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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천펜타포트아츠페스티벌 개막공연(7.31)에 초대합니다.

    안녕하세요. 2010 인천펜타포트페스티벌 총감독 박준흠입니다.   어제까지 록페스...
  2. 2010 인천펜타포트페스티벌 사무국 소개

    ‘결의(決意)’에 찬 표정 또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한 순간   축제를 만든다는...
  3. 2010 인천펜타포트 아츠페스티벌 라인업 (45팀)

    이제 2010년 인천펜타포트아츠페스티벌 프로그램과 라인업이 결정되어서 소식을 전합니다....
  4. 가슴네트워크 10주년 기념축제 현장 스케치

      가슴네트워크 10주년 기념축제(2009 가슴네트워크축제)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티클 문화연구 51 POSTS

  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씨엔블루. 인디의 시뮬라크르


    씨엔블루. 밴드의 포맷을 갖춘 그룹이라니 무척 반가웠다. 일본 인디즈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밴드라는 보도 자료는 더욱 이색적이었다. 그들의 타이틀곡인 ‘외톨이야’가 표절시비에 휘말리면서 장기하와 얼굴들 이후 다시 한 번 인디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에 언급되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앞으로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이들의 연주력이나 표절에 관해 언급할 자격은 없다. 그들의 라이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또한 화성을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제대로 배운 적도 없기에 표절에 관해서도 깊게 썰을 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한다.

    내가 걱정되는 것은 또 한 번의 마녀사냥이 행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표절에 관한 것과 이들이 인디 운운하며 인디를 마케팅 수단으로 가져가려 한다는 것, 라이브 시 핸드 싱크를 한다는 것 등에 대한 욕을 씨엔블루 당사자들에게 할 생각이라면 조금 절제토록 하자. 어떠한 특정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할 생각이 있다면 그들의 기획사에 하는 것이 어떨까. 분명 씨엔블루는 기획사에 의해 살균 처리가 된 기획 상품이다. 그러므로 어디까지가 씨엔블루 당사자들의 모습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획사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쟁거리가 되었단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조금 짚어보자.

    씨엔블루와 인디밴드. 인디란 인디펜던트의 약자로서 '특정 세력이나 자본 집단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문화 양식을 펼침'을 뜻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인디라 부르는 인디 음악도 그것에 준한다. 하지만 최근에 ‘인디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답을 위와 같이 해주기엔 조금 찝찝한 것이 90년대의 모습과 2000년대의 인디가 보여주는 모습이 조금 다른 형태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어서(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인디를 논할 때 기정의 된 정의를 가지고 썰을 풀자니 약간은 불만족스러웠다. 인디를 정의할 때 많은 부분에서의 정의가 이루어지지만 최근의 한국의 상황에선 ‘Indie as ethos’만이 유효하다고 하고 싶다. 자신의 곡을 직접 쓰고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 등의 일련의 과정을 PM(Project Manager)이 되어 진두지휘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갖춘 혹은 시도를 하고 있고 노력하는 모습. 세부적으로 나간다면 레코딩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분화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사운드 디렉터의 역할이나 프로듀싱의 역할은 온전히 창작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자 자세이며 윤리이다. 그것이 인디라는 이름을 걸고 행해지는 모든 행위의 범주 안에 속해 있다면 말이다.

    씨엔블루의 기획사는 그들을 마케팅 할 때 인디를 논하는 것을 자제해 주었으면 한다. 기획사의 유무가 인디의 여부를 가르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기획사가 어떠한 마인드를 가지고 소속 가수를 노출 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일본 인디즈에서의 활동은 아무래도 좋다. 그 배후에 어떠한 내부 사정과 액션 플랜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걱정이 되는 것은 이대로라면 ‘인디’라는 단어는 지극히 허상이요, 환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미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언젠가 인디가 이렇게 작위적으로 세상에 내놓여질 것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만하고 있었던 관계자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한 가지 기쁜 것은, 씨엔블루의 보도 자료에서 보았던 문구다.
    ‘천편일률 가요계의 새로운 대안’이라는 것과 ‘일본 인디즈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이 두 가지 문구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대중음악계가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구나, 라는 것.
    그 대안으로서 ‘밴드’라는 포맷이 제시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인디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주류 기획사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

    소모적인 힘겨루기는 그만하고 이제 모두 함께 힘을 합쳐 바꾸어 봅시다.

    씨엔블루. 인디의 시뮬라크르 씨엔블루. 밴드의 포맷을 갖춘 그룹이라니 무척 반가웠다. 일본 인디즈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밴드라는 보도 자료는 더욱 이색적이었다. 그들의 타이틀곡인 ‘외톨이야’가 표절...
  2.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위한

    21c AGP 4 ArtMessenger - 가상 공간을 매개체로 한 예술 체험과 소통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뉴욕 센트럴파크에 위치한 자연사박품관은 1896년도에 설립, 총면적은 9만 ㎡ 이다

    세계 각지에 탐험가들을 파견하여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였다. 소장품은 약 1600점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_Central Park West at 79th Street, New York,

    NY, 10024-5192 http://www.amnh.org/




    건물에 부착된 엄청난 크기의 광고에서 숭고미를 느꼈던 타임스퀘어.

    초기 명칭은 롱에이커스퀘였다.1903년 뉴욕타임스가 이곳으로 이전해오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됨



    Times Square에서 만난 춤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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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art 를 동하게 할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위한 21c AGP 4 ArtMessenger - 가상 공간을 매개체로 한 예술 체험과 소통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뉴욕 센트럴파크에 위치한 자연사박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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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보여 주셨고 그에 대한 의견들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산다는 비애


    재미 이상의 그 무엇 factory 두눈 http://blog.naver.com/bdeuksoo/40089096506


    출처 : 다음 아고라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9&articleId=210378

    출처 : 알파피씨 http://www.alphapc.co.kr

    출처 : oisoo http://www.oisoo.co.kr/

    출처 : 클럽젠타 http://www.clubzenta.net

    출처 : 철학아카데미 http://acaphilo.co.kr/


    출처 : 아트다 http://www.artda.co.kr/

    출처 : T스토리블러그 http://dunun.tistory.com/

    출처 : 사랑이있는곳 김지은아나운서까페 http://cafe.daum.net/KJElovefamily

    출처 : FULL-HDTV-&-디지털플레이http://cafe.daum.net/digitalplay

    출처 : 악숭[.메탈] http://cafe.daum.net/562asp

    출처 : 조각포털 - 위대한 손 http://cafe.daum.net/prosculptor

    출처 : 화실전 http://cafe.daum.net/hwasil609


    출처 : 꼬마큐레이터 http://cafe.daum.net/kkomacurator

    출처 : 우리 미술관 갈까? http://cafe.daum.net/adelle

    출처 : 부산디자인고등학교총동창회 http://cafe.daum.net/BUSANDESIGN


    출처 : 새벽문학관 http://cafe.daum.net/aaats

    출처 : 21c AGG http://cafe.daum.net/beyun

    출처 : 다음 블로거 http://blog.daum.net/dununorg

    출처 :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http://club.cyworld.com/toyradio


    출처 : 위압-We're AB』 http://bloodtypeAB.cyworld.com



    출처 : 큐레이터세상 http://cafe.naver.com/hbrm



    출처 : 좋은 사람들(Good people) http://cafe.naver.com/powercomputer.cafe



    출처 : 쉬프트 플래시/ 플래쉬 강좌 커뮤니티http://cafe.naver.com/shiftouch


    출처 : 미술과 인생 http://cafe.naver.com/fineartsandlife.cafe



    출처 : 문화충전200%http://cafe.naver.com/real21.cafe



    출처 : 네오맨 http://cafe.naver.com/neoman.cafe



    출처 : 대안미술학교 美 工(미술공장) http://cafe.naver.com/migong1.cafe



    출처 : 준 이야기 http://cafe.naver.com/vlfrnskan4321.cafe



    출처 :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http://cafe.naver.com/pdnote.cafe



    출처 : 스위시(Swish)영상시소스공개 http://cafe.naver.com/baekwoo.cafe



    출처 : 미술품투자카페 http://cafe.naver.com/investart.cafe



    출처 : 미술투자소셜클럽 http://cafe.naver.com/artsocial.cafe



    출처 : 네일아트 전문 카페 with_SHYA…http://cafe.naver.com/withshyan.cafe



    출처 : 78년 말띠들의 모임 http://cafe.naver.com/jsm3005.cafe


    신용구 작가의 또다른 변 http://cafe.daum.net/beyun/2Xf/4801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보여 주셨고 그에 대한 의견들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산다는 비애 재미 이상의 그 무엇 factory 두눈 http://blog.naver.com/bdeuksoo/40089096506...
    ☆☆☆☆☆ | 신용구, 저작권

  4. 당신은 뮤즈를 가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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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을 하는 사람이건, 글을 쓰는 사람이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건 그 어떤 형태로든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뮤즈’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존 레논에게는 오노 요코가 그러했죠. 뭔가를 낳는다는 행위에 대한 절대적인 존재. 혹은 목표. 동기. 혹자는 피난처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기도. 누군가는 창작물의 진정성 여부를 따질 때, 이 뮤즈의 존재 여부를 면밀히 살피곤 합니다. 뮤즈가 없다는 것에 대해 혹은 없어졌다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약에 손을 대기도 하고 누군가는 심적인 고통을 못 이겨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더군요. 뮤즈라는 존재는 메말라 붙어버린 가슴에 창작의 자양분을 마련해주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그것의 부재를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방황이나 매너리즘은 거기에서 비롯되곤 했죠. 그러다 뮤즈의 존재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음을 느낄 때면 그 동안 억눌려왔던 모든 감정이 한 번에 폭발하곤 합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바로 이때입니다. 뮤즈는 민감해서 상대방의 폭발하는 감정을 수용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인색하거든요. 뭐든지 스텝 바이 스텝입니다. 서두르지 마세요. 뮤즈에 대한 사랑을 서두르지 마세요. 절대.

