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며
대중가요는 대중의 삶과 궤적을 같이해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나라 잃은 서러움을 노래한 유행가들이 식민지 대중의 가슴을 울렸고 해방 때는 벅찬 감격을 대변해 주었고 한국 전쟁 때는 이산의 아픔과 황폐해진 피난길의 고단한 심신을 위로해 주었고 60년대는 밝고 건전한 노래들로 경제재건을 의욕을 북돋았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은유적 가사들로 시대의 아픔을 노래해 우리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이처럼 대중가요는 우리들의 삶 깊숙한 곳에 언제나 함께 해온 친구 같은 존재다.
해방이후 미군이 주둔을 시작하면서 물밀듯이 유입된 서구의 뉴웨이브 음악이 유입되기 이전까지 트로트는 지친 삶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당대 대중의 흥을 살려준 주류 대중가요였다. 하지만 60년대 이후 록과 포크는 젊은 세대들의 영혼을 대변했고 조용필과 서태지는 대중가요의 혁명을 이끌며 대중가요의 최대 전성기는 물론 대중음악을 산업으로 불리게 하는 양적 팽창을 가져왔다. 이후 랩, 발라드가 소녀들의 가슴을 적시더니 지금은 현란한 댄스음악이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현재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는 100줄의 나이테를 그려나가고 있다. 그 시작을 어느 시점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민요가 아닌 신민요, 즉 가요의 등장은 30년대에 전성시대를 만개시켰다. 최근 대중가수의 음악인생을 기념하는 공연과 음반이 양산되고 있다. 우리대중음악의 공력이 그만큼 넓고도 깊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데뷔 50주년을 넘긴 현미, 패티김, 이미자, 45주년 넘긴 신중현, 40주년을 넘긴 조용필, 정훈희. 김도향 그리고 35주년을 넘긴 양희은, 30주년을 넘긴 가수는 김창완, 김수철, 최백호 인순이, 장은아 등등 중견을 넘어 거장급으로 분류할 가수들만 해도 부지기수다.
이는 우리 대중가요계도 엄청난 연륜이 쌓였다는 증거이고 오랜 기간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롱런하는 가수들의 개체수도 상당수에 달해 있다는 확인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와 다른 변화의 감지다. 이제 대다수의 뮤지션들은 기념 이벤트을 포함해 과거 방치해두었던 자신들의 귀중한 자료를 모으는 일련의 역사바로세우기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질문 몇 가지를 던져보겠다.
Q1 대중가요의 역사는 올해로 정확하게 몇 년이 됐을까?
Q2 한국 대중가수를 대표하는 국민가수인 이미자와 조용필은 지금까지 국내외 발매음반을 포함해 총 몇 장의 음반을 발표했을까?
Q3 국내 최초의 음반이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시대별 중요 대중가요 음반을 직접 보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Q4 과거 각 방송국의 년 말 대중가요 인기가수 시상식 때 수여된 트로피나 공연 포스터를 직접 볼 수는 있는 것인가?
단순해 보이지만 대중음악 전문가들조차도 쉽게 대답하기 힘든 질문들이다.
가장 대중친화적인 대중문화에 대한 서술 작업 때마다 누구나 겪어야 되는 거대한 벽이 있다. 극복하기 힘든 그 거대한 벽은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베이스의 부재로부터 생성된다.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예컨대 대중음악에서의 음반, 방송에서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의 영상자료, 영화에서는 필름 같은 기초적인 1차 자료들을 참고하려해도 접근조차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상당수는 전혀 보존조차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우리 대중음악의 서글픈 현실이다. 아마도 대중음악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자료부분에 있어서는 이미 자포자기적 대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변변한 ‘아카이브’ 하나 없는(영화의 경우는 제외) 한국 대중음악계의 현실은 음반시장의 끝없는 추락보다 더욱 참담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소위 ‘딴따라’문화로 평가 절하되어오던 대중문화가 예술적 대상으로 그레이드 업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기저에는 대중음악을 학문적 대상으로 삼고 연구한 논문들의 꾸준한 발표와 진지하게 대중음악을 연구한 평론이나 칼럼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2> 한국 대중문화 아카이브 현황
오래전부터 한국의 대중문화는 소위 ‘한류’라는 이름으로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이 널리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해도 한국의 대중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전무하다. 유적지나 기껏해야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 남이섬, 그리고 인사동이나 북촌마을 정도를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 전부다. 한류의 본고장에 와서 한국의 대중문화 역사를 경험 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비단 외국인 방문객의 경우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체계적인 대중음악 박물관이나 아카이브가 하나도 없다보니 우리 대중음악의 뿌리에 대한 인식도 전무한 상태다.
