수’였다. 그런데 현재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인터뷰 사진과 함께 “워낙 고령이어서 휠체어에 의지해 지내고 있지만, 병원에서 ‘110세까지 사시겠다’고 진단할 만큼 정정하다”(정홍택, 한국일보)라는 얘기가 전해져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보도 기사에서 “한국인이 작사, 작곡한 최초의 대중가요이자 80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 애창곡으로 사랑 받는 ‘황성옛터’는 그렇게 대중에 첫 선을 보였다”라는 오류가 있었고11), 첫 보도를 받아쓴 다른 매체들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또한 이애리수 생존 확인에 관한 몇몇 언론 기사에서 이애리수로 소개된 사진 속 인물은 이애리수가 아니라고 한다. “사진의 주인공은 1933년에 가수로 데뷔한 평양 출신 기생 왕수복으로, 이애리수가 7위로 선정된 1935년 가수 인기투표에서 여자가수 1위를 차지한 인물이다.”(이준희, 오마이뉴스) 이번 이애리수 사례에서 보다시피 중앙의 언론들도 줄줄이 오류를 범할만큼 한국 대중음악 관련 연구는 일천하고, 연구성과도 미미하다. 또한 사료의 팩트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는 사람들로는 소수의 음반콜렉터들 밖에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한마디로 사료를 바탕으로 한 실증연구가 부족한 형편이고, 이에는 ‘한국대중음악자료원’과 같은 아카이브가 없어서 연구자들이 애를 먹고 있다는 점이 주요하다.
또한 얼마 전 레코드업계의 ‘전설적인 제작자’인 킹박(본명 박성배)이 LA의 한 요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어 충격을 주었다. 그는 70~80년대 가요계의 스타 제조기로 불리며 조용필, 최진희, 신중현, 양희은, 송창식, 이문세 등을 발굴해 음반을 제작했다. 그런데 90년대 초 아시아 최대의 레코드사를 꿈꾸며 경기도 파주에 초대형 레코드사를 신축하는 등 무리한 투자를 하다 레코드계의 불황이 겹치면서 부도를 내고 도산했다. 이후 모 음반사에 채무변제를 조건으로 자신이 갖고 있던 음반판권들을 넘기고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종적이 묘연했었다. 킹박이 제작한 음반들 중에는 당시 ‘주류 가요계에서의 명반’들이 많다. 그런 그이기에 한국 대중음악 사료 측면에서는 그에게 직접 들어서 복원해야할 사실들이 많다.(구술사 연구 측면.) 이런 점도 아카이브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유실되어 가는 소중한 유산들이다.
그런데 대중음악 연구, 비평 작업은 음악산업 안에서 어떤 의미이고, 어떤 지점에 있을까? 지난 글에서 “음반 구입은 ‘소장’이라는 개념이 담겨있다.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영미권에서는 작품으로서의 ‘앨범’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고, 작품을 만드는 뮤지션이라는 개념으로 ‘앨범 아티스트’라는 용어가 나왔다. 이 ‘앨범 아티스트’는 그냥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음악업계의 용의주도한 마케팅 전술의 일환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음반업계에서 장기적으로 ‘아티스트’를 마케팅하고, ‘스테디셀러’를 만들려면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여기서는 아티스트로의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고, 작품 개념의 앨범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번 아티스트로 등극하면 매번 그의 앨범들을 기다리게 되고, 밥 딜런이나 비틀즈, 롤링 스톤즈의 앨범들처럼 한번 발표된 음반은 50년 가까이 잘 팔리는 장기 스테디셀러가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아티스트 마케팅에는 매체(평론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영미권의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괜히 아티스트를 키워내고, 사회적으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또한 비평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한 바와 같이 대중음악 연구, 비평 작업은 단순히 사료 정리 작업이거나 음악마니아 상대의 글쓰기만이 아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대중음악 아카이브 제작/운영은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즉, 대중음악 아카이브가 갖는 연구, 비평 기능 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기능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이제부터 대중음악 아카이브를 대중음악박물관과 온라인 음악DB로 크게 나누어서 얘기하도록 하겠고, 한국에서 장차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이 생겨야 한다는 전제로 이도 함께 다루겠다.
