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네트워크 10주년 기념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 기념음반
- 1999~2009년, 지금 ․ 여기 ․ 우리의 노래 모음
1. 임주연 - 가려진 마음
2.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 - 흑백사진
3. 스트라이커스(The Strikers) - Turn Back Time
4. 루네(Lune) - Nevermore
5.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 낯 선 두형제
6. 비둘기우유 - 너의 눈으로 나를 본다
7. 코코어(Cocore) - 해야
8. 이장혁 - 그날
9. 김두수 - 시대는 전사를 거두지 않는다
10. 한대수 - As Forever
11. 강허달림 - 기다림, 설레임
12. 황보령=Smacksoft - 해
13. 코스모스(Cosmos) - 나쁜 피
14. 연영석 - 공장
15. 럭스(RUX) - 전쟁
16. 런 옐로우(Run Yellow) - Astro L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 기념음반 Staff Profile
기획 : 박준흠, 하나
제작 : 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
제작지원 : 일렉트릭뮤즈, 파스텔뮤직
마스터링 : 김민규(일렉트릭뮤즈)
디자인 : 김민정(파스텔뮤직)
all songs compiled by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본 음반은 뮤지션과 음반사의 허락 하에 만들어진 비매품 기념음반입니다.
thanks to
임주연,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 스트라이커스(The Strikers), 루네(Lune),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비둘기우유, 코코어(Cocore), 이장혁, 김두수, 한대수, 강허달림, 황보령=Smacksoft, 코스모스(Cosmos), 연영석, 럭스(Rux), 런 옐로우(Run Yellow), Rubato, Electric Muse(김민규), Dope Entertainment(김윤중), Sha Label(이기용), Cub/Music(이우성), Rubysalon(이규영), Modern Music(P.S.F Records), 풍류(하종욱), Run Music, Smacksoft(최보경), 석기시대(전홍필), 맘대로 레이블, Skunk Production(원종희), Pastel Music(이응민, 한상훈, 김민정), 최규성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 기념음반 Song Profile

1. 임주연 - 가려진 마음
from [Imagination] (2007/Rubato)
작사/작곡 : 임주연
세션 : 임주연(v, piano), 양시온(b, drum prog, pad, string), 임헌일(g), 이훈상(fx loop prog), Janis Lee(cho)

2.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 - 흑백사진
from [Snap] (2009/Electric Muse)
작사/작곡 : 김민규
밴드 : 김민규(g, prog, key, v, cho), 윤주미(v, key, cho)
세션 : 안재한(g), 박태성(b), 윤주현(d), 남선영(cho)

3. 스트라이커스(The Strikers) - Turn Back Time
from [Untouchable Territories] (2006/Dope Entertainment)
작사/작곡 : 스트라이커스
밴드 : 김성환(g, v), 준호(b, v), 원성일(d, v)

4. 루네(Lune) - Nevermore
from [Absinthe] (2009/sha label)
작사/작곡 : 루네
세션 : 루네(v, midi prog, piano, synth, g), 송명훈(d), 스왈로우(g, b)

5.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 낯 선 두형제
from [Huckleberry Finn] (2006/sha label)
작사/작곡 : 이기용
밴드 : 이기용(g, v, mandolin), 이소영(v, g), 김윤태(d)
세션 : 김상우(d), 김진중(b), Luna(tambourine, cho)

6. 비둘기우유 - 너의 눈으로 나를 본다
from [Aero] (2008/Electric Muse)
작사/작곡 : 이종석
밴드 : 이종석(g, v), 함지혜(g, v), 성기훈(b), 이용준(d)

7. 코코어(Cocore) - 해야
from [Relax] (2009/cub/music)
작사/작곡 : 이우성
밴드 : 이우성(g, v), 황명수(g, v, synth), 김재권(b), 정지완(d)

8. 이장혁 - 그날
from [Vol.2] (2008/Rubysalon)
작사/작곡 : 이장혁
세션 : 이장혁(v, g), 김희석(g), 유재인(b), 한지헌(d)

9. 김두수 - 시대는 전사를 거두지 않는다
from [열흘나비] (2007/P.S.F./Modern Music)
작사/작곡 : 김두수
세션 : 김두수(v, g), 김광석(g), 하림(perc), 김효국(synth), 엄태원(trumpet)

10. 한대수 - As Forever
from [고민 source of trouble] (2002/풍류)
작사/작곡 : 한대수
세션 : 한대수(v, g), 이우창(piano), 김인건(g), 배찬우(b), 박동식(d), 오영진(cho), 조아름(violin), 홍이순(violin), 양현진(viola), 유은경(cello)

11. 강허달림 - 기다림, 설레임
from [기다림, 설레임] (2008/Run Music)
작사/작곡 : 강허달림
세션 : 보컬(강허달림), 드럼(민병직, 임길상, 정광철), 베이스(남영국), 기타(김석규, 엄인호, 채수영, 이병윤, 최봉, 김용희, 김기진), 키보드&오르간(안동렬, 오동한), 퍼커션(정훈)

12. 황보령=Smacksoft - 해
from [Shines In The Dark] (2009/SmackSoft)
작사/작곡 : 황보령
세션 : 황보령(v, g), 신윤철(g), 정현서(b), 박진선(key)

13. 코스모스(Cosmos) - 나쁜 피
from [One And Only] (2001/석기시대)
작사/작곡 : 김상혁
밴드 : 김상혁(g, v), 정우민(v, organ, piano, key)
세션 : 박정준(b), 박경원(d)

14. 연영석 - 공장
from [공장] (2001/맘대로 레이블)
작사/작곡 : 연영석
세션 : 연영석(v, g, kazoo), 고명원(g, prog),

15. 럭스(RUX) - 전쟁
from [우린 어디로 가는가] (2004/skunk production/2009/dope label)
작사/작곡 : 원종희/이대희
밴드 : 원종희(v), 박건우(g), 윤형식(b), 조상현(d)

16. 런 옐로우(Run Yellow) - Astro L
from [Never Forget] (2009/Rubysalon)
작사/작곡 : 김동현
밴드 : 김동현(v, g, b), 김성민(d), 정호빈(key)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
가슴네트워크 기획선정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vol.4
최규성 글/사진
Category1 Lighting&Artist
1-1 루시드폴 조윤석 2008년 그랜드민트페스티발 올림픽공원
1-2 한음파 리드보컬 이정훈 2009년 클럽데이 FF클럽
1-3 루네 2009년 클럽 롤링홀
1-4 허클베리핀 2009년 클럽 사운드홀릭
1-5 황보령밴드 2008년 클럽 롤링홀
1-6 내 귀에 도청장치(prana) 리드보컬 이혁 2007년 상상마당 개관공연
Category2 Performance
2-1 고고스타 리드보컬 이태선 2008년 쌈지사운드 페스티발 올림픽공원
2-2 갤럭시 익스프레스 박종현, 이주현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2-3 서드스톤 2008년 클럽 바다비
2-4 오르겔탄츠 2008년 클럽 빵
2-5 문샤이너스 리드보컬 차승우 2009년 한국 영상자료원 상암동
2-6 고고스타 Dj 이연석 2008년 쌈지사운드 페스티발 올림픽공원
2-7 서울전자음악단 리드기타 신윤철 2009년 클럽 드럭
2-8 크라잉넛 기타겸 보컬 이상면 2008년 그랜드민트 페스티발 올림픽공원
2-9 아이 엠 어 보이 리드보컬 김경호 2009년 클럽 쌤
2-10 스타리아이드 베이스기타 김몽구 2008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Category3 Shouting
3-1 국카스텐 리드보컬 하현우 2009년 펜타포트 록페스티발 인천 송도
3-2 노브레인 리드보컬 이성우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발 올림픽공원
3-3 검정치마 리드보컬 조휴진 키보드 임유진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3-4 허클베리핀 리드보컬 이소영 2008년 클럽 사운드홀릭
3-5 소란 리드보컬 고영배 2009년 클럽 쌤
3-6 킹스턴 루디스카 리드보컬 이석율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3-7 폰부스 리드보컬 홍광선 2009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블홀
3-8 장기하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발 올림픽공원
Category4 From Major To Indie
4-1 김창완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 대학로 학전소극장
4-2 한대수 2005년 연희동자택
4-3 김두수 2003년 대학로 열린극장
4-4 김도균 2009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4-5 이상은 2004년 성균관대 새천년관
Category5 Passion
5-1 갤럭시 익스프레스 리드보컬 박종현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5-2 크라잉넛 2008년 펑크 클럽 스컹크헬
5-3 럭스 리드보컬 원종휘 2008년 펑크 클럽 스컹크헬
5-4 소울스테디록커스 리드보컬 Sugar 2009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5-5 국카스텐 2008년 헬로루키 결선 광장동 멜론악스
5-6 아폴로 18 리드기타 최현석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5-7 바세린 리드보컬 신우석 2008년 펑크 클럽 스컹크헬
5-8 아폴로 18 드럼 이상윤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5-9 W&Whale2009년 인천 송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5-10 강허달림 2008년 클럽 롤링홀
5-11 보드카레인 리드보컬 안승준 2008년 클럽 롤링홀
5-12 아이돌 스타 리드보컬 황영원 2009년 클럽 쌤
5-13 빛과 소음 리드기타 양승현 2009년 클럽 쌤
5-14 마제 2008년 헬로루키 결선 광장동 멜론악스
5-15 박재천 프리재즈 퍼커션 2003년 부암아트홀
5-16 폰부스 베이스기타 박한 2009년 클럽데이 클럽ff
5-17 한음파 베이스기타 장혁조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Category6 Coolness
6-1 스왈로우 2009년 여의도 야외공연
6-2 유엔미블루 2008년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 올림픽공원
6-3 언니네이발관 리드보컬 이석원 2008년 쌈지 사운드 페스티발 올림픽공원
6-4 그림자궁전 박혜진, 송재경 2008년 클럽 타
6-5 한희정 2009년 클럽 사운드홀릭
6-6 브로콜리 너마저 2009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6-7 허클베리핀 리드보컬 이소용 2008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6-8 미연 재즈피아니스트 2007년 경기도 의정부
6-9 황금짜보 2007년 의정부 딱정벌레음악회
6-10 연영석 2009년 클럽 롤링홀(반듯이 성사요망. 레이지블러드 소속)
6-11 황보령밴드 베이스기타 정현서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6-12 임의진 다종예술가 2009년 강남 DS홀
Category7 Individuality
7-1 장기하 미미시스터즈 2009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7-2 요조 2009년 클럽 사운드홀릭
7-3 슐탄오브디스코 2009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7-4 로로스 Jane, 드럼 복남규 2009년 펜타포트 록페스티발 인천 송도
7-5 네스티요나 요나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발 올림픽공원
7-6 윈디시티 리드보컬 김반장 2008년 클럽 타
7-7 럭스 드러머 류명훈 2008년 스컹크 헬
7-8 이장혁 2008년 클럽 롤링홀
7-9 스키조 리드기타 주성민 2009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 인천 송도
7-10 다운헬 마크초이 2009년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
7-11 드라이 플라워 2008년 헬로루키 결선 광장동 멜로악스
7-12 고고스타 베이스기타 김선아 2008년 쌈지사운드 페스티발 올림픽공원
7-13 휘루 2009년 클럽 드럭
7-14 김문규 교사가수 2007년 딱정벌레음악회 의정부
7-15 신광조 2007년 강화도 혈구산
Category8 cheers
8-1,2,3-관객스케치 2008년 스컹크헬 고별공연


주소 :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 58-1 종로오피스텔 314호
TEL. 02-762-3335 FAX. 02-762-3371
가슴네트워크 기획․선정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Vol.3
한국의 인디레이블

