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피로봇레코드 소속의 노리플라이는 보컬과 건반을 담당하는 권순관과 기타와 프로그래밍을 맡고 있는 정욱재로 구성된 듀오다. 2008년 3월 싱글앨범 <고백하는 날>을 발표한 후 1년 3개월이 지나고 정규 1집 <Road>를 발표한 것은 불과 얼마 전 일이지만 이들은 몇몇의 컴필레이션 앨범 참여와 다수의 공연활동을 통해, 1집을 발표하기 전부터 이미 음악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루시드폴 혹은 유희열의 음악을 듣는 듯 섬세하고 여린 소녀의 앳된 감수성이 주를 이루며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모던록 사운드를 들려준다. ‘뒤돌아 보다’를 통해 2006년 제 17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은상을 수상, MBC의 한 버라이어티에 ‘고백하는 날’이 삽입되기도 하였으며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가 <남과 여... 그리고 이야기>의 타이틀곡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침체된 한국 대중음악시장에 아주 약간의 희망이 보이고 있다. 현재 대중음악 시장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뮤지션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 부분과 소장할 만한 양질의 음악 콘텐츠의 생산 부분인데 이 중에 좀 더 근본적인 것은 후자다. 때문에, 인디씬을 중심으로 해서 우수한 창작성이 돋보이는 질적으로 뛰어난 음악이 계속해서 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이것은 다행히도 메이저 시장에서도 볼 수 있는 추세다. (대중음악 시장을 메이저와 인디로 보는 이분법을 딱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의상 이렇게 작성했다. 그리고 아래에서 나올 창작성 내지는 실험성과 대중성을 나누는 것 또한 모순되는 부분이 있지만 이 역시 일단은 편의상 나누어 작성하겠다.) 침체된 음악 시장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콘텐츠의 질’ 다시 말해, ‘창작이 주가 되는 콘텐츠의 생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고 싶다. 하지만 이 창작의 정도가 너무 과해 그것은 ‘실험성’만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고 ‘대중성’은 낮은 점수를 받기 십상이었다. 사실 음악에서 대중성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귀에 쉽게 잘 들리는 것’을 미덕으로 함이 옳을 것이다.(음악에 있어서의 대중성이라는 개념은 특정 뮤지션이나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인지도’를 말함이 아니다.) 대부분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머문다거나, 소위 아방가르드 했던 또는 듣기 불편해서 쉽사리 접근하기 힘들었던 뮤지션의(특히나 인디씬에서의) 음악은 언젠가부터 대중성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좀 더 쉽게 잘 들리기 시작하였다는 말이다. 가깝게는 짙은, 에피톤 프로젝트 등이 그러했다. 창작성과(좀 더 나아가면 진정성) 대중성의 교집합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인디씬이 태동된 것을 90년대 중후반으로 본다면 10년하고 좀 더 지난 이제야 그 접점을 발견했다는 말이다. 지금은 참 소중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노리플라이의 음악 역시 창작성과 대중성, 그 사이의 접점을 잘 찾아낸, 오랜 시간의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하길, 대중성의 핵심은 ‘귀에 잘 들리는 것’이라 했는데 그것은 현재 유행하는 후크송과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노리플라이의 음악은 귀에 잘 들리는 멜로디를 가지고 있지만 후크송의 코어인 ‘반복구절’은 발견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이 귀에 잘 들리는 것은 이들만의 세련된 작법에 연유하고 있을 터. 기복이 뚜렷한 멜로디 라인을 만들 줄 아는 것은 이들이 지닌 가장 큰 힘이며 바로 그것이 귀에 잘 들리는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이들은 또한 전통적인 록(Classic Rock 또는 Roots Rock)의 명제였던 ‘록의 중심악기는 기타’라는 것에서 한 발짝 멀리 떨어져있다. 노리플라이 음악의 중심엔 피아노가 굳게 박혀있다. 물론 피아노가 중심이 된 록 사운드의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오메가3의 음악 또한 그 중심에는 피아노가 있었지만 그것은 실험성에 더 큰 비중이 있었다. 그때 태동한 이러한 피아노 록 사운드가 이제는 대중성을 보완하여 본격적으로 발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대중성을 내세운 피아노가 중심이 된 록 사운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모던록의 영역에서 볼 때 주류는 델리스파이스와 언니네이발관을 필두로 한 기타팝(Guitar Pop)밴드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에피톤 프로젝트를 작은 시작으로 하여 노리플라이를 본격적인 구도자의 위치에 올려놓아, ‘모던록의 주류는 이제 기타가 아닌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록 사운드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억견일까? 현재 음악공연이나 앨범이 ‘여성성’을 마케팅으로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참고로 한다면 기타보다는 피아노가 그 특유의 감수성에 적합하다고 말하고 싶다.