대중음악의 경우 심각한 지경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매일같이 방송에 수도 없이 등장했던 이미자, 남진, 나훈아등 당대 최고 가수들의 전성기 흑백영상조차 두서너 개 남아있을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최정상급의 가수가 아닌 대중가수들의 영상자료 존재여부는 논의할 가치도 없을 정도다. 2004년 10월 8일 탄생한 남이섬 가요박물관은 기대를 부풀게 했던 국내 최초의 대중음악 아카이브이다. 지상 2층 지하 1층 연건평 794평 규모를 자랑했던 이곳은 컨텐츠 부재로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처럼 대중문화자료는 유독 접하기가 힘들어 연구조차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대중음악의 데이터 부재를 증명하는 극명한 사례가 있다. 이미자는 대중가요의 대명사로 거론할 대표적인 가수다. 그는 ‘열아홉 순정’ 음반을 발표한 1959년을 자신의 데뷔 원년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올해 데뷔 50주년 기념공연까지 했다. 그렇다면 1958년에 발표된 그녀의 유성기음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동안 알려진 데뷔년도가 잘못된 것 아닌가?! 그렇다면 2004년에 열었던 45주년 기념공연과 아마도 내년에 개최할 것이 분명한 데뷔 50주년 공연은 명백한 오류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미자 같은 국민가수조차 자신의 데뷔년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내 대중음악계가 안고 있는 데이터 부재라는 뼈아픈 현실의 가감 없는 반영이다. 대중가요계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들의 기록과 역사에 무관심했는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뿐 만 아니다. 대중가요의 효시에 대한 논의 자체조차 활성화되지 않았을 뿐더러, 과거 대중음악 앨범의 판매숫자에 대한 정확한 합산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음반사들 또한 자신들이 출시했던 음반을 정리한 연대별 리스트도 보유하고 있질 못한다. 그러니 대중음악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는 가요박물관 혹은 가요기록보관소 같은 곳이 전무한 것은 어떻게 보면 별스런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고 황문평 선생의 경우 국립도서관에 자신의 음악유품을 기증했지만 대중음악전문 아카이브가 아니기에 활용도에선 의문이다.(사진)
오늘 가슴네트워크에서 10주년 축제 프로그램으로 귀하게 마련한 한국 대중음악 온 오프 아카이브 강연은 중요 실물 자료들을 바탕으로 직접 그 시절의 중요 유성기음반과 LP들을 직접 들어보는 뜻 깊은 시간으로 준비했다. 그리고 대중음악의 역사를 증언하는 자료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직접 실물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다. 또한 대중음악을 변천과정을 통해 유행가요들이 시절 시절마다 한국사회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증명해 보여드리겠다.
3> 한국 대중음악의 각종 원본 자료 감상
음반의 탄생에서 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노래가 담긴 음반이 등장했을까? 데이터베이스가 전무하기에 국내 대중음악은 수많은 오류를 양산하고 있다. 그중 최초라는 수식어를 너무도 쉽게 난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초'라는 것은 말 그대로 처음 생겨난 일이기에 가치 있는 것이고 그만큼 의미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에 황당무계한 최초발표는 지금껏 수없이 남발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사실이 아닌 거짓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무수히 발표된 최초발표에 대해 언론과 대중은 확인할 길이 없어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최초라는 사실에 대한 가치도 반감된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일들로 인해 '최초 논쟁'은 이제는 대중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최초 논쟁'은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소재임은 속일 수 없다. 국내에 음반이 등장한 역사는 100년이 넘어선다. 그동안 한국인의 목소리가 수록된 최초의 음반은 1895년 설이 유력했었다. 선교사이자 의사인 알렌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 10명의 한국 소리꾼들을 데려가 공연을 했고 일행 중 한명인 경기명창 박춘재가 현지에서 취입한 레코드가 국내 최초의 음반으로 전해져 왔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최근 확인되었다.
