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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 언더 47 POSTS

  1. 바이바이(buy-bye)

    - 나도원 | 2007/01/18 18:00

    바이바이(buy-bye)

    - 나도원 | 2007/01/18 18:00


    예상은 빗나갔다. 선택형 자살약 바이바이(buy-bye)의 시판이 허용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시판 직후부터 바이바이는 연일 판매량을 갱신했다. 바이바이의 성공은 무엇보다 자살 성공률에 따라 세 종류의 제품으로 나누어 판매한 데에 있었다. 각각 성공률 100퍼센트, 75퍼센트, 50퍼센트인 바이바이 삼종은 그 자체로 화제였고, 그 중 성공률 50퍼센트 바이바이가 소비를 주도했다.

    “안녕을 사세요(buy-bye)”라는 친근한 카피를 내세운 광고도 주효했다. 특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유명인사들과 비슷한 모델들을 내세운 CF가 효과적이었다. 칼을 든 백인 미녀가 “바이바이가 있었다면 손목을 긋지 않았을 텐데…”라고 한다거나, 고층빌딩 꼭대기에 서서 “바이바이가 있었다면 뛰어내리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라고 읊조리는 CF는 바이바이의 장점을 잘 보여줬다. 또 총기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국의 유명 뮤지션과 비슷하게 생긴 남자가 “바이바이가 있었다면 두개골을 부수지 않아도 되었을 걸…”이라고 중얼대는 CF도 있었다.

    기존의 자살방법들을 대개 참담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장기와 두개골을 파손시키는 방법이나 혈관을 끊어 과다출혈로 죽는 방법, 그리고 물에 뛰어들거나 목을 매 질식사하는 방법들은 심약한 사람들에게는 쉽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체에 심각한 훼손을 남겼다. 제법 낭만적으로 치부되었던 총기자살과 약물자살의 실상은 더욱 참혹했다. 모두 독한 용기가 필요했고, 실패할 확률도 높았으며, 때론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다. 병원에서 약물주사를 통해 안락사하는 방법 말고는 자살이라는 동물적 행위 자체가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그런데 바이바이의 등장은 이것을 바꿔놓았다. 구매와 복용이 간편하고 일체의 고통이 없음은 물론 약간의 환각효과까지 있었다.

    처음엔 바이바이의 처방을 누가 하는가가 문제였다. 의사가 해야 마땅하지만 사실 그들이 바이바이를 처방해준다는 건 스스로에게도 곤란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판 허용 때와 마찬가지로 의사 처방이 필요 없는 약품으로 분류되었다. 대신 바이바이 구매자는 ‘채무 및 범죄가 없음’이라는 인증을 받아야 했다. 채무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자살을 막기 위한 사회적-실은 사회를 위한- 안전망이라고들 했다. 또 고속도로 주행 중 바이바이를 복용하고 자살하는 사건들이 발생하자 운전 중 바이바이의 복용 및 소지가 금지되어 적지 않은 과태료와 함께 면허취소 등의 강력한 제재조치가 취해졌다. 방송은 바이바이 복용자에 의해 무고한 어린이들과 단란한 가족이 처참하게 사망하는 내용의 공익영상을 제작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바이바이 포장에는 ‘어린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세요’ 등의 경고문구 삽입이 의무화되었다.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십대들이 나이를 속이고 바이바이를 구입해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잇따르자 어느 칼럼니스트는 ‘죽음을 파는 시대에 고한다!’라는 제목의 제법 비장하고 비판적인 칼럼을 썼고, 각종 단체에서는 안티-바이바이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모 기독교 단체는 ‘바이바이 퇴치를 위한 구국기도회’까지 기획했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자진하여 철회하는 해프닝도 벌였다. 하지만 바이바이의 판매량은 매달 증가했다. 지하철 선로사고 급감 에 대한 보도나 사회적 비용절감에 대한 논의 등으로 순기능에 대한 인식도 확산되었다. ‘죽음을 파는 시대에 고한다!’를 쓴 칼럼니스트마저 바이바이를 먹고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자-그는 50퍼센트 바이바이를 복용한 것으로 알려져 보다 체험적이고 비판적인 칼럼을 쓰려 했을 것이란 풍문도 있었다- 바이바이는 트랜드가 되었다. 이어 예쁜 여배우를 커버에 내세운 ‘바이바이와 함께 하는 음악 컬렉션’이 발매되고, ‘바이바이를 먹기 전에 꼭 보아야할 책과 영화 20선’, ‘바이바이와 떠나는 마지막 여행지 12선’ 따위의 책들도 출간되어 적잖이 팔려나갔다.

    앞서 말했듯이 바이바이의 성공비결은 확률선택형이라는 데에 있었다. 특히 50퍼센트 바이바이는 자살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자살기도를 통하여 몇 가지 목적-예를 들면 어떤 이들에게 슬픔이나 고통을 줘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환기시킨다거나-을 달성할 수 있었고, 실패했을 경우엔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함으로써 다시 생을 시작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었다. 50퍼센트 바이바이를 5회에 걸쳐 복용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확률적으로 가능한 일이라 3회 복용 후 생존자들도 종종 있었지만 5회까지 생존한 그는 특별히 취급되어 유명인사가 되었다. 제약사는 그에게 사은품으로 75퍼센트 바이바이 10정 구매권을 주었으나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여섯 번째로 자살을 기도했을 때에도 그는 50퍼센트 바이바이를 복용했다고 한다. 그는 이 때 사망했다.

    이처럼 치사율이 정확한 약을 만들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고 제조법도 극비였다. 한때 경쟁사가 바이바이와 유사한 효능의 약품을 개발하여 시판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50퍼센트 바이바이보다 낮은 49퍼센트 자살 알약, 즉 ‘순한 자살’을 판매한다고 하여 전문가들 사이에 때 아닌 논쟁을 일으켰다. 확률이 반 이하라면 자살기도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순한 자살’ 49퍼센트는 좋은 판매성과를 보였고, 기존의 하얗고 약간 써보이던 바이바이 대신 ‘커피맛’ ‘딸기맛’ ‘쵸코맛’까지 개발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 때부터 바이바이의 시장점유율이 감소하였지만, 상황은 의외로 허탈하게 종료되었다.

    ‘순한 자살’의 실제 성공률이 광고와 달랐던 것이다. ‘순한 자살’ 49퍼센트의 성공률은 시판 초기엔 70퍼센트 정도였음이 드러났고, ‘커피맛’ ‘딸기맛’ ‘쵸코맛’ 개발 이후엔 4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경쟁사는 과장광고 논란에 휩싸였으며 결국 ‘순한 자살’에 전량리콜이라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이후 바이바이가 다시 시장을 독점했지만 매출실적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수익증가율도 둔화되었다. 업계에서는 주 고객층 중 상당수가 이미 사망하였으므로 새로운 소비자 층을 만들어 내거나 소량생산과 고가마케팅전략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전망이 어둡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바이바이가 재기를 노리고 있을 이 무렵 선거열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선거 후 주문형 바이바이의 반짝 특수를 기대해고 있을 때, 일이 터졌다. 바이바이 제약사의 임직원들이 대거 구속되었다. 이 뉴스가 전해지자 일각에선 드디어 살인죄나 살인방조죄가 적용된다는 예단도 있었지만, 곧 약품허용 및 시판과정에서의 불법 로비 혐의임이 알려졌다. 다시 바이바이의 비윤리성에 대한 성토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것이 지난 정권의 유력인사와 정치인들까지 소환되는 정치 스캔들로 발전하자 포커스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바이바이 임직원들에 대한 재판 및 판결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바이바이의 공동개발자이자 제약사의 핵심임원이었던 인사에 의하여 바이바이가 자랑하는 정확한 자살성공률의 비밀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짤막하게 보도되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가장 중요한 작업은 치사율이 100퍼센트이며 고통 없는 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실험에 성공하자 다음은 쉬웠다. 100퍼센트 바이바이는 모두 이 약을 포장하여 판매했다. 75퍼센트 바이바이는 독약, 그리고 수면제와 환각제를 섞은 무해한 약을 각각 75대 25로 제조하여 판매했고, 50퍼센트 바이바이는 50대 50으로 제조하여 판매했다. 즉 가장 인기 있었던 50퍼센트 바이바이는 100개의 알약이 포장될 때 그 중 50개만 독약이었던 셈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유통금지 이후에도 성행하던 바이바이의 암거래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예상은 빗나갔다. 선택형 자살약 바이바이(buy-bye)의 시판이 허용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시판 직후부터 바이바이는 연일 판매량을 갱신했다. 바이바이의 성공은 무엇보다 자살 성공률에...

  2. 현재 신중현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인천 송도에서 출발한 전국순회 은퇴공연 ‘신중현-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는 12월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공연을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냥 조용히 사라질까도 했지만, 그래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산 사람으로서 공개적으로 인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서울신문)라는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한국록’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50년 가까운 음악생활을 접고자 은퇴를 예정하고 있는 이 때까지도 그와 관련하여 아직도 제대로 규정되지 않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의 위치와 온당하지 않은 평가는 씁쓸한 구석이 있다. 그가 음악적으로 복권된 1980년 이후만을 보더라도 한국의 각종 매체에서는 무려 20년 이상이나 그를 가리켜 ‘한국록의 대부’이니, ‘살아 있는 록의 신화’이니 하면서 철저히 베껴먹었다. 그렇지만 납득할 수 없는 점은 예술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현재 작업물에 대한 평가’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 60~70년대에 그가 다른 가수들을 통해서 히트시킨 흘러간 명곡들에 대한 추억과 소회를 이미 만들어진 ‘안전하고 따듯한 신화’를 기반으로 재생산하는 방식이었고, 누가 섰는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 글들이 태반이다. 그래서 신중현을 생각하면 음악평론의 여러 행태가 떠오르고, “독자 입장에서 매체/평론가의 글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 것인가?”를 얘기하게끔 만든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한 ‘거장’을 얘기하는 자리에서마저도 말이다.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1980) - 신중현의 최고작!


    나는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신중현을 얘기할 때 크게 다섯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대부분 뮤지션을 얘기하는 본질적인 평이 아니라서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 첫 번째는 “우리는 아버지가 필요하니까, 그냥 있는 것으로 치자”라는 식의 암묵적인 합의하에서 벌어지는 ‘추앙’에 가까운 평이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계서 아버지를 갖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뮤지션-매체-평론가 간의 직업적인 카르텔이고, 근본적으로 독자(음악수용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매체는 때때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거장을 얘기해야할 때가 있는데, 이는 기획기사 꺼리로 대중음악의 역사를 얘기해야 할 때, 외국의 거장과 비교해서 꿀리지 않을 그 누군가가 필요할 때,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 우수함(독보성)의 예를 들어서 독자들을 기쁘게 해야할 때 등등이다. 한마디로 신중현 또는 그의 작업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를 ‘기사 소스로서 이용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거장’으로 미리 상정하고, 그 ‘거장의 이미지’를 두고두고 우려먹는 방식이다. 이에는 상당히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신중현을 ‘거장’으로 상정하는 과정에서 그의 작품들을 밀도 있게 논한 적이 있고, 그의 행적을 음악계 선배로서의 태도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합리적인 논의가 있었다면 지금 이런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90년대에 들어와서 신중현의 재평가가 이루어졌는데, 이는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의도로 재평가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의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그나마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의아한 것은, 신중현은 1979년 말에 해금된 후 그의 최고작일 수도 있는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1980)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10년 동안 아무들 얘기도 않다가 ‘록 스피릿’ 얘기가 불거져 나온 시점에서 그것도 1974년에 발표한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약 신중현 재평가 얘기를 꺼낸 사람들이 그의 정규 앨범들을 충실히 들어보았다면, 그리고 뮤지션의 작품을 평할 때 먼저 ‘정규 앨범’을 가지고 논하는 것이 상식임을 안다면 기존의 논의 방향성은 시작부터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신중현의 활동 기간을 생각한다면 그의 정규 앨범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편이다. 알려진 대다수의 음반들은 소속 음반사가 돈벌기 위해서 만든 편집음반이거나, 그가 ‘관련한’ 앨범들(펄 씨스터즈, 김추자, 장현 등)이다. 정규작 중에서 베스트는 단연코 덩키스 1집과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이라고 생각한다.

    ※ 정규 앨범을 얘기하면 [히키-申 기타-멜로듸 輕音樂 전曲集](1959), 에드훠 1집(1964), 블루즈테트 1집(1967), 덩키스 1집(1969), 퀘션스 1집(1970), 더맨 1집(1972)/[색소폰의 유혹](1972), 신중현과 엽전들 1집(1974)/2집(1975)/[연주곡 베스트](1975),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1980)/2집(1982), [기다려요/그대는 떠나도](1980), 신중현과 세나그네 1집(1983), [신중현](1988), [무위자연](1994), [김삿갓](1998), [Body & Feel](2002), [안착](2005), [도시학](2005) 정도이다.

    덩키스 1집에는 <봄비>, <꽃잎>, <마음> 등이 실려 있는데, 이들은 먼저 나온 펄 시스터즈 1집(1968)의 <님아>에서 보여준 그의 신기원적인 그루브 감각에서 발전한 노래들이다. 아마 당시 신중현의 연주는 독보적이었을 것이다. 또한 <마음>은 20여분의 런닝타임을 가지면서 B면 전체를 채우는 곡인데, 산울림의 3집(1978)에 실린 <그대는 이미 나>가 이런 유형으로는 국내 처음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놀라웠다. 단지 곡이 길어서가 아니라 20여분을 이어가는 에너지라든가 곡 구성이 훌륭했고, 기타 솔로도 충일했으며, 당시의 음반 제작 관행을 생각하더라도 실험적이었다. 아마 이 때가 그의 창작정신이 가장 빛날 때였을 것이다. 또한 신중현과 뮤직파워 1집은 9인조 브래스록 밴드로 만든 음반으로, 사실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엽전들 스타일이 아니라 뮤직파워 같은 브래스, 키보드 파트가 있으면서 특유의 ‘쩍쩍 달라붙는’ 느낌의 리듬 기타 배킹(backing)이 깔리는 음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 음반의 <아무도 없지만>, <저무는 바닷가>, <떠나야 할 사람>은 멋진 리듬 기타 배킹과 신중현만의 감각적인 솔로 애드립이 돋보이는 매우 훌륭한 곡들인데, 이 음반은 사실 묻혀져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도 인정하듯이(그는 이 음반의 기타 애드립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였다) 이 음반에서의 감각은 그의 연주 경력에서의 베스트이고, 그의 필은 무척이나 독특하였다.

    그런데도 ‘신중현과 엽전들’만 거론하는 것은 신중현 재평가 얘기를 꺼낸 사람들이 그의 정규 앨범들을 충실히 들어보지 않았거나, 아니면 식별력이 부족하던가, 그도 아니면 ‘신중현과 엽전들’을 거론해야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발 물러나서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이 그의 대표작이라고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신중현과 엽전들 2집]과 같은 졸작(누가 들어도 졸작!)에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거나 “그게 졸작임을 얘기하지 않고” 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평론가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행위이다. 그러니 이런 행위의 본질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매체가 원하는 방향성의 얘기를 평론가들이 ‘대신 그럴듯하게’ 얘기를 한 것이거나, 매체를 위해서 평론가들이 적절하게 ‘기사 소스를 개발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매체-평론가들 간의 직업적인 카르텔이다. 그리고 매체는 그런 종류의 평론가들을 등용하는 것이다.

    ※ ‘신중현과 엽전들’에 대한 이전의 중요한 평가 이유는, 개인적으로는 동의 하지 않지만 ‘진정한 한국록의 시발점’이란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굿거리장단’ ‘오음계’의 도입 등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정한’이란 수사를 빼고 ‘한국록의 시발점’이란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평가 이유로는 ‘창작’ 문제가 핵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중현과 엽전들 음반은 그를 얘기할 때 먼저 거론할 음반이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신중현 본인의 말대로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이 음악적으로 새로운 시도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과연 <미인>이 전 국민적으로 히트했다는 사실 이외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앨범아티스트로서 신중현을 평가한다면 그 이전과 이후에 ‘창작의 완결성’ 면에서 더 훌륭한 앨범들이 존재한다. 노이즈가든 윤병주의 말대로 영미권의 록음악을 즐겨듣는 사람들은 신중현의 음반과 연주에 큰 감흥을 받지 못할 수가 있는데, 이는 번지수가 틀린 신중현 음악평에 기인하는 바도 있다는 생각이다. 분명 신중현은 대단한 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인 것은 분명한데 그 증거(?)를 잘못 들이댔다는 말이고, 그래서 생긴 오해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는 신중현의 팬으로서 쓰여지는 글들이다. 어찌 보면 가장 순수한(?) 유형의 글일 수도 있다. 신중현이 좋아서 위인전을 쓰던, 그의 동상을 세우던 그건 순전히 그들의 몫이고, 누가 시비 걸 문제는 아니다. 분명 그들은 신중현에게 계속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부여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 글이 ‘평론의 모양새’로 공중에 발표되어 일반인들에게 강요되면 문제가 있다. 그리고 매체에서 이를 검토 없이 수용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이런 형태의 글들이 대중에게 그리고 음악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산업에서 매체의 첫 번째 역할은 음악수용자의 음반구매에 대한 가이드이다. 그렇다면 매체가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공신력’ 유무가 관건이다. 하지만 그 ‘공신력’이 엄한 얘기들로 무너진다면 그리고 음악마니아들이 이를 조소한다면 해당 뮤지션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난을 받게 되어있고, 해당 글을 유통한 매체(평론가)는 믿음을 상실한다. 그리고 이런 일이 업계에서 종종 벌어진다면 한마디로 “한국에는 믿을만한 매체가 없어!”라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고, ‘비평’이 산업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네 번째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글들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경우이다. 많은 매체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택하는 기사쓰기 형태이다. 이는 논의할 값어치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소수이지만 ‘자신만의 관점’으로 글을 생산하는 경우이다. 이는 당연히 바람직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관점으로 글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적’인지를 자문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파행적인 음악 글쓰기의 여러 형태들을 짚어보았다. 신중현이 진정 ‘한국록의 대부’로써 회자되려면 먼저 진정성과 전문성을 갖춘 음악평론 문화부터 만들어져야 한다. 아마 그렇게 된다면 그는 ‘한국록의 대부’라기 보다는 ‘한국음악창작자의 역사에서의 시작점’으로 얘기되어지고 있을 것이다.

    현재 신중현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인천 송도에서 출발한 전국순회 은퇴공연 ‘신중현-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는 12월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공연을 끝으로 마무...
  3. '7080콘서트'의 이면

    - 박준흠 | 2004/10/29 18:00

    '7080콘서트'의 이면

    - 박준흠 | 2004/10/29 18:00


    올해 대중음악공연계의 이슈는 단연 70~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현재 30~50대 나이의 중년층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진 '7080콘서트'이다. 한국대중음악산업에서 1992년에 서태지가 데뷔한 이래 재편된 10대 팬덤 중심의 주소비층 구조를 본다면 가히 '신규시장 창출'이라고도 할만하다. 물론 80년대만 해도 음반시장 소비자군에는 10대와 20대 그리고 적어도 30대까지 골고루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온전한 의미의 '신규'는 아니고, 그동안 수면 아래 잠재하고 있었던 소비층의 재등장으로 보면 될 것이다.

    시작은 지난 1월 25일 KBS-TV '열린음악회'의 '7080 추억의 그룹사운드' 특집에서 촉발되었다. 이 방송에서는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 라이너스의 <연> 등이 연주되었는데, 방송 후 KBS의 홈페이지에 재방송을 독촉하는 글이 1,000건을 넘어 급기야 재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라이브음반 발매, DVD 발매, 7080 음악을 다루는 상설 프로그램 요구, 7080 통기타가수 특별방송 요구 등으로 이어졌다.(결국 KBS미디어에서는 라이너스의 1집을 재발매했다.)

    현재의 음반, 공연시장의 불황 속에서 '대박꺼리'를 찾던 기획자들은 즉시 공연기획에 돌입해서 4월 10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7080 Campus Band'를, 이어 6월 12일에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7080 빅콘서트 - 보고싶다 친구야'라는 이벤트성 공연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그간 [명작 7080] 같은 기획음반들이 발매되었고, 미사리 카페공연을 방송국이나 대형공연장으로 옮긴 형국의 '한국판 포크리바이벌'도 있었다. 이번 추석연휴에도 KBS에서는 '추억의 빅콘서트'를 통해 다시 중년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70~80년대 추억의 포크음악에서부터 팝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노래들로 방송을 내보냈다.


    이런 문화적인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20대의 젊음이 주던 낭만을 가슴에 묻고, 자신을 위한 소비와 감정은 철저하리만큼 옹색했던 40~50세대들이 추억의 콘서트를 계기로 잊고 있던 '문화'의 주체가 되어 가슴속의 열정을 분출하는 것 같다"라는 식의 의미부여를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몇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문제들이 있다. 먼저 얘기할 것은, 현재 주로 호출되고 있는 뮤지션들은 70년대말~80년대 당시 공중파방송국 대학가요제(MBC 대학가요제, MBC 강변가요제, TBC 해변가요제, TBC 젊은이의 가요제)를 통해서 등장한 '대학생 밴드들'인데, 이들이 과연 70~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대표라고 할만한가? (논점은 뒤에 얘기되듯이 "왜 이들이 매체에서 조명을 받아야 하는가?"이다.)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의 지형을 놓고만 보더라도 그나마 의미 있었던 대학가요제는 사실상 80년대 초에 끝났고, 새로운 한국대중음악의 시작은 1984년 '따로 또 같이' 2집에서 비롯된다. 1985년에는 우리노래전시회 1집(전인권의 <그것만이 내세상>, 어떤날의 <너무 아쉬워 하지마> 등 수록), 들국화 1집, 이정선 7집, 따로 또 같이 3집, 해바라기 2집, 오선과 한음 1집, 이문세 3집 등이 나왔다. 1986년에는 시인과 촌장 2집, 어떤날 1집 등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기가 시작되었고, 이들은 대학가요제 토양과는 무관한 '창작'과 '세션' 중심의 뮤지션들이었다. 그런데 매체들은 왜 이들 대신 덩달아 대학가요제 출신 뮤지션들을 조명하는 것일까? 음반/공연기획자들도 아닌 매체들이.

    또한 7080콘서트에 주로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을 호출하고, 여기에 과도하리만치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는 너무나 마케팅적인 의도가 보인다. 한국에서 비단 30~50대를 위한 음악이 이들뿐이겠는가? 이는 콘서트입장료를 지불할 수 있는 '충실한 소비자층'으로 당시 대학을 다녔던 30~50대 중산층을 상정해서 공략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이는 공연기획자들이 새로운 팬덤을 만드는 방식인데, 이를 매체에서 여과 없이 흘려버린다면 문제이다.


    ※ '대학가요제'에 대해서 부연해서 얘기하면...

    대학가요제의 시작은 박정희정권의 '대민 위무용'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기획되었고, 당시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했던 양대 방송사에서 실무를 맡아서 진행했다는 것이 정설이라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1975년 대마초파동으로 많은 뮤지션들이 활동 정지에 들어갔기 때문에 당시 대중음악계에는 역량 있는 뮤지션들이 적었고, 그래서 방송사에서도 다룰 음악소스가 부족했기 때문에 '소스 개발 차원'에서도 기획을 한 측면이 있다. 어쨌든 대학가요제가 등장하여 한국대중음악계에 '다양성' 면에서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고, 또한 방송사에서 본의 아니게(?) '아마추어리즘'을 본격적으로 수용한 측면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대학가요제 역사를 보면 그나마 독자성을 가진 노래들이 나온 것은 1977년~1979년 단 3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 이후는 주류 가요와 뒤범벅이 되어서 대학가요제의 원래 취지와 모습은 사라졌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학가요제 노래들(방송사뿐만 아니라 각 대학에서 벌어지는 가요제 노래들)은 한국에서 '가장 후진 부류'에 속한다. 노래부르기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둘째치고라도(어찌들 가사를 그 모양으로 쓰는가? 일반 10대 댄스가수들의 가사와 뭐가 다른가?) 뮤지션에게 중요한 자신들만의 스타일도 없다.

    그리고 지성인이라 불리는 대학생들이 추축이된 당시의 음악에서 '시대의 고민이 담긴 노래'가 얼마나 있었는가? 그리고 거기서 창의적이거나 음악적인 완성도(예술성)를 가진 노래들을 과연 얼마나 발견할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높게 평가할 것'과 '기분 좋은 추억'은 분리해서 대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료적인 가치와 비평적인 평가가 다른 것처럼.

    지금 정말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새로운 창작을 하지 않는 뮤지션'에 대한 관점이다.


    지금 정말로 생각해봐야 할 점은 '새로운 창작을 하지 않는 뮤지션'에 대한 관점이다. 특히 매체에서조차 정작 다뤄줘야 할 '현재' 뛰어난 앨범과 싱글을 발표하고 있는 뮤지션들 도외시하고, 단지 '추억꺼리'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공연기획자들의 언술을 재생산하는 무책임한 일이다. 매체는 원래 신인발굴과 작품재평가에 주력해야 하지 않나?

    현재 공중파TV에도 '음악전문' 프로그램이 버젓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물론 그게 음악전문 프로그램인 것만은 맞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창작'과 '연주'를 구별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예술인'과 '기능인'을 구별하지 못하는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과연 얼마나 음악적인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음악들을 좋아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그런데... 언제 '중앙의 매체'에서 의미 있는 다른 음악들을 다뤄 줘 보기나 했나? 80년대에 나온 그 훌륭한 음악들과 90년대 이후의 창작자 중심의 진정한 인디음악들을.