주지했다시피,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록 사운드가 앨범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몇몇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리얼 스트링은 앨범을 좀 더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다. 앨범의 부제답게 ‘길’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그것은 사전적 의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드럼과 기타가 합세하여 비교적 빠르게 후렴구까지 이어지는 첫 곡 ‘끝나지 않는 노래’는 군더더기 없는 곡 구성이 매력적이다. 이들의 싱글 앨범에도 수록되었던 ‘시야’는 편곡을 거쳐서 재수록 되었다. 영화 ‘오펄 드림’에 삽입된 본 앨범의 타이틀 곡 ‘그대 걷던 길’은 지난 해 12월 ‘이하나의 페퍼민트’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는 곡이다. 곡 자체에 큰 기복은 없지만 앨범 전체의 감성적인 컨셉을 대표하기엔 무리가 없어 보이며, 전반에 걸친 스트링 연주는 앞으로 튀어나오지는 않는 대신에 얇고 은근하여 절제미를 느낄 수 있다. 그 밖에도 후렴구의 절정이 돋보이는 ‘World’, 새로운 녹음 작업을 거쳐 수록된 ‘뒤돌아 보다’. 곡의 시작과 끝 부분의 지하철 소리 샘플이 흥미로운 ‘Fantasy Train’은 곡의 텍스쳐와는 다르게 몽롱한 느낌이 든다. 저음의 첼로 선율이 인상적인 ‘흐릿해져’, 보사노바 풍의 ‘오래전 그 멜로디’에는 오지은이 보컬에 참여했다고. ‘Violet Suit’는 기타를 맡고 있는 정욱재의 취향이 다소 진하게 묻어 나오는 곡이다. 앨범의 부제와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는 ‘Road’는 힘 있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며, 다소 차분한 느낌과 구성미를 느낄 수 있는 세련된 스트링 편곡의 ‘바람은 어둡고’를 끝으로 앨범은 마무리 된다.
이제 막 1집을 낸 이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젊은 뮤지션 둘이 모여 이러한 ‘작품으로서의 앨범’을 제시하였다는 것과, 단지 거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대중성을 찾아내었다는 것 그 자체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듀오라는 장점을 살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멀리하되 각자 개인의 내공을 더 쌓으며 정진한다면 유희열이나 전람회처럼 자신들의 음악뿐만이 아닌 여러 후배들에게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선배가 될 수 있을 것이 분명하다. 동시에, 대중음악씬에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움직임의 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해본다. 노리플라이는 한국대중음악의 ‘젊은’ 희망이다.

사실 빌 에반스(bill evans)의 '리버사이드 3부작'의 망령에서 벌써 50여년 이라는 세월동안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작금의 피아노 트리오 씬에서, 아웃 플레이를 즐겨하는 프리재즈 연주자외에 연주자들이 그 망령의 탈출구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특히 피에라눈지 피아노에서 자주 언급되는 서정적 피아니즘이나 리리시즘. 그리고 아름답고도 스탠다드한 접근은 재즈 피아노에 있어 분명 존재하는 빌 에반스와 피에라눈지의 교집합이긴 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앞서 말했듯이 비단 피에라눈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빌 에반스의 등장은 원래가 청자들에겐 축복이었고 재즈 피아노 연주자들에겐 족쇄와도 같은 존재 였으니까.