    뮤즈는 사람이 될 수도. 사람이 아닌 무엇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악을 예로 들어보죠. 역사적으로 대중이 선호하는 음악은 대부분 그들의 공감대를 살 수 있었던 음악이 많았습니다. 사랑 타령에 대한 노래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아왔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뮤즈의 대상은 다르지만 결국엔 하나로 귀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뮤즈는 곧 사랑이다’라는 말은 옳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그의 대우명제인 '사랑이 아닌 것은 뮤즈가 아니다.'라는 말은 성립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겠군요.

    너무 논리적으로 따지지 맙시다.
    이렇게 얼버무리겠습니다.

    떠나버린 뮤즈에 대해 미련을 갖거나 힘들어 하지 맙시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떠나버린 뮤즈를 기다리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지만, 그것이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면 그들을 담담하게 보내주는 것이 미덕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부모님이 될 수도 있겠군요. 혹은 먼저 떠나버린 자녀가 될 수도. 애완동물이 될 수도. 아끼던 물건이 될 수도. 없어진 감정이 될 수도. 헤어진 연인이 될 수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물론 억견일 수도 있습니다만- 뮤즈가 없는 창작물은 결국 대부분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결과물 이라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당신은 우리가 주는 이것을 뮤즈로 삼고 그것의 노예가 되어야만해! 그래서 당신은 그 뮤즈에 대해 충성을 다해야해!’ 라는 제도권의 ‘일부’ 존재들에게 속지는 맙시다.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는, 뮤즈를 제대로 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눈과 귀와 가슴을 가지도록 합시다. 성숙해지자는 이야기죠. 글을 쓰는 분이건 악기를 연주하는 분이건 아니,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신 분이시면 뮤즈 하나 정도는 가슴에 품고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신은 뮤즈를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 달리 여쭈어보겠습니다.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나요?

    당신은 뮤즈를 가지고 계신가요? 음악을 하는 사람이건, 글을 쓰는 사람이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건,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건 그 어떤 형태로든 뭔가를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뮤즈’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 | 뮤즈, 사랑, 진정성
  5. ※저작권법

    제91조 (침해등정지)

    ① 저작권 그밖의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제65조 및 제68조의 규정에 의한 보상을받을 권리를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가진 자는 그 권리를 침해하는 자에 대하여 침해의 정지를 청구할 수 있으며, 그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하여 침해의예방 또는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

    ② 저작권 그밖의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를 가진 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청구를 하는 경우에 침해행위에 의하여 만들어진 물건의 폐기나 그밖의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③ 제1항 및 제2항의 경우 또는 이 법에 의한 형사의 기소가 있는 때에는 법원은 원고 또는 고소인의 신청에 의하여 보증을 세우거나 세우지 않게 하고. 임시로 침해행위의 정지 또는 침해행위에 의하여 만들어진 물건의 압류 기타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다.

    ④ 제3항의 경우에 저작권 그밖의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가 없다는 뜻의 판결이 확정한 때에는 신청자는 그 신청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제93조 (손해배상의 청구)

    ① 저작재산권 그밖의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저작인격권을 제외한다)를 가진 자(이하 "저작재산권자등"이라 한다)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하여 권리를 침해한 자에 대하여 그 침해행위에 의하여 자기가 받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권리를 침해한 자가 그 침해행위에 의하여 이익을 받은 때에는 그 이익의 액을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으로 추정한다.

    ② 저작재산권자등이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하여 그 권리를 침해한 자에 대하여 그 침해에의하여 자기가 받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권리의 행사로 통상 받을 수 있는금액에 상당하는 액을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으로 하여 그 손해배상을 청구할수 있다.

    ③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저작재산권자등이 받은 손해의 액이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금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초과액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④ 등록되어 있는 저작권·출판권 또는 저작인접권을 침해한 자는 그 침해행위에 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제95조 (명예회복등의 청구) 저작자는 고의 또는 과실로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있다.

    제97조의5 (권리의 침해죄) 저작재산권 그밖의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를복제·공연·방송·전시·전송·배포·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제98조 (권리의 침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다.

    2. 저작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

    3. 제51조 및 제52조(제60조제3항 또는 제73조의 규정에 의하여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 다)의 규정에 의한 등록을 허위로 한 자

    제99조 (부정발행등의 죄)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1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

    2. 제14조제2항의 규정에 위반한 자

    3. 제78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저작권신탁관리업을 한 자

    4. 제92조의 규정에 의하여 침해행위로 보는 행위를 한 자

    제100조 (출처명시위반의 죄등)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32조제4항의 규정에 위반한 자

    1의2. 제34조(제71조의 규정에 의하여 준용되는 경우를 포함한다)의 규정에 위반하여 출처를 명시하지 아니한 자

    2. 제55조제3항의 규정에 위반하여 복제권자의 표식을 하지 아니한 자

    2의2. 제56조제2항의 규정에 위반한 자

    3. 제78조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신고를 하지 아니하고 저작권대리중개업을 하거나, 제80조제2항의 규정에 의한 영업의 폐쇄명령을 받고 계속 그 영업을 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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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근래, 저작권법 위반으로 잠시 골머리를 앓았었다. 난생 처음 보는 소환장에 부모님과 함께 안절부절 못한 게 거의 일주일은 된 듯싶다. 사실 저작권법이 강화됐다는 소문을 접하자마자 블로그 관리를 해온 터라 아무 이상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미 관리 전에 기소가 들어와 있던 상태였다. 학생신분이라 결과는 다행히 기소유예로 끝났지만 조사가 끝난 지 하루가 지난 지금도 가슴 한 켠이 쓰리다. 이 쓰라림은 관리를 제대로 안 한 내 자신에 대한 질책 때문일 수도 있고,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 평론가가 되겠다고 자처하던 자의 부끄러움에 데인 것일 수도 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문득 한 가지 호기심이 발동했으니. 바로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과연 어떨까?”하는 것이었다. 본문에 앞서 노파심에 얘기하지만, 필자는 절대 우리나라 저작권법의 허술함을 빗대 필자의 허물을 감출 의도도 없고, 필자를 소환했다고 앙갚음을 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 오히려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음악을 비롯한 문화 전반에 걸친 저작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길 바란다.



    ★ 한 국

    우리나라의 IT 기술은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특히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보다 더 쳐주는 게 바로 초고속 통신망이다. 하지만 너무 외장 인테리어만 신경 쓴 탓일까? 저작권에는 미처 신경을 못 쓰게 된다.

    다른 분야보다 용량이 작은 음악 파일은 VDSL급 초고속 인터넷이 나오기 전까진 제일 받기 쉬웠기에 네티즌들의 음악 저작권에 대한 감각은 날이 갈수록 무뎌져 갔다. 벅스뮤직, 소리바다로 대표되는 속칭 인터넷 1기 시절의 상황이다. 그 때 당시 음악에 관심이 없던 필자도 이 두 곳을 자주 애용했을 만큼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사이트였는데, 그 유명세는 당연히 무료로 노래를 다운받고, 들을 수 있다는 요인에 의해 생긴 것이었다. (참고로 조PD는 이미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 같은 모뎀 시절에 자신이 직접 만든 음악을 사람들에게 뿌리며 홍보하기도 했다. 여기서 조PD에게 직접적으로 다운 받은 사람들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PD의 음악을 받은 사람들이 조PD의 허락 없이 재배포를 하게 될 경우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몇 년 후, VDSL급 통신망이 개발됐다. ADSL급 통신망보다 무려 10배 이상 빠른 전송속도로 인해 네티즌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동영상, 게임 등도 P2P나 와레즈 사이트를 통해 손쉽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반면 그 와중에 제일 먼저 골치를 썩인 음악 분야는 당연히 제일 먼저 문제 제기를 하기 시작했고. 벅스뮤직의 유료화나 소리바다의 일시폐쇄는 그로 인한 결과였다. 이때가 바로 인터넷 2기 시절의 상황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정부에서 기껏 세운 대책이란 게 영파라치나 겜파라치 같은 제도였고, P2P 사이트들의 검색어 제한 정도였다. 이런 주먹구구식 싸움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영악해진 네티즌들은 이젠 저작권이란 개념이 있는지 없는지 모호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또 다시, 음파라치를 통해 블로그 단속에 나서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필자를 포함해 이번에 저작권법 위반으로 혼나본 사람들은 다신 음악을 안 올리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원초적인 해결책이지만 파급력이 큰 만큼 확실히 효과가 있긴 있다. 실제 벌금을 낸 사람들은 더할 테고. 이제 남은 숙제는 네티즌, 나아가 전 국민들에게 저작권에 대해 명확히 설명을 해주는 일이다. 아직도 국내에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공짜로 들으면 좋고, 돈 주고 사긴 아까운 풍토가 만연하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까진 저작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부족했던 탓도 크고, 음악활동 시스템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크고, 음반을 살 돈을 아깝게 만드는 뮤지션들의 대거 등장도 크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음반 시장이 몰락하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거늘 왜 유독 우리나라만 타격이 심한지는 위에 열거한 이유들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역시 국민들 스스로의 자각일 것이다. 아무리 감금이 되고, 벌금을 물어도 공유할 사람들은 다 하기 마련이다. (뉴스엔 이미 여럿 구속되는 모습이 나왔지만 불법다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너무 광범위한 해답이지만 이것 말고는 없다. 정부도 음파라치 같은 단순한 제도로만 막을 것이 아니라 여러 구도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불끈 운동 같은 걸 지원한다던지, 수시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공익광고를 내보낸다던지, 스트리밍 사이트들을 확대시켜 국민들 스스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나아가 작곡가, 가수들에게도 정당한 대가가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유도케 하는 해결책 말이다.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다. 술, 당구, 피시방 말고 다른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다면 지금부터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내한 가수들의 공연밖에 볼 수 없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 미 국

    언젠가 배철수 씨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18,19세기가 클래식의 시대였으면 20세기는 팝의 시대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팝, 특히 미국의 팝은 20세기 음악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국의 락이 잠시 전 세계를 뒤흔들긴 했지만 주축은 역시 미국의 팝이었다. 음악 시장이 방대해지는 건 당연지사. 시장이 방대해질수록 체계적인 관리 또한 필수이기에 일찍이 여러 가지 노하우를 쌓게 된다. 이 시절, 우리는 엔카를 모티브로 한 대중가요가 막 들어선 시점이었고, 체계가 잡히기까진 좀 더 시간이 흐른 후니까 인식의 차이는 곧 경험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 하려나?

