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용
“나도 햇볕을 원하고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도원 :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가?
이기용 : 새벽 3-4시에 잠자리에 들어 오전 10시나 10시 30분 정도에 일어나 씻고, 책을 좀 보다가 오후 1-2시 사이에 작업실에 나온다. 그리고 밤 11시 정도에 퇴근한다. 어느 시점이 넘어가면 음악이 업인지 아닌지를 선택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어설프게 이도저도 아니게 지나가는 시간들이 있는데, 나는 성실하게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실을 구하면서부터 토요일만 제외하고 일주일에 6일을 나온다. 연습을 일주일에 2-3번씩 정기적으로 하고 곡 작업도 한다. 음악 하는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산책도 좋아해서 사는 곳의 근방 4-5킬로미터 이내에 있는 모든 골목을 알고 있을 정도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노래를 만들면 흥분되어서 작업실에 가만히 있질 못하고 밖으로 돌아다니게 된다.
나도원 :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출연해 방송국 PD들의 자질 문제를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이기용 : 라디오는 음악을 들려주는 매체다. 물론 쇼적인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그런데 라디오가 음악과 척을 진지가 오래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들을만한 프로그램들도 한정되고 말았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자리에선 PD 얘기를 하고 싶었다. 댄스건 주류음악이건 그 어떤 음악이건 간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방송을 맡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음악에 대한 애정과 고민이 없다면 좋은 선곡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매우 실망했던 것들 중에 하나가 인문대에서조차 비교적 진지하게 교양 차원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는 점이다. 대부분 학점이나 입사에 관계된 것만 보기 때문에 깊이와 인문학적 소양이 나올 수가 없다. 마찬가지다. 공부만 열심히 하다가 음악적 소양과 깊이도 없이 방송국에 들어가 PD가 되니까 쓰레기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양산하게 된다. 아무도 말을 안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방송이라고 그런 얘기도 못한다면 우습지 않은가.
나도원 : 스스로 ‘비주류 중의 비주류’라고 말했고,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러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다.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기용 : 인간적인 칭찬에도 기분이 좋아지듯 음악에 대한 칭찬은 기분 좋은 일이다. 스왈로우의 [Aresco]가 다음 해 시상식 후보에 들지 못했고, 약간 서운한 마음으로 그 앨범은 잊혀지겠구나 생각했다. (※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부터 시상 범위가 해당년도 10월 발매 작까지로 변경되었고 스왈로우 2집은 2005년 11월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후보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사람들에 의해 불려져 나오는 듯해 반가웠다. 하지만 ‘올해의 앨범’에는 큰 기대를 못했고, ‘올해의 모던 록 앨범’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다. 사실, 모든 앨범이 당시의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만들었기에 소중하지만, 스왈로우 2집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힘을 다 빼고 극단적인 감정들은 다음으로 미뤄두면서 진동 폭이 크지 않은 감정을 담아보고자 했고, 이전과는 달리 소소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담아보려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든 앨범이 지금껏 한 장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으로 인정을 받음으로써 자신감 같은 걸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나도원 : 스왈로우라는 분신을 만든 것은 허클베리 핀으로는 하지 못한, 또는 하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기용 : 허클베리 핀은 록킹하고 그루브하게 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허클베리 핀 4집도 그러한 테마로 가고 있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엔 음악을 거의 안 듣거나 ‘앤디 윌리엄스’처럼 자극이 적고 스탠다드한 음악을 주로 듣는다. 음악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인데 과연 ‘나’는 무엇이겠는가. 타인은 나를 이기용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이겠지만 나라는 존재에게는 시간적인 역사가 있고, 어느 순간을 딱 집어 보면 지금의 이기용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렇게 음반은 시간적인 의미와 함께 마디마디의 자신, 삶 속에서의 어떤 위치를 보여준다. 나의 세계는 과거와 현재의 세계와 만나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여러 느낌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 스왈로우에는 좀 더 개인적인 환상과 상상을 담는다. 허클베리 핀이 공격적이고 격정적인 감정의 상태를 담아낸다면 스왈로우는 그렇지 않은 나를 보여준다. <봄의 피로>나 <몇 세기 전의 사람들>은 허클베리 핀에서는 조금 하기 힘든 음악이었다.
나도원 : 각각 허클베리 핀과 스왈로우의 곡이 되는 기준이 있는가? 허클베리 핀의 <Hey Come>은 스왈로우의 곡이 되었을 수도 있는 스타일 아닌가.
이기용 : 허클베리 핀 3집이 앞서 말한 스왈로우의 감성과 좀 맞물려 있다. 그동안의 허클베리 핀을 정리한다는 의미가 있는 앨범이었고, 발표순서는 달랐지만 허클베리 핀 3집이 스왈로우 1집보다 먼저 녹음되기도 했다. 반대로 스왈로우 2집에서 어떤 곡들, 예를 들어 <밤은 낮으로>나 <너는 웃지 않고 난 웃었어>는 소영이가 불렀다면 좀 더 격정적이 되면서 허클베리 핀과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게 어울렸을 곡들이다. 곡을 내가 만들다보니 그런 부분들이 좀 있는데, 어떤 곡들은 스왈로우와 허클베리 핀 사이에서 자리를 바꾸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는 생각도 있긴 했다. 물론 노래를 만들 때엔 기준이 있는데, 앨범을 내야할 시점은 정해져있다 보니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곡들은… (웃음)
나도원 : 1집 [Sun Insane]과 2집 [Aresco]에는 다른 두 지점이 있다. 무드에서는 전자는 낮게 침잠했고 후자는 여유롭고 편안해졌다는 것, 그리고 표현법에서는 전자가 미니멀했다면 후자는 밴드 사운드로 풍성하게 채웠다는 것이다.