그렇지만 사실 이러한 개념으로 단순히 피에라눈지의 피아노와 그의 트리오를 규정짓기엔 뭔가 한계가 있다. 물론 트리오 외에 앞서 말한 케니 휠러나 과거 쳇 베이커(chet baker)와 같은 트럼펫 쿼텟 구성이나 솔로와 같은 외에 구성에 있어서 보여왔던 변화의 모습마저도 그러한 망령과 그저 동떨어져 말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음 공간과 공간 사이에 공백없는 쉼. 그리고 그 쉼 이후에 바닷바람처럼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아르페지오의 전개와 기분좋은 리듬섹션간의 긴장감은 역시 그 전체를 묶어서 규정하기에도 상당히 무리가 있다. 요는 결국 그의 뛰어난 '구성력'이다.
이번 2009년 신보 <Dream Dance>에서는 이러한 그들 창조성의 원천기술인 구성적인 인터플레이가 더 나아갈 진보의 얘기도 곁들이고 있는데, 특히 'end of diversions'나 'no-nonsense'라는 이름의 초반 트랙들은 과거 평이한 임프로비제이션으로 이런저런 얘기가 돌았던 그가, 트랙간의 공백있는 녹음으로 인해 주제에 대한 평은 좀 갈리긴 했지만 <Live In Japan>으로 그들 의견을 상쇄시켜 버린 전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여전히 실험적이며 도전적이다. 아울러 멜로디스트로서의 마크 존슨의 실체, 이젠 완전히 녹아버린 조이 배런의 드럼도 여러 트랙에서 재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모든것을 감싸고 돌아가는 피에라눈지의 피아노는, 최근 너무 정력적으로 발매되고 있다는 느낌의 그의 음반활동에 제동을 걸레야 걸 수 없게 만든다.
이쯤되면 재즈 피아노 트리오에서 이제 발전의 종말을 얘기해야 하는 작금의 상태에서 그의 행보가 꽤나 가치있게 들리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상당히 '첨단'에 서 있다.

1960년대 재즈의 기류가 모던을 벗어나 락에 시대와 결합해서 진화할때, 재즈가 포기한것은 비단 '밥(bop)'과 '스윙(swing)'만은 아니었다. 음악에서 한번에 여러음을 쏟아내기에 가장 유용한 두가지 악기인 피아노와 기타 가운데서 기타의 역할을 락의 영역에 같이 양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 재즈락이나 아방가르드, 혹은 컨템포러리나 동일한 핑거스타일 재즈 기타리스트 명단에서도 수 많은 슈퍼 기타리스트들을 배출해낸 재즈이긴 하지만, 그 힘과 영향력은 락의 기타리스트들의 비견될 정도로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되지는 못했다. 비틀즈와 우드스탁의 힘은 그렇게 꽤나 강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락의 역사에서부터 훨씬 이전인 렉타임의 블라인드 블레이크(blind blake)와 블루스의 미시시피 존 허트(mississippi john hurt)에서 부터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과 에디 랭(eddie lang)의 황금의 스윙의 시대를 거쳐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조 패스(joe pass)에 이르는 모던의 굵직한 역사는, 악기에서 본격적인 전기(電氣)가 들어오고 그 형식이 파괴되는 포스트 모던시대 이전까지 기타라는 악기가 100여년간 재즈에서 가졌던 무게감을 반증한다.