    하지만 요즘 미국도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이다. 여러 학교가 이미 오래 전부터 저작권법을 어기면 경고문이나, 심하면 퇴학 조치를 내리고 있고, 설사 이런 법적 제재가 없다 하더라도 서로 간에 불법 다운로드한 걸 떳떳하게 말 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누가 신고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울식(Soulseek)이나 라임와이어(Limewire) 같은 외국 P2P 사이트도 갈수록 성행하고 있는 걸로 미루어 볼 때 미국도 인터넷에서만은 맥을 못 추는 듯 보인다. 재밌는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반이라는 사실….

    최근에 미국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당사자들에게 경고 차원으로 인터넷 속도를 느리게 해서 다운 받을 의지를 꺾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 걸렸을 땐 아예 인터넷에 접속을 못 하게 만들고. 우리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대세는 강경책인 것인가?

    아직 미국은 초고속 인터넷망이 그리 발달되진 않았다. 이유가 뭔고 하니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서 통신망 깔기가 유리하지만 미국은 하도 땅덩어리가 넓어서 주(state) 하나에 통신망 깔기도 벅차단다. 우리나라 전체에 통신망 까는 시간이나 주 하나에 통신망 까는 시간이 엇비슷하다는 얘기다. 이 얘기인즉슨, 미국이 곧 우리나라의 절차를 밟을지도 모른다는 뜻. 미국도 머리 꽤나 싸매야 될 게다. 다행인 건 원채 어릴 때부터 저작권에 대한 교육이 확실할뿐더러 학생들 스스로도 영화나 게임, 유틸리티 같은 소프트웨어를 조금 비싸더라도(Student 버전이라고 기능이 제한되긴 하지만 싼 가격에 배포하는 시스템도 잘 발달되어 있다.) 제 가격에 사는 사람이 아직까진 많다는 것이다.

    근데 사람이란 게 고치는 건 죽어라 안 되면서 혹하는 건 참 쉽다. 한 번 불법 다운에 유혹당하면 여간해선 헤어 나오지 못한다. 미연에 방지하는 길만이 살 길이다!



    ★ 유 럽

    음악의 역사로 따지면 미국보다도 오래된 곳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이다. 특히 저 세 국가는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오래된 음악 역사를 자랑하는 곳. 그러니 당연히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나 체계도 일찍이 정립되었다. 그렇다고 바로크 시대 때부터 저작권의 개념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낭만파 시대에 도래해서야 저작권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쉽게 말하자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바흐 같은 엄청난 작곡가들의 노래엔 저작권이 없다는 뜻이다. 그 대신 연주자들이 연주한 앨범에 저작권이 붙는다. 예를 들어,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 중 일부를 샘플링 하겠다고 한다면 베토벤한테 저작권료를 내는 게 아니라, 카라얀한테 내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지, 꼭 카라얀한테만 내는 것은 아니다. 또한 작곡가의 생사와 관계없는 저작인접권이란 것도 있는데, 매우 복잡한 절차니 생략하도록 하겠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바이엘이나 체르니가 살아있었을 때 저작권이 생겼다면 우리나라 때문에 떼돈 벌었을 거라고 하는 걸 다들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유럽인들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그 전통만큼이나 상당히 견고하다. 어린 꼬마아이부터 나이 지긋하신 노인 분들까지 전부 저작권의 소중함을 알고, 보호하기 위해 힘쓴다. ‘무릎팍 도사’ 성시경 씨 편에서도 한 가지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베이시스 출신의 정재형 씨가 클래식 작곡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단다. 하지만 워낙에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라 클래식 악보를 사진 못하고, 복사하려고 문방구에 갔더니 백발의 할머니께서 “그거 범죄예요”라고 해서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신기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쪽 나라에선 그게 당연한 상황이다. 문화를 아끼고, 지켜나가려는 인식은 그렇게 오래 전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다.

    다른 나라를 보면, 스웨덴의 경우 치과병원에서 치과용구의 진동소리가 환자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므로 이를 가리기 위해 헤드폰을 씌워 음악을 틀어주는데, 이 음악사용에 대해 저작권료를 지불하며, 네덜란드에서는 거리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연주하는 악사들도 자진해 저작권료를 낸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엔 음악보다 문학이 더 발달한 나라였다. 이 문학적 기반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음악적 역량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뮤지컬의 탄생 때문이다. 뮤지컬의 장황한 역사를 여기에서 다 설명하기란 벅찬 감이 있으니 대략적으로만 설명하자면, 19세기 말엔 오페레타(라이트 오페라)라는, 정통 오페라보다 훨씬 짧고, 즐기기 쉬운 오페라가 생겨났다.

    클래식엔 비교적 약했던 영국이라 오페라도 접할 기회가 적었으나, 오페레타로 인해 이런 형식의 무대가 영국 국민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졌고, 시나리오에 강한 영국은 금세 오페레타의 일인자로 우뚝 서게 된다. 이런 훌륭한 오페레타들은 놀 거리가 없던 미국인들에게는(다들 알다시피 미국의 역사는 매우 짧다.) 매우 좋은 즐길 거리였고, 여기서 흥행성을 발견한 미국의 기획자들이 무단으로 시나리오를 베끼거나 그대로 다른 무대에서 써먹는 경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의 저작권에 대한 경각심은 이때부터 깨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인들도 처음부터 저작권을 잘 지킨 건 아닌 것 같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경우는 말 할 것도 없다. 워낙에 미국, 영국만큼 음악 시스템이 잘 발달한 나라들이니. 음악의 본고장다운 면모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미국인들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 풍토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 만큼, 우리나라 역시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바꾸어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몇 나라 안 되지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알아보았다. 쓰면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더욱 더 자괴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음악평론가가 되기 위한 사람으로서 음악의 발전을 해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사실 때문에….

    사실 우리나라와 제일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러시아 같은 곳도 했어야 했지만 내일부터 당분간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아쉽지만 끝내야 할 듯싶다. 간단하게만 설명하자면, 일본의 경우는 가까워서 많은 사람들이 알 수도 있을 터. 저작권법이 탄탄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나라다. 언더그라운드 쪽의 기반도 탄탄해서 한국의 많은 인디밴드들이 일본으로 진출도 많이 한다. 중국의 경우는 우리나라만큼이나 복제가 심해서 요즘 문제가 되고 있고…. 더 자세히 설명하지 못하는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부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통해 반성하고, 자각의 기회가 되었길 바란다. 아, 한 가지 더. 이 지면을 통해 세상과 약속하겠다. 더 이상 저작권을 어기는 일은 안 하겠다고. 사랑하는 음악을 걸고 맹세하는 바이다!

    ※저작권법 제91조 (침해등정지)① 저작권 그밖의 이 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권리(제65조 및 제68조의 규정에 의한 보상을받을 권리를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를 가진 자는 그 권리를 침해하는 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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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군장 수집과 서바이벌 게임의 유혹...밀리터리 마니아 대중문화를 경험하다!!!!



    각국의 오리지널 군복을 입고 밀리터리 마니아 행사에 참석한 군복군장 마니아들


    우연하게 한 인터넷 영화모임의 회원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총을 들고 각국의 진짜 군인복장을 한 어른들이 야산에서 전쟁놀이를 즐기는 사진이었다. 전쟁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착각할 정도로 박진감 넘치고 현실감이 느껴지는 놀라운 사진들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었다. 바로 밀리터리 마니아 문화다.


    실물이 살아있는 듯 정교한 ww2독일군 팔름쉐야거(공수부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섬유센터 2층에서 ‘플레툰 커넥션’이란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군사관련 전문잡지가 주최한 이 행사는 전국에 산재한 군장애호가들이 1년에 한 두 차례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벼룩시장을 통해 수집군장을 사고팔기도 하는 그들만의 축제다. 일반인들도 3천원의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입장이 가능했다. 큼직한 가방을 한 두 개씩 끌고 부모와 함께 온 10대부터 중년의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줄을 이어 입장을 했다. 가방 속에선 각국의 군복들이 쏟아져 나왔다. 삼삼오오 모인 그들은 곧 시공을 초월한 각 나라의 군인으로 변신을 했다. 독일군, 미군 특수부대, 소련 야전군, 조선시대 장군, 대만 육군, 한국 건군 장교 등등 마치 세계 군복 박람회장에 온 착각이 들었다.