시간관계상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능한 연대순으로 한국 대중음악사를 정리하며 각 종 음반의 변천과정, 포스터, 사진 등 대중음악의 최초라 할 수 있는 귀한 오리지널 자료들을 직접 보고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1896년 한국인이 최초로 녹음한 음원 탄생 -사진 감상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최남선 경부철도가- 노래책 실물 관람(일제시대 노래책 포함)
1910년 빅터레코드 백춘재의 국악sp음반발매-국내제작 음반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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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8월 5일 번안 대중가요 윤심덕의 사의 찬미 사회적 파장 일으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 인기절정 신민요 아리랑이 민족가요로 각광
# 1926년 11월 국내 최초 경성방송국 개국
#1927년 국내 최초 라디오 방송-사진 감상
# 1929년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 이정숙의 ‘낙화유수’ 발표-유성기음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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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최초의 직업가수 채규업 데뷔 ‘유랑인의 노래’.‘봄노래 부르자’ 발표
# 1931년부터 시에론, 태평, 포리돌, 오케레코드 등 유성기 전성시대 개막
-음반사 레이블 사진감상
# 1932년 이애리수 황성의 적(황성옛터) 발표 본격적인 대중가요시대 개막
-사진감상, 조선가수단 일본공연 오리지널 포스터 실물 감상
#1935년 이난영 목포의 눈물 발표-노래비 사진감상, 유성기 음반 감상
#1938년 김정구 눈물젖은 두만강 발표-유성기 음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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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日총독부 음악교과서 발간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음악교과서, 노래책, 음악잡지 실물 감상
# 1940년대 들어 일본의 태평양전쟁으로 군수물자가 부족해 레코드제작 중단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해방, 미군주둔, 미8군 무대 생성 시작
#1948년 미국 컬럼비아사 세계 최초로 LP판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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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 발발-진중가요 양산
#1950년 10월 4일 AFKN 방송시작
#1956년 최초의 상업TV HLKL(현 KBS)방송시작 드라마 인기 영화제작으로 이어져
-음악관련 영화 포스터 실물 감상
# 1956년 국내 최초로 LP음반 제작
# 1958년 픽쳐 유성기 음반 등장-실물 감상
# 1959년 최초의 미8군 가수이자 여성보컬그룹 김씨스터즈 아시아 최초로 미국 라스베가스 진출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미국에서 국내 뮤지션의 앨범 발표-미국제작 앨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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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MBC문화방송, 1963년 동아방송, 1964년에 동양라디오가 각각 개국
-각 방송국 가요제 실물 트로피 감상
# 1961년 한명숙 ‘노란 싸스의 사나이’ 빅히트 미8군 가수들의 일반무대 장악시작
--10인치 LP 실물 초반 재반 삼판 소개 노래감상
# 1962년 여성듀엣 검은 상처의 블루스-김치캣 1962년 최초12인치lp -LP 감상
# 1960년대 남성사중창단, 극장쇼 전성시대 개막-극장 쇼 오리지널 포스터, 입장권 감상
# 1964년 이미자 동백아가씨 발표해 최초로 100만 음반 판매시대 열어
최초의 록그룹 신중현의 에드훠, 키보이스 음반 발표
최초의 통기타 보컬그룹 아리랑 브라더스 음반 발표-각각 실물 lp 감상
# 1964년 베트남 파병 결정 월남관련 노래 양산
# 1965년 금지곡 양산 건전가요 등장
# 1966년 최초의 노래동아리 ‘포 클로버스’ 등장-실물 lp감상
# 1966년 키다리 미스타김의 최초의 댄스가수 이금희 국내 최초의 팬클럽 결성
# 1967년 윤복희 귀국 미니스커트 열풍-lp감상, 곡 소개
# 1968년 신중현 사단 형성 시작 한대수 귀국해 국내 최초로 창작 모던 포크곡 행복의 나라 발표, 송창식 윤형주 남성듀엣 트윈폴리오 포크가요 대중화 포문, 청년문화 시작
# 1969년 최초의 대중가요 노래비 ‘목포의 눈물’ 탄생-사진 감상
# 1969년 영국가수 클리프 리차드 내한공연-실황음원 LP로 듣기
1970년대 이후
#1970년 김민기 작곡 양희은 노래 아침이슬 탄생-오리지널 lp감상
# 1970년 정훈희 안개 국내 최초로 국제가요제 수상-원곡과 히트곡 버전 비교 감상
#1970년 국내 FM라디오방송 시작, 카세트 테잎 등장-초창기 킹레코드 카세트 테이프 김정미의 바람 노래 감상