그 중에서 핑거스타일의 기타리스트들은 60년대 재즈락에 시대에 윈튼 마샬리스(wynton marsalis)의 전통주의 운동과 맞물려 데이브 반 론크(dave van ronk)에 의해 재편되기도 했는데, 그 방향성이 훨씬 이전인 블루스의 포크음악에 촛점이 맞춰져있긴 했지만 기타라는 악기가 이펙터를 사용하기 이전 어떤 음악을 연주했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찾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파생된 핑거스타일 기타리스트들의 집결지로 자주 사용되어지는 캐나다. 그중에서도 퀘백 출신의 '앙투안 뒤푸르'(antoine dufour)는 우리에게 음반보다는 유투브에서 신들린 기타 연주 영상으로 더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다. 그런 그의 현란한 테크닉이 담긴 그의 2008년 작 <Existence>는 토미 엠마뉴엘(tommy emmanuel)의 퍼커시브 주법이 생각날 만큼 내용이 화려한데, 최근 이러한 스타일을 자랑하던 과거 그의 선배들이 최근에는 컨템포러리 씬에서 화려한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는 현실을 인지하면 양 극으로 갈리던 기타 연주 스타일에 지겨워 하는 청자들에겐 꽤 반가운 음반이다.
물론 이러한 콘셉트의 음반은 그의 트랜스크립션 홍보용이라는 평가와 아울러 전작인 <Naissance>에 비하면 사운드의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부분도 일견 보이지만, 단지 기타 한대만으로 페이즐리 밴대너를 넥의 끝에 묶고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양손을 튕기고 있을 젊은 기타리스트의 재능을 나타내기엔 부족함이 없다. 또한 기타라는 악기가 낼 수 있는 수많은 소리 가운데, 일렉기타와 세미 할로우 바디가 아닌 본연의 현악기로서 기타소리를 그리워 하던 청자들이나 어린 기타리스트 지망생들에겐 꽤나 경외로운 소리가 모인 음반이다. 특히 그가 짚어내는 고음의 맑은 음과 진행에 주목하라. 그러면 좀 더 즐거운 청취를 맛 볼 수 있다.

작년 2월 정규 1집 앨범 [Pax]를 발표한 밴드 로로스가 총 3곡이 수록되어 있는 EP앨범 [Dream(s)]를 발표했다. 그들은 얼마 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로로스가 작년 한 해 한국 대중음악계의 가장 큰 ‘수확물’이라는 언급은 더 해봤자 입과 손가락만 아플 것 같다. 이번 EP앨범에서 로로스 특유의 몽롱함과 절정에 달할수록 휘몰아치는 그들의 공식은 그대로 계승되고 있으며 좀 더 서정성 짙은 음색의 건반과 스트링, 곡을 풀어나가는 문장 구성력은 진화한 부분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로로스의 음악을 장르적 용어로 설명할 때에는 ‘포스트 록’(Post Rock)이 가장 잘 어울린다. 포스트라는 용어는 어떤 현상의 흐름에 있어서 기존의 것을 계승하거나 버릴 것은 버리고 진화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포스트 록이라는 용어자체에 그 특유의 장르적 특성이 묻어나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포스트 록은 록음악을 기반으로 하되 그 외의 다른 음악 장르에서 음악적인 여러 가지 요소를 버무려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는 그 ‘실험성’에 가장 큰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억지스러운 썰을 더 풀어보자. 새로움을 제안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Post’는 ‘Alternative’(협의가 아닌 광의적인 ‘대안’의 의미)와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이 있다. 얼터너티브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런던 뒷골목의 Punk나 시애틀의 Grunge정도가 될 수 있는데, 펑크는 ‘대안 없는 저항’이었고 그런지는 런던에서 발화한 펑크의 포스트 역할로서 ‘저항이 있는 대안’을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로로스의 음악은 ‘저항이 없는 대안’이라고 하고 싶다. 그들의 앨범을 듣거나 라이브를 보면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집단에 대한 혹은, 사회적인 이데올로기 면에서의 반항 혹은 저항은 느끼기 힘들다. 그들의 음악은 저항이 없는 순수한 음악적 대안(포스트)에 대한 제안서를 내밀었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로로스 그들이 기존의 음악적 혹은 시스템적 양식에 대한 저항 의식을 가지고 음악활동에 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저항이 있는 얼터너티브(음악적 영역에서의 혹은 협의로서의)가 ‘원본’이라고 하고 거기서 파생된 ‘복제물’의 성격을 보인 여러 가지 음악적 장르들을 ‘이미지’(Image)라고 하자. 그리고 로로스의 음악은 이미지의 복제물, 다시 말해 원본의 핵심이었던 ‘저항’이 빠져버린 시뮬라끄르라고 말하고 싶다. ‘저항 빠진 대안’이라. 내파되어 버린 얼터너티브 씬의 또 다른 형식일 수도. 억지일 수도. 저항 없는 대안이라는 점에 부정적이다 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로로스 그들은 ‘무엇’에 대한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그들의 유니크를 확립하고자 했을 것 이라는 말을 하고자 함이다. ‘무엇’이라는 대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대상인지 혹은 다른 것인지, 그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지 혹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음악적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있다.