    소련군복 애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다. 소련군복은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


    현장에서 군복군장마니아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HBT) 운영자 이승용(39)씨를 만났다. 서울 메트로에 근무하는 직장인인 그는 각국의 군복 900여벌과 군화 120쪽을 소장하고 있는 전설적인 군장 마니아다. 이씨는 “밀리터리 마니아는 크게 서바이벌 게임머와 군장수집가로 나뉜다. 2가지를 합쳐 ‘리인엑트먼트’라 한다. 매년 미국 텍사스의 사막에서는 수천명의 애호가들이 탱크와 전투기까지 동원해 남북전쟁이나 2차 대전을 재현하는 대규모행사가 열고 있다. 일본도 월남전을 소재로 해 소위 바보들의 행사라는 뜻인 ‘아호 칼립스’ 행사를 매년 후지산에서 2박 3일 동안 열고 있다. 군사문화자체가 민감한 우리도 서바이벌 게임장을 빌려 다양하게 행사를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군장군복마니아 다음카페 운영자 이승용씨. 그가 입은 복장은 해방 후 미군들이 제공한 한국군 건군 초기의 오리지널 군복으로 이 한 세트를 구비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최근 서바이벌 게임은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나 각종 청소년 캠프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군에서도 예비군 훈련과목으로 실제 활용될 만큼 각광받고 있다. 게임에 사용되는 총의 가격이 30만∼80만원에 이르는지라 마니아의 주 연령층은 30∼40대 직장인들이고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간혹 부작용도 있다. 과시욕에 불타는 학생 마니아들이 총을 들고 군복을 입고 지하철에 탑승해 기겁을 한 시민들의 신고로 지하철 경찰특공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서바이벌 게임 도입기인 90년대엔 사고가 빈번했다. 경찰기동대가 산 주위를 포위하고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 긴급 출동하는 해프닝이 다반사로 벌어졌었다.


    출처/군복군장 마니아 다음카페(http://cafe.daum.net/HBT)

    야산에서의 서바이벌게임. 고증을 거친 군복과 성공한 전투를 재현하는 리인엑트먼트를 즐기는 현장


    각국의 특수부대 군복 종류는 물론 각종 무기에 대한 지식이 군사전문가를 능가하는 밀리터리 마니아는 야산과 아파트 신축공사장, 폐건물을 찾아 과거의 전설적인 전투를 그대로 재현한 전쟁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이들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은 ‘전쟁광’으로 비쳐질 만큼 호의적이진 않았다. 휴전 중인 분단국가의 특수한 현실 또한 부정적 시각에 한몫 거들었다. 또한 총기류와 도검류의 개인소장이 법으로 금지되어있기에 경찰도 왠지 미덥지 못한 사람들로 오해했다. 이에 대해 이승용씨는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 보다 실제로 당시를 간접 경험하는 좋은 취미일 뿐이다. 우리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취미활동을 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긴다. 서바이벌 게임도 사전에 허락을 받은 곳에서만 하고 현역으로 사용되는 군 장비는 카페에 사진도 일절 못 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상 소련군(여성) 독일군 이조시대 병졸 등 시공을 초월한 각종 군복차림 마니아들이 한자리에 모여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 하 플래툰 컨벤션 군장 벼룩시장에 많은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몰려들어 필요한 품목을 살펴보고 있다


    밀리터리 마니아로 통하는 국내 애호가는 현재 수만 명 규모다. 군장수집가만 해도 5천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1970년대부터 등장한 플라모델 수집가는 100만명이 넘는다. 실제로 네이버, 다음 등 인터넷 포탈에는 밀리터리 카페들이 즐비하다. 3년 전 만들어진 네이버의 한 밀리터리 카페는 회원수가 7만에 육박한다. 사회의 인식도 좋아져 대전 엑스포공원 월남전 재현행사 때 군에서 탱크와 실총, 공포탄을 제공해 관객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월남전 당시 파월한국군 등 각종 병과장


    예전에는 청계천 바닥에 굴러다녔던 군장 품들이 이제는 이들로 인해 희귀수집아이템으로 둔갑했다. 실제로 구호품으로 태국으로 보냈던 우리나라 옛날 군복이 비싼 가격으로 역수입되고 있을 정도다. 가장 인기 있는 군장은 2차대전 독일군복이다. 나치즘 같은 이념과 상관없이 멋있다는 이유로 젊은 층이 선호한다. 2차대전 미군 공수부대 군장과 소련군의 군장도 인기가 높다. 전쟁영화의 개봉은 인기 군장의 중요한 잣대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개봉했을 때 미군 공수부대나 레인저 군복이 인기를 끌었고 영화 ‘아버지의 깃발’때는 미 해병대 군장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또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군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최근 한 미국 경매사이트에 2차대전 미국 공수부대의 미사용 군복이 독일군 특수부대 핼맷과 더불어 낙찰가가 각각 1만불이 넘었다. 살아남기 힘든 보직의 부대 즉 일본의 육전대(해병대) 군장도 인기품목으로 희귀고가품으로 통한다. 인기와 더불어 희소성이 있으면 가격이 오르고 무수한 재현 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들의 공통된 소망은 영화나 사진자료를 통해 고증을 거친 진품 군장의 소장이다.


    상 2차대전당시 동독 정보장교 군복 중 2차대전당시 소련야전군복 하 미군 특수부대 군복차림의 마니아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6사단 중위 군복차림인 이승용씨는 “병과장(계급장, 군 마크등 장식품)까지 진품으로 구비하는데 10년이나 걸렸다”며 “군장 수집은 인류 근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취미”라고 소개했다. 대구에서 올라온 사업가 조제홍씨(41)는 낙하산 등 미국 B17 폭격기 조종사의 군장과 2차대전 장갑차와 군인 인형을 전문으로 수집하는 마니아다. 그는 “4년 전 미군M1 철모 한 개를 기념으로 구입했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진품들은 워낙 고가여서 처음엔 아내와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취미가 바쁜 생활에 건전한 윤활유가 되는 걸 인정해주고 있고 아이들도 함께 즐긴다.”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치과의사 김현철(38)씨는 “골프나 산악자전거와 다를 게 없다. 서바이벌 게임은 체력은 물론 국방에 대한 관심도 키워주는 바람직한 스포츠”라고 거들었다.


    철모를 쓰고 아들과 군장문화를 즐기는 조제홍씨


    밀리터리 마니아의 급증은 80% 가량의 남자가 군에 가는 우리나라의 특수한 현실과도 연관이 있다. 현재 이들은 홈페이지를 통해 국방예산 증액이나 차세대 무기 도입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1인 시위를 통해 국방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파워 집단으로 성장했다. 또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군복과 무기의 고증연구로 대중문화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조금씩 다양한 대중문화의 수용이라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느낌이다.


    /글.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위 실물을 방불케하는 탱크, 전투군인등 각종 프라모델

    아래 2차대전 독일군 전투병 프라모델

    군장 수집과 서바이벌 게임의 유혹...밀리터리 마니아 대중문화를 경험하다!!!! 각국의 오리지널 군복을 입고 밀리터리 마니...
    ☆☆☆☆☆ | 밀리터리 마니아 문화
  7. [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USA 투데이 '최근 25년간 미국서 없어진 25가지' 발표
    한국서도 비닐우산 장수·연탄·LP음반 등 자취 감춰

    최근 흥미롭게 읽은 기사가 있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에서 발표했던 ‘최근 25년간 사라진 25가지’다. 1위 ‘실내 흡연’부터 25위 ‘노란색 뉴욕 택시 체커 캡’까지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미국 사회의 시각에서 선정한 것이니 우리의 그것과 100% 대입되지는 않겠지만 어느 나라건 80년대 이후 디지털화 과정에서 겪는 변화는 쉽게 공감대가 느껴졌다. 우선 미국에선 대중문화와 연관된 사라진 것이 무엇인가가 궁금했다.

    상위 순위부터 사라진 것들을 살펴보자. 1위는 실내흡연, 2위는 주유소의 간식점, 3위는 소련의 위협, 사무실의 필수품 타자기도 컴퓨터에 밀려 4위에 올랐다.

    박물관 입성이 가능한 상위권인 5위에 LP음반도 랭크되었다. 사실 LP는 CD에 밀려났다고 하지만 지금도 소량 발매가 되고 있다. 자연스런 소리인 아날로그 음악의 수호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 신중현 음악의 정수라 할 ‘신중현 사운드 1-3집’이 300장 한정 박스LP로 미국서 제작되어 국내 발매되었다. 그럼 CD는 영원할까? CD가 LP의 자리를 밀어낸 것도 불과 1990년대의 일이다. 그런데 CD 역시 벌써 끝이 보이고 있다.

    ■ 1위 실내흡연, 2위는 주유소 간식점

    최근 극심한 국내 음반시장의 불황은 음악의 개념까지 뒤흔들고 있다. 음반은 기껏해야 싱글 음반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이제는 디지털 음원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흐름이다.

    대부분의 가수들도 휴대폰 컬러링이나 벨소리 그리고 MP3 다운용인 디지털 음원으로만 음악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악이 음반으로 소장하는 개념이 아니라 디지털 파일로 쉽게 다운받고 버리는 소비의 개념으로 변했음을 말한다.

    그래서 MP3같은 음원파일은 알아도 LP, CD, 카세트가 무엇인지 모르는 요즘 아이들도 적지 않다. 조만간 각종 음반을 진열한 음반 박물관의 탄생도 멀지 않은 것 같다.

    계속 살펴보자. 가정용 VHS비디오도 어느덧 DVD에 내쫓겨 8위에, 휴대폰에 밀린 공중전화 부스까지도 9위에 올랐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만인이 애용했던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도 버튼식 전화기에 밀려 11위에 올랐으니 각종 박물관이 앞으로 비좁게 생겼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교양’도 사라진 순위 15위에 등극되었다.

    밀렵 때문에 자취를 감춘 서아프리카의 검은 코뿔소는 18위, 자동차 창문 여닫을 때 돌리던 레버 또한 손끝 하나로 작동하는 전자식 버튼에 밀려 19위에 올랐다.

    이 중 DVD에 내쫓긴 비디오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순 없다. 영상물도 디지털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이미 미국 가정의 60%이상이 적어도 한 개 이상의 DVD 플레이어를 소유하고 있고, DVD 플레이어 기능을 갖춘 컴퓨터를 포함할 경우, 73%까지 확대되었을 만큼 VHS는 이제 퇴물이 되었다.