# 1975년 대마초 파동 한국사회의 암흑기
# 1976년 송대관-해뜰날 무주공산 시대에 서민들에게 희망을 메시지로 가수왕 등극
#1976년 가왕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조총련계 일본동포들의 방문 러쉬-72년 조용필 최초 버전 수록 첫 독집과 히트 버전 초반 재반 실물 재킷 감상
#1977년 대학가요제 전성시대 개막 캠퍼스 밴드와 록그룹 산울림 등장
#1978년 심수봉-그때 그 사람 대중가요 사상 가장 큰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린 노래
#1979년 현숙-타국에 계신 아빠에게 중동 건설 붐으로 수 만 명의 해외파견근로자들이 생 겨나면서 사회문제가 되었던 바람 난 아내들을 겨냥해 히트한 노래
윤복희-여러분 권위주의 시대에 반말 가사로 금지된 노래
1980년대 이후
#1980년 전두환 대통령 취임 KBS 공영체제로 기구개편 발표
#1980년 조용필 창밖의 여자로 일인독주시대와 더불어 대중음악 르네상스시대 개막
#1980년 심수봉 노래 그때 그 사람 영화로 제작(비디오 실물 공개)
# 1981년 관제행사 국풍81 열풍 금상 이용- 바람이려오
# 1982년 건전가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이례적 빅히트
# 1983년 6월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 국민을 울리며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탄생
-음반과 더불어 당시 이산가족 찾기 실물 자료 감상
#1987년 최초의 대중가요 뮤직비디오 등장-실물 감상
#1992년 김태희-소양강 처녀희 92년 노래방열풍-초창기 노래방 책 감상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신드롬을 일으키며 신세대문화 등장
음악산업회로 각종 홍보물-전화 카드등등
#1994년 홍대앞 밴드들의 스트리트 펑크 쇼를 기반으로 인디음악신 형성
#1995년 김건모 3집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앨범 200만장 판매 돌파-실물 감상
# 1996년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 가요사전심의 철폐
# 1998년 경제환란으로 IMF 아버지들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 부각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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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7080음악등 복고문화 부활
핑클, HOT, 엘비스 프레슬리 우표 실물 감상
#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싸구려 커피 인기 인디음악 열풍
4> 정리하며
과거 대부분의 대중은 대중 문화인들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여 왔다. 좋아하고 열광하면서도 천시하려는 시각 말이다. 그래서 대중문화 관련 자료는 골동품이나 미술 등과 같이 기록되고 보존가치 있는 수집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인식의 전환이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직업 1위로 등극했다. 그 결과 지금의 대중문화는 비로소 대중문화예술로 인정을 받으며 연구해야 될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최근 대중가요 기록의 수집열기가 뜨겁다. 과거 가치 없이 일순위로 버려져 난지도로 향해졌던 대중음악 유산이 이젠 온오프라인 문화경매장에서 기존의 골동품처럼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개인 수집가들에게 한국대중음악의 데이터베이스를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더 늦기 전에 국가주도하에 대중문화의 모든 1차 자료가 수집, 보존, 전시되는 아카이브 공간이 조성되어야 한다. 한류열풍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 역사를 경험한 대중문화의 전당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가수 본인들도 자신의 음반조차 없는 참담한 현실이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예산책정은 기본이고 각 정부기관의 지하창고에 잠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된 대중음악자료의 발굴을 포함 다양한 채널을 통한 대중문화자료의 애정 어린 수집이 끊임없이 시도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최규성 /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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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프로그램 |
- 일시 : 2009년 11월 24일(화) ~ 25일(수), 오후 7시 30분
- 장소 : 대학로 공간 루
- 주제 : “한국 대중음악 아카이브”
- 입장료 : 없음
※ 모두에게 열린 행사입니다. 그냥 오시면 됩니다.
