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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총서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3 POSTS


  1.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문화기획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2년 10월


    내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인 음악 청취 이력의 변동과 한국 인디음악 씬의 시작이 운명적으로(?) 맞물린다고 주장하고 싶다. 1992년 이 시기는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시대’가 막 꽃을 피우려던 시기였고, 그 즈음 문화계간지 상상, 리뷰 등도 창간되었으며, 문예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대중음악을 포함한 대중문화 강좌가 생겨났다. 그러면서 대중음악이 진지한 비평 대상이자 문화연구의 대상으로 편입되었는데, 이는 기존 음악평론가의 관점과는 다른 종류의 글들이었다.


    신촌 일원 음악 씬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록카페’ 문화가 생성된 것이었고, 이에 대한 연구는 밴드 허벅지의 리더였던 안이영노의 석사논문 등에서 볼 수 있다. 내 경우는 그 무렵까지 집에서 혼자서 음악을 듣다가 드디어 밖에서 음악 교우들을 찾으려고 음악감상 모임에 가입했는데, 그게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내 인생 항로를 결정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한 음악마니아 모임이었다. 이게 제갈량이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 나름 많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그 모임을 찾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모임은 신촌 현대백화점 뒤에 위치한 ‘우드스탁’이라는 록카페에서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 2시에 음악감상회 겸 담소 등등을 했었는데, 돌아가면서 2~3명이 각자 50분 정도 분량의 감상회 준비를 해오는 방식이었다. 초기 4~5년은 매우 열심히들 참여했고, 지극정성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준비하고, 소개했으며 스터디모임 비슷한 것까지도 시도를 했었다. 때때로 주변의 록카페를 빌려서 밤새 놀기도 하고, MT 가서도 음악 듣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모임을 알게 된 것은 월간음악잡지 핫뮤직 독자게시판에서 모임 창단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서였고, 당시 ‘음악마니아로서의 매너리즘’에 어느 정도 빠져있던 터라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다. 정말 어려서부터 팝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포크, 퓨전재즈, 월드뮤직, 올드록, 하드록, 스래쉬․데스 등 온갖 종류의 헤비메틀에 이어 40~50년대 스탠다드 재즈까지 어느 정도 섭렵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새롭게 들을 음악이 없다는 것에 대한 갑갑증이 그 매너리즘의 원인이었다.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중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내게 30살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니, 어느 정도 조급증 비슷한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때 마침 내게 다가온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돌파구였다.


    이 모임 음악감상회를 통해서 몇 가지를 깨달은 것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적인 트렌드’(정확하게 말해서 ‘현재의 음악을 듣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당시 모임에서도 최고령(?)이었고, 음악청취 스펙트럼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넓었을 뿐만 아니라, 세션이나 레코딩 상태 같은 것에 집중해서 들었기 때문에 흔히 말해 ‘제대로 된 음악’에 대한 감식안이 꽤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영미권 대중음악 거장들의 연주를 집중적으로 들었고, 음악잡지 보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음악은 어떻게든 들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기간이 물경 15년이나 되니 나름 그 방면의 고수가 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모임 동생들이 그 당시 영미권의 주류 대중음악권으로 막 편입되기 시작했던 얼터너티브록, 펑크 음악을 소개하는 것을 들으면서 한동안 혼란에 빠졌었다. 나 같은 올드록 마니아들은 짐작하겠지만, 올드록 마니아 입장에서 얼터너티브록, 특히 펑크는 음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기가 막히게 연주하고, 매우 훌륭하게 녹음된 음반들을 중심으로 듣던 음악마니아들은 이와 반대편에서 다른 음악적 가치를 추구하는 펑크는 그냥 소음 비슷했다. 1992년 당시를 회상하면, 영미권에서 너바나(Nirvana)의 전설적인 히트 앨범인 [Nevermind]에 왜 광분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클래쉬(The Clash)와 같은 ‘펑크 거장’의 음악들조차도 흥미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1980년대 영미권의 언더그라운드, 컬리지음악 씬에서 움트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음악적인 흐름인 얼터너티브 음악에 둔감했다. 지금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을 운영하는 옐로우 나인의 김형일대표도 모임 일원이었는데, 그가 소개하는 소닉 유스(Sonic Youth)의 [Dirty] 앨범에 수록된 <100%>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뜨악’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내가 4~5개월의 꾸준한 교화(?) 기간을 거치면서 1993년 봄 즈음에는 나 역시 얼터너티브록 팬으로 변했던 것 같다. 여기에는 R.E.M. 광팬이었던 박모양이 꾸준히 던져준 R.E.M. 음악의 영향도 컸다.