    이에 미국 내에만 3600개 이상의 점포를 소유한 월마트는 신작을 제외한 영화 비디오를 더 이상 취급하지 않기로 했고, 1300개의 점포를 소유한 ‘타겟’도 어린이용과 신작을 제외하고는 모두 철수 결정을 했다. 미국 홈비디오 시장의 3분의 1을 점하고 있는 두 거대 점포의 결정은 미국만의 양상은 아니다.

    보수적인 영국에서도 DVD가 VHS 생산을 추월했고 일본도 미국에서 비디오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다. 흔하게 난립했던 동네 비디오 가게들이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지 않은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젊은이를 열광시켰던 대중문화의 상징 같았던 록밴드들의 장발과 가죽바지는 21위에 올랐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23위에 등극했다. 한때 젊음과 변혁의 상징이었던 록밴드 멤버의 장발도 이제는 촌스러운 것이 된 것이다.

    또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연속극과 음악에 울고 웃었던 시절이 있었건만…. 세상과 소통시켜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라디오는 이제 보기 힘든 물건이 되어가고 있다.

    운전할 때 차 속에서 듣거나 그나마 컴퓨터와 휴대폰으로 라디오 방송을 듣는 세상이 된 지 오래다.

    한때 팝의 황제로 불렸던 마이클 잭슨은 2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달 위를 걷는 듯한 뒤로 가는 춤 ‘문 워크’는 누구나 열광했던 세계 대중문화의 명품이었다.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브 원더는 “만일 눈을 뜨게 되면 딸과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가 가장 먼저 보고 싶다”고 답했을 정도. 그런 그가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사라진 25가지에 포함된 것이다.

    60년대 잭슨 5의 일원으로 음악생활을 시작해 1982년 '스릴러'음반으로 팝의 황제로 떠올랐던 그는 어린이 성추행 혐의로 여러 번 구설에 올랐고 성형중독 후유증인 ‘흘러내린 코’가 공개된 이후 잠적해 버렸다. 최근 바레인에 살고 있다는 소식만 전해지고 있다.

    ■ 아날로그 시대의 따뜻한 인간미 그리워

    우리 주변에도 사라진 것들이 무수하다.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은 말할 것도 없고 한때 모든 가정의 주 연료였던 연탄, 생필품은 물론 수집의 대상이었던 성냥, 대가족제도, 연말에 거리를 뒤덮던 캐롤송, 한여름 장대비가 쏟아질 때 파란 비닐우산을 팔던 우산장수, 한겨울 ‘메밀 무~욱, 찹살 떠~억’을 외치던 정겨운 메밀묵 장수의 소리도 이젠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여자 친구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떠준 털목도리도, 동네 어귀에 자리 잡고 있던 만화방도, 사랑과 우정, 따뜻한 정성을 주고받던 편지 또한 이메일과 휴대폰 문자에 밀려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품목이다.

    삶을 더욱 편리하고 스피디하게 변화시킨 디지털 세상의 장점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기계 만능주의 속에서 하나 둘 아날로그 시대의 따뜻한 인간미를 그리워하는 사람 또한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지지직 거리는 LP음반의 잡음 소리를 찾는 이가 늘어가고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도 증가일로다. 그러고 보니 왜 2000년대 들어 복고문화가 부활하고 수많은 개인 박물관들이 급증하는 것인지 알 것 같다.

    최근 생겨난 신조어 중엔 ‘디지로그’란 말도 있다. 디지털 세상 속에도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것을 함께 추구하는 움직임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서로를 따뜻하게 소통시켜주는 ‘인간미’가 아닐까?! 오늘 지지직 거리는 LP음반과 화질과 음질이 떨어지지만 따뜻한 색감을 보여주는 비디오로 영화나 한편 봐야겠다. 사라지고 잊혀진 그것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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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시간 : 2007/07/18 15:32
    수정시간 : 2007/07/18 15:37


    글.사진=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들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USA 투데이 '최근 25년간 미국서 없어진 25가지' 발표한국서도 비닐우산 장수·연탄·LP음반 등 자취 감춰...
  8. 대중문화인에게 기념우표를 許하라
    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주간한국 생활/문화, 매거진 | 2007.02.28 (수) 오후 4:12
    연예인 기념우표 전무, '백남준 우표' 발행 계기로 문호개방 목소리 높아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담은 ‘백남준의 예술세계 특별우표’가 그의 1주기를 맞아 발행되었다. 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특별우표는 백남준의 주요 작품인 메가트론·메트릭스, 다다익선, TV부처, 엄마를 표현한 4종으로 총 180만 장이 발행되었다. 자유로운 영혼이 꿈틀거렸던 그의 작품세계가 우표로 널리 알려진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한 국가의 공식기록물인 우표가 그동안 대중예술인들에게는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애틋한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내기 위해 편지 봉투 위에 침을 바른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학생이었다면 누구나 한번쯤 우표수집을 해보았을 것이다. 기념 우표가 나오던 날 우체국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사기도 했다. 이메일이 활성화된 요즘에도 우표는 여전히 수집의 대상이자, 국가의 중요 대사를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기록물이다.


    백남준의 특별우표는 그래서 의미가 각별하다. 그가 순수예술가인가 대중예술가인가에 대해서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예술가로서의 그의 도전정신이 현대 미술에 남긴 업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념우표로 발행될 자격이 충분한 예술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발행된 예술 및 문화 관련 우표 중에 아티스트의 예술업적을 기념하는 우표는 없었다. 고작 발행된 것이라곤 일반적인 테마 우표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대중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중가수와 영화배우를 담은 기념우표는 필자의 기억으로는 단 한 장도 없었다. 정치인, 역사 위인, 스포츠 선수 관련 우표는 넘쳐난다. 특히 국내외 대통령의 순방과 방한과 관련된 기념우표의 수는 부지기수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대중문화는 국가의 기록물인 우표에 담기에는 함량미달의 영역으로 본 것일까.


    테마시리즈 우표에서도 대중문화는 푸대접받았다. 테마우표는 역사가 길다. 1960-70년대에도 경제개발, 올림픽, 전국체전, 동물, 민속, 관광, 동화, 교통수단, 명화, 국립공원, 유엔기구, 민속의상, 민속예능, 과실, 조류, 화초, 나비, 도자기, 석탑, 자연보호 시리즈 등이 있었고 80년대에도 만화, 선박, 민족기록화, 국산자동차, 근대미술, 어류 시리즈 우표가 이어졌다.


    대중문화인물 냉대 지나쳐


    음악시리즈 우표가 처음 등장한 것은 85년. 93년까지 모두 18종이 발행되었다. 하지만 동요와 가곡, 민요가 전부다. 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버섯, 야생화, 문학, 만화, 세계유산등록, 전통생활문화 등 다양한 테마시리즈 우표가 줄을 이었지만 영화와 대중가요 시리즈우표는 전무했다.


    기념우표 목록을 살펴보니 영화 및 대중음악과 관련된 것은 62년 제9회 아시아 영화제, 97년 가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악보가 수록된 목포개항 100주년 기념우표, 98년 부산국제영화제 기념우표가 전부였다.


    백남준 이전에는 우표에 담을 만한 대상이 없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문화훈장을 받은 국민가수만 해도 여럿이고 국제가요제에서 상을 받아 국위를 떨친 가수도 많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주연배우상을 받은 영화감독과 배우들도 넘친다. 그런데도 정부가 대중문화 인물 우표를 공식 발행하지 않은 건 지나친 냉대가 아닐 수 없다.



    외국은 우리와는 반대다. 엘비스 프레슬리나 마릴린 먼로의 경우,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참으로 다양하게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가수와 영화배우 관련 우표가 너무 다양해 대중문화를 대하는 태도가 아예 한국과 다르게 느껴진다.


    우표수출로 외화벌이에 나선 지 오래된 북한조차도 96년 2월 1일 <첨밀밀>로 유명한 중국가수 등리쥔의 추모기념우표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한류열풍에 힘입어 최근 일본에서는 겨울연가 드라마 우표와 더불어 배용준, 지진희의 우표가 발행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다. 보수적인 중국도 최근 연예인우표를 발행했다. 여성 신인가수 선발대회인 ‘차오지뉘성(超級女聲ㆍ슈퍼걸)’을 통해 중국 내 최고 스타로 발돋움한 리위춘이 주인공이다.


    국가마다 기념우표 발행에는 나름의 기준과 잣대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중문화를 대하는 시각이 너무 편협한 것 같다. 이름마저 우리에게는 생소한 가이아나, 챠드 국가에서 HOT와 핑클의 우표를 지난 2000년에 발행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물론 소속 기획사의 상업적 홍보전략이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흥미롭다.



    2001년 4월부터 시행한 ‘나만의 우표’는 개인의 사진, 기업의 로고 등 고객이 원하는 내용을 우표에 담는 신 개념의 우표서비스. 배호 등 몇몇 가수의 팬클럽이 개별적으로 우표를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기념우표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단순히 우표라는 한정된 개념을 넘어 당대 역사의 기록으로 인정한다는 데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백남준의 특별우표 발행이 대중문화계에 뜻이 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올해 1월 영국은 비틀즈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전 세계의 비틀즈 팬들이 그 우표를 구하려고 난리였다. 이제 우표는 그 나라의 문화 아이콘이다. 한류열풍으로 한국의 대중문화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나가고 있다. 훈장을 받은 국민가수들, 국민배우들, 각종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영화감독과 배우, 가수들의 기념우표는 충분히 발행될 만하다.


    이메일 문화가 정착되면서 우표 사용이 급격히 줄자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우표수집가들의 관심을 끄는 수집용 테마 및 시리즈 우표의 양산 등이다. 백남준의 우표를 시작으로 한국대중문화인들의 기념우표도 줄을 잇기를 기대한다.