    올해 대중음악공연계의 이슈는 단연 70~8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현재 30~50대 나이의 중년층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진 '7080콘서트'이다. 한국대중음악산업에서 1992년에 서태지가 데뷔한 이래 재편된 10대 팬덤...
    ☆☆☆☆☆ | 7080콘서트, @, 가슴 칼럼, 언더
  4. “A Tout Le Monde, A Tous Mes Amis, Je Vous Aime, Je Dois Partir”

    [The System Has Failed]


    Megadeth [The System Has Failed](2004/Sanctuary)
    1. Blackmail the Universe
    2. Die Dead Enough
    3. Kick the Chair
    4. The Scorpion
    5. Tears in a Vial
    6. I Know Jack
    7. Back in the Day
    8. Something I'm Not
    9. Truth Be Told
    10. Of Mice and Men
    11. Shadow of Deth
    12. My Kingdom Come


    “A Tout Le Monde, A Tous Mes Amis, Je Vous Aime, Je Dois Partir”
    (... To all the world, to all my friends. I love you, I have to leave ...)

    2002년 4월 3일, <A Tout Le Monde>의 가사로 맺어지는 데이브 머스테인(Dave Mustaine)의 메시지가 홈페이지에 올려진 직후 각국의 메틀 관련 웹사이트와 커뮤니티들은 “뒤집어졌고”, 4월 4일부터 데이브 머스테인의 시작(Panic)처럼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팬들이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공식 라이브 앨범 [Rude Awakening]이 발표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전해진 예기치 못한 소식이었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신경장애(방사성 신경수축증) 때문에 떠난다고 말하며 “의사들은 1년 정도 치료하면 될 거라 하지만 완벽하게 회복될 진 모르겠다”는 불안을 내비쳤고-기타리스트가 팔을 쓸 수 없다니!-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서 지친 마음까지 내보였다-카리스마, 데이브 머스테인이!-. 요지인즉 활동 중단이었으나 고별사의 뉘앙스였고 사실상 밴드의 해체로 이어졌으며 팬들도 그렇게 받아들여야했다. <Promise>에서 전에 없이 쓸쓸히, 마치 아무도 듣는 이 없는 양 홀로 노래하던 목소리에서 감지되었던 무엇인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비공식적으론 십 수 차례에까지 이른다는 약물중독치료와 잦은 라인업 교체에도 꺼내지 않았던 말이고 멤버들과 합의하에 발표된 것도 아니었으니 생츄어리(Sanctuary Records)로 레이블을 옮겨야 했던 위상 추락과 부진을 감안했을 때, 어떤 부담을 계약상의 문제를 빗겨가면서 해결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가 하는 추측과 머스테인이 새판 짜기를 시도한다는 예측도 가능했다. 마티 프리드먼(Marty Friedman)의 성향이 느껴진 [Risk]는 재미있는 앨범이긴 했으나 메가데쓰에게도 리스크(risk)가 되었고, <Return to Hanger>라는 트랙 타이틀부터 의욕이 엿보였던 [The World Needs A Hero] 역시 기대한 성과-머스테인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성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를 얻진 못했다. 이미 조짐은 내한공연에서도 위력적이었던 <She-wolf>, <Trust> 등 좋은 곡들이 담긴 [Cryptic Writings]에서, 멀리는 [Youthanasia]부터 있었고, 그간 라이브앨범을 꺼려오는 인상이었음에도 결국 발표한 [Rude Awakening]은 절박한 상황에서 내려 놔야했던 카드로 보였으며, 이어진 해산은 최후의 패를 뽑으려는 비장한 몸짓으로도 짐작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타 등을 판매한다는 뉴스와-연주인이 악기들을 처분하는 건 절박해서거나 이젠 끝일 때뿐이다-, 받아들이기 싫어도 이게 현실이라는 징표처럼 묘비를 꽂은 [Still, Alive... And Well?]의 발매를 지켜보면서 정말 크레바스(crevasse)로 빠져버렸는가 하는 서글픔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해지면서 돌연한 비극은 반전을 예고한다. 그리고 1년 후 2003년 10월부터 비공개로 신보 제작에 착수했으며 당시만 해도 앨범의 성격을 솔로앨범과 메가데쓰 사이에서 결정짓지 못한 듯 했던 머스테인은 해를 넘긴 후 이것이 메가데쓰의 신작이 될 것이라 선언했다. 알 피트렐리(Al Pitrelli)와 지미 드그라소(Jimmy Degrasso)에겐 서운한 일이지만, 또 성사되지 않았으나, 전성기를 함께 한 마티 프리드먼, 닉 멘자(Nick Menza), 데이빗 엘렙슨(David Ellefson)과 접촉했을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캐피톨(Capitol Records)의 메가데쓰 재발매작들과 MD.45의 리믹스, 리마스터링 작업을 병행하고 있던 머스테인은 새로운 기타와 장비(ESP DV8s, LTD DV8Rs)를 계약하는 등 움직임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었다.

    마침내 2004년 봄에 메가데쓰의 부활이 공언되고 초여름엔 신곡 리스트가 공개되었으며 여름엔 닉 멘자의 복귀까지 발표된다-재미있게도 그는 무릎 때문에 데이브에게 쫓겨났었다-. 대신 데이빗 엘렙슨과의 조율에 실패하면서 합류를 거부하는 사태와 송사가 발생했는데, 표면적으론 수익분배 문제이지만 유일하게 20년을 함께 했던 데이빗 엘렙슨으로서는 일방적인 해체라든가 연주력에 대한 머스테인의 묘한 언급, 자신이 참여하지 않은 메가데쓰 레코드의 탄생 등이 겹치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테고 메가데쓰와 자신의 의미에 대한 회의도 있었을 터. 이 변수를 제외한다면 일련의 과정은 마치 짜여진 각본이라도 있는 양 전개되어서 정말로 메가데쓰는 새판을 짰고 극적인 복귀와 신작의 화제화를 통해 재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불행을 반전의 기회로 만든 지략을 말할 정도로 극적이었고, 데이브 머스테인이 메가데쓰는 아니지만 (난폭하게 말한다면) 메가데쓰는 데이브 머스테인이라는 사실까지 확인시켰다. “메가데쓰의 귀환”(주연: 데이브 머스테인, 우정출연: VIC & 크리스 폴란드, 각본·감독: 미상)

    “Angry Again”


    “Angry Again”

    음악은, 인간이든 미술이든 다른 무엇이든, 너무 많이 분석되고 들춰져 있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발언되길 기다리고 있는 그것들은 어떻게 찾아질 수 있으며 어떻게 표현되어야 적절한가?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기에 남겨져 있는가? 그리고 발설되어짐으로 어떤 영향을 줄 것이며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천착하고 답을 내놓았던 자들이 대개 위대한 예술가, 학자로 남았으며 메가데쓰 역시 당시로선 그런 자들이었고 음악적 지평을 확장하는 데에 공헌했다. 어떤 분야에서든 이 가치는 유효하다. 스래쉬 메틀로 좁혀 볼 때에도 선도자로서 추인 받았음은 말할 것 없고 [Killing Is My Business... And Business Is Good!]으로 벗지(Budge),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 모터헤드(Moterhead), 베놈(Venom), 그리고 브리티시 헤비메틀과 펑크, 거기에 재즈 어프로치까지 더하기 시작한 이래 논리적 구조와 메마르고 냉정한 소리, 독창적인 음색을 통해 독보적 스타일을 확립했다. 단음 위주의 치밀한 프레이즈가 전개되는 와중에 표출되는 통제된 난폭함은 차갑게 끓는 피를 느끼게 했으며, 맥스 노먼(Max Norman)과의 작품들로 정상에 올랐었다.

    그런 메가데쓰의 최근 행보는 씬의 흐름과 연계된다. 부글부글 끓던 뉴/얼터너티브 메틀의 거품이 빠지고 언더그라운드에서 꾸준하고 투철하게 음악적 발전을 거듭해온 에너지가 분출되어서이지만, 레이건·부시 행정부와 사회의 우경화를 비판하며 저항했던 북미 스래쉬가 리틀 부시 집권 후 하드코어펑크와 살을 섞어 다시 떠오르는 시의성도 흥미롭고, 또 메이저 권에서 활동하던 헤비 밴드들의 몰락을 상징한 최종 사건이 메가데쓰의 해산이었다면 그 재기는 주도권 교체의 기운이 정점으로 향하는 이 때에 과거의 뮤지션들이 그 대열에 합류하여 모두 떠난 빈자리로 복귀하고 있는 현황의 단면이다. 기실 일부 편협한 이들의 메틀에 대한 몰이해와 적대, 과거 헤비메틀 절대주의자들의 얼터너티브/모던락에 대한 거부감과 팝의 천시는, 기본적으로 취향의 문제이지만, 애호 음악의 평가와 재생산에 대한 박탈감과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한국에서 전문성이 결여된 협소한 시야의 주류 매체에 의해 과대평가 받는 가수들에 대한 공격도 이런 맥락이다. 그래서 이를 마초적 폭력성, 반대로 심약한 수동성 또는 아마추어리즘으로 싸잡거나 배타적 순수주의라고 호도 하는 건 일면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이다. 따지고 보고 [Youthanasia]도 그 와중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빈틈없이 조각조각 채우는 리프과 저음부를 소외시켰던 사운드 셋팅의 메가데쓰에게 중저음역대의 풍성화와 팝적 감각의 가미는 “예정된 진로”였고, <Blood of Heroes>, <Addicted to Chaos>, <Family Tree> 등 수려한 곡들이 있었음에도 양극단에선 평가절하 당했다.

    어찌 되었든 전쟁과 정치, 군산자본의 결탁을 반어법으로 풍자했던 <Peace sells>에서 “만약 새로운 길이 있다면 맨 앞줄에 서리라”던 머스테인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몸을 뚫고 부활하더니 어느새 성장한 VIC과, 조지 W 부시, 클린턴 부부, 딕 체니, 도날드 럼즈펠드, 콘돌라이자 라이스, 테드 케네디, 푸틴, 블레어, 슈뢰더, 아라파트 등을 등장시킨 마이크 런(Mike Learn)의 커버아트는 [Rust In Peace]와 [Peace Sells ... But Who's Buying?]의 합본 겸 확장판의 인상이다. 에어포스 원이 격추되는 가상 뉴스와 <Blackmail the Universe>로 여는 [The System Has Failed]는 여전히 날 선 비판의식을 담고 있으며, 직설에 그치지 않고 <Kick The Chair>와 <The Scorpion>를 거치며 배후와 시스템의 속성을 지시한다. <The Scorpion>(전갈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에선 중동의 유혈사태와 미국에서의 동물실험 규제법안 상정과 마약밀수조직 적발 뉴스를 나란히 묶어 나열하는 예의 시니컬함도 배어 나온다. - 오해는 마시라, 중의적이겠으나 <Countdown to Extinction>은 사냥을 반대하는 곡이었다.

    반면 메틀 전성기 추모가이며 찬가이기도 한 <Back In the Day>와 “당신은 오직 내가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만을 사랑함을 안다”며 어쩌면 자신을 배반한 그 누구(!) 아니면 팬들에게 하고픈 말을 끼워 넣은 것일 수도 있음는 <Something I'm Not>, 그리고 성서 인용과 은유, 비유, 머스테인의 특기인 언어유희를 통하여 정치와 개인의 이야기를 중첩시킨다. 그러면서도 분명한 건 입에 재갈을 물려도(Hook In Mouth)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답게 “미국 정치 비즈니스 시스템과 부시세력의 광기”에 분노하며 단호하게 “No”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계인 사건을 빗대 권력 그 자체이자 도구이며 인간의 상하관계를 결정짓는 정보의 국가 독점과 통제를 직시한 <Hanger 18>-데이빗 드코브니(David Duchovny)와 데이브 머스테인이 닮았다고 나 홀로 주장해온 연유가 여기에 있었던가?-, 뮤직비디오를 통해 총기문제를 다룬 <99 Ways to Die> 등은 단적인 예들이다. 미 보수세력의 대외정책은 물론 농업정책 문제까지 고민했던 가사는 날카롭고 격했다. 우리 사회가 미국보다 건강해서? 한국에 계급의식이 희미한 건 계급 간 격차가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나마 건강한 사회는 문제들이 해결된 (존재하지도 않을)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발언되어지는 사회다. 하기야 그마저 흡수해버리는 게 현대국가시스템이지만.

    “Back In the Day”


    “Back In the Day”

    애리조나 페이즈 포 스튜디오(Phase Four Studio)에서 [Cryptic Writings]와 [Risk]에 엔지니어로 참여했던 제프 발딩(Jeff Balding)과 머스테인이 함께 제작한 [The System Has Failed]에는 오래 전부터 써두었던 150여 곡들 가운데에서 선택된 곡들이 소스가 되었다. 버클리음대 출신으로 프랭크 자파(Frank Zappa), 조니 미첼(Joni Mitchell), 스팅(Sting), 그리고 와타나베 사다오 등과 작업했던 재즈-퓨전 스타일의 연주자이며 1994년에 솔로앨범도 발표한 비니 콜라이유타(Vinnie Colaiuta, 드럼)와 지미 슬로스(Jimmy Lee Sloas, 베이스)가 레코딩에 참여했는데, 반가웠던 것은 메가데쓰를 떠난 후 일시 베이시스트로도 활동했고 인상적인 [Return to Metalopolis]도 발표하며 기타를 놓지 않았던 크리스 폴란드(Chris Poland)가 구원(舊怨)을 잊고 세션을 해줬다는 점. 힘이 되었을 것이고, 당초 [Rust In Peace]의 재현을 의중에 두었던 머스테인이 “모두 내가 제2의 [Rust In Peace]를 만들길 바랬지만 이번 앨범은 그로부터의 자연스러운 진화”라고 말하게 된 데에는 그의 조언도 한몫 했을 것이다.

    사실 복잡하고 카랑카랑한 리프들이 모자이크처럼 정교하게 짜 맞춰진 [Rust In Peace]는 특별할 수밖에 없다. <Lucretia>의 경이적인 프레이즈, <Hangar 18> 후반부의 차갑고 정확한 악곡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연주 면에서도 수록곡들을 연주해보면 지판 위에서 현란하게 춤추는 손가락을 보는 것에서조차 희열을 느낄 정도였으며 <Holy Wars... The Punishment Due>와 <Tornado of Soul>에서 더블 노트를 포함한 베이스는 물론 모든 파트가 메틀 형식의 클래식이 될만했고, 메가데쓰가 명실상부한 위상을 부여받도록 했다. 이어 [Countdown To Extinction]에선 평이해진 연주와 구성으로 작법을 전환하면서도 그로테스크 무드와 절묘한 트랙 배치를 통해 싱글들의 개성과 앨범의 통일성을 완벽하게 조성하여 상업적인 성공까지 이루며 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성격은 91년에 발표된 <Go To Hell>이나 결과적으로 슈워제네거의 정치진출 캠페인이 된 “Last Action Hero”의 <Angry Again>에서도 발견된다. 물론 <Anarchy in the U.K.>나 훌륭한 트리뷰트 [Nativity In Black - A Tribute To Black Sabbath]의 <Paranoid>에서처럼 직선적인 단순미의 맛도 아는 메가데쓰였고.

    그렇기에 근래의 시도들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된 시점에서 과거를 참고하는 건 당연한 수순. 하지만 클리셰로만 채울 순 없다는 난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고 머스테인도 이를 의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딜레마였다. 크리스 폴란드의 참여로 [Peace Sells ... But Who's Buying?]의 분위기를 예상할 수도 있으나 어차피 송라이터는 머스테인이고 실험적인 아트 스래쉬 작품이며 살벌한 <Wake Up Dead>와 형식미의 결정인 <Good Mourning/Black Friday>가 담긴 [Peace Sells ... But Who's Buying?]에선 이미 멀리 와있는 지금이다. 그러면? <Blackmail the Universe>의 스피드 위에 실린 보컬 샘플링과 현의 장력마저 느껴지는 팽팽한 긴장감은 [Countdown To Extinction], 그리고 후반부의 정교한 구조는 [Rust In Peace]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전반적으로, 유치하지만 지난 앨범들과 비교해보자면, 외피의 감촉은 [Countdown To Extinction]이되 골격은 [Rust In Peace]을, 거친 질감과 혼돈은 [So Far, So Good… So What?], 거기에 후반기에 체득한 센스가 가세한 양상이라 할 수도 있다.

    먼저 얇지 않은 플레이와 사운드, 그리고 변칙적인 다단구조 안에서 조응하는 기타솔로와 리프 파트에 무게를 둔다. <Kick The Chair>(이 말은 교수(絞首)장면을 떠올려보면 된다)는 복고적인 건조한 스래쉬로 전거한 특징들이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중반 이후 주거니받거니 하는 솔로의 향연은 실로 오랜만인데, 사실 메가데쓰가 동류의 밴드들과 차별되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정교한 기타 라인과 솔로였다. 곡을 치장하거나 공백을 채우는 용도가 아니라 핵심으로. 아직도 크리스 폴랜드와 제프 스캇 영(Jeff Scott Young), 그리고 머스테인이 솔로를 분담했던 앨범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는데 [The System Has Failed]에서 그 구도가 다시 살아나 있다. 또, 다양한 스케일의 솔로도 재미있지만, <Something I'm Not> 등에는 메가데쓰에게선 듣기 힘들었던 와와(wah wah)가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으며, 솔로 뿐 아니라 중반의 급격한 반전 이후의 <Back In the Day>에선 흡사 멜로딕데쓰나 멜로딕블랙같은 단순하지면 자글대는 리프가 등장하여 이전에 보지 못했던 면모를 하나 더 보여준다. 이 곡엔 <Liar>, <Skin O' My Teeth>, <High Speed Dirt>의 버스(verse) 파트에 중복되어 등장해왔던 익숙한 라인이 다시 사용되고 있어 흥미롭다.

    그러면서 꺼칠함이 상쇄되는 것은 <Die Dead Enough>에서 보이듯 스트링과 코러스, 보컬 멜로디라인이 유기적으로 관계하기 때문이며, <The Scorpion>의 독특한 리프와 스트링 스타카토, 보컬샘플과 코러스도 절묘한 무드를 함께 조성한다. 이 <The Scorpion>과 <Tears In a Vial>, 그리고 <Truth Be Told>처럼 날카로운 곡들에서도 내러티브의 비중이 크다는 게 다른 하나의 특징이며 도처에 숨어있는 언어유희 덕에 듣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정치와 사회 시스템의 속성을 식당 메뉴와 부동산 거래처럼 비꼬기도 하고, 감동적인 기타와 위압적인 리듬을 교차시키며 스피커에서 물감이 분사되는 듯한 공간적 색채감을 만드는 <Shadow of Deth>에선 시편 구절을 B급 호러영화에 어울릴 법한 분위기로 비틀어놓기도 한다. 그러면서 유니크한 멜로디 프레이즈가 등장하는 <Of Mice and Men>엔 성찰을 담았고, 뮤지션으로서의 회고와 서운함이 겹쳐진 <Back In the Day>가 격렬한 리프에도 불구하고 절절하게 들린다면 “당신은 어디에 있었던가 … 무대 앞에 있던, 또는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당신들은 어디에 있는가”, “만약 그대가 거기에 없었다면 어떻든 상관없을 테지. 이해할 수 없을 테니…”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 삶의 방식이다, 자유롭게 다시 태어났던 삶의 방식”이라 말함을 상기해보면 될 일이다.

    이렇게 분절적 리프와 치열한 기타 솔로, 그리고 사이를 비집고 노래하는 보컬이 융화되어 있다. 동시대적으로 개조된 80년의 낯익은 리프들이 뿌리를 드러내는 <I Know Jack>과 <Tears In a Vial>은 변환되어 가는 리프와 무드가 구닥다리이면서도 청량감을 자아낸다. 감상적 분위기로 시작하지만 상투성을 거부하는 변칙적 전개를 노골적으로 고집하는 <Truth Be Told>는 예전의 <Foreclosure of a Dream>이나 <Ashes In Your Mouth>를 떠올리게 하는데,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전개를 철저히 거부함에도 구조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성적으로 부조리한 세계를 표현해온 방식”이다. 기교적이면서도 기대 이상으로 파워풀하고 더블베이스까지 난무하는 비니 콜라이유타의 드러밍이 더해지면서 곡들은 활동적인 동선을 그리게 된다. 명징한 라인과 훅으로 시각화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의 풍경이 그려지는 [The System Has Failed]는 트랙들의 상호연계성이 높고 함께 엮어내는 광경 또한 재미있다. 그래, 정말이지 재미있고 치열하다. 자신의 상처엔 아랑곳 않고 여전히, 기꺼이 세상을 할퀴어댄다.

    “In My(His) Darkest Hour, 그리고 Promise”


    “In My(His) Darkest Hour, 그리고 Promise”

    처음 가본 골목길에서도 누군가의 추억과 아픔을 발견하고 또 다른 나에겐 소중한 풍경일 것임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시간이 22년, 또는 2년이 흘렀다. 그리고 데이브 머스테인은 그의 말대로 “공격적이고 정치적이며 냉소적인 가사와 리프”를 통해 “차갑게 끓는 피”를 들이민다. 근작들의 맥빠짐을 극복하면서 과거의 재현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는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동시적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물론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메가데쓰에게서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유니크함과 자신에게나 세상에게나 패배하지 않으려는 치열함이 묻어난다. 어떻게 다시? 이미 오래 전 어떤 곡에 답이 있지 않을까. 셔플과 싱커페이션을 이용한 장엄함에 감동적인 가사가 동반된 <In My Darkest Hour>의 페이소스는 절실함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고난과 고독, 원망과 분노, 그리고 열정이 지펴질 때 나오는 음악은 따로 있고, 곡은 이미 쓰여져 있었을지언정 [The System Has Failed]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첨언) 메가데쓰는 메틀이나 그 중 일부인 스래쉬 자체가 아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메틀 중 하나이며, 역시 다양한 스래쉬 방법론 중에서도 몇 가지를 대변할 뿐이고, 애석하지만 이미 선도자의 휘장도 양도했다.

    98년 내한하여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DJ의 제스로 툴(Jethro Tull)의 <Too Old to Rock N' Roll, Too Young To Die>에 대해 어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머스테인은 이런 답을 했다. “이안 앤더슨은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늙었다 … 그는 기타보다 피리가 더 어울린다”고. 이안 앤더슨도 좋아하기에 섭섭하기도 했으나 그는 지금도 같은 답을 할 자격이 충분한 것 같다. 하긴 머스테인은 기타도 어울리는 데다 여전히 젊기도 하고….

    “내 팔은 의사의 계획에 따라 치료 중이고 종종 기타도 연주해왔습니다. 다시 연주를 하게 되고 작곡을 하는 일에 흥분되어 있습니다. 믿어보세요, 조만간 내 연주를 듣게 될 테니…. 아울러 밴드를 지지해주고 내 처지와 내가 내려야했던 결정을 이해해줬던, 그리고 내가 힘들 때 용기를 주었던, 또 메가데쓰나 데이브 머스테인이 최후를 맞은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남겨두었던 이들 모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2002년 9월, Dave Mustaine)

    2년 후, 이렇게, 그는 약속을 지켰다.


    [Peace Sells... But Who's Buying?]
    Capitol, November 1986

    Produced by Dave Mustaine and Randy Burns

    Dave Mustaine - vocals, guitars
    David Ellefson - bass, backup vocals
    Chris Poland - guitars
    Gar Samuelson - drums

    Total running time: 36:12
    Cover illustration: Edward J. Repka
    Cover concept: Dave Mustaine and Andy Somers

    1. Wake Up Dead
    2. The Conjuring
    3. Peace Sells
    4. Devil's Island
    5. Good Mourning/Black Friday
    6. Bad Omen
    7. I Ain't Superstitious
    8. My Last Words


    [Rust in Peace]
    Capitol, October 2, 1990

    Produced by Mike Clink and Dave Mustaine

    Dave Mustaine - vocals, guitars
    David Ellefson - bass, backup vocals
    Marty Friedman - lead guitars
    Nick Menza - drums, backup vocals

    Total running time: 40:44
    Cover illustration: Edward J. Repka
    Cover concept: Dave Mustaine

    1. Holy Wars... The Punishment Due
    2. Hangar 18
    3. Take No Prisoners
    4. Five Magics
    5. Poison Was the Cure
    6. Lucretia
    7. Tornado of Souls
    8. Dawn Patrol
    9. Rust in Peace... Polaris

    “A Tout Le Monde, A Tous Mes Amis, Je Vous Aime, Je Dois Partir” [The System Has Failed] Megadeth [The System Has Failed](2004/Sanctuary) 1. Blackmail the Universe 2. Die Dead Enough...
    ☆☆☆☆☆ | m, megadeth, 가슴 초점, 언더
  5. 안치환


    "4집(1995년)에 <내가 만일>이란 노래가 있어요. 수록곡 목록에 없었는데 방송용 노래가 하나도 없다고 해서 급하게 만들어 넣은 거죠. 그런데 그게 내 최대 히트곡이 됐어요. 그 후 5집, 6집에도 그 비슷한, 대중적인 노래들을 계속 끼워 넣었어요. 그러나 이제 그런 타협은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안치환, 이번 8집 [외침!!] 부클릿에 써놓은 '이제 타협의 시대는 끝났습니다'에 대한 변, 국민일보)


    안치환은 일찍이 음반을 팔기 위해서 '대중적인 노래'(뮤지션 스스로가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노래. 그래서 라디오에서 많은 에어플레이를 기대하는 노래)를 새 앨범에 끼워 넣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뮤지션이다. 상업자본으로 음반제작해서 상업홍보루트를 이용해서 홍보하고 상업유통시장에서 음반을 팔아야하니 어느 누구인들 이를 고민하지 않겠는가? 즉, 혼자 홈레코딩시스템으로 녹음해서 자기 돈으로 프레싱해서 스스로 유통시키지 않는 이상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뮤지션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다. 이런 상업제작시스템에서는 오히려 제작자가 돈을 투자하게끔 만들고 나서는 나 몰라라 하는 태도가 사기행각에 가깝고,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지탄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뮤지션 입장에서도 재생산(차기 음반제작)을 계속하려면 상업성에 대한 고민은 제작자와의 도의적인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안치환의 고민 수준은 오히려 소박하다고 할만하다.

