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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네트워크 기획․선정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Vol.3
한국의 인디레이블

박준흠 책임편집 | 박준흠 외 11인 지음 | 488 페이지 | 23,000원
문의: 김윤태 대표 02-762-3335
※ 39개 인디레이블 대표, 뮤지션, 음반 사진 등 세부자료는 웹하드에 있습니다.
“언니네이발관에서 장기하까지, 한국 인디음악의 모든 것을 담아냄”
“한국의 대표적인 39개 인디레이블 대표들과의 생생한 인터뷰 수록”
“39개 인디레이블이 발행한 음반들 소개”
“1000여 컷에 이르는 인디레이블 대표, 뮤지션, 음반에 관한 풍부한 사진 자료 수록”
“1997년, 한국 인디음악의 초창기부터 대중음악전문지 ‘서브’,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 문화기획그룹 ‘가슴네트워크’를 운영하면서 홍대 인디씬을 기록해온 책임편집자 박준흠이 얘기하는 한국 인디음악의 현재와 미래”
책임편집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문화기획자, 대중음악연구자)
글 | 강일권, 김민규, 김양수, 김학선, 박준흠, 배순탁, 성우진, 이대화, 차우진, 최규성, 최민우, 홍정택
1. 핵심 요약
“장기하 때문에 인디음악이 떳다고? 천만의 말씀. 이미 2000년,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문라이즈레코드를 설립할 당시부터 현재의 인디음악은 뜰 준비가 되어 있었다.”
“대중음악축제의 성장과 함께 적어도 향후 10년은 인디음악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다.”
2000년대 현재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수와 그들 작품의 수준은 오히려 1990년대를 능가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인디씬에 정착한 ‘홈레코딩’ 기반의 음반제작 환경은 뮤지션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줘서 최소한 자본이 없어서 음반을 제작하지 못하는 시대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홈레코딩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뮤지션이 기술적인 능력만 있다면 일반 스튜디오 작업에 부럽지 않게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인디 뮤지션들은 스스로 자신의 음반사를 만들어서 앨범 제작을 하고 있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다. 대중음악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창작’이라면, 이제라도 인디레이블에 대한 정확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 인디음악씬의 발전 과정은 아래와 같이 크게 4단계로 나뉜다.(※ 자세한 내용은 별첨의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참조.)
1)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
- 인디뮤직 씬의 시작 (1990~1996)
2)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
- 인디레이블의 도약기 (1997~1999)
3) 문라이즈와 홈레코딩
- 자주 레이블의 가속화 (2000~2004)
4)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
- 음악적인 스타일로 각 레이블 차별화 시도 (2005~현재)
■ 머리말 발췌
인디음악을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에서의 현재 지점으로 보는 시각은 고사하고, ‘현재 트렌드’(현재의 음악)로 보는 시각은 얼마나 있을런지. 1996년부터 시작된 1차 인디음악 붐은 다분히 언론의 선정적인 관심 때문이었지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1999년이 되니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체의 관심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게 2007년까지 이어져 오다가 2008년에 와서는 장기하와 주변으로 인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연초에 내게 몇몇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주요한 물음은 “장기하의 인기가 시들면 인디음악 붐도 꺼지지 않을까요?”였다. 이는 아직도 인디음악을 음악창작이나 음악트렌드, 음악산업 관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다. 장기하 때문에 인디음악이 떴다고? 천만의 말씀. 한국에서 인디음악은 이미 ‘시대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장기하가 대중적인 관심을 일시에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조짐은 2000년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 1집을 자신의 레이블인 문라이즈레코드(Moonrise Record)에서 내려고 할 때부터 ‘준비’되었다.
2002년 이후 본격화된 ‘홈레코딩 제작시스템’으로 인해서 2004년 무렵부터는 매년 발매되는 인디음반이 200장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2006년 무렵부터 각 인디레이블들이 신경 쓰는 것은 ‘음악적인 스타일’ 부분이고, 그래서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이 흐름에 맞물린 것이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이다. 2005~2006년 필자가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 본격적으로 전문화된 ‘한국 대중음악 축제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에는 ‘하나뮤직 스페셜’, ‘밸리 초이스’, ‘인디음악 10년사’, ‘민중음악 30년사’, ‘뉴 커런츠’ 프로그램을 3일에 걸쳐서 진행했다. 이후 2006년에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 2007년에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09년에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생겨나서 기존의 쌈지사운드페스티벌(1999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2004년)과 함께 한국 인디음악 씬을 키우고 있다. 장기하와얼굴들이 결정적으로 주목 받은 곳도 다름 아닌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 시장이 급성장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한국도 이제 영화제에 이어서 그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상기 음악축제들의 진행 경과를 보건데, 한국에서 적어도 향후 10년은 음악축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동반하여 인디음악의 성장세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
|
연도/등급 |
올해앨범 |
필청앨범 |
우수앨범 |
주목앨범 |
기타앨범 |
소계 |
|
1996 |
1 |
2 |
0 |
2 |
1 |
6 |
|
1997 |
1 |
2 |
5 |
6 |
3 |
17 |
|
1998 |
1 |
10 |
11 |
14 |
25 |
61 |
|
1999 |
1 |
9 |
8 |
11 |
33 |
62 |
|
2000 |
1 |
9 |
13 |
27 |
53 |
103 |
|
2001 |
1 |
9 |
20 |
24 |
71 |
125 |
|
2002 |
1 |
9 |
22 |
28 |
68 |
128 |
|
2003 |
1 |
15 |
26 |
46 |
87 |
175 |
|
2004 |
1 |
16 |
25 |
37 |
111 |
190 |
|
2005 |
1 |
10 |
27 |
36 |
136 |
210 |
|
2006 |
1 |
11 |
33 |
44 |
164 |
253 |
|
2007 |
0 |
6 |
12 |
33 |
72 |
123 |
|
총계 |
11 |
108 |
202 |
308 |
824 |
1453 |
2. 출간 의의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봄”
“도서출판 선에서 발행하는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의 완결판”
Vol.1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2008년, 박준흠 책임편집)
Vol.2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 (2009년, 박준흠 책임편집)
Vol.3 한국의 인디레이블 (2009년, 박준흠 책임편집)
‘한국의 인디레이블’ 프로젝트를 생각한 것은 2008년 4월경이었다. 당시 필자는 2008 광주청소년음악페스티벌 총감독을 맡아서 광주광역시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바로 전에 진행을 맡았던 네이버 오늘의뮤직 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는 3월부터 연재가 시작되었고, 이미 연재 전에 인터뷰 진행은 거의 끝났었기 때문에 약간은 한가로울 때였다.(물론 축제 준비 자체는 무척 바빴지만.) 그래서 가슴네트워크에서 당분간 매체사업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터였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템을 생각했다.
이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음반과 뮤지션을 다뤘기 때문에 이번에는 ‘음반사와 음반사 대표’를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 여태까지 대중음악 관련 기획기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신보를 냈거나 공연을 준비 중인 뮤지션과 그의 음반 중심이라서 뭔가 다양성 면에서 부족했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대중음악 기획’에 관한 점이 빠져 있었다. 사실 어떤 뮤지션이 아무리 훌륭한 노래를 만들어도 그걸 ‘음반기획’ 측면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대중들은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뛰어난 뮤지션을 알아보고 그에 걸맞는 음반기획을 해주는 음반제작자는 음악씬에서 무척 중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90년대 들어와서 그런 음반기획자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열악한 상태로 전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의 대안적인 시스템’인 인디음반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서서 홈레코딩 음반제작 시스템의 급격한 발전으로 뮤지션 스스로가 자신의 레이블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고, 2003년 무렵부터는 인디레이블의 숫자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이번 연재 기획인 ‘한국의 인디레이블’은 2000년대 들어서서 새롭게 대두된 인디레이블의 현재 상황과 ‘성장 이유’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 인디레이블 대표를 인터뷰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해당 인디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들을 소개함으로써 대중음악을 뮤지션과 음반을 넘어서서 ‘기획과 제작’ 측면에서 조망하려고 했다. 이번에 다룬 39개 인디레이블의 선정 기준은 창작적으로 뛰어난 음반이 얼마나 나왔는지가 관건이었다.(기타 음악적으로 조명할만한 가치를 갖는 레이블도 선정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번 39개 인디레이블들에 대한 기록은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음악창작자들이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원래 타이틀도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살펴본 인디음악의 현주소와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였다.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대표)
3. 내용 소개 (목차)
* 본문의 레이블 배열순서는 ‘첫 번째 국내 뮤지션 음반 발매 연도’를 기준으로 정렬함
Ⅰ.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창작 대중음악의 현재
1. 지금 ‘인디레이블’을 다시 이야기 하는 이유 | 박준흠
2.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 박준흠
3. 경향신문, 가슴네트워크 ‘한국의 인디레이블’ | 박준흠
Ⅱ.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역사
■ 1996년 발매 시작 레이블
01. 인디(Indie) - 한국 최초로 실질적 인디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하다 | 최규성
02. 석기시대(Stoneage Records) - 한국 인디 음악을 묵묵히 지켜 온 이름 | 홍정택
03. 드럭 레코드(Drug Record) - 펑크의 시작. 그것은 인디의 시작 | 이대화
■ 1997년 발매 시작 레이블
04. 강아지문화예술(Gang A.G) - 아티스트의 다양한 감성을 즐기다 | 김민규
■ 1998년 발매 시작 레이블
05. 스컹크 레이블(Skunk Label) - 펑크뮤지션들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배척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 박준흠
06. 카바레 사운드(Cavare Sound) - 한국 인디 씬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 김양수
07. 문화사기단 - 세상이 사기라 외치던 겁없던 그들 | 홍정택
08. 라디오뮤직(Radio Music) - 미선이, 루시드 폴을 발굴한 홍대 포크의 산실 | 이대화
■ 1999년 발매 시작 레이블
09. 쌈넷(ssamnet) - ‘쌈지의 눈’으로 검증시켜서 보여주는 역할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쌈지의 입장이다 | 박준흠
10. 마스터플랜(Master Plan) - 한국 힙합의 성지에서 전천후 음악발전소로 | 배순탁
11. B-레코드(B-Record) - 라이브 클럽과 인디 레이블의 적절한 조합 | 김민규
■ 2000년 발매 시작 레이블
12. GMC 레코드(GMC Records) - 10년을 독하게 이어 온 한국 하드코어 신의 중심 | 홍정택
