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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가슴 운영중단에 대한 경위’부터 밝히려고 합니다. 너무 오랜 동안 업데이트를 중단한 것에 대한 자책감과 불투명한 향후 전망 때문에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일단 오해 부분은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향후 가슴의 비전 부분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아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깊은 양해를 바라고, 특히 그동안 같이 참여해주신 가슴 필자분들에게는 다시 한번 공식적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1. 가슴, 운영 중단에 대한 경위

그간 가슴 운영중단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고, 또한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말씀드릴 것은 자의적 운영중단이 아니라 ‘서버 해킹에 의한 운영중단’이란 점입니다. 그런데 운영중단 시점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속담처럼 ‘럭스/카우치 사건’(2005년 8월의 한국을 들쑤셔 놓았던 그 사건)과 맞물리면서 다소 오해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제가 2005광명음악밸리축제를 맡은 시기라서, 이 또한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슴운영 중단은 이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가슴 운영중단은 정확하게 2005년 9월 10일 경부터 2006년 2월 중순까지였고, 업데이트 중단은 2006년 11월 20일까지입니다. 이전에 마지막으로 올라간 콘텐츠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5-09-03 고장난 프리즘 / M
[짧은 인터뷰] 김범수, bk!, Astro Bits, 10년만의 신보
*2005-09-04 가슴 칼럼 / 박준흠
인디뮤직, 이제는 ‘한국음악산업’ 안에서 ‘시스템’ 차원으로 이야기할 때
*2005-09-04 가슴 초점 / 박준흠
인디음악 진흥을 위한 간담회. 대안과 실행방안
*2005-09-07 필자추천싱글 / 나도원
Darkest Hour <With a Thousand Words to Say But One>

그리고 2006년에 새롭게 업데이트되기 시작한 콘텐츠는 다음과 같습니다.

*2006-11-21 필자추천싱글 / 박준흠
은희의 노을 <Min's Life>

가슴은 알다시피 ‘1인 운영체제’의 음악매체이고, 서버(웹서버, 미디어서버)를 개인 사무실(집)에서 직접 운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방화벽(firewall system)이 갖추어지지 않은 환경에서 서버를 운영하다보니 외부 해커들의 공격에 사실 대응하기가 어려웠고, 2002~2004년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는데 2005년 여름부터 ‘해커들의 놀이터’가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해커들의 공격 흔적이 있었지만 착한 분들이었는지 그냥 서버나 둘러보고 가는 정도였는데, 2005년 여름에는 한마디로 악성 해커들이 오기 시작해서 시스템파일을 건드려서 웹서버 자체를 못 쓰게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인덱스 페이지를 ‘해골이 그려져 있는 페이지’로 바꾸지를 않나, 서버 옆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갑자기 명령어 모드로 바뀌면서 누가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지를 않나... 이상한 현상을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그래서 웹서버 자체도 바꾸었고, O/S를 3번 정도 다시 깔았습니다.(그래서 그 해 여름에 유난히도 서비스 중단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지금에야 묻겠는데, 가슴서버에 침입해서 뭐 가지고 갈 게 있다고 그런 짓들을 한 것이야?)

결국 가지고 있던 서버 2대는 O/S를 다시 설치해도 웹서비스가 작동이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서(아예 하드디스크 포맷을 다시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럴 수는 없었고...) 서버를 살리는 것을 포기하고 알았습니다. 그 때가 2005년 9월 10일 경입니다. 그러니 일부의 오해처럼 럭스/카우치 사건의 여파로 가슴 운영을 중단한 것도 아니고, 또한 광명음악밸리축제 준비에 바빠서 운영을 중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코앞에 닥친 광명음악밸리축제 준비 때문에 가슴 복구를 미룬 이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가슴이 ‘1인 운영체제’이다보니 엔지니어링 관련된 문제를 제가 아니면 손 볼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슴 복구 문제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해결책이 ‘웹호스팅 체제’로 전환하는 것과 거기에 맞추어서 DB를 정리하고, 웹파일들을 수정하고, 업로드시스템을 다시 만들어야 했는데, 이게 꼬박 2~3주가 소요될 일이란 짐작이 들었습니다. 이건 당시 9~10월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1~12월에는 추경예산을 받아서 2005년 축제 결과물들을 만들고, 2006년 축제를 준비하느라고 시간을 쓸 여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2006년 2월 초부터 웹호스팅 준비를 시작해서 중순에 가슴 운영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는 업로드툴을 새롭게 만들지 못해서 새로운 콘텐츠 업로드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지금 ‘라디오’나 ‘게시판’이 열리지 않냐고 문의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유는 웹호스팅 비용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자체 서버를 운영하다보니까 Windows SQL Server 2000에서 전혀 DB 파일 운용에 제한이 없었고, 그래서 4개의 DB 파일을 따로 따로 운용을 했습니다. 그런데 웹호스팅에서는 이게 하나하나가 비용으로 계산이 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리뷰/기사/뉴스 등이 속한 DB 파일만 설치를 했고, 라디오와 게시판-일반/독자- DB를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라디오와 게시판이 열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시간을 갖고 하나의 DB 파일로 전부 통합시키는 작업을 하면 되지만...)