박준흠 책임편집 | 박준흠 외 11인 지음 | 488 페이지 | 23,000원
문의: 김윤태 대표 02-762-3335
※ 39개 인디레이블 대표, 뮤지션, 음반 사진 등 세부자료는 웹하드에 있습니다.
“언니네이발관에서 장기하까지, 한국 인디음악의 모든 것을 담아냄”
“한국의 대표적인 39개 인디레이블 대표들과의 생생한 인터뷰 수록”
“39개 인디레이블이 발행한 음반들 소개”
“1000여 컷에 이르는 인디레이블 대표, 뮤지션, 음반에 관한 풍부한 사진 자료 수록”
“1997년, 한국 인디음악의 초창기부터 대중음악전문지 ‘서브’,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 문화기획그룹 ‘가슴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홍대 인디씬을 기록해온 책임편집자 박준흠이 얘기하는 한국 인디음악의 현재와 미래”
책임편집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문화기획자, 대중음악연구자)
글 | 강일권, 김민규, 김양수, 김학선, 박준흠, 배순탁, 성우진, 이대화, 차우진, 최규성, 최민우, 홍정택
1. 핵심 요약
“장기하 때문에 인디음악이 떳다고? 천만의 말씀. 이미 2000년,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문라이즈레코드를 설립할 당시부터 현재의 인디음악은 뜰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중음악축제의 성장과 함께 적어도 향후 10년은 인디음악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다.”
2000년대 현재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수와 그들 작품의 수준은 오히려 1990년대를 능가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인디씬에 정착한 ‘홈레코딩’ 기반의 음반제작 환경은 뮤지션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줘서 최소한 자본이 없어서 음반을 제작하지 못하는 시대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홈레코딩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뮤지션이 기술적인 능력만 있다면 일반 스튜디오 작업에 부럽지 않게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인디 뮤지션들은 스스로 자신의 음반사를 만들어서 앨범 제작을 하고 있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다. 대중음악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창작’이라면, 이제라도 인디레이블에 대한 정확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인디음악씬의 발전 과정은 아래와 같이 크게 4단계로 나뉜다.(※ 자세한 내용은 별첨의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참조.)
1)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
- 인디뮤직 씬의 시작 (1990~1996)
2)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
- 인디레이블의 도약기 (1997~1999)
3) 문라이즈와 홈레코딩
- 자주 레이블의 가속화 (2000~2004)
4)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
- 음악적인 스타일로 각 레이블 차별화 시도 (2005~현재)
■ 머리말 발췌
인디음악을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에서의 현재 지점으로 보는 시각은 고사하고, ‘현재 트렌드’(현재의 음악)로 보는 시각은 얼마나 있을런지. 1996년부터 시작된 1차 인디음악 붐은 다분히 언론의 선정적인 관심 때문이었지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1999년이 되니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체의 관심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게 2007년까지 이어져 오다가 2008년에 와서는 장기하와 주변으로 인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연초에 내게 몇몇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주요한 물음은 “장기하의 인기가 시들면 인디음악 붐도 꺼지지 않을까요?”였다. 이는 아직도 인디음악을 음악창작이나 음악트렌드, 음악산업 관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다. 장기하 때문에 인디음악이 떴다고? 천만의 말씀. 한국에서 인디음악은 이미 ‘시대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장기하가 대중적인 관심을 일시에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조짐은 2000년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 1집을 자신의 레이블인 문라이즈레코드(Moonrise Record)에서 내려고 할 때부터 ‘준비’되었다.
2002년 이후 본격화된 ‘홈레코딩 제작시스템’으로 인해서 2004년 무렵부터는 매년 발매되는 인디음반이 200장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2006년 무렵부터 각 인디레이블들이 신경 쓰는 것은 ‘음악적인 스타일’ 부분이고, 그래서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이 흐름에 맞물린 것이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이다. 2005~2006년 필자가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 본격적으로 전문화된 ‘한국 대중음악 축제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에는 ‘하나뮤직 스페셜’, ‘밸리 초이스’, ‘인디음악 10년사’, ‘민중음악 30년사’, ‘뉴 커런츠’ 프로그램을 3일에 걸쳐서 진행했다. 이후 2006년에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 2007년에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09년에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생겨나서 기존의 쌈지사운드페스티벌(1999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2004년)과 함께 한국 인디음악 씬을 키우고 있다. 장기하와얼굴들이 결정적으로 주목 받은 곳도 다름 아닌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 시장이 급성장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한국도 이제 영화제에 이어서 그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상기 음악축제들의 진행 경과를 보건데, 한국에서 적어도 향후 10년은 음악축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동반하여 인디음악의 성장세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
|
연도/등급 |
올해앨범 |
필청앨범 |
우수앨범 |
주목앨범 |
기타앨범 |
소계 |
|
1996 |
1 |
2 |
0 |
2 |
1 |
6 |
|
1997 |
1 |
2 |
5 |
6 |
3 |
17 |
|
1998 |
1 |
10 |
11 |
14 |
25 |
61 |
|
1999 |
1 |
9 |
8 |
11 |
33 |
62 |
|
2000 |
1 |
9 |
13 |
27 |
53 |
103 |
|
2001 |
1 |
9 |
20 |
24 |
71 |
125 |
|
2002 |
1 |
9 |
22 |
28 |
68 |
128 |
|
2003 |
1 |
15 |
26 |
46 |
87 |
175 |
|
2004 |
1 |
16 |
25 |
37 |
111 |
190 |
|
2005 |
1 |
10 |
27 |
36 |
136 |
210 |
|
2006 |
1 |
11 |
33 |
44 |
164 |
253 |
|
2007 |
0 |
6 |
12 |
33 |
72 |
123 |
|
총계 |
11 |
108 |
202 |
308 |
824 |
1453 |
2. 출간 의의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봄”
“도서출판 선에서 발행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의 완결판”
Vol.1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2008년, 박준흠 책임편집)
Vol.2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2009년, 박준흠 책임편집)
Vol.3 한국의 인디레이블 (2009년, 박준흠 책임편집)
‘한국의 인디레이블’ 프로젝트를 생각한 것은 2008년 4월경이었다. 당시 필자는 2008 광주청소년음악페스티벌 총감독을 맡아서 광주광역시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바로 전에 진행을 맡았던 네이버 오늘의뮤직 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는 3월부터 연재가 시작되었고, 이미 연재 전에 인터뷰 진행은 거의 끝났었기 때문에 약간은 한가로울 때였다.(물론 축제 준비 자체는 무척 바빴지만.) 그래서 가슴네트워크에서 당분간 매체사업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터였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템을 생각했다.
이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음반과 뮤지션을 다뤘기 때문에 이번에는 ‘음반사와 음반사 대표’를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 여태까지 대중음악 관련 기획기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신보를 냈거나 공연을 준비 중인 뮤지션과 그의 음반 중심이라서 뭔가 다양성 면에서 부족했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대중음악 기획’에 관한 점이 빠져 있었다. 사실 어떤 뮤지션이 아무리 훌륭한 노래를 만들어도 그걸 ‘음반기획’ 측면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대중들은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뛰어난 뮤지션을 알아보고 그에 걸맞는 음반기획을 해주는 음반제작자는 음악씬에서 무척 중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90년대 들어와서 그런 음반기획자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열악한 상태로 전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의 대안적인 시스템’인 인디음반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서서 홈레코딩 음반제작 시스템의 급격한 발전으로 뮤지션 스스로가 자신의 레이블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고, 2003년 무렵부터는 인디레이블의 숫자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이번 연재 기획인 ‘한국의 인디레이블’은 2000년대 들어서서 새롭게 대두된 인디레이블의 현재 상황과 ‘성장 이유’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 인디레이블 대표를 인터뷰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해당 인디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들을 소개함으로써 대중음악을 뮤지션과 음반을 넘어서서 ‘기획과 제작’ 측면에서 조망하려고 했다. 이번에 다룬 39개 인디레이블의 선정 기준은 창작적으로 뛰어난 음반이 얼마나 나왔는지가 관건이었다.(기타 음악적으로 조명할만한 가치를 갖는 레이블도 선정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번 39개 인디레이블들에 대한 기록은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음악창작자들이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원래 타이틀도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살펴본 인디음악의 현주소와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였다.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
3. 내용 소개 (목차)
* 본문의 레이블 배열순서는 ‘첫 번째 국내 뮤지션 음반 발매 연도’를 기준으로 정렬함
Ⅰ.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창작 대중음악의 현재
1. 지금 ‘인디레이블’을 다시 이야기 하는 이유 | 박준흠
2.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 박준흠
3. 경향신문, 가슴네트워크 ‘한국의 인디레이블’ | 박준흠
Ⅱ.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역사
■ 1996년 발매 시작 레이블
01. 인디(Indie) - 한국 최초로 실질적 인디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하다 | 최규성
02. 석기시대(Stoneage Records) - 한국 인디 음악을 묵묵히 지켜 온 이름 | 홍정택
03. 드럭 레코드(Drug Record) - 펑크의 시작. 그것은 인디의 시작 | 이대화
■ 1997년 발매 시작 레이블
04. 강아지문화예술(Gang A.G) - 아티스트의 다양한 감성을 즐기다 | 김민규
■ 1998년 발매 시작 레이블
05. 스컹크 레이블(Skunk Label) - 펑크뮤지션들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배척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 박준흠
06. 카바레 사운드(Cavare Sound) - 한국 인디 씬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 김양수
07. 문화사기단 - 세상이 사기라 외치던 겁없던 그들 | 홍정택
08. 라디오뮤직(Radio Music) - 미선이, 루시드 폴을 발굴한 홍대 포크의 산실 | 이대화
■ 1999년 발매 시작 레이블
09. 쌈넷(ssamnet) - ‘쌈지의 눈’으로 검증시켜서 보여주는 역할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쌈지의 입장이다 | 박준흠
10. 마스터플랜(Master Plan) - 한국 힙합의 성지에서 전천후 음악발전소로 | 배순탁
11. B-레코드(B-Record) - 라이브 클럽과 인디 레이블의 적절한 조합 | 김민규
■ 2000년 발매 시작 레이블
12. GMC 레코드(GMC Records) - 10년을 독하게 이어 온 한국 하드코어 신의 중심 | 홍정택
13. 벌룬애니들(Balloon & Needle) - 노이즈에 대한 꾸준하고 진지한 행보 | 차우진
14. 튜브앰프 레코드(Tubeamp Records) - 뮤지션들의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되고 싶다 | 홍정택