    결국 나는 운이 좋아서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에 충실했던 모임 동생들 덕분에 80~90년대의 중요한 대중음악 트렌드를 체감할 수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금껏 음악평론가로 지내면서도 ‘콤플렉스’가 없는 편이다. 즉, ‘현재의 음악’을 단지 직업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좋아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의 음악’을 하는 ‘당대 뮤지션’을 발굴해서 조명해줘야 하는 소임을 가진 음악평론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단지 음악마니아라면 자기 취향 자체에만 충실해도 되기 때문에 ‘음악적인 트렌드’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크게는 자국의 대중음악산업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음악평론가는 이 부분이 직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는 음악 모임을 통해서 우연찮게 깨달은 점이지만, 그 깨달음은 대중음악계 주변부에만 머물던 내게 중앙으로 진입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 같다. 그래서 1997년에 대중음악전문지 《서브》를 만들던 당시부터 음악평론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동시대 평론’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 때까지도 다른 음악잡지에서 별로 다루지 않았던 영미권의 얼터너티브 음악과 한국 대중음악/인디음악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또한 1999년 11월에 가슴네트워크를 오픈할 때 가졌던 모토가 ‘지금, 여기, 우리의 가슴 열기’였다. 기억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와서, 『한국의 인디레이블』 머리말에서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인디음악’과 ‘인디레이블’은 현재 어떤 의미인가?”이다. 인디음악을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에서의 현재 지점으로 보는 시각은 고사하고, ‘현재 트렌드’(현재의 음악)로 보는 시각은 얼마나 있을런지. 1996년부터 시작된 1차 인디음악 붐은 다분히 언론의 선정적인 관심 때문이었지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1999년이 되니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체의 관심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게 2007년까지 이어져 오다가 2008년에 와서는 장기하와 주변으로 인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연초에 내게 몇몇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주요한 물음은 “장기하의 인기가 시들면 인디음악 붐도 꺼지지 않을까요?”였다. 이는 아직도 인디음악을 음악창작이나 음악트렌드, 음악산업 관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다. 장기하 때문에 인디음악이 떴다고? 천만의 말씀. 한국에서 인디음악은 이미 ‘시대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장기하가 대중적인 관심을 일시에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조짐은 2000년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 1집을 자신의 레이블인 문라이즈레코드(Moonrise Record)에서 내려고 할 때부터 ‘준비’되었다.1)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2)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2007년 7월)