13. 벌룬애니들(Balloon & Needle) - 노이즈에 대한 꾸준하고 진지한 행보 | 차우진
14. 튜브앰프 레코드(Tubeamp Records) - 뮤지션들의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되고 싶다 | 홍정택
15. 문라이즈(Moonrise Records) - 인디 레이블의 새로운 시작 | 김학선
■ 2001년 발매 시작 레이블
16. 쥬신 프로덕션(Jusin Production) - 대한민국 익스트림 메탈의 역사와 꿈이 모여 있는 레이블 | 성우진
17. 드림온(Dream On) - 용감한(?) 형제의 꿈과 음악적 열정을 담아 | 성우진
■ 2002년 발매 시작 레이블
18. 롤리팝뮤직(Lollipop Music) - 2000년대 홍대 인디 팝의 신(新) 지류 | 이대화
19. 리버맨뮤직(Riverman Music) - 전 세계 희귀음원을 찾아 여행하는 레이블 | 최규성
■ 2003년 발매 시작 레이블
20. 비트볼 레코드(Beatball Records) - 열혈 음악 애호가의 진심을 담은 레이블 | 김민규
21. 샤 레이블(Sha Label) - 화려함보다 중요한 건 뮤지션만의 개성! | 배순탁
22. 에그뮤직(EGG Music) - Everlasting Gallery of Good Music | 성우진
23. 도프뮤직(Dope Music) - 한국 헤비니스 음악의 중심 | 김학선
24. 퀸 엔터테인먼트(Queen Entertainment) - 퀸이라는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 소속 뮤지션들의 앨범 제작 | 성우진
25. 리듬온(Rhythm On) - 아날로그 음악을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 | 최규성
26. 비행선(Bihaengsun) - 자유롭게 맘 가는 대로 | 김민규
27. 신의의지 레코드(Will Records) - 아티스트들의 음악세계를 존중하며 한국힙합 신을 이끌었던 레이블 | 강일권
■ 2004년 발매 시작 레이블
28. 파스텔뮤직(Pastel Music) - 인디와 메이저 사이의 교두보 | 차우진
29. 소울컴퍼니(Soul Company) - 음악과 시, 그리고 힙합이 만나는 그곳 | 강일권
30.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s) - 하드코어 힙합의 결정체들로 이루어진 집단 | 강일권
31. 루핀 레코드(Lupin Records) - 레이블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중도좌파 레이블 | 홍정택
32. 핑퐁사운드(Pingpong Sound) - 포크에서 슈게이징, 일렉트로니카까지 | 김민규
■ 2005년 발매 시작 레이블
33. 일렉트릭 뮤즈(Electric Muse) - 뮤지션 출신의 제작자가 건립한 인디 팝/록의 새로운 거점 | 최규성
34. 붕가붕가 레코드(BGBG Records) - 지속가능한 그들의 빡센 취미생활 | 홍정택
35. 해피로봇 레코드(Happy Robot Records) - 취향을 전략으로 삼는 레이블 | 차우진
36. 타일뮤직(Tyle Music) - 가장 감각적이며 스타일리쉬한 레이블 | 김학선
■ 2006년 발매 시작 레이블
37. 루비살롱 레코드(Rubysalon Record) - 우주를 향해 볼륨을 높여라 | 최민우
38. 튠테이블 무브먼트(Tune Table Movement) - 둘러앉아 소통하는 음악 공동체를 향하여 | 최민우
■ 2007년 발매 시작 레이블
39. 파고뮤직(FarGo Music) - 홍보와 마케팅에서 협력 관계를 갖는 새로운 운영방식 | 성우진
Ⅲ. 한국의 인디레이블 _ 부록
2008 가슴어워드(Gaseum Awards) - 2008년 한국 대중음악 결산 | 박준흠
[별첨]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1)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
- 인디뮤직 씬의 시작 (1990~1996)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의 필요성, ‘인디뮤직’이 갖는 의미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앨범2) 개념의 음반이 나온 것은 1964년에 발표된 신중현의 애드 훠(Add 4) 1집 [빗속의 여인](엘케엘레코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매우 특이한 경우였고, 제대로 된 창작물을 담은 앨범들이 발표된 시기는 70년대 초반의 모던포크 시대부터다. 그것이 바로 한대수, 김민기, 양병집, 서유석, 양희은의 초기작들이었고, 록에서는 신중현의 음반들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는 앨범으로서의 음반이 처음으로 발표된 시기 정도라는 의미를 가질지언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평가할만한 창작물은 소수의 뮤지션들에게서만 보일뿐이었고, 또한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과 같이 앨범 평가에서의 중요한 개념은 특별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아는 한 지금의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의 개념이 보이기 시작한 앨범은 1984년에 발표된 따로 또 같이 2집이 처음이다. 이전에 작은거인이 2집(1981년)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션과 레코딩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 그건 원맨밴드 성격이었고, 엔지니어도 지다가와 마사토라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세션, 레코딩 역사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앨범이 나온 시기를 80년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80년대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다양한 음악들이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그래서 뛰어난 음반들도 많이 나왔다. 한마디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이 때 나온 뮤지션이 김현식, 어떤날, 시인과촌장, 신촌블루스, 한영애, 장필순 등이었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거장’으로 얘기되면서 음악성도 높이 평가받았고, 또한 음반도 10만장 단위로 팔았다.3) 아이돌스타들만이 주로 주목받는 현재 음악환경을 생각했을 때 이는 매우 경이로운 사실이다. 당시는 뮤지션을 음악으로 평가하는 음악수용자들이 무척 많았거나, 음악수용자들에게 음악으로 승부하는 음반제작 풍토가 존재했던 것 같다. 뮤지션들에게는 무척이나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2년 서태지 등장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아이돌스타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이는 단기간에 가장 손쉽게 큰 돈을 버는 사업으로 인식되었다.4) 그래서 대중음악계에서의 가수 선발 기준은 음악성이 아니라 외모와 같은 스타성으로 바뀌었고, 철저히 10대들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는 기획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연예인’들이 필요했던 공중파방송에서도 이를 부추킨 측면이 있다. 그 결과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는 더 이상 음반 제작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붕괴였고, 한국 대중음악사 측면에서 보면 음악적인 자산을 잃어버리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1990년 11월 1일에 김현식이 사망했고, 유작 앨범인 6집은 100만장 이상 팔렸는데, 이는 향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기록일 것이다.
결국 ‘음악적인 진정성’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즉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나 그런 음악을 듣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안적인 시스템’을 생각했는데, 이것이 ‘인디뮤직(씬)’이다. 여기서 ‘대안적’이라는 말은 음악 미학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반 제작을 포함한 음악 활동 시스템’을 의미한다. 기존의 음반제작자들이 ‘창작에서 간섭받지 않으면서 완성도 높은 앨범 제작을 추구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뮤지션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구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음반을 만들거나 적어도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데 있어 간섭을 하지 않는 제작자 부류를 원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디레이블’이 갖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즉, 인디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택하는 공간이자 ‘시스템’이다. 그래서 ‘인디’를 얘기할 때 ‘음악창작’ 부분을 빼고 얘기하면 타당하지 않다.
‘인디뮤직 씬’의 탄생, 라이브클럽 드럭
90년대 초반 대안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바라던 사람들이 실험을 하기 시작한 곳은 홍대 주변이었다. 당시 ‘발전소’와 같은 음악과 미술, 춤이 어우러지는 클럽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1994년에 생긴 ‘드럭’은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라이브클럽의 시작이었다. 사실 드럭은 처음부터 라이브클럽이 아니었다. 클럽 드럭은 1994년에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밴드 클래시(The Clash)의 [London Calling](1979) 재킷 사진이 복사된 4절지에 ‘펑크록의 이상’이 격문처럼 쓰여진 포스터를 문에 붙이고 개장하였지만, 당시는 정기적인 공연을 염두에 두거나 인디뮤지션들의 근거지 개념은 없었다.
초기 드럭의 공간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조그만 TV들을 소도구로 이용한 ‘바/카페’의 개념이었고, 단지 한쪽에 밴드들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그믈망이 앞에 처진 작은 장소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이는 당시 신촌의 현대백화점 뒷쪽에 있었던 록카페5)들의 확장된 개념의 클럽이었다. 하지만 너바나의 여파로 그런지록이 인기를 얻고 70년대 펑크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특히 1994년 4월 8일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사망하여 ‘그런지록의 전설’로 남으면서 한국에서도 카피밴드 수준의 그런지록과 펑크밴드들이 생겨났다. 이들의 연주가 수용될 수 있었던 드럭은 흔히 말해 드롭아웃(drop-out)들의 해방구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시는 ‘공연장’의 개념만 있어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수준의 연주를 하는 밴드들(대개 헤비메틀 밴드들)은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그 이하 수준의 밴드들은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6)
1995년 4월에는 드럭에서 커트 코벤인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고, 이 때를 즈음해서 ‘드럭 밴드’라는 이름으로 정기 공연 체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 해부터 크라잉 넛,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코코어 등이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크라잉 넛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드럭은 점차 펑크록 중심의 라이브클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드럭이 펑크록의 메카로 자리 잡은 것은 1996년에 홍대 주차장거리와 명동에서 있었던 모잡지 주최의 ‘스트리트 펑크쇼’에 드럭의 밴드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 당시 보여주었던 관중들의 폭발적인 열기는 매체를 타고 전파되었고, 이런 호응을 얻어서 드럭에서 처음 만든 음반이 바로 [Our Nation]7)이었다. 이게 최초의 인디 앨범으로 얘기되고 있고, 그 해에는 ‘배드 테이스트’의 [One Man Band... Badtaste]도 발매되었다.
2)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
- 인디레이블의 도약기 (1997~1999)
인디레이블은 거대 상업 논리 하의 음악비즈니스 시스템에서에서 뮤지션에게 그나마 자유를 주는데,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을 지킬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상업성만을 생각하게끔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진 메이저 음반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인디레이블 체제에서는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디레이블은 마이너 성향의 뮤지션에게 있어 대중에 대한 창구일 수가 있고, 이것이 인디레이블 존재에 대한 당위성이다.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은 한국에서 인디레이블 시스템이 정착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레이블들이다.
▶ 인디(Indie)는 드럭, 재머스에 이은 인디레이블로 출발했지만 앞의 두 음반사가 자신들의 클럽과 클럽 밴드들을 홍보하려는 이유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제한된 범위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인디는 국내 최초의 ‘인디레이블’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음반사 인디의 모체는 10년간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대중음악씬에 발을 들여놓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뮤직센터21세기’8)였다. 이후 탄생된 인디는 “계약 기간은 1년이다. 손익분기점(3천장)을 넘기면 수익배분은 4 : 4 : 2(밴드 : 인디와 스튜디오 : 홍보비)로 한다. 밴드는 클럽 공연을 지속해야 한다. 인디가 망했을 때 인디를 인수한 사람의 의도가 애초의 인디의 의도와 맞지 않으면 음반의 판권은 밴드에게 간다”라는 뮤지션 측에 가장 큰 권리를 주는 명문화된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인디의 음반제작실장인 김종휘와 록밴드 허벅지의 보컬 안이영노는 인디 운영에서의 브레인이었는데, 이들은 1996년 봄에 시작된 각기 다른 클럽에 섰던 밴드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릴레이로 공연을 벌였던 ‘땅밑 달리기’를 주도한 중추 세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SM(실천하는 문화전사)을 표방하며 클럽 씬과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소식지인 ‘팬진 공’을 1997년에 ‘폐간’9)하는 일도 벌였다.