이기용 : 맞는 말이다. 스왈로우에서는 기본적으로 미니멀한 사운드를 지향하면서 소소한 감정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풍경에 대한 느낌들과 시간을 거슬러가는 느낌을 격하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들을 생각한다. <몇 세기 전의 사람을 만나고>란 곡을 예로 들어보면 이렇다. 어떤 소울메이트를 상상해본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만이 나와 가장 친밀한 영혼을 소유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어디쯤에 나와 정말 잘 맞는 사람이 있는데 못 만나고 있을 수도 있다. 확장시켜서 몇 세기 전으로 올라가본다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거기에 있을 수도 있다. 내 영혼이 잠시 사랑하는 사람 곁을 떠나 옛 친구를 만나고 다시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현재의 침대로 돌아온다는 상상을 노래한 곡이다. 이런 이야기를 허클베리 핀에서는 잘 하지 않았다.
이것을 1집에서는 미니멀한 형식을 갖춘 실험적인 시도로 이야기했다. <긴 방랑이 끝나는 아침>은 베이스와 드럼을 빼고 기타와 보컬로만 노래하고 <저녁의 룸펜>은 기타와 바이올린으로만 만들어본다거나 하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킹맨의 거짓말>, <Deja Vu>처럼 코드 두 개로만 만든 곡도 있고 <몇 가지 오해들>처럼 아예 코드 하나로 만든 곡도 있다. 그런데 2집은 바로 이러한 형식마저도 버려보면서 듣기에 무리 없이 만들고자 했다. 혼자 있을 때에 자연스레 골라 꺼내게 될 정도로 나도 자주 듣는 앨범인데, 그건 최근의 작업물이라서가 아니라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햇볕을 원하고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모습들을 드러내고 싶었고, 당시 행복했던 내 인생도 담아내고자 했다. 그것이 음악 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세계들의 만남에 대하여 고민한다.”
나도원 : 물론 1집에도 <봄의 피로>, <저녁의 룸펜>, <Deja vu>처럼 좋은 트랙들이 있었지만 2집에서는 귀에 잘 들어오는 ‘송’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Three Season>, <내가 너를 따라 간다면>, <몇 세기 전의 사람을 만나고>, <밤은 낮으로>, <너는 웃지 않고 난 웃었어> 등 선호하는 트랙들이 많다.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싱글 부문에서도 너무 많은 곡들이 함께 거론되면서 표가 분산되어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했다. 보다 폭넓은 공감을 원했는가?
이기용 : 의외였다. 기존의 내 감성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만든 앨범이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결과나 평들을 보니 의아하기까지 했다. 썰렁하다고 욕먹는 사람이 “그래, 나 썰렁해”하면서 뭐라고 중얼중얼 편하게 만들었더니 그게 갑자기 터졌다고 해야 할까. (웃으며) 스왈로우 1집과 허클베리 핀 3집 [올랭피오의 별](2004)처럼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만든 앨범들은 냉대를 받더니 그냥 편하게 만든 앨범이 칭찬을 받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공감이라는 측면은 내게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고, 그것을 목적으로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물론 음반을 발표한다는 행위는 타인에게 보여주고 사랑을 받고 싶다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에서 나온다. 누구도 이런 욕망을 부정할 수 없다.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음반을 꺼내고 녹음을 하며 음악을 들어온 행위가 무엇이겠는가. 기억이다. 존재에 대한 기억이다. 음악을 만드는 것은 기억되고 싶다는, 존재하고 싶다는, 나를 남기고 싶다는 근원적인 욕망에서 비롯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내 능력 밖의 것을 숙성되지 않은 채로 내보이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음악적인 훌륭함과 후짐의 차이는 극명하다. 극단적인 예로 비틀스의 훌륭한 곡들과 국민 로커라는 Y밴드의 노래의 차이는 명확하다.
나도원 : 스왈로우와 허클베리 핀은 전반적으로 비관적이다. 스왈로우 2집도 밝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염세적이어서 밝아졌다기보다는 관조적인 되었다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사람은 뭔가를 찾을 때 고통스럽지만, <밤은 낮으로>의 ‘쉬지 않고 지쳐가리’라는 말은 너무 가혹한 얘기가 아닌가?
이기용 : 염세적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만화 『몬스터』에 ‘세상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걸리는 불치의 병, 그것은 바로 희망’이란 말이 나온다. 공감하는 얘기다. 나는 서로 다른 세계들의 만남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다. FTA와 같은 자본주의 세계의 흐름 한 편에는 소외된 사람들, 사회로부터 잉여인간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이 있다. FTA는 그들에게 가혹한 삶을 강요할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 복지 등에서 좋아진 게 별로 없다. 물론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보다야 지지하는 마음이 있지만 복지 시스템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뇌’가 있는 사회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야말로 중요하다.
