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전인권 허성욱 [1979-1987 추억 들국화] (1987/동아기획)
전인권(g, v), 허성욱(key, v)
세션 : 최구희(g), 함춘호(g), 최성원(b), 주찬권(d)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40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
들국화의 ‘영광의 시대’는 너무나 짧게 끝나버렸다. 당시 젊은이들의 송가였던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의 시대는 단 한 장의 앨범을 정점으로 해서 빠르게 저물어갔다. 물론 이듬해 들국화의 두 번째 앨범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상 데뷔 앨범을 마지막으로 들국화의 역사는 끝나버린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들국화의 2집 앨범은 네 명에서 여섯 명으로 멤버가 더 늘어난 채 발표됐지만, 이주원(따로또같이)의 이야기대로 들국화의 창단 멤버였던 조덕환이 음악 외적인 이유로 빠지게 되면서부터 본래의 빛남은 깨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들국화의 2집 앨범은 1집 앨범처럼 각 멤버들의 역량이 모두 집결된 게 아닌, 그저 단순히 각 멤버들의 소품들을 모아놓은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1집 앨범에서 <그것만이 내 세상>과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사이에 자리한 <매일 그대와>는 매우 사랑스러운 소품이었지만, <내가 찾는 아이><님을 찾으면><또 다시 크리스마스> 같은 노래들이 계속 이어지는 2집 앨범은 소품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앨범, 들국화의 보컬리스트였던 전인권과 키보디스트였던 허성욱이 만든 이 [추억 들국화] 앨범을 들국화의 실제적인 2집이라 하는 건 너무 과한 얘기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 앨범의 타이틀이 [추억 들국화]이고, 이 앨범에 최성원부터 최구희, 주찬권까지 들국화의 모든 멤버가 세션으로 참여했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 앨범은 들국화 1집이 갖고 있던 치열함과 노래의 진실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들국화 1집만큼의 좋은 노래들로 앨범은 채워져 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 최고의 번안곡이라 칭해도 좋을 <사랑한 후에>, 자신들의 이상향을 노래하는 <머리에 꽃을>, 그리고 노래하는 이의 진심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유> 같은 노래들은 노래 자체로서 이 앨범이 얼마나 훌륭한 앨범인지를 증명하고 있는 좋은 예이다. 그리고 들국화 멤버들의 안정적인 연주를 바탕으로 최구희와 함춘호가 번갈아가며 들려주는 기타 솔로는 지금까지도 얘기되고 있는 명연이었고, 앨범의 반쪽 허성욱은 <북소리>에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격정적인 피아노 솔로와 함께 거의 모든 곡에서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어내며 앨범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었다.
전인권은 자신의 모든 재능이 최상에 있을 때 이 앨범을 만들어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간과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전인권이 단순히 좋은 보컬리스트만이 아니라 그만큼 훌륭한 송라이터라는 사실이다. 그가 비록 <행진>을 부르며 ‘포효하는’ 보컬리스트로 각광을 받았지만 그 전에 이미 그는 그 노래를 직접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거의 대부분의 노래들을 직접 만들었고, 이후 자신의 (공식적인) 첫 번째 앨범에서도 훌륭한 명곡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는 ‘보컬리스트’ 전인권이라는 이미지에 가려 창작자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비록 그가 ‘인권이 라이프’로 대표되는 희화화된 이미지와 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이상한 아저씨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 앨범에서의 전인권은, 그리고 80년대의 전인권은 정말 훌륭한 음악인이었고 훌륭한 예술가였다. 그래서 지금 그의 기행과,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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