음악박물관
현재 국내에 있는 음악박물관으로는 강릉 참소리축음기오디오박물관, 부천 에디슨과학박물관, 서울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양평 국악음반박물관, 대구 계명대 음악박물관, 고창 판소리박물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 등이 있다. 하지만 아직 대중음악 사료들을 모은 '대중음악박물관'은 없다.12)
근래 들어 박물관은 하나의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박물관들이 고전적인 전시 기능 이외에 축제, 공연, 강좌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문화기획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장차 생길 대중음악박물관은 유물 전시/보관 기능 이외에도 정보센터로서의 기능, 박물관 전문 인력에 대한 재교육 기능, 개인이나 사립 박물관에 대한 정보제공과 업무 지도기능, 공연장, 음악감상실, 뮤지엄 샵(museum shop), 레스토랑이나 카페테리아 등을 갖는 휴식 공간적 기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대중음악박물관 건립’13)에 참고할만한 국내 음악박물관 관련 자료이다.14)
■ 강릉 참소리축음기오디오박물관
참소리축음기오디오박물관(관장·손성목)은 1992년 11월에 설립되었다.15) 여행 좋아하는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진 유명 코스로, 연 관광객이 25만여명에 이른다. 본관, 뮤직박스관, 에디슨관 등 3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으며 전체를 둘러보는데 약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손성목 관장이 40여년간 60여개 국가를 돌며 수집한 소리기기들이 4천여점이며, 이중 1천 5백여점이 전시된다. 1877년 에디슨이 만든 세계 최초의 축음기 틴포일 1호, 실린더형 축음기인 아메리칸 포노그라프16), 동전 투입식 축음기인 멀티폰 등 진기한 소장품들이 즐비하다.
■ 부천 에디슨과학박물관
4백여평 규모의 전시장에 에디슨이 1877년 발명한 최초의 축음기 틴포일(Tin Foil)을 비롯, 영사기, 백열전구 등 100여년 전의 세계진품 1300여점을 선보인다. 발명왕 에디슨의 축음기와 오디오 역사를 볼 수 있는 ‘뮤직박스관’, 에디슨의 발명품을 집대성한 ‘에디슨관’, 에디슨 영상 및 소리를 보고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음악관’ 등 3개 전시관을 중심으로 상설 전시된다. 이외에 에디슨의 성장과정 및 일대기를 다룬 ‘에디슨 세계’ 전시관, 에디슨 전구의 발달사와 변천사, 전구 제품을 비치한 ‘빛의 세계’ 전시관, 축음기 전시 및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세계’ 전시관, 에디슨 영상 시연, 특수 영상 자료를 전시 상영하는 ‘영상의 세계’ 전시관, 생활용품의 발명 단계 및 변천사를 다른 ‘생활용품의 세계’ 전시관, 100여년 전 에디슨이 발명한 당시 축음기 소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향 및 음악을 감상 할 수 있는 ‘감상실’ 등 6개 시설로 나뉜다.
■ 서울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 전문자료관인 국립국악원 국악박물관은 국악사실, 음향실, 고문헌실, 명인실, 악기 전시실, 죽헌실 등으로 이뤄졌다. 국내·외 악기를 비롯 옛 문헌, 그림, 유품 등 전시물품이 악기 외에도 다양하다. 국악박물관의 핵심인 악기가 전시된 곳은 악기 전시실. 이 곳에는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피리, 단소 등 53점의 국악기와 1백40여점의 외국 악기, 군대에서 사용하던 악기나 생활 속에서 쓰였던 향토악기 등이 함께 전시돼 있다. 악기 연주모습이 담긴 사진과 버튼 작동을 통해 들을 수 있는 14가지 악기소리 등은 입체적인 즐거움을 주는 서비스다.