반면 그들이 느끼는 절망감, 괴리감, 이질감, 배신감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 길거리에서 휴지를 줍는 할머니의 세계와 미용에 몇 백 만원을 투자하는 사람들의 세계는, 같은 나라와 같은 도시, 같은 공간에 존재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물론 사람의 사고체계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다르다는 이유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좀 더 좋은 걸 기대하려면 역시 고민해야하지 않겠는가. 이 다른 세계들이 어떻게 만나며, 그 세계들의 작은 접점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는 영원한 화두이다. 그런 면에서는 염세적이다. ‘쉬지 않고 지쳐가리’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나왔다. 앞에서 말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지쳐가면서, 내가 소진이 되어가면서라도 계속 그 쪽으로 가야한다는 얘기다. <밤은 낮으로>의 가사 역시 다른 세계들의 공존과 만남에 대한 얘기다. ‘밤은 낮으로, 낮은 밤으로….’ 가사 쓰면서 여러 의미를 담는다. 예를 들면 ‘언젠가 너희도 쓴맛을 봐야할 텐데’ 하는 얘기도 있고, 반대편에게는 ‘하다못해 죽음이라는 마지막 희망도 있습니다’고 하는 얘기도 있다. 죽음이 마지막 희망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겪어보지 않고선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나도원 : 훌륭한 작사가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내용과 형식에서 은유와 파격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스왈로우의 <킹맨의 거짓말>, <Deja vu>의 내용적 은유, 그리고 <저녁의 룸펜>과 허클베리 핀의 <불안한 영혼>의 형식적 파격 등이 그것이다. ‘머저리’나 ‘머리야’ 같은 말이 가사로 쓰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기용 : 사람이 만든 조직은 또 하나의 생명체가 되고 환상의 비전을 필요로 한다. 어떤 조직이든 그 방향을 좌우하는 사람, 즉 ‘킹맨’은 거짓말을 하게 되어있다는 얘기가 <킹맨의 거짓말>이다. 또 사회로부터 잉여인간이 된 이들의 세계에는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와 희망도 없이 오로지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삶이 있을 뿐인데, 그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된다는 가정을 해볼 수는 있다. 역사적으로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해 국내외에 많은 선례들이 있지만, 모두 실패했다. 어디에서 본 것 같고, 있어왔고, 또 언젠가 일어날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곡이 ‘기시감’ 즉 <Deja vu>다. 그리고 사람이 염세적이 되다보면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도 거기에까지 생각이 가봤던 사람이라 잘 알고 있다. <불안한 영혼>의 ‘머리야’는 자신의 모습이 끝없이 혐오스러워지면서 이러한 환경에서 왜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게 되어 이대로 가면 죽어버릴 것 같아진 사람의 처절한 외침이다.
하지만 굳이 내 가사를 주의 깊게 보거나 가사에 감동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놓은 세계와 음악을 듣는 사람의 세계가 만난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불만은 없다. 내가 취한 하나의 방식과 스타일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지 시를 쓰는 사람은 아니다. 덧붙이자면 노랫말의 영역이 너무나 협소하다. 영화만 하더라도 살인부터 온갖 변태적인 소재들까지 되는데, 음악에서는 시적으로 누군가를 죽인다거나 뭔가를 불태운다거나 등등의 어떠한 상상력이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편협하고 후지다. 가사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자기 세계에 갇혀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은 후진 사고방식이다”
나도원 : 증오와 분노는 경멸과 냉소보다 뜨겁다. 당신의 음악은 그 사이 쯤에 자리하고 있다. 이 비관적인 현실 속에서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기용 : 좀 더 나은 표현을 위해 늘 고민하면서 앞으로 성장해가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음악적으로도 그렇다. 가사와 음악 스타일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변화해가는 나의 느낌들을 표현하고 싶다. 현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민중음악인들의 태도와 작업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분들께서도 음악적 스타일에 대해 고민해주셨으면 한다. 음악인에게는 당연한 것이다. 음악은 먼저 음악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 나도 마흔이나 쉰이 넘어서도 음악을 한다면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나도원 : <어디에도 없는 곳>은 처음부터 한대수 선생을 의식한 곡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앨범의 흐름 속에서 다소 튀는 면도 없지 않다. 한대수 선생과 이기용 사이에 어떤 고리가 있다고 보는가?
이기용 : 잠에서 깨어 기타를 들고 노래를 만들면서 바로 멜로디가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한대수 선생을 떠올렸다. 당시엔 일면식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찾아뵙고 부탁을 드렸다. 어제도 한대수 선생을 뵈었는데 그 자리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음악 선배도 함께 있었다. 음악을 계속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하는 그 선배에게 한대수 선생이 “당신은 계속해야 한다. 음악을 하고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질타 아닌 질타를 계속하더라. 한대수 선생은 나이가 들었어도 좋은 음악의 핵심과 음악에의 열망, 그리고 그 노력과 품위와 깊이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분들이 많지 않다. 물론 내가 영향을 받고 존경하는, 나와 같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가깝게 느낀다.
나도원 : 오랫동안 소수 의견이었으나 이제 이기용을 한대수, 김민기, 정태춘을 잇는 중요한 음악창작자로 보는 시각이 동의를 얻어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기용 : 그런 말을 듣기 훨씬 전부터 존경해왔던 분들이다. 음악과 세계 그리고 그 사이의 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즉 핵심적인 부분에 있어서 본받을 것이 많은 분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김민기 선생은 중단했지만, 한대수 선생과 정태춘 선생을 음악인으로 끝까지 살아있게 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세 분의 이름 뒤에 내 이름이 이어지면서 계보를 잇는다고 하니까 기분이 묘해지는 일이다. 과연 벌써 그런 말을 들어도 되는지 어색하기도 하다. 물론 내가 ‘에릭 클랩튼’에게서 전혀 매력을 못 느끼듯이 경력이 많다고 모두 존경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9집까지 좋은 앨범을 내다가 후진 10집을 만든다면 남들의 욕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이러한 자세에 영향을 주었다.