    연도/등급

    올해앨범

    필청앨범

    우수앨범

    주목앨범

    기타앨범

    소계

    1996

    1

    2

    0

    2

    1

    6

    1997

    1

    2

    5

    6

    3

    17

    1998

    1

    10

    11

    14

    25

    61

    1999

    1

    9

    8

    11

    33

    62

    2000

    1

    9

    13

    27

    53

    103

    2001

    1

    9

    20

    24

    71

    125

    2002

    1

    9

    22

    28

    68

    128

    2003

    1

    15

    26

    46

    87

    175

    2004

    1

    16

    25

    37

    111

    190

    2005

    1

    10

    27

    36

    136

    210

    2006

    1

    11

    33

    44

    164

    253

    2007

    0

    6

    12

    33

    72

    123

    총계

    11

    108

    202

    308

    824

    1453



    2002년 이후 본격화된 ‘홈레코딩 제작시스템’으로 인해서 2004년 무렵부터는 매년 발매되는 인디음반이 200장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2006년 무렵부터 각 인디레이블들이 신경 쓰는 것은 ‘음악적인 스타일’ 부분이고, 그래서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이 흐름에 맞물린 것이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이다. 2005~2006년 필자가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 본격적으로 전문화된 ‘한국 대중음악 축제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에는 ‘하나뮤직 스페셜’, ‘밸리 초이스’, ‘인디음악 10년사’, ‘민중음악 30년사’, ‘뉴 커런츠’ 프로그램을 3일에 걸쳐서 진행했다.3) 이후 2006년에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 2007년에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09년에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생겨나서 기존의 쌈지사운드페스티벌(1999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2004년)과 함께 한국 인디음악 씬을 키우고 있다. 장기하와얼굴들이 결정적으로 주목 받은 곳도 다름 아닌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 시장이 급성장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한국도 이제 영화제에 이어서 그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상기 음악축제들의 진행 경과를 보건데, 한국에서 적어도 향후 10년은 음악축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동반하여 인디음악의 성장세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2009년 10월


    그동안 수고하신 필자 분들과 사진을 제공한 해당 레이블, 사진작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인터뷰에 성실하게 응해주신 레이블 대표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어렵게 매주 전면 지면을 내준 경향신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30주를 진행하는 동안 시간도 많이 뺏기고, 여러 어려움도 있었다. 반면 그에 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고, 관심을 가졌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또 한번 거대한 기록을 해냈다는 사실이고, 이게 ‘당대성’(현재 음악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만족한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2009년, 두 번째 붐을 맞은 한국 인디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훗날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분들을 거론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수용한 도서출판 선의 김윤태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출판사로서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고,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 전하고 싶다.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아카이브는 전적으로 도서출판 선의 도움이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인이즈 추정희 실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항상 성실함과 안정적인 퀄리티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를 만난 것도 내게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기꺼이 제공한 레이블 측과 최규성, 이정실, 권준경 씨 등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12명의 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들의 프로필은 ‘참여 필진 프로필’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인터뷰에 응해주신 레이블 대표 분들에게는 말할 나위 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이들로 인해서 이 책 출판이 가능했다.


    올해 11월 가슴네트워크가 10주년을 맞고, 공연, 전시, 세미나, 출판, 출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를 준비 중이다. 이를 도와주고 있는 최규성, 하나, 류형규, 문예진, 신나리, 도미노, 김민규, 김민정 씨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KT&G 상상마당, 공간 루, 파스텔뮤직, 일렉트릭뮤즈, Views, maniadb.com, 향뮤직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곁에서 지지와 신뢰를 보내주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드디어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Trilogy’가 끝났다.



    2009. 9. 30.

    문화기획그룹 & 문화예술전문매체 ‘가슴네트워크’ 박준흠




    1)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에서 방송국장으로 있을 때 김민규 씨가 문라이즈레코드 마케팅 정책에 관해 조언을 구하려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1+1’ 형식으로 본 앨범에다가 문라이즈 컴필레이션 시리즈를 붙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고, 이후 그런 방식으로 몇 장이 나왔다.


    2) 2007년 7월에 『인디음반가이드 2000』을 집필하기 위해서 조사한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이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음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보다는 약간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유통망을 통해서 발매된 인디음반들은 다 소장하고 있고, 일부 라이브클럽에서만 파는 음반들도 수시로 구입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2009년 9월 시점에서 추정하건데 발매된 전체 인디음반은 2000장이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디음반가이드 2000』은 2010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있다.


    3) 2005년 당시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하나뮤직 스페셜(조동진, 장필순, 한동준, 버드, 오소영, 이다오), 밸리초이스(한대수, 이병우, 이상은, 이승열), 인디음악 10년사(델리스파이스, 허클베리핀, 마이언트매리, 이장혁, 코스모스, 몽구스, 스웨터, 슬로우쥰, 페퍼톤스, 푸른새벽, 카프카,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바세린, 49몰핀스), 민중음악 30년사(안치환, 연영석, 손병휘, 노찾사, 꽃다지), 뉴 커런츠(미스티블루, 13스텝스). 그리고 4개의 거리무대에서 파스텔뮤직, 튜브앰프, 비트볼레코드, 카바레사운드, 12몽키즈, 핑퐁사운드, B레코드, 롤리팝이 레이블 무대를 가졌다. 한마디로 2009년 현재 대형 대중음악축제 프로그램의 원형이라고 자부한다.