■ 양평 국악음반박물관
‘국악박사’로 불리는 노재명 관장이 모은 국악자료는 3만점에 이른다. 음반, 영상물, 고문헌, 악기 등이 이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특히 이 곳에 전시된 물품들은 노관장이 마이크와 녹음기, 카메라를 들고 전국 곳곳을 10여년동안 누비며 찾은 것이어서 국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것들이 많다. 이 곳에서는 20세기 한국음반 100년사를 살펴볼 수 있는 10인치 LP 음반에서부터 최신 CD 음반까지 다채롭게 구비돼 있으며, 특히 옛 공연 팜플렛이나 사진도 상당수 전시돼 있어 옛 정취에 젖게 만든다. 또한 가사악보, 고문헌, 국악인 슬라이드 필름, 국악기, 국악 다큐멘터리 비디오테이프 등도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 대구 계명대 음악박물관
계명대 음악박물관은 동서양의 각종 악기류와 음향기기, 음반, 음악관련 서적 등을 구경할 수 있는 전문음악박물관이다. 2000년 11월 23일 개관했으며 거문고, 아쟁, 클라리넷, 바순 등 국악기와 서양악기 2백여점과 축음기, 녹음기 등 음향기기 수십점, 음악관련 고서적 5백권 등이 전시돼 있다. 이중 1880년대에 제작된 축음기와 음반, 150년여 전에 제작된 거문고와 가야금 등이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관람객들이 원할 경우 각종 음향기기와 악기 등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고창 판소리박물관
고창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 여섯마당을 정리한 동리 신재효 선생 고택 옆에 개관했다. 동리의 고택을 형상화해 지은 건물로 전시실과 명예의전당, 아니리마당, 발림마당, 혼마당, 전시실, 미술실 등으로 꾸며졌다. 아니리마당에서는 김소희 등 고창출신 판소리 명창들의 내력을 살필 수 있고, 발림마당은 독공실습이 가능한 체험방, 혼마당은 명상실 기능을 한다. 동리 후손들이 기증한 동리 유품 3백여점과 동리연구회가 내놓은 판소리관련 자료 7백여점, 원로 언론인 진기풍씨가 기증한 추사·우기·강암·장전·토림 등 작품 및 고미술품 78점이 전시물품이다.
■ 세계민속악기박물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서 인터넷으로만 볼 수 있는 사이버 악기 박물관이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유럽, 중동, 오세아니아, 코카서스 지방의 음악과 악기를 골고루 감상할 수 있다. 사진자료와 음악감상자료가 풍부해 세계 민속음악 여행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동투르케스탄, 자바, 투바, 쿠르디스탄, 그린란드 등 생소한 지역의 음악까지 소개할 정도로 세심하다.
온라인 음악DB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의 장점은 자산공유 및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질적 환경을 지원하고 파일 복제를 위한 수고 및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며, 파일 분류, 검색 적용이 가능하다. 시스템 구축에는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따라서 시스템 구축에 앞서, 충분한 요구분석을 토대로 한 시스템 모델 개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지상파방송국들은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해서 운영하고 있다. 뉴스 디지털 시스템은 취재와 제작, 편집, 송출, 보관 등 제작의 전 과정을 디지털로 변환해 저장하는 방식으로 VCR 테이프 없이 저장 장치에 보관된 멀티미디어 자료를 손쉽게 검색, 편집, 저장할 수 있고 제작 시간과 비용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장차 생길 대중음악 디지털 아카이브는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지상파방송국들의 디지털 아카이브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국내 음악DB 관련 자료이다.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KMDB
미국의 올뮤직가이드나 한국의 maniadb와 같은 정보, 비평 중심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음악산업계에서 이용할 메타DB 형태이다. 사업목적은 한국음악 관련 정보 전반에 대한 체계적 DB 구축 및 관리보존을 통해 한국음악에 관계된 다양한 니즈 충족 및 대외 경쟁력 확보이다. 음악표준메타DB, 정산분배시스템, 표준음악콘텐츠, 온-오프라인의 유통 통합 등 음악산업계 각 분야에서 필요한 기초 인프라 조성하고,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음악 관련 비즈니스 정보를 공유하고 신규 비즈니스를 모색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세부사업 내용으로는 한국음악콘텐츠 표준메타DB 유지 및 보완, 표준메타DB(약 300,000여 만곡), COI(문화콘텐츠 식별체계) 관리, 한국음악콘텐츠 디지털 아카이브화 및 관련 자료 확보·보관 등이 있다. 아직 이용이 미흡하다.
■ maniadb (http://www.maniadb.com)
한대수 팬클럽인 ‘행복의 나라’의 회장을 역임한 matia와 xfactor가 운영하는 대중음악DB이다. 2000년대 초반에 운영되던 kpopdb의 후신이기도 하다. 많은 음악 관련 사이트들의 데이터들을 가져와서 이를 선별, 정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개인이 운영하는 데이터베이스이지만 자료의 방대함에서 여타 음악포털사이트나 음반쇼핑몰의 데이터베이스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음반재킷 자료는 고화질로 직접 스캔해서 올리는 방법도 활용함으로써 다른 음악DB에 비해서 우월하다. 체계적으로 자료가 잘 정리된 탓에 음반콜렉터와 연구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음악DB이다.