그리고 2006년 3월부터 10월까지는 미국출장, 축제준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석사논문 제출, ‘대한인디만세’ 출간 작업까지 겹쳐서 도저히 가슴 복구에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1월 초까지 축제완료보고서 작업을 어느 정도 마치고 나서 다시 가슴 업로드툴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해서 11월 20일에 완료했습니다. 그래서 11월 21일에 처음으로 ‘필자추천싱글’ 코너에 은희의 노을의 <Min's Life>를 업로드 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왔습니다.

그간 예전에 ‘편집장의 말’ 코너에 올렸던 “만약 휴간을 생각한다면 가슴과 동등한 뭔가의 일을 하거나 최악의 경제적인 사태 발생, 운영환경에 난점이 발생할 때이겠죠”라는 글 때문에 오해를 하신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런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그 글 다음에는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1인 운영체제’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운영환경에만 문제가 없다면 계속 운영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라는 말도 분명히 했었죠. 물론 현재 운영시스템에서의 난점은 운영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1인 운영체제’로 운영하다보니,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데 마침 그 때 제가 무척 바쁜 경우 대처할 방안이 따로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그나마 현재 웹서비스는 외부 웹호스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웹서비스가 중단될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에 안심하고 있습니다.



2. 가슴, 현재 운영시스템

가슴(현재는 ‘웹진 가슴’)의 운영시스템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가슴 소개’ 코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운영>과 <편집> 부분으로 나뉩니다. 스탭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슴네트워크]
대표 : 박준흠

#웹진 가슴
편집장 : 박준흠
편집인 : 김학선, 나도원, 서성덕, 서정민갑, 서희정, 장다건, 하나

#웹진 필진(현재)
김봉현, 김윤하, 문정호, 서영진, 안재현, 이경원, 이지연, 이지환, 한희진, 홍정택, Da20ill, M

즉, <운영> 부분은 제가 혼자서 맡고 있고, <편집> 부분은 ‘편집인’ 체제로 가동되고 있습니다. <운영>은 가슴 운영, 웹기획, 웹마스터/웹프로그래밍 등에 관련된 부분이고, <편집>은 가슴의 정체성, 콘텐츠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 ‘가슴 편집시스템’에 대한 소개 :
http://woodwolf.cafe24.com/8180/article_show.asp?content_idx=662



3. 가슴, 앞으로의 전망

현재 ‘웹진가슴’은 ‘가슴네트워크’로 방향 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명칭은 ‘가슴 문화시스템기획 네트워크’입니다. 가슴네트워크는 문화기획/정책 등 예술경영 전반을 포괄하고, 웹진가슴은 가슴네트워크 안에서 운영될 예정입니다. 지금은 웹기획 단계이고, 6월 정도에 사이트를 오픈(1차 오픈)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웹기획에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에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고, 목표로 “한국의 모든 문화예술기관과 문화예술인들을 네트워크시키겠다” 정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웹진가슴이 비영리로 운영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감안하는 반면, 가슴네트워크는 영리 운영(회사 체제)을 염두하고 있습니다. (※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역량 있는 프로그래머, 디자이너의 도움도 절실합니다.)

‘가슴네트워크’는 2~3년 전부터 조금씩 생각해 오던 시스템입니다. 이전부터 한국음악산업 개혁(개선)과 관련해서 음악산업대학교, 음악산업정책연구소, 대중음악전문 공중파방송국 등에 대해서 얘기를 해왔는데, 사실 현재 가슴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운영’과 ‘매체력’ 부분입니다. 이는 수익모델이 거의 전무한 가슴(웹진 가슴)을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면서, 가슴이 지향하는 바를 현실세계에서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동력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냥 얘기한다면 이미 중년으로 접어든 제가(이 끔찍한 현실이여^^) 가슴이라는 ‘매체’를 초지일관 운영하려면 현실적으로 ‘운영비와 노동력’이 소요되고 또한 ‘제반 환경’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전자로 거론한 ‘운영비와 노동력’ 부분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수준 이상이 있습니다. 단지 사이트 운영비와 개인 노동력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원칙적으로 가슴필자들의 합리적인 기고료 책정 문제와 가슴편집인들의 활동비 지급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운영자인 저도 여기서 최소한 생계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요원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후자로 거론한 ‘제반 환경’ 부분은 가슴이 단지 음악평론 사이트로 머물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갖추고 싶어 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매체력’이라는 대중적인 연대와 ‘(문화예술계) 네트워크’라는 기술적인 방법론이 필요할 것입니다. 무슨 얘기냐면 현재 가슴의 영향력(매체력)은 주류 매체에 비해서 미미하기 때문에 현실세계에서의 파급력이 미미하다는 점이고, 그래서 매체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일례로 가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훌륭한 음악창작자에 대한 조명’을 아무리 외쳐도 그 메아리가 미미하기 때문에 말하는 당사자나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이나 힘이 빠지고 있는 상황이고, 이게 혹시 열패감이나 자조로 귀착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가슴에도 매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언더그라운드/인디 소스를 주로 다루는 가슴이 어떻게 대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매체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여태까지 열라게 매도했던 주류 쪽의 선정적인 소스를 수용하면서 편집방향성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한국 대중음악씬 내에서의 가슴’이 아니라 ‘한국 문화예술계 내에서의 가슴’으로 위상을 업그레이드시켜보자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에서(!) 아직까지도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중음악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꿔보려는 노력과도 연관됩니다. 즉, 가슴의 매체 영역(독자 영역, 콘텐츠 영역, 활동 영역)을 음악마니아 중심에서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대함으로써 여태까지 한국 문화예술계 내에서 동떨어진 존재로 인식되어온 것 같은 변방의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끌어올리고 싶은 욕구도 있고, 현실적으로는 가슴의 편집방향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방문자(독자) 수를 늘리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가슴(웹진 가슴)의 매체력 확대 방안이자 “한국의 모든 문화예술기관과 문화예술인들을 네트워크”시키려는 ‘가슴네트워크’ 기획의 변이기도 합니다. 가슴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가치나 방법론(훌륭한 음악창작자 조명, 대중음악홍보/유통 개선, 음악산업 인력양성 등)이 지금의 수천~수만명 정도의 인구에서 논의되는 것과 적어도 수십만명 정도의 인구에서 논의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슴과 가슴의 지향점에 동의하는 분들은 함께 노력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이 이상으로 그치거나 실행력이 부족해서 생각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 향후 결과물을 가지고 평가받을 수는 있겠지만 노력 자체를 폄하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1) 앞으로의 가슴은?