    <이미지 출처>


    ■ 표지, 내지 디자인에 아래 음반 이미지를 차용하였습니다.

    나루(Naru) [자가당착(自家撞着)] (2008/해피로봇)

    다방밴드 [돗대] (2005/일렉트릭뮤즈)

    루비라이트(Rubylight) [Love, On!] (2006/루비살롱)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1996/석기시대)

    얼스(Earls) [The Merrymaker] (2005/파스텔뮤직)

    키비(Kebee) [Evolutional Poems] (2004/소울컴퍼니)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 [Folk, Ya!] (2006/일렉트릭뮤즈)

    V.A. [클럽 하드코어, 아싸 오방 첫 앨범!] (1998/인디)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문화기획자 1992년 10월 내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인 음악 청취 이력의 변동과 한국 인디음악 씬의 시작이 운명적으로(?) 맞물린다고 주장하고 싶다. 1992년 이 시기는 한...
  2. 개성 있는 음악은 모두 모여라

    마른 장마가 선사한 기분 좋은 바람을 안고 마포 성미산 끝자락에 위치한 비트볼 레코드 사무실로 향한다. 항상 위트 있는 기획으로 음악 마니아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비트볼 레코드는 숨겨진 명반의 재발매, 해외 음반 라이선스, 국내 아티스트의 음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세 명의 음악 마니아이자 컬렉터가 모여 2002년 설립한 비트볼 레코드는 음악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진 이들만이 할 수 있는 기획으로 국내외 음악 팬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린다 퍼핵스(Linda Perhacs), 데블스, 신중현 등 국내외 명반의 재발매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음반시장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최근에는 시애틀의 명문 인디 레이블 서브팝(Sub Pop)과 계약을 맺으며 해외 음반 라이선스 발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라이너스의 담요, 몽구스, 스마일즈, 아워멜츠 등 개성 있는 국내 아티스트의 발굴에도 일가견을 보이며 ‘비트볼’이라는 브랜드를 성실하게 구축하고 있다.

    지난 시절의 음악 유산을 기억하는 레이블

    ‘눈뜨고 코베인’
    비트볼 레코드의 공식적인 시작은 일본 출신 마마 기타(Mama Guitar)의 ‘Introducing… Mama Guitar’(2001)이고, 비공식적인 시작은 마이크 올드리지(Mike Auldridge)의 ‘Mike Auldridge & Old Dog’(1999)이다. ‘과거의 음악적 유산을 이어가며 거기에서 가지치고 있는 음악’을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다는 이봉수 대표의 말처럼 비트볼 레코드는 음악적으로 풍성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와 이를 잇고 있는 현재의 음악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기획으로 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인디 레이블로 성장하고 있다.

    시완 레코드의 직원이자 열혈 음반 컬렉터였던 이봉수 대표는 1999년 “내가 좋아하는 음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의 레이블을 구상했다. 처음에는 음악 마니아, 애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정도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봉수 대표의 1인 레이블로 시작한 비트볼 레코드는 김상만(영화 ‘걸 스카우트’ 감독), 김영준(음악카페 ‘Buzz’ 운영)이 합류해 3인 체제가 된 2002년부터 본격적인 레이블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는 이봉수 대표를 꼭짓점으로 A&R의 박철우, 세일즈·마케팅의 이장호·홍소희, 디자인의 백지훈 등의 인원이 비트볼 레코드의 조직을 구성하고 있다.