그렇다면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참고 모델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적당해 보인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07년 5월 상암동 DMC단지 새 청사 이전을 계기로 ‘영화문화의 센터’로서 영화아카이브의 새로운 위상을 찾아나가고 있다. 필름보관고, 영화라이브러리, 시네마테크, 영화박물관을 기본 구조로 영화를 보존복원하고, 이것을 학계와 일반에 활용되도록 서비스하는 시스템으로 구축되었다. 조선희원장의 인사말에 의하면 “우리는 이곳을 ‘세상의 모든 영화가 있는 곳’, 그리고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최근 한국영상자료원 안에 문을 연 한국영화사연구소는 영화학계와 연구자들을 향해 열린 또 하나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소는 자료원의 콘텐츠가 영화사연구 분야에서, 그리고 우리 영화학계에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자료원과 영화계와 학계가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고자 만들어졌다.
한국영상자료원을 기초로 ‘한국대중음악자료원’ 구조를 생각해 보면 음악박물관, 음악DB, 음반/음원보관소, 음악라이브러리, 공연장, 한국대중음악사연구소 등을 산하 기관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력조직으로는 기획홍보팀, 보존기술팀, 수집팀, 디지털정보화팀, 프로그램팀 등이 필요하다. 여기서 할 일으로는 다음과 같다.
○ 대중음악 DB 운영
○ 대중음악 음반 수집/목록화 작업
○ 대중음악 음반 재발매 작업
○ 대중음악 음원 서비스 작업
○ 대중음악 관련 각종 자료 현황 파악 작업
○ 대중음악 관련 중요 인물 구술사 작업
○ 대중음악 관련 각종 매체기록 정리 작업
○ 대중음악 관련 각종 유물 수집/기록/보관/전시 작업
○ 대중음악사 연구 작업
○ 대중음악총서 발간 작업
1) 필자는 대중음악 아카이브 범위에 오프라인 음악박물관, 온라인 음악DB, 온라인 음악매체를 포함시켜서 글을 쓰려고 한다.
2) 한국에서 1970~2000년대에 발행된 대부분 음악잡지의 주요한 콘텐츠는 해외 음악이었다. 그간 ‘SEE’라는 한국 대중음악 전문지가 짧게 두 차례 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국내 대중음악 전문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대중음악 비평과 연구가 취약한 이유이고, 음악산업이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FM라디오의 경우 80년대까지는 해외 대중음악이 주요한 콘텐츠였으나, 90년대 넘어서서 국내 대중음악의 비중이 높아지다가 2000년대 들어서서는 국내 대중음악이 주요한 콘텐츠가 되었다. 하지만 80년대까지는 FM라디오가 ‘음악전문방송’의 기능을 했으나 지금은 연예인 중심의 신변잡기 방송과 생활정보 방송 또는 추억의 팝송 선곡 방송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나마 있는 추억의 팝송 선곡 방송도 대략 1000곡 안에서 뺑뺑이 돌리듯이 선곡되는 식상한 방식이라는 게 문제다.
3) 올뮤직가이드의 현재 이름은 그냥 ‘올뮤직’(allmusic)이다. 현재 사이트는 ‘올무비’(www.allmovie.com)와 ‘올게임’(www.allgame.com)이 같이 연동되어 운영되고 있다.
4) 미국에는 주로 연주인을 양성하는 실용음악대학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기획, 제작, 경영, 정책, 행정, 법제, 연구, 비평 등의 과정을 가르치는 음악산업, 음악매니지먼트 대학이 70여 곳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대중음악이 산업적으로 성장하려면 대중음악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기획자 중심의 학제가 생길 필요성이 있다.
5) 아카이브 제작은 과거형이 아니다. 아카이브는 설계/제작도 중요하지만 자료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형’이다.
6) 올뮤직가이드는 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질 때만 해도 1.4MB 플로피디스크 7장에 넣어서 판매되던 S/W 성격의 데이터베이스였다. 이 7장의 플로피디스크를 PC에 설치하면 그 안에 저장된 음악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방식이었고, 주기적으로 정보들이 업데이트 되어 판매되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말에 인터넷 인프라가 발전되면서 온라인 음악DB로 변형되었고, 오프라인에서는 책자로 출판되었다.