성격 : 문화시스템기획 네트워크 (가슴 네트워크)
모토 : 한국적인 현실에서의 문화기획
리뉴얼준비 : 2006년 11월 ~ 2007년 5월
오픈: 2007년 6월 (예정)
콘텐츠 : 대중음악/문화 비평웹진, 문화시스템기획, 음악산업정책연구소, 연구모임, 인력양성, 비주류음악 DB, 문화기획출판, 예술경영 전반 연구


(2) 가슴네트워크 구성

대중음악/문화 비평웹진 (웹진 가슴)
- 비평, 정보
- 음악/문화산업, 문화정책, 문화행정, 문화연구, 문화예술교육

문화시스템기획
- 축제 기획/운영
- 매체 기획/운영
- 출판 기획

음악산업정책연구소
- 음악산업 전반에 대한 정책연구, 교육, 컨설팅
- 비주류음악 국내외 홍보/유통, 해외진출방안 연구
- 음악전문방송국(공중파/라디오 중심) 기획/운영방안 연구

연구모임
- 음악산업대학교(Music Industry/Business) 기획/운영/커리큘럼/교재출판
- 비주류문화 포털사이트, 문화인력DB, 후원금 관리단체 등

인력양성
- 문화기획/정책 전반에 관한 교육

한국인디뮤직 DB - 비주류음악 DB

문화(시스템)기획 전문출판사
- 문화기획 총서
- 축제기획의 실제
- 음악산업대학교 교재
- 뮤지션 평전(한국음악창작자의 역사)
- 음반가이드북

예술경영 전반 연구
- 문화기획
- 문화산업
- 문화정책/행정
- 문화연구
- 문화예술교육


이번 광명음악밸리축제에서는 잊지 못할 순간이 세 번 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뮤지션 3명이 무대에서 내 이름을 호명한 것이었다. 첫 번째는 9월 9일 사전홍보행사로 열린 거리공연에서 럭스의 원종희씨가, 두 번째는 9월 22일 ‘밸리초이스’에서 김창기씨가, 세 번째는 9월 24일 ‘어쿠스틱 웨이브스’에서 스왈로우와 함께 출연한 한대수씨가 그랬다. 럭스 공연은 한낮에 이루어져서 몸둘 바를 몰라했고, 나머지는 무대 옆의 어둠 속에서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나았다. 그런데 정작 김창기씨가 호명하고 답례로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줄 때는 잘 몰랐는데, 공연 보는 내내 코끝이 찡한 것은 무엇이었더냐?

2006 광명음악밸리축제에 출연한 90년대를 대표하는 음악창작자 김창기


2번의 광명음악밸리축제가 끝났습니다.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2005년) “현재의 노래, 희망의 노래”(2006년)란 주제로 ‘음악창작(자)’을 축제기획에서 핵심에 놓고 행사를 치러냈습니다. 뭔가 할 일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난 일들을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가슴을 좀 오래 쉬었다는 것은 잘 압니다^^) 이제 정신 차리고 다시 가슴에 몰두하려고 합니다. 그간 웹호스팅을 시작하면서 사이트도 안정화 되었고, 웹호스팅에 맞추어서 대략 사이트를 손보았습니다. 내년에는 앞서 공표한대로 ‘가슴 네트워크’ 체제로 전환을 할 예정이고,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축제를 준비하는 와중에 대학원을 졸업했고, <대한인디만세>를 발간했습니다. 아래는 지난 여름 대학원 졸업을 하고난 뒤 가진 상념들입니다.


1.
내가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을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고서였다.