음악적인 대안이라. 그들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론에 있어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첫째는 플레이 타임이요, 둘째는 곡 구성이다. 그들은 길게, 천천히 이야기 한다. 6하 원칙이라는 형식적인 울타리 안에서 숨 가쁘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 아닌, 처음에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수줍고 조용하게 그리고 천천히 말문을 열기 시작해 보이지 않는 존재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중에 어느새 절정에 다다른다. 그들의 고백을 다 듣고 나면 최소한 5분이다. 이게 정규 1집이었다면 [Dream(s)]에서는 그 ‘고백’의 길이가 한 트랙당 적어도 10분을 넘나든다.(청자에 따라서는 곡이 길다는 부분 그 자체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곡의 길이가 길어지니 그 구성이 복잡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곡의 길이가 길어짐에 따른 중구난방의 구성이 된다면 그것만큼 졸작이 없겠지만 탄탄한 연주력과 팀워크에서 나오는 이들의 구성력은 탁월하다.
노래보다는 연주 그 자체에 포커스가 더 맞추어진 이번 EP에서는 왜곡된 기타의 퍼즈 사운드와 드로닝, 깊은 현악기의 울림, 절정으로 다가갈수록 몰아치는 심벌과 와우 페달이 걸린 상태에서 휘갈기는 기타 등 그들의 음악을 이루고 있는 모든 문법적 요소들은 그대로 계승되었지만 전작에 비해 그 정도가 더 심해졌고 특히 곡 전반의 흐름을 리드하는 듯한 드럼의 완급조절은 여전히 발군이다. 트랙 3개를 나누어 놓았지만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1번 트랙부터 3번 트랙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음산한 분위기 안에서 딜레이 걸린 기타, 적당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드럼으로 시작되는 첫 번째 꿈. 서서히 고조되다 한 방 한 방 몰아치는 구성은 1집의 그것과 비슷하다. 12분이 넘는 대곡으로서 기타의 노이즈를 뒤로 한 채 마무리 된다. 그 노이즈를 그대로 받아서 시작되는 두 번째 꿈은 ‘악몽’의 느낌을 준다. 비교적 플레이 타임이 짧은(그래도 7분을 넘기지만) 두 번째 트랙은 노이즈를 뒤로하고 분산된 화음의 건반으로 시작하여 입자감이 강한 드라이브의 기타가 뒤따르고 질주하는 탐탐의 난타가 청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내면의 침잠(沈潛)을 겪을 수 있게끔 해줄 것이다. ‘My Bloody Valentine’류의 슈게이징의 냄새가 가장 짙은 세 번째 꿈에서는 끊이지 않는 기타 노이즈가 인상적이다.
그들의 음악에 대해서 어떻게든 장르적 정의를 해야 할 터인데 참 애매하다. 포스트 슈게이징 정도로 해두고 싶은데 간혹 들리는 이질적 냄새라니, 나누어진 갈래나 틀에 근거해서 경계선을 긋고 싶어도 그러할 수가 없다. 단지, 개방적인 상태에서 실험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포스트 록’ 정도로 해둘 뿐이다.