7) 미국의 락앤롤 문화를 소개하는 음악박물관 ‘록큰롤 명예의 전당’이 올해 11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이어 두번째로 뉴욕 소호에 들어선다. 약 2천320㎡ 부지에 세워지는 이 명예의 전당은 최신 시설로 건축돼 록큰롤 역사에 의미 있는 순간들을 집중 조명하며, 음악을 좋아하는 일반인들과 록음악에 열광하는 마니아 팬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8) EMP 설립은 폴 G 앨런(Paul G. Allen)과 조디 패튼(Jody Patton)에 의해 계획되었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를 좋아한 폴 앨런은 헨드릭스의 기념할 만한 모든 것들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수집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 컬렉션을 대중들과 공유하고자 했다. EMP의 컬렉션에는 8만개 이상의 음악 유물이 있는데, 이를 통하여 음악의 역사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다. 음악 유물에는 악기(최초의 전기 기타부터 밥 딜런, 보 디들리, 머디 워터스와 커트 코베인 등이 사용했던 악기), 전세계에서 수집한 전곡이 녹음된 음악 자료, 영화, 사진, 음악 팬 대상 잡지, 무대 의상, 가사 원고, 희귀 음악 악보 등이 망라되어 있다.
9) 아카이브 부재와 관련해서 최규성은 다음과 같은 질문 몇 가지를 던졌다. “대중가요의 역사는 올해로 정확하게 몇 년이 됐을까? 한국 대중가수를 대표하는 국민가수인 이미자와 조용필은 지금까지 국내외 발매음반을 포함해 총 몇 장의 음반을 발표했을까? 국내 최초의 음반이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시대별 중요 대중가요 음반을 직접 보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과거 각 방송국의 연말 대중가요 인기가수 시상식 때 수여된 트로피나 공연 포스터를 직접 볼 수는 있는 것인가? 단순해 보이지만 대중음악 전문가들조차도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 아닐 수 없다.”
10)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는 ‘한국 대중음악 통사’ 작업을 5년에 걸쳐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하면서도 많은 연구 인력이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그 결과물이 한정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
11) “음반으로 발표된 한국 최초의 창작가요는 1929년 김서정이 작사작곡한 <낙화유수>(일명 강남달)이다. 가수는 이정숙이고, 1927년에 제작된 무성영화 ‘낙화유수’의 영화주제가로 사용된 곡이다. 1932년 음반발매되어 5만장을 판 <황성옛터>는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는 아니고 1930년대를 대중가요의 전성시대로 이끈 최초로 공전의 히트를 터트린 곡으로 보면 정확할 것이다.” (최규성, 최규성의 대중문화산책)
12) 2004년 10월 8일 탄생한 남이섬 가요박물관은 국내 최초의 대중음악 아카이브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 연건평 794평 규모를 자랑했던 이곳은 컨텐츠 부재로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다. 그래서 이를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사료적인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13)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음악 사료 정리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14) 국내 음악박물관 자료는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의 “음악박물관에 가보셨나요?” 기사를 참조/재구성했다.
15) 현재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6) 세계에 1대 밖에 남지 않은 ‘아메리칸 포노그라프’를 수집할 때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일화도 있다. “아메리칸 포노그라프는 동전을 넣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축음기다. 1900년 6대가 만들어졌지만 1985년에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단 1대만 남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손 관장은 최후의 1대를 차지하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향했다. 그러나 미국 시카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다 화장실에서 무장 강도를 만나 어깨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 어깨 안쪽에 단단한 혹이 있다. 결국 아메리칸 포노그라프를 얻는 데 성공했다. 목숨을 걸고 아르헨티나에 왔다는 손 관장의 말에 판매자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 대중문화 역사, 보전할 '뿌리'가 사라진다 가요·방송자료 체계적 관리 전무, '문화강국' 위한 내실 다지기 시급 <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주간한국 | ||||||
변변한 대중문화 ‘아카이브(archive; 특정 분야의 공공 기록이나 역사 기록이 보존된 자료실)’ 하나 없는 우리 대중문화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금년 초 대중음악산업의 모든 것을 담아낼 ‘초대형 음악타운을 광주에 조성하려는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한국대중음악연구소 강헌 소장이 발표한 야심찬 광주 아시아 음악타운 조성계획안이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2023년까지 총 1조4,445억여 원의 예산이 필요한 거대 프로젝트인지라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여전히 긴가민가하다. 솔직히 지금의 현실에선 내실 있는 대중문화 아카이브 하나가 더 간절할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는 대중음악, 영화, 방송이 골든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대중음악과 방송 분야는 체계적인 아카이브는커녕 기본적인 1차 자료조차 구하기 힘들다.