1997년 10월 인디, 팬진 공, 개클련(개방적 클럽 연대)에 의해서 노노 클럽에서 열린 ‘인디 시연회’는 향후 인디에서 발매할 밴드들을 선정하는 오디션 성격의 이벤트였고, 여기서는 코코어, 프리다칼로, 허벅지, 앤, 마루,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가 선정되었다. 그 해 12월 27일, 28일에는 인디 주최로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인디 록 페스티벌(정축년 독립만세 사건)’이 열렸다. 이후 제작된 인디 음반들은 사운드랩 스튜디오에서 고종진 엔지니어가 레코딩/믹싱을 하였고, 앤,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의 프로듀서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강사이기도 했던 기타리스트 김성수가 맡았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인디가 만든 가장 큰 업적은 다들 생각에만 머문 ‘인디레이블’을 현실화 시켜서 이들 성과에 대한 논의 여부를 떠나서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디는 1999년을 넘기지 못하고 운영을 중단했다.
▶ 강아지문화예술은 5명의 고등학교 동창생들(권병준, 이한별, 이효찬 등)이 자신들의 밴드인 강아지 독집 음반을 준비하다가 1997년에 만든 인디레이블이다. ‘인디’와 다른 점은 뮤지션들이 만든 음반사라는 점이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직접 음반 제작(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에 참여함으로써 느낌에 충실한 음반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마트의 데모 음반이나 허클베리 핀, 갱톨릭의 음반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특히 허클베리 핀의 데뷔 음반은 완성도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뮤지션들(99의 성기완, 노클루의 송현주, 도현호 등)이 있었다. 초기에는 방송 홍보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고, 최종적으로 영상, 인터넷방송 등 총체적인 문화 사업을 꾀했다. 기존 시장에서 음반화되기 힘든 밴드들의 음악도 팬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운영했지만 이들 또한 1999년을 넘기지 못했다.
3) 문라이즈와 홈레코딩
- 자주 레이블의 가속화 (2000~2004)
2000년은 인디레이블 역사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시작점은 2000년에 만들어진 문라이즈(Moonrise Record)였다. 이 레이블은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기타, 보컬)가 본인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의 1집 [Never Ending Stories]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한국 대중음악계는 콘텐츠 면에서 몰라보게 풍부해지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1999년을 기점으로 초기 인디레이블을 주도했던 강아지문화예술과 인디가 시장의 한계에 부딪쳤고, 그로써 부진한 활동을 하면서 잠시 과도기가 있었다. 그 와중에 홈레코딩(home-recording) 기술과 관련 소프트웨어, PC(하드웨어) 발전에 영향 받아 인디레이블 자체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개의 인디뮤지션들은 ‘자신이 운영하지 않는’ 저자본 레이블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인디레이블이 메이저레이블과는 매니지먼트 방식이 다르더라도 소속 뮤지션들이 자본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스위트피가 문라이즈 레이블을 만든 2000년 이후로는 점차 홈레코딩이 보편화되면서 뮤지션들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자생적인’ 인디뮤직씬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위트피의 1집 [Never Ending Stories](2000)를 필두로 전자양 [Day Is Far Too Long](2001), 마이 언트 매리(My Aunt Mary) [2nd My Aunt Mary](2001), Where The Story Ends [안내섬광](2001), 토마스 쿡(Thomas Cook) [Time Table](2001)이라는 명반들을 발매하였던 문라이즈는 한국 인디씬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문라이즈의 결과물들을 보고나서 뮤지션들은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패러다임을 실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음반제작의 주체가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여파는 2002년 이후로 인디씬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무수한 ‘자가’(뮤지션 스스로 설립해서 운영하는) 인디레이블이 생겨났다.
4)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
- 음악적인 스타일로 각 레이블 차별화 시도 (2005~)
홈레코딩으로 ‘음반제작’ 자체가 원활해지자 레이블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음반제작에 있어 ‘음악적인 전문성’을 부여하는 문제였다. 이는 다름 아닌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에 관한 문제였고, 이를 통해 각 레이블이 자신들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즉,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이었다. 파스텔뮤직, GMC, 일렉트릭 뮤즈, 튠테이블 무브먼트와 같은 레이블들이 대표적이다.
1) 2007년 7월에 가슴네트워크에서 『인디음반가이드 2000』을 집필하기 위해서 조사한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이다. 순전히 책임편집자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음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보다는 약간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유통망을 통해서 발매된 인디음반들은 다 소장하고 있고, 일부 라이브클럽에서만 파는 음반들도 수시로 구입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2009년 11월 시점에서 추정하건데 발매된 전체 인디음반은 2000장이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디음반가이드 2000』은 2010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있다.
2) ‘작품’으로서의 음반. 이는 ‘음악비평’의 시작과도 관계가 있다. 영미권의 대중음악사를 보더라도 본격적으로 음악비평이 시작된 것은 ‘앨범’ 제작이 보편화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3) 이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최초이자 최후의 부류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90년대의 서태지 정도가 있었고(이도 그의 5집까지만), 대개의 경우 작품성은 상업성에 반하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4) ‘아이돌스타’ 시스템은 주류음악 매니지먼트에서의 위험 요소를 줄이는 방안으로 개발된 측면도 있다.
5) 우드스탁, 놀이를 하는 사람들, 도어스 등과 같이 마니아 취향의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고, 때로는 자발적인 가무를 하던 공간.
6) 물론 라이브클럽이 ‘아마추어 밴드들이 공연하는 장소’는 아니고, 클럽마다 오디션을 통해서 최소한 어느 정도 연주 수준을 가진 밴드들을 무대에 세운다. 하지만 1994~1995년 당시 아마추어 카피밴드일 수 밖에 없었던 그런지/펑크밴드들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새로운 개념’의 장소로 라이브클럽이 그 역할을 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인디뮤직씬이 탄생될 수 있었다.
7) 이 음반에는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이 앨범을 반씩 나누어서 참여했다.
8) 뮤직센터21세기에서는 투쟁적인 이데올로기의 록음악을 하는 메이데이, 이스크라, 천지인의 음반을 출시했다.
9) 이 잡지는 ‘폐간호’부터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Ⅰ.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창작 대중음악의 현재
1. 지금 ‘인디레이블’을 다시 이야기 하는 이유 | 박준흠
2.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 박준흠
3. 경향신문, 가슴네트워크 ‘한국의 인디레이블’ | 박준흠
Ⅱ.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역사
* 본문의 레이블 배열순서는 ‘첫 번째 국내 뮤지션 음반 발매 연도’를 기준으로 정렬함
■ 1996년 발매 시작 레이블
01. 인디(Indie) - 한국 최초로 실질적 인디레이블 시스템을 도입하다 | 최규성
02. 석기시대(Stoneage Records) - 한국 인디 음악을 묵묵히 지켜 온 이름 | 홍정택
03. 드럭 레코드(Drug Record) - 펑크의 시작. 그것은 인디의 시작 | 이대화
■ 1997년 발매 시작 레이블
04. 강아지문화예술(Gang A.G) - 아티스트의 다양한 감성을 즐기다 | 김민규
■ 1998년 발매 시작 레이블
05. 스컹크 레이블(Skunk Label) - 펑크뮤지션들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배척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 박준흠
06. 카바레 사운드(Cavare Sound) - 한국 인디 씬의 스펙트럼을 넓히다 | 김양수
07. 문화사기단 - 세상이 사기라 외치던 겁없던 그들 | 홍정택
08. 라디오뮤직(Radio Music) - 미선이, 루시드 폴을 발굴한 홍대 포크의 산실 | 이대화
■ 1999년 발매 시작 레이블
09. 쌈넷(ssamnet) - ‘쌈지의 눈’으로 검증시켜서 보여주는 역할이 문화예술과 관련된 쌈지의 입장이다 | 박준흠
10. 마스터플랜(Master Plan) - 한국 힙합의 성지에서 전천후 음악발전소로 | 배순탁
11. B-레코드(B-Record) - 라이브 클럽과 인디 레이블의 적절한 조합 | 김민규
■ 2000년 발매 시작 레이블
12. GMC 레코드(GMC Records) - 10년을 독하게 이어 온 한국 하드코어 신의 중심 | 홍정택
13. 벌룬애니들(Balloon & Needle) - 노이즈에 대한 꾸준하고 진지한 행보 | 차우진
14. 튜브앰프 레코드(Tubeamp Records) - 뮤지션들의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되고 싶다 | 홍정택
15. 문라이즈(Moonrise Records) - 인디 레이블의 새로운 시작 | 김학선
■ 2001년 발매 시작 레이블
16. 쥬신 프로덕션(Jusin Production) - 대한민국 익스트림 메탈의 역사와 꿈이 모여 있는 레이블 | 성우진
17. 드림온(Dream On) - 용감한(?) 형제의 꿈과 음악적 열정을 담아 | 성우진
■ 2002년 발매 시작 레이블
18. 롤리팝뮤직(Lollipop Music) - 2000년대 홍대 인디 팝의 신(新) 지류 | 이대화
19. 리버맨뮤직(Riverman Music) - 전 세계 희귀음원을 찾아 여행하는 레이블 | 최규성
■ 2003년 발매 시작 레이블
20. 비트볼 레코드(Beatball Records) - 열혈 음악 애호가의 진심을 담은 레이블 | 김민규
21. 샤 레이블(Sha Label) - 화려함보다 중요한 건 뮤지션만의 개성! | 배순탁
22. 에그뮤직(EGG Music) - Everlasting Gallery of Good Music | 성우진
23. 도프뮤직(Dope Music) - 한국 헤비니스 음악의 중심 | 김학선
24. 퀸 엔터테인먼트(Queen Entertainment) - 퀸이라는 라이브클럽을 중심으로 사업 다각화, 소속 뮤지션들의 앨범 제작 | 성우진
25. 리듬온(Rhythm On) - 아날로그 음악을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 | 최규성
26. 비행선(Bihaengsun) - 자유롭게 맘 가는 대로 | 김민규
27. 신의의지 레코드(Will Records) - 아티스트들의 음악세계를 존중하며 한국힙합 신을 이끌었던 레이블 | 강일권
■ 2004년 발매 시작 레이블
28. 파스텔뮤직(Pastel Music) - 인디와 메이저 사이의 교두보 | 차우진
29. 소울컴퍼니(Soul Company) - 음악과 시, 그리고 힙합이 만나는 그곳 | 강일권
30. 빅딜 레코드(Big Deal Records) - 하드코어 힙합의 결정체들로 이루어진 집단 | 강일권
31. 루핀 레코드(Lupin Records) - 레이블과 엔터테인먼트 사이의, 중도좌파 레이블 | 홍정택
32. 핑퐁사운드(Pingpong Sound) - 포크에서 슈게이징, 일렉트로니카까지 | 김민규
■ 2005년 발매 시작 레이블
33. 일렉트릭 뮤즈(Electric Muse) - 뮤지션 출신의 제작자가 건립한 인디 팝/록의 새로운 거점 | 최규성
34. 붕가붕가 레코드(BGBG Records) - 지속가능한 그들의 빡센 취미생활 | 홍정택
35. 해피로봇 레코드(Happy Robot Records) - 취향을 전략으로 삼는 레이블 | 차우진
36. 타일뮤직(Tyle Music) - 가장 감각적이며 스타일리쉬한 레이블 | 김학선
■ 2006년 발매 시작 레이블
37. 루비살롱 레코드(Rubysalon Record) - 우주를 향해 볼륨을 높여라 | 최민우
38. 튠테이블 무브먼트(Tune Table Movement) - 둘러앉아 소통하는 음악 공동체를 향하여 | 최민우
■ 2007년 발매 시작 레이블
39. 파고뮤직(FarGo Music) - 홍보와 마케팅에서 협력 관계를 갖는 새로운 운영방식 | 성우진
Ⅲ. 부록
2008 가슴어워드(Gaseum Awards) - 2008년 한국 대중음악 결산 | 박준흠