    하지만 안치환은 정태춘과 함께 흔히 말하는 '그러면 안 되는 뮤지션'에 속하기 때문에 위의 문제는 그들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정태춘과 안치환의 팬들이 그들에게 바라는 '타협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는 비록 그것이 상식선을 벗어난다고 해도 팬들 입장에서는 희망사항을 넘어서서 정당할 수가 있다. 사람들은 이 변절과 타협의 시대에 누군가는 십자가를 걸머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기를 바라는데, 대중음악계의 뮤지션들 중에서 그런 요구에 부응할 사람으로 정태춘과 안치환 정도를 꼽아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그간의 행적을 통해서 그런 모습으로 팬들을 대해왔고, 그런 모습에서 뮤지션으로서의 사회적인 역할의 정형과 태도를 일반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배 뮤지션들이 알아차리게끔 했다. (물론 안치환의 최근 행적은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는 점이 있었다. 좋게 말해서 '3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갖는, 다소 가라앉은 열기가 전해지는 7집 [Good Luck!] 만큼은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얻은 자그마한 상업적인 성공과 그들이 받아온 사회적인 존경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스스로 내보인 태도와 그에 기인하는 음악적인 업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도 간과해서 안 된다는 점도 있다. 그러니 지금 와서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삶이 힘들다고 해서 자기합리화의 방편으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은 적어도 그들에게만큼은 바라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용납해서도 안 되고, 만약 그런다면 더욱 심한 비판을 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우스개 소리로 하면 영화 '넘버3'에 나오는 송강호의 대사처럼 "그건 배신이야, 배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타협하지 않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고, 물론 본인들은 힘들겠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존경받는 소수에 들어가니 어찌보면 '축복'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런 모든 논리적인 이유를 떠나서, 팬의 한사람으로서 바라건데 제발 타협하지 않고 일관되게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만약 한대수, 정태춘, 안치환 이런 부류의 뮤지션들이 없다면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는 얼마나 비루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지 상상이나 가는가?

    안치환은 "나는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를 하더라도 사람들은 '저 노래엔 분명 의미가 있을 꺼야'라고 짐작을 한다. 단순히 사랑 노래를 해도 '저 노래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을 꺼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거기서 자유로워지기는 한다."라고 얘기했듯이 그런 숙명은 스스로 알고 있다. 그는 어느 정도 거기서 자유로워졌을 지 모르겠지만, 여태까지 안치환을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솔직히 나는 그가 그 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7집 - Good Luck (2001/Studio Azaled)


    그리고 안치환은 [Good Luck!](2001/Studio Azaled)을 발표하기 이전에 말한 바에 의하면 스스로 해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진보성과 대중성의 적절한 조화를 4집부터 많이 시도를 했는데, 5집 때는 잘 모르겠고, 6집 때는 그런 것에 신물이 났다. 개인적인 딜레마는 음반을 만들고 나서, '방송에 맞는 노래는 없나? 상업적인 노래는 없나?'라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다. 6집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정리했는데, '아,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였다. 좋은 방법은 진보적이면서 대중적인 노래를, 대중적이면서도 건강한 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고민은 끝난다."라고 얘기했고, 그러면서 "(상업적인 고려에서) 끼워 넣기 식의 음반은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런 시대도 지났다. 왜, 내 노래가 어때서?"(안치환, 2000년 6.5집 [Remember] 인터뷰, 가슴)라고 당당하게 얘기했었다. 마지막에 말한 "왜, 내 노래가 어때서?"라는 '외침!!(Clamour)'은 정말 자존심이 강한 한 뮤지션의 일갈(?)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런 그가 1년 뒤에 [Good Luck!]에서 보여준 음악과 행한 말들은 그전의 인터뷰를 떠올린다면 다소/심히 실망스럽고 부적절했다. 앨범 전체가 '슬럼프'에 빠진 느낌은 둘째치고라도 <위하여!!>(안치환 글/곡) 같은 곡은 비록 그가 "타이틀곡 <위하여>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 있는 삶을 고민하는 동년배 친구들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술 한잔 권하는 느낌으로 만들었습니다."(문화일보)라고 의미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다음해 나온 봄여름가을겨울의 <Bravo, My Life>처럼 '뮤지션의 퇴락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0대 뮤지션이-비록 그들이 40살을 목전에 둔 나이이기는 하지만- 'Bravo, My Life'이라니? 이건 한국에서 한대수 정도의 연배와 작품량을 가진 뮤지션이나 발표할 수 있는 노래가 아닌가? 봄여름가을겨울마저 그런 노래를 부르면 아직도 앨범을 계속 만들고 싶어하는 한대수는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일단 창작에서의 '긴장감'이 사라져버린 <위하여!!>는 예전 안치환의 노래가 아니었고, '한국에서 잘나가다가 30대에 조로증에 걸린 또 한 명의 뮤지션'을 보는 것 같아서 우려의 심정이었고, 더욱이 그걸 '타이틀곡'으로 정했다는 점에 실망했다. 이건 1년 전에 그 스스로가 말한 것을 뒤집는 것이었고, 여전히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노래를 끼워 넣는 행태를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이런 점들을 묻는 개인적인 질문에 "내 나이 30대 후반이다. 이해해달라"는 식의 답변은 실망을 넘어서서 혼란스럽게 만들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내가 아는 안치환이라면 그런 질문을 받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과(?)가 있는 그이기에 이번 8집의 부클릿에 "형! 이상하지… 왜 난 나이가 들수록 노래 색깔이 강해지지? --- 그건 다행스러운 일야. 아직도 너의 시선이 그 곳에 머문다는 것은…"(어느 음악선배와의 대화)라는 단상을 적어 넣은 것은 사실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만약 이번 8집 [외침!!! (Clamour)](2004/진달래)이 그에게 있어서나 우리에게 있어서나 오랜 동안 기억될만한 당대의 앨범이 아니었다면 그 문구는 그저 해프닝으로 조롱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Good Luck!]에 대해서 "2001년식 권주가라는 <위하여>는 '넥타이를 풀어라 친구야… 잔을 들어라 위하여!'라며 동지애로 뭉쳤던 친구들에게 힘을 돋우는 가사가 돋보인다. 이외에도 작년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을 노래로 옮긴 <동행>, 통일노래 <철망 앞에서> 등이 안치환이 여전히 기타를 든 전사라는 것을 드러내는 노래."(문화일보)라는 평가는 있었지만, 사실 김민기의 곡을 다시 부른 <철망 앞에서>마저 없었더라면 이 앨범은 듣고자 하는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 밋밋한 앨범이 될 뻔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중심을 향해 흘러간다"(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마시고 떠들고 취해서 껄껄 웃고 울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 나를 목마르게 해"(슬럼프), "내가 노랠 부르며 외로워지는 것은 노래에 모든 삶을 다하지 못하고..."(13년만의 고백)라는 노래에서 노래부르는 이의 진심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이지 않나?

    6.5집 - Remember (2000/신나라)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하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작품을 들고 돌아온 안치환을 환영하고 "이제 타협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라는 그의 말도 존중하지만 "왜 진작 '타협의 시대'를 끝내지 않았나요?"라고 되묻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입맛과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 사이에서 타협하지 않은 것, 그것이 이번 음반이 갖는 가장 큰 의미다."(미디어오늘)와 같은 평가는 일면 타당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안치환이라면 지금에야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을 겸연쩍어 해야한다.

    한대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에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만약 8집이 7집처럼 나와서 "이제 타협의 시대는 끝났습니다"라는 말이 요원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8집 리뷰 서두에 썼을 법한 얘기이다. "음악(음반제작) 자체가 워낙 과정이 복잡하고 워낙 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또 많은 사람들, 이번에도 뮤지션과 스탭 다 합쳐 스물 다섯 명 될 것 같고, 어떤 경우에는 오케스트라 쓰면 백 명도 넘기도 한다. 그런 복잡한 과정의 일이 수행되는 음악을 가지고 '농담'을 하고 싶지가 않다. 그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노력했는데,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을 음악적으로 말하고 싶다. 그래서 할 말이 없으면 음악을 안 해야 된다고 항상 생각한다."(한대수, 2000년 8집 [Eternal Sorrow] 인터뷰, 가슴)

    8집 - 외침!! (Clamour) (2004/진달래)


    "이후 곡 작업을 하면서 어떤 노래를 써야 좋을지 모를 때 많은 시집들을 뒤척였지만 김남주의 시집이 가장 정확하게 '무엇을 노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다. 그 시대에도 뚜렷하게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지를 시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시들을 놓치지 않고 계속 노래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이 세상을 뜨고서 보니 9곡 정도의 노래가 만들어져 있었다."(안치환, 2000년 6.5집 [Remember] 인터뷰, 가슴)


    이번 8집 [외침!!](2004/진달래)에서의 핵심은 그가 "무엇을 노래해야 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안다는 점이고, 앞서 한대수의 얘기처럼 "하고 싶은 말을 음악적으로 말한다"라는 점이다. 어떤 뮤지션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알고' 그것을 노래로 제대로 '표현'한다면, 이미 최상의 앨범이 나와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기가 정말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지도 모르면서 준비기간 내내 하루 온종일 음악 만들었다는 것을 안 알아준다고, 그런 음반은 적어도 10번은 듣고 평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탄하는 뮤지션이 있다면 그러기 전에 안치환처럼 "무엇을 노래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으면 좋겠다.

    작곡과 작사는 별개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리고 나 또한 새로운 노래를 들을 때 먼저 멜로디나 스타일, 연주에 주목하게 되지만 이 부분들이 훌륭한 노래들은 대개가 잘 썼든 못 썼든 '의미' 있는 가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잘 알아듣지 못하는 해외음악 같은 경우는 나중에 가사를 '읽어'보았을 때 정말 예상치 못한 의미와 수준미달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가사가 멜로디, 스타일, 연주와 동시에 파악되는 국내 음악은 결국 종합적으로 판단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특히나 진정성을 따지게 되는 안치환 같은 부류의 뮤지션들에게는 음악에서의 모든 파트들이 조밀조밀하게 요구되어진다. 그럼 점에서 안치환은 참 음악만들기 어려운 뮤지션이다.


    안치환의 이번 앨범에서 새로워졌고, 그게 다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점들은 세 가지이다.

    먼저 후배필자와 이구동성으로 얘기한 '이 음반에서의 예술'인 <물 속 반딧불이 정원>(정지원 시/안치환 곡)을 만든 정지원/안치환 체제이다. 물론 정지원은 이전에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같은 곡들을 안치환에게 제공했지만 김남주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자유>나 <희망이 있다>와 같은 곡들에 비한다면 역부족이었다. 아마 서로간의 비교평가에서 밀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지 모르겠다. 그런데 김남주 사후 안치환에게 적절한 파트너가 부재했던 점을 이제 정지원이 대신할 수 있지 않나라는 기대감이 든다. 이는 <물 속 반딧불이 정원>이나 <부메랑>으로 정지원이 안치환에게 새로운 창작의욕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들을 수 있고, 그게 잘 맞았다는 점은 안치환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치환은 <물 속 반딧불이 정원>에 대해서 "정지원님이 몸이 아파가면서 두 달 동안 쓴 시랍니다. 글이 처음엔 어려웠지만 곱씹을수록 너무 아름답고 슬픈 느낌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사랑의 글입니다. 난 그 글에 매료되었습니다. 시인이 부럽습니다."라는 얘기를 했다.

    "당신이 조금만 조금만 더 무심했더라면 짓이겨진 날개를 들키지 않았을 것을/
    서럽게 파닥이는 여린 빛들이 모두 사라지면 당신 얼굴을 아주 잊게 될까봐/
    온 몸에 불을 달고 검푸른 물풀새를 물풀새를 떠돌며 물 속 반딧불이 정원에/
    반딧불이 정원에 반딧불이 정원에 물 속 반딧불이 정원에 살았습니다"
    (<물 속 반딧불이 정원> 3절)


    두 번째는 안치환 자신도 순수 창작(작사/작곡을 혼자 한)에 있어 4집(1995/킹레코드)에서 보여준 '기운'을 어느 정도는 회복했다는 점이다. 그의 순수 창작곡들의 상태는 사실 4집 이후로는 어느 정도 내리막길이었다. 그는 그간 4집에 수록된 <수풀을 헤치며>, <고향집에서>, <평행선>, <너를 사랑한 이유 B>를 넘어서는 곡을 만들지 못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음악적인 퀄리티 문제를 떠나서 '에너지 부족'이었고, 그 다음에는 음악감독(편곡)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4집 당시 안치환은 창작에서 정점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조동익이라는 당대의 음악감독이 '90년대의 걸작'을 만드는데 일조 한 것은 명백했다. (음악감독 문제는 <너를 사랑한 이유 A>와 <너를 사랑한 이유 B>를 들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같은 곡도 편곡자의 역량에 따라서 다르게/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지.) 5집 [Desire](1997/킹레코드)는 4집을 만들던 끝에 만든 앨범이라서 4집의 기운이 어느 정도 유지된 작품이었고, 그후 김남주의 작품까지 종을 친 7집 [Good Luck]이 창작에 있어서 최악의 결과를 보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다가 이번 음반에 와서 창작이나 프로듀싱(편곡) 둘 다 살아난 감이 있다. <개새끼들>, <STOP THE WAR>,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같은 노래들이 확실히 전 작품과는 달라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새끼들>은 현재 안치환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고, 정말로 통쾌했다. 그리고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에 담긴 시니컬함은 왜 이런 노래를 여태까지 부른 사람이 없을까라고 생각될 정도로 압권이고, 아마 당분간 이 노래를 뛰어넘는 '예술적인 반미가'는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여겨진다.

    "절대의 가치는 없어 절대의 신념도 없어/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영원한 사랑은 없어 영원한 증오도 없어/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넌 개새끼야 난 개새끼야/
    니 밥그릇 앞에 내 밥그릇 앞에~"
    (<개새끼들> 2절)

    "맹목적 환상을 쫓아서 미 대사관 안에 들어 간 사람들/
    양키 옆에 통역하는 한국 여자들 그 여자들 덕에 또 한 번 화가 날거요/
    난 그 여자가 싫소 난 그 사람이 싫소/
    미국인보다 더 미국인다운 난 그들이 싫소 난 증오하오/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그 담벼락 따라 줄서는 사람들/
    비오나 눈이 오나 바람 부나 변함없이 줄서는 사람들"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2절)

    안치환과 자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번 음반에서 밴드 '안치환과 자유'가 5집 [Desire]부터 활동한 이후 멤버가 바뀌었다는 점이 다르다. 큰 변동은 없었지만 지난 [안치환과 자유 Live Best '01 ~ '02](2002/Studio Azaled)까지 활동하던 정용민(기타) 대신에 임선호(기타, 만돌린)가 들어왔는데, 이 기타리스트가 이번 앨범에 잘 맞는 멤버였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서였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세션에서 이전에 항상 가지고 있었던 다소 경직된 느낌이 없어졌다. 이는 안치환의 프로듀싱과 더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임선호의 역할도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안치환 앨범에서 5집 이후 항상 아쉬웠던 프로듀싱과 세션의 문제는 그가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계속 있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제 그 부분이 해소된 느낌은 그를 위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4집 - 안치환 4 (1995/킹레코드)


    안치환 [외침!!](2004/진달래)
    01. 외침 !! (안치환 곡)
    02. 산맥과 파도 (도종환 시/ 안치환 곡)
    03. 해방구 (안치환 글/ 곡)
    04.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최두석 시/ 안치환 곡)
    05. 물 속 반딧불이 정원 (정지원 시/ 안치환 곡)
    06. 개새끼들 (안치환 글/ 안치환 곡)
    07. 부메랑 (정지원 시/ 안치환 곡)
    08. 피 묻은 운동화 (정지원 시/ 안치환 곡)
    09. America (안치환 글/ 곡)
    10. STOP THE WAR (안치환 글/ 곡)
    11. 총알받이 (안치환 글/ 곡)
    12. 오늘도 미국 대사관 앞엔 (안치환 글/ 곡)
    13. 꼭두각시 (안치환 글/ 곡)
    14. 내버려둬! (안치환 글/ 곡)
    15. 연탄 한 장 (안도현 시/ 강종철 곡)

    Arrangement 안치환과 자유
    Vocals, Acoustic Guitar, Harmonica 안치환
    Drums, Percussion 박달준
    Bass Guitar 서민석
    Piano, Keyboards 지신엽
    Electric Guitar, Mandolin 임선호


    디스코그라피
    1집 - 첫번째 노래 모음 (1990/서라벌레코드)
    2집 - 노래 한마당 (1991/서라벌레코드)
    3집 - Confession (1993/킹레코드)
    안치환 1 + 2 (1994/킹레코드)
    4집 - 안치환 4 (1995/킹레코드)
    Nostalgia (1997/킹레코드)
    5집 - Desire (1997/킹레코드)
    6집 - I Still Believe (1999/신나라)
    6.5집 - Remember (2000/신나라)
    7집 - Good Luck (2001/Studio Azaled)
    안치환과 자유 Live Best '01 ~ '02 (2002/Studio Azaled)
    8집 - 외침!! (Clamour) (2004/진달래)

    안치환 "4집(1995년)에 &lt;내가 만일&gt;이란 노래가 있어요. 수록곡 목록에 없었는데 방송용 노래가 하나도 없다고 해서 급하게 만들어 넣은 거죠. 그런데 그게 내 최대 히트곡이 됐어요. 그 후 5집, 6집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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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목소리에서 나오는 애티튜드도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할 때는 부드럽게 노래하고, 분노가 있을 때엔 앵거(anger) 그 자체로 나타낸다."

    [Eternal Sorrow] 슬리브 사진


    "목소리에서 나오는 애티튜드도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할 때는 부드럽게 노래하고, 분노가 있을 때엔 앵거(anger) 그 자체로 나타낸다."


    박준흠 : 한대수 씨는 데뷔앨범부터 이번 8집 [Eternal Sorrow]까지 항상 당대 가장 도전적인 음반들을 발표한 '진정한 뮤지션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음악인생은 어떠했는지?

    한대수 : 먼저 그 답을 하기 전에, 박준흠씨와 이렇게 대화를 하게 되어서 영광으로 생각하고, 여태까지 32년 동안 음악생활 도중에 우리 나라에 그래도 박준흠씨처럼 음악을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기쁘다. 보통 장시간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다.

    나는 음악을 할 때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이렇다. 음악(음반제작) 자체가 워낙 과정이 복잡하고 워낙 자본이 많이 들어가고 또 많은 사람들, 이번에도 뮤지션과 스탭 다 합쳐 스물 다섯 명 될 것 같고, 어떤 경우에는 오케스트라 쓰면 백 명도 넘기도 한다. 그런 복잡한 과정의 일이 수행되는 음악을 가지고 '농담'을 하고 싶지가 않다. 그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고 노력했는데,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을 음악적으로 말하고 싶다. 그래서 할 말이 없으면 음악을 안 해야 된다고 항상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작곡이 무어냐고 묻는데, 작곡을 할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요소와 조건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 무슨 작곡이 나오겠는가. 음(音)적으로 아름다운 것은 여태까지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더 중요하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말을 음적으로 표현했고 이번 8집 앨범도 그렇게 했다. 8집의 메인 포인트, 중점적 주제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소수는 혜택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희생당하고 소외되어 편집증적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박준흠 : 8집의 프롤로그에 보면 더 이상 창작은 힘들다고 고백을 했고, 나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여태까지 하고 싶었던 창작은 다했기 때문에 할 게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적 영감이 이제 소진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

    한대수 : 좋은 질문인데 둘 다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보통의 경우 자기 독집 앨범 두어 개만 해도 삼십 곡이 되는 거니까 사실 많이 한 거다. 내가 8집까지 냈으니 70~80곡이 되는데 싱어송라이터로서는 많이 한 거다. 가수로서는 평균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음악적으로 많이 한 셈이다. 또 영감이 줄어든다는 것도 틀림없다. 나이가 드니까 즉흥적으로 느끼는 영감이 차츰 감소한다. 그래서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내 생각으로는 이번이 '음악적으로는' 마지막 앨범이 될 것 같았다. 물론 프랭크 시내트라 같이 목소리 하나로 죽을 때까지 할 수는 있겠지만 여태까지 나는 '가수'라는 개념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고, 가수라기보다는 보고 느끼는 것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싱어송라이터'로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음악과 관계되는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로듀싱을 한다든지 어떤 뜻 있는 음악인을 만나 나의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 합작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영화음악이나 뮤지컬이 있어서 누가 합작을 제의한다면 같이 한다든지 등등, 이런 것들은 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나 혼자 독불장군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개념으로는 이번이 마지막인 것 같다.

    박준흠 : 예술적인 영감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떻게 얻는가? 그리고 예술적 영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어떤 영감을 받을 대상 자체가 이제 사라진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한대수 : 나의 영감은 항상 일상생활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탔는데 여학생들이 남자 얘기를 하는 것이 들릴 때 그것이 음악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줌마가 커피숍에서 이번에 부도가 났는데 그걸 막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노력하여 부자 되자, 그런 영감도 오고.. 그렇게 일상생활에서 온다. 제일 큰 것은 나 자신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며 그 다음 많은 영감을 얻는 것은 뉴스다. 뉴스를 볼 때 지금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또 경제권이 우리의 모든 삶을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움직이니까 그에 대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이 다 주제가 되고 이번 앨범에서 여러 가지 주제들을 많이 다룬 것 같다. 제일 관심사는 '제도'라는 것, 즉 제도는 우리 인간이 만든 것이고 많은 인간들이 혜택을 받기 위해 만든 것인데 결국 이 제도에 대다수가 희생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소수가 자본주의 제도에 의해 혜택을 받고 있고 대다수는 전세계적으로 고민하고 고생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는 그런 느낌을 음악에 담았다.

    박준흠 : 지난 인터뷰를 보면 "음악의 사회적인 발언은 가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태도'로서 얘기해야 된다"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은 한대수의 음악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어떤 태도로 드러나는가?

    한대수 : 음악은 일단 음악적인 요소를 갖춰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회적인 불만이라든지 사회적인 어긋남이라든지 인간관계의 어긋남을 음악적으로 말할 때 (그것을) 나는 꼭 꼬집지는 않는다. 왜냐면 너무 세밀하게 들어가면 지루해지니까 전반적인 분위기만 던진다. <멸망의 밤>에서 "이 아름다운 지구가 쓰레기로 변했다"라고 했는데 구태여 어느 부분이 공해다, 라고 하지 않고 그 말만 던져도 다들 이해하니까. 그리고 목소리에서 나오는 애티튜드도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할 때는 부드럽게 노래하고, 분노가 있을 때엔 앵거(anger) 그 자체로 나타낸다. 나는 주로 그런 형식으로 얘기한다.

    박준흠 : 앞서 예술적인 영감에 대해 좀 더 얘기를 한다면, 선생은 아름다운 여자에 대한 걸 많이 얘기했었다. 괴테도 영감을 얻기 위해서 어린 소녀와 사귀었다지만 예술가가 아닌 입장에서 봤을 때엔 그런 부분은 잘 이해하기 힘들다. 예술가와 아름다운 여자, 또는 어린 소녀, 이런 부분에 대해 말해주겠는가?

    한대수 : 그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로리타'라는 영화(※ Lolita, 1997, 애드리안 라인 감독)가 있다.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 1899 ~ 1977. 1955년에 소설 '로리타' 발표)의 작품이고 제일 먼저 스탠리 큐브릭(※ 1961년에 영화로 발표)이 만들었는데, 그 로리타 신드롬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틀림없이 남자의 창작세계를 움직이는 부분이 사랑이고, 사랑 중에서도 모든 자기 자신을 잃어 자아가 없을 경우에 기막힌 창작품이 나오더라. 나도 거기에 상당히 동감한다. 젊은 여인과 남자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항상 있어왔고, 역사적으로 문제도 되었고, 또 상당한 창작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나도 이해한다. 난 음적인 한계점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을 마지막 앨범이라고 한 것도 한계에 왔다는 것을 느껴서다. 우리가 서양의 위대한 작곡가로 생각하는 폴 매카트니, 폴 사이먼, 조니 미첼, 닐 영과 같은 사람들도, 이젠 작품도 별로 없지만, 한 번씩 나올 때는 거의 과거에 쓴 것들의 되풀이 아닌가? 그 분들 역시 어떤 딜레마에 빠졌고 한계점에 왔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팝송을 자기 독집 7,8집까지 썼다면 상당히 훌륭한 거다.

    "그래서 나의 예민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본다."

    사진학교 시절


    "그래서 나의 예민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본다."


    박준흠 : "음악은 자기 생활의 솔직한 반영이다"라고 했었고, 선생의 음악은 "그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진실하다"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한대수라는 뮤지션의 음악에 반영된 '진실'은 무엇인가?