영화 쪽은 유네스코가 유일하게 공인한 국내 아카이브인 영상자료원이 있다. 하지만 국가기관인 영상자료원조차 전체 한국 영화 가운데 64%의 필름과 스틸 사진, 시나리오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이 정도의 영화자료가 보존된 것도 1996년 영화진흥법 개정이후 제작되는 모든 영화 필름을 의무적으로 영상자료원에 제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중견 드라마 작가 이금림(58) 씨는 얼마 전 1990년대 초 방영한 자신이 쓴 KBS 일일 드라마 <일출>의 자료를 요청했다가 지워지고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황당했던 이 씨는 그 후 자기가 쓴 드라마는 일일이 녹화하는 버릇이 생겼다. 방송 드라마를 보존하는 공공기관이 있긴 하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다. 이곳에는 연구정보센터 소속의 예술자료실과 방송산업진흥센터 소속의 아카이브가 설치되어 있지만 연구 인력 한 명 없이 유명무실하다.
그럼 현재 방송사는 방송자료를 얼마나 보존하고 있을까?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된 이후는 사정이 나아졌지만 공중파방송사들에는 1990년대 초반 이전에 제작된 프로그램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매일같이 방송에 등장했던 이미자, 남진, 나훈아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전성기 영상조차 두서너 개 남아있을 정도다. 70년대 최고 인기 드라마 <여로>조차 상징적인 한두 회 분만 남아 있는 형편이니 다른 방송물의 사정은 뻔하다.
그동안 대중가요LP는 사실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아 이사를 할 때면 집집마다 버리는 1순위 품목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일본인들이 한국의 희귀 대중가요 음반들이나 노래책, 영상자료, 사진들을 싹쓸이하면서 요즘은 어지간한 70년대 이전 유명가수들의 가요 음반들은 수십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사정이 달라졌다. 이는 대중가요를 스스로 천시했던 대중문화 자료에 대한 인식의 후진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은 자국은 물론 전 세계의 대중문화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고 연구 또한 활발하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 없는 대중음악 자료는 다 일본에 있다”는 말까지 나올까.
지난달 아카이브 성격의 전시회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렸다. 2004년 세상을 떠난 작곡가 고 황문평의 유족이 기증한 2,593점의 자료 중 엄선한 600여 점을 개인문고 설치에 앞서 전시했다. 1층 전시실에는 고인이 생전에 남긴 음반, 저서, 릴 테이프, <빨간 마후라>와 <꽃 중의 꽃>의 친필 악보와 시대별 사진, 각종 가요공로상 트로피가 공개됐다. 고 황문평 씨의 둘째아들인 황원규 씨는 “국립도서관이 문서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개인문고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해 맡기게 됐다"고 말했다. 이치주 국립도서관 자료관리부장은 “1947년부터 개인문고가 시작된 이래 대중가요는 이번이 처음”며 ”개인문고는 그 분의 자료를 전시하고 디지털화해 관련자들이 연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운영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대중문화의 아카이브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문화 연구자들은 황 씨의 귀한 자료가 실제로 잘 보존되고 활용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 황 씨는 다행스러운 편에 속한다. KBS가요무대의 자문위원인 SP음반 수집가 김점도(71) 씨는 몇 년 전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처분 못해 결국 신나라레코드사에 넘겼다. 공공기관이 대중문화 아카이브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은 예산보단 대중문화 자료를 문화재로 보지 않는 인식 부족 탓이 크다. 대중문화가 정치나 경제 못지않게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은 한류 열풍으로 증명되었다.
금년부터 남이섬 가요박물관은 가수협회에서 관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대중음악 자료들을 모아 전시하고 전산화하는 아카이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한국이 문화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 콘텐츠 개발과 지원 체제의 구축이 시급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업성만을 우선시 하다보니 대중문화의 뿌리가 황폐화된 것을 모른지 오래됐다. 하루빨리 대중문화 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전환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 ||||||
| 입력시간 : 2007/03/14 16:50 수정시간 : 2007/03/14 16: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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