시대적인 상황과 의미에 있어서도 그렇다. 우리가 지금 누구 덕분에 마음대로 노래를 할 수 있는가. 정태춘 선생의 음반사전심의철폐투쟁 때문이며, 이것은 정말 모두가 알고 기억해야할 부분이다. 그러나 음악으로 꼭 투쟁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음악의 어떤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한대수 선생이 투쟁하면서 음악하신 분은 아니다. 독재정권 시대에 월북 작가들의 작품들을 모두 금서로 해버린 적이 있는데, 이 얼마나 촌스러운 방식의 정치인가. 그렇듯이 80년대에 운동권에서 미국 팝 음악에 대해 취했던 태도도 세련된 방식은 아니었다. 음악을 대하는 것에서도 다른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 시대에서 한대수, 김민기, 정태춘 선생 모두 최선을 다했고, 그들 모두가 존경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분들이다.
나도원 : 작가주의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거움과 작가주의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면서 이기용에 대한 평단의 지지에 거부감을 표하는 이들도 있다.
이기용 :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이 있다. 만약 후진 앨범을 낸다면 그 때 욕해주기 바란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누가 저 친구는 뭐가 저렇게 진지하고 비판적이며 시니컬한가, 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았기 때문이다. 다르다고 얘기할 수는 있지만 후지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힙합 음악인들을 비방하지 않는다. 다르다고 비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타령 하는 노래들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노래에도 격이 있을 뿐이다. 간혹 어떤 이는 나를 엄숙주의자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소외 속에서 살면서 그 비애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몸집보다 몇 배나 커다란 짐을 끌고 가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동정심을 느낄 수 없다. 자기 세계에 갇혀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은 후진 사고방식이다.
나도원 : 기본적으로 밴드 뮤지션임에도 본인만 부각시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가?
이기용 : 부담이 있다. 음악하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밴드는 더욱 어려운 선택이다. 그럼에도 밴드를 하고 있는데,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 허클베리 핀의 멤버들이 8-9년 동안 함께 고생해왔다. 내가 작사·작곡을 다 하고 편곡도 대부분 맡고 있지만 다른 멤버들의 스타일이 모두 묻어나와 음악이 된다. 함께 한 사람이 달랐다면 음악도 달라졌을 것이다. 나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서운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멤버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내 음악이 어디에 있겠는가. 허클베리 핀이라는 이름으로 갈 때까지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또한 밴드가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얼마나 멋있는 형태인지를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역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되리라 본다.
2006 광명음악밸리축제
“열정을 갖고 하되 아주 차갑게, 내 몸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그만큼의 세기로”
나도원 : 허클베리 핀의 <죽이다>, <보도블록>, <사막>과 스왈로우의 <Deja vu> 등 혁명을 은유하는 곡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과격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안다. 변한 게 아니라 굳이 내보이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정치적인 이미지를 과하게 씌우는 건 오히려 음악인에게 해가 된다고 보는데, 그러한 이유도 있었는가?
이기용 :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음악에 많이 담아오긴 했으나 선동하지는 않았다. 내 스타일일 뿐이다. 단지 내 느낌과 생각을 음악에 담아내려는 사람일 뿐이다. 진보라는 것이 무엇인가. 상식이다. 상식적인 세상이 되는 것이 진보다.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이 이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급진적인 혁명주의자마냥 되는 것은 음악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도원 : 음악으로만 말하는 사람이라지만 사회당원이고, 뮤지션에게 열악한 조건이었음에도 지난 1월 19일 ‘시사저널 살리기 거리문화제’에도 참가했다. 이러한 활동은 시민으로서의 예의인가?
이기용 : 앞에서 말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그게 두려워 피한다는 것도 우습지 않겠나. 시사저널 문제는 노조 집행부와 시사모 사람들이 형사고발을 당한 상태이고 원만한 합의와 복직이 이루어지기에는 전망이 비관적이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참여를 했고, MR을 틀어놓고 하는 공연임에도 기꺼이 응했다. 4월 20일, 시사저널 파업 100일째를 맞아 서울역에서 열리는 행사에도 참여한다.
나도원 : 샤 레이블(Sha Label)을 운영하고 있다. 음악의 독자성을 지킬 수 있는 인디레이블이기도 하지만, 기성 시스템으로부터 거부당한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기용 : 세상이 ‘What a wonderful world’는 아니다. 그래서 안고 가야할 부분들이 있다. 레이블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리 음반을 아무도 내주지 않아서였다.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 우리끼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레이블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만들었고 홍보 면에도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들을 상쇄시키고 남을 만한 것들이 있었고 우리 음악의 독자성도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레이블을 운영하며 레코딩 기술, 운영의 노하우와 능률, 그리고 약간의 자신감 등을 얻었다. 여러 가지 부당함도 잘 알기 때문에 나는 그렇지 않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허클베리 핀 4집 다음에는 스왈로우가 아닌 신인 싱어송라이터 뮤지션의 앨범을 낼 계획이다. 이름을 걸고 제작하게 되니만큼 잘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도원 : 음악에 발목 잡혔다고 한 적이 있다. 무엇이 현재까지 오게 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음악을 해나갈 생각인가?
