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8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
*별점은 해당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률적으로 매긴 평점입니다.)
1985년과 86년은 한국 록의 역사에 있어서 르네상스로 기억될 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의 록커들이 한데 모여 그룹사운드 페스티벌을 열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작은하늘, 블랙홀, 블랙신드롬 등이 전면에 나섰고 학교에서는 신윤철, 손무현, 오태호 등의 기타 연주자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또 신중현의 주도로 국내최초의 록 전문 공연장 이태원 록월드가 생겨났다. 이 시기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 신대철, 김도균, 김태원 3대 기타리스트의 등장과 시나위, 부활, 백두산의 삼두체제가 태동이다. 시나위, 부활, 백두산은 86년 나란히 데뷔 앨범을 냈고 그중 부활의 [Rock Will Never Die]는 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가장 많은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승철의 합류 전 부활은 ‘디 엔드’라는 이름으로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후 김종서를 거쳐 이승철을 영입한 뒤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데뷔앨범을 발표한다. 부활의 콘서트장은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고 소녀 팬들은 <희야>에 열광했다. 그 중심에 당대 최고의 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인 김태원과 미성의 록커 이승철이 있었다.
부활은 시나위, 백두산과는 달랐다. 록을 기본으로 하지만 밴드의 음악을 관통하는 것은 수려한 멜로디다. 금속음과 속도경쟁이 판치던 시절 부활은 헤비메틀의 조류에 합류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룹의 리더 김태원은 주류 가요에서부터 클래식까지 폭넓게 수용해 독창적인 기타연주를 보여줬다. <희야>에서의 애절한 인트로,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비장한 솔로는 김태원의 독특한 사운드메이킹을 분명히 드러냈다. 김태원의 기타는 발라드로 대표되지만 이 앨범에서 연주의 백미는 <인형의 부활>에 녹아 있다. 이 곡에서 김태원은 절제된 속주, 섬세한 피킹, 강약을 넘나드는 템포 등 자신의 역량이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김태원의 연주는 신대철이나 김도균처럼 힘 있고 빠르진 않지만 슬로, 미드 템포에서 더 화려한 광채를 뿜어낸다.
김태원이 부활 사운드의 핵이라면 그 사운드를 더 찬란하게 빛나게 하는 것은 이승철의 보컬이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와 양홍섭이 작사, 작곡한 <희야>는 이승철을 위한 곡이었다. 이승철의 미성은 록보컬로서는 단점이 될 수 있었지만 이러한 곡들로 인해 오히려 최고의 서정성으로 팬들에 어필한다. 향후 조용필의 후계자로 지목받을 만큼 가요계의 거목으로 성장한 이승철이지만 김태원의 식견이 아니었더라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김태원은 이같이 보컬을 발굴하는 데도 남다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사랑할수록>의 고 김재기, <Lonely Night>의 박완규 그리고 최근 11집의 정동하까지 많은 보컬이 부활을 거쳐 갔다.
한국 록의 황금기에 태어나 최고의 대중적 지지를 얻었던 부활. 이들은 록과 정반대에 서있던 소녀팬들까지 록의 영역으로 초대했고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라이브를 꽃피우게 했다. 그리고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지치지 않는 활동으로 대한민국 록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황정/음악동호회 나무를사랑하는사람들)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8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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