이번 EP에서는 로로스가 음악적으로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하는 호기심을 가지는 것도 좋겠지만 이들이 말하는 ‘Dream’의 시니피에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그 부분에 대해 접근해가는 것도 썩 괜찮을 듯싶다. 이번 앨범은 음악도 되고, 소설도 되고, 영화도 되고, 각자의 꿈도 되기 때문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는 아마도 <새드 무비> 포스트 문구가 아마 참고했을 것 같은 문장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이 문장은 ‘연민’이라는 문형을 정의하는 논지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사랑의 대상이 사랑의 관계와는 무관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행하거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거나 보거나 알 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격렬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저자 자신도 미슐레의 “나는 프랑스가 아프다”라는 표현을 따른 것이라고 표현하는 롤랑 바르트의 연민이란 논지에 대한 정의는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나의 완전한 합일을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를 미워한다면 나 역시 그를 미워해야 한다는 식의 그런 일치를 말하는 셈인데 사랑의 힘의 정도와 관계없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의 감정에 진정으로 몰입하는 순간 깨닫는 것은 그가 나의 존재와 관계없이 불행해 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 사람에 대하여 느끼는 사랑의 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를 스스로 지우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이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상대방과의 사랑에서 나의 존재를 살리는 길은 그의 불행에서 거리를 두어야함을 스스로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도 않고 스스로를 추스르면서 그에 대하여 건전한 형태의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출시된 사랑의 단상 1, 2 시리즈는 파스텔 뮤직의 성격을 보여주는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앨범 속에서 한희정, 타루, 짙은, 루싸이트 토끼, 캐스커 모두 장르는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모두가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감성을 추구하고 있다. 사랑의 단상 시리즈 앨범은 박준혁의 <웃음>을 제외하고는 각 곡들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염두한 것 같지는 않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사랑의 단상> 속에서 사랑을 철학적으로 논한 담론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의 언어를 흉내내며 담론을 펼쳤다. 파스텔 뮤직의 <사랑의 단상> 시리즈 속의 곡들은 창작자의 시점을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파생되는 감정에 대한 소소한 개인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아마도 각 창작자들은 작업 중인 곡들 중에서 사랑이라는 컨셉에 부합하는 것을 골라서 앨범에 포함시킨 것 같은 느낌이다. 롤랑 바르트가 괴테의 작품을 읽고 자신의 목소리로 새로운 창작을 보여준 것에 비한다면 앨범의 구체적인 결과물은 많은 괴리를 보여주고 있어서 아쉽기도 하다. 이것은 파스텔 뮤직 레이블의 가요 혹은 팝 적인 감성과 맞닿아 있는 결과이며 곧 한계이다.