15. 문라이즈(Moonrise Records) - 인디 레이블의 새로운 시작 | 김학선
■ 2001년 발매 시작 레이블
16. 쥬신 프로덕션(Jusin Production) - 대한민국 익스트림 메탈의 역사와 꿈이 모여 있는 레이블 | 성우진
17. 드림온(Dream On) - 용감한(?) 형제의 꿈과 음악적 열정을 담아 | 성우진
■ 2002년 발매 시작 레이블
18. 롤리팝뮤직(Lollipop Music) - 2000년대 홍대 인디 팝의 신(新) 지류 | 이대화
19. 리버맨뮤직(Riverman Music) - 전 세계 희귀음원을 찾아 여행하는 레이블 | 최규성
■ 2003년 발매 시작 레이블
20. 비트볼 레코드(Beatball Records) - 열혈 음악 애호가의 진심을 담은 레이블 | 김민규
21. 샤 레이블(Sha Label) - 화려함보다 중요한 건 뮤지션만의 개성! | 배순탁
22. 에그뮤직(EGG Music) - Everlasting Gallery of Good Music | 성우진
23. 도프뮤직(Dope Music) - 한국 헤비니스 음악의 중심 | 김학선
24. 퀸 엔터테인먼트(Queen Entertainment) - 퀸이라는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 소속 뮤지션들의 앨범 제작 | 성우진
25. 리듬온(Rhythm On) - 아날로그 음악을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 | 최규성
26. 비행선(Bihaengsun) - 자유롭게 맘 가는 대로 | 김민규
27. 신의의지 레코드(Will Records) - 아티스트들의 음악세계를 존중하며 한국힙합 신을 이끌었던 레이블 | 강일권
■ 2004년 발매 시작 레이블
28. 파스텔뮤직(Pastel Music) - 인디와 메이저 사이의 교두보 | 차우진
29. 소울컴퍼니(Soul Company) - 음악과 시, 그리고 힙합이 만나는 그곳 | 강일권
30.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s) - 하드코어 힙합의 결정체들로 이루어진 집단 | 강일권
31. 루핀 레코드(Lupin Records) - 레이블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중도좌파 레이블 | 홍정택
32. 핑퐁사운드(Pingpong Sound) - 포크에서 슈게이징, 일렉트로니카까지 | 김민규
■ 2005년 발매 시작 레이블
33. 일렉트릭 뮤즈(Electric Muse) - 뮤지션 출신의 제작자가 건립한 인디 팝/록의 새로운 거점 | 최규성
34. 붕가붕가 레코드(BGBG Records) - 지속가능한 그들의 빡센 취미생활 | 홍정택
35. 해피로봇 레코드(Happy Robot Records) - 취향을 전략으로 삼는 레이블 | 차우진
36. 타일뮤직(Tyle Music) - 가장 감각적이며 스타일리쉬한 레이블 | 김학선
■ 2006년 발매 시작 레이블
37. 루비살롱 레코드(Rubysalon Record) - 우주를 향해 볼륨을 높여라 | 최민우
38. 튠테이블 무브먼트(Tune Table Movement) - 둘러앉아 소통하는 음악 공동체를 향하여 | 최민우
■ 2007년 발매 시작 레이블
39. 파고뮤직(FarGo Music) - 홍보와 마케팅에서 협력 관계를 갖는 새로운 운영방식 | 성우진
Ⅲ. 한국의 인디레이블 _ 부록
2008 가슴어워드(Gaseum Awards) - 2008년 한국 대중음악 결산 | 박준흠
[별첨]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1)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
- 인디뮤직 씬의 시작 (1990~1996)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의 필요성, ‘인디뮤직’이 갖는 의미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앨범2) 개념의 음반이 나온 것은 1964년에 발표된 신중현의 애드 훠(Add 4) 1집 [빗속의 여인](엘케엘레코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매우 특이한 경우였고, 제대로 된 창작물을 담은 앨범들이 발표된 시기는 70년대 초반의 모던포크 시대부터다. 그것이 바로 한대수, 김민기, 양병집, 서유석, 양희은의 초기작들이었고, 록에서는 신중현의 음반들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는 앨범으로서의 음반이 처음으로 발표된 시기 정도라는 의미를 가질지언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평가할만한 창작물은 소수의 뮤지션들에게서만 보일뿐이었고, 또한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과 같이 앨범 평가에서의 중요한 개념은 특별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아는 한 지금의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의 개념이 보이기 시작한 앨범은 1984년에 발표된 따로 또 같이 2집이 처음이다. 이전에 작은거인이 2집(1981년)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션과 레코딩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 그건 원맨밴드 성격이었고, 엔지니어도 지다가와 마사토라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세션, 레코딩 역사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앨범이 나온 시기를 80년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80년대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다양한 음악들이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그래서 뛰어난 음반들도 많이 나왔다. 한마디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이 때 나온 뮤지션이 김현식, 어떤날, 시인과촌장, 신촌블루스, 한영애, 장필순 등이었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거장’으로 얘기되면서 음악성도 높이 평가받았고, 또한 음반도 10만장 단위로 팔았다.3) 아이돌스타들만이 주로 주목받는 현재 음악환경을 생각했을 때 이는 매우 경이로운 사실이다. 당시는 뮤지션을 음악으로 평가하는 음악수용자들이 무척 많았거나, 음악수용자들에게 음악으로 승부하는 음반제작 풍토가 존재했던 것 같다. 뮤지션들에게는 무척이나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2년 서태지 등장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아이돌스타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이는 단기간에 가장 손쉽게 큰 돈을 버는 사업으로 인식되었다.4) 그래서 대중음악계에서의 가수 선발 기준은 음악성이 아니라 외모와 같은 스타성으로 바뀌었고, 철저히 10대들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는 기획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연예인’들이 필요했던 공중파방송에서도 이를 부추킨 측면이 있다. 그 결과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는 더 이상 음반 제작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붕괴였고, 한국 대중음악사 측면에서 보면 음악적인 자산을 잃어버리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1990년 11월 1일에 김현식이 사망했고, 유작 앨범인 6집은 100만장 이상 팔렸는데, 이는 향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기록일 것이다.
결국 ‘음악적인 진정성’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즉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나 그런 음악을 듣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안적인 시스템’을 생각했는데, 이것이 ‘인디뮤직(씬)’이다. 여기서 ‘대안적’이라는 말은 음악 미학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반 제작을 포함한 음악 활동 시스템’을 의미한다. 기존의 음반제작자들이 ‘창작에서 간섭받지 않으면서 완성도 높은 앨범 제작을 추구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뮤지션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구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음반을 만들거나 적어도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데 있어 간섭을 하지 않는 제작자 부류를 원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디레이블’이 갖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즉, 인디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택하는 공간이자 ‘시스템’이다. 그래서 ‘인디’를 얘기할 때 ‘음악창작’ 부분을 빼고 얘기하면 타당하지 않다.
‘인디뮤직 씬’의 탄생, 라이브클럽 드럭
90년대 초반 대안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바라던 사람들이 실험을 하기 시작한 곳은 홍대 주변이었다. 당시 ‘발전소’와 같은 음악과 미술, 춤이 어우러지는 클럽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1994년에 생긴 ‘드럭’은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라이브클럽의 시작이었다. 사실 드럭은 처음부터 라이브클럽이 아니었다. 클럽 드럭은 1994년에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밴드 클래시(The Clash)의 [London Calling](1979) 재킷 사진이 복사된 4절지에 ‘펑크록의 이상’이 격문처럼 쓰여진 포스터를 문에 붙이고 개장하였지만, 당시는 정기적인 공연을 염두에 두거나 인디뮤지션들의 근거지 개념은 없었다.
초기 드럭의 공간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조그만 TV들을 소도구로 이용한 ‘바/카페’의 개념이었고, 단지 한쪽에 밴드들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그믈망이 앞에 처진 작은 장소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이는 당시 신촌의 현대백화점 뒷쪽에 있었던 록카페5)들의 확장된 개념의 클럽이었다. 하지만 너바나의 여파로 그런지록이 인기를 얻고 70년대 펑크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특히 1994년 4월 8일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사망하여 ‘그런지록의 전설’로 남으면서 한국에서도 카피밴드 수준의 그런지록과 펑크밴드들이 생겨났다. 이들의 연주가 수용될 수 있었던 드럭은 흔히 말해 드롭아웃(drop-out)들의 해방구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시는 ‘공연장’의 개념만 있어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수준의 연주를 하는 밴드들(대개 헤비메틀 밴드들)은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그 이하 수준의 밴드들은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6)
1995년 4월에는 드럭에서 커트 코벤인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고, 이 때를 즈음해서 ‘드럭 밴드’라는 이름으로 정기 공연 체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 해부터 크라잉 넛,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코코어 등이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크라잉 넛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드럭은 점차 펑크록 중심의 라이브클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드럭이 펑크록의 메카로 자리 잡은 것은 1996년에 홍대 주차장거리와 명동에서 있었던 모잡지 주최의 ‘스트리트 펑크쇼’에 드럭의 밴드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 당시 보여주었던 관중들의 폭발적인 열기는 매체를 타고 전파되었고, 이런 호응을 얻어서 드럭에서 처음 만든 음반이 바로 [Our Nation]7)이었다. 이게 최초의 인디 앨범으로 얘기되고 있고, 그 해에는 ‘배드 테이스트’의 [One Man Band... Badtaste]도 발매되었다.
2)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
- 인디레이블의 도약기 (1997~1999)
인디레이블은 거대 상업 논리 하의 음악비즈니스 시스템에서에서 뮤지션에게 그나마 자유를 주는데,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을 지킬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상업성만을 생각하게끔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진 메이저 음반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인디레이블 체제에서는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디레이블은 마이너 성향의 뮤지션에게 있어 대중에 대한 창구일 수가 있고, 이것이 인디레이블 존재에 대한 당위성이다.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은 한국에서 인디레이블 시스템이 정착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레이블들이다.
▶ 인디(Indie)는 드럭, 재머스에 이은 인디레이블로 출발했지만 앞의 두 음반사가 자신들의 클럽과 클럽 밴드들을 홍보하려는 이유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제한된 범위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인디는 국내 최초의 ‘인디레이블’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음반사 인디의 모체는 10년간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대중음악씬에 발을 들여놓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뮤직센터21세기’8)였다. 이후 탄생된 인디는 “계약 기간은 1년이다. 손익분기점(3천장)을 넘기면 수익배분은 4 : 4 : 2(밴드 : 인디와 스튜디오 : 홍보비)로 한다. 밴드는 클럽 공연을 지속해야 한다. 인디가 망했을 때 인디를 인수한 사람의 의도가 애초의 인디의 의도와 맞지 않으면 음반의 판권은 밴드에게 간다”라는 뮤지션 측에 가장 큰 권리를 주는 명문화된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인디의 음반제작실장인 김종휘와 록밴드 허벅지의 보컬 안이영노는 인디 운영에서의 브레인이었는데, 이들은 1996년 봄에 시작된 각기 다른 클럽에 섰던 밴드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릴레이로 공연을 벌였던 ‘땅밑 달리기’를 주도한 중추 세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SM(실천하는 문화전사)을 표방하며 클럽 씬과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소식지인 ‘팬진 공’을 1997년에 ‘폐간’9)하는 일도 벌였다.