“70, 80년대 운동가 성공회대 ‘집결’ - 최민·김보성씨 대학원 합격”(한겨레 2003-12-14)
성공회대 대학원에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합격해 화제다. 2004학년도에 처음 개설된 이 대학 문화대학원 문화기획과정에는 1987년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창립멤버이자 문화운동가인 김보성(44) 다움문화예술기획 대표이사가 합격했다. 그는 “늘 노래운동 현장의 경험을 이론적으로 다져나가고 싶었다”며 “한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공부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후략)

2004년 봄,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알던 사람은 한국대중음악상선정위원회에서 같이 활동하시던 김창남교수님과 이전에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에서 같이 활동하던 서정민갑씨가 유일했던 것 같다. 1기들을 보면 대략 서로들 얼마간의 안면식이 있어보였는데, 나처럼 대중음악계에서 일하는 사람은 ‘학계’와는 거리감이 있는 것인지 외톨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기사 대중음악쪽은 연주인을 양성하는 실용음악과를 제외하면 대학에 학제도 없고, 음악평론가는 음악마니아 생활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직업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게다가 대학 나와야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마 음악평론계가 전체 필자들 사회에서 가장 저학력에다가 일과 무관한 전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든다. 그러다보니 대중음악 쪽의 경우에는 스스로가 조직화되어서 대중음악 관련 정책을 논하지 못하고 문화연대나 민예총과 같은 단체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현안을 얘기하고 있는 형편이기도 하다.

1989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기업연구원특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까 2004년에 문화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는 15년만에 다시 학업을 재개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학교시스템을 신뢰하지도 않았고, 특히나 끼리끼리 해먹어대는 학벌사회에 염증을 내는데다가, 다행히도 대중음악 쪽의 기획일은 앞서 지적한 문제에 다소 무관한 측면이 있어서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을 해나가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는데, 기획일의 상층부에는 ‘문화정책’이 개입될 수 밖에 없고, 적절한 ‘학교시스템’을 만들지 않고서는 음악산업을 제대로 키워갈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처음 대중음악 관련 일을 했을 때만해도 ‘뛰어난 콘텐츠’만 생산한다면 시장개혁이 가능하고, 일반인들의 인식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순진한 생각을 했었고, 그게 대중음악전문지 ‘서브’(SUB)를 기획해서 발행인 설득하고 잡지사를 운영한 2년간의 기간(1997년 여름~1999년 봄)이었다. 이 때의 열정은 정말 엄청나서 한달의 반은 밤 12시가 넘어서 회사에서 퇴근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단행본인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에 담긴 방대한 텍스트도 이 때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작성한 것이고, 잡지에 들어가는 잡다한 텍스트까지 따지면 어떤 달은 물경 700매 가까이 글을 쓴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마감에 임박한 새벽 3~4시 경에 비몽사몽 글을 쓸 때면 머리 따로 손 따로 인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막판에 교정지를 보면서 동시에 8매 분량의 음반리뷰를 하루에 6~7개씩이나 쓰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거기다가 매달 부록 컴필레이션음반을 1개씩 만들어냈고.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일 분량이다.(그런데 가끔 그 상황에서 썼던 글을 보면 오히려 잘 쓴 글도 있어서 희한하다.)

하지만 32살에 청운의 꿈을 품고 시작했던, 뛰어난 콘텐츠가 시장을 바꿀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시작했던 ‘서브’는 내게 정확한 현실인식만을 심어준채 사멸했다. 1998년 당시 서브는 창간 1년이 되지 않아서 수도권판매 1위였고, 판매와 광고로 매월 B.E.P를 맞추었기 때문에 운영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음악잡지 시장이 2만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아져서 창간과정에서의 악성채무를 갚을 방도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기 계속 몸담고 있을 수가 없었다.(후에 이 잡지사는 콘텐츠를 탐내는 모회사에 팔렸고, 잡지사를 인수한 그 회사는 6개월 가량을 운영하다가 결국 폐간시켰다.) 또한 음악잡지의 매체력은 작아져서 시장에 영향을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마디로 시장규모와 상황, 매체력을 간파하지 못한 채 달겨든 것이었고, 해당 산업에서 ‘인프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현장에서 알게 되었다. 내게 그 2년은 수업료를 지불한 기간이라서 후회는 없고, “음악산업에서 어떻게 인프라를 갖출 것인가? 우선순위는?”라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를 성장시켜준 측면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말끝마다 대중예술(가)과 문화기획(자)을 얘기하면서 일면 비루하고 칙칙해 보이는 ‘생계’ 문제를 거론하는데, 이는 앞서 고민의 기간을 통해서 확실히 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한국예술계에서 당면 문제는 예술가(예술창작자)의 생계 문제이고, 이를 도외시 하는 논의나 정책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실제로 해당 씬(scene)에 별로 도움을 주지 않은 탁상공론이거나 예술지상주의자들의 한담으로 여긴다. 특히나 비주류예술 중에서도 비주류음악은 더욱 그렇다.