Ⅰ. 한국의 인디레이블 _ 창작 대중음악의 현재
1. 지금 ‘인디레이블’을 다시 이야기 하는 이유
문화기획은 ‘당대 문화예술’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이자 방법이다. 즉, 당대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대중들에게 가장 유효적절한 방법으로 소개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또한 그 작업을 통해서 기획자 자신보다는 대상이 빛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도덕적인 책무도 따른다. 크게 보면 평론도 문화기획 안에 넣을 수가 있는데, 대중들에게 작품 가이드 작업을 통해서 해당 분야 문화상품 판매를 촉진시키는 산업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영화나 음악 평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영화평론은 당대의 작가(감독)인 박찬욱, 김지운, 홍상수와 같은 이들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영화마니아는 이들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대중음악에서도 영미권이나 일본의 음악평론은 같은 종류의 일들을 한다. 간단하게 얘기해서 해당 분야의 평론 작업은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을 ‘스테디셀러’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작업이다. 이는 1960년대 알프레드 히치콕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나 밥 딜런, 비틀즈, 롤링 스톤스의 음반들이 스테디셀러가 되어 끊임없이 소비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만은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는데, 이는 아직까지 대중음악을 ‘작가’와 ‘작품’이라는 개념 없이 ‘가수’와 ‘노래’ 중심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예술 장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창작’ 부분이 대중음악에서는 도외시되고 있고, 한 가수를 평가할 때 ‘가창력’이나 따지는 넌센스가 발생한다. 적어도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도 한 영화를 평가할 때 출연 배우의 연기력 부분보다는 감독의 연출력과 시나리오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대중음악에서 ‘음악창작’에 대한 낮은 인식은 작품으로서의 ‘앨범’ 제작을 중요하게 여기는 뮤지션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다.
그래서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질문한다면,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역량 있는 뮤지션들과 작품성이 뛰어난 앨범들이 존재하기나 할까? TV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가수는 온통 아이돌그룹이거나 가요무대에 출연하는 트로트 가수 또는 왕년의 인기 가수 정도인데. 대답부터 얘기하면, 2000년대 현재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수와 그들 작품의 수준은 오히려 90년대를 능가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인디씬에 정착한 ‘홈레코딩’ 기반의 음반제작 환경은 뮤지션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줘서 최소한 자본이 없어서 음반을 제작하지 못하는 시대를 종식시켰기 때문이다. 나아가 홈레코딩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뮤지션이 능력만 있다면 일반 스튜디오 작업에 부럽지 않게 녹음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많은 인디 뮤지션들은 스스로 자신의 음반사를 만들어서 앨범 제작을 하고 있고, 이는 1990년대를 능가하는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단지 음악매체, 음악평론, 음악정책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음악관계자들마저도 많은 수가 “한국에서는 ‘들을만한 음반’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정말로 그럴까? 내가 보는 견지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음반시장이 무너졌다고 얘기되는 현재도 인디씬에서는 끊임없이 좋은 뮤지션들과 좋은 앨범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 그에 대한 반증일뿐만 아니라 한국대중음악계에서의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의 근간에는 ‘인디레이블’이 존재한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현재 인디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음악’(‘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전반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고, 더욱이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정확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음악관계자가 “들을만한 음반들이 사라지고 있다”라는 식으로 얘기한다면1), 그건 자신의 태만을 드러내는 것이거나 본인 스스로 ‘음악을 듣는 귀’가 취약함을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일천하다. 대중음악에서도 ‘역시 중요한 것은 창작’이라면, 이제라도 인디레이블에 대한 정확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들에 대한 재조명은 2000년대 현재 한국 대중음악씬에서 창작(콘텐츠 기획&생산)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 창작자, 뮤지션, 음악생산의 지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게 문화기획자로써 또한 음악평론가로써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음악생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 기획자, 정책당국자, 소비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이번 연재를 기획한 배경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현재 인디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전반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더욱이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정확히 살펴보려고 한다. 연재는 총30회 진행될 예정이고, 한주에 1개 레이블을 소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상황에 따라서는 2개의 레이블을 묶어서 진행할 수도 있다. 발매한 음반들의 음악적인 완성도나 스타일, 역사성을 감안하여 인디레이블들을 선정했고, 해당 레이블을 잘 설명할 수 있는 필자가 글을 쓰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연재가 완료된 후에는 가슴네트워크에서 연재물들을 모아서 단행본 출판을 할 예정이다.
(※ 이 글은 2008년 7월에 경향신문 연재 시작에 앞서 쓴 서문 형태의 글입니다. 2009년 7월 시점에서 읽어보니 그동안 한국 인디음악씬에 대한 중앙 매체와 대중의 주목도가 몰라볼 정도로 커졌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이는 1년 동안에 인디씬에 주목할 만한 뮤지션들이 갑자기 늘어난 게 아니라 그간 우리시대에 ‘어떤’ 흐름이 생겨났는데, 인디씬이 거기에 부합한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추측하기에 그 ‘어떤’ 흐름은 세상과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관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 안에서도 알갱이가 있어 보이는 것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적어도 ‘콘텐츠의 진정성’으로 승부하려는 인디음악은 이에 부합합니다. 1990년대 말의 인디씬은 전체적인 완결성의 부족으로 한 때의 흥미 거리로만 머물렀지만, 이미 2004년 무렵부터의 인디씬은 완결성과 함께 다양성 면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인디음악에 대한 늘어난 관심은 예정된 것이었고, 주목받고 있는 인디뮤지션들이 현재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합니다. 그런 이유로 이 흐름은 ‘정착’2)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먼저 지적했던 “진짜 문제는 음악생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체, 기획자, 정책당국자, 소비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의 답은 이미 세상이 제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들을만한 음반’들이 사라지고 있다”라는 시대착오적인 얘기들은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2. 한국에서 인디레이블의 성장 과정
1)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
- 인디뮤직 씬의 시작 (1990~1996)
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붕괴와 대안적인 활동 방안의 필요성, ‘인디뮤직’이 갖는 의미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앨범3) 개념의 음반이 나온 것은 1964년에 발표된 신중현의 애드 훠(Add 4) 1집 [빗속의 여인](엘케엘레코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매우 특이한 경우였고, 제대로 된 창작물을 담은 앨범들이 발표된 시기는 70년대 초반의 모던포크 시대부터다. 그것이 바로 한대수, 김민기, 양병집, 서유석, 양희은의 초기작들이었고, 록에서는 신중현의 음반들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는 앨범으로서의 음반이 처음으로 발표된 시기 정도라는 의미를 가질지언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평가할만한 창작물은 소수의 뮤지션들에게서만 보일뿐이었고, 또한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과 같이 앨범 평가에서의 중요한 개념은 특별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아는 한 지금의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의 개념이 보이기 시작한 앨범은 1984년에 발표된 따로 또 같이 2집이 처음이다. 이전에 작은거인이 2집(1981년)에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션과 레코딩 사운드를 들려주었지만 그건 원맨밴드 성격이었고, 엔지니어도 지다가와 마사토라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세션, 레코딩 역사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앨범이 나온 시기를 80년대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80년대는 다양한 뮤지션들과 다양한 음악들이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그래서 뛰어난 음반들도 많이 나왔다. 한마디로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가 조화를 이루었던 시기였고, 이 때 나온 뮤지션이 김현식, 어떤날, 시인과촌장, 신촌블루스, 한영애, 장필순 등이었다. 이들은 ‘언더그라운드의 거장’으로 얘기되면서 음악성도 높이 평가받았고, 또한 음반도 10만장 단위로 팔았다.4) 아이돌스타들만이 주로 주목받는 현재 음악환경을 생각했을 때 이는 매우 경이로운 사실이다. 당시는 뮤지션을 음악으로 평가하는 음악수용자들이 무척 많았거나, 음악수용자들에게 음악으로 승부하는 음반제작 풍토가 존재했던 것 같다. 뮤지션들에게는 무척이나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2년 서태지 등장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는 아이돌스타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이는 단기간에 가장 손쉽게 큰 돈을 버는 사업으로 인식되었다.5) 그래서 대중음악계에서의 가수 선발 기준은 음악성이 아니라 외모와 같은 스타성으로 바뀌었고, 철저히 10대들을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는 기획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연예인’들이 필요했던 공중파방송에서도 이를 부추킨 측면이 있다. 그 결과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는 더 이상 음반 제작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붕괴였고, 한국 대중음악사 측면에서 보면 음악적인 자산을 잃어버리는 커다란 손실이었다. 1990년 11월 1일에 김현식이 사망했고, 유작 앨범인 6집은 100만장 이상 팔렸는데, 이는 향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기록일 것이다.