1997년 10월 인디, 팬진 공, 개클련(개방적 클럽 연대)에 의해서 노노 클럽에서 열린 ‘인디 시연회’는 향후 인디에서 발매할 밴드들을 선정하는 오디션 성격의 이벤트였고, 여기서는 코코어, 프리다칼로, 허벅지, 앤, 마루,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가 선정되었다. 그 해 12월 27일, 28일에는 인디 주최로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인디 록 페스티벌(정축년 독립만세 사건)’이 열렸다. 이후 제작된 인디 음반들은 사운드랩 스튜디오에서 고종진 엔지니어가 레코딩/믹싱을 하였고, 앤,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의 프로듀서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강사이기도 했던 기타리스트 김성수가 맡았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인디가 만든 가장 큰 업적은 다들 생각에만 머문 ‘인디레이블’을 현실화 시켜서 이들 성과에 대한 논의 여부를 떠나서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디는 1999년을 넘기지 못하고 운영을 중단했다.
▶ 강아지문화예술은 5명의 고등학교 동창생들(권병준, 이한별, 이효찬 등)이 자신들의 밴드인 강아지 독집 음반을 준비하다가 1997년에 만든 인디레이블이다. ‘인디’와 다른 점은 뮤지션들이 만든 음반사라는 점이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직접 음반 제작(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에 참여함으로써 느낌에 충실한 음반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마트의 데모 음반이나 허클베리 핀, 갱톨릭의 음반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특히 허클베리 핀의 데뷔 음반은 완성도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뮤지션들(99의 성기완, 노클루의 송현주, 도현호 등)이 있었다. 초기에는 방송 홍보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고, 최종적으로 영상, 인터넷방송 등 총체적인 문화 사업을 꾀했다. 기존 시장에서 음반화되기 힘든 밴드들의 음악도 팬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운영했지만 이들 또한 1999년을 넘기지 못했다.
3) 문라이즈와 홈레코딩
- 자주 레이블의 가속화 (2000~2004)
2000년은 인디레이블 역사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시작점은 2000년에 만들어진 문라이즈(Moonrise Record)였다. 이 레이블은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기타, 보컬)가 본인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의 1집 [Never Ending Stories]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한국 대중음악계는 콘텐츠 면에서 몰라보게 풍부해지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1999년을 기점으로 초기 인디레이블을 주도했던 강아지문화예술과 인디가 시장의 한계에 부딪쳤고, 그로써 부진한 활동을 하면서 잠시 과도기가 있었다. 그 와중에 홈레코딩(home-recording) 기술과 관련 소프트웨어, PC(하드웨어) 발전에 영향 받아 인디레이블 자체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개의 인디뮤지션들은 ‘자신이 운영하지 않는’ 저자본 레이블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인디레이블이 메이저레이블과는 매니지먼트 방식이 다르더라도 소속 뮤지션들이 자본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스위트피가 문라이즈 레이블을 만든 2000년 이후로는 점차 홈레코딩이 보편화되면서 뮤지션들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자생적인’ 인디뮤직씬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위트피의 1집 [Never Ending Stories](2000)를 필두로 전자양 [Day Is Far Too Long](2001), 마이 언트 매리(My Aunt Mary) [2nd My Aunt Mary](2001), Where The Story Ends [안내섬광](2001), 토마스 쿡(Thomas Cook) [Time Table](2001)이라는 명반들을 발매하였던 문라이즈는 한국 인디씬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문라이즈의 결과물들을 보고나서 뮤지션들은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패러다임을 실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음반제작의 주체가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여파는 2002년 이후로 인디씬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무수한 ‘자가’(뮤지션 스스로 설립해서 운영하는) 인디레이블이 생겨났다.
4)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
- 음악적인 스타일로 각 레이블 차별화 시도 (2005~)
홈레코딩으로 ‘음반제작’ 자체가 원활해지자 레이블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음반제작에 있어 ‘음악적인 전문성’을 부여하는 문제였다. 이는 다름 아닌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에 관한 문제였고, 이를 통해 각 레이블이 자신들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즉,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이었다. 파스텔뮤직, GMC, 일렉트릭 뮤즈, 튠테이블 무브먼트와 같은 레이블들이 대표적이다.
1) 2007년 7월에 가슴네트워크에서 『인디음반가이드 2000』을 집필하기 위해서 조사한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이다. 순전히 책임편집자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음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보다는 약간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유통망을 통해서 발매된 인디음반들은 다 소장하고 있고, 일부 라이브클럽에서만 파는 음반들도 수시로 구입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2009년 11월 시점에서 추정하건데 발매된 전체 인디음반은 2000장이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디음반가이드 2000』은 2010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있다.
2) ‘작품’으로서의 음반. 이는 ‘음악비평’의 시작과도 관계가 있다. 영미권의 대중음악사를 보더라도 본격적으로 음악비평이 시작된 것은 ‘앨범’ 제작이 보편화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3) 이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최초이자 최후의 부류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90년대의 서태지 정도가 있었고(이도 그의 5집까지만), 대개의 경우 작품성은 상업성에 반하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4) ‘아이돌스타’ 시스템은 주류음악 매니지먼트에서의 위험 요소를 줄이는 방안으로 개발된 측면도 있다.
5) 우드스탁, 놀이를 하는 사람들, 도어스 등과 같이 마니아 취향의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고, 때로는 자발적인 가무를 하던 공간.
6) 물론 라이브클럽이 ‘아마추어 밴드들이 공연하는 장소’는 아니고, 클럽마다 오디션을 통해서 최소한 어느 정도 연주 수준을 가진 밴드들을 무대에 세운다. 하지만 1994~1995년 당시 아마추어 카피밴드일 수 밖에 없었던 그런지/펑크밴드들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새로운 개념’의 장소로 라이브클럽이 그 역할을 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인디뮤직씬이 탄생될 수 있었다.
7) 이 음반에는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이 앨범을 반씩 나누어서 참여했다.
8) 뮤직센터21세기에서는 투쟁적인 이데올로기의 록음악을 하는 메이데이, 이스크라, 천지인의 음반을 출시했다.
9) 이 잡지는 ‘폐간호’부터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Ⅰ.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창작 대중음악의 현재
1. 지금 ‘인디레이블’을 다시 이야기 하는 이유 | 박준흠
2.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 박준흠
3. 경향신문, 가슴네트워크 ‘한국의 인디레이블’ | 박준흠
Ⅱ.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역사
* 본문의 레이블 배열순서는 ‘첫 번째 국내 뮤지션 음반 발매 연도’를 기준으로 정렬함
■ 1996년 발매 시작 레이블
01. 인디(Indie) - 한국 최초로 실질적 인디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하다 | 최규성
02. 석기시대(Stoneage Records) - 한국 인디 음악을 묵묵히 지켜 온 이름 | 홍정택
03. 드럭 레코드(Drug Record) - 펑크의 시작. 그것은 인디의 시작 | 이대화
■ 1997년 발매 시작 레이블
04. 강아지문화예술(Gang A.G) - 아티스트의 다양한 감성을 즐기다 | 김민규
■ 1998년 발매 시작 레이블
05. 스컹크 레이블(Skunk Label) - 펑크뮤지션들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배척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 박준흠
06. 카바레 사운드(Cavare Sound) - 한국 인디 씬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 김양수
07. 문화사기단 - 세상이 사기라 외치던 겁없던 그들 | 홍정택
08. 라디오뮤직(Radio Music) - 미선이, 루시드 폴을 발굴한 홍대 포크의 산실 | 이대화
■ 1999년 발매 시작 레이블
09. 쌈넷(ssamnet) - ‘쌈지의 눈’으로 검증시켜서 보여주는 역할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쌈지의 입장이다 | 박준흠
10. 마스터플랜(Master Plan) - 한국 힙합의 성지에서 전천후 음악발전소로 | 배순탁
11. B-레코드(B-Record) - 라이브 클럽과 인디 레이블의 적절한 조합 | 김민규
■ 2000년 발매 시작 레이블
12. GMC 레코드(GMC Records) - 10년을 독하게 이어 온 한국 하드코어 신의 중심 | 홍정택
13. 벌룬애니들(Balloon & Needle) - 노이즈에 대한 꾸준하고 진지한 행보 | 차우진
14. 튜브앰프 레코드(Tubeamp Records) - 뮤지션들의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되고 싶다 | 홍정택
15. 문라이즈(Moonrise Records) - 인디 레이블의 새로운 시작 | 김학선
■ 2001년 발매 시작 레이블
16. 쥬신 프로덕션(Jusin Production) - 대한민국 익스트림 메탈의 역사와 꿈이 모여 있는 레이블 | 성우진
17. 드림온(Dream On) - 용감한(?) 형제의 꿈과 음악적 열정을 담아 | 성우진
■ 2002년 발매 시작 레이블
18. 롤리팝뮤직(Lollipop Music) - 2000년대 홍대 인디 팝의 신(新) 지류 | 이대화
19. 리버맨뮤직(Riverman Music) - 전 세계 희귀음원을 찾아 여행하는 레이블 | 최규성
■ 2003년 발매 시작 레이블
20. 비트볼 레코드(Beatball Records) - 열혈 음악 애호가의 진심을 담은 레이블 | 김민규
21. 샤 레이블(Sha Label) - 화려함보다 중요한 건 뮤지션만의 개성! | 배순탁
22. 에그뮤직(EGG Music) - Everlasting Gallery of Good Music | 성우진
23. 도프뮤직(Dope Music) - 한국 헤비니스 음악의 중심 | 김학선
24. 퀸 엔터테인먼트(Queen Entertainment) - 퀸이라는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 소속 뮤지션들의 앨범 제작 | 성우진
25. 리듬온(Rhythm On) - 아날로그 음악을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 | 최규성
26. 비행선(Bihaengsun) - 자유롭게 맘 가는 대로 | 김민규
27. 신의의지 레코드(Will Records) - 아티스트들의 음악세계를 존중하며 한국힙합 신을 이끌었던 레이블 | 강일권
■ 2004년 발매 시작 레이블
28. 파스텔뮤직(Pastel Music) - 인디와 메이저 사이의 교두보 | 차우진
29. 소울컴퍼니(Soul Company) - 음악과 시, 그리고 힙합이 만나는 그곳 | 강일권
30.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s) - 하드코어 힙합의 결정체들로 이루어진 집단 | 강일권
31. 루핀 레코드(Lupin Records) - 레이블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중도좌파 레이블 | 홍정택
32. 핑퐁사운드(Pingpong Sound) - 포크에서 슈게이징, 일렉트로니카까지 | 김민규
■ 2005년 발매 시작 레이블
33. 일렉트릭 뮤즈(Electric Muse) - 뮤지션 출신의 제작자가 건립한 인디 팝/록의 새로운 거점 | 최규성
34. 붕가붕가 레코드(BGBG Records) - 지속가능한 그들의 빡센 취미생활 | 홍정택
35. 해피로봇 레코드(Happy Robot Records) - 취향을 전략으로 삼는 레이블 | 차우진
36. 타일뮤직(Tyle Music) - 가장 감각적이며 스타일리쉬한 레이블 | 김학선
■ 2006년 발매 시작 레이블
37. 루비살롱 레코드(Rubysalon Record) - 우주를 향해 볼륨을 높여라 | 최민우
38. 튠테이블 무브먼트(Tune Table Movement) - 둘러앉아 소통하는 음악 공동체를 향하여 | 최민우
■ 2007년 발매 시작 레이블
39. 파고뮤직(FarGo Music) - 홍보와 마케팅에서 협력 관계를 갖는 새로운 운영방식 | 성우진
Ⅲ. 부록
2008 가슴어워드(Gaseum Awards) - 2008년 한국 대중음악 결산 | 박준흠