    한대수 : 나는 상당히 예민하다. 성장과정 때문인 것도 같은데 누가 무슨 말을 한다든지, 어떠한 사회적인 현상, 예를 들어 어제 있었던 남북이산가족상봉 같은 것들도 마음을 울게 하더라. 이러한 것들을 보고 느낀 그대로 전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 평민들은 매일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화가, 조각가, 음악인 같은 창작인들이 그것을 깨우쳐주는 역할을 역사적으로 항상 해왔다. 평민들은 보통 그날그날 생활에 쫓기다보니 이 제도가 틀렸다, 라든지 이 제도가 아니다, 와 같은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나의 예민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본다. 내가 보는 느낌이 어떤 때엔 사람들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기쁨을 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보고 느낀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박준흠 : 이번 8집의 <Paranoia>의 가사에 "난 잠자기가 무서워/ 난 일어나기가 무서워/ 밖에 나가기도 무서워/ 난 집에 있는 것도 무서워" 라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대수 : 그것도 상징적인데… 사실 지금 이 때가 무서운 시대이다. 먼저 나도 노후의 대문에 들어섰으니 개인적으로도 두려운 게 있다. 그리고 사회적인 게 있는데, 이 사회가 지금 급변하고 있다. 아마 역사상 과거 10년만큼 급변한 시대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디지털, 인터넷 시대로 들어오면서 그렇다. 몇 년 전에 활발했던 벤처, 인터넷 기업들의 80% 정도가 미국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거품으로 거의 사라졌다. 5년 새에 그런 급변도 있었고 남녀의 관계도 급변하고 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서양사회에서도 거의 결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결혼 자체에 대해 재평가하는 때가 왔다. 또 스탁 마케트(stock market)란 개념이 최근 20년만에 대두되어서 대중들도 증권에 신경 쓰고 투자하고 있는데, 그 전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전세계의 돈을 누가 다 관리하는 것 같은데 그게 바로 뉴욕의 월스트리트이고, 전반적인 체계와 망을 갖추어 전세계의 산업을 간단히 컨트롤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조작 당하는 것 같아서 그에 대한 공포증, 편집증이 생긴다. 우리가 이만큼 많은 정보와 학식을 가진 국민이 되었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인도와 파키스탄, 우리도 50년 동안 부모형제, 부부가 헤어져 있는 것은 야만인 것 같다. 지금 시대가 상당히 두렵고 무서운 때이고 그래서 그 무서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밤도 무섭고, 낮도 무섭고, 밖에 나가면 다치니까 무섭고, 집에 있으면 고독해서 무섭고, 여자도 무섭고.

    박준흠 : 이런 자세한 이면의 얘기를 듣기 전까지 가사만 들어서는 아무리 팬이라고 해도 그런 부분을 추측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고, 선생의 작품들은 상징성과 은유성을 갖고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작자의 의도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Paranoia>만 해도 선생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는 개인적인 문제로만 보일 소지도 많고, 소심한 사람의 감정표현으로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작가로서 청자, 팬과의 대화방법으로서는 좀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한대수 : 좋은 지적이다. 내가 무섭다고 했을 때 듣는 이는 "한대수씨, 지금 굉장한 공포증에 빠져있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그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한 작가가 자신의 고통을 말함으로써 그 고통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고, 대중도 흡사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내가 알기론 전세계적으로 지금 막 달리고 있는 디지털 사회에 일부가 되어 가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뉴욕만 하더라도 나이 사십 넘은 사람들은 고정관념으로 굳어있기 때문에 컴퓨터 근처에 무서워서 못 간다. 그런 사람들은 계속 소외된다. 무서움을 느낀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고 본다. 나 자신이 무섭다고 하는 것이 그들 자신의 공포와 연결될 것이다. 동조의식도 생길 것이다. 나 자신의 공포를 말함으로써 모든 것이 전반적으로 대중에 적용된다고 본다.

    박준흠 : 팬들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Paranoia> 같은 곡의 경우는 이해를 쉽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부클릿에 이런 이유로 그 음악을 만들었다든지 하는 글을 쓴다거나, 부가장치로 독백 같은 글을 넣는다든지 하는 것은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가?

    한대수 : 그런 부분도 있긴 한데, 음악을 너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분위기를 던지는 것이지 나는 이러이러하니 당신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설명서가 있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어떤 여자의 경우에 자기의 무서운 과거의 경험을 되살릴 수도 있을 테고, 그렇게 각 개인이 듣기에 따라 자기의 체험에 적용시킬 것이다. 그래서 난 곡에 설명서를 붙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분위기를 던지고 그 분위기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예를 들어 <행복의 나라>를 어떤 이는 불행하니까 행복하다는 건가, 할 수 있겠고 또 어떤 이는 난 지금 행복해서 행복의 나라다, 라고 받아들이는 등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도 좋은 것 같다.

    박준흠 : '공포'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5집 [천사들의 담화](1991/삼화레코드)에 "우물 속에 빠진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대수 : 알다시피 어느 나라나, 우리나라도 특히 동란도 나고 했는데, 물이 항상 문제였다. 옛날에 수도가 별로 없었고 마을마다 우물이 있었다. 또 우물 있는 집은 부자였다. 우리 집에도 우물이 있었는데 한 3m 정도로 그다지 깊지는 않았다. 물을 긷다가 거기에 빠졌는데, 그다지 다치진 않았지만, 위는 보이지만 누가 날 구출해주지 못하면 난 어떻게 되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나고, 우리 목사 아저씨가 내려오고 있는데 만약 목사 아저씨도 다쳐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이 공포가 되더라. 사람에게 절망 자체가 공포더라. 앞이 불투명하다, 미래가 없다는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 쇼크가 되더라. 사람이 무서우면 이렇게 무서울 수 있구나 하는…

    "오히려 창작이 있고 위험성이 있고 더욱 자극을 주는 음악은 락이라고 본다."

    드라마센터 공연


    "오히려 창작이 있고 위험성이 있고 더욱 자극을 주는 음악은 락이라고 본다."


    박준흠 : "뮤지션을 평가할 때에는 작품이 좋은가 나쁜가를 보고 평가해야하며, 그 부분만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한대수가 생각하는 작품이 좋은가 나쁜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한대수 : 첫째, 무엇보다 음악이 훌륭해야 한다. 음악 자체가 두 발로 설 수 있는 완벽한 사운드가 되어야한다. 그런데 사운드가 좋으려면, 기본적으로 우리가 들어온 소리도 좋지만, 그 소리에 새로운 무엇을 가미했느냐가 중요하다. 무엇을 들을 때는 새로운 사운드가 좋을 때에 끌리게 된다. 항상 듣던 것이 또 되풀이되면 "이건 누구구나, 이건 누구 같구나, 오케이" 해버리고 안 듣게 된다. 그래서 음악 자체가 완벽해야 한다. 뮤지션도 좋아야 된다. 그리고 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사실 말이 없더라도 음악 하나로도 설 수 있다. "잠자기가 무서워" 대신 "당신 화장 예뻐, 나 당신 따라갈래, 당신 옷도 예뻐" 이렇게 해도 음악은 된다. 그렇지만 음악과 하고싶은 말이 일치가 될 때 그것이 듣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줄 것이다.

    박준흠 : 지금 말한 "작품이 좋으냐 나쁘냐를 중시해야 한다"라는 얘기는 어떤 인터뷰에서 선생이 반론으로 제기를 하며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현재 대중음악 쪽에 '평론문화'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한대수 : 거의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평론을 제대로 하는 분도 거의 없고 음악을 공부한 사람도 몇 명되지 않는 것 같다. 클래식 분야에는 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클래식은 현재로선 그다지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클래식은 물이 흐르지 않는 연못가이기 때문이다. 계속 바하, 베토벤, 모차르트의 선율, 똑같은 것을 여러 테크니션들이 나와서 되풀이하는 거다. 물론 아름답다. 다 좋고 훌륭하다. 그러나 되풀이하고만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클래식을 상당히 높게 보는데,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 나로서는 오히려 창작이 있고 위험성이 있고 더욱 자극을 주는 음악은 락이라고 본다. 락은 처음부터 무대에 설 때까지가 다 창작이다. 섹스 피스톨스의 시드 비셔스는 자기 애티튜드가 있었는데, 그는 항상 입을 (흉내내며) 이렇게 한다. 그게 그의 스타일이고 펑크 애티튜드의 표현인 것이다. 그런 입술표정에서부터 옷을 입는 것, 무대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 목소리를 어떻게 딜레이 하느냐, 작곡은 어떻게 하느냐, 기타는 어떤 소리를 내느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창작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락이 더욱 힘들고 창작이 있다고 본다. 락은 살아있다.

    박준흠 : 그 얘기는 결국 (한 뮤지션의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는 것을 포함해서) 그런 부분들을 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제대로 캐치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한대수 : 우리나라에 제대로 평론하는 락 평론가가 몇 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론 한 두어 명 있을까 말까다. 왜냐면 다들 공부를 안한 것 같다. 보통 락 평론을 하려면 자신이 아마추어 밴드라도 했다거나 아니면 매니지먼트를 했다거나 해서 몸을 약간이나마 담아봤고, 그래서 밖에서 보는 좋다, 나쁘다 평가 이전에 실제로 경험해봐서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 평론을 잘하더라. 왜냐면 모든 사람에겐 이미테이션이 있으니까. "드럼소리가 왜 저래?" 보다도 "아, 저런 드럼을 저렇게 썼으니 소리가 저렇게 밖에 나올 수가 없구나" 하는 이해성이 있다. 그런 음악평론과 많이 죽어있는 락 음악이 동시에 자꾸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잠재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평론에서 다룰 만한 음악적인 행위나 활동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박준흠 : 그 동안 인터뷰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인터뷰어가 묻지 않아서 아직까지도 말하지 못한 것이 있는가? 이 얘기는 꼭 해야 했는데 아무도 안 물어봐서 하지 못한 것 말이다.

    한대수 : 모든 사람이 궁극적인 목적이 있듯이 '내가 음악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보는 변두리나 사회적인 분위기나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느낌을 말함으로써 좀 더 솔직한 사회가 되고, 어떠한 제도하에 있고 또 어떻게 하면 이 제도를 좀 더 개선해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냥 "잠자는 게 두렵다"가 아니고 '잠자기가 두려운 현실'인데, 두렵지 않은 현실로 바꾸기 위해선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이 사실 나의 목적이다. 러시아 짜르 때나, 레닌 때나, 미국 독립운동 때나, 프랑스 혁명 때나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모르고 살았다. 평민들이 무식하면 무식할수록 다스리기 쉬우니까 지배층이 평민들에게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왕족도 그랬고 역사상 항상 평민들은 무식한 상태에서 살았다. 지금 우리에겐 너무나 인포메이션이 많지만 이해를 못하면서도 답을 알고있어야 한다. 컴퓨터 시대가 그렇다. 과정을 모르고 답을 아는 것이 컴퓨터 세대이다. 작가나 음악가 같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는 길이 이렇지 않는가, 라고 제의를 하거나 논문을 발표할 때 대중들에게 하나의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 된다. 그래서 나도 나의 답답함을 음악에 담음으로써 굶주려 있던 사람들에게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음악을 하는 목적이다.

    박준흠 : "구멍을 뚫어준다"라는 얘기는 일반인들의 관념의 문을 넓혀준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한국대중음악계의 대선배로서 뮤지션이 가져야 할 태도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한대수 : 제일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다. 음악이나 문학이나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지금 현대사회엔 진실성이 없다. 모든 것이 포장이고 디자인인데 아름다운 디자인 포장 안에 내용물은 별로 없는 시대이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이 진실성이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은 음악가로서 음악이 훌륭해야 한다. 일단 음악이다. 음악이 훌륭하려면 기타리스트이든, 드러머이든, 작곡가이든 자기 분야에서 뛰어나야하고 과거의 사람들보다 좀 더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드럼의 경우라면 진저 베이커나 테리 바지오와는 또 다른 것을 줄 수 있다든지, 기타리스트라면 에릭 클랩튼 이상의 것을 줄 수 있는 뭐가 있다든지 하는, 자기의 기술을 뛰어나게끔 연마를 해야할 것이다.

    "제도는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자면 많은 사람들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야한다. 생각 자체가 행동이다. 그 생각을 촉진시키는 것이 음악이고 문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드라마센터 공연


    "제도는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자면 많은 사람들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야한다. 생각 자체가 행동이다. 그 생각을 촉진시키는 것이 음악이고 문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준흠 : 현재 이 시점에서 [Eternal Sorrow]가 갖는 개인적인, 사회적인, 그리고 한국음악사적인 의미에 대한 생각을 말해달라.

    한대수 : 프로듀서 손무현씨와 이 음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음반은 국가를 따질 게 아니라 세계적인 분위기로 가자, 어느 세대, 어느 지역에서 들어도 부족함이 없게끔 나가자, 하고 음반작업에 임했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내는 음반이니까 장르 없이 가자고 했다. 모든 음반들이 장르가 있지 않는가. 내 음반들도 과거 [기억상실](1990/뮤직디자인)의 경우엔 재즈의 선율이 있었고 [천사들의 담화]는 미니멀리즘이었는데 이번엔 장르 없이 가자고 했다. 또 그런 음반이 별로 없고. 왜냐 하면 모든 사람들이 여러 가지 성격이 있으니까. 특히 나는 이중적인 성격이 강하다. 생활 자체도 그랬는데 어릴 때 미국에서도 생활했고 여기에서도 살았고, 굉장히 락적인 폭발적인 부분이 있으면서 동시에 가냘픈 포크적인 요소도 가지고 있고 한 모든 것들이 나의 분위기다. 사실 댄스음악도 좋아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함해 장르 없이 가자 하고 작업을 했다.

    이것이 갖게 될 앞으로의 사회적인 의미는 잘 모르겠다. 그것은 나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듣는 사람이 먼 훗날 이 음반에 이런 의미가 있었다, 라고 할 부분이다. 예를 들어 30년 전에 [멀고 먼 길](1974/신세계) 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포크음악인데 좀 이상하다 했는데, 30년 후에 사람들이 상당히 좋은 평가를 하는 것과 같이 시간을 두고 봐야할 것이다. 우리는 그냥 '국제적인 사운드'를 내자, 하고 제일 훌륭한 음악인들을 만나 작업에 임했다.

    박준흠 : '음악사적인 부분'은 스스로 얘기를 안 하는데 그 부분을 평론가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1968년도에 한국에 와서 당시엔 없었던 '싱어송라이터'의 개념을 전파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70년대 초반 모던포크의 시대를 개화시킨 장본인이라는 음악사적인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이번 음반의 경우 사실 한국에서 뮤지션이 50세가 넘어서도 '새롭고 도전적인 의식'을 갖고 '전혀 녹슬지 않은 감각'으로 음반을 발표한다는 것은 내가 봤을 때는 처음인 것 같다.

    한대수 : 같이 작업한 뮤지션들도 다들 그러더라. "한 선생님, 오십 넘어 이런 역사가 없습니다" 하하. <멸망의 밤> 할 때엔 "이 좆같은 세상"이 나오니까 드럼 친 장혁씨가 깜짝 놀라서 비트를 미스하더라. 같이 작업한 음악인들도 내 연배에 이렇게 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난 항상 애티튜드를 젊게 갖고 마음속으로는 틴에이저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몸이 안 따라줘서.. 요즘은 할 수 없다.

    박준흠 : 앞서 8집 음반을 작업할 때 지역적인 사운드에 머물지 않겠다고 한 것은 지난 인터뷰에서 "한 세대에만 일어나는 분명한 일보다는 전 인류에 관계된 공통된 주제에 더 끌린다"라고 말한 것과도 관계가 있는 얘기인 것 같다. 거기에서 말한 '전 인류에 관계된 공통된 주제'는 무엇인가?

    한대수 : '자유'다. 전 인류가 역사상, 그리고 현재 원하고 있는 것이 자유다. 그런데 지금은 자유라는 단어가 '돈'으로 대체되었다. 화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많은 화폐를 가짐으로써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마음대로 가질 수 있고 자식들을 마음대로 키울 수 있는데, 그것이 자유라는 얘기다. 자유를 원하기 때문에 돈을 많이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어떠한 제도로 인해 자유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어떤 제도로 인해서는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내 주제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에 대해 생각한다. 군주제, 사회주의, 자본주의 같은 제도가 있었고 토마스 무어가 '유토피아'의 꿈에 대한 얘기를 한 적도 있었는데, 제도는 사람이 만들어가기에 달려있으니 중심적인 사람들이 모여 모든 인간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늘에게 받은 것은 부족한 게 없는 지구에 사는데 이 시대에 아프리카에 굶어죽는 어린이가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것이나 제도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다. 제도는 조금씩 개선해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자면 많은 사람들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야한다. 생각 자체가 행동이다. 그 생각을 촉진시키는 것이 음악이고 문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준흠 : 그것은 60년대 영미권의 포크가수들이 가졌던 생각 아닌가?

    한대수 : 그렇다. 그런데 사실 많이 바꾸었다. 60년대 같은 때가 없었다면 미국도 지금보다도 더 이기적으로 나갔을 거고 더 악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히피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그 후손들, 클린턴이나 고어 같은 사람들이 과거 세대에 비해 좀 더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박준흠 : 방금 말한 "공통된 주제를 음악에 반영시키겠다"는 것은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방향성을 설정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왜 그런 방향성이 한대수 개인에게는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한대수 : 나의 성격이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참 힘든 것이지만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살아온 배경인 것 같다. 신학자이셨던 조부님 밑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선과 악, 인간의 꿈과 인간의 모자란 점, 죽음 이후의 삶과 죽음 이전의 삶, 그리고 하느님 같은 부분들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공부를 한 게 아니라 집안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다. 대개 사람들의 집안 분위기는 "나가서 성공하고 돈 많이 벌어라, 끝." 이렇지만 우리 집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 학계에 계셨으니 집을 비롯해 식모, 운전수까지 모든 것이 주어졌기 때문에 난 돈을 본 적도 없었고 돈의 개념도 별로 없었다. 세속적인 성공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없었고 학문, 연구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집에 큰 도서관이 있어서 모든 철학책들이 다 있었고 또 궁금한 것은 인사이클로피디아(encyclopedia)를, 그 안에 그림도 있으니 보면서, 얻을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집안 환경 때문에 국민학교 때부터 동서양을 왔다갔다하면서 교육을 받았는데, 미국에 가니까 우리나라에 대한 아픔, 모자란 점이나 이것이 정말 안타깝다 하는 것들이 많이 느껴졌다. 또 우리나라에 와서 미국을 보니 또 어긋나는 부분이 많더라. 남녀관계라든지, 흑인아이들, 얼마 전 콜럼바인 총기사건 등 사랑 없이 자란 아이들이 그렇게 엉뚱한 짓을 하는 거니까 아이들의 탓이 아닌데, 미국의 제도가 정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다행히 아직까지는 가족중심의 사회이고 선후배라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미국이 최강국이라 하지만 홈리스가 제일 많다. 홈리스가 제일 많으니 부유한 나라가 아니다. 문제가 많은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는 그다지 부자도 아니지만 홈리스가 별로 없지 않는가? 여기선 가족관계가 있고 학교관계가 있으면 어지간해선 홈리스가 되지도 않는다. 만약 내가 돈이 한 푼도 없어서 길거리에 나앉는다고 한다면 누가 내버려두겠는가? 레코드회사, 아니면 절친한 친구, 친척이 그러지 말라고 방을 구해주고 밥이 없다면 쌀을 가져올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이런 문화는 참 아름다운 것이다.

    이렇게 왔다갔다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게 되니까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제도라는 것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제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제도가 이러니까 난 할 수 없이 이렇게 해야된다, 온순하게 말만 듣고 고개 숙이고 살아야된다, 그렇게 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제도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좀 더 아름답게 바꿀 수가 있다.

    "즉흥 주제는 내가 오십이 되었다는 사실, 인생에 가을이 왔다는 것, 겨울의 문에 다가섰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느낌이 있더라."

    징기스칸 (뉴욕, 1977)


    "즉흥 주제는 내가 오십이 되었다는 사실, 인생에 가을이 왔다는 것, 겨울의 문에 다가섰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느낌이 있더라."


    박준흠 : 음반 타이틀이 'Eternal Sorrow'이다. 타이틀을 이렇게 한 이유는?

    한대수 : '영원한 슬픔'인데 나로선 sorrow를 '고독'으로 해석하고 싶다. 언어가 다른 언어로 옮겨질 때 해석하기에 달려있는데 나는 고독이라고 하고 싶다. 앨범커버에서도 울고있는데, 첫째 이유는 나 자신도 울고 싶었다. 팔이 마비되어서 몸도 아프기 시작하고 개인적으로도 이제 삶의 허무를 느끼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성취한 부분도 있지만 몸도 아프기 시작하고 창작도 마음만큼 되지 않는 것도 슬퍼지고 해서 울고 싶었다. 또 사회적으로 슬픔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보다 고통을 당하는 것 같다. 미들-클래스가 없어지는 것 같다.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미국도 없어진다. 미국도 50년대엔 50% 정도의 미들-클래스가 있어서 남자가 혼자 일하고 집이 있었고 부인은 집에서 애플파이를 만들고 2.5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사는 안락한 미들-클래스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없다. 부유층 한 10%? 그리고 나머지는 다 가난하다. 가난하다는 의미는 밥을 못 먹는다는 것보다도 집세를 어떻게 내나, 자동차 기름은 어떻게 넣나, 자녀교육은 어떻게 시키나 하는 돈걱정을 항상 해야하고 매일 고민해야한다면 가난한 것이다. 지금 그렇게 되어버렸다. 부유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하지만 나머지는 다 가난하다. 현재 투-클래스가 된 것 같다. 이런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 울고 싶었다. 또 아름다운 (앨범)커버들이 많지 않은가. 김현정이나 샵 같은 예쁜 여가수들도 많고 미남 가수들의 하이-패셔너블한 커버들이 많은데, 그 수 많은 앨범커버들에 도전해야 되니까 나로선 쇼킹한 게 있어야될 것 같아서 미술 구도 상 쇼크-밸류로 일부러 그렇게 한 측면도 있다.

    박준흠 : 갑자기 이 얘기가 생각난다. 1987년도에 '사랑과 평화'의 <울고 싶어라>가 사회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현상을 분석한 것을 보면, 1980년 광주민주항쟁부터 시작해서 압제적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전두환 정권 말기에 지쳐있었는데 그런 노래가 나와 전체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라고 하더라. 요즘도 IMF를 비롯해서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음반도 그럼 점에서 많이 팔려야 할 것 같다. (웃음)

    한대수 : 많이 팔리면 좋을 거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는 것이니까. 러시아에 몇 번 가봤는데 그들은 슬픔을 더욱 큰 슬픔으로 달래더라. 슬픈 때 웃으며 북돋아주지는 않고 왜 더 슬프게 만드느냐, 우느냐, 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러시아는 더 큰 울음으로 슬픔을 달랜다. 누가 전화를 하면서 "나는 목도 아프고 팔도 아프다"라고 하면 친구가 "나는 목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다리가 저려서 밖에도 못 나간다"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위로해주는 스타일이더라. 나도 그렇다. 우리가 슬픈 상태에 있을 때 슬프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실컷 한 번 울고 나서 다시 시작하자는 이런 느낌이고, 그게 더 좋은 것 같다.

    박준흠 : 그래서인지 8집을 들어보면 "여러분 제가 병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섭습니다"라는 우울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한대수 : 그것도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일단 사실이다. 병이 들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 내가 여러 앨범들을 들어보았는데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락 앨범은 없더라. 그래서 이것도 하나의 새로운 분위기를 줄 것 같았다. 사람들이 CD를 꽂으면 으레 어떤 음악이 나오나 기다리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게 하는 것도 음악을 듣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손무현 씨와 내가 연구를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한 거다. 우리가 많은 연구를 했다.

    박준흠 : 3집 [무한대](1989/신세계)에서는 첫 부인과의 이혼 뒤에 겪은 패닉이 <One Day> 같은 곡에 담겨서 아주 뛰어나게 승화되었고 그 결과 선생 중기 명곡으로 기록될 만 하다. 이번 8집을 만들 당시엔 특별한 심경 같은 것이 있었는가?

    한대수 : [무한대] 때는 이혼을 갓 하자마자 정말 살고싶지 않은 상태였고, '징기스칸'(※ Genghis Khan, 한대수가 1977년에 뉴욕에서 결성한 록밴드. 클럽 Trude Heller, CBGB 등에서 공연)이 해체되고 나서 뉴욕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여러 뮤지션들과 정력을 쏟아 훌륭한 음악들이 나왔다. 이번의 나의 정신상태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주제는 이렇다. 세상이 너무 빨리 가고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꾸 넘어가는 것 같다. 세상의 제도가 이상하게 뒤바뀌는 것 같고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면서도 어느 쪽으로 가야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시대인 것 같다. 가장 큰 관심사는 미국이 이끄는 자본주의에 문제가 많다는 것인데, 왜 미국이 이렇게까지 올바르지 않은 길로 세상을 이끌게 되었는가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고 즉흥 주제는 내가 오십이 되었다는 사실, 인생에 가을이 왔다는 것, 겨울의 문에 다가섰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느낌이 있더라. 또 우리가 지구를 다 파괴시켜 이 지구가 거의 쓰레기가 되었다. 수많은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 플라스틱, 태워도 오염이고 가만 두어도 오염이고 땅에 숨길 수도 없는 공해물질들로 인해 전 지구가 거의 파멸상태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느끼는 게 있었다. 이러한 주제들이 이번 앨범의 큰 중심이 되었다.

    박준흠 : 그러면 음악적인 활동 이외에 그린피스와 같은 실질적인 환경운동을 할 의향도 있는 건가?

    한대수 : 현재로선 큰 활동은 못할 거다. 나 개인적으로도 책 쓰는 것도 힘든 상태니까. 그런데 만약 그런 쪽에서 요청이 있고 내가 가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좋다. 세계적인 국가들에서 의식이 있는 나라가 독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슈뢰더가 수상으로 당선되었고, 얼마 전에 그가 발표하기를 2005년까지는 독일에 있는 모든 핵발전소들을 없애버린다고 하더라. 그러면 독일의 산업은 어떻게 돌아가느냐, 하지만 2005년까지 시간을 둠으로써 태양열이나 풍력발전을 자연스럽게 개발하게끔 지원하는 거다. 이렇게까지 대담한 행동을 하느냐 싶었다. 일본도 그런 분위기다. 지난번에 큐슈 섬을 기차를 타고 쭉 돌았는데 집들 대부분이 지붕 위에 태양열 집열판을 설치해놨더라. 그걸로 난방, 온수 다 해결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미국이 아니라 그 두 나라의 예를 좇아야할 것이다.

    박준흠 : 혹시 "모피를 입지 말자"는 운동에도 찬성하는가?

    한대수 : 아… 나는 사실 모피를 좋아한다. 하하. 가죽 제폼도 좋아하고 여자들이 밍크를 입는 것에 대해 크게 반대하는 건 없는데 그 분들의 얘기, 쓸데없이 가죽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에 반대한다, 는 것도 이해하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뉴욕에서도 여인이 밍크를 입고 가는데 테러리스트가 빨간 페인트를 던져버리는 것과 같은 그런 사건들이 종종 일어난다. 물론 그 분들을 이해하는데, 어쩌겠는가. 원시인 때부터 모피나 동물가죽을 입었으니..