결국 ‘음악적인 진정성’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즉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나 그런 음악을 듣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대안적인 시스템’을 생각했는데, 이것이 ‘인디뮤직(씬)’이다. 여기서 ‘대안적’이라는 말은 음악 미학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반 제작을 포함한 음악 활동 시스템’을 의미한다. 기존의 음반제작자들이 ‘창작에서 간섭받지 않으면서 완성도 높은 앨범 제작을 추구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부류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뮤지션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자구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스로 음반을 만들거나 적어도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데 있어 간섭을 하지 않는 제작자 부류를 원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디레이블’이 갖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즉, 인디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택하는 공간이자 ‘시스템’이다. 그래서 ‘인디’를 얘기할 때 ‘음악창작’ 부분을 빼고 얘기하면 타당하지 않다.
‘인디뮤직 씬’의 탄생, 라이브클럽 드럭
90년대 초반 대안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바라던 사람들이 실험을 하기 시작한 곳은 홍대 주변이었다. 당시 ‘발전소’와 같은 음악과 미술, 춤이 어우러지는 클럽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1994년에 생긴 ‘드럭’은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라이브클럽의 시작이었다. 사실 드럭은 처음부터 라이브클럽이 아니었다. 클럽 드럭은 1994년에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밴드 클래시(The Clash)의 [London Calling](1979) 재킷 사진이 복사된 4절지에 ‘펑크록의 이상’이 격문처럼 쓰여진 포스터를 문에 붙이고 개장하였지만, 당시는 정기적인 공연을 염두에 두거나 인디뮤지션들의 근거지 개념은 없었다.
초기 드럭의 공간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조그만 TV들을 소도구로 이용한 ‘바/카페’의 개념이었고, 단지 한쪽에 밴드들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그믈망이 앞에 처진 작은 장소가 마련되었다는 점이 달랐다. 이는 당시 신촌의 현대백화점 뒷쪽에 있었던 록카페6)들의 확장된 개념의 클럽이었다. 하지만 너바나의 여파로 그런지록이 인기를 얻고 70년대 펑크가 재조명을 받으면서, 특히 1994년 4월 8일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사망하여 ‘그런지록의 전설’로 남으면서 한국에서도 카피밴드 수준의 그런지록과 펑크밴드들이 생겨났다. 이들의 연주가 수용될 수 있었던 드럭은 흔히 말해 드롭아웃(drop-out)들의 해방구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당시는 ‘공연장’의 개념만 있어서 어느 정도 전문적인 수준의 연주를 하는 밴드들(대개 헤비메틀 밴드들)은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그 이하 수준의 밴드들은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7)
1995년 4월에는 드럭에서 커트 코벤인 1주기 추모공연이 열렸고, 이 때를 즈음해서 ‘드럭 밴드’라는 이름으로 정기 공연 체제가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 해부터 크라잉 넛,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코코어 등이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크라잉 넛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드럭은 점차 펑크록 중심의 라이브클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드럭이 펑크록의 메카로 자리 잡은 것은 1996년에 홍대 주차장거리와 명동에서 있었던 모잡지 주최의 ‘스트리트 펑크쇼’에 드럭의 밴드들이 주축이 되어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 당시 보여주었던 관중들의 폭발적인 열기는 매체를 타고 전파되었고, 이런 호응을 얻어서 드럭에서 처음 만든 음반이 바로 [Our Nation]8)이었다. 이게 최초의 인디 앨범으로 얘기되고 있고, 그 해에는 ‘배드 테이스트’의 [One Man Band... Badtaste]도 발매되었다.
2)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
- 인디레이블의 도약기 (1997~1999)
인디레이블은 거대 상업 논리 하의 음악비즈니스 시스템에서에서 뮤지션에게 그나마 자유를 주는데, 좀 더 자신의 스타일을 지킬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상업성만을 생각하게끔 되어 있는 구조를 가진 메이저 음반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인디레이블 체제에서는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디레이블은 마이너 성향의 뮤지션에게 있어 대중에 대한 창구일 수가 있고, 이것이 인디레이블 존재에 대한 당위성이다.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은 한국에서 인디레이블 시스템이 정착되는데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레이블들이다.
▶ 인디(Indie)는 드럭, 재머스에 이은 인디레이블로 출발했지만 앞의 두 음반사가 자신들의 클럽과 클럽 밴드들을 홍보하려는 이유로 출발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제한된 범위에서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인디는 국내 최초의 ‘인디레이블’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음반사 인디의 모체는 10년간 사회운동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대중음악씬에 발을 들여놓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뮤직센터21세기’9)였다. 이후 탄생된 인디는 “계약 기간은 1년이다. 손익분기점(3천장)을 넘기면 수익배분은 4 : 4 : 2(밴드 : 인디와 스튜디오 : 홍보비)로 한다. 밴드는 클럽 공연을 지속해야 한다. 인디가 망했을 때 인디를 인수한 사람의 의도가 애초의 인디의 의도와 맞지 않으면 음반의 판권은 밴드에게 간다”라는 뮤지션 측에 가장 큰 권리를 주는 명문화된 계약 조건을 내걸었다. 인디의 음반제작실장인 김종휘와 록밴드 허벅지의 보컬 안이영노는 인디 운영에서의 브레인이었는데, 이들은 1996년 봄에 시작된 각기 다른 클럽에 섰던 밴드들이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릴레이로 공연을 벌였던 ‘땅밑 달리기’를 주도한 중추 세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SM(실천하는 문화전사)을 표방하며 클럽 씬과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소식지인 ‘팬진 공’을 1997년에 ‘폐간’10)하는 일도 벌였다.
1997년 10월 인디, 팬진 공, 개클련(개방적 클럽 연대)에 의해서 노노 클럽에서 열린 ‘인디 시연회’는 향후 인디에서 발매할 밴드들을 선정하는 오디션 성격의 이벤트였고, 여기서는 코코어, 프리다칼로, 허벅지, 앤, 마루,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가 선정되었다. 그 해 12월 27일, 28일에는 인디 주최로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인디 록 페스티벌(정축년 독립만세 사건)’이 열렸다. 이후 제작된 인디 음반들은 사운드랩 스튜디오에서 고종진 엔지니어가 레코딩/믹싱을 하였고, 앤, 오딘, 삼청교육대, 아무밴드의 프로듀서는 서울재즈아카데미의 강사이기도 했던 기타리스트 김성수가 맡았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인디가 만든 가장 큰 업적은 다들 생각에만 머문 ‘인디레이블’을 현실화 시켜서 이들 성과에 대한 논의 여부를 떠나서 ‘시스템’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디는 1999년을 넘기지 못하고 운영을 중단했다.
▶ 강아지문화예술은 5명의 고등학교 동창생들(권병준, 이한별, 이효찬 등)이 자신들의 밴드인 강아지 독집 음반을 준비하다가 1997년에 만든 인디레이블이다. ‘인디’와 다른 점은 뮤지션들이 만든 음반사라는 점이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직접 음반 제작(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에 참여함으로써 느낌에 충실한 음반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러브마트의 데모 음반이나 허클베리 핀, 갱톨릭의 음반을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특히 허클베리 핀의 데뷔 음반은 완성도면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뮤지션들(99의 성기완, 노클루의 송현주, 도현호 등)이 있었다. 초기에는 방송 홍보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했고, 최종적으로 영상, 인터넷방송 등 총체적인 문화 사업을 꾀했다. 기존 시장에서 음반화되기 힘든 밴드들의 음악도 팬들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운영했지만 이들 또한 1999년을 넘기지 못했다.
3) 문라이즈와 홈레코딩
- 자주 레이블의 가속화 (2000~2004)
2000년은 인디레이블 역사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현재’ 인디레이블들은 나름의 음악적인 색깔을 갖는 것을 고민하면서 기획, 창작, 프로듀싱, 세션, 레코딩 등의 부분에서 진일보를 거듭하고 있는데, 이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시작점은 2000년에 만들어진 문라이즈(Moonrise Record)였다. 이 레이블은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기타, 보컬)가 본인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의 1집 [Never Ending Stories]를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한국 대중음악계는 콘텐츠 면에서 몰라보게 풍부해지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
1999년을 기점으로 초기 인디레이블을 주도했던 강아지문화예술과 인디가 시장의 한계에 부딪쳤고, 그로써 부진한 활동을 하면서 잠시 과도기가 있었다. 그 와중에 홈레코딩(home-recording) 기술과 관련 소프트웨어, PC(하드웨어) 발전에 영향 받아 인디레이블 자체의 패러다임도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개의 인디뮤지션들은 ‘자신이 운영하지 않는’ 저자본 레이블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방식이었는데, 인디레이블이 메이저레이블과는 매니지먼트 방식이 다르더라도 소속 뮤지션들이 자본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스위트피가 문라이즈 레이블을 만든 2000년 이후로는 점차 홈레코딩이 보편화되면서 뮤지션들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자생적인’ 인디뮤직씬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위트피의 1집 [Never Ending Stories](2000)를 필두로 전자양 [Day Is Far Too Long](2001), 마이 언트 매리(My Aunt Mary) [2nd My Aunt Mary](2001), Where The Story Ends [안내섬광](2001), 토마스 쿡(Thomas Cook) [Time Table](2001)이라는 명반들을 발매하였던 문라이즈는 한국 인디씬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문라이즈의 결과물들을 보고나서 뮤지션들은 새로운 인디레이블의 패러다임을 실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고, 자신이 음반제작의 주체가 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는 방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여파는 2002년 이후로 인디씬에 나타나기 시작해서 무수한 ‘자가’(뮤지션 스스로 설립해서 운영하는) 인디레이블이 생겨났다.
4)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
- 음악적인 스타일로 각 레이블 차별화 시도 (2005~)