Ⅰ.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창작 대중음악의 현재
1. 지금 ‘인디레이블’을 다시 이야기 하는 이유
문화기획은 ‘당대 문화예술’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이자 방법이다. 즉, 당대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대중들에게 가장 유효적절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또한 그 작업을 통해서 기획자 자신보다는 대상이 빛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도덕적인 책무도 따른다. 크게 보면 평론도 문화기획 안에 넣을 수가 있는데, 대중들에게 작품 가이드 작업을 통해서 해당 분야 문화상품 판매를 촉진시키는 산업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영화나 음악 평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영화평론은 당대의 작가(감독)인 박찬욱, 김지운, 홍상수와 같은 이들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영화마니아는 이들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대중음악에서도 영미권이나 일본의 음악평론은 같은 종류의 일들을 한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해당 분야의 평론 작업은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을 ‘스테디셀러’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작업이다. 이는 1960년대 알프레드 히치콕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나 밥 딜런, 비틀즈, 롤링 스톤스의 음반들이 스테디셀러가 되어 끊임없이 소비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만은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는데, 이는 아직까지 대중음악을 ‘작가’와 ‘작품’이라는 개념 없이 ‘가수’와 ‘노래’ 중심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예술 장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창작’ 부분이 대중음악에서는 도외시되고 있고, 한 가수를 평가할 때 ‘가창력’이나 따지는 넌센스가 발생한다. 적어도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한 영화를 평가할 때 출연 배우의 연기력 부분보다는 감독의 연출력과 시나리오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중음악에서 ‘음악창작’에 대한 낮은 인식은 작품으로서의 ‘앨범’ 제작을 중요하게 여기는 뮤지션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질문한다면,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역량 있는 뮤지션들과 작품성이 뛰어난 앨범들이 존재하기나 할까? TV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가수는 온통 아이돌그룹이거나 가요무대에 출연하는 트로트 가수 또는 왕년의 인기 가수 정도인데. 대답부터 얘기하면, 2000년대 현재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수와 그들 작품의 수준은 오히려 90년대를 능가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인디씬에 정착한 ‘홈레코딩’ 기반의 음반제작 환경은 뮤지션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줘서 최소한 자본이 없어서 음반을 제작하지 못하는 시대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홈레코딩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뮤지션이 능력만 있다면 일반 스튜디오 작업에 부럽지 않게 녹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많은 인디 뮤지션들은 스스로 자신의 음반사를 만들어서 앨범 제작을 하고 있고, 이는 1990년대를 능가하는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단지 음악매체, 음악평론, 음악정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음악관계자들마저도 많은 수가 “한국에서는 ‘들을만한 음반’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정말로 그럴까? 내가 보는 견지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음반시장이 무너졌다고 얘기되는 현재도 인디씬에서는 끊임없이 좋은 뮤지션들과 좋은 앨범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 그에 대한 반증일뿐만 아니라 한국대중음악계에서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의 근간에는 ‘인디레이블’이 존재한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현재 인디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전반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고, 더욱이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정확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음악관계자가 “들을만한 음반들이 사라지고 있다”라는 식으로 얘기한다면1), 그건 자신의 태만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본인 스스로 ‘음악을 듣는 귀’가 취약함을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일천하다. 대중음악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창작’이라면, 이제라도 인디레이블에 대한 정확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들에 대한 재조명은 2000년대 현재 한국 대중음악씬에서 창작(콘텐츠 기획&생산)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 창작자, 뮤지션, 음악생산의 지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게 문화기획자로써 또한 음악평론가로써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음악생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 기획자, 정책당국자, 소비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이번 연재를 기획한 배경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현재 인디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반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더욱이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정확히 살펴보려고 한다. 연재는 총30회 진행될 예정이고, 한주에 1개 레이블을 소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2개의 레이블을 묶어서 진행할 수도 있다. 발매한 음반들의 음악적인 완성도나 스타일, 역사성을 감안하여 인디레이블들을 선정했고, 해당 레이블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필자가 글을 쓰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연재가 완료된 후에는 가슴네트워크에서 연재물들을 모아서 단행본 출판을 할 예정이다.
(※ 이 글은 2008년 7월에 경향신문 연재 시작에 앞서 쓴 서문 형태의 글입니다. 2009년 7월 시점에서 읽어보니 그동안 한국 인디음악씬에 대한 중앙 매체와 대중의 주목도가 몰라볼 정도로 커졌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이는 1년 동안에 인디씬에 주목할 만한 뮤지션들이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라 그간 우리시대에 ‘어떤’ 흐름이 생겨났는데, 인디씬이 거기에 부합한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추측하기에 그 ‘어떤’ 흐름은 세상과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관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 안에서도 알갱이가 있어 보이는 것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적어도 ‘콘텐츠의 진정성’으로 승부하려는 인디음악은 이에 부합합니다. 1990년대 말의 인디씬은 전체적인 완결성의 부족으로 한 때의 흥미 거리로만 머물렀지만, 이미 2004년 무렵부터의 인디씬은 완결성과 함께 다양성 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인디음악에 대한 늘어난 관심은 예정된 것이었고, 주목받고 있는 인디뮤지션들이 현재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 흐름은 ‘정착’2)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지적했던 “진짜 문제는 음악생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 기획자, 정책당국자, 소비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의 답은 이미 세상이 제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들을만한 음반’들이 사라지고 있다”라는 시대착오적인 얘기들은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2.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1)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
- 인디뮤직 씬의 시작 (1990~1996)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의 필요성, ‘인디뮤직’이 갖는 의미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앨범3) 개념의 음반이 나온 것은 1964년에 발표된 신중현의 애드 훠(Add 4) 1집 [빗속의 여인](엘케엘레코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매우 특이한 경우였고, 제대로 된 창작물을 담은 앨범들이 발표된 시기는 70년대 초반의 모던포크 시대부터다. 그것이 바로 한대수, 김민기, 양병집, 서유석, 양희은의 초기작들이었고, 록에서는 신중현의 음반들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는 앨범으로서의 음반이 처음으로 발표된 시기 정도라는 의미를 가질지언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평가할만한 창작물은 소수의 뮤지션들에게서만 보일뿐이었고, 또한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과 같이 앨범 평가에서의 중요한 개념은 특별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아는 한 지금의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의 개념이 보이기 시작한 앨범은 1984년에 발표된 따로 또 같이 2집이 처음이다. 이전에 작은거인이 2집(1981년)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션과 레코딩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 그건 원맨밴드 성격이었고, 엔지니어도 지다가와 마사토라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세션, 레코딩 역사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앨범이 나온 시기를 80년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80년대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다양한 음악들이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그래서 뛰어난 음반들도 많이 나왔다. 한마디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이 때 나온 뮤지션이 김현식, 어떤날, 시인과촌장, 신촌블루스, 한영애, 장필순 등이었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거장’으로 얘기되면서 음악성도 높이 평가받았고, 또한 음반도 10만장 단위로 팔았다.4) 아이돌스타들만이 주로 주목받는 현재 음악환경을 생각했을 때 이는 매우 경이로운 사실이다. 당시는 뮤지션을 음악으로 평가하는 음악수용자들이 무척 많았거나, 음악수용자들에게 음악으로 승부하는 음반제작 풍토가 존재했던 것 같다. 뮤지션들에게는 무척이나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2년 서태지 등장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아이돌스타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이는 단기간에 가장 손쉽게 큰 돈을 버는 사업으로 인식되었다.5) 그래서 대중음악계에서의 가수 선발 기준은 음악성이 아니라 외모와 같은 스타성으로 바뀌었고, 철저히 10대들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는 기획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연예인’들이 필요했던 공중파방송에서도 이를 부추킨 측면이 있다. 그 결과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는 더 이상 음반 제작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붕괴였고, 한국 대중음악사 측면에서 보면 음악적인 자산을 잃어버리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1990년 11월 1일에 김현식이 사망했고, 유작 앨범인 6집은 100만장 이상 팔렸는데, 이는 향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기록일 것이다.
결국 ‘음악적인 진정성’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즉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나 그런 음악을 듣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안적인 시스템’을 생각했는데, 이것이 ‘인디뮤직(씬)’이다. 여기서 ‘대안적’이라는 말은 음악 미학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반 제작을 포함한 음악 활동 시스템’을 의미한다. 기존의 음반제작자들이 ‘창작에서 간섭받지 않으면서 완성도 높은 앨범 제작을 추구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뮤지션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구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음반을 만들거나 적어도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데 있어 간섭을 하지 않는 제작자 부류를 원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디레이블’이 갖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즉, 인디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택하는 공간이자 ‘시스템’이다. 그래서 ‘인디’를 얘기할 때 ‘음악창작’ 부분을 빼고 얘기하면 타당하지 않다.
‘인디뮤직 씬’의 탄생, 라이브클럽 드럭
90년대 초반 대안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바라던 사람들이 실험을 하기 시작한 곳은 홍대 주변이었다. 당시 ‘발전소’와 같은 음악과 미술, 춤이 어우러지는 클럽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1994년에 생긴 ‘드럭’은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라이브클럽의 시작이었다. 사실 드럭은 처음부터 라이브클럽이 아니었다. 클럽 드럭은 1994년에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밴드 클래시(The Clash)의 [London Calling](1979) 재킷 사진이 복사된 4절지에 ‘펑크록의 이상’이 격문처럼 쓰여진 포스터를 문에 붙이고 개장하였지만, 당시는 정기적인 공연을 염두에 두거나 인디뮤지션들의 근거지 개념은 없었다.
초기 드럭의 공간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조그만 TV들을 소도구로 이용한 ‘바/카페’의 개념이었고, 단지 한쪽에 밴드들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그믈망이 앞에 처진 작은 장소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이는 당시 신촌의 현대백화점 뒷쪽에 있었던 록카페6)들의 확장된 개념의 클럽이었다. 하지만 너바나의 여파로 그런지록이 인기를 얻고 70년대 펑크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특히 1994년 4월 8일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사망하여 ‘그런지록의 전설’로 남으면서 한국에서도 카피밴드 수준의 그런지록과 펑크밴드들이 생겨났다. 이들의 연주가 수용될 수 있었던 드럭은 흔히 말해 드롭아웃(drop-out)들의 해방구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시는 ‘공연장’의 개념만 있어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수준의 연주를 하는 밴드들(대개 헤비메틀 밴드들)은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그 이하 수준의 밴드들은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7)
1995년 4월에는 드럭에서 커트 코벤인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고, 이 때를 즈음해서 ‘드럭 밴드’라는 이름으로 정기 공연 체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 해부터 크라잉 넛,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코코어 등이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크라잉 넛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드럭은 점차 펑크록 중심의 라이브클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드럭이 펑크록의 메카로 자리 잡은 것은 1996년에 홍대 주차장거리와 명동에서 있었던 모잡지 주최의 ‘스트리트 펑크쇼’에 드럭의 밴드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 당시 보여주었던 관중들의 폭발적인 열기는 매체를 타고 전파되었고, 이런 호응을 얻어서 드럭에서 처음 만든 음반이 바로 [Our Nation]8)이었다. 이게 최초의 인디 앨범으로 얘기되고 있고, 그 해에는 ‘배드 테이스트’의 [One Man Band... Badtaste]도 발매되었다.
2)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
- 인디레이블의 도약기 (1997~1999)
인디레이블은 거대 상업 논리 하의 음악비즈니스 시스템에서에서 뮤지션에게 그나마 자유를 주는데,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을 지킬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상업성만을 생각하게끔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진 메이저 음반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인디레이블 체제에서는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디레이블은 마이너 성향의 뮤지션에게 있어 대중에 대한 창구일 수가 있고, 이것이 인디레이블 존재에 대한 당위성이다.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은 한국에서 인디레이블 시스템이 정착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레이블들이다.