    입력시간 : 2007/02/28 16:07
    수정시간 : 2007/02/28 16:16


    글·사진=최규성 대중문화칼럼니스트 oopldh@naver.com

    대중문화인에게 기념우표를 許하라최규성의 대중문화 산책 주간한국 생활/문화, 매거진 | 2007.02.28 (수) 오후 4:12연예인 기념우표 전무, '백남준 우표' 발행 계기로 문호개방 목소리 높아...
    ☆☆☆☆☆ | 대중문화인 기념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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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음악 혹은 대중문화는 하위문화다. 문화상대주의 시각에서는 대중문화가 하위장르라는 입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평등주의 문화관이 바로 상대주의의 기본 룰인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자유, 평등 이따위 말들을 믿을 수 없다. 내 양심과 (부족하지만)지성은 절대로 자유와 평등은 저기 천국에서나 가용한 말이라고 확신하는 터이다.

    일단 당부하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음모와 말꼬리가 여전히 나를 추종하게 될 것이고, 그 꼬리를 잘라내는 과정에서 그게 누구든 피해자가 분명 생기고 만다. 무엇을 당부하느냐? 바로 흑백논리를 접자는 당부다. 대중음악이 하위문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바라보는 현실적인 상대주의는 딱 여기까지만 허용한다. 이상주의에 치우쳐 문화상대주의적 시각으로 고매하게도 대중문화와 엘리트문화(고급문화-과거 귀족, 현재의 자본가 혹은 상류층이 향휴하는 문화 스타일)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것은 (대중문화의, 대중문화에 대한) 허영심이다.


    대중음악을 하위문화(고급,엘리트문화보다 급이 낮은 문화수준)라고 인식하는 순간부터 현실적인 자유와 평등에 근접할 수 있다. 문화를 사람에 대입시키면 훨씬 설명이 훨씬 수월할까?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집단에서만큼은 누구나 사람은 평등하고 자유롭다고 말한다. 근데, 바/보가 아니라면 다 안다. 그건 어디까지나 허울 좋은 말 뿐이고 현실은 전혀 평등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신분제가 명목상 사라진 자유평등민주적 시스템은 결정적인 태생적 모순을 2가지 안고 있다. 민주주의는
    노예제도를 바탕으로 성립된 노예를 제외한 그 노예를 소유한 시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첫번째요. 둘째는 자본주의(민주주의와는 바늘과 실 관계죠. 다알죠?ㅎㅎ)
    역시 세습군주제에 반감이 많았던 자본가(신분제하에서 계급이 낮았지만 막강한 재력을 장악한 장사꾼들)들의 혁명으로 탄생되었다는 점이 바로 두번째 모순이다.

    딱 잘라 말해서 신분제가 철폐된 자유민주국가의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는 또 다른 이름의 신분질서가 굳어졌고, 그것은 우리사회에서 상류층, 중산층, 서민(어떤 개념없는 녀석들은 민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진짜 그런 녀석들 따귀를 2박 10일동안 날려도 성에 찰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극빈층의 형태로 정형화 되었다. 단지 그 장벽을 노력에 따라 넘나들 수 있는 유연성이 과거 신분제사회때보다는 높다는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그 장벽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또한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유의 개념은 알아서 정립하길 바란다. 제도권(상류층이 만들어낸 장치기구)이 가르쳐 주는대로 제한적 자유를 진정한 자유로 인식해도 불만하지 않겠다. 다만 자본과 권력에서 소외된 서민층이나 극빈층이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감각적으로나마 한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하다못해 서민층과 극빈층은 생활의 기본인 의식주의 선택권에서조차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은 한번만 말해도 입이 아프다.

    나는 분명 우리사회가 자유롭고 평등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이번에는 반대로 대중문화에 대입해 볼 차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닌가? 편하게 말해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들조차 불평등하고 억압적인데, 하물며 그런 이들이 만들어가고 분배하고 소비해가는 문화는 더 말해 무엇하겠느냐는 것이다. 문화도 불평등하고 자유롭지 못하다. 유기체설에 입각해서 다시 부연설명하자면 세포가 아픈데 몸이 건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정도 했으면 문화에도 차별이 있고 급수가 정해져 있다는 내 주장은 어설픈 문화상대주의로 공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느정도 인식했을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문화상대주의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그들과 타협하고 싶다. 당신이 상대주의를 내세워 하위문화(여기서는 대중문화의 뜻으로 사용했다)가 엘리트 문화와 동급이다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위에서 언급한 것을 토대로 그것은 동급일리가 없고, 다만 대중문화를 하위문화로 인식하는대신 상대주의에 입각하여
    그 하위문화도 가치가 있다라고 위로해 주자는 것이다. 이정도면 그럴싸한 타협안이 아닌가? 뭐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 협상결렬로 내게 손해날건 없을 테니까....

    김두수 선생님-들꽃


    단순하게 대중문화가 하위문화다라고 분류해버리는 것은 위험한 발상의 재탕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단순함이야말로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이들에게는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위험부담을 떠안는 대신에 현실적인 자유와 평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결코 손해가 아닐 것이다. 이 말은 구체적으로 표현해서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계층은 스스로 대중문화의 하위적 성향을 인정하자는 뜻이고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하위문화로써의 대중문화가 가치없다는 뜻이 아님도 정확하게 알자는 논리이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능동적으로 대중문화를 누릴 수 있고 그것을 키우고 살찌워 후대에는 좀더 진보적인 문화를 물려줄 수 있다는 청사진이다.

    별로 거시적인 관점은 아니었지만, 이제 미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때가 왔다. 그리고 그 접근에는 항상 불평등 구조(지금까지 서술한 문화의 불평등성)를 인정하는 큰 줄기를 놓지 말자는 당부를 해본다. 뭐 요즘 10대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우월성이 적당한 표현법일 수 있겠다. a가 b보다 더 우월하다(혹은 우월한 문화다) 이런식의 표면적 이야기 말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미시적으로 음악에 관하여, 특히 대중음악에 관하여........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혹은 각종 클라식 음악은 생산하는데 막대한 자본과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그래서 서민층이하에서는 그 흔한 바이얼린 하나 장만해주기도 힘들테고, 혹 큰맘 먹고 비싼 악기를 구입했다해서 간단히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레슨비가 장난 아니다. 기본적으로 유학을 다녀와야 할테고 콘서트라도 열라면 돈이 많이 필요하다. 수익을 내는 문제는 그 후에나 가능하니 말 다한 셈이다. 굶어죽기 위해 고가의 장비(악기들)를 감가삼각시키며 더 고가의 레슨비, 유학비, 공연비를 감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것을 간단하게 엘리트 문화라고 분류하고 넘어가자. 중요한 것은 이런 문화적 작용은 절대로 대중문화일 턱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장벽을 얼마나 뛰어넘기 힘든 것인가를 단적으로 명확하게 입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엘리트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데는 자본력이 필요하다. 자본력이 없는 계층, 계급은 엘리트 문화를 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생산자의 위치든 소비자의 위치든 상관없이......

    혹, 누군가는 왜 클라식 음악을 누리는데 자본력이 필요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부인할 수도 있다. 그렇다. 심중에는 분명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반을 구입해서 감상하면 되니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도 명확히 대중문화라고 규정한 바 있다. 비발디 4계를 음반으로 구입했다면 그것은 대중음악에 포함시켜야 한다. 대중음악은 음악생산(장르의 형태)방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분배소비의 형태로 정의 내려야 옳다. 아무리 엘리트문화라도 그것이 대중생산체계를 거쳐 박리다매의 논리로 대중들과 유통의 생산자들에게 소비된다면 그것은 바로 대중문화의 형태이기때문이다. 쉽게 말해 골프를 보급하기위해서 1만원짜리 골프채와 아파트단지식 골프장을 건설하여 박리다매형식으로 진행된다면 그것도 이미 대중문화의 한 형태이다. 또한 같은 논리지만 반대로 화투장에 금가루를 코팅하고 화투장을 최첨단 실크를 사용하여 거장 디자이너에게 만들게하여 화투 한판 치려면 몇천만원 상당의 기본투자를 하게끔 한다면 고스톱은 엘리트 문화가 될 것이다. 명절이나 장례식장에서 고스톱판을 벌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룰을 변경하면 가능하다. 골프를 좁은 공간에서도 칠 수 있도록 고안했다면 애시당초
    골프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대표적으로 스키장이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잘 증명해주고 있다.)

    조용필 선생님-태양의 눈


    대중들에게 재빠르게 소비되고 다양한 트랜드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치고 빠지는 식으로 생산분배소비되는 대중음악은 그 질적인 면에서 엘리트음악(상류층에서밖에 누릴 수 없도록 시스템이 고착된 모든 형태의 음악들)보다 퀄리티가 딸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당연함에 이제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의 핵심이다. 당연한 현상을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비로소 당당해질 방법과 발전하고 진보할 길을 털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지금 말한 핵심을 좀더 직관적으로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 직관성안에서 당당함을 줍느냐 마냐는 순전이 당신의 몫일테니 나는 단지 이야기하는 것에 목적이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떤식으로든 삶의 본질적 차원과 문제의 해결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른이가 챙겨주고 해결해주는 것은 여러서나 가능하다.

    [그래. 대중음악은 음악적 수준이 클라식에 못미친다. 인정한다. 사실이다. 그래서?]라는 시각이 필요하다. 대중음악에 있지도 않은 고상함이나 난해함으로 대중음악을 잣대질 하려한다면, 진실성이 결여되고, 허영심이 발동함은 당연한 이치다. 일단 대중음악을 주로 소비하는 이들은 대중음악의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들어가자. 음악이론이나 장비빨 혹은 표현력의 수준이 낮으면 어떠한가? 그보다 더 가치있는 실험성과 사상이 녹아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쉽고 빠르게 대중에게 음악생산자의 느낌을 전달하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강력한 장점도 대중음악은 지녔다. 음악적 수준이 낮을 들 무엇이 문제인가? 당돌한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당당함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강력하고 편안하고 공평한 논리를 파악하지 못한채, 어떻게서든 자신이 소비하는 대중문화를 그 가치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평론이나 빠 기타 등등)를 버리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좀더 자유롭다.