나는 음악산업에서 인프라를 갖추려는 이유는 더욱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이 생산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여기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음악창작자들의 최소한 생계와 활동이 보장되고 이들의 작품이 정당하게 존중을 받는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의 논의 중심은 음악창작자, 작품, 뮤지션들이 배제된 채 음악장사꾼들의 이익증대에만 골몰하고 있고, 거기다가 국익차원으로 ‘한류’를 다루다보니까 음악장사꾼들의 활동을 필요하고 중요한 무엇으로 설정하고 시대적인 정당성마저 부여한다. 그것도 아니면 음악가의 환경 문제는 거세하고 단지 음악 자체만을 다루는데, 그것도 당대의 음악가나 작품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하도 흘러서 이미 객관화된 하나마나한 얘기들을 재생산하는 수준이다. 지금 당대의 주목할만한 음악가들은 대개 조명도 받지 못하고, 나자빠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월드컵이 열리는 것이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 공터가 없어서 축구를 할 수 없는 축구애호가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듯이, 음악장사꾼들의 잔치는 진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음악애호가들에게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음악산업에서의 인프라에 뮤지션들의 창작활동기반 문제가 도외시 되면 단지 음악장사꾼들의 그라운드만을 만들어주는 것이고, 이것은 문화정책의 존립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뽀대나는 사업을 기획하고 싶어하는 정책가와 생계문제에는 구애받지 않는 상층 문화계급이 다루기에는 구질구질한 ‘생계’ 문제 해소이다.

결국 내가 안 사실. 아무리 맹렬한 의지를 갖고 있는 예술가나 기획자라고 할지라도 개개인이 약진해서 해결될 문제가 있고 그렇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음악산업의 인프라에 관한 문제는 후자이다. 이에는 절대적으로 문화정책의 개입이 필요하고,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더 필요하다. 이 때 항상 나오는 반론이 영미권이나 일본에서도 그러하느냐, 또는 음악시장은 소비자의 선택에 맡길 수 밖에 없지 않느냐, 등등이다. 뭘 모르고 하는 소리. 그 나라들은 비주류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홍보, 유통, 공연 환경이 존재하고 있고, 주류음악권에서도 ‘앨범’(작품으로서의 음반)이 생산되고 있고, 대중음악씬에 ‘예술에 대한 인식’이 존재하고 있고, 대중음악학제(music industry)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와서 특별히 문화정책의 개입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래서 2000년 무렵부터는 문화기획자이지만 정책, 행정 부분에 관심을 기울였고, 문화기획자라는 호칭보다는 ‘문화시스템기획자’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그 무렵 추계예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같은 곳을 기웃거리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다니지는 않았고, 대신 ‘가슴’ 사이트를 리뉴얼해서 나름대로의 정책리포트 작업을 시작했다. 문화연대와 같이한 대중음악개혁을위한연대 모임에도 참여해서 2003년 한해 동안 열심히 포럼 발제 작업을 했고, 여기서 한국대중음악상을 설립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런 것들이 내게 정책리포트 작업에서 눈을 뜨게 해준 측면이 있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문화대학원 홍보기사를 보고 문화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대학원에 들어가기까지의 내 안의 명백한 이유와 이를 쫒는 숨가뿐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벌써 졸업. 대학원에 가서 음악산업대학교 기획/운영의 마스터플랜을 짜고, 음악산업대학교 연구모임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은 아직 제대로 실천되지 않았다. 대신 전혀 얘기치 않았던 음악축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에 현재는 만족하고 있다. 왜냐면 축제는 ‘문화기획의 꽃’이기 때문에 내 안의 지평이 넓어진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문화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이유와 과정을 되도록이면 잊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이를 잊는다면 이전에는 신뢰하지 않았던 한국의 학교시스템과 끼리끼리 해먹어대는 학벌사회에 단순히 편입된 상태로 머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불쾌하면서도 두려운 일이다.


2.
꽃다지 <희망>
from [진주](1999/꽃다지)

1)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서듯
이제는 그대를 떠나라 한다
겨울숲 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를
이 세상 모든 길이 얼어붙어 있을 때
그 밑을 흘러 내게 오던 그대를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또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해주던 그대를
눈물과 아픔도 쉽게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주던 그대를 희망을

2)
겨울숲 같은 우리 삶의 벌판에
언제나 새순으로 돋는 그대를
이 세상 모든 길이 얼어붙어 있을 때
그 밑을 흘러 내게 오던 그대를


지금, 여기, 우리의 음악축제


# 축제 개요
명칭 : 2005 광명음악밸리축제
날짜 : 2005년 10월 7일(금) ~ 9일(일)
장소 : 광명시민운동장(7호선 철산역 3분 거리), 광명시 일원
주최 : 광명시
주관 : 축제추진위원회, 광명문화원
후원 : 광명시의회, 예총광명지부, 음악웹진가슴, 라이브문화협회, 클럽문화협회 등
협찬 : 각종 대중음악/문화 관련 업체

# 슬로건
- 60 Hours Music Festival In GwangMyeong

# 주제
- 음악이 주는 감동

# 키워드
- "한국 음악창작자의 역사"

# 광명음악밸리?
- 본 음악축제는 광명시의 '음악밸리' 사업을 전국적으로 홍보하기 위하여 기획하였습니다. 광명시는 음악밸리(KTX 광명역 인근 조성 예정)를 통하여 음반기획, 생산, 유통, 소비, 공연, 전시, 인재양성에 이르는 다양한 기능을 소화하는 '음악산업도시'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 축제사이트
- www.mvalley.org
- 5월 31일 임시오픈
- 7월 18일 정식오픈


3월부터 광명시의 음악축제 기획을 맡아서 5월 1일자로 축제사무국을 꾸렸습니다.
음악축제 예술감독으로 위촉이 되었고, 사무국장을 겸합니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발표한 작품들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메인무대 출연자들을 선정하는" 음악축제, 한마디로 '앨범아티스트'들만을 메인무대에 세울 예정입니다.(공모전은 예외.)