▶ 인디(Indie)는 드럭, 재머스에 이은 인디레이블로 출발했지만 앞의 두 음반사가 자신들의 클럽과 클럽 밴드들을 홍보하려는 이유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제한된 범위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인디는 국내 최초의 ‘인디레이블’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음반사 인디의 모체는 10년간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대중음악씬에 발을 들여놓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뮤직센터21세기’9)였다. 이후 탄생된 인디는 “계약 기간은 1년이다. 손익분기점(3천장)을 넘기면 수익배분은 4 : 4 : 2(밴드 : 인디와 스튜디오 : 홍보비)로 한다. 밴드는 클럽 공연을 지속해야 한다. 인디가 망했을 때 인디를 인수한 사람의 의도가 애초의 인디의 의도와 맞지 않으면 음반의 판권은 밴드에게 간다”라는 뮤지션 측에 가장 큰 권리를 주는 명문화된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인디의 음반제작실장인 김종휘와 록밴드 허벅지의 보컬 안이영노는 인디 운영에서의 브레인이었는데, 이들은 1996년 봄에 시작된 각기 다른 클럽에 섰던 밴드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릴레이로 공연을 벌였던 ‘땅밑 달리기’를 주도한 중추 세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SM(실천하는 문화전사)을 표방하며 클럽 씬과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소식지인 ‘팬진 공’을 1997년에 ‘폐간’10)하는 일도 벌였다.
1997년 10월 인디, 팬진 공, 개클련(개방적 클럽 연대)에 의해서 노노 클럽에서 열린 ‘인디 시연회’는 향후 인디에서 발매할 밴드들을 선정하는 오디션 성격의 이벤트였고, 여기서는 코코어, 프리다칼로, 허벅지, 앤, 마루,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가 선정되었다. 그 해 12월 27일, 28일에는 인디 주최로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인디 록 페스티벌(정축년 독립만세 사건)’이 열렸다. 이후 제작된 인디 음반들은 사운드랩 스튜디오에서 고종진 엔지니어가 레코딩/믹싱을 하였고, 앤,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의 프로듀서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강사이기도 했던 기타리스트 김성수가 맡았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인디가 만든 가장 큰 업적은 다들 생각에만 머문 ‘인디레이블’을 현실화 시켜서 이들 성과에 대한 논의 여부를 떠나서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디는 1999년을 넘기지 못하고 운영을 중단했다.
▶ 강아지문화예술은 5명의 고등학교 동창생들(권병준, 이한별, 이효찬 등)이 자신들의 밴드인 강아지 독집 음반을 준비하다가 1997년에 만든 인디레이블이다. ‘인디’와 다른 점은 뮤지션들이 만든 음반사라는 점이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직접 음반 제작(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에 참여함으로써 느낌에 충실한 음반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마트의 데모 음반이나 허클베리 핀, 갱톨릭의 음반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특히 허클베리 핀의 데뷔 음반은 완성도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뮤지션들(99의 성기완, 노클루의 송현주, 도현호 등)이 있었다. 초기에는 방송 홍보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고, 최종적으로 영상, 인터넷방송 등 총체적인 문화 사업을 꾀했다. 기존 시장에서 음반화되기 힘든 밴드들의 음악도 팬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운영했지만 이들 또한 1999년을 넘기지 못했다.
3) 문라이즈와 홈레코딩
- 자주 레이블의 가속화 (2000~2004)
2000년은 인디레이블 역사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시작점은 2000년에 만들어진 문라이즈(Moonrise Record)였다. 이 레이블은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기타, 보컬)가 본인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의 1집 [Never Ending Stories]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한국 대중음악계는 콘텐츠 면에서 몰라보게 풍부해지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1999년을 기점으로 초기 인디레이블을 주도했던 강아지문화예술과 인디가 시장의 한계에 부딪쳤고, 그로써 부진한 활동을 하면서 잠시 과도기가 있었다. 그 와중에 홈레코딩(home-recording) 기술과 관련 소프트웨어, PC(하드웨어) 발전에 영향 받아 인디레이블 자체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개의 인디뮤지션들은 ‘자신이 운영하지 않는’ 저자본 레이블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인디레이블이 메이저레이블과는 매니지먼트 방식이 다르더라도 소속 뮤지션들이 자본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스위트피가 문라이즈 레이블을 만든 2000년 이후로는 점차 홈레코딩이 보편화되면서 뮤지션들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자생적인’ 인디뮤직씬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위트피의 1집 [Never Ending Stories](2000)를 필두로 전자양 [Day Is Far Too Long](2001), 마이 언트 매리(My Aunt Mary) [2nd My Aunt Mary](2001), Where The Story Ends [안내섬광](2001), 토마스 쿡(Thomas Cook) [Time Table](2001)이라는 명반들을 발매하였던 문라이즈는 한국 인디씬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문라이즈의 결과물들을 보고나서 뮤지션들은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패러다임을 실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음반제작의 주체가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여파는 2002년 이후로 인디씬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무수한 ‘자가’(뮤지션 스스로 설립해서 운영하는) 인디레이블이 생겨났다.
4)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
- 음악적인 스타일로 각 레이블 차별화 시도 (2005~)
홈레코딩으로 ‘음반제작’ 자체가 원활해지자 레이블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음반제작에 있어 ‘음악적인 전문성’을 부여하는 문제였다. 이는 다름 아닌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에 관한 문제였고, 이를 통해 각 레이블이 자신들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즉,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이었다. 파스텔뮤직, GMC, 일렉트릭 뮤즈, 튠테이블 무브먼트와 같은 레이블들이 대표적이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3. 경향신문, 가슴네트워크 ‘한국의 인디레이블’
▶ 제목 :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의 인디레이블’
▶ 기획 : 경향신문(khan.co.kr), 가슴네트워크(gaseum.co.kr)
▶ 진행 : 가슴네트워크
▶ 게재 : 2008년 7월 ~ 2009년 2월, 경향신문 주말섹션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봄
‘한국의 인디레이블’ 프로젝트를 생각한 것은 2008년 4월경이었다. 당시 나는 2008 광주청소년음악페스티벌 총감독을 맡아서 광주광역시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바로 전에 진행을 맡았던 네이버 오늘의뮤직 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는 3월부터 연재가 시작되었고, 이미 연재 전에 인터뷰 진행은 거의 끝났었기 때문에 약간은 한가로울 때였다.(물론 축제 준비 자체는 무척 바빴지만.) 그래서 가슴네트워크에서 당분간 매체사업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터였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템을 생각했다.
이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음반과 뮤지션을 다뤘기 때문에 이번에는 ‘음반사와 음반사 대표’를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 여태까지 대중음악 관련 기획기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신보를 냈거나 공연을 준비 중인 뮤지션과 그의 음반 중심이라서 뭔가 다양성 면에서 부족했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대중음악 기획’에 관한 점이 빠져 있었다. 사실 어떤 뮤지션이 아무리 훌륭한 노래를 만들어도 그걸 ‘음반기획’ 측면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대중들은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뛰어난 뮤지션을 알아보고 그에 걸맞는 음반기획을 해주는 음반제작자는 음악씬에서 무척 중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90년대 들어와서 그런 음반기획자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열악한 상태로 전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의 대안적인 시스템’인 인디음반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서서 홈레코딩 음반제작 시스템의 급격한 발전으로 뮤지션 스스로가 자신의 레이블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고, 2003년 무렵부터는 인디레이블의 숫자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이번 연재 기획인 ‘한국의 인디레이블’은 2000년대 들어서서 새롭게 대두된 인디레이블의 현재 상황과 ‘성장 이유’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 인디레이블 대표를 인터뷰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해당 인디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들을 소개함으로써 대중음악을 뮤지션과 음반을 넘어서서 ‘기획과 제작’ 측면에서 조망하려고 했다. 이번에 다룬 39개 인디레이블의 선정 기준은 창작적으로 뛰어난 음반이 얼마나 나왔는지가 관건이었다.(기타 음악적으로 조명할만한 가치를 갖는 레이블도 선정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번 39개 인디레이블들에 대한 기록은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음악창작자들이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원래 타이틀도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살펴본 인디음악의 현주소와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였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 연재 참여 필자(총 12명)와 담당 인디레이블(총 39개 레이블)
- 강일권(웹진 리드머 편집장) : 빅딜 레코드, 소울컴퍼니, 신의의지 레코드
- 김민규(일렉트릭 뮤즈 대표) : 강아지문화예술, 비트볼 레코드, 비행선, 핑퐁사운드, B-레코드
- 김양수(월간 PAPER 기자 & 만화가) : 카바레 사운드
- 김학선(웹진 보다 편집장) : 도프뮤직, 문라이즈, 타일뮤직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 스컹크 레이블, 쌈넷
- 배순탁(음악평론가) : 마스터플랜, 샤 레이블
- 성우진(음악평론가) : 드림온, 에그뮤직, 쥬신 프로덕션, 퀸 엔터테인먼트, 파고뮤직
- 이대화(웹진 이즘 편집장) : 드럭 레코드, 라디오뮤직, 롤리팝뮤직
- 차우진(음악평론가) : 벌룬앤니들, 파스텔뮤직, 해피로봇 레코드
- 최규성(대중문화평론가) : 리듬온, 리버맨뮤직, 인디, 일렉트릭 뮤즈
- 최민우(웹진 [weiv] 편집장) : 루비살롱 레코드, 튠테이블 무브먼트
- 홍정택(가슴네트워크 필자) : 루핀 레코드, 문화사기단, 붕가붕가 레코드, 석기시대, 튜브앰프 레코드, GMC 레코드
1) 그렇다면 2008년 상반기만 해도 인디씬에서 발매된 비둘기 우유 [Aero](일렉트릭 뮤즈), 뎁(Deb) [Parallel Moons](카바레사운드), 로로스(Lolo's) [Pax](튠테이블 무브먼트), DJ Shinin' Stone [The Hypnotize LP](스프링 돌핀), V.A. [한대수 트리뷰트 - 물 좀 주소](타일뮤직)와 같은 의미 있는 앨범들은 어떻게 얘기해야 할 것인가?
2) ‘지속’이 아니다. ‘지속’이라는 관점은 한국 대중음악씬에서 인디음악을 따로 보는 시각이다.
3) ‘작품’으로서의 음반. 이는 ‘음악비평’의 시작과도 관계가 있다. 영미권의 대중음악사를 보더라도 본격적으로 음악비평이 시작된 것은 ‘앨범’ 제작이 보편화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4) 이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최초이자 최후의 부류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90년대의 서태지 정도가 있었고(이도 그의 5집까지만), 대개의 경우 작품성은 상업성에 반하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5) ‘아이돌스타’ 시스템은 주류음악 매니지먼트에서의 위험 요소를 줄이는 방안으로 개발된 측면도 있다.
6) 우드스탁, 놀이를 하는 사람들, 도어스 등과 같이 마니아 취향의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고, 때로는 자발적인 가무를 하던 공간.
7) 물론 라이브클럽이 ‘아마추어 밴드들이 공연하는 장소’는 아니고, 클럽마다 오디션을 통해서 최소한 어느 정도 연주 수준을 가진 밴드들을 무대에 세운다. 하지만 1994~1995년 당시 아마추어 카피밴드일 수 밖에 없었던 그런지/펑크밴드들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새로운 개념’의 장소로 라이브클럽이 그 역할을 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인디뮤직씬이 탄생될 수 있었다.
8) 이 음반에는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이 앨범을 반씩 나누어서 참여했다.
9) 뮤직센터21세기에서는 투쟁적인 이데올로기의 록음악을 하는 메이데이, 이스크라, 천지인의 음반을 출시했다.
10) 이 잡지는 ‘폐간호’부터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1992년 10월
내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인 음악 청취 이력의 변동과 한국 인디음악 씬의 시작이 운명적으로(?) 맞물린다고 주장하고 싶다. 1992년 이 시기는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시대’가 막 꽃을 피우려던 시기였고, 그 즈음 문화계간지 상상, 리뷰 등도 창간되었으며, 문예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대중음악을 포함한 대중문화 강좌가 생겨났다. 그러면서 대중음악이 진지한 비평 대상이자 문화연구의 대상으로 편입되었는데, 이는 기존 음악평론가의 관점과는 다른 종류의 글들이었다.
신촌 일원 음악 씬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록카페’ 문화가 생성된 것이었고, 이에 대한 연구는 밴드 허벅지의 리더였던 안이영노의 석사논문 등에서 볼 수 있다. 내 경우는 그 무렵까지 집에서 혼자서 음악을 듣다가 드디어 밖에서 음악 교우들을 찾으려고 음악감상 모임에 가입했는데, 그게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내 인생 항로를 결정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한 음악마니아 모임이었다. 이게 제갈량이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 나름 많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그 모임을 찾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모임은 신촌 현대백화점 뒤에 위치한 ‘우드스탁’이라는 록카페에서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 2시에 음악감상회 겸 담소 등등을 했었는데, 돌아가면서 2~3명이 각자 50분 정도 분량의 감상회 준비를 해오는 방식이었다. 초기 4~5년은 매우 열심히들 참여했고, 지극정성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준비하고, 소개했으며 스터디모임 비슷한 것까지도 시도를 했었다. 때때로 주변의 록카페를 빌려서 밤새 놀기도 하고, MT 가서도 음악 듣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모임을 알게 된 것은 월간음악잡지 핫뮤직 독자게시판에서 모임 창단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서였고, 당시 ‘음악마니아로서의 매너리즘’에 어느 정도 빠져있던 터라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다. 정말 어려서부터 팝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포크, 퓨전재즈, 월드뮤직, 올드록, 하드록, 스래쉬․데스 등 온갖 종류의 헤비메틀에 이어 40~50년대 스탠다드 재즈까지 어느 정도 섭렵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새롭게 들을 음악이 없다는 것에 대한 갑갑증이 그 매너리즘의 원인이었다.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중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내게 30살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니, 어느 정도 조급증 비슷한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때 마침 내게 다가온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돌파구였다.
이 모임 음악감상회를 통해서 몇 가지를 깨달은 것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적인 트렌드’(정확하게 말해서 ‘현재의 음악을 듣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당시 모임에서도 최고령(?)이었고, 음악청취 스펙트럼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넓었을 뿐만 아니라, 세션이나 레코딩 상태 같은 것에 집중해서 들었기 때문에 흔히 말해 ‘제대로 된 음악’에 대한 감식안이 꽤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영미권 대중음악 거장들의 연주를 집중적으로 들었고, 음악잡지 보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음악은 어떻게든 들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기간이 물경 15년이나 되니 나름 그 방면의 고수가 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모임 동생들이 그 당시 영미권의 주류 대중음악권으로 막 편입되기 시작했던 얼터너티브록, 펑크 음악을 소개하는 것을 들으면서 한동안 혼란에 빠졌었다. 나 같은 올드록 마니아들은 짐작하겠지만, 올드록 마니아 입장에서 얼터너티브록, 특히 펑크는 음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기가 막히게 연주하고, 매우 훌륭하게 녹음된 음반들을 중심으로 듣던 음악마니아들은 이와 반대편에서 다른 음악적 가치를 추구하는 펑크는 그냥 소음 비슷했다. 1992년 당시를 회상하면, 영미권에서 너바나(Nirvana)의 전설적인 히트 앨범인 [Nevermind]에 왜 광분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클래쉬(The Clash)와 같은 ‘펑크 거장’의 음악들조차도 흥미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1980년대 영미권의 언더그라운드, 컬리지음악 씬에서 움트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음악적인 흐름인 얼터너티브 음악에 둔감했다. 지금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을 운영하는 옐로우 나인의 김형일대표도 모임 일원이었는데, 그가 소개하는 소닉 유스(Sonic Youth)의 [Dirty] 앨범에 수록된 <100%>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뜨악’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내가 4~5개월의 꾸준한 교화(?) 기간을 거치면서 1993년 봄 즈음에는 나 역시 얼터너티브록 팬으로 변했던 것 같다. 여기에는 R.E.M. 광팬이었던 박모양이 꾸준히 던져준 R.E.M. 음악의 영향도 컸다.