    문제의 핵심은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제맛이다. 하위문화로써 대중음악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대신 그것의 가치를 부각시키면 자유롭고 당당해질 수 있다. 엘리트음악보다 더 뛰어난 창조성과 개성과 의미로 가치백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모든것은 대중음악이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는데 있다. 그러는 순간 우리의 대중음악은 어느덧 시간이 흘러, 고전이될 것이고, 잘 만들어진 고전은 후대에 엘리트문화로써 분명하게 작용할 것이기때문이다. 이 부분에 관하여 좀더 이야기해보자면, 우리의 전통의 단절에 관한 내용이 그것이다. 지엽적인 이야기지만, 한때 우리 대중음악도 트로트를 전통가요로 인식하고 그 전파와 새로운 시도를 통한 작업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젊은 뮤지션들에 의해 실험된 우리의 전통 사운드는 보기좋게 참패당했다. 결국 조용필 선생님이나 장윤정씨에 의해 그나마 대중적으로 개조되어 전파되었을 뿐이다. 누구나 다 말한다. 조용필 선생님은 위대한 가수라고.....그러나 그 이상의 연결확장고리는 찾을 수가 없다. 말만 무성하고 현실적으로 단절된 우리 전통가요를 회생시키자는 말이 아니다. 왜 우리의 전통적인 가요형식의 사운드에서는 진지한 감상자체를 우습다고 여기는 것일까? 비틀즈를 진지하게 들으면 뭔가 있어보일테고 조용필을 진지하게 들으면 쪽팔린다고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 대중음악이 하위장르라는 말은 서양대중음악이 꼭 비틀즈가 아니더라도 한국 대중음악보다 전체적으로 훨씬 진보했다 뜻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인정하는데는 나도 거침없이 동의한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그들의 사상이나 감흥까지 우리의 것보다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것에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분명 이런 껄끄런 부분에서도 반성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은 명백한 문제제기이다. 어찌하여 아직도 우리의 젊은 대중음악 뮤지션들은 꼭 조용필 선생님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전통의 맥을 당대의 세련됨과 조화시켜 진보적인 실험들을 끊임없이 이룩하신 한국선배 뮤지션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가? 10이면 10, 전부다 외국 뮤지션의 영향을 받았다고 그들의 사운드를 진지하게 듣는다고 떠들 뿐이다.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가식이고 위선이다. 지긋지긋한 허영의 과도한 사대주의가 맞다.

    남진 선생님-가슴아프게


    우리의 대중음악이 다른 고급장르의 음악이나 서양의 대중음악보다 시스템적으로 하위문화면 어떠한가? 하위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배자의 이기심(장사꾼기질)에 현혹되지 않기위해서도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지루하게 같은 말 반복하지만,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대중음악을 하위장르로 인식했다면 그 대중음악안에도 서열이 정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논리 전개상 분명 그리될 수 밖에 없다. 즉 같은 하위장르의 대중음악이라도 그 안에서조차 수준높은 음악과 수준이하의 음악이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바로 대중음악은 하위문화다라는 주장의 함정이다. 그리고 그 함정은 논리적 모순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부(不)의 누적의 사(死) 이론을 뜻한다.

    부의 누적의 사: 쉽게 가겠다. 일단 여기서 말하는 부의 뜻은 부정이나 몰가치를 일컫지 않는다. 굳이 변명하자면 포함관계상 가장 하위에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자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해서 성인남녀(굳이 성인 남녀가 아니라도 좋다.)라면 서로의 합의하에 함께 잠자리에 들 수 있다. 문제될게 없다. 애인이 다른 이성에 끌려 배신하고 잠자리를 취해도 우리사회는 충분히 용납가능하다. 딱 여기까지만 허용하자는 말이다.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과 바람이 난 것은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허용할 수 업다는 사회구성원간의 합의문서로 이혼의 제1사유가 된다. 점차적으로 하위개념으로 넘어갈수록
    용인가능한 한계점에 도달하고 그 최전방선에서는 통제를 하자는 논리가 바로 부의 누적의 사이다. 기혼자가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을 사랑하는 것도 바람난 당사자에게는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가치를 인정해준다면 우리사회는 심각한 혼란에 처할 것이고 그로인해 다른 피해자들이 고통받게 된다. 그래서 그 최전방의 위험선에 촐조망을 치고 경계병을 배치하고 그 철조망을 넘으면 통제하자는 뜻이다.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담론이다. 즉, 하위장르로써 대중음악이 가치가 있다하여도 그 대중음악의 범주안에서 특히 수준낮은 음악(표절이나 음악적 본분을 망각한 지나친 성적 상품화 현상-이럴거면 차라리 포르노를 찍어 파는 것이 논리적일테니 말이다, 혹은 몰가치한 아무런 의식도 없는 장사의 상품음악)은 음악으로써의 기능에서 한참 벗어나고 사회적으로도 악영향을 끼치기때문에 우리 스스로 거부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전개 방식이 바로 부의 누적의 사 이론이다. 물론 이런 대중음악들은 그것을 소비하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그러나 바람피는 당사자가 아무리 사랑했기때문이라도 도덕적,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은 이미 설명한 바있다. 같은 논리다.

    부의 누적의 사 이론을 바탕으로 나는 대중음악의 하한선을 긋고자 한다. 우리가 대중음악으로써 받아들여야만 하는 음악을 선별할 능력을 기를때 비로소 발전이고 진보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대중음악을 하위문화로 규정해야 하는 진짜 이유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음악적 기능을 망각하고 단순하게 장사치들의 손아귀에서 희생되는 판단력 어린 소비자들의 주머니는 그렇다쳐도 그들의 어긋난 사상의 주입과 그에대한 막무가내식 잘못된 동경과 군중심리는 종국에는 우리사회 전체를 점진적으로 퇴화시키는 강력한 부의 누적으로 진행될게 불보듯 뻔하다.

    그냥 이런 문제를 아주 간단명료하게 말하자면, 별거 없다. 들어줄 가치가 있는 대중음악, 생산자(뮤지션)의 노력과 사상이 담겨진 음반, 생활에 지친 대중을 위로해주고 때로는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가치있는 노래, 딱 여기까지만 걸러내자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3류 딴따라 장사치들의 천박한 대중음악을 들으면 나는 기쁘고 위로가 된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내 답은 명확하다. 기쁘면 소비해라. 다만자신의 기쁨/혹은 쾌락을 위해 뽕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구속되지만,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변태로리타리즘(그 음악을 듣느니 차라리 포르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 위로받고 기뻐하길 진심으로 바란다.)을 즐기는 행위는 법적으로 구속할 수 없다는 차이 뿐 없다는 사실을 명심이라도 해주길 바란다.

    우리대를 마지막으로 지구 혹은 한국인들이 멸종하게 된다면, 뽕을 맞아도 상관없고
    사회질서를 과도하게 어지럽히는 범죄행위를 자행해도 특별하게 문제될게 없다. 우리의 쾌락과 이기심으로 무너진 사회를 물려줄 다음세대가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어떤식으로든 후손들은 잉태하고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여기서 우리방식과 흡사하게 살다 갈 것이다. 대중음악 하나를 소비하더라도 기본적인 마인드가 없다면 '너는 음악 하나를 듣는데도 그렇게 복잡하냐?'라는 식으로 빈정거리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빈정거림도 좋다. 내 논리를 꺾을 다른 논리들은 얼마든지 존재하기때문이다. 분명 사회자동정화설을 돌격조로 내보내서 나를 제압할 수도 있는 문제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그 사회가 정화될때까지 참고 기대려야만 하는 세대의 과도한 희생까지 걱정해야 인본주의적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대중음악을 하위문화로 당당하게 인정하고 대신 자유롭게 창조적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면 진보라는 부수적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다만 제 아무리 하위문화인 대중문화의 가치를 변호한다해도 막장에 치닫는 저질대중음악에까지 관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인게다.
    그리고 그런 천박한 음악들을 듣고도 좋다면, 비록 내 맘에 안들지만,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부의 누적의 사와 사회법적 논리는 분명 별개의 것이니까.................................
    우리가 양질의 사운드(테크닉적 질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를 이왕이면 찾아들어야 할 이유이다.














    대중음악 혹은 대중문화는 하위문화다. 문화상대주의 시각에서는 대중문화가 하위장르라는 입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평등주의 문화관이 바로 상대주의의 기본 룰인 까닭이다. 그러나 나는 자유, 평등 이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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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는 삶의 양식, 주체는 주인공, 대중은 바로 문화의 주체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에와서 대중이라는 말의 뜻을 언급하기 싫다. 사회학자들조차 대중의 뜻을 자신의 논리대로 각기 다르게 정의하고 있을테고,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의 변형된 의미로 사용되기때문이라는 확고부동한 이유만 밝히겠다.

    오늘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문화의 주체는 대중이어야 한다. 절대로 문화생산자가 그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화의 소비자가 바로 대중인 까닭이다.

    나는 자본주의를 신임하지 않지만,(자본주의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이는 흑백논리는 딱 80년대까지만 먹히던 원시적 폭압일 뿐임을
    더불어 인식해줬으면 한다. 그뿐이다.)
    늘 그렇듯 오늘도 자본주의 기본 논리에 입각해 말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또 다시 빨갱이라는 한국식 색깔논쟁의 폭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기때문이다. 지금은 이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결단코 명심하자.

    문화든 김치냉장고든 생산자는 소비자를 위해서 생산해야 한다.
    물론 생산자가 상품을 만들어 팔면 자연적으로 생산자에게 이득이 생긴다.
    어떻게 소비자를 위해서 상품을 만들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그다지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본주의의 원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그럴싸한 착각일 뿐이다.