    박준흠 : 왜 물어보았냐 하면 모피반대운동 하는 사람들이 나체시위 같은 것을 하지 않는가. 만약 선생이 나체시위를 한다면 획기적인 일이 될 것 같아서.. (웃음)

    한대수 : 그 부분은 크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동물을 어차피 먹어야하는 건 할 수 없는 일이고, 그 가죽을 항상 이용해왔으니까.

    "너에게 줄 것은 없다. 오직 음악 밖에 없다."

    옥사나


    "너에게 줄 것은 없다. 오직 음악 밖에 없다."


    박준흠 : 음반 이야기로 돌아와서 7집에 이어 8집에도 <To Oxana>란 노래가 실렸는데 '옥사나'(한대수 씨의 부인)는 어떤 여자인가?

    한대수 : 내가 여자에 대해 문제가 많았다. 여자에 대해 약하고. 20년 동안 동행했던 첫 부인이 떠나고 나서 굉장히 헤맸다. 여성의 형태로 자신의 짝을 찾는다는 게 쉽지가 않다. 서울도 힘들지만 뉴욕은 더 힘들다. 신문을 보면 매일 "나는 27세의 아름다운 여자이며 결혼을 위해 데이트할 남자를 찾습니다"와 같은 광고가 대여섯 페이지는 된다. 그 정도로 남녀가 만나기 힘든 때다. 왜냐면 너무나도 세밀하게 따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따지고 따지다보면 'No'가 되어버린다. 모든 자격을 갖춘 남자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자격을 갖춘 여자도 없다. 미국 오렌지카운티 선거문제도 결국 결과가 없지 않는가. 기계로 하느냐, 손으로 하느냐 따지다보니 된 게 없다. 따지는 인생이 참 힘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이제 여자를 만나기 힘들겠구나 하고 있었다. 벌써 나이 사십이 넘었었고, 직장은 있었지만 화폐가 그다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특히 화폐가 아름다운 여인에게는 매력 포인트가 되는데, 인물도 좋아야겠지만 화폐가 많으면 인물도 자연스럽게 미남이 되지 않나. 그래서 난 혼자 살아야겠구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옥사나를 만났는데 보통의 여자와 다르더라. 러시아, 몽골의 피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 모든 걸 이해해주는 이해성이 넓고 어머니처럼 감싸준다. 그래서 옥사나를 내 부인으로 모시게 된 것이 나로선 대단한 행운이었고, 그 때문에 내 음악이 좀 더 활발해진 것 같다. 옥사나가 뒷바라지를 굉장히 많이 해줬다. 동경, 후쿠오카에 갈 때에도 나보고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더라. "미쳤니? 내가 지금 얼마를 벌고 있고 아파트는 어떻게 하고.." 그랬는데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거다. 고생에 대해서, 고생이 무언가 하는 것을 잘 알더라. 러시아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하면서 사니까 어떠한 큰 일을 하기 위해 희생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상당한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난 "너에게 줄 것은 없다. 오직 음악 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에게 음악을 바쳤다.

    박준흠 :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정한 사랑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한대수 : 사랑이란 참 복잡한 단어이다. 모든 철학가들이 수 천년 동안 말해왔고. 어떠한 감정인지 모르니까 사실 참 힘든 거다. 사랑에는 섹슈얼한 것도 있고, 부자간의 사랑도 있고, 부부간, 남녀간의 사랑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결국 사랑은 '희생'이라고 본다. 자기를 희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랑의 큰 목적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 사랑이 사실 쉽지가 않다. 요즘은 조건적인 사랑뿐이지 않는가. 저 여자는 예쁘고 어떻고 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또는 저 남자는 나를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같은 조건부 사랑이 대부분인 것 같다. 나는 완벽히 희생적인 사랑이 사랑이라고 본다. 그것이 있다고 보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박준흠 : 8집에 <멸망의 밤>이란 노래가 있는데, 이 곡은 특이하게 '19세 이상'만 들으라는 버전하고 19세 이하만 들으라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선생에게는 무척 의미가 있는 노래로 보이는데 소개를 해달라.

    한대수 : 전반적으로, 지구상에서 흐르는 분위기, 즉 종교전쟁이라든지 남녀의 갈등이라든지 돈에 대한 가치관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말하려 했다. 물론 당장 멸망은 하지 않지만 멸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멸망할 수 있다. 왜? 우리 인간이 행실이 나쁘고 계속 지구를 파괴한다면 말이다. 지구가 파괴된다는 것은 물과 공기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금 물은 벌써 없어지는 상태 아닌가. 뉴욕만 해도 5년 전에는 수도꼭지의 물을 마셨지만 지금은 못 마신다. 꼭 돈을 주고 물을 산단 말이다.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 서울에서도 돈을 주고 물을 산다. 물이야말로 하늘에서 비로 내려 토지에서 순화되어 나오는 공짜인 것인데 물 자체가 문제가 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중동에서의 전쟁이, 물론 종교전쟁의 성격도 있지만, 물의 전쟁이라고도 한다. 중동에 물이 나오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는데 이스라엘이 뺏고 내놓지 않는 부분이 물이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 물이 필요하니까 물의 전쟁이 생긴다는 말을 사람들이 하고 있다.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은 캐나다, 동유럽, 스칸디나비아 정도에나 있지 마실 물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서울, 방콕, 동경, 베이징, 자카르타 등지의 공기가 위험해지고 있다. 동경만 해도 돈 넣고 산소를 마시는 부스가 있다. 너무 공기가 나쁘니까 돈 넣고 순수한 산소를 마시는 장치가 있는 거다. 앞으로 계속 우리 행실이 올바르지 않다면 지구는 멸망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남녀관계가 계속 이상하게 되고 화합이 되지 못해 가족개념이 없어진다면 후손이 안 나온다고 봐야하지 않겠나? 지난번에 독일에서 리셉션을 했는데 남자의 정자수가 자꾸 줄어든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음식을 커버하는 셀로페인이 문제라 한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간다면 먼 미래엔 멸망할 수도 있겠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핵 보유국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류가 파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박준흠 : <멸망의 밤>의 가사를 보면 '창자가 터진 알라의 전사'란 대목이 나온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난민을 학살하는 현실이 이슈화되고 있고, 이는 현대 무기로 중무장한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땅을 빼앗아 돌팔매질로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의아한 것이, 20세기 초반에 일제 침략 하에 고난의 세월을 보낸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면서도 별 반응이 없고, 일부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행위를 정당하게 보는 시각까지 있다는 거다. 왜 그런 것 같나?

    한대수 :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냐하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땅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작전적으로 어린애들을 죽이는 것 같다. 다음 세대를 없애는 거다. 소년들을 죽이고 있다. 최첨단 무기로 돌팔매질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가들도 그 행위를 보면서 조용히 입다물고 있단 말이다. 그것은 유태인의 파워가 전세계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도 50년대에나 앵글로색슨의 나라였지 지금은 완전히 유태인의 나라가 되었다. 나는 어떠한 의미에선 예루살렘이 본부이고 미국은 하나의 스테이트(state)로 보고 있다. 모든 금융기관, 그리고 TV, 라디오, 신문, 또 음악과 영화의 엔터테인먼트 등 이런 것들을 모두 유태인들이 경영하고 있다. 그들이 매스컴을 조종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행위를 어떻게 나쁘다고 말하겠는가. 모두 정당화시킨다. 한 소수민족이 전세계의 금융산업과 매스컴을 조종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다. 그리고 IMF 체제에서 우리를 운영하는 기관, 골드맨 삭스 등도 유태계다. 그래서 우리도 할 수 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다.

    ※ <멸망의 밤> (for over 19)

    이 좆같은 세상 다 썩어가네 총알은 튀고 또 피바다 되어
    비린내 나는 이 끝없는 전쟁 공해와 질투 또 오해와 권투
    돈 좇아가다 다 지쳐버렸네 어린애들은 다 미쳐버렸네

    Tell me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my friend
    Ah you don't believe, we're on the eve of destruction

    내 피는 끓네 터질 것만 같네 왜 달만 보면 왜 이리 눈물만 나나
    이웃사랑 비웃기만 하네 서로 미워하자 여기는 사기의 천국
    이 아름다운 지구는 다 쓰레기로 변해 공포에 자고 또 공포에 깨고

    지옥이 따로 있나? 바로 여기 있지 쓰러진 사람 옆구리 차는
    창자가 터진 알라의 전사 예루살렘은 아직 흐느끼고 있나?
    우리 집사람 새벽기도 갔네 멸망의 밤은 이제 또 다가왔네


    박준흠 : <멸망의 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면 그 노래는 선생이 어린 시절 즐겨 불렀다는 얘기를 한 것 같고(※ 작곡자는 배리 맥과이어임), 보통 음악이나 영화가 어떤 사람에게 감동으로 다가올 때 특정 지점(시점)의 기억과 연관되곤 하는데 혹시 그런 것이 있는가? 젊은 날의 특정 지점의 기억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건가?

    한대수 : 젊었을 때, 고등학교 다닐 때의 분위기는 히피문화가 휩쓸고 있었고, 그야말로 지미 헨드릭스의 <Purple Haze>를 처음 듣고 "기타가 이럴 수가 있는가?"하고 그냥 가버리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히 즐거웠다고 생각되지만 당시엔 모든 것이 혼돈의 시기였다. 음악도 비틀즈, 짐 모리슨, 롤링 스톤즈가 차례로 강타하고 부모세대의 기준이 다 무너지던 때였다. 그리고 월남전이 있었다. 역사상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미국이 처음으로 참패를 당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었다. 미국 내에서도 경찰이 학생을 죽인 일도 있었다. 모든 것이 나로서도 상당히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개인적으론 아버님을 오랫동안 못 만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심한 디프레션(depression)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몇 명 없었는데, 내가 설 수 있는 땅이 어디냐 하는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가 있었다. 거기에서 <멸망의 밤>의 분위기가 오더라. 그리고 60년대에 핵실험을 제일 많이 했다. 미국, 프랑스, 중국이 도처에서 핵무기 실험을 하던 때라 정말 세상이 끝나는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다.

    "음악을 할 때 훌륭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훌륭한 사람들간에 대화의 문이 열려있는가, 또 음악적 철학의 방향이 같은가, 그것이 중요하다."

    일본 라이브 기사 (1997)


    "음악을 할 때 훌륭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훌륭한 사람들간에 대화의 문이 열려있는가, 또 음악적 철학의 방향이 같은가, 그것이 중요하다."


    박준흠 : 8집은 손무현씨가 프로듀싱을 했고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1999/감미)는 뉴욕에서 존 롤로(John Rollo)가 작업을 했는데, 두 사람의 작업을 비교한다면?

    한대수 : 존 롤로는 아무래도 영국적 팝 분위기로 가더라. 그 분도 그 분 나름대로 훌륭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손무현씨의 프로듀싱에 더욱 만족한다. 왜냐하면 손무현씨가 21살 때 나를 만났기 때문에 그는 나의 성격을 알고 있고 음악철학을 알고 있고, 나 역시 손무현씨가 어느 정도의 기타리스트라는 것을 알고 있고 다재다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키포인트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처음엔 없었지만 훵키 댄스 부분이 좀 가미된 게 있을 텐데 그것도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음악을 할 때 훌륭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훌륭한 사람들간에 대화의 문이 열려있는가, 또 음악적 철학의 방향이 같은가, 그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방향이 같은 상태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상당히 편했다. 만약 손무현씨가 아닌 다른 프로듀서였다면 앨범의 스타트에 "여러분! 제가 병이 들었습니다"를 넣으려고 했을 때 아마 "한대수씨, 안 됩니다. 그런 걸 넣으면 안 됩니다. 판 안 팔립니다!" 그랬을 거다. 그러나 손무현씨는 "아, 좋습니다!" 하면서 벌써 시작부터 일치가 되었다.

    박준흠 : 손무현씨의 프로듀싱과 편곡이 아주 빛을 발한 곡이 <멍든 마음 손에 들고>이고, 관악기 세션도 일렉트릭 기타와 잘 매치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런 스타일의 곡은 처음이지 않는가. 관악기 세션 같은 경우에는 앞서 말한 '지역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방향에서 나온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대수 : [고무신](1975/신세계)에 현악기를 썼었는데, 그것은 그 당시의 사운드였고 지금 2000년도에 와서 관악기를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숙제였다. 무디 블루스가 런던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 때였고, 지금 락에 그런 분위기가 별로 없는데 어떻게 매치될 것인가가 상당히 궁금했고,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박인영 씨와 같이 작업을 해서 일렉트릭 사운드와 스트링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음에 날개를 달아준 것 같다.

    박준흠 : 그리고 8집의 장점을 말한다면 <Headless Man>이나 <멍든 마음 손에 들고> 같은 곡들은 락킹한 반면 <To Oxana>나 <그리움>은 아주 멜로디컬한 곡들인데, 서로간에 매치가 잘 되어있고 프로듀싱도 전반적으로 일관성 있게 잘 되어있다.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맥락을 깨는 <남자/여자>가 들어가 있다. 이 곡은 예전에 수록되었던 곡인데 다시 넣은 이유가 있는가?

    한대수 : 우선 [천사들의 담화] 음반이 소수의 매니아들 외의 사람들에게 많이 전달이 안 되었다. 편곡이나 녹음 부분이 많이 부족하니까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남자/여자>의 주제 자체는 지금 이 시대에 더 맞는 것 같다. 우리 사회도 그렇고 어느 사회나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그 곡을 사람들이 더 쉽게 들을 수 있게끔 풀(full)-밴드로 실험을 해봤다. 이것보다 지난 번 버전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많고 이번 버전이 더 잘 되었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주제상 잘 맞는 것 같아서 한 번 더 시도해봤다. 그리고 이번엔 임프로비제이션, 기타 브레이크를 손무현씨가 와와로 칠 때 뒤에선 남녀가 싸우고 있는 대사를 가미시켰다.

    박준흠 : <옥의 슬픔>과 <여치의 죽음>의 경우는 뭔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선생의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대수 : <여치의 죽음>은 너무나도 오래 전에 했는데, 녹음상태도 너무 안 좋았고 너무 오래 전이라 내가 바라는 실험정신이 다 안 들어갔다. [고무신]의 프로듀서였던 염진씨가 그 곡 자체에 대해서 놀래더라. 자꾸 "이 곡 이상하다, 이상해" 이러면서 어느 정도 가야되는 긴 곡은 시간을 다 자르더라. 그래서 [고무신]에는 불만족스럽게 녹음되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신디사이저라는 악기의 개념도 없어서 못 썼고 해서 이번에 좀 더 완벽하게 녹음하고 싶었다. 내가 처음 착상했던 그림을,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이고 하니까, 완벽하게 내고 싶었다. <옥의 슬픔>은 원래 슬픈 포크 발라드였는데, 나 개인적으로 믹스하고 매치시키는 걸 좋아하니까 이상하게 그것을 디스코로 가보고 싶더라. 그래서 시도해봤다. 가사와 멜로디는 슬픈데 거기에 비트를 넣으면 묘한 분위기가 나올 것 같았다.

    "어차피 다들 죽는 몸이니 고인의 인생이 훌륭했든 아니든 일단 가는 길 박수로 흥겹게 보내는 것도 참 의미가 있더라."

    포크페스티벌


    "어차피 다들 죽는 몸이니 고인의 인생이 훌륭했든 아니든 일단 가는 길 박수로 흥겹게 보내는 것도 참 의미가 있더라."


    박준흠 : <옥의 슬픔>의 '옥이'는 한대수 자신을 빗댄 것이라 하던데…

    한대수 : 자신의 이야기인데 마지막으로 좀 비트 있게 보내고 싶었다. 뉴올리언스에 가보니 장례식을 상당히 흥겹게 한다. 우리처럼 엉엉 울며 고인을 보내는 것이 아니고 재즈를 신나게 연주하고 박수도 치면서 고인을 보내더라. 그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차피 다들 죽는 몸이니 고인의 인생이 훌륭했든 아니든 일단 가는 길 박수로 흥겹게 보내는 것도 참 의미가 있더라.

    박준흠 : 여기에 나오는 옥이는 자살한 건가?

    한대수 : 옥이가 바닷가에서 자살한 거다. '눈물도 썰물도'. 눈물이 썰물이 되었으니 몸이 바다에 실린 거다.

    ※ <옥의 슬픔>

    저 넓은 정원 뒤를 잇는 장미 꽃밭
    높고 긴 벽돌 담의 저택을 두르고
    앞문에는 대리석과 금빛 찬란도 하지만
    거대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집의
    이층방 한 구석엔 홀로 앉은 소녀

    아-아- 슬픈 옥이여 / 아-아- 슬픈 옥이여

    백색의 표정 없는 둥근 얼굴 위의
    빛 잃은 눈동자는 햐얀 벽을 보며
    십칠년의 지난 인생 추억 없이 넘긴 채
    명예와 재산 위해 사는 부모님 아래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반항도 없이

    아-아- 슬픈 옥이여 / 아-아- 슬픈 옥이여

    햇빛에 타고 있는 팔월 오후에
    권태에 못 이겨서 집을 떠났다
    오랫동안 못 본 햇님 그대 참 그립군요
    울려라 종소리여 나는 자유의 몸이요
    난 살고 싶소 난 세상을 볼래요

    아-아- 슬픈 옥이여 / 아-아- 슬픈 옥이여

    복잡한 사회 속에 옥이는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과 같이 어울려서
    사랑과 미움 속에 끓는 청년을 보았소
    길가에 허덕이는 병든 고아도 보았소
    배반된 남편 꿈 깨어진 나그네

    아-아- 슬픈 옥이여 / 아-아- 슬픈 옥이여

    바람찬 바닷가로 옥이는 나서서
    밀려오는 파도에 넋을 잃은 채
    인생의 실망 속에 자신 찾을 수 없이
    꽃잎도 파도 위로 수평선을 따라서
    저 초원도 가고요 저 눈물도 썰물도

    아-아- 슬픈 옥이여 / 아-아- 슬픈 옥이여


    박준흠 : 자살 이야기가 나와 좀 더 얘기하자면, 인간은 냉혹한 운명에 맡겨진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가 살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건데, 그런 상황에서 자살이라는 게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는가?

    한대수 : 나도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딱 한 번이다. 이혼하고 나서 사는 게 전혀 의미가 없었고 돈 버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내가 사랑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이 인생에서 무엇 때문에 출퇴근하며 돈을 버나 싶었다. 그래서 그 때 생각해본 적이 있긴 있었지만 비교적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철학가나 예술가들이 그런 길을 택했다. 참 복잡한 얘기다. 이번에 네덜란드에서 안락사가 허용이 되었다고 하는데, 사후세계니 뭐니 많은 얘기가 있지만 나는 육체가 생기면서 영혼이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몸이 가면 영혼도 가는 거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자살을 권장하지도 않고 나 역시 그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다. 하지만 거의 극도로까지 가는 사람들을 이해는 해야한다. 어느 정도까지의 고통, 인생의 쓰라린 아픔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 길을 택했을 테니 이해할 수밖에 없는 거다. 말도 못하는 고통과 말도 못하는 허무를 느껴서 그 길을 택했을 것이다.

    일본은 좀 다르다. 자기의 가문, 회사, 국가에 수치를 주었을 때 명예롭게 가야하는 것이 임무고 사무라이 정신이니까. 또 이슬람에서 젊은이들이 폭탄을 차고 이스라엘의 버스로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명예를 위한 것이다. 가사에 나온 '창자가 터진 알라의 전사', 자신도 죽으며 주위의 이스라엘인들을 죽이면 영원히 알라 옆에서, 알라의 정원에서 영원한 삶을 가질 것이다, 해서 하는 것이니 그 분들의 자살도 좀 다르다. 보통의 자살은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택하는 건데, 나도 동정은 간다. 그리고 자살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위 아닌가.

    "무대에서 처음부터 집중을 한번에 잡아내야 한다. 한번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걸 잃어버리게 된다."

    삼총사공연 (2002)


    "무대에서 처음부터 집중을 한번에 잡아내야 한다. 한번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걸 잃어버리게 된다."


    박준흠 : 자서전에 나온 초기 공연모습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 "무대에 향을 피우고 징과 시계소리로 극적인 긴장감을 조성한 다음에 음악에 몰입하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는 한국대중음악사에서도 '퍼포먼스 음악'으로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음악 퍼포먼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대수 : 콘서트는 음반과 달라서 또 다른 세계이다. 어떤 음악인들을 보면 콘서트는 훌륭하나 음반은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음반은 훌륭하나 콘서트는 너무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이 다 일치되면 참 좋을 것이다. 콘서트는 숨을 쉬는 관객 앞에서 보여주는 것이니까 퍼포먼스적인 게 없으면 안 될 것 같다. 내가 왜 그렇게 시작했냐하면, 사람들이 으레 내가 나와 <행복의 나라>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대신 상상치도 못한 무엇이 나옴으로써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집중시킨 것이다. 나는 항상 그런 것을 이용한다. 그래서 지난 번 '포크 페스티벌'(※ SBS 포크 페스티벌, 2000) 때에도 그냥 침묵으로 시작했다. 포크 페스티벌이니까 <바람과 나>니 이런 곡들이 나올 줄 알았는데 침묵이 흐르니까, 이 자체로 음악이구나 하면서 그 큰 올림픽공원이 조용해지는 거다. 2분 50초 동안 참았다. 가수가 나와서 노래도 안하고 조용히 있으니 말도 안 되는 것인데 관객들도 조용히 있더라. 그러다가 첫 코드가 나갈 때 '콱' 하면서 집중이 되는 거다. 그런 부분을 항상 생각하고 있으며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사람들, 핑크 플로이드 같은 사람들이 퍼포먼스를 굉장히 잘한다. 큰 돼지를 풍선으로 만들어 띄운다든지 하면서 시각적인 것들을 많이 이용한다. 콘서트는 그런 부분이 꼭 있어야될 것 같다.

    주위에서 나보고 다들 콘서트를 하라고 했고, 또 많은 투자와 시간이 필요해서 조직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번에 뉴욕에서 '김영순 댄스 컴퍼니'와 현대무용(※ Exile - A world premiere, 1999)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참 좋았고 나도 이번에 현대무용과 접목한 곡을 한두 곡 선보이려고 한다.

    박준흠 : 무대에서 관객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싶은가?

    한대수 : 내가 아플 때 자기도 아프고 내가 웃을 때 자기도 웃는, 마음과 마음이 완전히 통하는 관계가 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에 무대에서 처음부터 집중을 한번에 잡아내야 한다. 한번 관객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걸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면 가수 노래 잘하는구나, 하는 걸로 공연은 끝나버린다. 그 가수의 세계로 흡수시키기 위해서는 퍼포먼스 부분이 없어선 안 된다. 그런 것으로써 사로잡아야 될 것 같다.

    박준흠 : 우리나라에서 퍼포먼스 밴드라고 하면 보통 이발쑈 포르노씨, 황신혜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허벅지밴드 등이 있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이야기한다면 이발쑈 포르노씨처럼 코믹한 행위들을 기획해서 자신들이 스스로 즐기는 유형이 있고, 황신혜밴드와 같이 설치미술과 같은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동원하는 밴드가 있고, 어어부 프로젝트나 허벅지밴드처럼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밴드가 있다. 일단 이들의 퍼포먼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먼저 묻고 싶다.

    한대수 : 그러한 형식으로 관중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은 상당히 좋다고 본다. 황신혜밴드도 봤고 어어부 프로젝트도 봤고 다 봤는데 모두 훌륭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내 경우는 과하게 퍼포먼스 중심이 아니라 스타트 부분에 집중을 이끌어내기 위해 하는 면이 있고, 음악 중심의 공연에서 퍼포먼스가 사이드가 되는 것이다. 가미되는 양념이다.

    퍼포먼스의 음악적인 요소를 보이면서 음반으로도 수백 번 들어도 새로운 만족스러운 기분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두 가지를 다 하는 게 음악인들의 고민이다. 그건 서양에서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음반을 들어도 좋고 퍼포먼스, 공연도 재미있는 데이빗 보위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반면 킹 크림슨 같은 경우는 음반으로는 상당히 새로운 음악적인 구멍을 여는데 라이브로 보면 정말 지루하더라.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은 훌륭한 기타리스트인데 그 사람은 라이브 때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두 시간 동안 기타를 치니 지루할 수밖에 없다. 빌 브뤼포드(Bill Bruford) 같은 훌륭한 드러머가 막 때리고 있는데도 묘하게 킹 크림슨 라이브는 볼 게 없더라. 내가 알기론 그 두 가지를 제대로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상당한 고민이다.

    박준흠 : 현대미술의 추상화나 미술 퍼포먼스 같은 경우는 솔직히 작자의 의도를 설명 듣기 전까지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 것까지도 예술로 인정을 해야되는 것일까?(그 자체를 존중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한대수 : '퍼포먼스 아트'는 '다다'에서 나온 것이고 60년대에 '해프닝'이란 게 있었다. 그것이 락앤롤과 상당히 밀접한 것 같다. 락앤롤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해프닝 아니겠는가.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를 이빨로 뜯었고 앨리스 쿠퍼는 큰 뱀을 가져와 휘감고 오지 오스본은 박쥐 목을 물어버렸다고 하고, 요즘 최근에 일어나는 힙합이나 하드코어 퍼포먼스를 보면 사람들과 관중들의 몸이 막 움직이고 하는데, 이런 것들도 하나의 퍼포먼스다. 락앤롤 자체가 옷 입고 움직이는 분위기에서부터 하나의 퍼포먼스 아트인 것 같다. 또 후(The Who)가 옛날에 기타를 부쉈지 않는가. 그런 것도 퍼포먼스 아트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 그 자체가 전위예술이다.