그리고 4개의 서브스테이지(Sub Stage)를 포함한 부대행사가 여러개 예정되어 있습니다. (메인스테이지:Open Stage / 서브스테이지:Free Stage)

9월 8일(목), 7시 기자간담회 겸 공연(사운드홀릭)을 시작으로 사전행사를 시작할 예정이고, 축제 기간 3일 동안은 광명시를 '음악도시'로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쉼 없이 음악 관련 공연, 행사를 접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매니아들이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아주 통쾌한 음악축제가 될 것입니다.


대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고, 프로그램이 확정되는대로 자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 사전 행사(9월 주말) :
- 9월 8일(목) 7시, 사운드홀릭(홍대) : 기자간담회 겸 공연 (New Currents 미스티블루, 13 Steps와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출연)
- 9월 24일(토) 2시, 광명문화원(광명시) : 실용음악과난장 중간결선 공연
- 10월 1일(토) 4시, 문화의거리(광명시) : Pre-Stage (허클베리핀, 13 Steps, 몽구스 출연)


* 메인무대공연(3일간 저녁시간) : 총 6개의 프로그램

10월 7일 (금요일)
- 하나뮤직 스페셜 (7:30~) : 조동진, 조동익, 장필순, 한동준, 오소영, 이다오, 버드
- 밸리 초이스 (9:00~11:00) : 한대수, 이상은, 이승열, 이병우

10월 8일 (토요일)
- 인디뮤직 10년 (4:30~11:00) : 델리스파이스, 허클베리핀, 마이언트매리, 스웨터, 슬로우쥰, 이장혁, 코스모스, 푸른새벽, 몽구스, 페퍼톤스 + [GMC]바세린, 49몰핀스 + [SoulShop]소규모아카시아밴드, 카프카

10월 9일(일요일)
- 실용음악과 난장 (4:00~) : 전국 실용음악과 학생들로 구성된 8팀
- New Currents (6:30~) : 미스티블루, 13 Steps
- 민중음악 30년사 (7:30~10:00) : 안치환과 자유, 노찾사, 꽃다지, 손병휘 + 연영석

* 부대행사 :
- 서브스테이지(총4개 예정) 개념의 다양한 거리공연들, 기자간담회 겸 공연, New Currents, 실용음악과 난장 등...
- 실용음악과 마당, 음반전시/판매, 사진전, 전시회, 노천카페, 음악산업/예술교육 세미나, 시민/예술가 참여프로그램 등...

* 기록물 : 밸리레코드(홍보용음반) 3종, 축제동영상, 라이브음반(예정), DVD(예정)

[사무국]
- 위치 : 경기도 광명시 철산2동 158번지 철산종합사회복지관 3층 축제사무국
- http://www.mvalley.org


※ 제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원의 클럽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나의 정체성'에 관련된 글을 가슴 창간5주년 기념 '편집장의 말'로 대신합니다. 너무 오랜 동안 이 코너에 글을 쓰지 않아서 사실 좀 민망했습니다^^

Running on Empty (1988, 허공에의 질주, Sidney Lumet 감독/ River Phoenix 출연)


오늘 '문화와 기술' 시간에 OOO씨의 질문을 받다보니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글을 씁니다. '내 정체성'에 관한 이해부족 부분인데, 사실 이를 누구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이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라 기본적으로 논쟁거리도 아니지만 종종 오해를 사는 부분이 있어서 이번 한방(?)으로 끝내려고 합니다. 이번 기회에 원우들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주려고 하니, 앞으로 엇나가는 질문은 없을 것으로 여기겠습니다.^^

여태까지 공통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받는 질문들 중에는 "왜 그렇게 '비주류'를 강조하느냐? 왜 돈 안 되는 '가슴'을 운영하느냐?(운영하는 진짜 목적이 뭐냐?)"에서부터 "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냐? 당신의 생각만 옳으냐?" 등등입니다.

특정 주제를 깊이 있게 들어갈 때,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느끼는 것들 중에는 단절감과 소통불능이란 것이 있습니다. 좀 고립적인 생활과 사고를 오랜 동안 해오고, 취향도 독특한 면이 있어서 나를 오랜 동안 알거나 취향과 정체성 면에서 유사한 사람들이 아니면 내 사고와 행동패턴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반사회적이거나 대인기피증,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나름으로는 예의 바르게, 원만하게 살려고 무진장 애씁니다.