    자본주의가 무엇인가? 압축해서 말하면 시장경제논리이다. 그럼 시장경제논리의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사유재산의허용과 보장이다. 사유재산 인정하지 않으면 누가 애써 일하겠는가? 그렇다면 재화와 용역이 위축되고 결국 물질이라는 하부구조를 토대로 형성된 고도화된 자본주의시장경제체제인 현실은 사상누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문화도 이와 마찬가지다. 인류문화는 확실히 사유재산제도와 흡사한 핵심영역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사상의자유이다. 누구나 품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것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화적 측면의 사유재산제도라는 말이다. 오래전 나는 이런 정의를 사적 문화 재산 [퍼스넬리티 웰쓰 오브 컬처]라고 정의내린 바있다. 이런 기본 개념을 정립해두었던 까닭에 문화를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대입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는 장점이 있으니, 왜 아니 말하지 않겠는가!!

    문화의 주인이 대중(소비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사적 문화 재산때문이다.
    서적 문화 재산 이론에 따르면, 문화의 생산자도 소비자도 자신만의 사상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생산자는 소비자의 동의없이도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마음대로 표현해서 문화물을 생산할 수 있고, 그 문화물을 정당한 대가(돈이지 무엇인가?)를 주고 소비하는 소비자 또한 그 문화물에 주입된 사상을 자신의 뜻대로 재해석하여 판단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다음 논의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나는 문화적 공유 라는 개념을 잠시 설명할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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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문화적 공유는 어려운 말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과 동음이의어다. 단지 누구말마따나 잘난척하고 싶어서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표현을 쓴 것이다.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커뮤니케이션은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용어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너무 넓어서 내가 개조한 용어가 바로 문화적 공유다. 쉽게 말해서 문화생산자와 문화소비자 사이를 매개시켜주는 일등공신이 문화적공유라는 말이다. 문화적 공유없이는 생산자도 소비자도 가치가 없게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서로 필요로하는 요소이기때문이다. 가령 소비자가 필요없는 글쓰기, 대표적으로 일기를 예로 들어보자. 생산자는 존재하지만 소비자가 필요없는 작용이 바로 일기쓰기이다. 우리는 이런 일기를 문화라고 하지 않는다. 뭐 안네의 일기는 문학작품으로 대접받으니까 내말이 틀린 말이다라고 우겨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일기쓰면서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흔치 않을테니까...뭐라도 좋다.

    좀 유식한 이들은 지금 내가 대중의 개념을 문화소비자와 동일시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래서 서두에 미리 대중의 뜻은 간략하게나마 밝히지 않은 이유가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딱히 계산된 행보는 아니다. 다만 나는 대중의 뜻을 문화소비자로 한정하고 있다라고 미리 밝혔다면 내가 늘 언제나 항상 대중을 문화소비자로 인식한다고 오해하는 이들을 경계하고 싶었던 이유라고만 말해두겠다. 상황에 따라 각기 그 뜻이 달라진다는 내 주장이 그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줄 테니까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의 핵심을 정리해보면-이런 작업은 정말 싫어한다. 했던이야기를 요약정리하는 일따위는 고딩시절때 너무 지겹게 반복했던 수작업이었음을 감안하면 말이다
    -문화는 사적 문화 재산때문에 문화적 공유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간단한 말이다.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면 이게 무슨 말인지 단번에 캐취해 낼 것이다.

    사적 문화재산으로 문화적 공유가 가능한 대중은 주의할 것이 딱 한개 있다. 바로 공유의 개념이다. 앞서 말했지만 문화적 공유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은 독백이 아니다 쌍방의 의사전달수단이다. 내가 지금 강조하는 부분은 의사전달이 아니라 쌍방향이라는 점이다. 일방통행은 매력없다. 일기쓰기처럼 소비자를 무시해도 좋은 작업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쌍방향성은 좀 다른 이야기다. 문화생산자와 문화 소비자는 서로 쌍방향성의 교류가 진행되어야만 문화생활이 가능케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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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문화 재산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왜 하필 문화의 주체가 대중(문화소비자)-문화생산자는 전략적으로 대중의 개념에서 제외하였을 뿐이다.-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쌍방향성을 강조한다면서 왜 문화생산자는 문화의 주체에서 제외하여 말하는가? 이런 의문을 품었던 이라면 그 답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답이란 진리를 뜻하지 않는다. 너 따위가 뭔데 니 생각이나 주장따위를 답이라는 진리로 말하느냐?라고 쌍심지를 켜고 침튀기실 분들을 위해서 미리 말해둔다.
    여기서 답이라는 것은 순전히 내 논리상 전개되는 결론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음을 염두해 두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그래도 따져보고 싶다면, 그냥 에라라고 쳐두자. 에라는 절대로 그 차체를 제외하고는 진리가 될 수 없기때문이다.

    문학을 신성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학이 가치있는 것은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톡톡히 해왔기때문이다. 나는 문학을 제외한 모든 학문과 예술의 형태가 그 사회를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는 다수론을 믿는 사람이다. 문화비평이라는 다분히 사회학적인 응용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을 떠나서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게 지론이다.

    갑자기 왜 이런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서 읽는이로 하여금 당황케 하느냐고 물어주길 바란다. 그에 대한 대답을 미리 준비해뒀기때문에 얼른 대답하고 해치우자. 바로 불평등한 권력구조때문이다. 권력은 정치판만 존재하는것이 아니다. 문화생활에도 권력이라는 것이 비집고 틀어 앉은지 이미 오래다. 간략하게 설명해서 내가 주장하는 논리는 다들 가짢게 여기지만, 토플러가 주장하는 논리는 그것이 무엇이되었든 심도있게 다루어진다는 것이다. 어느것이 더욱 값어치 있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권력구조는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자는 말이다.

    해서, 문화의 권력구조상, 현재의 문화권력지배구도는 바로 생산자가 그 주체라는 말이다. 실례로 원더걸스나 빅뱅을 보면 아주 간단명료하다. 문화생산자가 만든 빅뱅은 소비자가 그 계획된 시나리오대로 잘도 움직여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빅뱅음반이 100만장 이상 팔렸다면 더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주었을텐데 그정도까지는 못돼서 좀 아쉽긴하다. -부연설명하자면 빅뱅이 100만장의 음반을 팔지 못해서 아쉽다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해 내 근거자료가 근거로써 좀 미약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는 뜻인게다- 문화권력을 장악해버린 생산자는 당연하게 문화권력의 주체는 소비자라고 입바른말을 한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객체취급 받는 것보다 주체적이고 싶어한다.
    따라서 현재의 문화소비자들이 문화생산자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장난감처럼 취급하는
    내가 얄밉기도 할테지만, 이런 나를 꺽어보길 원한다면 그에 걸맞는 명확한 논리로 대처하길 간곡하게 부탁한다. 인신공격따위로는 어림없다고 엄포해두겠다.

    문화권력을 장악한 우리사회의 문화생산자가 문화의 주체에서 제외되어야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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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평성의 문제이다. 사적문화재산으로 성립되는 문화적 공유를 무너트리게 되기때문이고 사실상 우리사회는 문화적 공유개념은 어느정도 무너진것도 사실이다. 이를 바로잡고 싶다. 그래서 문화는 주체가 대중이어야하고 그 대중의 개념에서 문화생산자를 제외시킬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왜 우리의 문화의 주체성이 대중에게 있어야 하는가를 말해서 무엇하냐고 따지는 이들에게는 살아서 무엇하냐고 되묻고 싶다. 정해진 위치에 놓여있지 않은 물건도 의미없는 것은 없다. 존재하면 일단 어떤식으로든 가치가 있다. 가치가 없다면 애시당초 존재할 필요도 없다. 혹시 루마 라는 약을 아는가? 루마는 안드로메다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탄소가루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루마라는 음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가치없기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 안드로메다인들이 루마라는 탄소가루를 주식용하고 지구에서도 살아간다면 루마라는 음식도 여기에 존재할 가치가 충분하니까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먹거리따위는 지구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따져서 뭐하냐라고 묻는 이들이 한심하다는 말이다.
    문화는 분명 존재하고 문화생산자와 소비자도 직관적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존재하면 다 가치있다. 가치있는 것을 많은 이들이 가치를 누리게 하자는 논의라고 말해주고 싶다.

    문화의 제체가 대중소비자가 될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균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불균형적으로 나가도 큰 지장은 없다. 다만 형평성도 함께 어긋나, 지금처럼 원더걸스나
    빅백을 생산한 대중음악생산자들이 그들보다 훨씬 가치있는 그러나 외면받는 대중음악 생산자들보다 더 권력적이되고 더 많은 사적문화재산과 자본적사유재산을 획득하는 시스템을 고수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종국에 이는 문화적 공유를 파괴한다. 이것을 이제 근절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문화의 주체는 생산자가 아닌 바로 대중소비자이고, 균형은 형평을 낳고, 불균형은 문화권력의 편중을 기르기때문이다. 문화의 주체성을 대중소비자가 장악하기위해서는 소비의 다양화와 양질의 문화상품을 선별할 줄 아는 테크닉을 연마해야 한다. 올바른 문화비평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잘못된 비평은 차라리 그냥 원더걸스 생산자를 1등으로 올려주는 것만 못함을 더불어 인식해줬으면 더 고맙겠다.

    당신은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습니까? 누구나 다 공부라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한다. 문화생활을 누릴 여유가 없으시다고요? 그래서 문화권력에 잠식당해 원더걸스에 열광하나요? 내가 dk는 어떤 사람은
    30대중반까지 건설노동자로 일하면서 세계적인 배우가 된 사람도 있다. 다들 그렇게 하자는 말이 아니다. 사실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자만. 혹시 돈과 시간보다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건 아닌가? 나는 분명 그렇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삶의 양식, 주체는 주인공, 대중은 바로 문화의 주체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에와서 대중이라는 말의 뜻을 언급하기 싫다. 사회학자들조차 대중의 뜻을 자신의 논리대로 각기 다르게 정의하고 있을테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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