    ‘몽구스’
    비트볼 레코드는 초창기 국내외 숨겨진 명반의 재발매로 호응을 얻었다. 특히 린다 퍼핵스(Linda Perhacs)의 ‘Parallelograms’(2005)의 경우 일본, 유럽 등지로 수출하여 매진사례를 기록했고, 해외에 단골고객이 있을 정도로 리이슈 레이블로 명성을 떨쳤다. 김상만씨의 의견으로 시작한 국내 아티스트의 음반 발매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첫 아티스트였던 라이너스의 담요의 ‘Semester’ EP는 많은 광고, 영화에 음악이 쓰일 정도로 예상을 넘어서는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비트볼 레코드는 네눈밖이나무밑쑤시기, 몽구스, 머스탱스, 바비빌, 스마일즈, 아워멜츠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비트볼 레코드의 특징은 과거의 음악적 유산과 현재를 잇는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에도 있지만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시각으로 국내외 음악신을 함께 바라보는 기획에도 있었다. 이는 음악적으로 연결성이 있는 국내외 아티스트의 발굴에서 시작해 이후 국내외 아티스트의 음악적 교류, 국내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로까지 이어지는 긍정적인 사례를 낳았다. 음악에 대한 풍부한 시각이 레이블의 기획으로 이어지고, 고유한 콘텐츠로 자신만의 음악적 브랜드를 형성하고 있는 비트볼 레코드는 국내 인디 레이블의 모범사례이자 국내 음악시장의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잡고 있다. www.beatballrecords.com. 서울 마포구 성산동 113-3 명문 빌딩 5층. (02)323-8685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머와 오프비트 에너지!

    지난달 25일 비트볼 레코드 사무실에서 이봉수 대표(오른쪽 사진)를 만났다.

    -비트볼 레코드를 시작한 건 언제인가.

    “2002년 가을이다. 봉그래스란 이름으로 마이크 올드리지의 음반을 낸 것이 1999년인데 당시는 비트볼의 모체가 되었던 시기 정도였다. 그러다가 2000년에 마마기타 음반을 준비하면서 비트볼 레코드라는 이름을 처음 쓰게 되었다. 이후 비트볼 레코드가 여러 서브 레이블의 모회사처럼 되었던 거다.”

    -김상만씨가 참여한 건 그 이후인가.

    ‘스마일스’
    “2002년 가을이다. 그때 멤버가 김상만, 김영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다. 셋 모두 음악 마니아이자 컬렉터였고, 거기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가진 리이슈 음반을 내보자고 의기투합했었다. 제일 처음 발매한 것이 린다 호일, 존 세인트 필드(John St. Field), 쉬버(The Shiver) 등 재발매 LP 3종이었다.”

    -그럼 리이슈 음반 이후 국내 음반 제작이 이어진 건가.

    “병행되었던 거다. 스튜디오 설비가 있는 일산으로 회사를 옮기면서 김상만씨가 로컬 타이틀을 제작해보자 해서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03년에 라이너스의 담요, 네눈밖이나무밑쑤시기와 연결이 되었다. 이후 바비스 로킹 체어(Bobby’s Rocking Chair), 이소벨 캠블(Isobel Campbell), BMX 밴디츠(BMX Bandits) 등 옛적 팝 감수성을 간직하면서 동시대와 호흡하는 해외 라이선스 음반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국내와 해외를 포함해서 비트볼 레코드에서 아티스트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사지타’
    “지금까지는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 선택했었다(웃음). 지금은 구성원의 취향도 최대한 받아들이려 한다. 처음 설립할 때 우리가 기조로 삼았던 기준, ‘기존의 음악적인 유산을 이어가면서 거기에서 가지치기로 나오는 음악’들을 장르를 아울러서 소개하고 싶은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해외 인디 레이블과의 관계를 통해 국내 아티스트의 해외 진출에 대한 시도가 있었지 않나.

    “2002년 레이블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런 쪽을 염두에 두고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여러 일을 통해 실감했다. 일본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우리 음반이 일본에서 발매되는 등의 성과가 있었지만, 해외 신에서 적어도 몇 개월 이상 활동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제대로 된 진출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지금은 서브팝 같은 해외 레이블과의 관계를 일회성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돈독하게 가지면서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과감하게 도전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비트볼 레코드의 운영 방식, 프로모션 등은 어떤가.