결국 나는 운이 좋아서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에 충실했던 모임 동생들 덕분에 80~90년대의 중요한 대중음악 트렌드를 체감할 수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금껏 음악평론가로 지내면서도 ‘콤플렉스’가 없는 편이다. 즉, ‘현재의 음악’을 단지 직업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좋아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의 음악’을 하는 ‘당대 뮤지션’을 발굴해서 조명해줘야 하는 소임을 가진 음악평론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단지 음악마니아라면 자기 취향 자체에만 충실해도 되기 때문에 ‘음악적인 트렌드’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크게는 자국의 대중음악산업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음악평론가는 이 부분이 직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는 음악 모임을 통해서 우연찮게 깨달은 점이지만, 그 깨달음은 대중음악계 주변부에만 머물던 내게 중앙으로 진입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 같다. 그래서 1997년에 대중음악전문지 《서브》를 만들던 당시부터 음악평론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동시대 평론’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 때까지도 다른 음악잡지에서 별로 다루지 않았던 영미권의 얼터너티브 음악과 한국 대중음악/인디음악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또한 1999년 11월에 가슴네트워크를 오픈할 때 가졌던 모토가 ‘지금, 여기, 우리의 가슴 열기’였다. 기억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와서, 『한국의 인디레이블』 머리말에서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인디음악’과 ‘인디레이블’은 현재 어떤 의미인가?”이다. 인디음악을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에서의 현재 지점으로 보는 시각은 고사하고, ‘현재 트렌드’(현재의 음악)로 보는 시각은 얼마나 있을런지. 1996년부터 시작된 1차 인디음악 붐은 다분히 언론의 선정적인 관심 때문이었지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1999년이 되니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체의 관심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게 2007년까지 이어져 오다가 2008년에 와서는 장기하와 주변으로 인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연초에 내게 몇몇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주요한 물음은 “장기하의 인기가 시들면 인디음악 붐도 꺼지지 않을까요?”였다. 이는 아직도 인디음악을 음악창작이나 음악트렌드, 음악산업 관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다. 장기하 때문에 인디음악이 떴다고? 천만의 말씀. 한국에서 인디음악은 이미 ‘시대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장기하가 대중적인 관심을 일시에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조짐은 2000년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 1집을 자신의 레이블인 문라이즈레코드(Moonrise Record)에서 내려고 할 때부터 ‘준비’되었다.1)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2)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2007년 7월)
|
연도/등급 |
올해앨범 |
필청앨범 |
우수앨범 |
주목앨범 |
기타앨범 |
소계 |
|
1996 |
1 |
2 |
0 |
2 |
1 |
6 |
|
1997 |
1 |
2 |
5 |
6 |
3 |
17 |
|
1998 |
1 |
10 |
11 |
14 |
25 |
61 |
|
1999 |
1 |
9 |
8 |
11 |
33 |
62 |
|
2000 |
1 |
9 |
13 |
27 |
53 |
103 |
|
2001 |
1 |
9 |
20 |
24 |
71 |
125 |
|
2002 |
1 |
9 |
22 |
28 |
68 |
128 |
|
2003 |
1 |
15 |
26 |
46 |
87 |
175 |
|
2004 |
1 |
16 |
25 |
37 |
111 |
190 |
|
2005 |
1 |
10 |
27 |
36 |
136 |
210 |
|
2006 |
1 |
11 |
33 |
44 |
164 |
253 |
|
2007 |
0 |
6 |
12 |
33 |
72 |
123 |
|
총계 |
11 |
108 |
202 |
308 |
824 |
1453 |
2002년 이후 본격화된 ‘홈레코딩 제작시스템’으로 인해서 2004년 무렵부터는 매년 발매되는 인디음반이 200장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2006년 무렵부터 각 인디레이블들이 신경 쓰는 것은 ‘음악적인 스타일’ 부분이고, 그래서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이 흐름에 맞물린 것이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이다. 2005~2006년 필자가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 본격적으로 전문화된 ‘한국 대중음악 축제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에는 ‘하나뮤직 스페셜’, ‘밸리 초이스’, ‘인디음악 10년사’, ‘민중음악 30년사’, ‘뉴 커런츠’ 프로그램을 3일에 걸쳐서 진행했다.3) 이후 2006년에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 2007년에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09년에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생겨나서 기존의 쌈지사운드페스티벌(1999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2004년)과 함께 한국 인디음악 씬을 키우고 있다. 장기하와얼굴들이 결정적으로 주목 받은 곳도 다름 아닌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 시장이 급성장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한국도 이제 영화제에 이어서 그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상기 음악축제들의 진행 경과를 보건데, 한국에서 적어도 향후 10년은 음악축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동반하여 인디음악의 성장세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2009년 10월
그동안 수고하신 필자 분들과 사진을 제공한 해당 레이블, 사진작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인터뷰에 성실하게 응해주신 레이블 대표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어렵게 매주 전면 지면을 내준 경향신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30주를 진행하는 동안 시간도 많이 뺏기고, 여러 어려움도 있었다. 반면 그에 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고, 관심을 가졌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또 한번 거대한 기록을 해냈다는 사실이고, 이게 ‘당대성’(현재 음악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만족한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2009년, 두 번째 붐을 맞은 한국 인디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훗날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분들을 거론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수용한 도서출판 선의 김윤태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출판사로서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고,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 전하고 싶다.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아카이브는 전적으로 도서출판 선의 도움이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인이즈 추정희 실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항상 성실함과 안정적인 퀄리티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를 만난 것도 내게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기꺼이 제공한 레이블 측과 최규성, 이정실, 권준경 씨 등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12명의 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들의 프로필은 ‘참여 필진 프로필’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인터뷰에 응해주신 레이블 대표 분들에게는 말할 나위 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이들로 인해서 이 책 출판이 가능했다.
올해 11월 가슴네트워크가 10주년을 맞고, 공연, 전시, 세미나, 출판, 출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를 준비 중이다. 이를 도와주고 있는 최규성, 하나, 류형규, 문예진, 신나리, 도미노, 김민규, 김민정 씨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KT&G 상상마당, 공간 루, 파스텔뮤직, 일렉트릭뮤즈, Views, maniadb.com, 향뮤직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곁에서 지지와 신뢰를 보내주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드디어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Trilogy’가 끝났다.
2009. 9. 30.
문화기획그룹 & 문화예술전문매체 ‘가슴네트워크’ 박준흠
1)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에서 방송국장으로 있을 때 김민규 씨가 문라이즈레코드 마케팅 정책에 관해 조언을 구하려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1+1’ 형식으로 본 앨범에다가 문라이즈 컴필레이션 시리즈를 붙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고, 이후 그런 방식으로 몇 장이 나왔다.
2) 2007년 7월에 『인디음반가이드 2000』을 집필하기 위해서 조사한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이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음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보다는 약간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유통망을 통해서 발매된 인디음반들은 다 소장하고 있고, 일부 라이브클럽에서만 파는 음반들도 수시로 구입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2009년 9월 시점에서 추정하건데 발매된 전체 인디음반은 2000장이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디음반가이드 2000』은 2010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있다.
3) 2005년 당시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하나뮤직 스페셜(조동진, 장필순, 한동준, 버드, 오소영, 이다오), 밸리초이스(한대수, 이병우, 이상은, 이승열), 인디음악 10년사(델리스파이스, 허클베리핀, 마이언트매리, 이장혁, 코스모스, 몽구스, 스웨터, 슬로우쥰, 페퍼톤스, 푸른새벽, 카프카,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바세린, 49몰핀스), 민중음악 30년사(안치환, 연영석, 손병휘, 노찾사, 꽃다지), 뉴 커런츠(미스티블루, 13스텝스). 그리고 4개의 거리무대에서 파스텔뮤직, 튜브앰프, 비트볼레코드, 카바레사운드, 12몽키즈, 핑퐁사운드, B레코드, 롤리팝이 레이블 무대를 가졌다. 한마디로 2009년 현재 대형 대중음악축제 프로그램의 원형이라고 자부한다.
<이미지 출처>
■ 표지, 내지 디자인에 아래 음반 이미지를 차용하였습니다.
나루(Naru) [자가당착(自家撞着)] (2008/해피로봇)
다방밴드 [돗대] (2005/일렉트릭뮤즈)
루비라이트(Rubylight) [Love, On!] (2006/루비살롱)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1996/석기시대)
얼스(Earls) [The Merrymaker] (2005/파스텔뮤직)
키비(Kebee) [Evolutional Poems] (2004/소울컴퍼니)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 [Folk, Ya!] (2006/일렉트릭뮤즈)
V.A. [클럽 하드코어, 아싸 오방 첫 앨범!] (1998/인디)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전(11/18~12/1, 대학로 공간루) 브로셔
가슴네트워크 기획․선정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Vol. 4
■ 추천사
인디음악에 대한 인식 재고와 마케팅 차원으로서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 출간이 갖는 의미
1990년대 말에 대중음악전문지 서브(SUB)를 운영할 때도 느꼈던 바이고, 이후에도 느끼는 바이지만 예술가를 소개하는 대중매체에서 사진은 정말로 중요하다. 텍스트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사진은 유효적절하게 부연할 수 있고, 또한 텍스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사진은 설명할 수 있다. 때로는 단 한 장의 사진만으도 그 예술가와 작품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가장 사진이 열악한 부분을 꼽으라면 아마 대중음악이 후보로 거론될 것이고, 그중에서도 인디음악 관련 사진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매우 열악하다. 외국의 음악전문지에 실리는 사진들과 비교한다면 전반적으로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는 단지 사진 자체의 퀄리티만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이해 수준을 포괄해서 얘기하는 것이다. 사진은 작가가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드러내고, 피사체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의도를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인디음악에 대한 대중적인 몰이해에는 그간의 대중매체 사진 작업들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디뮤지션 하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이미지는 ‘머리 뾰족하게 세운 아이들이 총천연색 의상을 입고 악을 쓰는 모습’인데, 1990년대 말부터 고착화된 이 이미지에서는 ‘음악창작’이나 ‘대안적인 시스템’이란 개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최근에 와서 몇몇 인디레이블들의 마케팅 성공과 대형 대중음악축제의 성장으로 대중적으로 소구력을 갖는 새로운 이미지들이 생기기는 했다. 장기하로 대표되는 코믹하면서도 허무한 이미지와 파스텔뮤직이 중심이 된 여린 감수성의 가요팝 이미지 등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대중매체 사진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현재 ‘중견’ 인디뮤지션들은 연령대가 어느 정도일까? 왜냐하면 대중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인디뮤지션들은 하나 같이 10대의 정신 연령을 가진 20대이거나 아웃사이더 성향의 20대 정도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델리스파이스, 코코어, 언니네이발관, 크라잉넛, 오브라더스와 같이 1995년 무렵부터 활동했던 인디 1세대 뮤지션들은 대략 1970~1973년생 범주에 드니 40살 무렵이거나 30대 후반이고, 어려야 30대 중반이다. 그리고 ‘중견’자가 붙는 대부분의 인디뮤지션들은 30대이다. 우리가 1980년대 대중음악계와 비교해서 생각한다면 언더그라운드의 장인급 뮤지션들로 인정받았던 김현식, 이정선, 한영애, 신촌블루스, 따로 또 같이, 들국화 등이 당시 3O대 뮤지션들이었고, 막 데뷔했지만 역시 ‘젊은 거장’ 소리를 들었던 조동익, 이병우 등은 20대에 불과했다. 또한 1990년대의 장필순, 이상은, 김현철, 유희열, 윤상, 이적 등도 20대 나이임에도 현재의 30대 인디뮤지션들처럼 ‘미성숙한 어른’ 취급은 받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현재의 인디음악과 인디뮤지션에 대한 인식은 본질과는 유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접근으로 형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말이 좋아서 ‘청년 이미지’이지, 이는 인디음악을 우리시대의 대중예술 안에서 보려는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고, 음악창작이나 예술적인 가치에 대한 논의를 별로 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인디음악에 대한 인식 재고와 마케팅 차원으로 해외 음악잡지에서 볼 수 있는 퀄리티의 사진들이 실리는 잡지나 단행본을 기획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이번에 발간되는 사진작가 최규성의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은 위와 같은 바람을 갖고 있었던 내게 조그마한 희망을 안겨주었다. 현실적인 여건상 오프라인 음악잡지를 만드는 일은 일간신문사를 끼고 주간지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출판기획 쪽만 전념할 수 밖에 없었던 내게 문화기획 측면에서 여러모로 긍정적이다. 이번 책은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되는 ‘인디뮤지션 사진집’이란 점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디음악과 인디뮤지션을 콘텐츠적으로 다루는 방법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도 평가받아야 한다. 여태까지 인디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책에 실린 고품격의 사진들에 충분히 매혹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인디음악 자체의 콘텐츠적인 가치는 상승될 것이고, 이로써 인디음악을 소스로 해서 기획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획의 폭을 넓혀주는 효과도 발생한다. 한국 대중음악의 저변을 넓혀주는 행위이다.