이기용 : 사춘기인 중학교 2학년 때 아무도 없는 집에 멍하니 누워 뭘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 날 세 개의 답이 나왔다. 하나가 음악, 또 하나는 글, 마지막 하나는 지금껏 한번도 입 밖에 내지 않은 무엇이다. 지금도 돈과 무관하게 하고 싶을 것을 하라면 그 세 가지다. 현재는 그 중 하나만 하고 있지만 아마 나중에는 다른 두 가지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상한 일이다. 의식적이 아니었는데도 음악을 하게 되었고, 이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을 정도로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음악적인 욕망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사이에 내가 있다. 그 속에서 성장해갈 뿐이다. 사람은 변화해간다. 만약 세포 하나를 떼어내어 그 세포가 죽는다고 해도 내가 죽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산책을 많이 하고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덜 후회스러운 삶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살면서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내게는 좋은 음악에 대한 몇 가지 기준들이 있다. 열정을 갖고 하되 아주 차갑게, 내 몸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그만큼의 세기로만 표현한다는 원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내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반응하지 않으면 노래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음악인의 기본적인 자세여야 한다. 이것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20대에서 30대 초반의 결과물이 자신의 베스트가 되어버리고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다면 치욕스러울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음악인이 되고 싶다.
스왈로우
◆ 이기용
1997년, 허클베리 핀 결성
1998년, 허클베리 핀 1집 [18일의 수요일] 발표
2000년, ‘섬’(김기덕 감독) OST 참여, 허클베리 핀의 명곡 <사막> 수록
2001년, 허클베리 핀 2집 [나를 닮은 사내] 발표
2004년, 샤(Sha) 레이블 설립
2004년, 스왈로우 1집 [Sun Insane], 허클베리 핀 3집 [올랭피오의 별] 발표
2005년,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 수상
2005년, 스왈로우 2집 [Aresco] 발표
2006년, 허클베리 핀 싱글 [Huckleberry Finn] 발표
2007년,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올해의 모던 록 앨범’ 수상
스왈로우 [sun insane]
스왈로우 [aresco]

코코어 4집 [Fire, Dance with me]
90년대 중반 홍익대 근처에 산재한 소규모 라이브 클럽들을 중심으로 "인디음악"이라는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지류가 형성 되었다. 이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2006년 현재 처음 시작한 바로 그 장소에 버티고 서서 뮤직 비즈니스(뮤직+비즈니스,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 결합인가)라는 거대 자본으로서의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과 예술적 진정성라는 인디음악의 본질적인 개념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창작자(Sing a song writer)두 명이 있다.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의 이기용과 코코어(Cocore)의 이우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자신들이 속해 있는 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 서서히 자신들만의 음악적 윤곽을 그려 나가며 동시대의 자생적 예술가로 성장하였다. 썩어빠진 음악산업으로 환유되는 우리 사회의 모순들을 온몸으로 통과해 가며 그것을 자양분 삼아 자신의 음악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시대의 위대한 창작자. 그러므로 이 두 창작자의 음악적 행보를 따라가는 보는 것은 바로 지난 10년간 한국 인디음악을 둘러싼 환경과 그것의 변화 과정을 들여다 보는 것일 터이다. 또한 이 둘을 함께 이야기 하는 것은 같은 현실 속에서 서로 상이하면서도 닮아 있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완성해 나가는 두 가지 예술적 자의식이 향하는 여정의 미래를 점쳐보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글의 성격상 필자가 판단하기에 이들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그것을 가지고 두 번째 테마만을 다룰 것이다. 독립음악의 산업적 측면인 "독립적 음악 생산, 유통 시스템의 구축 과정"에 관해서는 이곳 "가슴"에서 이미 충분히 다루어진 혹은 다른 기회에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질 테마이다.
우선 필자는 이 둘을 역사적 맥락 속의 음악 창작자(Sing a song writer)로서 한국의 대중음악 계보 안에 위치시키려는 일을 하지 않을 셈이다. 이것은 이기용과 이우성의 음악이(한대수, 김민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결국은 동시대 영미권의 음악을 모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 다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자신들의 아버지(아버지들도 마찬가지였듯이)의 음악이 아니라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영미권의 동시대 음악에서부터 출발하여 자신들만의 음악적 성장을 그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필요하다면 이들의 음악을 영미권 음악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스왈로우 1집 [Sun Insane]