    ‘바비빌’
    “우리가 기본으로 삼고 있는 건 레이블다운 마케팅과 프로모션이다. 음악이 BGM화돼가는 현실에서 음반을 마케팅하는 건 힘들고 고민이 많은 부분이다.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려고 하는 건 우리만 듣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 거다. 그리고 개별 아이템이 알려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비트볼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로컬 아티스트의 음반을 통해서는 비트볼이라는 브랜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 인디신의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지금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마이너·인디신에서 히트를 기록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고, 사람들이 이제서야 다양한 문화를 즐기기 위한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경기가 나빠짐에도 그것과 상관없이 더 빛을 발하는 상황이 있지 않나. 기대하는 게 많다.”

    -마지막으로 비트볼 레코드를 통해 하고 싶은 일들을 말해달라.

    “현재는 레이블다운 레이블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 없는 콘텐츠와 시스템으로 색깔 있는 레이블로 어필하고 싶다. 해외 쪽 진출도 계속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의 콘텐츠가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차지하고 순기능을 하는 것이 바람이다. 거기서 생기는 플러스 요인을 가지고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맘도 있다. 너무 대의적인 걸 생각하는 건 아니고. 레이블을 시작할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아주 작고 소박하더라도 현실,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거다.”

    <글|김민규 일렉트릭 뮤즈 대표 · 진행|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

    개성 있는 음악은 모두 모여라마른 장마가 선사한 기분 좋은 바람을 안고 마포 성미산 끝자락에 위치한 비트볼 레코드 사무실로 향한다. 항상 위트 있는 기획으로 음악 마니아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비트볼 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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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인디레이블 - 스컹크편(원종희,박준흠)


    기획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편집 & 출판 : 도서출판 선



    가슴네트워크에서는 도서출판 ‘선’과의 협의 하에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를 순차적으로 발행합니다. 현장의 대중음악/문화기획 전문가가 직접 출판기획을 하고, 도서출판 선에서 책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역할분담을 시도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이유는 해당 분야의 좀 더 전문성이 담보된 출판기획을 하려는 것이고, 이는 출판기획 방법에서의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네트워크는 ‘문화기획자 그룹’이면서 ‘문화예술 전문매체’입니다. 1999년에 창간된 대중음악비평웹진 ‘가슴’이 모체이고, 현재는 문화예술 전반을 포괄합니다. 현재 가슴네트워크에서는 매체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2007년 8월에 경향신문에서 시작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총50회 연재, 32명 필자 참여), 2008년 3월에 네이버의 네이버뮤직에서 시작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총29회 연재, 17명 필자 참여), 2008년 7월 경향신문에서 시작한 ‘한국의 인디레이블’(총30회 연재, 13명 필자 참여) 등입니다. 또한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축제, 공연, 매체, 출판, 아카이브, 아카데미, 정책 등에 대한 기획, 연구, 비평 작업을 통한 새롭고 대안적인 가능성을 한국문화예술계에 제시하려고 합니다.



    vol.1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1. 음반리뷰 (박준흠 책임편집)

    2007년 8월 ~ 2008년 8월 ‘경향신문’ 연재

    필자 | 강일권, 김경진, 김영대, 김윤하, 김작가, 김창남, 김학선, 김현준, 나도원, 류형규, 문정호, 박은석, 박준흠, 배순탁, 배영수, 서정민갑, 서준호, 성우진, 송명하, 신승렬, 염신규, 우승현, 이세환, 이영미, 이주엽, 이태훈, 임진모, 조원희, 최규성, 최민우, 한상철, 황정


    2007년 8월부터 경향신문에서 매주 절찬리에 연재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기사이고, 2008년 3월부터 네이버 ‘오늘의 뮤직’ 코너에서 매주 인터뷰로 다루고 있는 화제의 기사이다. 52명의 각계 음악전문가들이 선정에 참여하여 공신력을 높였고, 32명의 음악필자들이 100장의 음반리뷰를 나누어서 꼼꼼히 작성한 획기적이면서 흥미로운 기획물이다. 이번 기획에서 주목할 점은, ‘앨범에 순위를 매기는 작업’이 단순히 매체의 상업적인 기획을 넘어서서 대중음악사 기술 측면에서 보면 ‘평가를 통한 기록’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즉, ‘당대 평가’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그래서 이 자료는 단순한 기사 차원을 넘어서서 ‘한국대중음악의 중요한 사료’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현재 한국의 중요한 대중음악 작가(아티스트)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음악이 대중음악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vol.2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2. 인터뷰 (박준흠 책임편집, 근간)