홈레코딩으로 ‘음반제작’ 자체가 원활해지자 레이블들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음반제작에 있어 ‘음악적인 전문성’을 부여하는 문제였다. 이는 다름 아닌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에 관한 문제였고, 이를 통해 각 레이블이 자신들만의 음악적인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즉, 차별화를 꾀하려는 것이었다. 파스텔뮤직, GMC, 일렉트릭 뮤즈, 튠테이블 무브먼트와 같은 레이블들이 대표적이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3. 경향신문, 가슴네트워크 ‘한국의 인디레이블’
▶ 제목 :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의 인디레이블’
▶ 기획 : 경향신문(khan.co.kr), 가슴네트워크(gaseum.co.kr)
▶ 진행 : 가슴네트워크
▶ 게재 : 2008년 7월 ~ 2009년 2월, 경향신문 주말섹션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봄
‘한국의 인디레이블’ 프로젝트를 생각한 것은 2008년 4월경이었다. 당시 나는 2008 광주청소년음악페스티벌 총감독을 맡아서 광주광역시에 내려가 있을 때였다. 바로 전에 진행을 맡았던 네이버 오늘의뮤직 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인터뷰’는 3월부터 연재가 시작되었고, 이미 연재 전에 인터뷰 진행은 거의 끝났었기 때문에 약간은 한가로울 때였다.(물론 축제 준비 자체는 무척 바빴지만.) 그래서 가슴네트워크에서 당분간 매체사업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터였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템을 생각했다.
이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서 음반과 뮤지션을 다뤘기 때문에 이번에는 ‘음반사와 음반사 대표’를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 여태까지 대중음악 관련 기획기사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신보를 냈거나 공연을 준비 중인 뮤지션과 그의 음반 중심이라서 뭔가 다양성 면에서 부족했다. 여기에는 결정적으로 ‘대중음악 기획’에 관한 점이 빠져 있었다. 사실 어떤 뮤지션이 아무리 훌륭한 노래를 만들어도 그걸 ‘음반기획’ 측면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대중들은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뛰어난 뮤지션을 알아보고 그에 걸맞는 음반기획을 해주는 음반제작자는 음악씬에서 무척 중요한 존재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990년대 들어와서 그런 음반기획자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열악한 상태로 전락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의 대안적인 시스템’인 인디음반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서서 홈레코딩 음반제작 시스템의 급격한 발전으로 뮤지션 스스로가 자신의 레이블을 만드는 것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고, 2003년 무렵부터는 인디레이블의 숫자가 점진적으로 늘어났다.
이번 연재 기획인 ‘한국의 인디레이블’은 2000년대 들어서서 새롭게 대두된 인디레이블의 현재 상황과 ‘성장 이유’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는 음반기획 측면에서 인디레이블 대표를 인터뷰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해당 인디레이블에서 발매된 음반들을 소개함으로써 대중음악을 뮤지션과 음반을 넘어서서 ‘기획과 제작’ 측면에서 조망하려고 했다. 이번에 다룬 39개 인디레이블의 선정 기준은 창작적으로 뛰어난 음반이 얼마나 나왔는지가 관건이었다.(기타 음악적으로 조명할만한 가치를 갖는 레이블도 선정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번 39개 인디레이블들에 대한 기록은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목할 만한 음악창작자들이 어떤 식으로 분포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원래 타이틀도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살펴본 인디음악의 현주소와 한국 음악창작자들의 지형도”였다.
박준흠 / 가슴네트워크 대표
■ 연재 참여 필자(총 12명)와 담당 인디레이블(총 39개 레이블)
- 강일권(웹진 리드머 편집장) : 빅딜 레코드, 소울컴퍼니, 신의의지 레코드
- 김민규(일렉트릭 뮤즈 대표) : 강아지문화예술, 비트볼 레코드, 비행선, 핑퐁사운드, B-레코드
- 김양수(월간 PAPER 기자 & 만화가) : 카바레 사운드
- 김학선(웹진 보다 편집장) : 도프뮤직, 문라이즈, 타일뮤직
- 박준흠(가슴네트워크 대표) : 스컹크 레이블, 쌈넷
- 배순탁(음악평론가) : 마스터플랜, 샤 레이블
- 성우진(음악평론가) : 드림온, 에그뮤직, 쥬신 프로덕션, 퀸 엔터테인먼트, 파고뮤직
- 이대화(웹진 이즘 편집장) : 드럭 레코드, 라디오뮤직, 롤리팝뮤직
- 차우진(음악평론가) : 벌룬앤니들, 파스텔뮤직, 해피로봇 레코드
- 최규성(대중문화평론가) : 리듬온, 리버맨뮤직, 인디, 일렉트릭 뮤즈
- 최민우(웹진 [weiv] 편집장) : 루비살롱 레코드, 튠테이블 무브먼트
- 홍정택(가슴네트워크 필자) : 루핀 레코드, 문화사기단, 붕가붕가 레코드, 석기시대, 튜브앰프 레코드, GMC 레코드
1) 그렇다면 2008년 상반기만 해도 인디씬에서 발매된 비둘기 우유 [Aero](일렉트릭 뮤즈), 뎁(Deb) [Parallel Moons](카바레사운드), 로로스(Lolo's) [Pax](튠테이블 무브먼트), DJ Shinin' Stone [The Hypnotize LP](스프링 돌핀), V.A. [한대수 트리뷰트 - 물 좀 주소](타일뮤직)와 같은 의미 있는 앨범들은 어떻게 얘기해야 할 것인가?
2) ‘지속’이 아니다. ‘지속’이라는 관점은 한국 대중음악씬에서 인디음악을 따로 보는 시각이다.
3) ‘작품’으로서의 음반. 이는 ‘음악비평’의 시작과도 관계가 있다. 영미권의 대중음악사를 보더라도 본격적으로 음악비평이 시작된 것은 ‘앨범’ 제작이 보편화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4) 이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최초이자 최후의 부류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90년대의 서태지 정도가 있었고(이도 그의 5집까지만), 대개의 경우 작품성은 상업성에 반하는 비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5) ‘아이돌스타’ 시스템은 주류음악 매니지먼트에서의 위험 요소를 줄이는 방안으로 개발된 측면도 있다.
6) 우드스탁, 놀이를 하는 사람들, 도어스 등과 같이 마니아 취향의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고, 때로는 자발적인 가무를 하던 공간.
7) 물론 라이브클럽이 ‘아마추어 밴드들이 공연하는 장소’는 아니고, 클럽마다 오디션을 통해서 최소한 어느 정도 연주 수준을 가진 밴드들을 무대에 세운다. 하지만 1994~1995년 당시 아마추어 카피밴드일 수 밖에 없었던 그런지/펑크밴드들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새로운 개념’의 장소로 라이브클럽이 그 역할을 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인디뮤직씬이 탄생될 수 있었다.
8) 이 음반에는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이 앨범을 반씩 나누어서 참여했다.
9) 뮤직센터21세기에서는 투쟁적인 이데올로기의 록음악을 하는 메이데이, 이스크라, 천지인의 음반을 출시했다.
10) 이 잡지는 ‘폐간호’부터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1992년 10월
내 입장에서 보면, 개인적인 음악 청취 이력의 변동과 한국 인디음악 씬의 시작이 운명적으로(?) 맞물린다고 주장하고 싶다. 1992년 이 시기는 한국에서 ‘대중문화의 시대’가 막 꽃을 피우려던 시기였고, 그 즈음 문화계간지 상상, 리뷰 등도 창간되었으며, 문예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대중음악을 포함한 대중문화 강좌가 생겨났다. 그러면서 대중음악이 진지한 비평 대상이자 문화연구의 대상으로 편입되었는데, 이는 기존 음악평론가의 관점과는 다른 종류의 글들이었다.
신촌 일원 음악 씬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록카페’ 문화가 생성된 것이었고, 이에 대한 연구는 밴드 허벅지의 리더였던 안이영노의 석사논문 등에서 볼 수 있다. 내 경우는 그 무렵까지 집에서 혼자서 음악을 듣다가 드디어 밖에서 음악 교우들을 찾으려고 음악감상 모임에 가입했는데, 그게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내 인생 항로를 결정적으로 바꾸는데 일조한 음악마니아 모임이었다. 이게 제갈량이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것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내 나름 많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그 모임을 찾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 모임은 신촌 현대백화점 뒤에 위치한 ‘우드스탁’이라는 록카페에서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 2시에 음악감상회 겸 담소 등등을 했었는데, 돌아가면서 2~3명이 각자 50분 정도 분량의 감상회 준비를 해오는 방식이었다. 초기 4~5년은 매우 열심히들 참여했고, 지극정성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준비하고, 소개했으며 스터디모임 비슷한 것까지도 시도를 했었다. 때때로 주변의 록카페를 빌려서 밤새 놀기도 하고, MT 가서도 음악 듣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 모임을 알게 된 것은 월간음악잡지 핫뮤직 독자게시판에서 모임 창단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서였고, 당시 ‘음악마니아로서의 매너리즘’에 어느 정도 빠져있던 터라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던 욕구가 있었다. 정말 어려서부터 팝음악을 듣기 시작해서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포크, 퓨전재즈, 월드뮤직, 올드록, 하드록, 스래쉬․데스 등 온갖 종류의 헤비메틀에 이어 40~50년대 스탠다드 재즈까지 어느 정도 섭렵을 하고 나니 더 이상 새롭게 들을 음악이 없다는 것에 대한 갑갑증이 그 매너리즘의 원인이었다.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중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던 내게 30살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으니, 어느 정도 조급증 비슷한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때 마침 내게 다가온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의 돌파구였다.
이 모임 음악감상회를 통해서 몇 가지를 깨달은 것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적인 트렌드’(정확하게 말해서 ‘현재의 음악을 듣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당시 모임에서도 최고령(?)이었고, 음악청취 스펙트럼도 다른 이들보다 훨씬 넓었을 뿐만 아니라, 세션이나 레코딩 상태 같은 것에 집중해서 들었기 때문에 흔히 말해 ‘제대로 된 음악’에 대한 감식안이 꽤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국내뿐만 아니라 영미권 대중음악 거장들의 연주를 집중적으로 들었고, 음악잡지 보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음악은 어떻게든 들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기간이 물경 15년이나 되니 나름 그 방면의 고수가 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모임 동생들이 그 당시 영미권의 주류 대중음악권으로 막 편입되기 시작했던 얼터너티브록, 펑크 음악을 소개하는 것을 들으면서 한동안 혼란에 빠졌었다. 나 같은 올드록 마니아들은 짐작하겠지만, 올드록 마니아 입장에서 얼터너티브록, 특히 펑크는 음악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기가 막히게 연주하고, 매우 훌륭하게 녹음된 음반들을 중심으로 듣던 음악마니아들은 이와 반대편에서 다른 음악적 가치를 추구하는 펑크는 그냥 소음 비슷했다. 1992년 당시를 회상하면, 영미권에서 너바나(Nirvana)의 전설적인 히트 앨범인 [Nevermind]에 왜 광분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랬으니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클래쉬(The Clash)와 같은 ‘펑크 거장’의 음악들조차도 흥미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1980년대 영미권의 언더그라운드, 컬리지음악 씬에서 움트기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음악적인 흐름인 얼터너티브 음악에 둔감했다. 지금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을 운영하는 옐로우 나인의 김형일대표도 모임 일원이었는데, 그가 소개하는 소닉 유스(Sonic Youth)의 [Dirty] 앨범에 수록된 <100%>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뜨악’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내가 4~5개월의 꾸준한 교화(?) 기간을 거치면서 1993년 봄 즈음에는 나 역시 얼터너티브록 팬으로 변했던 것 같다. 여기에는 R.E.M. 광팬이었던 박모양이 꾸준히 던져준 R.E.M. 음악의 영향도 컸다.