오해의 시작은 이럴 것으로 추측합니다. 나는 이렇습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되어서 20년이 넘었고, 그 때 이후로 가졌던 '문제의식'과 '살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다짐했던 부분들'을 지키려고 무던히도 노력했기 때문에 상당히 '비타협적인 노선'을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적인 양태들(현재의 내 사고와 행동양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면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즉, 현재의 내 모습은 오랜 동안의 생각과 결심과 시행착오와 방법수정 끝에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내 '코어'는 변하지 않았지만 전술적으로는 적어도 A --> B --> C --> D --> E 이렇게 흘러왔을 것이고, B/C/D 때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E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겠죠.

내가 말하는 능력이 좋아서 대화 때 왜 내가 현재 E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잘 설명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글쓰기에 비해서 말하기는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잘 말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때로는 "내가 E가 되었는지를 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하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사실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삶의 기반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한다고 실체적으로 이해가 될까?"라고 자문하기도 합니다.(경험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적어도 2년 이상은 같이 얼굴을 볼 사람들이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겠습니다. 이후에도 또 이해부족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 없기, 입니다.^^


1. 왜 나는 아직까지도 '비주류'를 얘기하는가?

예전 독재정권 시절, 공포의 시대에서는 정의감과 불굴의 의지로 무장된 '투사'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민주화는 어느 정도 되었으나 무엇이 옳은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기 어려운 혼돈의 시대에는 정직하고 총명한 '선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내가 지금보다 10살 정도가 많아서 '투사'가 필요했던 시기를 몸소 겪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결정을 했을까라고 자문합니다. '투사'가 되기에는 용기나 희생정신이 부족한 내가 공안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으면서까지도 신념을 꺽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했을 때 회의적입니다. 솔직히 나는 모진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이겨내면서까지 밀고하지 않고 버텨낼 자신이 그다지 없고, 갖은 폭행과 협박, 모욕을 이겨내면서까지 수십년을 넘게 전향서 쓰기를 거부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염치'라는 것은 있기에, 내 행동에 대해서 양심선언을 하고 반성문을 쓸 것이며 아마 한국에서는 더 이상 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비주류'를 아직까지도 얘기하는 이유는 내 '신념'과 연관된 문제이고, 그건 앞서 얘기한 '살면서 놓치지 않으려고 다짐했던 부분들'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은 공포의 시대도 아니고, 그 신념이 정치적 급진성과 관련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염치' 정도만 있어도 얼마든지 일관된 삶의 모습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고, 음악 관계된 일을 하겠다고,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과 같이 살아가겠다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등등. 이에는 예전 공포의 시대에 투사들에게 요구되었던 불굴의 의지 수준이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신과 이들 대상 그리고 그 당시 같이 다짐했던 친구들에 대한 '염치' 정도만 있어도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내게는 그나마 좋은 시절이 온 것이 다행입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라는 방침대로 30살에 방송국으로 이직하고, 32살에 음악잡지사를 차렸고, 이후 가슴, 쌈넷을 만들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대개 비주류적인 영역에 있다는 점이 내가 아직도 비주류를 얘기할 수 밖에 없는 주된 이유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은 좋은 창작곡을 (만들어서) 부르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90% 이상 비주류 뮤지션들이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 분배의 정의, 진보적인 가치 등등 뿐만아니라 사랑, 결혼 문제 등등에 이르기까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아직까지는) 비주류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비주류에서도 비주류'입니다.

'노동의 대가' 문제만 가지고도 얘기해 볼까요? '인권'을 얘기하는 잡지사가 정작 기고료는 10년 전 수준으로 준다거나 몇 개월씩 밀리는 문제는 어떻게 봐야할까요?(그들의 사정을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충분히 사정을 알고 이해도 합니다.) 왜 기고료는 종이값, 인쇄비를 지급하고 나서 지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당연시 여길까요?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이유는 필자(컨텐츠기획자)들이 근본적으로 자본가나 시스템에 부당하게 예속된 이유 때문인데 공개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이를 단순히 생각하면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불합리한 구도가 자신에게는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나요? 이게 '비주류에서의 권력화' 추구의 본질이라고 의심해 본 적은 없나요? 내가 단지 음모론자인 것 같나요?

혹자는 내가 주류에 끼지 못했기 때문에, 주류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에 주류를 얼정거리는 비주류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오해입니다. 이는 '주류에의 편입'을 우리사회에서의 '성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물론 나는 '성공'하고 싶고, 그래서 안락하게 살다가 명예롭게 죽고 싶습니다. 하지만 나는 '(현재 규정된) 비주류 영역'에서 성공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1)"비주류가 어떻게 성공하겠느냐?"는 문제와 (2)"비주류가 안락하게 살면 비주류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1)에서 '성공'에만 방점을 찍는다면 여태까지의 비주류적인 태도와 사고를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앞서 말한 '염치'에 관련된 문제에 봉착합니다.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거나 일말의 반성이라도 한다면 이 혼돈의 시대에 봐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납득할만한 이유에는 결혼을 해서 부양가족이 생기는 경우 등일 것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라도 생기면 당연히 입장정리하고 분유값이라도 버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옳을 수가 있겠죠.