    2008년 3월 ~ 2008년 10월 ‘네이버 오늘의뮤직’ 연재

    필자 | 권오경, 김고금평, 김양수, 김영혁, 김윤하, 김작가, 김학선, 나도원, 박준흠, 서정민갑, 성우진, 송기철, 안인용, 이동연, 이지환, 최규성, 최민우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기사를 기초로 30명의 인터뷰 대상 뮤지션을 선정했다. 2008년 3월부터 네이버 ‘오늘의 뮤직’ 코너에서 매주 1팀(명)씩 인터뷰로 다루고 있는 인기 기획물이다. 17명의 음악평론가, 신문․잡지기자, 방송PD, 교수 등이 참여하여 강산에, 김두수, 김수철, 김현철, 넥스트(신해철), 루시드폴(조윤석), 마이앤트메리(정순용, 한진영, 박정준), 못(이언, 지이),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 사랑과평화(최이철), 송골매(배철수), 시나위(신대철), 신중현과 엽전들(신중현), 아소토유니온(김반장), 안치환, 언니네이발관(이석원), 유앤미블루(이승열, 방준석), 이상은, 이장혁, 이정선, 장필순, 조용필, 클래지콰이(DJ클래지, 호란, 알렉스), 패닉(이적), 한대수, 한영애, 허클베리핀(이기용, 이소영, 김윤태), DJ Soulscape(박민준), W(배영준, 한재원, 김상훈)를 생생하게 다루었다.



    vol.3 한국의 인디레이블 (박준흠 책임편집, 근간)

    2008년 7월 ~ 2009년 1월 ‘경향신문’ 연재

    필자 | 강일권, 김민규, 김양수, 김작가, 김학선, 박준흠, 배순탁, 성우진, 이대화, 차우진, 최규성, 최민우, 홍정택


    2000년대 현재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수와 그들 작품의 수준은 오히려 90년대를 능가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인디씬에 정착한 ‘홈레코딩’ 기반의 음반제작 환경은 뮤지션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줘서 최소한 자본이 없어서 음반을 제작하지 못하는 시대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홈레코딩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뮤지션이 기술적인 능력만 있다면 일반 스튜디오 작업에 부럽지 않게 녹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인디 뮤지션들은 스스로 자신의 음반사를 만들어서 앨범 제작을 하고 있고, 이는 90년대를 능가하는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다. 대중음악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창작’이라면, 이제라도 인디레이블에 대한 정확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 리뷰 레이블 : 강아지문화예술, 도프, 드럭, 드림온, 라디오뮤직, 롤리팝, 루비살롱, 리듬온, 리버맨뮤직, 마스터플랜, 문라이즈, 문화사기단, 벌룬앤니들, 붕가붕가, 비트볼, 비행선, 빅딜, 샤레이블, 석기시대, 소울컴퍼니, 스컹크, 신의의지, 쌈넷, 에그뮤직, 인디, 일렉트릭뮤즈, 쥬신, 카바레사운드, 쿠조, 퀸, 타일뮤직, 튜브앰프, 튠테이블무브먼트, 파고, 파스텔뮤직, 핑퐁사운드, 해피로봇, B-records, GMC



    ※ 가슴네트워크총서에 관심 있는 필자, 단체, 기관의 연락도 바랍니다.

    - 가슴네트워크총서 기획자 박준흠 (plan@gaseum.co.kr)


    한국의 인디레이블 - 스컹크편(원종희,박준흠) 기획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편집 &amp; 출판 : 도서출판 선 가슴네트워크에서는 도서출판 ‘선’과의 협의 하에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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