이기용과 이우성은 둘 다 "Anyone can play guitar"라는 말로 대변되는 얼터너티브 록음악 에서 자신들 음악의 원형을 발견하고 있다. 소닉 유스와 너바나에 열광하던 당시 영미권 젊은 세대가 느끼던 사회 안에서의 그 어떤 정서적 단절과 그것을 담아내고 있는 음악적 표현 형식으로서의 얼터너티브 록은 동시대 한국 젊은 세대가 느끼던 유사 정서에 실체를 부여하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들이 자신들의 예술적 자의식을 발전 시켜 나가는 방식은 매우 상이하다. 허클베리핀의 이기용은 자신의 예술적 자의식을 표현할 도구로서의 음악에 대한 태도를 확립한 후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 했고 코코어의 이우성은 자신의 예술가로서의 생래적 직관에 의존하며 계속하여 자신의 예술적 방향을 찾아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이들의 초기 음반과 최근의 음반을 함께 들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요컨대 이기용은 일관되게 자신이 처음에 세운 창작의 원칙을 지켜나가며 그 안에서 점점 독자적인 스타일을 완성시켜 나가고 있으며 이우성은 매번 자신의 음악 안에서 환골탈태 해가며 거기서 생기는 새로운 생성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전대미문의 영토를 향해 끊임없이 도약하고 있다. 이것은 장르를 뛰어넘어 마치 이들을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위대한 창작자인 홍상수와 김기덕 영화의 변천 과정에 비유해 보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생각 되게 한다. 자신들 만의 독립적인 제작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과 자신들의 예술적 자의식을 진행시켜 나가는 방식 그리고 그들의 창작물이 지향하는 예술적 지점의 상호 유사성. 말하자면 동시대의 창조적 예술가들이 공유하는 그 어떤 원형적 동질성.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 스왈로우(Swallow)의 첫 앨범인 [Sun Insane]은 허클베리핀이라는 밴드의 음악으로는 표현하지 못한 정서의 잉여를 담아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음반을 들으면서 필자는 다시금 가사, 연주,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사운드 메이킹이라는 각각의 요소들을 하나의 음악적 선(line)으로 엮어 내는 그 상위 형식으로서의 이기용의 예술적 자의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이기용이 창조해 내는 음악을 관통하고 있는 테마이기 때문이다. 앨범 수록 곡 중 가장 Swallow적(허클베리핀에서는 시도되지 않은 스타일이라는 의미에서)이라 할 수 있는 <몇 가지 오해들> <킹맨의 거짓말>은 단순하면서도 기묘한 질감의 반복적 리듬을 형성하고 있고, 매혹적인 강박의 지점들 위에 얹혀진 노랫말의 호흡으로 분절된 멜로디가 자아내는 정서적 집중력은 그 자체만으로 강한 중독성을 내뿜는다. 나는 이것을 이기용이 추구하는 음악적 미니멀리즘의 한 형태라고 본다(이러한 미니멀리즘을 이기용은 Swallow의 2집 수록곡 <Aresco>에서 좀더 극단으로 밀고 나간다). 이기용의 이 기묘한 리듬감에는 미국 인디음악 계열의 밴드들이 자주 들려주는 잔뜩 웅크리고 있는 타이트한 볼륨감에 70년대 영국의 데이빗 보위가 들려준, 그 말의 가장 좋은 의미에서 변태적이라 할 정도의 기괴함의 외피가 살짝 덧 씌어져 있다.
<어느 배우>와 <저녁의 룸펜>에서는 허클베리핀에서 사용 했던 것보다 복잡한 방식으로 편곡된 바이올린 연주를 사용하는데, 이는 사운드의 강박에 일종의 풍성함을 실어주어 곡 자체의 감각을 다채롭게 한다. 마지막 곡 <Deja vu>는 이 앨범에서 가장 허클베리핀스러운 곡으로 들리는데, 필자는 이 곡을 2000년으로 기억되는 어느 더운 여름 대학로에 위치한 SH클럽의 허클베리핀 공연에서 구한 데모 테잎을 통해 처음 듣게 되었다. 무뎌진 감각에 자그마한 흠집을 내려는 듯 날이 선 선명한 기타 연주와 쇄말주의적 가사(정말이지, 이런 쇄말적 가사로 은밀한 혁명의 흥분을 불러일으킬 작사가가 이 땅에 이기용 말고 누가 있겠는가?)에 무척이나 열광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모든 요소들은 하나의 음악적 선(필자는 이것을 달리 표현할 능력이 없다)에 의해 듣는 이의 감각의 맹점들을 따라 정교하게 움직임으로써 하나의 테마로 수렴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우리를 이전에 도달한 적이 없는 불가해한 감상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게 한다. 창작자 이기용이 겨냥하는 그 하나의 점. 모든 것이 화하며 유폐된 감각의 결이 무한정 펼쳐지는 고도로 집중된 정신이 놓여지는 그 지점. 이렇게 도착적인 강박의 형태로 구조화된 사운드는 창작자 내면의 블랙홀을 메우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저 너머의 세상 혹은 초월로 이어지는 블랙홀. 말하자면 이기용의 음악은 소멸을 통한 초월을 바라고 있는 듯 절박하게 들린다.
이기용
이기용의 음악에 있어서 가사는 그 자신이 말하듯 매우 중요한 표현 방식이다. 심지어 그는 음악과 일정 정도 분리하여 마치 시를 쓰듯 집중적으로 가사를 써 나간다고 한다. 실제로 이기용처럼 가사를 전례 없는 진지함으로 대하는, 자체의 문학성만으로도 훌륭한 가사를 쓰는 창작자는 정말 흔치 않다. 필자는 이것을 사운드와 조화하면서 사운드 자체에 어떤 시적인 이미지를 덧붙이는 음악 가사의 모범적 사례로 본다. 차갑고 어두운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짧은 탄식과도 같은 감탄할만한 언어의 구사. 하지만 초창기 허클베리핀의 음악에는 분명 몰입을 방해하는 어떤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것은 기이하게도 이기용의 훌륭한 노랫말과 일정 정도 연관이 있었다. 이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비록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음악을 받아들이기 위해 미리 자아의 어떤 의식적인 준비가 필요한 그러한 강압에서 오는 정서의 불편함이 분명 존재 하였다. 지나치게 선명한 이미지를 가지며 간혹 음악 자체를 압도하던 가사에서 오는 그 어떤 과도한 패배주의나 쇄말적 분위기는 허클베리핀의 음악의 대중적 지반을 한계 지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자의식으로 과잉된 가사가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인 Swallow에서는 좀더 우회적이고 시적인 것으로 변화함으로써 공감의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기용은 이 메마른 세기에 순수함을 갈망하는 한 영혼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 주는 예술가이다. 하지만 점점 더 이 창작자가 만들어 내는 세계의 한 복판에서 만나는 것은 깡마른 무의미가 아니라 번쩍이는 하나의 섬광, 즉 눈이 부셔서 제대로 판독하지 못하는 어떤 강렬한 의미이기를 바란다.