    박준흠 : 그렇다면 난해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라든지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경우, 그리고 퍼포먼스 중심으로 가다보니 가사가 가려져서 실제로 퍼포먼스만 보게 되는 경우 청자는 과연 무엇으로 작가와 대화를 해야하는가?

    한대수 : 물론 음악이다. 음악이 중심이다. 곡과 가사. 그런데 퍼포먼스 요소의 그 밸런스를 잘 맞춰야될 것이다. 믹스가 잘 되어야 한다. 이야기는 쉽지만 음악이 앞서면서 퍼포먼스가 부연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어려운데 그것이 우리의 숙제이다. 나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 밸런스를 잘 맞춰야하는 것이 락커들이다.

    박준흠 : 안타깝게도 현실을 보면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뮤지션들이 사실 매체의 주목을 끌기 때문에 기사 전면에 나오게 된다. 매체에서 기사가 쓰여지거나 할 때에 퍼포먼스가 강조된 밴드들이 기사의 첫머리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매체에서 인디씬에 대한 기사를 쓸 때에도 퍼포먼스가 강조된 밴드들이나 광기를 발산하는(음악적으로나 스타일적으로) 밴드들이 기사의 전면에 나오는 것은, 매체 측면에서 보면 사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선택되어지는지는 알겠지만, 매우 부당하다고 본다. 이 때문에 노래로 승부하는 진짜 뮤지션들이 가려진다는 얘기이다.

    한대수 : 음악이 중심이 되어야하고 퍼포먼스는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되어야지 너무 앞서는 것은 나도 별로라고 생각한다. 이기 팝이 옷을 벗고 자기 몸에서 피가 나게 한다든지 하면서 상당히 색다른 콘서트를 하지만 그가 훌륭한 게 무언가 하면 항상 음악이 앞선다는 점이다. 항상 밴드가 완벽하고 항상 보이스가 강하고 무대세팅도 완벽하다. 그런 상태에서 약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니까 이기 팝은 항상 공연에 성공한다. 밸런스를 잘 맞추니까. 나도 동감이다. 일단 음악이 있어야하고 그러고 나서 퍼포먼스가 알맞게 맞아 들어가면 그것이 완벽한 콘서트일 것이다.

    "자기 인생을 무엇에 바치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창작이 제일 좋다. 그래서 아직도 시도 쓰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하는 행위가 다 창작이고, 그럴 때 제일 기쁘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삼총사공연 (2002)


    "자기 인생을 무엇에 바치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창작이 제일 좋다. 그래서 아직도 시도 쓰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하는 행위가 다 창작이고, 그럴 때 제일 기쁘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박준흠 : 올해(2000년) [반칙왕 ost]에 <무더운 하루>가 실렸고 [공동경비구역 JSA ost]에는 <하룻밤>과 <하루아침>이 실렸다. 앞서 영화 OST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을 했는데, 그 얘긴 영화 OST 프로듀서를 하고 싶다는 의미인가?

    한대수 : 물론 오퍼는 없지만 한다면 작곡가로서 하고 싶다. 내가 아무래도 시각적인 것, 사진을 많이 공부했고, 영화는 독립된 노래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 이펙트, 효과로 많이 가는 것이고 어떠한 주제도 있어야하는데.. 그런 작업은 재미있을 것 같다. 완벽한 노래와 노래가 연결되는 앨범이 아니라 어떤 씬에 알맞게 그 씬을 소리로 도와주는 것이 영화음악이다. 재미있는 작업일 것 같다.

    박준흠 : 올해 아까웠던 행사 중 하나가 8월 예정이었다 취소된 '속초 락 페스티벌'이었다. 거기에서 최건 씨와 함께 노래를 하려고 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대수 : 그것이 상당히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고, 최건 씨에게 면목도 없게 되었다. 너무나 근시안적이었다. 신중현 씨도 그 나이에 무대에 서는 거였고 나도 설 예정이었는데, 나나 그 분이나 앞으로 사실상 무대에 몇 번이나 서겠는가. 그 때 모두 일치되어 큰 일을 성공적으로 치렀다면 상당한 영상이 남고 라이브 시디가 남는다. 그런데 그걸 하는 사람들이 바로 앞밖에 보지 못한 거다. 앞으로 30년, 40년을 생각한다면 분명히 화폐가 된다. 되고도 남는다. '우드스탁' 때 누가 돈 벌었는가? 수십만 명이 다들 담치기 해서 공짜로 다 들어왔는데 프로모터들이 손들고 "아이고, 모르겠다. 그냥 실컷 즐겨라" 한 것이고, 장소를 제공해준 분도 그렇게 한 거다. 음악축제에서 젊은이들 마음껏 즐기라는 선의, 굿윌(Good Will), 아름다운 정신이 있었다. 그런데 속초 락 페스티벌은 그분들이 처음부터 돈을 벌 목적으로 시작한 거라고 본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는 거다. 어떻게 그 많은 돈이 드는 행사와 팔려지는 표가 일치될 수 있겠는가. 물론 손해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똑똑한 장사꾼이어서 미래를 봤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그림이 앞으로 우리나라 음악 역사상 계속 되풀이되었을 것이다. 우드스탁이 전 세계적으로 각 방송마다 1년에 한두 번은 상영이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속초 락 페스티벌도 완벽하게 치렀을 경우에 틀림없이 각 방송에 매년 나왔을 거다. 장사꾼도 못되는 촌스러운 사람들이 큰 행사를 하려고 했던 거다.

    박준흠 : [신중현 트리뷰트]부터 시작해서 [산울림 트리뷰트]가 나왔고 얼마 전에 [김현식 트리뷰트]까지 나왔는데 이제 바야흐로 한대수와 정태춘 트리뷰트가 나와야할 시점인 것 같다. 오히려 의미적으로 봤을 때엔 한대수 트리뷰트와 정태춘 트리뷰트가 먼저 나와야 맞는 것이었는데, 아직 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혹시 트리뷰트 작업이 진행중인 것이 있는가?

    한대수 : 지금 음반사 서너 군데에서 말은 많다. 그러나 아직 완벽한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건 없다. 그런데 트리뷰트란 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니고 장사꾼이 돈 좀 벌려고 해서 제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더라.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그것이 비즈니스와 매치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거기에 큰 신경은 안 쓴다. 적당한 시기에, 그리고 말은 많지만, 오히려 말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에 의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나 싶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영광이고 여러 젊은 가수들과 나와 동행한 다른 가수들이 내 곡을 불러준다면 나로선 정말 좋겠다. 사실 내 노래를 다른 사람이 부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바람과 나> 같은 경우는 김민기씨나 김광석씨나 양희은씨가 나보다 더 잘 불렀다더라. 하하. 남들이 내 음악을 해석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언제 이루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박준흠 : 스케쥴을 보면 내년(2001년)에 가나화랑에서 사진개인전을 갖는 것으로 되어있다. (※ 2003년 11월에 "작은 평화"란 타이틀로 아티누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게 됨) 일반적으로 "한대수씨가 사진작가이기도 합니다"라고 하면 잘 모르는 것 같다. 사진작가로서의 활동과 사진작가로서의 한대수는 누구인가에 대해 말해달라.

    한대수 : 사람은 누구나 이 짧은 인생에서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거운가를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어떤 사람은 돈 버는 것이 재미있어서 사업가를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여자만 좋아해서 카사노바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기 인생을 무엇에 바치느냐가 중요한데 나는 창작이 제일 좋다. 그래서 아직도 시도 쓰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하는 행위가 다 창작이고, 그럴 때 제일 기쁘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지금 8집까지 냈고 음악적으로 하고싶은 말을 다 한 상태에서 내가 가장 소홀하게 다룬 부분이 사진이다. 음악은 공부를 하나도 안 했지만 사실 나는 사진공부를 했다. 사진은 그다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고 혼자 하는 작업이니까 앞으로 계속 할 수 있다. 8집 만드는데 25명과 같이 했는데 나처럼 성격이 예민한 사람이 없어서 음반 만들고 나면 무척 피곤하다. 하지만 사진은 나 혼자 찍고 암실작업하고 전시하는 거니까 비교적 나이가 더 들더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난 여태까지 먹고살기 위해 상업사진만 해왔다. 사진공장에 다닌 거다. 스튜디오 아니면 현상소에서 대량생산하는 사진들을 찍었다. 맥주광고면 맥주만 찍고 향수광고다 하면 향수만 찍어대고, 이렇게 찍었다 저렇게 찍었다 라이트 어떻게 댔다 하면서 공장처럼 찍어댄 거다. 이제 그것은 내게 하나도 의미가 없다.

    사진이 줄 수 있는 의미는 현황을 한 컷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술을 따지자면 아무리 스튜디오에서 싱싱한 꽃을 두고 찍는다하더라도 반 고흐 이상으로 꽃을 예쁘게 묘사할 수 없을 것 같다. 반 고흐의 터치로 그려진 꽃은 아픔과 슬픔과 기쁨이 있는 꽃이다. 하지만 테헤란로 벤처기업의 젊은이들이 넥타이를 메고 피곤한 모습으로 나오는 모습을 찍었을 때, 2000년 테헤란로 벤처기업의 지친 모습을 사진은 한 컷으로 표현하는 게 된다. 또 뉴욕 15th 애비뉴에서 유부녀가 밍크코트를 입고 지나가는데 그 밑에는 병자가 땅바닥에서 아픈 표정으로 구걸하고 있는 한 컷, 그런 것은 그림이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 사진은 현황을 한 컷으로 그대로 나타낸다. 나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한 컷으로 현재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과 현실, 부유층이나 가난한 층의 분위기, 우리 대중들이 느끼는 버스 속의 고통이라든지 지하철 속의 고독과 같은 것들을 담고 있다.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을 상당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원래 가나아트가 화인아트(Fine Art)만 하는 곳인데 사진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사진은 기계와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 필름 하나가 있으면 수백, 수천 번 재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어느 화랑이나 화인아트로 취급을 안 한다. 그런데 가나아트의 사장님과 큐레이터가 내 작품을 보고 오케이 했으니 영광스럽다.

    박준흠 : 그러면 당분간은 사진 쪽에 주력하겠다는 말인가?

    한대수 : 아무래도 내 에너지 레벌이나 나이도 그렇고, 사진도 내 창작에서 어느 정도 만족하니까 그럴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무엇도 음악 이상의 만족은 없다. 음악작업이 제일 힘들고 제일 만족스럽다. 피카소 작품을 보고 우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베토벤이나 바하를 듣고 울어본 적은 나도 많다. 음악처럼 직선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것도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음악작업이 너무나 힘들어지고 영감이 없어지는 것도 있으니까 사진 쪽을 계속 할 것 같다.

    박준흠 : 마지막 질문이다. '행복의 나라'에는 도대체 언제 도착하는 건가?

    한대수 : 카~. <행복의 나라>를 사춘기 때 작곡한 건데 무척 불행해서 만들었다. 너무나 힘이 드니까 행복의 나라로 가고픈 마음에서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라고 한 거다. 사실 돈이 있는 사람이 돈 얘기 안 하고 없는 사람이 자꾸 돈 이야기를 하듯이 행복이 없었기 때문에 난 행복을 찾았다. 그런데 살다보니까 행복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하나의 단어로서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있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절대 물질적인 것으론 해결이 안 된다. 결국 인생의 만족은 사람에게서 오는 것 같다. 자기 주위사람과 이뤄지는 관계, 그리고 친구와 친척과의 관계에서 모든 희노애락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근본적인 행복의 나라는 없다고 봐야한다. 우리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관념이 행복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발전이 있고 기쁨이 있길 바란다.

    "목소리에서 나오는 애티튜드도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를 할 때는 부드럽게 노래하고, 분노가 있을 때엔 앵거(anger) 그 자체로 나타낸다."[Eternal Sorrow] 슬리브 사진 "목소리에서 나오는 애티튜드도...
    ☆☆☆☆☆ | , 언더, 이달의 뮤지션, 한대수

  7. [멀고먼-길] : 1974 / 신세계레코드
    세션 : 한대수(v, g, kazoo, har), 정성조(key, flute), 임용환(g), 조경수(b), 권용남(d), 최동휘(cello)

    1968년 귀국하여 국내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이후 6년만에 내놓은 음반. 그의 대표곡들인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행복의 나라' 등이 수록되었다. 정성조 쿼텟이 세션으로 참여하여 '바람과 나' 같은 곡에서는 당시 흔히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의 세션을 들려주고 있다. 나중에 해금되어 정식으로 재발매된 음반에는 '하루 아침'의 오리지널 버전이 실려있다.


    [고무신] : 1975 / 신세계 레코드
    세션 : 한 대수(v, g, har, 톱), 이정선(g), 류복성(pcc), 최동휘(cello), 무지개사운드

    데뷔 음반이 심의에 의해서 거덜난 이후 다음해에 다시 한번 가능성을 타진한 음반. 데뷔 음반 커버는 위압적인 얼굴 클로즈업이더니 이 음반의 커버는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그로테스크한 사진이었다. '오늘 오후', '나그네 길', '고무신', '여치의 죽음' 등이 수록되었다.


    [무한대] : 1989 / 신세계음향
    세션 : 손무현(g), 이병우(g), 김영진(b), 송홍섭(b), 김민기(d), 배수연(d), 송태호(key), 김효국(key), 황수권(key), 류복성(pcc)

    장장 14년의 공백을 깨고 포크에서 록으로 방향 전환한 음반. 포크의 수용 한계로 록을 시도했다고 했는데 첫 시도가 완벽한 완성품이 되었다. 손무현(g), 김영진(b), 김민기(d), 송태호(key)로 구성된 세션팀의 연주는 훌륭하다. [무한대] 음반 완성도의 반은 이들 연주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80년대 베스트 세션으로 꼽을 수 있다. 시니컬한 '마지막 꿈', 이 음반 연주의 압권인 영어 가사로 된 'One Day', 'Widow's Theme'이 실려 있다.


    [기억상실] : 1990 / 뮤직디자인
    세션 : 한대수(v, 물, 종), 잭 리(g, key, prog, sax), 에드 머과이어(b, key, prog), 필 아놀드(trombone), 크리스 세버지(pcc), 임용환(v), 양희은(v)

    개인적으로 이혼의 아픔을 딛고 만든 작품. 잭 리(이우진, g), 에드 머과이어(b)가 세션에 참여하고 '아무리 봐도 안 보여'에는 게스트 보컬로 양희은이 참여하였다. 재즈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음반이다.


    [천사들의 담화] : 1991 / 삼화레코드
    세션 : 한대수(v, g), 이우창(key), 잭 리(g), 도미닉 칸자(g), 앤드류 J. 메이어스(sax), 사무엘 J. 허스트(trumpet), 야스 타게다(b)

    잭 리의 동생 이우창(key)과의 작품. 미니멀리즘을 시도한 작곡과 편곡에서 이전과 다른 경향을 볼 수 있다. '천사들의 담화'의 가사 "야! 이상하다. 그치! 저 밑에서 무엇들하고 있는 거지?"와 '공포'의 독백 "5살에 나는 우물에 빠졌었다. 그 암흑과 공포는 아직도 남아있다"만으로도 이 앨범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75 고무신 서울 ∼ 1997 후쿠오카 라이브] : 1999 / 도레미레코드
    세션(후쿠오카 라이브) : 한대수(v, g), 김도균(g), 카수가 하찌 히로푸미(g), 이우창(key), 테라오카 노부요시(b), 치 션수케(d), 이상은(v)

    2집 [고무신]이 LP에서 복각되어 CD1에, 1997년에 행해진 후쿠오카 라이브 실황이 CD2에 실렸다.


    [이성의 시대·반역의 시대 Age of Reason·Age of Treason] : 1999 / 감미
    Recorded at London Underground Studio(NYC), 1999.4.
    Produced & Mixed by John Rollo
    Words & Music by 한대수 (except '핏줄 Blood' by Viktor Choi)

    이 음반은 1999년 9월 19일에 미국 뉴욕에서 발매되었다. 초기에는 국내 유통이 되지 않아서 미국반 CD를 통신판매 하였다.


    [Eternal Sorrow] : 2000 / epi music

    01 intro (여러분!) _ 0:22
    02 Paranoia _ 6:07
    03 멍든 마음 손에 들고 _ 4:11
    04 To Oxana _ 4:04
    05 멸망의 밤 (for over 19) _ 3:59
    06 멸망의 밤 (for under 19) _ 3:59
    07 그리움 _ 3:52
    08 남자/여자 _ 3:43
    09 그대 _ 3:57
    10 옥의 슬픔 _ 6:03
    11 Headless Man _ 4:20
    12 여치의 죽음 _ 7:33
    13 outro/Demo tape _ 6:21

    # Words & Music by 한대수
    [Except "멸망의 밤" - Barry McGuire 원곡 "Eve of Destruction"]
    # 4, 8, 10, 11, 12번곡은 각각 7집, 5집, 1집, 4집, 2집 곡의 remake입니다.


    <Paranoia>

    난 잠자기가 무서워 난 일어나기가 무서워
    밖에 나가기도 무서워 난 집에 있는 것도 무서워
    Paranoia

    난 밤이 오면 무서워 낮에도 무서워
    난 여자가 무서워 남자도 무서워
    Paranoia

    난 죽는 것이 무서워 살아있는 것도 무서워
    난 사랑 주는 것도 무서워 사랑받는 것도 무서워
    Paranoia


    <멍든 마음 손에 들고>

    * 멍든 마음 손에 들고 멍든 마음 손에 들고
    멍든 마음 손에 들고 멍든 마음 손에 들고

    싫어 싫어 사랑은 싫어 아무리 해도 할 수가 없네
    미워 미워 사랑은 미워 아무리 봐도 볼 수가 없네

    *

    치워 치워 사랑은 치워 아무리 해도 할 수가 없네
    태워 태워 사랑을 태워 아무리 봐도 볼 수가 없네

    *


    <멸망의 밤>
    이 좆같은 세상 다 썩어가네 총알은 튀고 또 피바다 되어
    비린내 나는 이 끝없는 전쟁 공해와 질투 또 오해와 권투
    돈 좇아가다 다 지쳐버렸네 어린애들은 다 미쳐버렸네

    * Tell me over and over and over again my friend
    Ah you don't believe, we're on the eve of destruction

    내 피는 끓네 터질 것만 같네 왜 달만 보면 왜 이리 눈물만 나나
    이웃사랑 비웃기만 하네 서로 미워하자 여기는 사기의 천국
    이 아름다운 지구는 다 쓰레기로 변해 공포에 자고 또 공포에 깨고

    *

    지옥이 따로 있나? 바로 여기 있지 쓰러진 사람 옆구리 차는
    창자가 터진 알라의 전사 예루살렘은 아직 흐느끼고 있나?
    우리 집사람 새벽기도 갔네 멸망의 밤은 이제 또 다가왔네

    *


    [고민 Source Of Trouble] : 2002 / 풍류

    1. Marijuana 4:48
    2. 호치민 4:38
    3. As Forever 6:49
    4. 질주 2:32
    5. 여름 노래 2:39
    6. 겨울 노래 1:59
    7. 오늘 가면 2:27
    8. 상사병 6:45
    9. 천사들의 잡담 1 (1991.4, 뉴욕) 2:20
    10. 천사들의 잡담 2 (1991.4, 뉴욕) 1:57

    한대수 전곡 작사 및 작곡, 노래, Guitar, Harmonica, 코러스, 나레이션, 줄
    Guitar 김도균, 김인건
    Piano, Keyboard 이우창
    Bass 배찬우
    Drum 박동식
    Violin 조아름, 홍이순
    Viola 양현진
    Cello 유은경
    코러스 오영진, 신원규
    나레이션 최경림, 박윤정

    Producer 한대수, 하종욱
    Executive Producer 하종욱
    Product Coordinator 신원규
    Recording Engineer 김동인, 홍민웅, 박윤정 (O2 Music Studio, 2001.11.9~15)
    Mixing Engineer 김동인 (Core Studio, 2001.11.19~20)
    Mastering Engineer 이태경 (Seoul Sound, 2002.9.15)
    Photography 박준(front & back cover), 박영재, 이준구
    Designer 김민


    <호치민>

    호치민에 대해서 말하자면 참 재미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학자의 집안이고 불란서 점령 당시에 왜 서양세력이 자기 나라를 이렇게 장기간 동안 점령하느냐
    거기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또 워낙 문학가 집안이니까 여러 책을 보면서 연구를 하게 되죠

    호치민 호치민 호치민

    그래서 적을, 적을 이기려면 적을 알아라라는 요런 명언이 있으니까 불어를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요)
    그런데 불란서를 가야 되겠는데 유람선의 요리사 조수로 취직하게 됩니다
    불란서에서 불란서 공산주의자들과 접촉이 이루어지고
    또 거기에서 맑시즘을 배웠고
    드디어 어떠한 계기에서 모스크바를 방문합니다 (아 그래요)
    모스크바에서 공산주의 대학교에 입학해서
    과연, 제국주의, 자본주의 요런데 대해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여기에다가 러시아의 힘을 얻고 중국에 또 이사를 갑니다
    여러가지 민중의 고통, 민중의 핍박, 또 프롤레타리아
    거기에 대해서 배우고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옵니다
    미국이 이젠 등장하는데 그 부패된 고딘디엠 정부를 지원하면서
    (반)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아주 지속된 전쟁의 끝없는 폭격
    약 3200일의 끝없는 폭격을 밤낮으로 당하면서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이겨낸 유일한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호치민 호치민 호치민

    you are a nguyen ai quoc(구엔아이콱),
    you are a phan chu trinn(판추치린)
    you are a nguyen sinn cung(구엔싱쿵),
    you are a nguyen tat tranh(구엔타트랑)
    you're not a chung ryang lee(청량리),
    you're not a chang kai shek(장개석)
    you're not a jung tae choon(정태춘),
    you're not a zhou en lai(주은래)
    you are a van tien dung(반티엔둥),
    you are a hoang quang binn(황광빈)
    you're not a sun yat sun(손문),
    you're not a park jung hee(박정희)
    you're not a shin bal dae(신발대),
    you're not a pal dae gi(팔대기)
    you are a nguyen ai quoc(구엔아이콱),
    you are a phan chu trinn(판추치린)


    <As Forever>

    There Was A Time When All My Heart Was Enchained
    And Through This Valley Without Hope
    And When You Kissed Me With Silent Eyes
    I Felt A Murmer In My Spin

    There's Nothing That Can Last As Forever
    There's Nothing That I Really Rather Do
    Goodbye She Said, I'll Miss You Later
    And I Hope You Will Find Someone Someday
    Goodbye, Goodbye

    I Came Alone With Just A Toothbrush In Hand
    As London Fog Became The Air
    Without No Warning Without No Trace
    You Came And Went Just Like Storm

    There's Nothing That Can Last As Forever
    There's Nothing That I Really Rather Do
    Goodbye She Said, I'll Miss You Later
    And I Hope You Will Find Someone Someday
    Goodbye, Goodbye


    [상처] : 2004 / Hahndaesoo Corp

    01. 상처
    02. No Control
    03. 바람과 나 (원곡 : 1집)
    04. 행복의 나라 (원곡 : 1집)
    05. Black Is The Color (아일랜드 민요)
    06. Oh, Shenandoah (미국 민요)
    07. Get Together (Dino Valente 작사/작곡, The Youngbloods)
    08. If You Want Me To (원곡 : 3집)
    09. 먼지
    10. 아침이슬 (김민기 작사/작곡, 김민기)

    [상처] 참여자
    한대수 - 작사, 작곡, 사진, 기타, 하모니카, 카주, 병, 발
    이우창 - 피아노, 신디사이저
    이정엽 - 기타 (If You Want Me To)
    김도균 - 기타 (상처)
    하찌 - 기타 (Get Together)
    허진호 - 베이스
    오종대 - 드럼
    정광진 - 트럼펫
    홍순달 - 색소폰
    조윤정 - 바이올린
    김현보 - 만돌린
    이혜선, 최미선, 한미영 - 코러스
    Lynda Cullen - 보컬, 기타 (Black Is The Color)

    01. 상처 5:53 한대수 작사 작곡
    자기의 부인이 알콜과 마약 중독에 빠져있을 때 남편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한다. 고칠 수 없는 상처다

    02. no control 5:26 한대수 작사 작곡
    내가 57살때 내가 남을 control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마누라도, 내 친구도,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싶지만 조지 부시도 이라크를 control하려 하지만 결국 할 수 없다. 이 노래를 들어야 한다

    03. 바람과 나 5:13 한대수 작사 작곡 [원곡: 1집]
    이우창 jazz 편곡의 걸작이다

    04. 행복의 나라 6:11 한대수 작사 작곡 [원곡: 1집]
    내가 어쿠스틱 jazz 밴드와 10번 공연을 했는데, 꼭 녹음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다. 따뜻하다

    05. black is the color 7:15 아일랜드 민요
    작자 미상의 아이리쉬 곡. 너무 아름답다. lynda의 술에 젖은 목소리는 melanie safka를 연상케 한다. 나는 수천 번 죽는다. 그녀의 입술은 장미꽃의 잎, 그녀의 미소, 그녀의 이쁜 손. 나는 그녀가 서있는 이 땅을 끝없이 사랑한다. 영국에게 언어까지 빼앗기고 지배당한 아일랜드의 슬프고 아름다운 시와 음악이다. 우리 나라의 "아리랑"이다

    06. oh, shenandoah 2:17 미국 민요
    미국 개척자 시대의 작자 미상의 아름다운 곡

    07. get together 4:41 dino valente 작사 작곡 [원곡: the youngbloods]
    dino valente 작곡이며 1967년 the youngbloods가 크게 히트시킨 히피 시대의 anthem이다. 사랑과 평화의 주제가였으며 현재 죽음과 파괴의 길로 가는 우리의 세계가 가져야 할 꼭 필요한 요소다

    08. if you want me to 3:57 한대수 작사 작곡 [원곡: 3집]
    '무한대' 앨범의 록 편곡보다 그냥 내가 원초적으로 구상한 acoustic으로 가고 싶었다

    09. 먼지 4:19 한대수 작사 작곡
    이것이 '현재의 나'다

    10. 아침이슬 3:19 김민기 작사 작곡
    김민기가 어느날 전화했다
    "형님, 제 노래 부르시면 영광이지요"
    나는, "민기씨 명곡을 부르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술 한 잔 합시다"


    이번 저의 10집 '상처'를 가능케 하신 이우창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89년 이우창씨가 19살 때 뉴욕에서 만나 '천사들의 담화'를 만든 이후로 서울서 이루어진 두 번째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 음반에 참여하신 세계적인 음악인들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전쟁과 죽음으로 악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슬픕니다. 이 음악이 여러분들의 위로가 되고 흥겨운 가락이 되길 빕니다. 음악이야말로 우리를 고뇌스런 삶에서 해방시켜줍니다. 물론 순간적으로. 하지만 모든 순간들이 이어지면 영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끝으로 저의 고장난 몸을 고쳐주신 신규호 박사님과 세브란스 섹시 나이팅게일들에게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땅콩베리머치! 여러분 즐기슈! peace...
    - 2004년 4월 한대수

    [멀고먼-길] : 1974 / 신세계레코드 세션 : 한대수(v, g, kazoo, har), 정성조(key, flute), 임용환(g), 조경수(b), 권용남(d), 최동휘(cello) 1968년 귀국하여 국내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이후 6년만에 내놓은...
    ☆☆☆☆☆ | , 언더, 이달의 뮤지션, 한대수

  8. [Masterpiece] : 2000 / 신세계

    본 앨범은 한대수의 최고작인(각각 70년대와 8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인) [멀고먼 - 길]과 [무한대]가 합본체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정성스러운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친 결과 [멀고먼 - 길]은 완전히 새로운 앨범이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베스트 앨범으로 꼽는 앨범들이 온전한 상태로 다시 발표되었다는 점이 기쁘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의 활동에 비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한대수에게 우리사회가 그의 작품을 복구하는 작업을 선사했다는 것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대수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많은 모던포크 뮤지션들과 현재 사회적인/경제적인 상태를 비교해보았을 때 유독 그만 정당한 대우를 못 받고 있는 듯 하다.