다만 사전에 인원 파악을 할 수 있도록 plan@gaseum.co.kr 로 미리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카페에서 식음료 신청시 비용은 개인이 각자 부담합니다.
※ 세미나 자료집 배포 예정임
■ 11월 24일(화) 저녁 7시 30분 <오프라인 아카이브>
- 강사 약력 :
1986년 한국일보 편집국 45기 견습기자로 사진기자 생활 시작
2003년 인디레이블 솟대 창립
2006년 스포츠한국 편집국 사진팀장, 한국일보 편집국 편집위원
온라인에서 별명이 ‘절판소장’일 정도로 한국에서 손꼽히는 대중음악 관련 콜렉터임
KBS 해피FM <희망가요> ‘최규성의 추억의 LP여행’ 등 다수의 방송프로그램 진행
월간중앙 ‘한국대중음악이 낳은 불후의 대중가요 뮤지션 12인’ 등 다수의 칼럼 진행
단행본 : 제1차 남북정상회담 사진집(청와대사진기자단, 2001),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선, 2009), 한국 중요 대중가수 사전(민음사, 근간) 등
공연기획 : 윤연선 컴백공연(2003), 서울YWCA 포크 청개구리 부활콘서트(2003~2004) 등 다수
음반제작 : 김의철 한정본박스 LP세트(2003), 김의철 1집 ‘저 하늘에 구름 따라’ 복각CD(2003), 청개구리 고운노래모음집 1집 이성원(2003), 2집 김두수(2003), 3집 김정호 트리뷰트공연(2004), 4집 윤연선․김광희․박영애(2004)
사진전 : 남북정상회담(세종문화회관, 2001)
▶ 강의 타이틀 : 한국 대중음악 오프라인 아카이브 - 오리지널 자료 감상을 위주로
▶ 강의 개요 : 대중문화의 모든 1차 자료가 수집, 보존, 전시되는 아카이브 공간의 필요성
▶ 강의 내용
- 한국 대중문화 아카이브 현황
- 음반의 탄생에서 60년대까지
- 70년대 이후 대중음악 아카이브
- 한국 대중음악의 각종 원본 자료 감상 (*개인 소장품을 중심으로 소개)
■ 11월 25일(수) 저녁 7시 30분 <온라인 아카이브>
- 강사 : 류형규(대중음악 DB 및 엔터테인먼트 컨텐츠 연구자, 웹/모바일 서비스 개발자)
- 강사 약력 :
現 NCsoft 부장 (2008 ~ )
現 Maniadb 운영자 (2005 ~ )
SK Telecom 과장 (2004 ~ 2008)
한국음악데이터베이스 Kpopdb Founder & CTO (2001 ~ 2002)
음반쇼핑몰 Myzon.com Co-Founder & CTO (1998 ~ 2001)
하이텔 필름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dbdbdb.com, 예당 클래식 등 다수 프로젝트 참여
서울과학고 / KAIST 전산학과 졸업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데이터베이스 전공)
▶ 강의 타이틀 : 한국 대중음악 온라인 아카이브의 TO-BE
▶ 강의 개요 : 한국 대중음악 온라인 아카이브의 필요성 및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요건 도출
▶ 강의 내용
- 한국 대중음악 온라인 아카이브의 필요성
- 국/내외 구축 사례 및 한계
- 온라인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기초 지식
- 온라인 아카이브 구축을 위한 요건 도출 : TO-BE of maniad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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