결국 나는 운이 좋아서 당시 ‘음악적인 트렌드’에 충실했던 모임 동생들 덕분에 80~90년대의 중요한 대중음악 트렌드를 체감할 수 있었고, 더 중요한 것은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지금껏 음악평론가로 지내면서도 ‘콤플렉스’가 없는 편이다. 즉, ‘현재의 음악’을 단지 직업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고, 좋아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의 음악’을 하는 ‘당대 뮤지션’을 발굴해서 조명해줘야 하는 소임을 가진 음악평론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단지 음악마니아라면 자기 취향 자체에만 충실해도 되기 때문에 ‘음악적인 트렌드’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하지만 크게는 자국의 대중음악산업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음악평론가는 이 부분이 직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는 음악 모임을 통해서 우연찮게 깨달은 점이지만, 그 깨달음은 대중음악계 주변부에만 머물던 내게 중앙으로 진입할 수 있는 용기를 준 것 같다. 그래서 1997년에 대중음악전문지 《서브》를 만들던 당시부터 음악평론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동시대 평론’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고, 그 때까지도 다른 음악잡지에서 별로 다루지 않았던 영미권의 얼터너티브 음악과 한국 대중음악/인디음악을 주요하게 다루었다. 또한 1999년 11월에 가슴네트워크를 오픈할 때 가졌던 모토가 ‘지금, 여기, 우리의 가슴 열기’였다. 기억할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와서, 『한국의 인디레이블』 머리말에서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 ‘인디음악’과 ‘인디레이블’은 현재 어떤 의미인가?”이다. 인디음악을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에서의 현재 지점으로 보는 시각은 고사하고, ‘현재 트렌드’(현재의 음악)로 보는 시각은 얼마나 있을런지. 1996년부터 시작된 1차 인디음악 붐은 다분히 언론의 선정적인 관심 때문이었지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서 1999년이 되니 신기하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매체의 관심도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게 2007년까지 이어져 오다가 2008년에 와서는 장기하와 주변으로 인해서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고 나서는 연초에 내게 몇몇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주요한 물음은 “장기하의 인기가 시들면 인디음악 붐도 꺼지지 않을까요?”였다. 이는 아직도 인디음악을 음악창작이나 음악트렌드, 음악산업 관점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다. 장기하 때문에 인디음악이 떴다고? 천만의 말씀. 한국에서 인디음악은 이미 ‘시대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장기하가 대중적인 관심을 일시에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조짐은 2000년에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 1집을 자신의 레이블인 문라이즈레코드(Moonrise Record)에서 내려고 할 때부터 ‘준비’되었다.1)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2) (박준흠, 가슴네트워크, 2007년 7월)
|
연도/등급 |
올해앨범 |
필청앨범 |
우수앨범 |
주목앨범 |
기타앨범 |
소계 |
|
1996 |
1 |
2 |
0 |
2 |
1 |
6 |
|
1997 |
1 |
2 |
5 |
6 |
3 |
17 |
|
1998 |
1 |
10 |
11 |
14 |
25 |
61 |
|
1999 |
1 |
9 |
8 |
11 |
33 |
62 |
|
2000 |
1 |
9 |
13 |
27 |
53 |
103 |
|
2001 |
1 |
9 |
20 |
24 |
71 |
125 |
|
2002 |
1 |
9 |
22 |
28 |
68 |
128 |
|
2003 |
1 |
15 |
26 |
46 |
87 |
175 |
|
2004 |
1 |
16 |
25 |
37 |
111 |
190 |
|
2005 |
1 |
10 |
27 |
36 |
136 |
210 |
|
2006 |
1 |
11 |
33 |
44 |
164 |
253 |
|
2007 |
0 |
6 |
12 |
33 |
72 |
123 |
|
총계 |
11 |
108 |
202 |
308 |
824 |
1453 |
2002년 이후 본격화된 ‘홈레코딩 제작시스템’으로 인해서 2004년 무렵부터는 매년 발매되는 인디음반이 200장을 넘기고 있다. 그리고 2006년 무렵부터 각 인디레이블들이 신경 쓰는 것은 ‘음악적인 스타일’ 부분이고, 그래서 음반기획과 음반프로듀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해왔다. 이 흐름에 맞물린 것이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이다. 2005~2006년 필자가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 본격적으로 전문화된 ‘한국 대중음악 축제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05년에는 ‘하나뮤직 스페셜’, ‘밸리 초이스’, ‘인디음악 10년사’, ‘민중음악 30년사’, ‘뉴 커런츠’ 프로그램을 3일에 걸쳐서 진행했다.3) 이후 2006년에는 펜타포트록페스티벌, 2007년에는 그랜드민트페스티벌, 2009년에는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 생겨나서 기존의 쌈지사운드페스티벌(1999년), 자라섬재즈페스티벌(2004년)과 함께 한국 인디음악 씬을 키우고 있다. 장기하와얼굴들이 결정적으로 주목 받은 곳도 다름 아닌 2008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이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형 대중음악페스티벌 시장이 급성장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한국도 이제 영화제에 이어서 그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진행되고 있는 상기 음악축제들의 진행 경과를 보건데, 한국에서 적어도 향후 10년은 음악축제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동반하여 인디음악의 성장세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2009년 10월
그동안 수고하신 필자 분들과 사진을 제공한 해당 레이블, 사진작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인터뷰에 성실하게 응해주신 레이블 대표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또한 어렵게 매주 전면 지면을 내준 경향신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30주를 진행하는 동안 시간도 많이 뺏기고, 여러 어려움도 있었다. 반면 그에 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고, 관심을 가졌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또 한번 거대한 기록을 해냈다는 사실이고, 이게 ‘당대성’(현재 음악 기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만족한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08~2009년, 두 번째 붐을 맞은 한국 인디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훗날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분들을 거론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이 책의 출판을 기꺼이 수용한 도서출판 선의 김윤태 대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출판사로서는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고,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 전하고 싶다.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아카이브는 전적으로 도서출판 선의 도움이다.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시리즈 디자인을 담당한 디자인이즈 추정희 실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항상 성실함과 안정적인 퀄리티를 보여주는 디자이너를 만난 것도 내게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기꺼이 제공한 레이블 측과 최규성, 이정실, 권준경 씨 등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12명의 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들의 프로필은 ‘참여 필진 프로필’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인터뷰에 응해주신 레이블 대표 분들에게는 말할 나위 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이들로 인해서 이 책 출판이 가능했다.
올해 11월 가슴네트워크가 10주년을 맞고, 공연, 전시, 세미나, 출판, 출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2009 가슴네트워크축제’를 준비 중이다. 이를 도와주고 있는 최규성, 하나, 류형규, 문예진, 신나리, 도미노, 김민규, 김민정 씨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KT&G 상상마당, 공간 루, 파스텔뮤직, 일렉트릭뮤즈, Views, maniadb.com, 향뮤직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항상 곁에서 지지와 신뢰를 보내주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드디어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 Trilogy’가 끝났다.
2009. 9. 30.
문화기획그룹 & 문화예술전문매체 ‘가슴네트워크’ 박준흠
1) 인터넷음악방송국 쌈넷에서 방송국장으로 있을 때 김민규 씨가 문라이즈레코드 마케팅 정책에 관해 조언을 구하려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1+1’ 형식으로 본 앨범에다가 문라이즈 컴필레이션 시리즈를 붙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고, 이후 그런 방식으로 몇 장이 나왔다.
2) 2007년 7월에 『인디음반가이드 2000』을 집필하기 위해서 조사한 한국 인디음반 발매 현황이다. 순전히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음반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이 보다는 약간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유통망을 통해서 발매된 인디음반들은 다 소장하고 있고, 일부 라이브클럽에서만 파는 음반들도 수시로 구입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2009년 9월 시점에서 추정하건데 발매된 전체 인디음반은 2000장이 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인디음반가이드 2000』은 2010년에 발간할 예정으로 있다.
3) 2005년 당시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하나뮤직 스페셜(조동진, 장필순, 한동준, 버드, 오소영, 이다오), 밸리초이스(한대수, 이병우, 이상은, 이승열), 인디음악 10년사(델리스파이스, 허클베리핀, 마이언트매리, 이장혁, 코스모스, 몽구스, 스웨터, 슬로우쥰, 페퍼톤스, 푸른새벽, 카프카, 소규모아카시아밴드, 바세린, 49몰핀스), 민중음악 30년사(안치환, 연영석, 손병휘, 노찾사, 꽃다지), 뉴 커런츠(미스티블루, 13스텝스). 그리고 4개의 거리무대에서 파스텔뮤직, 튜브앰프, 비트볼레코드, 카바레사운드, 12몽키즈, 핑퐁사운드, B레코드, 롤리팝이 레이블 무대를 가졌다. 한마디로 2009년 현재 대형 대중음악축제 프로그램의 원형이라고 자부한다.
<이미지 출처>
■ 표지, 내지 디자인에 아래 음반 이미지를 차용하였습니다.
나루(Naru) [자가당착(自家撞着)] (2008/해피로봇)
다방밴드 [돗대] (2005/일렉트릭뮤즈)
루비라이트(Rubylight) [Love, On!] (2006/루비살롱)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1996/석기시대)
얼스(Earls) [The Merrymaker] (2005/파스텔뮤직)
키비(Kebee) [Evolutional Poems] (2004/소울컴퍼니)
플라스틱 피플(Plastic People) [Folk, Ya!] (2006/일렉트릭뮤즈)
V.A. [클럽 하드코어, 아싸 오방 첫 앨범!] (1998/인디)