    4집 재판 커버


    [기억상실 / 천사들의 담화] : 2000 / 도레미

    4집과 5집의 합본.


    [다큐멘타리 한대수 - Music & Life : DVD] : 2003 / Cinewise Film

    감독 : 장지욱, 이천우
    시간 : 124분 (본편 80분 + 부록 44분)
    출시 : 2003년 3월 - 스타맥스
    가격 : 22,000원

    설명 :
    - 2001년 5월, '행복의 나라로' 합동공연을 위해 일시 귀국한 한대수의 여정을 담은 기록
    -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초청작
    - 2002년 10월 극장개봉
    - 80분의 본편에 더해 총 44분의 부록이 추가됨


    한대수가 말하는 한대수 음악

    1집 <멀고 먼 길>(1974) “기특함. 녹음작업을 전혀 몰랐고 연주자들도 거의 없던 시절 전부 라이브로 녹음. 어떻게 녹음을 끝냈는지조차 모르겠다.”

    2집 <고무신>(1975) “잃어버린 자식.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린 음반 사진이 `반체제'라는 이유로 한달만에 판매금지. 희귀본이라고 100만원에 팔리기도 한다.”

    3집 <무한대>(1989) “눈물. 14년만의 음반인데 영어 가사 때문에 판매금지. 첫 아내와 이혼 뒤 우울함과 녹음실 부근 최루탄 탓에 눈물 많이 흘렸다.”

    4집 <기억상실>(1990) “아쉬움. 국내 최초로 시도된 재즈 음반이었으나 당시 재즈를 아는 사람들이 적어 거의 팔리지 않고 잊혀져버렸다.”

    5집 <천사들의 담화>(1991) “실험. 내가 생각해도 전위적이라 느껴질 정도의 파격음악인 `미니멀리즘' 음반. 모두 `이상하다'는 반응이어서 일본에서 발매.”

    6집 <1975 고무신~1997 후쿠오카>(1999) “죽었다 살아난 자식. 원본 테이프도 없는 상태에서 겨우 복각했다. 후쿠오카 공연 실황을 함께 담았다.”

    7집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1999) “다시 하드록. 이성을 상실한 반역의 시대를 정통 하드록으로 노래. 재미교포 도움을 얻어 독립레이블로 뉴욕에서 발매.”

    [Masterpiece] : 2000 / 신세계 본 앨범은 한대수의 최고작인(각각 70년대와 8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인) [멀고먼 - 길]과 [무한대]가 합본체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정성스러운 리마스터링 과정을...
    ☆☆☆☆☆ | , 언더, 이달의 뮤지션, 한대수
  9. [상처]


    "전쟁과 죽음으로 악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슬픕니다. 이 음악이 여러분들의 위로가 되고 흥겨운 가락이 되길 빕니다. 음악이야말로 우리를 고뇌스런 삶에서 해방시켜줍니다. 물론 순간적으로. 하지만 모든 순간들이 이어지면 영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한대수)


    미트볼을 넣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 요리를 즐기는 한대수씨의 손님접대용 음식메뉴 중에 하나이다. 이제 한국에 정착해서 살기로 결정한 그에게, 그리고 혼자 사는 그에게 요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겠지만 지인들에게 손수 요리를 해주는 것에 자그마한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작년인가에 처음으로 그 음식 대접을 받았는데, 그가 내게 자신의 집에 오면 그 음식을 선사하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예의상이라도) 요리에 대한 호평'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의 집에서 제대로 된 스파게티 요리법을 처음으로 목도한 바(토마토소스와 미트볼을 넣고 1~2시간을 약한 불에 끓여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또한 스파게티를 먹기까지 소스 끓이는 냄새만 맡으면서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했기 때문에 안 맛있을래야 안 맛있을 수 없었겠지만 어쨌든 내가 여태까지 먹어본 최고의 스파게티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스파게티를 먹는 내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 그 다음 방문에서도 같은 스파게티를 대접받았다. 한대수씨는 나와 같이 있던 사람의 격찬에 고무되었는지 음악으로는 돈이 되지 않으니 '먹고살기 위해서' 스파게티집을 차려야겠다는 얘기도 했고,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웃었지만 속으로는 씁쓸했다.(이는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대수씨는 자신과 함께 음악 작업한 뮤지션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편인데(이번 [상처] 부클릿에도 "이 음반에 참여하신 세계적인 음악인들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도 '최고의 음악평론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서 매우 겸연쩍게 만든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존경(아티스트로서의)을 표하는 그와 같은 뮤지션에게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고, 처음에는 우쭐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한데 자신의 지인들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한대수팬클럽 제1대 회장을 소개할 때는 "천재 프로그래머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그의 독특한 '말 스타일'로 여기고 있다. 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얘기한 "이 음악이 여러분들의 위로가 되고 흥겨운 가락이 되길 빕니다. 음악이야말로 우리를 고뇌스런 삶에서 해방시켜줍니다. 물론 순간적으로. 하지만 모든 순간들이 이어지면 영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라는 부분을 평소에도 말하는 방식에서 적용하고 있다고나할까.

    [Eternal Sorrow] 관련 사진


    8집 [Eternal Sorrow](2000/크림)부터는 음반을 내는 것 자체가 '운이 좋아서'가 되어버린 '최고의 음악가'인 그가 지난 4월에 10집 [상처]를 내고 콘서트까지 마쳤다.(그가 내게 '최고의 음악평론가'라고 얘기를 해주니, 나 또한 그에게 답례로써 '최고의 음악가'라고 소개를 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했다.^^) 그리고 [Eternal Sorrow]처럼 이번 [상처]도 '마지막 앨범'일 것이라는 소개문구가 돈다. 지난 8집은 타이틀도 심상찮게 '영원한 고독'이면서 홍보문구마저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고 해서 매우 착찹한 심정으로 그 앨범을 들었는데, 다행히도 이후 [고민 Source Of Trouble](2002/풍류)이 나오고 또(?) 이번에 [상처]가 나오면서 앨범제작사의 '홍보문구'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대수씨에게 지난 8집에 이어서 또 '마지막 앨범' 운운하면 어떻게 하냐고, '양치기소년'이 되지 마시라고 얘기를 하니 "그래? 그렇게 나왔단 말이지"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봐서는 짐작은 하고 있을지언정 정확하게는 몰랐던 것 같다. 여기서의 그와 (인터뷰)질문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상에서의 문제는 이런 것 같다. "앞으로 음반을 내기가 힘들 것 같다. 내 음반을 내줄 제작자가 없다. 그리고 노래를 만들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그의 말을 '창작 종료 선언'으로 단정지어서 받아들였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의 말은 "창작도 예전처럼 잘 안되지만, 음반을 내고 싶어도 '제작자본'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이고, 여기 숨어 있는 뜻은 "그러니 이런 나의 상황을 널리 알려서 제발 내 음반을 내줄 수 있는 제작자 좀 붙게 해달라. '한국 최고의 음악가'가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일 것으로 짐작한다.(여기서 '한국 최고의 음악가'라는 말은 앞에서처럼 '답례'도 아니고, 그에 대한 나의 평가이다. 제대로 된 창작자로써는 '최고령'이고, 아직도 그 창작 태도나 밀도가 뛰어나니 '최고'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오랜 동안 곁에서 지켜 본 바에 의하면 그런 짐작을 충분히 가능케 한다.

    [멀고 먼 길] 재판


    나는 지금 돌려서 얘기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이너들이 갖는 분노를 글에 담으려는 나는 한대수의 이번 [상처] 음반을 대하면서 또 다시 안타까운 마음과 분노가 교차한다. 먼저 그에 대한 여전히 지난한 평가나 다루어지는 방식과 빈도에 불만이 든다. 70년대에 활동한 동년배의 뮤지션들과 비교할 때, 거론하는 뮤지션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이지만, 아직도 정규 앨범 단 한 장을 내놓은 김민기와 그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한다든지(김민기의 1집이 명반이라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 김민기, 이주원, 하덕규가 제공한 노래들이 그녀의 최고작이었던 양희은과 같이 거론하는 행위 같은 것은 적절하지 않다. 거기다가 단지 비슷한 연배에 포크 음악을 했다는 것만으로 '청년(문화)포크'의 일원으로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등과 동일선상에 놓는 행위는 매우 적절치 않다. 한마디로 '정신'이 다르고 '작품'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얘기할 꺼리가 있겠는가? 60,70년대 한국록을 '사료'로써 다룰 때는 신중현, 키보이스, 히식스 등등 많은 뮤지션들을 얘기할 수는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작품'으로 평가할 때는 신중현과 산울림, 사랑과평화 정도 이외에는 여타 얘기할만한 뮤지션들이 별로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들은 기본적으로 시기심이 강하다. 나도 그렇다"라고 밝힌 적이 있는 한대수로써는 동년배에서 김민기, 이주원, 조동진 정도 이외에는 이렇다하게 '시기심'을 느낄 대상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의 첫 질투 대상이었던(?)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이번에 리메이크하고, 이에 대해 "김민기가 나의 곡 '바람과 나'를 훌륭하게 부른 데 대한 보답이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명절 때라도 TV에 나오는 가수들은 엉뚱한 사람들이고, 한대수처럼 [멀고 먼 길]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창작의 새로움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화석'(살아있는 '전설'이 아니다! 현재 그가 받고 있는 대접을 생각해 보라)은 죽어야만 장례식장에 걸린 사진이나마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한국의 위대한 뮤지션은 지금 먹고살기 위하여 '스파게티집' 차릴 궁리나 하고, 자기 음반을 내줄 수 있는 제작자를 간절히 찾고 있는데 세상은 너무 무심하고, 예의도 없다. 이게 내가 갖는 분노이고, 그 역시 가질 분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의 가치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있는 것일까?

    [무한대]


    "한대수씨에게 많이 배웁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은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죠."(이승열)
    "모든 예술행위는 지루함을 준다면 죄다. 음악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영역이므로 더 실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내 경우도 '물 좀 주소' 하나 가지고 계속할 수 없지 않은가."(한대수)


    앨범 부클릿에 쓰인 "이번 저의 10집 [상처]를 가능케 하신 이우창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89년 이우창씨가 19살 때 뉴욕에서 만나 [천사들의 담화]를 만든 이후로 서울서 이루어진 두 번째 작업입니다"라는 글귀를 보면 알겠지만, 이번 앨범은 프로듀싱에서부터 유통에 이르기까지 이우창이 신경을 써주었다. [무한대](1989) 앨범에서 당시 무명 기타리스트였던 자신을(손무현, 헤비메틀밴드 외인부대 출신)을 발굴하여 세션에 참여시킨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이후 손무현은 김완선 5집 프로듀서와 세션을 기점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손무현이 8집 [Eternal Sorrow]가 나올 수 있도록 물심양면 힘을 써준 것과 이우창의 경우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우창의 경우도 감사와 존경을 동시에 보여준 것이라고 여긴다.

    그간 참 지워지지 않는 한대수의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기인'과 '(박정희)체제 반항적' 이미지이다. 이는 한국의 매체에서 아직도 그의 노래를 얘기할 때 <물 좀 주소>나 <행복의 나라>만을 거론하는 것과 비슷한 무신경과 태만에 대한 징표이다. 한국의 인디씬을 어렵게(!) '새로운 음악창작에 대한 보고 또는 가능성'으로 보기보다는 쉽게(!) '저항, 아마추어리즘'으로 보는 경향과 다르지 않다.

    그는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바람과 나> <행복의 나라>와 같은 식으로 계속 했다면 3집 정도 나온 뒤 팬들은 다 떠났을 겁니다. 음과 가사를 결혼시켜 어떻게 하면 새로운 자극을 줄 것인지를 늘 고민합니다"라고 말하는 한국에서 창작 뮤지션의 귀감이다. 즉, 한국의 후배 뮤지션들은 '창작자의 태도'에 있어서 만큼은 그에게 본받을 필요가 있는 올바른 선배 뮤지션이다. 그리고 그가 발표한 10장의 정규 앨범들이 보여준 장르적인 다양함과 신선한 시도(최근작만 보더라도 [고민]에서의 <호치민>이나 [상처]에서의 <먼지>와 같은 랩이 결합된 노래들. 김용옥교수가 그 <호치민>을 듣고 "내가 2시간 강의할 것을 단 5분의 노래로 보여준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창작의 밀도는 한국에서는 전대미문의 성과이다.

    여태까지 발표한 음반들 중에서 떨어지는 것은 프로듀서 잘못 만나 만든 7집 [이성의 시대·반역의 시대(Age of Reason·Age of Treason)] 밖에는 없다. 나는 그의 <행복의 나라>와 함께 왜 <One Day>, <If You Want Me To>, <Headless Man>, <As Forever> 같은 노래들이 얘기되지 않는지 의문이다. 특히 15년만에 활동을 재개하면서 만든 <One Day>나 지난 앨범에 담긴 후반기 걸작 <As Forever>는 그해의 한국대중음악 베스트싱글에 꼽힐만한 노래들이었다. 이번 앨범 [상처]에서도 <상처>나 <먼지>와 같은 신곡들은 역시 뛰어나다. <먼지>를 소개하면서 "이것이 '현재의 나'다"라고 얘기하고, <상처>를 소개하면서는 "자기의 부인이 알콜과 마약 중독에 빠져있을 때 남편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한다. '고칠 수 없는 상처'다"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만치 그의 노래들은 아직도 자신에게 솔직하려하고 예술가로서의 한대수는 창작의 방법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다가 타고난 '멜로디메이커'인 그는 거칠게 하모니카와 함께 기타 하나 뚱땅거리며 노래해도 듣는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죽음이란 무서운 것"이라고 읊조리며 시작하는 <먼지>는 중간중간 "결혼도 두번하고, 이혼도 두번하고, 애도 없고, 야구로 따지면 투아웃... 나는 정말 슬픈 할아버지가 되었구나"라는 식의 랩이 나온다. 그의 말에 의하면 최초로 '포크랩' 장르를 개척했다는데(?), 지난 앨범에서 <호치민>을 부를 때 메틀리프 위에 호치민에 대한 평을 읊은 것을 들을 때처럼 신선했다. 그렇지만 그의 노래가 남다르게 들리는 것은 그저 방법상의 신선함 때문만이 아니다. 내용은 세련되지 못하더라도 "바람은 미래 시간은 현재. 먼지는 바람 속에 (휘날리는) 나"라는 말을 하고 싶어하는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에 감동을 받는 것이다. 왜 조용필이 18집 [Over The Rainbow](2003/Phil Records)에서 과감하게 메틀밴드 랩소디 스타일의 곡을 시도하는데도, (최근)어어부프로젝트의 저자가 세련된 시니컬함으로 노래를 만드는데도 별 느낌이 들지 않는지 곰곰이 따져볼 문제다.

    자서전(개정증보판)


    앨범은 신곡 <상처>와 <No Control>을 시작으로 연속되는 <바람과 나>, <행복의 나라>까지 재즈 편곡으로 앨범 앞머리를 장식하는데, 그가 뉴욕에서 만나 친분을 쌓아온 재즈 피아니스트 이우창의 5인조 밴드와 함께 작업한 것은 "부드러움으로 해방감마저 주는 재즈 선율이 '상처' 치유에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상처>의 완성도도 뛰어났지만, 그의 대표곡인 <바람과 나>, <행복의 나라>가 재해석되어 들려진 것은 흥미로웠다.

    앨범 중반부는 해외곡들이다. 아일랜드 민요인 <Black Is The Color>, 미국 민요인 <Oh, Shenandoah>, 영블러드(The Youngbloods)의 고전이자 히피들의 노래인 <Get Together>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일랜드 뮤지션인 Lynda Cullen이 부른 <Black Is The Color>는 알려진 대로 '한국판 아리랑', 이런 소개를 떠나서 정말 아름다움 노래이다. 작년 연말에 한대수가 Lynda Cullen이 소속된 아일랜드밴드와 함께 공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 때도 이 노래를 불렀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원래 아일랜드 노래들은 정서적으로 통하는 데가 있는데, 똑같이 주변 강대국의 침탈을 받았던 역사적인 굴레 때문이 아닌가한다.(아일랜드 사람들, 대개가 영국을 싫어한다.) 그리고 영블러드의 <Get Together>는 최근 한대수의 바램을 담고 있는 것 같은 노래인데, 영블러드의 노래라는 소개만 없으면 그의 노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한대수 노래'이다.

    이어서 <If You Want Me To>는 원래 3집 수록곡이고, 원곡은 손무현이 참여한 록세션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어쿠스틱 버전으로 바뀌었다. 그의 숨은 명곡이다. <먼지> 다음으로 나오는 김민기의 <아침이슬>은 김민기가 자신의 곡을 부른 것에 대한 답례로 부른 것이자, 음악동료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라고 여겨진다. 이 곡에는 "김민기가 어느 날 전화했다. '형님, 제 노래 부르시면 영광이지요' 나는, '민기씨 명곡을 부르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술 한 잔 합시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상처] 부클릿 뒷면


    [상처]의 재킷 사진은 그의 다리 X-ray 사진이다. 작년 늦여름에 사고로 다리 골절을 당했고,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한달간을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앨범 재킷 앞면에는 다리 X-ray 사진이, 뒷면에는 병실에 앉아 있는 모습과 여자 간호원들이 휠체어를 밀어주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대해서 역시 한마디를 아끼지 않는데, 다음과 같다.

    "끝으로 저의 고장난 몸을 고쳐주신 신규호 박사님과 세브란스 섹시 나이팅게일들에게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땅콩베리머치! 여러분 즐기슈! Peace..." (2004년 4월 한대수)

    [고민]


    * [상처](2004/hahndaesoo corp/서울음반)
    01. 상처
    02. No Control
    03. 바람과 나 (원곡 : 1집)
    04. 행복의 나라 (원곡 : 1집)
    05. Black Is The Color (아일랜드 민요)
    06. Oh, Shenandoah (미국 민요)
    07. Get Together (Dino Valente 작사/작곡, The Youngbloods)
    08. If You Want Me To (원곡 : 3집)
    09. 먼지
    10. 아침이슬 (김민기 작사/작곡, 김민기)

    * [상처] 참여자
    한대수 - 작사, 작곡, 사진, 기타, 하모니카, 카주, 병, 발
    이우창 - 피아노, 신디사이저
    이정엽 - 기타 (If You Want Me To)
    김도균 - 기타 (상처)
    하찌 - 기타 (Get Together)
    허진호 - 베이스
    오종대 - 드럼
    정광진 - 트럼펫
    홍순달 - 색소폰
    조윤정 - 바이올린
    김현보 - 만돌린
    이혜선, 최미선, 한미영 - 코러스
    Lynda Cullen - 보컬, 기타 (Black Is The Color)

    * 한대수 Discography
    - 멀고먼 - 길 (1974/신세계)
    - 고무신 (1975/신세계)
    - 무한대 (Infinity) (1989/신세계)
    - 기억상실 (1990/뮤직디자인)
    - 천사들의 담화 (With 이우창) (1991/삼화레코드)
    - 1975 고무신 서울 ~ 1997 후쿠오카 라이브 (1999/도레미)
    -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 (1999/감미)
    - Eternal Sorrow (2000/크림)
    - 고민 Source Of Trouble (2002/풍류)
    - 상처 (2004/Hahndaesoo Corp/서울음반)

    - 기억상실 / 천사들의 담화 (2000/도레미)
    - Masterpiece (2000/신세계)
    - 다큐멘타리 한대수 - Music & Life [DVD] (2003/Cinewise Film)

    [상처] "전쟁과 죽음으로 악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슬픕니다. 이 음악이 여러분들의 위로가 되고 흥겨운 가락이 되길 빕니다. 음악이야말로 우리를 고뇌스런 삶에서 해방시켜줍니다. 물론 순간...
    ☆☆☆☆☆ | , 가슴 칼럼, 상처, 언더, 한대수

  10. 심심찮게, 신화 속 영웅이 운명을 걸고 싸우던 괴물이 현대엔 국가와 기업으로 변모한 것을 문학과 영상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극장에서 몇 시간 동안 팬터지를 즐기면서도 밖엔 유리로 도배된 빌딩과 아스팔트와 장난감처럼 생긴 자동차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산업화는 인성을 천박하고 폭력적으로 만들었다. 핵 확산 방지 정책도, 전면 파괴력을 과시하여 공포를 줌으로써 적을 억제한다는 의미의 전쟁억지력을 갖춘 상태에서 군비를 관리하는 차원일 뿐임을 안다. 무기로 무기의 사용을 제압하고 독재로 독재를 견제하는 모순의 절정이었던 80년대에 스래쉬 뮤지션들은 그에 저항하는 영웅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무대에서만. 돈키호테처럼. 차츰 의미는 변하여 이젠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의식되었던 부분을 대신 말해주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려 깊고 과묵한 대변인들도 소박한 영웅으로 불린다. 그러나 여전히, 신화와 전설은 비현실적이라는 시대에 숨겨진 것들을 파헤쳐 들이미는 탐구자들이 존재한다. 긴 시간 갇혀있던, 안개처럼 서서히 출몰하여 이내 휘감아버릴 비의를 깨우고, 정적과 비밀의 세계로 음악적 영토를 확장하여 어둠의 아름다움(Dark Beauty)을 상기시켜주는 자들이 있다.

    간과되지 않을 존재성을 갖는 세계들이 모인 다원화는 현대의 화두이다. 그렇게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 예술사적으로 의의가 크고, 블랙/데쓰메틀, 넓게 익스트림 뮤직도 그렇게 주요한 영역을 점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출발은 블랙 새베쓰(Black Sabbath) 이후 베놈(Venom)의 [Black Metal](`82)과 [A War With Satan](`83)을 기점으로 80년대 미국 스래쉬의 부상과 함께 슬레이어(Slayer)의 [Hell Awaits](`85), 포제스트(The Possessed)의 [Seven Churches](`85)로 원형이 제시되었고, 유럽에선 스웨덴의 바쏘리(Bathory)가 발표한 [Under the Sign: The Sign of the Black Mark](`86), 그리고 크리에이터(Kreator)의 [Pleasure to Kill](`86)을 위시한 독일 삼인방의 명작들을 통해 토대를 이루었다. 데쓰/블랙은 이 때 ‘장르적으로’ 형성되는 전기를 맞았다. “염오(厭惡-야만·사물·잔인)의 세계가 음악으로 표현된 것이 데쓰메틀이라면 블랙메틀은 사악(邪惡-죄악·요괴·극악)의 구현”이라는 차이가 있으나 태생에서는 거의 한 몸에 교차하는 시기가 있었고, 그 때가 80년대 중반이다. 위 앨범들이 양식과 어법, 그리고 태도와 무드를 제공했으며 실제로 상당수 데쓰/블랙 뮤지션들이 상기한 작품들에 경의를 품고 음악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에 결코 누락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름이 셀틱 프로스트(Celtic Frost)이다.

    토마스 워리어(Thomas Gabriel Warrior)


    Ⅰ. 길지 않은 역사, 길게 드리운 그림자

    198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토마스 워리어(Thomas Gabriel Warrior)-Thom G Warrior로도 불리며 본명은 Thomas Gabriel Fischer 또는 Tom Fischer로 통한다-가 스티브 워리어(Steve Warrior, 베이스), 그리고 브루스 데이(Bruce Day, 드럼)와 함께 헬해머(Hellhammer)를 조직했고, 후에 셀틱 프로스트의 창단멤버들이 되는 마틴 에릭 에인(Martin Eric Ain, 베이스), 스티븐 프리스틀리(Steven Priestly, 드럼)와 함께 헬해머의 이름으로 데모를 내고 씬에 전설을 만든다. 이들은 콥스페이팅을 하고 중세의 무기들로 무장함으로써 시각적으로도 모종의 ‘선언’을 했으며, 1983년 말 당대 유럽 메틀 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레이블 노이즈 레코드(Noise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컴필레이션에 참여하면서 레코드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욱 실험적이고 사악한 음악을 담을 모체의 이름으로 선택한 것이 셀틱 프로스트(Celtic Frost)였다. 베놈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당대 스래쉬의 물결 속에서 [Morbid Tales](`84)를 발표했는데, 스래쉬와 데쓰의 원형을 함께 담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여성보컬의 활용과 ‘소리’의 실험도 시도되었다.