<사랑의 단상 chapter 1>에는 롤랑 바르트가 표현한 문장을 그대로 타이틀로 하고 만들어진 곡이 있다. 차세정의 솔로 프로젝트인 에피톤 프로젝트의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이다. 피아노 사운드를 기반으로 기존의 락발라드의 전형을 가져온 이 곡은 감정의 드러남이 직접적이다. 이별의 가해자의 입장에서 쓴 가사는 구성이 뚜렷하다. 그리고 헤어진 상대방의 감정을 동조하는 그 연민의 감정은 완벽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 때문에 슬퍼할 것이라는 상상계에서 동원되는 연민은 동정심과 닿아있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새 앨범 <긴 여행의 시작>은 총 12곡이 들어있다. 2006, 2008년에 발표된 디지털 싱글 앨범 <1229>, <At Your Favorite Place>에 수록된 6곡과 사랑의 단상 시리즈에 수록된 3곡을 제외하면 3곡이(긴 여행의 시작, 눈을 뜨면, 환절기) 추가되었다. 스페셜 앨범이라고 파스텔 뮤직에서 설명하지만 앨범 <긴 여행의 시작>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활동을 돌아보면 대중의 기호 확인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EP앨범의 단계를 지나 정규 앨범 발매를 앞두고 내는 싱글 음반의 성격이 강하다. 앨범 제목과 동명인 1번 트랙 <긴 여행의 시작>은 피아노 사운드를 바탕으로 누재즈 풍의 사운드를 보여주는 경쾌한 곡이다. 과감한 길이의 전주와 함께 구성의 뚜렷함이 세련되었다. 앨범의 타이틀 곡인 <눈을 뜨면>은 홈레코딩 스타일의 전자음을 바탕으로 한 곡이다. 믹싱이 소극적인 것이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곡들은 구성이 뚜렷하며 청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그 요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정확하게 조절된 사운드 그리고 감각적인 가사가 그리는 명확한 이야기와 이미지는 대중가요가 가져야할 확실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면 왠지 오버스럽다고 느껴진다. 왜일까? 가사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감정의 직접적인 노출들 외에도 그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안전함 때문이 아닐까?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 속에서 공통되는 계산된 작곡과 단조로운 편곡은 과거 대중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끌어왔던 사랑의 단상 시리즈의 <그대는 어디에>,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스타일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클래식 모티브를 드러내는 피아노 사운드의 단조로움을 신스의 경쾌함 혹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매우고자 하는 시도(그렇다고 이들 사운드를 적절하게 믹싱한 것 같지 않은 중간 사운드만 들려주고 있다)는 그의 장점이자 한계로 보인다.





품질 이하의 자기 복제
<3nd Mini Album : Stand Up>

이번 신보의 핵심은 이거였다. 과연 저들이 곡의 완성도나 가창력에 대한 자기반성을 통해 그나마 더 나은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가? 아니면 바닥을 드러내 보일 것인가? 솔직히 약간 기대도 했다. 비슷한 시부야계 타이틀곡 <거짓말>과 <마지막 인사>로 동어반복을 했으니 이제는 그래도 조금 더 발전적인 사운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심리였다. 그러나 그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빅뱅 싱글 3집은 바닥을 드러낸 후자쪽이다.
타이틀곡 <하루하루>는 초반 도입부의 건반 플레이나 곡의 중간에 주는 바운스를 볼 때 <거짓말>과 별로 다른 게 없다. 심지어는 <거짓말>보다 훅의 매력이 없다보니 흡인력이 많이 떨어졌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보이기 위해 슬픈 느낌을 준 것도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다. '탑'과 'G-Dragon'의 랩핑은 곡의 분위기와는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강해서 선율이 곳곳에서 끊기고 있고 나머지 멤버들은 떨어지는 가창력으로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가뜩이나 좋지 못한 곡인데 랩과 보컬이 그나마도 망치고 있는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천국>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게다가 단순한 구조라서 선율적인 매력도 확 떨어진다. <착한 사람>은 그나마 과잉을 많이 배제해서 트랙 중에 제일 무난하다.
노브레인이 피쳐링한 <Oh My Friend>는 심란하다. 가뜩이나 매력없는 보컬을 가진 빅뱅에게 노브레인을 붙여놨으니 죽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자신의 스타일대로 몰아붙이는 노브레인을 빅뱅이 힘겹게 따라가는 느낌인지라 노브레인 노래에 빅뱅이 피쳐링을 한다고 해도 믿을 듯 싶다.
아이돌을 뛰어넘는 아이돌이라는 마케팅으로 대중을 속였던 거품도 얼마 가지 못할 듯 싶다. 좋지 못한 품질을 그나마 자기복제하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은 속을 지 모르지만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다. 정말 자신들의 곡의 완성도나 가창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면 이들에게는 더 이상 기대할만한 미래가 없다.
1. Intro (Stand Up)
2. 하루 하루
3. 천국
4. 착한 사람
5. Lady
6. Oh My Friend
출처 : http://blog.naver.com/mstripmstory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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