싸지타 1집
필자와 코코어 음악과의 첫 만남은 1997년 겨울 홍대 앞의 라이브 클럽 Jammers에서 유일한 안식처를 찾던(이 때 내가 아는 라이브 클럽이 Jammers 밖에 없었다.) 혼란스런 시절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코코어는 너바나의 카피 밴드로 시작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너바나 곡들을 연주하고 있었고 그들의 선보인 몇몇 자작곡들, 이를 테면 <검은새>와 <4월> 같은 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밴드의 프론트맨 이우성의 광기에 가득 찬 아우라는 순식간에 당시의 내 정서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창조적 영감에 걸맞는 음악적 형상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며 자신들 내면에 응축되어 있는 에너지를 마구잡이로 분출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후 이우성이 진정한 음악 창작자로서 가능성을 비로소 내비쳐 보인 것은 코코어 1집 [Oder] 이후의 그들의 첫 EP에서였지만 이것은 그저 미래를 향한 희미한 빛일 뿐이었다. 오히려 이후 이어진 이들의 2집과 3집 작업은 <독>과 <야광 원숭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낸 코코어의 기타리스트 황명수라는 훌륭한 창작자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되었고, 반대로 밴드 안에서의 창작자 이우성은 벌써 그 어떤 창작의 한계에 봉착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단지 2집과 3집 수록곡 중 그가 작곡한 <Boom Boom kid> <슬픈 노래> 그리고 <루시아>는 형식적으로 자유로워지려는 의지가 곡 사이사이에 드러나며 그 안에서 좌충우돌 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음악을 계속해서 주시하게 만드는 연약한 희망의 연결 고리였다.
이후 이우성은 밴드 음악에서 한걸음 빠져 나와 별도의 개인 음반 작업을 하였고, 그 안에서 지금까지 코코어라는 밴드 음악으로서의 억압을 벗어 던지고 자신 영감에 좀 더 충실한 자유로운 형식의 음악을 시도했다. 그것의 결과물이 싸지타(Sagitta) 1집이었다. 이 작업에서 이우성은 통기타 음악이라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형식 위에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감성을 담아내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 했다. 이것은 마치 재단사가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재단해내는 순간과도 같은 예술가에게는 정말이지 기적 같은 시간인 것이다.
이러한 이우성의 시도들이 결정적으로 코코어의 4집에서 그 광채를 발한다. 이 4집 음반은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그것은 모든 곡들이 작곡자에 의해 원맨 밴드 식으로 만들어 졌다는 점이며(모든 곡의 악기 연주와 편곡, 그리고 녹음까지도 그것의 작곡자에 의해 독자적으로 이루어 졌다는 의미에서 이것을 밴드 음악이라 할 수 있을런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 음반이 코코어의 마지막 음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중 이우성이 창작한 곡들은 그냥 굉장하다. 특히 코코어의 3집 음반에서부터 밴드 안에서 계속해서 시도되어 왔던 다양한 인도 전통 악기 씨타르(Sitar)가 가진 독특한 느낌을 차용한 기타 연주와 싸지타에서 찾아낸 새롭고 자유로운 형식이 빚어낸 <방랑자><1990><그리고 얼마나> 같은 곡들은 정말로 눈이 부실 정도로 독창적이며 보헤미안적인 영감이 가득한 자유로움의 에너지를 대담하게 풀어낸다. 실제로 필자는 4집 수록곡 <그리고 얼마나>를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영감에 넘치는 곡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본 싸지타의 공연에서 이우성이 단독으로 연주한 <그리고 얼마나>(이 곡에서 그의 기타 연주는 정말이지 굉장하다! 이 갑작스런 도약을 설명할 길은?)는 이 새로운 음악적 발견이 창작자 이우성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고 생각될 만큼 음악 안에서 그는 거의 신들린 듯한 무당의 기운을 광적으로 표출하고 있었고,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공포스러움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우성
이우성의 창작자로서의 자질을 거론할 때 자주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그의 가사쓰기 능력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것을 평론가가 범하기 쉬운 아주 기초적인 인식의 오류하고 말하고 싶다. 가끔 평론의 영역에선 "나를 나라고 하고 너를 너라고 해야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주 단순한 명제가 종종 망각되곤 한다. 어떠한 예술 장르의 평론을 막론하고 평론이란 누구를 누구와 비교하고 카테고리화 하여 그들의 음악을 대중들에게 손쉽게 전달하는 것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A라는 예술가를 A라 하고 B라는 예술가를 B라고 하는 것에 있다는 필자의 신념에 비추어 봤을 때 창작자 이우성에게 진지한 가사쓰기를 요구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가 이우성의 공연을 단 한번이라도 직접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우성은 근본적으로 작가적인 의미에서의 음악가라기보다는 무당으로서의 음악가이다. 이우성은 자신의 영감에 대한 직관적 확신이 있으며, 코코어의 4집 앨범에서 보다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그의 자유롭게 비상하는 보헤미안적 영혼의 에너지는 사실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우성은 이기용과 같이 신중한 작가의 입장에서 음악을 하는 예술가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되어져야 함이 마땅하다. 음악(Music)은 그 탄생에서부터 마술(Magic)의 합법적 수단이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음악은 사람들을 같은 기분으로 끌어들여 격려하고 영원의 힘을 부르고 이것을 불러내기 위한 힘 있고 분명한 방법이었고 이 본원적이고 순수하고 뿌리 깊은 본질, 즉 음악의 마술적 본질이 우리가 이우성이라는 창작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음악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땅에서 처음으로 두려울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음악가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대한 예술가라면 작품 하나하나가 그 자신을 진리에 접근시켜 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언젠가 모든 것과 함께 불타오를 저 깊숙한 곳의 태양에 자신을 점점 가깝게 맴돌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비록 이우성과 이기용의 음악적 재능이 아직 그 실체를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의 한가운데에는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어떤 굴복할 줄 모르는 블랙홀이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예술가의 집요한 탐구를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또 이들 위대한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창조하면서 자신의 정열을 작품 안에서 찾아내고 그리하여 판단할 줄 아는 현명한 대중들일 것이다.