    이후 셀틱 프로스트의 명작들을 함께 만들 리드 세인트 마크(Reed St. Mark, 드럼)를 영입하여 라인업을 다시 갖추고 1985년에 [Emperor's Return]을 작업했으며 이 EP는 [Morbid Tales]와 합본으로 남겨진다. 그 해 블랙 스래쉬의 역사적인 작품 [To Mega Therion]을, 그리고 1987년에는 표면적인 광폭함은 완화되었으나 음침한 실험으로 칠해진 [Into the Pandemonium]을 발표하면서 혼돈과 불경스러움으로 가득한 사타닉/아방가르드 메틀의 씨를 뿌렸다. 그리고 토마스 워리어에 의해 기타에 올리버 암베르그(Oliver Amberg), 베이스에 커트 브라이언트(Curt Bryant), 그리고 다시 스트븐 프리스틀리(Steven Priestly)가 불러들여져 라인업이 재편되는 단계를 거쳐 1988년 [Cold Lake]를 발표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앨범은 오점으로 남고 만다. 물론 [Cold Lake]를 졸작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기존 셀틱 프로스트의 성격과는 동떨어진 스타일이었고 사상의 표현과도 같은 외양의 변화도 그들다운 것은 아니었다. 또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려는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심도 그들에게 호의적으로 작용할 수는 없었다.

    다시 전성기 시절의 라인업에 전작의 멤버들 중 남은 커트 브라이언트(베이스에서 기타로 포지션을 이동)도 함께 만든 1990년작 [Vanity/Nemesis]로 노선을 복구하는 듯 보이기는 했으나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사실 한 번 등 돌린 지지자들을 돌려세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고 음악계에서 그것에 성공한 사례도 흔치 않다. 1992년에 편집앨범에 가까운 [Parched With Thirst Am I And Dying]을 끝으로 셀틱 프로스트의 레코드는 중단되었으며 1993년, 10년간의 여정은 끝을 맺게 된다. 토마스 워리어는 그 후에 프로젝트 아폴리온 선(Apollyon Sun)으로 음악작업을 재개하긴 했지만 전처럼 적극적이지는 않았기에 실질적으로 막후로 퇴장한 셈이다. 그러나 셀틱 프로스트의 작품들은 테크노, 소프라노, 그로테스크한 클래식 스트링을 도입하는 파격적인 실험집단의 전위가 되었고, 90년대 들어 메틀의 전위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가 다양한 스타일과 풍성한 음악적 결실을 맺게 되는 흐름에 기여했다. 특히 스래쉬의 전성기인 80년대를 가치 있게 만든 뮤지션들이면서 초기 앨범들을 통하여 데쓰/블랙메틀이 구체화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는데, 그 대표적인 앨범이 [To Mega Therion]이다.


    Discography

    1984 [ Morbid Tales ]
    1985 [ Emperor's Return ] (ep)
    1985 [ Morbid Tales + Emperor's Return ]
    1985 [ To Mega Therion ]
    1986 [ Tragic Serenades ] (ep)
    1987 [ Into the Pandemonium ]
    1988 [ Cold Lake ]
    1989 [ Vanity/Nemesis ]
    1992 [ Parched with Thirst Am I and Dying ]

    [ To Mega Therion ]

    Ⅱ. Black, Doom, Death의 원형을 품은
    [ To Mega Therion ] (1985/Noise·2004/사우론)

    스산함이 전위적 시도들과 거칠고 원초적인 사운드를 입고 표출된 [To Mega Therion]은 데쓰/블랙메틀의 형성에 과도적이면서도 중대한 영향을 남겼다. 혼합되어있음에도 원형을 간직하고, 그 자체가 원형을 이룬 사운드에는 공포와 경외심을 유발하는 사악함과 장엄함이 배어있다. 그것은 형식 자체에 분명한 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인데, 돌발적인 소리의 개입을 통한 효과와 거듭되는 전개상의 변칙은 이성과 기성 질서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를 통해 얻으려는 게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토마스 워리어는 사타니스트였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여기서의 사타니즘은 신을 또 다른 악신(惡神)으로 대체하는 유치한 반항이 아니라, 크로울리(Aleister Crowley) 등을 호명할 수 있는, 반 기독교적이면서 세속·인간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다. 거기에 오컬티즘(Occultism)의 신비주의적 이미지가 씌워져 표현되었고, 이는 앨범의 타이틀에도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씨리온(Therion)이 상징하는 바는 부연이 필요 없을 텐데, 프랜시스 킹(Francis King)이 크로울리(Aleister Crowley)에 대하여 쓴 책이 『Megatherion』이라는 것은 우연일까? 또 실험적인 크로스오버로 메틀의 지평을 넓히는 데 가담하게 될 스웨덴의 씨리온(Therion)도 <To Megatherion>이란 곡을 만들었으니….

    위압적인 인트로 <Innocence and Wrath>에 이어 파괴적인 질주가 이어지는 <The Usurper>와 <Jewel Throne>은 원초적, 야만적이라는 말이 어디에 쓰여야 적당한지를 보여주면서 데쓰메틀의 원형을 들이댄다. 그러나 템포는 빠를지라도 오히려 밤을 배회하며 바닥을 훑듯 천천히 기어가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는 느낌이고, 이 불길한 스래쉬 리프들은 가슴을 짓누르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음들의 연결로 이루어진다. 이는 블랙메틀에서 쓰이게 될 스케일이며, 음습한 질주가 제동이 걸리는 <Dawn of Meggido>에도 잘 드러나 있다. 건조한 디스토션 파열음과 함께 혼돈과 공포를 조성하는 그로테스크한 스트링도 위력적인 <Dawn of Meggido>는 데쓰적 둠을 앞서 제시한 곡이라 할 수 있고, <Necromantical Screams>에서는 더욱 과감한 시도가 더해졌다. 소프라노와 스트링, 그리고 팀파니를 통해 이루어진 장엄한 무드를 바탕으로 변칙적으로 전개되는 리프들과 예고 없이 돌출 하는 음향을 배합하여 분열적인 둠 사운드를 조성했다. 블랙 새버쓰(Black Sabbath)의 재현으로서의 둠의 출현인 캔들매스(Candlemass)나 세인트 바이터스(Saint Vitus)와 동시대의 것이고, 90년대 둠의 주류가 데쓰/블랙적 요소를 강화한 것을 생각하면 셀틱 프로스트의 이 곡들도 둠을 말할 때 간과되어선 안 된다.

    창백한 여성보컬이 단발적으로 등장하는 <The Usurper>에서와 같은 효과는 <Fainted Eyes>의 베이스와 드럼의 산발적인 돌출에 의한 음향적 효과로도 나타난다. 이렇게 [To Mega Therion]은 ‘소리의 운용’을 통한 효과를 적절히 이용하고자 했다. 토마스 워리어가 락시 뮤직(Roxy Music)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속뜻은 음향실험에 관심이 컸다는 것이다. 이는 [Into the Pandemonium]에서 더욱 적극적이 되지만 [To Mega Therion]에서도 노이즈, 비명, 현악과 심벌의 왜곡과 혼합이 전위적으로 진행된 <Tears in a Prophet's Dream>을 통해 시도되어 있다. 셀틱 프로스트가 이루어놓은 결과는 데쓰/블랙 뿐 아니라 6년 후 패러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의 [Gothic](`91)에서 둠·고딕적으로 재현되며, 실제로 [Gothic]에 수록된 <Gothic>, <The Painless>, <Desolate> 같은 곡들은 셀틱 프로스트의 곡들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 그렉 맥킨토시(Greg Mackintosh, Paradise Lost)의 프레이즈가 고딕/뉴웨이브의 신쓰 라인을 기타로 옮긴 것이기도 해서 [Gothic]이 흥미로운 것인데, 고딕메틀을 클래식과 소프라노의 도입 같은 게 아니라 고쓰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임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발견하지 못하는 건 의아한 일이다. 기타 리프로 응용된 고딕터치와 함께, 누가 더 먼저 했느냐는 수준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그리고 베놈의 [Black Metal], 캔들매스의 [Epicus Doomicus Metallicus](`86), 오페라 나인(Opera Ⅸ)의 [Gothik](`90), 베들레헴(Bethlehem)의 [Dark Metal](`95)과 같은 ‘선언적 의미’, 그리고 실질적인 ‘파급력’을 고려한다면 패러다이스 로스트의 [Gothic]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EP [Emperor's Return]을 통해 발표되고 재탄생한 <Circle of the Tyrants>는 블랙·둠의 기운이 내비치는 동시에 데쓰메틀과 횡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Dawn of Meggido>와 <Necromantical Screams>와 함께 이 앨범의 명곡이다. 이 곡은 오비츄어리(Obituary)가 자신들의 명작 [Cause of Death]에서 커버했음은 물론, 셀틱 프로스트에 의 헌정앨범인 [In Memory of Celtic Frost]에선 오페쓰(Opeth)가, 또 스웨덴의 루시퍼리온(Luciferion) 등도 다시 연주하게 된다. 그리고 [Morbid Tales]에서 재생산되어 EP [Tragic Serenades](`86)에 수록된 곡으로 여성의 내레이션이 서늘한 <Return To The Eve>가 보너스 트랙으로 실렸는데, 여기에서처럼 상이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은 훗날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90년대로 넘어가 여러 밴드들에게 차용되어 하나의 양식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To Mega Therion]에는 <Eternal Summer>와 <(Beyond the) North Winds>처럼 대조를 이루는 타이틀이 섞여 있으나 앨범의 정서는 일관된다. 차갑고, 광폭하고, 폐선처럼 음산하다.


    Ⅲ. 많은 씨를 한 몸에 품은 붉은 석류였다

    무형공간 시대에 유형성을 띄는 물리적 공간, 의미가 쌍방으로 교류하는 공간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열려있다. 그러나 발언되어지기를 기다려온, 감춰지고 억눌려온 무형의 신비공간들을 발굴해내는 것의 가치도 크다. 소음으로 침묵하고 로(raw) 사운드로 공간감과 에코를 조성하는 [To Mega Therion] 역시 “세계 내에 이미 존재하며 발언되어지길 기다려왔던 것을 끄집어내고, 안개 너머의 것들을 새로운 시각과 방식으로 소환해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에일리언」의 외계괴물의 창조자, 기거(H. R. Giger)의 작품이 이용된 앨범커버아트는 적절하다. “1940년 역시 스위스에서 태어난 그는 영화나 개인작업 뿐 아니라 앨범커버아트에도 손을 대어왔는데, 셀틱 프로스트 외에도 아트로시티(Atrocity), 댄지그(Danzig), 에머슨 레이크 앤 팔머(Emerson, Lake & Palmer), 그리고 데비 해리(Debbie Harry) 등 여러 뮤지션들에게 인상적인 커버아트를 제공했다. 기거는 특유의 가상 존재를 인체 골격을 과장한 무늬로 표현하며, 그가 창조하는 정체불명의 존재나 상징은 치밀한 구조를 갖고 있고 인간 존재에 대한 다의성을 내포한다. '면밀한 괴기미(怪奇美)'는 그로테스크의 중요한 특징인데 그와 함께 이형성(異形性)에 입각하여 기괴한 존재들을 창조해내는 아티스트이다.” 토마스 워리어는 앨범커버아트를 적절하게 선정했고 [Into the Pandemonium]에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의 작품을 이용한 것도 기막힌 선택이었다.

    트렌드가 변해 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영역과 생명력을 획득케 되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의가 있다. 스래쉬와 멜로딕메틀이 그러하듯 한 세대가 흐른 뒤에도 전형성을 따르는 후배들을 진부하고 독창성이 결여된 추종자들이라 말할 수 없게 하는 이유가 ‘장르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80년대는 메틀의 가지치기가 활발했고 유럽 메틀 씬의 혁명적인 진화와 중흥기를 예비한 시기였다. 민족적 경험에 수용의 질과 폭이 있는 것처럼 시대적 경험에도 그러하다. 80년대는 나름의 시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이제 재평가를 통해 고전이라 불러야 마땅할 작품들이 가득했으며, 또한 블랙/데쓰메틀이 장르성을 획득한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유럽을 장기간 지배해온 기독교 문화가 쇠퇴하면서 기독교에 의해 파괴된 북유럽의 신화와 훼손된 민족적 전통을 재발견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복지제도에 의한 무력감을 극복하려는 혜택받은, 또는 배부른 세대의 사고와 맞물리면서 발전하게 될 블랙메틀과 허무적 둠메틀의 상징적인 선구자들도 등장했다. 그 덕에 90년대에 다각도로 실험을 진전시킬 익스트림 씬이 구축되면서 음악적 지평이 확장되었다.

    그 복판에 그들도 있었다. 골수적이고 교조적인 장르의 탄생에 일조를 한 동시에, 경직될 수 있었던 메틀의 표현양식을 무형적인 영역으로까지 광범위하게 확장한 전위이기도 했다. 암흑미학을 추구할 후배들에게 사상적 지표가 되었고, 포용력과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90년대에 만개할 익스트림 씬을 주도한 실험주의자들에게는 표본이 된다. 방향에선 무관해 보일지라도 음악을 치열하게 듣는 이들이라면 경의를 표하는 대상으로 남았으며, 장르에 상관없이 고민하며 실험적 창작활동을 계속하는 뮤지션들에게도 귀감으로 남았다. 앞의 항들에 해당할 [To Mega Therion](`85)과 뒤의 항들에 해당할 [Into the Pandemonium](`87)은 그 정수들이다. 사악한 기운이 거친 질감의 혼돈을 그려내고 그들만의 아우라로 채워진 [To Mega Therion]과, 광폭함은 완화되었지만 음침함이 전체를 장악하며 전위적인 실험이 극대화된 [Into the Pandemonium]은, 많은 씨를 한 몸에 품은 붉은 석류들이었다.

    [ Into The Pandemonium ]


    Ⅳ. 80년대의 전위적(avant-garde) 실험
    [ Into The Pandemonium ] (1987/Noise·2004/사우론)

    15세기 후반, 그로테스크하고 독창적인 작품들을 남겼으나 수백 년이 흘러서야 제대로 평가받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베일에 가려 실루엣만을 볼 수 있는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그는 사후 100년이 지나 펠리페 2세에 의해 가치가 발견되지만 실질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은 19세기말이었니 수백 년을 장막 뒤에 서있어야 했던 셈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시대를 앞선-이런 표현과 인식은 사실 공허한 것이지만- 화가였는데, [Into the Pandemonium]의 앨범커버아트가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작품 ‘빛의 정원’의 일부분이다. 셀틱 프로스트는 그와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스래쉬의 어법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To Mega Therion]의 단호하고 엄혹한 표정이 누그러진 듯이 보이지만 실험정신은 더욱 투철해진 것이 [Into the Pandemonium]이다. 형식을 파괴하고 영역을 넘나드는 아방가르드(Avant-Garde)적 작업은 실험적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고, 토마스 워리어가 언급한 바 있는 데드 캔 댄스(Dead Can Dance) 등의 고딕적 영향이 발현된 작품이기도 하다. ‘데드 캔 댄스’가 레이블 ‘4AD’에서 84년에 [Dead Can Dance]를, 그리고 85년에 [Spleen and Ideal]을 발표했으니 시기상으로 우회적인 공격성과 고딕무드를 본격화한 [Into The Pandemonium]과 연관시켜볼 수 있다. 고쓰락을 새롭게 정의한 ‘데드 캔 댄스’의 탐미적 서늘함을 일부 흡수하여 음침함으로 투사했을 것이고, 이 고딕적 무드의 스트링과 여성보컬의 적극적 활용은 90년대에 메틀의 방법론을 일대 확장시킬 고딕메틀로 연결된다. [To Mega Therion]이 데쓰/블랙의 씨앗을 뿌렸다면, [Into the Pandemonium]은 의식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둠의 양식과 고딕무드를 공유함으로써 둠·고딕메틀의 발전에도 자극을 주었다.

    고쓰와 헤비니스,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으로 범벅된 [Into the Pandemonium]에서 토마스 워리어는 앙칼진 보컬 대신 노멀한 읊음으로 노래하고, 내레이션도 자주 등장시키지만 주술적인 공기는 여전하다. 향상된 사운드와 정돈된 연주에 의한 안정감은 증가한 메이저 진행과 함께 표면적인 스산함을 옅어지게 했다. 그러나 유연함 속에서 전위적 실험은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되었고, 세션으로 기용된 안드리아스 도블러(Andreas Dobler, 기타)와 클로우디아 마리아 모크리(Claudia-Maria Mokri, 여성보컬)는 그 양쪽에 활용되고 있다. 이렇게 안정성과 실험성이 겹쳐지면서 [Into the Pandemonium]은 재차 기묘함을 연출했으며, [To Mega Therion]이 순식간에 엄습하는 검은 구름과 같았다면 [Into the Pandemonium]은 차츰 나타나지만 결국 시계를 완전히 차단해버리고 영영 걷히지 않을 안개와도 같다. 월 오브 부두(Wall of Voodoo)가 82년에 발표한 곡의 리메이크이며, 가벼운 분위기와 익살스럽게도 들리는 코러스의 <Mexican Radio>은 의외의 오프닝이었지만, 절규 대신 체념 섞인 내레이션에 가까운 보컬과 여성보컬, 그리고 클린톤의 기타와 베이스 프레이즈가 부각되는 <Mesmerized>에는 예의 기괴함이 서려있고, 헤비한 <Inner Sanctum>도 질감은 달라졌지만 곡 진행과 성격은 전작 [To Mega Therion]과 연계되어 있다.

    컨셉트가 깔려있으나 트랙들이 묘하게 배치되어 있는 [Into the Pandemonium]에 본격적으로 방점이 찍히는 것은 마틴 에릭 에인이 작곡한 <Tristesses de la Lune>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가녀리거나 고혹적인 여성보컬이 아닌 관능적인 내레이션과 기이한 스트링이 어우러진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은, 죽음의 그림자와 섹슈얼리티가 동거해온 예술사를 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음향과 무드의 실험은 <One in Their Pride>에서 극치를 이루는데, 스네어가 리드하는 중에 무선통신음과 현악의 샘플링, 드럼과 베이스가 믹스되고 있으며, 이는 테크노/인더스트리얼의 방식과 통하는 것이고 지금도 진보적인 여러 장르에서 줄기차게 시도되는 작법이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효과에 민감했음을 알 수 있는 이 <One in Their Pride>는 두 버전으로 실려있으며, 12번 트랙에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을 더욱 강조하고 샘플들을 재배열한 버전이 자리한다. 메틀 밴드로서는 용기 있는 전위적인 시도였고, 이처럼 영역을 파괴하는 아방가르드 노선은 심사숙고하는 후배들, 일례로 90년대 아방가르드 둠의 대표자인 마이 다잉 브라이드(My Dying Bride) 등에 의해서도 재현되었다.

    [To Mega Therion]의 <Innocence and Wrath>처럼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틀 <Oriental Masquerade>도 있지만 곡 내부에서 결합된 <Rex Irae (Requiem)> 역시 대담하다. 그로테스크한 바이올린과 소프라노 등의 크래시컬 요소들이 어두운 메틀과 만나고, 후반의 질주와 함께 혼돈을 이루는 <Rex Irae (Requiem)>은 두 캐릭터의 갈등 고조를 표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역시 후에 여러 심포닉 블랙메틀과 고딕·둠메틀 뮤지션들이 상이한 보컬을 이용해 곡에 드라마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며, 특히 씨어터 오브 트래지디(Theatre of Tragedy) 같은 경우는 아예 남녀 두 캐릭터의 대화를 통해 곡과 앨범 전체를 이끌어 가는 작법을 취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예전의 셀틱 프로스트가 원초적이고 실험적인 스래쉬를 통해 데쓰/블랙의 원형을 그려내고 있었다면 [Into the Pandemonium]은 보다 보폭을 넓혔고, 허기진 자의 핏기 없는 읊조림과 청명한 아르페지오가 인상적인 <Sorrows of the Moon>에서도 발견되듯 고딕·둠메틀의 단서들도 제공한다.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 캔들매스, 세인트 바이터스 등과는 다른 방향에서 ‘의식적이지 않은’ 둠을 연주하고 있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면 어떠한 방식을 수용하여 표출하든 문제되지 않는다는 걸 후대의 순수주의자들은 잊곤 한다.

    리듬이 분화된 하드락에 팝을 뒤섞은 <I Won't Dance (The Elders’ Orient)>처럼 온갖 요소들이 뒤섞여 있지만, 그래도 [Into the Pandemonium]의 중심은 그로테스크를 의도한 다채로운 실험과 느슨한 스래쉬의 결합이다. 클린보컬과 여성보컬의 허밍이 바로 그러한 느슨한 스래쉬를 치장하는 <Babylon Fell (Jade Serpent Ⅰ)>이 그렇고, 이슬람교의 영창(詠唱)으로 열고 닫으며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스토리를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흐느끼는 보컬이 무기력을 불러일으키다가도 템포 체인지로 역동성을 유발하는 <Caress into Oblivion (Jade Serpent Ⅱ)>에서도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는 [Parched with Thirst Am I and Dying](`92)에 실렸다가 본작에 보너스 트랙으로 실린 <The Inevitable Factor>와 고전의 리메이크이며 각각 보컬을 달리한 두 버전의 <In The Chapel, In The Moonlight>에도 연장되어 있다. 심야의 어둠에서 한낮의 비극으로 이동했으며, 토마스 워리어가 셀틱 프로스트 이후에 진행한 프로젝트 아폴리온 선(Apollyon Sun)의 지향을 살펴보면 이 때부터 골수적인 암흑미학과 사타니즘의 추구보다는 유연한 마인드의 ‘실험’으로 창작의 중심을 이동시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셀틱 프로스트의 작품들을 스래쉬의 다양화, 유럽의 메틀의 발전, 데쓰/블랙의 잉태라는 측면에서는 많이 말해지지만 고딕/둠메틀도 제시하고 있음이 간과되곤 하는 점은 아쉽고, 전위적인 시도의 정체, 즉 흔히 있어왔던 변칙적인 전개뿐만 아니라 훗날 여러 장르에서 중시될 음향실험에 세심하게 집중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말해지지 않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이러한 생각은 [Into the Pandemonium]에서 연유한다.


    Ⅴ. 그리고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는 것

    투철한 태도와 실험정신은 시대를 앞선 작품을 낳았고, 바닥을 치고 올라서는 익스트림 뮤직의 가능성을 열어놓기 시작한 [To Mega Therion]과 [Into the Pandemonium]은 고전으로 남았다. 이후 라인업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Cold Lake]에서 위기를 맞았으며, 계속적인 재편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성과를 다시 이루지 못하는 하향곡선 끝에 해체에 이르렀지만, 셀틱 프로스트의 작품들은 이렇게, 지금, 여전히 눈앞에 있다. 간혹 툭 떼어져있는 점들을 임의로 그어 연결하여 계보를 그리곤 하는데, 그 재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고리가 없는 체인을 얼기설기 엮어놓는 것처럼 무책임한 행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셀틱 프로스트의 경우는 다르다. [In Memory of Celtic Frost]에는 메이헴(Mayhem)은 물론이고 엠페러(Emperor), 상기한 오페쓰(Opeth), 그리고 인슬레이브드(Enslaved)와 그레이브(Grave) 등 14개 밴드가 참여해 경의를 표한 바 있다. 재미있는 것은 토마스 워리어의 ‘아폴리온 선’도 <Babylon Fell>로 참여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오비츄어리(Obituary), 세풀투라(Sepultura), 딤무 보르기르(Dimmu Borgir), 이미 말한 루시퍼리온(Luciferion) 등도 셀틱 프로스트의 곡들을 커버했으며, 굳이 커버가 아니더라도 장르와 시대를 초월하여 많은 뮤지션들의 경의를 받고 있음은 수시로 확인된다.

    당대에 남긴 작품과 음악사에 끼친 업적, 그리고 전위적인 실험에 의한 것. ‘실험적’이라는 말 역시 하나의 상업성을 띄게 된 것이 현실이지만 거부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차적인 단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며 지금 그보다 본질적인 것을 말하고 있으니…. 예술적 목적과 행위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이지 이차적인 반응과 의미부여는 변하기 마련이다. 사실 “파격 자체는 실험이 아니다. 실험을 위한 실험도 실험이 아니다.” 그러나 1987년의 이들에게는 치열한 정신이 있었고 목적이 분명했다. 음악적 지평을 넓힘과 감춰진 세계를 여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목적이자 결과였기에 [To Mega Therion]과 [Into the Pandemonium]은 온전히 실험적이다. 셀틱 프로스트는 질서에 의해 치밀하게 조직되어 환상을 파괴하는 실재라는 이름의 환상, 그 속에 들어가 그것이 오히려 환상임을 드러내 보였다. 보이는 것만이 실재하는가, 거기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들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아련한 공포와 밤의 숨겨진 아름다움에 눈을 뜬 어느 늦여름 밤을 기억한다. 창을 열어두지 않고, 커튼을 걷지 않고, 눈을 뜨고 있지 않았다면 달빛이 창을 타고 들어와 침대와 벽에 그려놓은 나뭇가지 그림을 보지 못했을 것이며 젖은 내음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그 날 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심찮게, 신화 속 영웅이 운명을 걸고 싸우던 괴물이 현대엔 국가와 기업으로 변모한 것을 문학과 영상예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극장에서 몇 시간 동안 팬터지를 즐기면서도 밖엔 유리로 도배된 빌딩과 아스...
413-720 경기도 파주시 아동동 283. 팜스프링 아파트 114-504, 발행편집인 : 박준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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