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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험이 모자라서 혹은 어리석어서, '인간의 필연적 질병들' 같은 현상들을 자기네의 건강함이라는 감각으로 비웃거나 애통해 하면서 외면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 불쌍한 자들은 디오니소스 열광자들의 작열하는 삶이 거친 소리를 내며 그들 곁을 지나칠 때에 그네들의 그 '건강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시체처럼 창백하고 허깨비 같은가를 알 턱이 없다."(니체, 비극의 탄생 중에서, 기억나는 대로)

    2007년. 한국.
    유령들과의 무익한 싸움만이 계속되는
    모든 것이 허깨비 같은 이 곳.

    붉고 검은 진창.
    그 안을 살아내는.
    비관주의의 가면을 쓴.
    한 낭만주의자의. 치열한 자기 고백.


    이기용은 음악가이지만 사실은 시인이기도 하다. 이 의미의 중복은 19세기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Rimbaud)가 창조해낸 시적 이미지들이 실은 음악적 형상에 더 가까운 것이라는 말의 의미와 같은 방식으로 유효하다. 그래서 허락 된다면, 이기용을 그냥 시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음악을 상위에서 주관하고 있는 시적 자아를 상정해 보면, 그것이 열광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몇 가지 추상적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집요하게 갈망하지만 결코 갈 수 없는 '어떤 곳', 갈 수 없는 '어떤 사람들' 그리고 그곳을 향하는 과거와 현재의 수많은 '익명의 그들'. 이기용의 시적 자아가 끊임없이 음악 안으로 불러들이는 이 원형적 기호들. 좀더 구체적인 이미지들을 떠오르는 대로 열거하자.

    Beach<보도블럭>[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1집, 이하 h1], 별이 뜨는 곳<Hey come>[h3], 하늘 아래 태양이 모인 곳<올랭피오의 별>[h3], 따뜻한 해가 뜨는 곳<눈 속의 겨울>[스왈로우(Swallow) 1집, 이하 s1], 어디에도 없는 곳<어디에도 없는 곳>[s2], 아무도 없다던 곳<내가 너를 따라 간다면>[s2], 언제나 내 가는 곳<밤은 낮으로>[s2], 절름발이<Huckleberry finn>[h1] <불을 지르는 아이>[h1], 산속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사막>[h2], 욕심 없던 사람들<Silver>[h2], 옛 사람들<몇 세기 전의 사람을 만나고>[s2], 그리고 이번 EP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그들<그들이 온다>[ep], 눈의 나라<휘파람>[ep], 바람 속을 도주하는 두 형제 <낯선 두 형제>[ep].

    사정이 이쯤 되면, 과연 이 이미지들을 떠받치고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생길 만도 하다. 그 원리는 아마도, 타인에게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고 완전히 충만한 삶을 살고자 하는 '충일'에의 강렬한 의지일 것이다. 이런 이기용의 시적 자아는 현실에선 블랙홀 같은 구멍일 수 밖에 없는 '그 곳'이 고통과 망각만이 아닌 풍요로운 합일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 어둠 속에는 시간의 거대한 풍화작용 속에서도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음악을 통해 벌이는 현실의 무자비한 자기 소멸의 위협들과의 싸움, 이것을 절망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어둠과 빛이 빚어내는 거대한 모순. 이기용의 세계 인식은 비극적이다. 하지만, 절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희망에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것은 단지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진정한 희망은 현실을 철저히 절망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말은 어느 시대에서나 깊은 울림을 가진다. 절망과 마주하지 않으려는 허약한 희망은 결코 절망을 뛰어넘을 수 없는 가망 없는 사이비 낭만주의자의 망상이라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면 어쩌겠는가?

    이런 의미로. 2007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익명의 그들은. 거의 유일하게 가망 있는. 사람들. 이다. 이것은 이기용의 진심이다. 그래서 그의 새로운 EP 음반에 담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감각에서 얻어진 내밀한 느낌들, 이 세계-이미지와의 연결고리를 여전히 유지한, 한층 간결하고 성숙해진 기교들로(스왈로우 활동의 성과임이 분명한) 탄탄하게 구조화된 음들의, 가슴을 찌르는 에너지는, 무엇보다 패배와 타협으로 점철된 세상의 자멸적 위협들에 대한 우리들만의 화답이 될 것이다. (우리 세대가 지닌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급진성. 사람은 비도덕적인 일을 하는 것 보다 미적으로 촌스러운 일, 아름답지 못한 행동, 을 하는 것을 더 꺼려할 수 있다는 점. 거부와 저항이 어떤 관념적 선택이 아닌 그냥 신진대사의 일부인, 그래서 어떠한 억압도 육체적으로 참을 수 없는 사람들, 익명의 그들.)

    내가 판단하기에 이기용의 음악이 향하는 궁극의 지향점은 삶에서 자신의 자아가 느끼는 절망적 체험의 시적 형상화에 있다. 물론 이 내적 진실의 표출은 음악예술이 가장 직접적이며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는 외적 진실에 있으며 문학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이미지들이 과연 심리적 진실을 담고 있는가 하는 점에 쏠려 있다. 이 창작자의 창조물이 깊고 강렬하게 체험된 본인의 내밀한 느낌들을 표출 시킬 때만, 또한 그 느낌이 그의 깊은 의식에서 나온 진짜 강박과 꿈의 이미지들을 반영할 때만 그것은 나에게 감동적인 것으로 감지된다. 그 차원에 이르러야 비로소 나는 사적인 느낌들 속에서 보편적인 유효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표현에 대한 타협 없는 진솔함, 바로 이점 때문에 이기용을 좋은 창작자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기용은 그 시작부터 아름다운 멜로디 한 두 개로 버티고 있는 대개의 대중음악에서 한참 비켜나 있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 변두리에 위치하게 된 그와 그의 음악은 이런 세상의 치사한 조건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더 깊어지려고만 했다. 깊어지기 위한 수단으로 그는 은밀한 변칙들의 수사들을(하나의 예로, 간단한 패턴의 변화로 다양한 관점과 정서의 변화를 담아내던 수많은 곡들의 중층 구조를 떠올려 보자) 끌어들였으며, 결국엔 이 모든 이물스러운 것들 '이상의 것'이 필요해진 지금의 상황과 대치하게 되었다. 새로운 EP 음반에서 이기용은 그 이물스러움을 한층 간결하여 가벼우면서, 더욱 단단하고 다층적인 곡들의 구조적 힘으로 극복하는 방식을 택한 듯 보인다. 여기엔 또 한번의 도약의 갈림길이 놓여 있다. 앞으로 그는 우리의 상상력과 기대의 한계치를 어떤 식으로 비켜갈 것인가? 우리들에겐 너무 중독이 되어 그 중독성조차 모르게 된 시대의 소음들, 계속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시대의 노래들. 하지만,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이 비타협의 정신에 나와 '그들'의 희망이 함께 놓여있다.


    "경험이 모자라서 혹은 어리석어서, '인간의 필연적 질병들' 같은 현상들을 자기네의 건강함이라는 감각으로 비웃거나 애통해 하면서 외면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 불쌍한 자들은 디오니소스 열광자들의 작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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