그동안 수고하신 필자 분들과 사진을 제공한 해당 레이블, 사진작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성실하게 응해주신 레이블 대표님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또한 어렵게 매주 전면 지면을 내준 경향신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30주를 진행하는 동안 시간도 많이 뺐기고, 여러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반면 그에 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고, 관심을 가졌을까라는 의문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또 한번 거대한 기록을 해냈다는 사실이고, 이게 당대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만족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제게는 큰 행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그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인디레이블 대표분들입니다. 이렇게 한자리에 모셔보니 정말 보기가 좋군요!

해피로봇 - 이소영

강아지문화예술 - 공윤영

붕가붕가레코드 - 고건혁, 윤덕원

일렉트릭뮤즈 - 김민규

인디 - 김종휘

도프뮤직 - 김윤중

드럭 - 이석문

드림온레코드 - 박형주

롤리팝뮤직 - 서준호

루비살롱 - 이규영

마스터플랜 - 이종현

문라이즈 - 김민규

문화사기단 - 차승우, 이성우

스컹크 - 원종희

벌룬앤니들 - 최준용

비트볼 - 이봉수

빅딜레코드 - 정환석

빵 - 김영등

샤레이블 - 이기용

소울컴퍼니 - 배이삭

리듬온 - 손병문

쌈지(쌈넷) - 천호균

에그뮤직 - 박경훈

루핀레코드 - 윤석준

리버맨뮤직 - 이재수

튜브앰프 - 이한철

석기시대 - 전홍필

쥬신프로덕션 - 김도수

카바레사운드 - 이성문

퀸엔터테인먼트 - 이문식

타일뮤직 - 전수영

튠테이블무브먼트 - 송재경

파고뮤직 - 손관호

파스텔뮤직 - 이응민

GMC 레코드 - 이하석
김민규 대표 ⓒ 이정실
노브레인
마이 언트 메리 ⓒ 플럭서스
W ⓒ 최규성

| 아티스트 및 발매 앨범 - 문라이즈 스위트피(Sweetpea) 델리 스파이스의 리더인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 그는 밴드 사운드와는 다른 평소에 즐겨 듣던 외국 인디 팝 뮤지션들의 감성과 닮은 음악을 하고자 스위트피라는 솔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자신만의 레이블까지 만들었다. [Never Ending Stories] (2000) 밴드 사운드와는 다른, 보다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담고 있다. 델리 스파이스 시절보다 더욱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싣고 있으며 발매 당시 평단과 음악 팬 모두에게 높은 지지를 얻어냈다. [하늘에 피는 꽃] (2004) 1집과 비교해 모던 록부터 발라드까지 보다 다양한 음악을 담아냈다. 거의 혼자서 만들었던 1집과 비교해 동료 뮤지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마케팅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음. 1집보다는 대중적으로 더 어필할 수 있었다. ![]() [Time Table] (2001) 어쿠스틱한 사운드 속에서 정순용만의 멜로딕한 감각이 잘 살아있는 앨범. 혼자서 모든 곡을 만들고 대부분의 연주를 직접 했다. 마이 언트 메리(My Aunt Mary) 홍대 클럽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모던 록 밴드로, 홍대 인디 신의 시작과 거의 함께 해온 밴드. 3집 앨범으로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nd My Aunt Mary] (2001) 웨어 더 스토리 엔즈(Where The Story Ends) 코나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던 배영준을 중심으로 결성된 일렉트로니카 프로젝트 밴드이다. 문라이즈 레이블의 기존 이미지와는 이질적인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함으로써 문라이즈의 음악적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는 W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眼內閃光] (2001) 배영준이 해왔던 가요 멜로디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앨범이다. 인간적이며 따뜻한 일렉트로니카 앨범이다. 하키 웨어 더 스토리 엔즈에 이어, 기존 문라이즈의 색과는 다소 이질적인 시부야 케이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여성 뮤지션이다. 시부야, 라운지, 프렌치 팝 등이 조화된 음악을 들려주었다. EP [주워가줄래?] (2004) [이상한 얘기] (2004) 김민규가 직접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이다. 국내에선 쉽게 들을 수 없던 스타일의 음악이었지만 일본 뮤지션들과의 유사성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 [Bombom] (2006) 공백이 길었던 만큼 들려주고 싶은 얘기도 많았다. 이들은 무려 30여곡의 데모를 모은 후 최종적으로 엄선된 12트랙을 들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봄은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유토피아라고 한다. 문화사기단 ![]() 섹스 피스톨즈 트리뷰트 앨범 [Never Mind The Sex Pistols. Here‘s The No Brain] (2001) 2집 [Viva No Brain] (2001) 푸펑충 2집 [Tough Like Metal] (2000) 지랄탄 ‘99 & 리얼쌍놈스 1집 [마이너리그] (2000) 펑크킬러(Punk Killer) EP [Animal Punx] (2001) 런 캐럿(Run Carrot) EP [Oi!] (2001) 아작(A-Zak) EP [Azak!!] (2001) 글로벌 코퍼레이션(Global Corporation) EP [Return To The 77 Punx] (2001) |

제펫
캐스커
블루 셔벗
| 루핀 레코드 국내 아티스트·카탈로그 현재 소속 아티스트: 제펫(Jeppet), 나코틱 블루(Narcotic Blue), 블루 셔벗(Blue Sorbet), 포스티노(Postino), 성운 거쳐간 아티스트: 캐스커(Casker) 출시 음반 ![]() 1집 ‘Romantic English Woman’ (2004) 루핀레코드의 창설과 함께 발매된 첫번째 음반. 트렌디한 라운지, 다운템포 트랙으로 감각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캐스커(Casker) 2집 ‘Skylab’ (2005) 감성적이고 멜랑콜리한 서정성의 토대 아래 다운템포, 하우스, 드럼앤드베이스, 브로큰비트 등을 자유자재로 뒤섞으며 단순한 라운지·칠아웃 음악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 성운 ![]() 포스티노(Postino) 1집 ‘A Letter From Postino’ (2007) 세련되고 감성적인 일렉트로닉 팝을 들려주는 포스티노는 이기찬, 윤종신 등 국내 최정상 인기가수의 트랙에 참여, 유수히 많은 히트곡을 선보인 작곡가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타이틀곡 ‘동감’에서는 015B 정석원이 featuring에 참여하기도 했다. ![]() 1집 ‘Melodical Sounds of the Taste’ (2007) 스타일리시 퓨처뮤직을 표방하며 대중적이면서도 세련된 멜로디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 블루 셔벗의 데뷔 앨범 V.A. ‘Chicaloca Compilation’ (2006) 하우스, 힙합, 재즈, 브레이크비트 등을 넘나들며 여름에 어울리는 시원한 클럽뮤직을 들려주는 편집음반 ![]() 후배 뮤지션들이 재해석한 015B의 기존 히트곡들과 함께 015B의 신곡 2곡이 수록된 10년 만의 스페셜 음반 OST ‘소울메이트’ (2006) 드라마의 집필을 맡았던 조진국 작가의 선곡을 토대로 루핀 레코드 소속 아티스트들의 곡을 한데 엮어 만든 앨범. 6개월 이상 OST 판매순위 1위에 오르며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 1집에서 먼저 만나 본 해외 아티스트의 곡들에 토와 테이의 곡과 루핀 레코드 소속 아티스트들의 신곡 등을 함께 담은 ‘소울메이트’ OST의 후속작 |
게토밤즈
포춘쿠키

골든팝스
보이
쌈넷(55AM, 쌈지) 발매 음반![]() [Ver 2.5 특별시 소년소녀] (1999)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New Hair] (2000) [21C New Hair] (2000) 닥터코아(Dr. Core) 911 [비정산조] (2000) 허벅지 [장미 허벅지] (2001) 황보령 [태양륜] (2001)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나를 닮은 사내] (2001) ![]() [Spinner Jump] (2002) [Speed King] (2003) [Phantom Pain] (2006) 코코어(Cocore) [Super Stars] (2003) [Fire, Dance With Me] (2006) 게토밤즈 & 스키조 (Ghettobombs & Schizo) [Star] (2003) 네스티요나(Nastyona) [Bye Bye My Sweet Honey] (2004) ![]() [행운의 시작] (2004) [Hills Like White Elephants] (2007) 언니네 이발관 [순간을 믿어요] (2004) [가장 보통의 존재] (2008) 게토밤즈(Ghetto Bombs) [Rotten City] (2005) ![]() [The Great Fictions] (2007) 보이(Voy) [쉬어가기] (2007) 백현진 [Time Of Reflection] (2008) V.A.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1999] (1999) [도시락 특공대 2. Behind Story] (2000) [2001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2001) |

껌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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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도청장치
강인오
| 아티스트 및 앨범 - 드림온 블랙 신드롬(Black Syndrome) [9th Gate] (2001) 대한민국의 하드 록, 헤비메탈 씬을 지켜온 고참 밴드 중 하나인 블랙 신드롬의 중요한 재기작. ![]() [What’s Been Up?] (2003) [Green Freakzilla?] (2004) 13 스텝스(13 Steps) [This Is The Reality That We Confront] (2005) [The Curse Upon Liar] (2006) 강인오 전문 연주 앨범에 대한 인식이 모자란 국내에서 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기타리스트. [My World] (2005) [The Road] (2008) ![]() [At The End Of Death] (2006) 다크 앰비션(Dark Ambition) [Tears Of Daewongoon] (2007) 잇츠 할리데이(It’s Holiday) [U N Holiday] (2008) V.A. [Extreme 2006] - 퀸 엔터테인먼트 ![]() [Get Away] (2003) [Crazy] (2005) [Sunny] (2006) [Diary] (2006) [You Mean Everything To Me] (2007) [Like A Movie] (2008) 프리 마켓(Free Market) [난장] (2003) 내 귀에 도청장치 [Prana] (2004) 라비디떼(L‘Avidite) [Contact] (2004) 이현도 [The New Classik ...And You Don’t Stop] (2004) ![]() [Star★ing] (2007) [How Do You Feel] (2007) [I Don‘t Know You] (2008) 크로우(Crow) [In Place] (2007) 이모티콘(Emoticon) [Hit And Run] (2007) |
스컹크뮤지션 숄티캣
스컹크 대표 원종희 | 사진제공 최규성
스컹크뮤지션 스파이키브랫츠
스컹크뮤지션 칵크래셔
| 스컹크 레이블 발매 음반 껌(Gum)- Bogus Punk Circle! (1999) 럭스(RUX) I Gotta Go (2000) 우린 어디로 가는가 (2004) Another Conception (2004) 2005 Live (2005) The Ruckus Army (2007) ![]() We Are Moving On Forward (2004) 버닝 헵번(Burning Hepburn) Burning Hepburn (2003) ![]() All Together Now (2005) 99 앵거(99 Anger) Who Comes First? (2002) The Anger And The Sadness (2004) 카우치(Couch) Pogo Till We Fuckin Die!!! (2003) 페이션츠(Patients) Hanging Revolution (2006) All The Patients Let‘s Go (2007) 스파이키 브랫스(Spiky Brats) Proud And Strong (2004) 석 스터프(Suck Stuff) City Rebels (2006) 명령 27호 Songs From The Six Gun (2007) 칵 크래셔(Cockrasher) Kids Return Now (2007) V.A. [우리는 한마음(‘98 펑크대잔치)] (1998) 럭스의 첫번째 참여음반이자 스컹크 레이블의 첫번째 음반인 이 음반은 당시 신촌에 위치해 있던 ‘Rux Studio’에서 가정용 녹음기로 녹음된 음반이다. V.A. [3000 Punk] (1999) 스컹크 레이블의 두번째 컴필레이션인 이 음반은 ‘Skunk Studio’에서 삼청의 이보람의 DAT 녹음기로 녹음된 음반이다. ![]() 기존에 펑크대잔치에 참여했던 밴드들과 20여개의 새 밴드가 참여했으며 배다른형제 스튜디오 이동훈의 도움에 의해 완성되었다. V.A. [2006 Skunk Compilation - Strike! Strike! Strike!] (2006) 더 이상 한 개의 음반으로 묶일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한국의 펑크 신에서 더욱 많은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스스로 내지르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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