하지만 나로서는 아직까지는 '비주류'가 '성공'하는, 이 둘 다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돈 안 벌리는 비주류를 돈이 벌리는(최소한 생계는 꾸려나갈 수 있는) 비주류로 바꾸거나, 여태까지 비주류로 얘기되어왔던 것을 거기서 탈피시키는 것으로 '환경'을 바꾸고 싶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나의 생계 문제는 물론이고 성공까지 바라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게 내가 염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의 문제를 얘기한다면 고민이 많습니다. "안락하게 살면서 비주류적인 태도를 과연 고수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문이고,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1)의 문제도 요원한데, (2)까지 생각할 여유는 솔직히 없습니다. 단, 나중에 안락하게 살더라도 반성문 쓰는 일은 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이래서 내가 자주 '비주류'를 얘기하는 것이고, 단순하게 취향에 근거한 얘기만은 아니란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까 수업시간에 '문화적인 다양성을 위해서'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와 내가 좋아하는 대상들의 '생계를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얘기하기에는 너무 빈해-_- 보여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오늘처럼 기분이 축 처진 상태이거나 힘들 때, 일할 힘을 다시 얻는 것이 다음과 같은 음악 때문이라면 믿겨지십니까?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때까지 비주류 태도를 고수할 수 있는 것이겠죠.

* jimi hendrix - all along the watchtower
* blind faith - can't find my way home
* 한대수 - one day
* 델리 스파이스 - 마이 웨이(이제껏)
* 안치환 - 너를 사랑한 이유B
* 허클베리 핀 - 사막


2. 왜 돈 안 되는 '가슴'을 운영하느냐?(운영하는 진짜 목적이 뭐냐?)

가슴은 1999년에 만들어서 여태까지 특별한 수익모델도 없었고(만들려고는 했으나 못 만들었음^^), 그래서 사이트 자체로는 수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슴 운영을 적어도 현재까지는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다분합니다. 하지만 방문자수를 늘리고 싶기 때문에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서 사이트 개편은 할 것이고(★정보, 비평, 산업, 정책, 교육 전반을 다루는 '대중음악 포털사이트'로 거듭 나려고 함★), 공익성을 내세워서^^ 지원과 후원은 받으려고 합니다.

여태까지 문예진흥기금 약간 받았고, 또한 약간의 기부가 있었습니다. 아마 그간 쏟아 부은 직접/간접 경비와 여기에 내 인건비(편집, 운영, 프로그래밍, 웹마스터링)를 환산하면 가난한 살림살이에 적지 않은 액수이겠죠.

그런데도 가슴 운영을 '사업'으로 얘기하기보다는 "선배로써 할 일을 하고 싶어서, 이런 매체는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해야하는데 그걸 내가할 뿐, 좋아서, 내가 존중하거나 애정을 표하는 대상을 위하여" 등등이 주요 이유라고 얘기하면 그대로 믿지 않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대개 반응에 내가 민망해서 이제는 오히려 내가 눙을 치곤합니다.) 하지만 90% 정도는 말한 그대로입니다. (물론 운영비 버는 것을 포기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가슴 운영 이유에는 '운영비 버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산업적인 관점으로 언더그라운드씬 바라보기!"라는 모토에는, 비주류 음악씬의 시장 지분을 적어도 10%까지 끌어올리는 데 가슴이 일조하겠다는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이건 앞서 얘기한 "돈 안 벌리는 비주류를 돈이 벌리는(최소한 생계는 꾸려나갈 수 있는) 비주류로 바꾸려는" '환경 개선'과 관련한 목표입니다. 그래서 정책적인 접근을 중시하는데, 이런 얘기하면 보통 뜬금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이 가슴 운영의 진짜 목적입니다.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나 '자긍심' 같은 것이 없으면 이런 일 5년씩 절대로 못합니다. 물론 향후 계획으로 '대중음악 포털사이트'로의 개편 등등이 있고, 방문자수 늘려서 운영비 보존 정도는 생각하고 있지만 그게 안 이루어져도 계속 하려고 합니다. (만약 휴간을 생각한다면 가슴과 동등한 뭔가의 일을 하거나 최악의 경제적인 사태 발생, 운영환경에 난점이 발생할 때이겠죠.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1인운영체제'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운영환경에만 문제가 없다면 계속 운영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 보입니다.) 향후 내가 마케팅에 눈이 확 뜨고, 여기서 떼돈을 벌어서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어쨌든 본말이 전도되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체 게바라가 정글속으로 들어가 혁명전사가 된 것이나, 김선명씨가 40년이 넘게 전향서를 쓰지 않고 감옥에서 버틴 일이나, 정태춘씨가 90대초·중반 홀로 '가요사전심의철폐'를 위해서 뛰어다닌 일은 "언제 뭐가 될 것이다"라는 생각 하에 한 것이 아닙니다.

가슴의 운영 취지나 비주류 관련 얘기들이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이라는데 일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내가 동의하는 것은 '현재'라는 단어에 있지 '비현실적'이라는 단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5년간 단발적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몰아서 했습니다. 불편하고 긴 얘기 들으시느라고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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