아울러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3부작’으로 기획되어 발간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VOL.1 음반리뷰』(2008),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VOL.2 인터뷰』(2009), 『한국의 인디레이블』(2009)에 이은 시리즈 1차분 종결판 형태이기 때문에 나름 의미도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는 당초 3부작으로 끝내려고 했으나 도서출판 선과의 협의 하에 추가적인 기획을 모색하려고 한다. 그래서 본 책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이 ‘시리즈 1차분’의 종결판이 된다.)
대중문화평론가로서, 프로 사진작가로서, 음반/공연기획자로서, 무엇보다 한국 대중음악 아카이브의 권위자로서 인디음악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을 낸 최규성 씨에게 축하한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문화기획그룹 & 문화예술전문매체’ 가슴네트워크가 도서출판 선에서 운영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1차분의 마지막을 장식해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본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전시 프로그램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전’(11월 18일 ~ 12월 1일, 대학로 공간 루)에서도 보실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가슴네트워크 홈페이지 http://www.gaseum.co.kr 참조)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전(11/18~12/1, 대학로 공간루) 브로셔
가슴네트워크 기획․선정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Vol. 4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
A Korean Indie Musician Photographs
(글. 사진 최규성 / 도서출판 선, 2009년 11월 초 발간 예정)
* 사진집에 실린 사진들을 중심으로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전'이 11월 18일(수)~12월 1일(화) 대학로 공간루에서 열립니다. 많은 관람 바랍니다.
■ 서문
최근 인디뮤지션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뜨겁다. 인디뮤지션은 공중파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주류 뮤지션들과는 달리 독립된 자본으로 자생력을 발휘하고 있는 홍대권의 대중음악인을 일컫는다. 이들은 다양한 장르의 창작음악을 다양한 장소에서 다채롭게 펼쳐내기에 사진작가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대상이다.
인디뮤지션들의 약진은 국내 대중음악의 저변을 넓혀주는 다양성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자우림, 체리필터, 허클베리핀, 언니네 이발관, 요조 등 수많은 인디뮤지션들이 나름 확고한 대중성을 획득하면서 주류와 인디의 경계마저 허물어지고 있다. 현재 인디음악은 아이돌 스타시스템으로 일관되었던 대중음악시장의 대안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을 지탱시키는 정신으로까지 재평가되고 있다. 이 같은 평가의 중심에는 쉼 없이 생산되는 인디 뮤지션들의 탁월한 창작 앨범이 자리함은 당연하다.
내가 인디음악을 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태동기 역사와 함께 한다. 당시, 모든 미디어 매체는 인디음악에 대한 본질적 이해보다는 파격적이고 돌출적인 행위에만 관심을 가졌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시적인 젊은이들의 광란이나 새로운 유흥문화의 발흥쯤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경쟁하듯 흥미위주의 이미지만이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물론 인디밴드들의 파격적 이미지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며 대중적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리긴 했다. 하지만 그 열기는 오래가진 못했고 차츰 인디뮤지션이라 하면 ‘인기 없고 팔리지 않는 괴상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왜곡된 대중적 편견으로 이어졌다.
어쩌면 일반대중에게 각인된 이 같은 인디뮤지션들의 이미지에 나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년 동안 많은 시공간을 부유하며 인디뮤지션들의 사진촬영에 몰두 한 것은 내용보다는 형식만을 보고 오해한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수도 있다. 몇 해 전부터 나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인디뮤지션들의 앨범이 담고 있는 신선함과 우수성을 재발견했다. 앞서 언급한 오랜 편견은 단박에 사라지고 이들이 우리 대중음악계에 소중한 밀알임을 깨닫게 되었다. 엄청난 대중적 관심을 경험했기에 그들은 좌절의 강도 또한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대중적 인기보단 묵묵하게 자신들의 음악공력을 쌓아오며 홍대 앞을 근거지로 로컬음악씬을 구축해 왔다.
2000년대 들어 급진적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디지털화는 이들을 대중문화의 새로운 주역으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Ucc 열풍과 인터넷 세대들의 개인 언론인 블로그, 미니홈피 그리고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음악 카페 등을 통해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을 깨는 갖가지 색다른 시도 등이 맞물리면서 인디뮤지션은 우리 시대가 주목하는 총아로 급부상되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모든 분야에 있어 이미지 메이킹은 꽤나 중요한 작업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사진 한 장에 담긴 이미지가 대중에게 발휘하는 파급효과는 무시할 수 없다. 왜곡된 사진들이 가져온 폐해의 잔영이 10년 이상 지속되었듯 수준급 퀄리티가 담보된 사진 한 장은 대중의 인디뮤지션에 대한 오랜 편견에 변화를 안겨 줄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보람이겠다. 나는 오랫동안 대중적 관심 밖에 있었던 인디뮤지션들이 실은 주류 뮤지션을 능가하는 가치 있고 매력적인 존재임을 이 사진집을 통해 대중에게 진정 알리고 싶었다.
국내 최초로 발간될 한국 인디뮤지션 사진집과 사진전에 소개될 사진들은 대략 2만장 정도 촬영한 사진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엄선된 85장의 작품들이다. 대부분 인디음악이 대중적 각광을 받기 시작한 지난 해 부터 금년까지 최근 2년 동안의 작업물이다. 물론 그 이전의 사진들도 있지만 절대다수가 가장 최근의 모습을 담은 미공개 사진들이란 점에서 활어 같은 신선도를 자신한다. 화려한 조명시설이 갖춰진 무대에 오르기에 일정 수준의 사진 퀄리티가 보장되는 주류 뮤지션들과는 달리 인디뮤지션들의 사진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물론 촬영여건이 양호한 대형 페스티발무대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출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칙칙하고 어두운 조명의 클럽이나 카페가 이들의 주 무대이기에 사진촬영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최근 인디뮤지션의 개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정확한 숫자를 가늠하긴 힘들지만 현재 600팀 이상의 인디밴드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각종 대형 뮤직페스티발과 홍대 앞 소규모 공연장, 라이브 클럽, 카페 무대와 인터뷰 현장, 사적인 공간을 뛰어다녔지만 내가 만난 인디뮤지션은 200팀도 채 되질 않는다. 단독 공연보다는 옴니버스 식으로 많은 수의 뮤지션들이 등장하는 인디뮤지션들의 무대성격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의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 인디뮤지션의 1/4 정도 밖에 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2년간 인디뮤지션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무게중심이 되어주고 있는 한대수, 김창완, 그리고 댄싱 팀 미미시스터즈가 정규멤버로 함께 활동하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퍼포먼스적인 무대성향이 인상적인 ‘고고스타’, 공연마다 예측불허의 무대매너를 펼쳐내는 하드록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 펑크록 밴드 ‘럭스’, ‘크라잉넛’, ‘노브레인’ 그리고 신예 밴드 ‘국카스텐’, ‘아폴로 18’,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는 킹스턴 루디스카, 국악을 록에 접목하며 진지한 음악자세를 견지한 김도균밴드, 모던 록의 새장을 연 ‘허클베리핀’이나 ‘언니네 이발관’, 그리고 사이키델릭한 음악으로 감동적인 음악을 선사하는 한음파, 가슴을 적셔주는 노래를 들려준 이 시대의 가인 김두수, 절망을 오히려 희망으로 극복하는 질박한 삶의 고갱이를 들려주는 탁월한 멜로디의 강허달림등 실로 다양한 인디뮤지션들과의 만남은 짜릿한 감흥을 내게 안겨주었다.
어느 시대나 대중이 주목하고 열광했던 뮤지션은 있게 마련이다. 대중음악은 누구에게나 즐거움과 위로를 안겨주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다. 나 역시 대중음악을 통해 획득한 즐거움과 위안의 크기는 재단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주류, 언더는 물론 장르를 뛰어넘어 감동을 안겨준 뮤지션들은 언제나 나의 영웅들이고 친구들이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대중음악에 관한 일련의 글쓰기와 사진 작업은 감동적인 노래로 내게 삶의 활력소를 공급해준 뮤지션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의 구체적 표현일 것이다. 이 사진집을 통해 내가 받은 감동이 대중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무려 2만장이 넘는 사진들을 다 소개할 수는 없는 지라 사진전과 사진집에 수록될 뮤지션들을 선택하는 과정은 필연적이었다. 선정 기준은 픽쳐밸류 즉 그림이 되는 지를 최우선에 두었다. 이는 대중적 인지도가 전무한 신인 뮤지션들의 선정을 가능하게 했다. 다음으로 대중적 인지도와 음악공력을 무시할 수 없기에 네임밸류를 고려했음을 밝힌다. 사진선정 작업은 즐거움과 더불어 고통 또한 동반되었다. 예컨대 동적이고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뮤지션과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정적인 뮤지션의 경우 소위 그림이 되는 사진이 나올 가능성은 전자의 경우가 확률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그 결과, 좋은 사진이 너무 많아 선택자체가 고민스러운 뮤지션이 있었는가 하면 인지도는 높지만 사진 적으로는 밋밋하고 평범해 선정에서 아쉽게도 제외된 뮤지션들도 많았음을 밝힌다. 하지만 가능한 많은 인디뮤지션들을 소개하기 위해 뮤지션별 안배도 잊지 않았다.
사진전에 전시될 사진들은 사진집에 수록되어 영원히 기록될 예정이다. 국내 최초로 발간되는 인디뮤지션 사진집은 8개의 카타고리로 사진의 성격을 분류해 구성했다. 수록된 사진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1번 <Lighting& Artist> 카타고리는 조명과 아티스트의 어울림에 중점을 둔 사진들이다. 무대에 오른 뮤지션과 무대조명은 필연적인 역학 관계가 성립된다. 이 카타고리에 선정된 루시드 폴의 사진은 우연하게 얻어냈다. 오랜만에 록밴드 미선이를 결성해 무대에 올랐던 그는 음악성격상 움직임이 별로 없는 정적인 뮤지션이다. 확률 상 좋은 사진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아 무대 전체를 보여주는 전경 사진을 찍기 위해 관객 뒤쪽으로 갔다가 조명과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는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밴드 한음파의 리드보컬 이정훈의 독특한 사진은 홍대 앞 라이브 클럽 Ff의 벽면에 걸린 대형 유리가 있는 특이한 실내구조가 탄생시킨 흥미로운 사진이다. 비슷한 사진이 한 장 더 있다. 5번 <Passion> 카타고리에 수록된 록큰롤밴드 폰부스의 사진도 같은 장소에서 담아낸 사진이다. 이 카타고리의 록밴드 마제 사진은 다리부상에도 불구하고 목발을 짚고 헬로루키 결선무대에 올라 열창하는 감동적 모습이다.
2번 <Performance> 카타고리에 수록된 지난 해 쌈지사운드페스티발에서 촬영한 ‘고고스타’의 공중돌기 사진은 순간포착의 공력 덕을 본 사진이다. 무대 정면에서만 촬영하다 독특한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리드 싱어의 모습을 관객들을 배경으로 촬영하려 무대 위로 올라가던 중 우연하게 포착했다. 3번 <Shouting>은 열창하는 순간의 사진모음이다. 4번 <From Major To Indie>는 주류가수로 성공을 거둔 후 인디뮤지션으로 거듭나 자신의 음악세계를 지켜나가는 뮤지션들 사진을 모았다. 이 카타고리에 있는 김두수의 사진은 오랜 운둔 생활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2003년 첫 컴백공연사진이다. 공연장을 잡지 못해 연극무대에서 열린 공연이었기에 독특한 분위기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하모니카를 부는 한대수사진은 그의 라이브앨범 재킷으로도 사용된 사진이다.
6번 <Coolness>카타고리에는 상대적으로 정적이면서 진지한 모습들을 모았다. 7번 <Individuality> 카타고리는 독특한 몸짓이나 의상, 소품을 착용한 뮤지션들의 사진들이다. 특히 산등성이 바위 위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있는 신광조선생의 사진은 내게 각별한 사진이다. 한 평생을 대중적 조명 없이 재야의 고수 블루스 기타리스트로 살아온 그는 2008년 한 인디레이블을 통해 단 한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었다. 그리곤 홍대 앞 클럽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앞두고 황망하게 세상을 등진 비운의 뮤지션이다. 이 대목에선 한 장의 앨범 발표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유재하와 닮은꼴이다. 수록된 사진은 그가 강화도에 소재한 혈구산에서 음악과 더불어 외롭게 살아 갈 때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8번 <Cheers>에는 한국대중음악의 지킴이들인 열광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담았다.
지난 2년간 최선을 다했지만 능력의 부족, 지면과 공간의 제한, 아티스트에 대한 나의 무지 그리고 공연 일정의 중복, 정보의 부재 등으로 수록되지 못한 뮤지션들이 허다하다. 그 점은 아쉽고 미안한 대목이다. 다만 국내 최초로 인디뮤지션들을 이미지로 조명하는 이번 작업은 그 자체로 한국대중음악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사진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인디뮤지션에 대한 대중적 인식 전환의 계기에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큰 보람일 것 같다. 가슴네트워크 창립 10주년을 맞아 국내 최초의 인디뮤지션 사진집과 사진전을 제안해준 가슴네트워크 박준흠대표와 선정된 인디뮤지션 모두에게 고마움과 축하를 함께 전한다.
/글=최규성(사진가,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vol.2 인터뷰
* 신동아 기고.
음악평론가와 음악연구자는 기본적인 관심사가 다르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각각 ‘당대 평가’와 ‘아카이브’를 화두로 껴안고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미진해 보이지만 결국 이 둘이 핵심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1997년, 32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음악평론을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염두에 두었던 것은 ‘당대 평가’ 부분이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나오는 앨범은 하나도 빼먹지 않고 소장하고, 비평을 할 때는 그 앨범이 나온 시기에 바로 해야 한다는 지침 비슷한 것을 갖게 되었고, 이는 대략 지키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지금은 음악연구자의 길로 접어든 느낌이다. 사실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 때문에 생긴 것이고, 그것은 한국 대중음악 80년 역사에 대한 ‘윤곽’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당대 뮤지션과 그 주변에 대한 ‘기록’ 부분이었다.
여기서 ‘윤곽’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큼 한국 대중음악 80년 역사에 대한 정리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의아하게 여기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대중음악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발표된 음반에 대한 텍스트, 이미지, 음원에 대한 정리보존인데 여태까지 한국에서 발표된 대중음악 음반들의 ‘목록’조차 없으니 한국 대중음악 80년 역사에 대한 ‘윤곽’을 아는 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음반콜렉터들끼리 1920년대 중반 대중음악 SP 음반이 나온 이후 대략 10~15만장 정도의 음반이 나왔을 것으로만 추정한다. 하지만 그 ‘윤곽’을 밝혀내는 작업은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내가 치중하기로 한 것은 당대 뮤지션과 그 주변에 대한 ‘기록’ 부분이었다.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시리즈(음반리뷰, 인터뷰)는 현재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조명해줄 필요성이 있는 대상을 음반과 뮤지션으로 각기 나눠서 진행했는데, 처음부터 책 발간을 염두에 두고 중앙의 매체를 활용하는 기획을 한 경우였다. 물론 가슴네트워크에서 혼자서 연재 글을 쓰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자니 매체력이 크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래서 경향신문과 네이버라는 장을 마련한 다음 다수의 필자들과 공동 작업을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결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고역이었지만 화제성도 있었고, 단기간에 여러 필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모으는 것이 가능했다.
이번 책은 ‘100대 명반’에 선정된 음반의 주인공들 중에서 30명을 인터뷰로 풀어가려는 기획의도를 갖고 있었다. 5개월간의 준비 끝에 2008년 3월 15일 네이버 [오늘의 뮤직] 중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코너에 1회가 실림으로써 빛을 보게 되었다. 1회는 안인용 씨가 인터뷰한 클래지콰이(DJ클래지, 호란, 알렉스) 편이었다. 이후 신중현, 한대수, 조용필, 최이철, 배철수, 이정선, 김수철, 김두수, 신해철 등 당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인터뷰가 올라갔다. 이 연재는 네이버 메인화면에 노출된 콘텐츠여서 그런지 매회 상당한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는 인디뮤지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가슴네트워크 10년 역사상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기획물임에 분명하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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