스왈로우(Swallow)는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의 리더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 이름입니다. 허클베리 핀의 3집 앨범이 곧 발매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기에 스왈로우의 앨범 발매 소식을 듣고 잠시 갸웃거리기도 했지만 사실 허클베리 핀과는 어떻게 다른 음악을 들려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제 마음 속 기대의 비율은 스왈로우가 월등히 높았습니다. 물론 허클베리 핀의 음악도 좋아하지만 그들의 강렬한 기타음과 함께 터져나오던 분노와 절망보다는 이기용이 조용히 내비치던 음울한 정서에 더 끌렸었고, 그래서 남상아와 이소영의 목소리로 불리어지던 노래들 사이사이로 이기용이 나지막이 노래 부르던 <Huckleberry Finn>이나 <Somebody To Love> 같은 곡들을 더 많이 좋아했었습니다. 스왈로우의 앨범에서는 그런 이기용의 정서를 듬뿍 음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왈로우의 앨범이 허클베리 핀과 비교해 뭐가 틀리냐고 물어본다면 간단하게 얘기해서 이기용의 음(陰)의 정서가 허클베리 핀보다 더 강조된 음악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연장에서 이기용이 했던 얘기대로 이 앨범은 "허클베리 핀보다 좀 더 개인적이고, 좀 더 우울한" 음악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허클베리 핀의 음악보다는 덜 불편합니다. 이기용은 여전히 함부로 다가서기 어려울 만큼 진지하게 음악을 하고 있지만 이 앨범에선 우울해보이기는 해도 허클베리 핀 때만큼 절망스러워보이지는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이기용은 기타 디스토션 대신 다소곳한(?) 기타 연주와 건반을 선택하였고, 시종일관 낮은 목소리로 노래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여기에 얹혀지는 곡들의 뛰어난 구성과 유려한 서정성은 이 앨범을 허클베리 핀 시절보다 더 우울하지만 덜 불편하게 만들어줍니다.
앨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현(絃)의 전면에의 배치입니다(이 앨범에서 사용되어지는 주된 악기는 기타, 바이올린, 건반, 이렇게 셋입니다). 이미 허클베리 핀 2집 <사막> 등의 곡에서 현에 대한 관심과 함께 탁월한 활용을 보여줬던 이기용은 이 앨범에서도 바이올린을 가지고 곡을 리드하거나 때로는 리듬 악기의 형태를 띄기도 하며 운용의 묘를 제대로 살려주고 있습니다. 앨범의 첫 곡 <봄의 피로>는 이기용이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를 보고 인트로 부분을 자기 식으로 소화하고 싶어 만들었다는 보도자료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영화음악으로 어울릴 만큼 좋은 구성을 보여주는 클래시컬한 소품입니다. 이런 느낌은 코코어(Cocore)의 이우성과 함께 만든 <어느 배우>나 앨범의 마지막 곡 <Deja Vu>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이 곡들은 건반과 현이 전면에 나서는 클래시컬한 진행과 함께 연극이나 영화음악으로 쓰인대도 썩 잘 어울릴 드라마틱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무엇이 나를 눈멀게 했을까>와 <긴 방랑이 끝나는 아침> 같은 곡들은 기타와 건반만으로 곡을 끌어가는 아주 서정적인 트랙들인데 이런 미니멀한 방식은 현(絃)의 활용과 함께 이 앨범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합니다. 앨범 내에서 몇 안 되는 업 템포 곡들인 <몇 가지 오해들>과 <킹맨의 거짓말> 같은 록 세션 형태의 곡들 역시 드럼 프로그래밍과 기타, 베이스의 단촐한 구성과 함께 2개의 코드만으로 곡을 이끌어 가는 미니멀한 방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기용은 이 앨범에서 이렇듯 허클베리 핀의 음악과 닮은 듯 하지만 다른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앨범이 허클베리 핀과 비교해 좀 더 내면적이고, 보다 전면에 나선 서정성으로 인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고, 이기용의 이름 앞에 붙곤 하던 '불운한'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심 없이 이 앨범은 '정말' 잘 만들어진 앨범이고 좋은 노래들로 가득한 뛰어난 앨범입니다. 이제 겨우 새해가 시작됐고 1월의 반도 아직 지나지 않았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가슴의 연말결산 때 앞자락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 경청해 줘야할 앨범이고 존중해줘야/존중받아야할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앨범을 듣지 않고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음반을 듣고 좋아하겠다는 얘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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